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서에 대한 오해
“어리석은 자는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는다.
천진난만한 자는 용서하고 잊는다.
지혜로운 자는 용서하고 잊지 않는다.”
- 토머스 사초 -
- 우리들 모두는 용서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의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 신념은 용서의 시점을 판가름하는
기준이나 용서가 불가능한 행동 등에 대한 것이다.
<신념 1〉용서한 후에는 잊어버리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 거짓
- 노력해 볼 수는 있어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잊어버리고 싶겠지만 정말 잊을 수 없는 것이다.
- 우리는 용서하더라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깊은 상처를 받는 상황이 있었다면 다시는 똑같은 일이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신념 2〉 용서를 하려고 할 때 화를 내도 괜찮다 - 참
- 용서의 과정에서 화를 내는 것은 괜찮을 뿐 아니라 필수적이다.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정도의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들여 처리해야만 한다. 상실한 것에 대해 애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 ‘용서할 수 없는 행위 목록’에 기록된 항목들은 이미 어떤 부분이 상실되었음을 말해 준다.
- 우리가 자신을 용서하든 타인을 용서하든 간에 그럴 필요가 있는 과거의 모든 일에는 어떤 형태로든
상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러한 상실에 대해서도 애통해야 한다.
- 애통(grieving)이 부인(denial)에서 시작하고 현실을 수용함으로써 끝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부인 단계와 수용 단계 사이에 나타나는 두 가지 기본적인 애통의 양상은 분노와 슬픔이다. 우리가 반드시
분노와 슬픔을 경험해야 애통함을 처리할 수 있고 이러한 애통의 과정을 거쳐야 용서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분노하는 것은 용서하기 위한 과정의 일부분이다.
<신념 3〉용서 할 대상에게 느껴지는 불쾌한 모든 감정을 포기한다. - 참
- 용서의 정의 (웹스터 사전)
“ 상처를 입힌 사람을 향해 분노하는 것을 중단하다”
- 상대방에게 더 이상 나쁜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 용서다. 그를 신뢰하지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해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 용서하는 과정을 거쳤을지라도, 삶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예전에 받았던 상처와 원망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런 경우의 대부분은 더 깊은 차원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직
우리 내면에 용서를 통해 치유를 경험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새롭게 드러난 상처를 다루기
위해 또 다시 용서하기만 하면 된다. 이 말은 이전에 했던 용서의 작업이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아직 해야 할 작업이 더 남아 있단 뜻일 뿐이다.
<신념 4〉다른 사람을 빠르고 완벽하게 용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거짓
- 참된 용서는 결코 서두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내면의 치유과정이다. 물론 용서의 속도는 받은
상처의 깊이와 심각성에 따라 좌우된다.
-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을 때 그를 진정으로 용서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 용서하려는 결정을 일찍 해야 하지만 용서의 과정을 통과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용서는 손쉽게 빨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 받은 상처가 아주 깊을 때조차도 빨리 용서하려 하는 것을 보면 종종 저변에 하나님처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듯 여겨졌다.
- 에덴동산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용서의 과정을 거치신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용서하기로 결정하셨지만 그 용서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희생되실 때까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다. 우리가 분노를 느끼는 이유가 용서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죄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려 주기 원하신다. 그분은 죄를
가볍게 다루지 않으시며 우리 또한 같은 태도를 갖기 원하신다.
- 용서하기 위해 시간적 여유를 갖고 분노하고 슬퍼하면서 자신이 상실한 것들을 애통하는 가운데 우리는
피해의 심각성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가볍게 다루려 해서는 안 된다. 사실 너무 빨리 용서를
베푸는 것은 진정한 용서를 이루지 못한다.
<신념 5〉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상처가 낫고 상대방을 용서하게 될 것이다 - 거짓
- 용서는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용서는 언제나 선택과 함께 시작해서 용서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용서하기로 선택하지 않고 시간이 상처를 치유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용서가 아니다.
- 상처가 아문다는 말은 용서와는 다르다. 시간이 흐르면 고통에 둔감해지거나 상처 입은 일에 대한 기억을
억압하기도 한다. 그러나 둔감하게 되고 억압하는 것이 용서가 아니다.
- 깊은 치유는 오로지 용서의 과정을 거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신념 6〉일단 용서를 했다면 내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거짓
- 누군가에 의해 깊은 상처를 받게 될 때 그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 어떤 대상이나 사물에 대해 열의를 가진 경험이 없이는 미움을 느낀다는 것이 어렵다.
- 상처를 입힌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그냥 머물러 있 어서는 안 된다.
용서하는 과정을 지나는 것은 결국 이러한 해로운 감정을 포기하는 것이다.
<신념 7〉용서를 하면 내게 일어난 일이 별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 거짓
- 상처 주는 행동을 눈감아주는 것이 용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악을 용납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용서를 한다고 해서 악이 절대로 선으로 탈바꿈하지 않는다.
- 자신의 고통, 슬픔, 분노를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진일보하게 된다. 하나님은 악을 눈감아주지
않으신다. 그 분은 대가를 요구할 정도로 악을 심각하게 다루신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를 죽게 하실
정도로 악의 대가를 지불하셨다.
- 하나님은 용서가 죄를 눈감아주는 행위가 아니라면 잘못된 행동을 용서하는 것이 어째서 상처를 입힌 악한
사건을 눈감아 주는 행위가 되겠는가? 그럴 수 없다.
- 용서를 해주는 것이 가해자를 유리하게 하거나 그들의 책임을 벗어버리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가해자가 우리에게 진 빚을 취소해 주는 것이다. 그들이 도저히 어떻게 해도 갚을 수 없는 빚을 말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배상 받아야 한다는 기대에서 말이다.
<신념 8〉용서는 기본적으로 단번에 이루어지는 결정이다. 용서하느냐 용서하지 않느냐 둘 중 하나다 - 거짓
-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거짓이다. 용서는 결단이자 과정이다. 진실한 용서는 시간이 걸린다.
- 어릴수록 상처를 더욱 깊이 받아서 용서의 과정에도 애통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신념 9〉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회개할 때까지 나는 용서할 수 없다 - 거짓
- 남을 용서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 순종하는 행위가 된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람들을 용서할 것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상대방이 회개하기 전에는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면 목회자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시인한 적도 없고 회개한 적도 없을 경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용서가 불가능해 지는 것이다.
- 용서는 상대방의 호응이 없어도 가능한 것이다.
<신념 10〉내게 상처를 입힌 사람이 회개하지 않을 때조차도 나는 용서해야 한다. - 참
- 다만 상대방의 자발적인 회개 여부에 따라 용서를 선택하려는 사람은 여전히 피해자의 위치에 서 있으며
상황을 상대방에게 장악 당하고 있음을 덧붙여 말하고 싶다.
-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협조하지 않아도 용서하도록 도우실 수 있다.
- 기본적으로 용서는 상처받은 사람이 자신을 위해 하는 행동이다.
- 가해자의 태도에 따라 용서가 좌지우지될 경우, 가해자가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한다면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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