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의 비밀과 한국인의 정체성
아리랑과 성경과 민족사의 만남
유석근
(알이랑 코리아 대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행마다 열자씩 4행 40자의 이 분장(分章) 가요. 이 노래를 우리는 ‘아리랑’이라고 부른다. 아리랑…. 이 노래만큼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래 온 노래도 없으리라. 슬플 때도 아리랑, 기쁠 때도 아리랑….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역사와 함께 민족의 한과 기쁨을 노래해온 단 하나의 노래다.
겨레의 노래 아리랑이 서양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세기 말.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으로 알려진
호머 헐버트(1863∼1949) 선교사는 구전으로 전해오던 아리랑을
1896년 서양식 오선지에 처음 채보해 외국에 알렸다.
그는 “아리랑은 조선인에게 쌀과 같다”고 하였다.
또한 헐버트는 팔도 어디서나 들려오는 아리랑을 두고 이렇게 예찬했다.
"조선 사람은 즉흥곡의 명수로, 바이런이나 워즈워드에 못지않은 시인들이다."
한국인은 아리랑을 부를 때 저절로 흥이 난다. 기쁜 자리 슬픈 자리 없이 언제 어디서나 불러서 기쁘고, 들어서 정다운 노래…. 무슨 이유로 ‘아리랑’은 한국인의 마음에 그토록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일까? 아득한 옛날부터 남녀노소 상하귀천 없이 입을 모아 불러 온 노래…. 들어도 들어도 싫지 않은 이 노래는 과연 언제부터 무슨 연유에서 불려지기 시작한 것일까?
현재까지 아리랑의 비밀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연구가 거듭되어 왔으나 시원한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아리랑은 굉장히 큰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노래이다. 놀랍게도 아리랑은 셈의 후손인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들이 대홍수 후 광명의 본원지(밝달=배달)를 찾아 동방으로 천동(遷動)할 때 험한 산과 높은 고개, 그리고 고원들을 넘어오면서 부른 ‘찬송가’였다(창 10:21~30).
1.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 아리랑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논하려면 종교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배달 동이겨레는 하느님을 섬기던 제천민족(祭天民族)으로서
단순한 정치세력(민족,국가)이 아닌 ‘종교적’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겨레는 다신숭배가 만연한 고대 세계에서
제천신앙으로 유일신 하느님을 숭배하던 독특한 민족이었다.
단군조선시대에는 제천의식이 북으로는 백두산에서,
남으로는 강화도 마리산 산정의 참성단에서 행하여졌다.
이 제천행사야말로 동이문화의 정수(精髓)이며,
우리 문화의 본성(本性)인 것이다.
따라서 동이의 후예인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도
종교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그 비밀이 드러날 것이다.
아리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리랑’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모든 종류의 아리랑 노래에서 변하지 않고 쓰이고 있는 후렴구가 ‘아리랑’이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아리랑’이라는 말은 특별한 뜻과 사연이 배어 있다는 증거다. 실지로 우리 한국인은 ‘아리랑’이라는 말 자체에 친근감을 느끼며 흥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아리랑 연구가는 ‘아리랑’은 뜻이 없는 단순한 후렴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지 흥을 돋우고 음조를 메워나가는 구실을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아무 뜻도 없는 말이 한국인의 마음을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사로잡아 왔단 말인가? 당치도 않은 소리다. 만에 하나 그의 주장대로 ‘아리랑’이 단순히 ‘흥을 돋우고 음조를 메워나가는 구실을 하는 아무 뜻이 없는 말’이라고 치자. 그럴 경우에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 하필이면 그것이 ‘아리랑’인가? 꼭 그렇게 소리 내야만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차라리 ‘아리랑’은 끝까지 해명이 필요한 어떤 특별한 뜻이 있는 말로 간주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더욱이 ‘아리랑’은 후렴구이다. 후렴(refrain)이란 노래 곡조 끝 혹은 앞에 붙여 반복해 부르는 짧은 가사를 말한다. ‘아리랑’이 노래의 후렴구라는 사실은 오히려 ‘아리랑’이라는 말이 굉장히 중요한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대부분 후렴은 그 노래의 중요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리랑’에 담겨져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아리랑’에는 한국인의 원형과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아주 귀중한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아리랑’은 성민 한국인의 키워드(keyword)이다.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아리랑은 한자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아리랑’이라는 한자가 기록된 책이 어디선가 고서(古書) 가운데 한 권이라도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리랑은 구전으로만 전해져 온 순 우리말의 민요이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원래 ‘알이랑’이다(알이랑=아리랑).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
그런데 오랜 세월동안 글이 없는 가운데 구전으로만 전해지다 보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부르게 되었고 결국 가사가 그렇게 굳어지고 만 것이다. 그러니까 원래의 노랫말을 잃어버린 것! 따라서 아리랑이 진정 어떤 노래인지를 알려면 먼저 가사부터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로 복원해야 할 것이다.
아리랑의 비밀을 해석하는 열쇠, ‘연음법칙’
알이랑 알이랑 알알이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말의 발음에는 ‘연음법칙’이라는 음절의 연결규칙이 있다.
자음으로 끝나는 음절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음절이 이어질 때
앞 음절의 끝소리가 뒤 음절 첫소리가 되는 음운 규칙을 말한다.
예, “깊이→기피” “옷을→오슬” “책이→채기” “낮에→나제”
“벗이랑→버시랑” “가물어 메마른 땅에”→“가무러 메마른 땅에” “하늘이→하느리”
알이랑→아리랑
알알이요→아라리요
‘알이랑’은 ‘알’과 ‘이랑’으로 구분된다. ‘알’은 ‘하느님’을 의미한다. ‘하느님’이라는 신명(神名)은 처음에 ‘알’이었다. 그런데 ‘알’ 앞에 ‘한’이라는 관형사를 붙이고, ‘알’ 뒤에 ‘님’이라는 존칭명사를 붙여서 ‘한알님’이라고 했다. 그것이 [한알님→하날님→하늘님→하느님]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알’은 ‘하느님’이다. 창조주 하느님을 뜻하는 원시 언어가 ‘알’이었다.
유대인의 ‘엘(EL)’, 아랍인의 ‘알아(알라)’는 바로 이 ‘알’에서 파생된 말이다(‘알라’는 아랍어로 유일신 하느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인 아랍 사람들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이름인 '엘로힘'(단수는 Eloah)은 '알라(alah)'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벌코프 조직신학 239쪽*크리스챤 다이제스트 간). 즉 창조주 하느님을 뜻하는 인류 최초의 신명이 우리 말 ‘알’이었는데, 노아에 의해 홍수 이후의 세대로 전해졌다.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로서(언어학자들은 ‘토씨’는 6천년 이상 간다고 한다) 영어의 ‘With’이다(예, 갑돌이랑= 갑돌이와 함께, 갑순이랑= 갑순이와 함께). 따라서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말이다.
창조주 유일신의 이름 ‘알’
왜 ‘알’이 유일신 하느님을 뜻하는 말이었을까? ‘알’이 수많은 생명을 낳기 때문이다. 쌀도 볏알(볍씨)에서, 과실도 씨알에서 생기고, 하늘과 땅과 바다의 허다한 생물들이 또한 ‘알’에서 탄생한다. 그래서 ‘알’은 ‘모체(母體)’요, ‘근원(根源)’이요, ‘시작(始作)’과 같은 뜻을 갖는다. 따라서 창조주 하느님도 ‘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만물의 모체이시고 근원이시며 시작이시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한국인은 그 ‘알’이 ‘큰 모체’이시고 ‘큰 근원’이시며 ‘커다란 시원(始原)’이시기에 ‘알’ 앞에 ‘한’이라는 관형사를 붙였다. 또한 그 ‘알’이 인격적 존재이심으로 ‘알’ 뒤에 ‘님’이라는 존칭명사를 붙였다. 그래서 창조주 유일신을 ‘한알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한알님’이 [한알님→하날님→하늘님→하느님]으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알’은 하느님을 뜻하는 말이다.
더욱이 ‘하늘’은 둥굴어서 ‘알’인데, ‘하늘’이라는 말도 처음에는 ‘한알’, 즉, ‘큰 알(大卵)’이었다. 한알→하날→하늘로 변한 것이다. 만물을 내신 한알님(하느님)은 한알(하늘)에 계신다. ‘큰 알(大卵)’, ‘큰 모체(母體)’, ‘큰 근원(根源)’ 같은 뜻으로서의 ‘한알’에 ‘하늘’이라는 말의 기원이 있는 것이다.
지난날의 우리 신화 ․ 전설에서, 한 시조(始祖)의 탄생이 난생(卵生)으로 이어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밝불거뉘)는 망아지가 알을 품고 있다가 뛰쳐 나간 그 알에서 태어났다. 그 밖에도 비슷한 이야기는 많다. 짐승이나 사람이 알을 낳는다. 너무도 이상해서 갖다 버린다. 그러면 새와 짐승들이 그 알을 보호하며 노래 부른다. 그렇게 하늘의 뜻에 따라 보호를 받으며 태어난 것이 고주몽(高朱夢)이기도 하고, 금와(金蛙)이기도 하다.
‘알’이라는 것은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서 사물(事物)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시작’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커다란 시원(始原)’으로서의 ‘알’이 곧 한알→하날→하늘로 된 것이다. 그러한 하늘이었기에 삼라만상(森羅萬象)은 곧 당신의 것이었다. 당신이 낳으시고, 당신이 기르시고, 또 당신이 주재하시는 것이었다. 홍수 전 사람들이 창조주 유일신을 ‘알’이라고 불렀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느님을 뜻하는 성경 원어 ‘엘(EL)’은 바로 이 ‘알’에서 가지 쳐 나온 말이다. ‘엘’은 ‘다스리는 이’, ‘강하신 분’이란 뜻을 가진 신명(神名)으로 셈어(Shemitic)에서 전반적으로 사용된 ‘하느님’ 또는 ‘신성(Divinty)’에 관한 호칭이다. 이 ‘엘’은 바로 ‘알’의 변음이다.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하느님을 ‘알’이라고 불렀다. 이 ‘알’이라는 단어는 창조주 하느님을 뜻하는 일종의 원형 언어로서 노아에 의해 홍수 이후의 세대로 전승되었다.
‘알’이 고대에 하느님의 이름이었음을 보여주는 언어학적 증거로서 ‘메아리’를 들 수 있다. ‘메아리’는 본래 말이 ‘뫼알이’ 이다. 이 말은 ‘뫼의 알’, 즉 ‘산신’을 말한다. 산에 가서 ‘야호~’하고 고함을 치면 ‘야호~, 야호~, 야호~’라고 산이 있는 숫자만큼 되돌아오는 소리를 우리 조상들은 산신의 소리로 연상했던 것이다. ‘엘(EL)’, ‘얼’, ‘일’과 같은 말들은 모두 바로 이 ‘알’의 변음이다.
‘알’에서 가지 쳐 나온 말 ‘얼’
‘얼’이라는 토박이말도 ‘알’에서 가지 쳐 나온 말로서 역시 ‘신(神)’, ‘넋’과 같은 의미의 말이다. ‘정신 나간 사람’을 두고 ‘얼간이’(얼이 간 사람) 혹은 ‘얼 빠진 사람’이라고 하고, ‘얼떨떨함’이나 ‘얼이둥절’(어리둥절)은 ‘정신을 가다듬지 못한 상태’이며, ‘얼뜨기’는 ‘다부지지 못하고 겁이 많은 사람’을 뜻하며, ‘얼버무림’은 ‘제대로 버무리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렇게 ‘얼’은 ‘정신’을 뜻하는 우리의 훌륭한 토박이 말이다. 이 ‘얼’이라는 말의 시작이 바로 ‘알’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고대 수메르어에서도 인간의 정신(Human spirit)을 뜻하는 단어가 ‘A-LA’였다는 것이 뒷받침 해준다.
이 ‘얼’을 드러내는 곳이 인체에 있어서는 ‘얼골’(얼골→얼굴)이다. ‘얼골’을 보면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 즉 ‘얼’이 어떤 것인가를 대충 알 수 있다. ‘얼골’에 그것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 안에서 ‘얼’이 사라지면 송장이 되고 나중엔 뼈만 남는데, 그것은 더 이상 ‘얼골’이 아니므로 ‘해골’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무덤이 동그란 까닭
한국인의 무덤은 동그란 모양의 봉분인데, 그것은 ‘큰 알’을 뜻한다. 셈의 후손으로서 ‘한알님’께 제사지내며 생활했던 한국인의 선조들은 스스로 천손민족(天孫民族), 즉 ‘한알님’의 백성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죽음이란 ‘한알’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덤이 동그란 모양의 ‘알’인 것이다. 그들은 ‘한알님’의 백성으로서 ‘알’에서 왔으니 ‘알’로 돌아가고자 했다. 실로 한국인은 ‘알이랑 정신’으로 살고 죽는 ‘알이랑 민족’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알’이 원래 무슨 말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그것은 홍수 이전 최초의 인류 가계로부터 내려온 지상 최초의 낱말 중 하나로서, 고대에 창조주 유일신을 뜻하는 하느님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말이다.
고개를 넘어 간다
‘고개를 넘어 간다’는 가사는 무슨 뜻일까? 그것은 고대 한민족이 이란고원을 지나 파미르고원을 넘어, 천산산맥과 알타이산맥을 넘어갔다는 말이다. 실로 수많은 고개를 넘은 것이다. ‘파미르 고원’을 지나(支那) 사람들은 총령(蔥嶺: 파총, 재령)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어 파(蔥) 마루(嶺) 그대로 파마루(파미르)이다. 지리학에서도 역시 파미르 고원(蔥嶺)에서는 파(蔥)가 많이 야생한다고 한다. 파미르 고원은 ‘파마루’로서 파(蔥)가 많이 자생하는 산마루(嶺)이기에 파마루(파머루) 고원인 것이다. ‘파미르’의 어원이 한국어 ‘파마루’이다. 한국인은 남자를 사내라고 한다. 사내는 원래 ‘산아이’가 [산아이→사나이→사내]로 변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고대에 산지,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동방으로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적인 연관성은 고대 한국인이 참으로 ‘파미르고원’을 지나 ‘천산산맥’을 넘고 ‘알타이산맥’을 넘어서 동방으로 이동해 왔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고고학적 증거이다.
알타이 고개를 넘어서 동쪽으로 조금 더 이동하면 바이칼(밝익알) 호수가 나온다. 한국인의 선조들은 이 바이칼 호수를 거쳐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다가 마침내 아시아 동녘에서 제일 높고 밝은 산인 한밝산(犬白山→白頭山)에 이르러 배달나라를 세웠던 것이다. 백두산 산정에 올라 창조주 한알님께 천제(天祭)를 드린 후에!(우리 겨레가 평지가 아닌 산꼭대기에서 드렸던 산정제사는 대홍수 후 노아가 알아랏 산정에서 거행했던 역사적 ‘제천의식’을 답습한 것이었다).
알이랑 알이랑 알 알이요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
따라서 이 노래 가사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이요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
(with God, with God, with God, just God.
accompany with God, I will cross over the mountains.)
‘아리랑’은 창조주 하느님을 섬기던 고대 한국인이 이 땅에 오기까지 수많은 산과 언덕과 고원들을 넘어 오면서 부른 ‘찬송가’였던 것이다. ‘아리랑’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그토록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겨레의 역사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민족의 숨결이며 역사의 맥박이기 때문이다.
아리랑의 나머지 가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후대에 가사들이 변형,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굳이 의미를 탐구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나머지 가사들을 후렴구와 연결해서 그 뜻을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누구를 뜻할까? 문맥상 그들은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가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된다. 왜냐하면 “알이랑 고개를 넘어 간다”는 바로 앞의 가사는 “하느님과 함께(with God) 고개를 넘어 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가사는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 곧 천손민족의 찬송이며 믿음의 고백이었다. 그러므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창조주 하느님을 불신, 배척하는 무리들을 의미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 대한 악담이나 저주가 아니다. 만약 노래 가사가 “나를 버리고 가는 놈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고 했다면, 그것은 실제로 발에 병이 나라고 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사는 가는 놈이 아니고 가시는 님이다. 따라서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것은 발병이 나서라도 더 떠나가지 못하고 나의 품으로 되돌아오라는 회귀원망(回歸願望)의 연정(戀情)을 노래한 것이다.
즉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버린 자들을 향해 다시 순수한 하느님 신앙으로 되돌아 올 것을 사랑으로 촉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겨레의 노래 ‘알이랑’에는 ‘하느님을 위한 열정’과 ‘잃은 자를 위한 연민’이 함께 깊이 배어 있다. 즉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얼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경천애인(敬天愛人)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마 22:37~40).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의 2절은 푸른 하늘의 잔별만큼이나 우리 가슴엔 수심도 많다고 노래한다. 왜 알이랑 찬송을 부르며 동방으로 천동(遷動)하던 우리 조상들의 가슴엔 그리도 근심이 많았을까? 그것은 1절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 때문이었다. 즉 유일신 신앙(제천신앙)을 저버린 자들이 제천민족 우리 조상들의 커다란 근심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세상 근심과는 차원이 다른 ‘거룩한 근심’이었다(고후 7:10).
이와 같은 역사적 사연을 간직한 '알이랑' 찬송은 우리 조상들이 동방의 산지를 넘어 이 땅에 오기까지 끊임없이 불리어졌다. 그리고 오늘도 겨레의 삶 가운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상 자세히 살펴본 바처럼 아리랑은 ‘찬송가’이다. 그래서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알려주는 ‘천손민족(天孫民族)’ 코드이다. 우리 배달겨레는 세계 만민 중 민족사를 ‘알이랑’ 곧 ‘하느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단 하나의 민족인 것이다.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장삿꾼이었으며,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그 아비처럼 우상을 숭배하는 다신론자였다.)
2. 알이랑 민족 한국인의 성경상의 기원
우리 겨레의 근본 사상은 ‘알이랑 정신’이다.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것은 ‘하느님 중심 사상’이요, ‘신본주의 정신’이다. 홍수 후에 그렇게 철저한 유일신 신앙을 갖고서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천동(遷動)한 족속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가계이다.
셈족의 종가(宗家) 욕단 족속
창세기 10장 21절에 보면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는 말씀이 있다. ‘에벨’은 셈의 셋째아들 아르박삿의 손자였다. 셈은 아르박삿 외에도 네 아들이 있었고(창 10:22), 따라서 셈은 이 모든 자손들의 조상임에도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을 먼저 언급하면서,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으로만 구별해 놓았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셈의 후손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혈통’이 선택된 종족이라는 것이다. 즉 셈의 하느님(창 9:26)은 이제 ‘에벨 자손의 하느님’이 되신 것이다. 그러면 ‘에벨의 자손’이란 누구인가? ‘벨렉’과 ‘욕단’ 두 형제뿐이다.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창 10:25).
따라서 신적 선택을 받은 종족인 ‘에벨의 온 자손’이란 곧 ‘벨렉 자손’과 ‘욕단 자손’을 말하는 것이다.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했으니 셈은 곧 그 두 형제의 자손들의 조상이 된다는 말이요, 하느님은 ‘셈의 하느님’이라 했으니(창 9:26) 곧 ‘벨렉 자손의 하느님’이시요, ‘욕단 자손의 하느님’이신 것이다. 여기에서 여호와 하느님은 선택된 백성이 하나가 아닌 둘인 근거를 분명히 예비하셨다. 선택받은 백성은 ‘벨렉계 선민’과 ‘욕단계 선민’ 두 계열의 백성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칼빈은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다: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셈의 아들들에 대하여 말하려는 기회에 모세는 간단하게 서론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 서론은 다른 사건들에 대하여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 것은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이 계열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종족이기 때문에 하느님은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 특별한 표로서 이 종족을 격리시키기를 원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것이 모세가 특별히 그를 가리켜서 ‘에벨 자손들의 조상’ 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것은 셈의 복이 무차별하게 그의 모든 자손들에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한 가족에게만 그것이 상속되어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존 칼빈 원저, 「성경주석 창세기」, 서울: (주)성서원, 1999, P. 301)
셈을 “에벨 온 자손의 조상”으로만 부각시킨 까닭은 ‘에벨의 자손’이 선택된 종족이며, 셈의 복이 한 가족 ‘에벨의 후손’에게만 승계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주목하라. 여기에서 '셈의 복'이란 창세기 9장 26절에 기록된 것으로서 하느님이 '셈의 하느님'이 되신다는 복이다. 즉 천손으로 구별되는 복인 것이다.
이 계시를 깨닫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에벨은 24절에 나오며, 24절에 에벨이 나오기 전에 벌써 셈의 후손이 여럿이 나오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냥 이름만 대고 넘어가면서 에벨만은 셈의 후손 꼭대기에다 올려놓은 것은 선민, 즉 ‘천손민족’이 에벨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에벨’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이다. 에벨은 셈의 4대손이지만 ‘천손민족의 조상’이기 때문에 21절에서 특별히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벨렉의 후손에서는 그의 6대손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름을 받음으로서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이 탄생했다(창 11:10~32). 그렇다면 또 하나의 천손(선민)인 욕단의 후손은 어디로 갔을까? 성경은 그들이 동방의 산악 지대를 넘어 아시아로 갔다고 말한다.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이었더라”(창 10:30).
여기에서 ‘산’이란 히브리어로 ‘하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산맥’, 혹은 ‘일정한 지역의 산들’ 곧 ‘산지’를 가리킨다. 동양에는 큰 산들이 많이 있다. 즉 욕단은 동쪽 산악 지대를 넘어서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 아시아로 천동했던 것이다.
욕단의 가계는 에벨의 혈통으로서 셈족 중에서도 특별선택을 받은 셈족의 종가(宗家)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백성이었고, ‘알이랑 정신’, 곧 ‘하느님 중심 사상 ․ 신본주의 정신’이 가장 확고한 족속이었다! 따라서 욕단 족속은 셈족의 정통성을 승계한 백성답게 ‘하느님과 함께 고개를 넘어 간다’, 즉 ‘알이랑(With God) 고개를 넘어 간다’라고 찬송하면서 ‘스발’을 향해 동방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스발’의 위치는 어디일까? ‘스발’을 히브리어에서 음역하면 ‘새팔’이다(우리말 성경 개역판의 히브리어 음역 표기는 고대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으로부터 왔다).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새팔’은 결코 당시에 존재하거나 알려진 도시와 장소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홍수로 인해 지워졌기 때문이다. 욕단이 천동하기까지 동양에는 아직 누구도 살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창세기 10장 30절에 언급된 ‘새팔’은 현실적인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예시적’인 지명이다. ‘예시’란 나중에 원형으로 구체화 될 어떤 진리가 미리 ‘암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새팔’의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지명 및 위치를 찾아야 한다.
예시적 지명 ‘새팔’은 어디일까? 일단 그곳은 아시아 동쪽의 어느 곳에선가에서 추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욕단은 동방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과연 어디를 뜻할까? ‘시베리아’이다. 알타이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진다. 시베리아는 고조선의 창건 무대인 만주 대륙이 연장된 땅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의 고향이다.
알이랑 고개를 넘어 유라시아 대륙 동쪽으로 멀리 천동한 욕단 족속은 남북만주 및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방의 새 땅을 ‘새발’이라고 하였다. ‘새발’은 ‘새벌’의 고어로서, ‘새 땅’ ‘새 벌판’이라는 뜻이다. 욕단의 목적지 ‘새팔’은 바로 우리 한민족의 발상지 ‘새발’(시베리아~만주)을 예시한 것이다. ‘새팔’과 ‘새발’은 발음이 아주 유사하다. ‘ㅍ’을 약하게 소리 내면 ‘ㅂ’이 된다. ‘ㅍ’과 ‘ㅂ’은 모두 ‘파열음’으로서 한 계통의 소리이다. 따라서 자주 혼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안팎’은 ‘안밖’이요, 동이족의 후예인 인디언은 ‘아버지’를 ‘아파치’라고 부른다. 더욱이 우리말에서 ‘벌’(발)의 옛말이나 거센말은 ‘펄’(팔)인데 “매우 넓고 평평한 땅”을 의미한다. 따라서 ‘새팔’ = ‘새발’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알이랑 민족 한국인의 성경상의 직계 조상은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다. 따라서 동방의 한국인은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인 것이다. 여호와 하느님께서 나중에 쓰시려고 “감추어 두신 선민”이 바로 알이랑 민족 우리 한국인이다(그러나 당신이 누구이든 꽉 막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면, 상실되었던 계시가 드러나고 회복되더라도 결코 그것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겨레가 하느님이 감추어 두신 ‘또 하나의 선민’이라는 교훈은 새로운 선민주의(particularism)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별계시인 성경에 근거한 객관적 사실이다. 아시아 서쪽 땅 끝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셈족의 현저한 ‘좌측 가지’인 벨렉의 후손이다(창 10:21,25; 11:10~32). 그리하여 그들은 천손민족이다. 아시아 동쪽 땅 끝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셈족의 현저한 ‘우측 가지’인 욕단의 후손이다(창 10:21,25,30). 그리하여 그들도 천손민족, 곧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인 것이다.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겉사람’과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 있는 것과 같이 선민, 곧 천손민족도 겉으로 드러난 선민(벨렉 계열 유대민족)이 있고 속으로 감추인 선민(욕단 계열 한국인)이 있다.
창세기 10장 21절에 의하면 벨렉 계열과 욕단 계열은 셈족의 현저한 두 가지(branch)로서 신적 선택을 받은 족속인 ‘에벨의 혈통’이다. 이것은 상실되었던 진리로 마지막 때에 회복되어야 할 아주 중요한 계시이다.
* 향후 전개되는 구원사에 있어서
에벨의 자손인 벨렉계 천손민족과 욕단계 천손민족은
중요한 위치를 점할 것이었다.
전자를 통해서는 구원의 길을 여시고,
후자를 통해서는 구원사를 마무리 하신다!
*벨렉계열 선민(천손)→ 먼저 사용하셨음→ 구원사를 여심→ 복음의 첫번째 주자
*욕단계열 선민(천손)→ 나중에 사용하심→ 구원사를 완성→ 복음의 마지막 주자
밝은 땅(밝달)의 임금 욕단
빛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공경하던 욕단 족속은 빛이 시작되는 땅, 곧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가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 고개를 넘어 쉬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마침내 동해에 해 떠오르는 ‘밝의 땅’, 동방의 땅 끝에 당도하였다. 그리고 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배달나라를 세운 우리 밝달겨레(배달겨레)의 조상이 되었다. ‘밝달’의 ‘달’은 ‘아사달’의 ‘달’로서 ‘땅’이라는 말이다. 양달이 양지(陽地)요, 응달이 음지(陰地)요, 빗달은 비스듬한 땅(傾斜地)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욕단을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물론 ‘밝달임금’이라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욕단은 사람들을 ‘밝의 땅’으로 이끌고 온 ‘밝달족’(광명족)의 우두머리(Headship)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군’이 ‘욕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단군’이란 칭호는 ‘밝달임금’(檀國의 君長: king of Bakdal)의 이두식 표현이기 때문이다. ‘단군’은 ‘밝달임금’ 또는 ‘배달임금’ 등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던 우리 동방(조선)의 고유의 호칭을 후세에 한자(韓字)로 의역(意譯)하여, ‘檀(박달)’ ‘君(임금)’ 이라고 표기하여 놓았기 때문에 비로소 ‘단군’이라는 칭호와 발음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단군’이란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밝달임금’이란 뜻의 보통명사이다. ‘단군’은 한 사람이 아니고 그 자리를 물려받은 후손들 모두가 단군이라고 불리어졌다.「제왕운기」와 기타 여러 기록에 의하면 단군이 47대라고 하니, 건국한 이는 제1대 단군이고 아사달에 입산(入山)한 이는 제47대 단군인 것이다. 이른바 ‘단군’이라는 한 임금이 조선을 건국한 지 천여년만에 산에 들어가 신(神)으로 화(化)했다는 전설은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후대에 와전된 것이다.
한민족의 직계 조상 욕단은 배달나라를 세울 때 먼저 백두산 산정(山頂)에 올라 창조주 하느님께 천제(天祭)를 드렸다. 그것은 일찍이 노아가 대홍수 후 거행했던 아라랏 산정의 제천의식(祭天儀式)을 답습한 것으로서, 이렇게 ‘평지’가 아닌 ‘산정’에서 제사하는 관습은 셈족의 종가(宗家)인 욕단 족속에게는 아주 당연한 제사 방식이었다.
단군의 연대와 욕단의 연대
단군의 조선 건국 연대에 대하여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2333년이라는 설이 통용되어 왔다. 이 기원전 2333년 설은 고려의 13세기 말 이승휴의「제왕운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그때 이승휴는 자기 저서에서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의 조선 건국 연대를 중국의 요(堯)임금 건국 연대와 똑같이 무진년(戊辰年)으로 본 것인데, 그것은 실제 우리나라의 그 어떤 구체적인 자료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당시 요임금을 중국 한족의 시조로 보면서 -요임금은 동이족이었다- 그의 건국 연대가 우리 단군의 건국 연대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그런 논법을 세웠던 것이다.
건국시조 단군 때로부터 상당히 긴 세월이 흐른 후세에 살던 우리 선조들은 단군이 나라를 세운 연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였고, 다만 단군이 매우 오랜 옛적에 나라를 세웠다는 막연한 인식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의 건국 연대를 자기들이 알고 있던 가장 오랜 옛 임금에 비교하여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이요, ‘요와 같은 시대’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단군의 즉위 원년의 절대 연대는 사실로서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삼국유사」등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군이 요와 동시에 즉위해 나라를 건국했다는데 의의가 있을 뿐이다. 요와 순은 이상적인 통치시대를 펼친 인물의 대명사격이다. 특히 요는 공자가 성군으로 추앙하던 인물이다. 바로 그러한 요임금과 단군이 동시대에 즉위해 조선을 건국하였다는, 즉 우리나라가 중국과 대등한 시기에 건국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라는 것을 알리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단군의 즉위 연대는 그 절대 연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내세우고자 했던 의식세계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따라서 단군을 성경상의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라고 단정할 때에 단군 시대와 욕단 시대의 일치 여부는 논란의 소지가 될 것이 전혀 없다. 주전 2333년이라는 단군기원은 사실로서의 연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는 그보다 훨씬 더 옛날로 소급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이 성경상의 욕단의 연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대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역추적하여 계산해 보면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타락 원년(元年)은 B.C. 4114년이 된다. 그리고 그 자손들이 타락을 계속해서 온 땅이 강포와 죄악으로 가득 차 하느님께서 큰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는데, 그 홍수가 발생한 연대가 B.C.2458년이다. 셈의 증손자 에벨은 B.C.2391년에 태어나 B.C.2357년 욕단의 형인 벨렉을 낳았고, B.C.1927년까지 살았다.
이 성경 연대는 성경 연구가에 따라 연대 계산에 조금씩 차이가 있어 좀 더 위로 소급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정확무오한 연대 산출(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이 아니라 욕단의 연대가 바로 단군 시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관점을 취하든 우리는 아득한 옛날 백두산정에서 창조주 하느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조선을 건국한 밝달임금, 곧 단군이 성경에 산맥을 넘어 동방으로 갔다고 기록된 욕단이라고 얼마든지 단정할 수 있다.
예수원 설립자 토레이(R. A. Torrey․ 대천덕, 사진)는 셈의 세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이 단군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그 근거를 제시한다:
“…창세기 10:25에 ‘에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벨렉’과 ‘욕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벨렉’이란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그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 ‘욕단’은…알모닷, 셀렙 등 여러 사람들의 조상이 되고,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으로 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동방의 산지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셈의 족속들이기 때문에 동방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욕단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욕단이 혹 단군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계산은 할 수 없지만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비슷한 연대입니다.”(대천덕,「우리와 하나님」, 도서출판 예수원, 1988, 163쪽)
그의 추측은 옳았다! 우리 알이랑민족사를 시작한 단군은 역사적 인물로서 성경상의 셈의 현손 욕단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누가 단군을 믿을 수 없다고 했는가
애석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단군을 역사적 인물이 아닌 신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때로는 ‘우리는 곰의 자식이 아니다’라며 비장한 자세로 목소리를 높이면서 단군을 부정한다. 그들은 단군을 그렇게 신화 속의 인물로 오해하게 만든 것이 일제의 식민사관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 지배시기에 일본인 학자들은 단군 신화가 우리 겨레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 사화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온갖 학설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단군은 원래 묘향산의 산신 또는 평양 지방의 토지신이었는데 이것이 책에 기록되었다가 뒷날 몽고의 침입 때 고려인의 일치단결을 위해 건국 신화로 고쳐졌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단군 신화는 일연 등이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그 동안의 연구를 통해 전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런데 왜 일본 학자들은 그토록 단군을 부정하려고 했을까? 여기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간교한 침략 논리가 숨어 있다.
20세기 초 조선을 강탈, 영구 지배를 꿈꾸던 일제의 가장 큰 고민은 조선이 그들보다 긴 역사를 가진 문화 민족이라는데 있었다. 구한말 조선 강점 당시 자기들의 역사는 기원 후 1700년인데 비해 조선의 역사는 기원전 단군 조선(고조선) 이래로 4200년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역사의 반에도 못 미치는 어린 역사를 가진 섬나라 일본이 조선을 강탈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할아버지와 같은 분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격으로서 그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논리적이지 않았다. 따라서 일제는 우선 그들의 역사보다 2천년 이상 앞서 있는 조선 상고사를 말살하는 것이 시급했다. 그 방법은 단군을 부정하고 단군 조선을 말살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교활한 일제는 단군을 말살하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민족의 시조가 없어지는 것이니 한국인은 단군을 하나의 조상으로 하는 단일민족으로서의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잃게 되어 그 기(氣)가 꺾일 수밖에 없으며, 또 민족이 분열되어 서로 싸우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일제 침략자들은 단군과 조선 고대사 말살 작업을 저들의 대조선 식민지 정책의 중요한 하나의 고리로 삼았던 것이다.
이를 위해 일제는 1920년대부터 우리의 역사를 날조․축소․왜곡․부정하는 작업을 조선 총독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서 단군 관계 역사책들에 대한 전면적인 약탈과 소각활동을 단행하였다. 일제의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찌는 헌병들을 내세워 우리나라 전국 각지의 책방들과 향교, 서원, 개인 집들을 샅샅이 뒤져 조선을 영구히 지배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보이는 단군 관계 역사책들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귀중한 역사, 문화, 지리책들을 수십만 권이나 압수하여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때 총 51종 20만권이나 되는 책들이 사라졌다. 그 후 일제는 유구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저들의 역사보다 뒤늦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조직적인 조선사 위조 작업을 감행하였다.
교활한 일제는 「조선사」를 편찬함에 있어 자료가 부족하다는 구실을 걸어 단군조선의 역사를 빼버렸으며 이마니시 류(今西龍) 같은 역사 위조의 ‘명수’들을 내세워 단군은 후세에 꾸며낸 신적 존재이며 실재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애써 ‘논증’하게하고 단군이 신화적 인물이기 때문에 「조선사」에 서술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게 일제는 한국 고대사를 말살하여 4천여 년 조선의 장구한 역사를 2000년으로 깎아내렸고, 자기 나라의 역사는 5백년을 소급하여 2200년 이라고 했다.
일제는 조선을 영구지배 하고자 그들이 만든 새로운 역사, 조작된 역사 설계도에 두 나라의 국민을 맞춰 일본을 형으로 조선을 아우로 하는 이른바 동조동근(同祖同根)의 한나라를 만드는 망상을 실현하고자 허구의 역사를 만들었던 것이다. 가소롭기 짝이 없는 소행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현(現) 숙명여대 한국사 교수인 이만열 박사는 당시 일제 식민 사가들의 그 간교한 단군 말살 책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군 연구가들은 단군에 관한 기록들이 신화적인 요소와 함께 사실적인 부분도 있음을 중요시 한다. 즉, ‘옛날에 단군이라는 분이 있어서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니, 중국의 요(堯) 임금과 같은 시기였다’고 한 기록은 신화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사실적인 기록이라는 것이다. 이 기록에 근거해서 예부터 단군을 우리의 조상으로 인식해 왔던 것이다. 물론 신화적인 부분으로 전해지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그것이 역사적 사실의 어떤 부분을 일정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보고, 그 기록에서 신화적인 내용을 벗기고 실체의 알맹이를 찾아내려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식민주의 사관론자들은 신화에 나타난 역사적 실체를 탐구하려는 데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신화가 곧 역사 일수 없다는 전제하에 단군에 관한 기록을 왜곡하기에 급급했다. 그들은 단군 관계 기록에서 신화적인 요인을 부정하기 위해 앞서 말한 사실적 부분도 신화와 함께 거부해 버렸다. 이렇게 거부한 것은 신화가 역사일 수 없다는 표면상의 이유와는 달리 식민지 한국의 역사가 그들의 소위 2200 여년의 역사보다 훨씬 상한선이 높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말하자면 일종의 왜곡된 민족 감정 때문이었다.”(이만열, 「우리 역사 5천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바다출판사, 2000, p.57)
단군의 고조선 개국사화에 신화적인 요소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사료적 가치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그 신화적 내용은 단순히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인의 역사적 체험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군 신화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당시대의 역사성이란 근거위에 그 시대상이 반영된 이야기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 겨레 영아기 때의 이야기로서 한국인의 역사적 체험을 담고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따라서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현실의 대지를 밟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간교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군 관련 기록을 몽땅 ‘신화’로만 해석했다. 그래야만 단군조선, 곧 고조선을 말살시키고 우리 민족사의 상한선을 내려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축소 왜곡하려는 일제 어용 식민주의 역사가들에게 ‘단군’의 문제는 늘 하나의 걸림돌이었다. ‘단군’을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해 버리면 우리 겨레의 건국 역사가 무려 반만년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단군’이나 ‘단군 조선’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왜곡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한국 교회의 일부 무지하기 짝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과거 일제 식민 사학자들이 한국 상고사를 말살하기 위해 주장했던 논리를 마치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단군은 신화다”라고. 이는 서글픈 일이다. 학문적 검토 없는 한국 교회의 이와 같은 태도는 기독교회가 비이성적․비애국적 집단이라는 오해를 초래하고 있다. 이것이 선교 측면에서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교회에 끼치고 있는지 모른다.
맺는 말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영아기 때의 체험을 간직하고 있는 민족의 역사노래인 동시에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로서, 한국인이 처음부터 창조주 하느님을 섬긴 욕단의 후손, 즉 이 땅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선민이라는 사실을 규명해 준다. 그러므로 ‘알이랑’은 선민(천손) 한민족의 키워드(keyword)이다. 바로 이것이 아리랑의 비밀이다.
한국인의 선조인 욕단 족속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신신앙을 갖고서(알이랑) 동방 산악 지대를 넘어서(고개를) 극동의 이 땅까지 찾아왔다. 그리고 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배달나라를 세웠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그 나라 백성은 하느님의 백성답게 모두가 흰 옷을 입고 살았고, 오직 제천의식을 성대히 거행하여 유일신 하느님만을 섬겼다. 그래서 배달나라를 고대에 신시(神市), 곧 ‘하느님의 도성(City of God)’이라고 했다! 이것이 우리 한민족의 참모습이다!
알이랑! 그것은 우리 배달겨레의 근본사상이요 뿌리 정신이다. 그것은 ‘하느님 중심 사상’이요 ‘신본주의 정신’이니,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여호와 하느님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천손민족이라는 사실이 민요 ‘알이랑’으로 말미암아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알이랑’은 욕단 계열의 선민이 단군의 후손인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아주 분명한 ‘물증’이다. 그리하여 우리 겨레는 나라꽃까지 무궁화, 곧 ‘샤론의 장미(The Rose of Sharon)’인 것이다(무궁화의 국제적 이름은 한영사전에도 나와 있듯이 'The Rose of Sharon'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긴 세월을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고난 받으며 자기비하(自己卑下) 속에 살아왔다.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 ․ 예수원 설립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기엔 한국은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흡사 기억상실증 환자와 같은 인상을 준다. 만일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한국 백성에게 공동의 선(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어떤 특별한 역할을 부여하셨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러니만큼 한국으로서의 가장 긴급한 과제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일이다….”(대천덕, ‘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 「생명의 샘터」, 1987, 70쪽)
그렇다! 우리 겨레는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고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걸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속히 회복해야 하겠다. 실로 그것은 새 천년을 맞이한 우리 겨레의 가장 긴급한 과제이다.
알이랑! 그것은 우리 한민족의 원형과 정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려 준다. 알이랑!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이다. ‘알이랑’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우리는 ‘알이랑’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알이랑’으로 살아갈 것이다.
알이랑! 그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찬송가’이다. 그러므로 ‘알이랑’은 세계문화 유산이다. 우리는 이 귀한 노래 ‘알이랑’을 시편 삼아 함께 자주 불러야 한다. 우리 겨레에게 이 노래가 있는 한 여호와 하느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다.
동방의 성민 배달겨레여! 이제 스스로를 자각하고 다시 일어나라! 알이랑 민족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라! 민족의 주로 예수를 믿고 민족의 하느님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복음의 제사장 나라를 건설하라! 그래서 이 땅으로 다시 신시(神市), ‘하느님의 도성’(City of God)이 되게 하라! 우리는 여호와 하느님께서 나중에 쓰시려고 동방의 땅 끝에 감추어 두신 또하나의 성민 알이랑민족이다!
*** 이 글은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 에 수록된 내용을
일부만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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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종군
조국이 피에 얼룩진 백의를 입었나니
이 시련과 굴욕의 백의를 감추지 아니하고
그것을 자랑스레 걷어붙이고
어서 가리라, 나의 영원한 조국 바다로
조국 구원의 그날까지
겨레 부활의 그날까지
역사 회복의 그날까지
- 김성영(전 성결대 총장)의 서사시 ‘백의종군’ 중에서 -
- 스테디 셀러인 유석근 목사의 예언적인 책들 -
알이랑 코리아 제사장 나라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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