설교자의 소양(knowledge)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설명)하실 때 그것을 인간인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계시는 성립이 되질 않는다.하나님은 긴 세월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듭,반복하여 자신을 계시하셨다.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계시가 진리요 사실이라는 한가지만으로 막 밀고 들어오지 않고 그 것을 이해할 수 잇는 긴 시간을 주셨다.
하나님은 이 계시(구원의)를 우리에게 합리적(인격적)으로 설명하신다.하나님은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설명하심으로써 우리가 마음으로 항복하여 그 분의 행하심에(계획)동의 하시기를 원하신다.그러나 우리의 동의와 인정이 구원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구원 하시고 새롭게 살리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이요 그 분의 능력이요 그 분의 은혜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신 일을 우리로 하여금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 누구시며 내가 어떠한 은혜를 입었는지를 확인 하도록 하심으로써 스스로 하나님 앞에 항복 하기를 바라신다.그리하여 결국 우리의 입으로 "주는 나의 그리스도시요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라는 고백을 받아 내신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우리의 반응과 결정보다 이 고백을 받아 내시기 위해 지치지 않는 열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또 이루워 가시는 하나님이 부각 되어져야 한다.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반응이 더 부각되는 듯한 성구들이 오해의 소지를 낳고 있는데 대표적인 성경이 롬10:9~13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위의 말슴이 언뜻 보기에는 구원의 조건(원인)으로 이해되어지기 쉽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하신 사람들(구원의 은총을 입은)에게 그 분의 은혜를 확인 시켜 그 은혜 아래서 하나님께 겸손한 모습을 찾게하는 의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원이 마치 우리의 동의와 인정, 결단을 필요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오히려 그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 앞에서 그 구원을 값없이 수령해야하는 우리의 항복을 받으시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 계시의 주요 목적은 한 인격을 하나님의 은혜 앞에 항복 시키기 위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율법의 한 예를 든다면 "살인치 말라"란 계명의 의도는 "저는 그 계명을 지킬 수 없는 그래서 죽어야할 죄인입니다"라는 고백(항복)을 받아 내시기 위함이지만 인간은 "나는 그런 명령은 벌써 다 지켰습니다"로 나오는 것이다.하나님은 다시"네 형제에게 '라가'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 가리라"고 답변 하시는 것이다.그래도 우리는 그 계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늘도 하나님의 법을 지키겠다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기 이전에 이미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지만(선택, 예정)하나님은 변함 없이 우리보고 이 사실을 믿으라고 요구하신다.우리가 구원에 대한 개념을 지옥에서 천당이라는 단순한 이치로 이해하고 있는한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그 나라를 소유할 수 없게 된다.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은 나를 죄와 사망의 자리인 지옥에서 영생의 자리인 천국으로 옮겨 놓았다는 장소 이동(물리적인)을 뜻하기 보다 '나'라는 인격을 바꾸시는 것이 구원의 본질인 것이다. 죄와 사망의 노리개였던 나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이 구원의 내용인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나'라는 인격이 바뀌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받았으니,이제는 인격이 변해야 된다 그러나 이 인격의 변화는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안 변한다 내가 거룩(구별)해 지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내가 거룩해 질 것이냐 아니냐는 나에게서 결정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나의 권리이다. 만약 구원의 은혜 아래 있는 내가 계속 거룩해 지기를 거부한다면, 나는 사회와 교회에서 어떠한 위치와 신분에 있건 하나님의 거룩함과 그 나라에서 공급하는 모든 것을 수령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긴 시간동안 인간을 설득(어르고 달래고 패고)하셔서 우리로 그 구원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하신다.왜냐하면 내 인격이 배제된 구원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구원은 억압에 못이겨서 억지로가 아닌 내가 자발적으로 흔쾌히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좌절감을 맛보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즐겨 항복하는 자리까지 유도하신다. 우리에게 힘이 되고 소망이 되던 세상의 것들이 내 앞에서 아무 쓸모 없는 것으로 변하는 좌절로 인도하시는 것은 우리로 세상에서 힘쓰는 것을 갖고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려 하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실패는 영적 문제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복된 경험이 되는 것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예가 된다<나의 행동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 하나님은 그 약속을 예가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가신다<좌절을 통해> 그러므로 내 손에 가진 것이 없고 또는 내가 가진 것으로 실패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볼 면목이 없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약속이 '예'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임을 깨닫는 것이 지혜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신자에게 있는 고질병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 없이 서고 싶어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폐를 기치며 살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잘못 이해함으로 생기는 폐단이다. 계시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그 계시의 수령자이다.설교자는 같은 인간이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회중에게 전달하는 직책을 부여 받았다.그러므로 인간에게 전달하시는 계시의 인격성을 바로 이해할 때 바른 설교가 행해질 수 있고 회중은 그 설교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설교의 평가는 회중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리신다.회중이 어떻게 반응 했는가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얼마나 바르게 이해하여 전달 했는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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