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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충만한 수-자랑할수 없는 이방인들
롬 11:17~24
이스라엘은 강원도만한 크기의 땅에 인구 백 만 정도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으로만 보려고 합니다.
교회도 중국이나 스리랑카에 선교사를 보내는 것처럼
그저 이스라엘을 선교대상국가 중 하나로 봅니다.
하지만 성경적인 견해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든 이방세계를 하나로 보고 이스라엘을 하나로 봅니다.
모든 이방세계가 구원받고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우주적인 영원한 계획이 완성 되는 것 그것이 성경적인 구원론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구원이 인류의 구원이요 구원의 완성이라고 교회는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구원의 뿌리,먼저 구원의 뿌리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5장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구원은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먼저 나를 택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
하고 믿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전에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셔서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구원에는 감격과 감사가 있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내가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때 내가 받을 자격이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구원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할 말이 있을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런 자격이 없습니다. 심판받아야 할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천국백성으로 만들어주셨다는 이 감격스러운 사실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따라서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감격으로 이 감사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감격과 감사대신에 원망 불평 불순종 교만 종교적 기득권을 주장
했기때문에 선택받은 백성의 축복을 잃어버리고 실패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이방인들의 구원의 뿌리는 이스라엘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실패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이방인들은 구원받은 것을 감격해 하면서 하나님께 받은 구원에 감격해 하면서
구원의 뿌리를 생각하면서 자만하거나 자긍해서는 안 됩니다 .
요즘 우리 이방인 크리스천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방인들에게 교회도 많아지고 믿는
사람도 많아지니까 거꾸로 우리가 이스라엘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유대인
들이 이방인처럼 느껴져서 우리는 영적으로 자고하고 자만해 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은 결코 자랑할 수 없다 결코 교만해서는 안 된다.
너희의 축복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잘 살펴 보아라 라고 경고하십니다 .
이것은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로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16절)
여러분 떡덩이가 거룩해서 가루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첫 열매 즉 가루가 거룩하기 때문에
떡덩이가 거룩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거룩하기 때문에 이방인이 거룩한
것입니다.꺾여진 가지 접붙여진 가지 ,좀 더 구체적인 비유를 17절에서 보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이 비유는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의 비유입니다. 참감람나무의 가지가 꺾여져서 돌감람나
무가 접붙임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꺾여짐이 이방인의 접붙임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꺾여짐이 없었다면 이방인의 접붙임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방인들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들이 잘났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
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예수 믿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은혜로 믿습니다.
하지만 한 3년 정도 지나면 율법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처음 믿으면 감사와 기쁨이 있지만
오래 지나면 이스라엘처럼 강퍅해 집니다. 교만해지고 감격을 잃어버립니다.
17절은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서 참감람나무의 진액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돌감람나무의 뿌리는 어디입니까? 바로 참감람나무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뿌리입니다. 참감람나무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돌감람나
무가 은혜를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따라서 참감람나무가 꺾어진 것은 돌감람나무에게는
은혜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만하거나 교만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18 절에서 가지의 비유를 듭니다.
18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가지가 우선이 아닙니다. 뿌리가 우선입니다. 뿌리가 있기 때문에 가지가 있고 가지가 있기
때문에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거룩하기 때문에 뿌리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뿌리가 거룩하기 때문에 가지가 거룩한 것입니다.
여기서 뿌리는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그리고 가지는 이스라엘의 실패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된 모든 이방인들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는 그 사람의 영적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영적태도에
구원에 대한 감격과 감사와 기쁨이 배여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하나님으로부터의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오만하고 방자하고 겸손이 없고 기쁨도 없다면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이 구원받은 것을 자랑한다면 이 사람이 받은 구원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의 태도는 항상 겸손하고 눈물이 있고 온유하며 감격이 있습니다.
이 감격은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서 전할 정도인 것입니다.
로마서 11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 민족들을 향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다가 예수를 알게 되었고 그 후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사도 바울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복음은 이방인에게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 복음을 거부하게 하시고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불러주셨구나!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그는 복음을 부인한 자기 동족을
생각했습니다.가슴앓이가 있었는데 바울의 이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아 이스라엘아 하셨던 그 마음을 하나님은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지난 천년 동안의 기독교 역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천년의 기독교 역사란 간단합니다.
모든 이방인이 구원받는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말미암아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빌립보로 아덴으로 고린도로 에베소로 그리고 그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를 뒤집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로마가 어떻게 기독교국가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로마는 전 유럽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유럽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복음은 우주적인 것이고 전 인류가 받아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톨릭의 핍박과 학살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미국
으로 건너갔습니다. 유래 없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미국은 그 후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열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싶었던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복음화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미국이 복음을 받고 나서부터입니다 .
이 미국을 통하여 전 세계로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프리카로 남미로 아시아로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백년 전에 한국이 복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몇 번이고 말씀드리지만 우리나라가 이스라엘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성경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우리는 무당의 자식이요 역사적으로 단군을 믿고
산 민족이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교사를 보내셔서 이 땅이 눈을 뜨게 하셨고 세계에서 유래 없는
기독교 강국을 만드셨습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을 주셔서 기독교
지성인들을 만드시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제사장 나라로 만들어주신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이렇게 전 세계가 사도행전 1장 8절 이후로 복을 받았지만 그러나 이 축복의 발상지였던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메시야를 거부하고 영적 빈곤상태에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고 복을 받았습니다. 전 유럽 전 미국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모두
복음을 받게 되어서 이제는 기독교가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BC 와 AD를 쓸 만큼 역사는기독교 중심으로 예수 중심으로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의 실패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 카드 이스라엘!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셨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놓치기 쉬운 메시지를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함이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로마서 9장과 10장에서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와 믿음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행위와 율법으로 나
가려고 하는 기득권을 주장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여지없이 쳐버리고 만 것
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실패원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실패가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잘못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의 영적
인 구원론적인 의미는 19절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잘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하여 희생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은 온 인류의 구원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온 인류를 구
원하기 위해 희생양이 된 것처럼 이방인이 구원받기 위해 이스라엘이 희생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그들이 학살을 당하고 전 세계로 방황하게 된 것은 그들이 메시야를 죽
였기 때문이다 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오만하고 자긍하면 안 됩니다.
그 말은 이스라엘이 회개할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때문에 이스라엘이 희생당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백만명이 희생 당할만큼 큰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2천년동안 전 세계를 떠돌아다녀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아직도 메시야를 기다립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기까지 그들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돌아오고 이스라엘이 돌아오면 역사가 완성됩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돌아 오기까지 이스라엘은 우리를 대신하여 고통을
겪으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스라엘을 많은 다른 국가 중의 한 국가로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이스라엘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남겨두신 마지막 카드가 될 것입니다.
예언의 성취
이스라엘이 실패해서 이방인이 구원을 받았다면 이스라엘이 회복되어서 충만하게 되면 이
세상이 얼마나 많은 복을 받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감정적으로 민족적으로 굉장히 먼 나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이스라엘을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은 약 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구소련과 유럽에 많은
유대인들이 지금도 유리하며 살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지금까지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었다든지 고국으로 돌아온다든지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예언이 응답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줍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믿게 되었을까요? 고난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일제시대와 6.25의 보릿고개를 겪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살면 예수 믿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국민소득이 1만불이 넘고 민주화가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보다는 인권에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쾌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여가를 더 중요하
게 생각하지 하나님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신앙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먹고살기 어려울 때 한국교회는
그때 부흥했습니다.
고통은 우리를 순수하게 만듭니다 .이스라엘은 그 고통 가운데서 마음의 문을 열고 메시야
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통계를 보니까 구 소련에서 돌아오는 유대인들의 50%가
예수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스겔과 예레미야와 이사야가 예언한 것들입니다.
이것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예루살렘은 황무지입니다. 누가 그들을 도와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명을 남겨 두셨듯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
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겸손 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겸손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했을 뿐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씀은 무엇을 더 아끼신다는 말씀입니까? 원가지를 더 아끼신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입니다. 이방인을 위하여 평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스라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다.
'내가 저주를 받을지라도 이스라엘이구원받기를 원하노라' 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희생시키셨습니다. 희생을 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은 이스라엘을 볼 때마다 아픕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회복되기를 원하십시오. 이스라엘은 자체 힘으로는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이방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유대인을 통하여 구원을 얻었듯
이 이스라엘은 우리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접붙여질 때2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
라'
하나님에게는 두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사랑 과 정의 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정의이십니다. 이것을 여기서는 인자와 엄위 라는 말로 썼습니다.
여기 한 죄인이 있습니다 .사랑 으로 죄인을 대하면 그 죄인은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공의 로 나가면 이 죄인은 살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사랑과 용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삽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정의로 판단하시면 하나님 앞에서 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나를 대해주시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의 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마십시오. 자신이 정의롭지 못한데 어떻게 남에게 정의
를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정의를 부르짖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 아닙니다.
정의로 대하면 다 죽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이것이 오늘 설교의 핵심되는 말씀입니다.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이스라엘이 다시 믿으면 접붙임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줄로 믿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건져주실줄로 믿습니다.
전 세계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 불러 모아주시고 이제 그들에게 복음의 계절이 올 것을
믿 습니다.그 일을 여러분과 제가 도와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나의 구원과 밀접 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평 안을 비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없이 역사의 완성은 없습니다.
예레미야 31장 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
'열방이여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
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무리에게 행함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흩으셨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모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예언입니다.
역사는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진정한 구원은 개인의 구원에서 시작되어서 민족구원을 넘어서서 온 인류의 구원으로 대단
원의 막을 내립니다. 이방인의 구원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방인을
통해서 얻게 하십니다. 이것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로마서 11장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말씀,회복의 말씀,
이스라엘의 회복이 ,곧 인류의 회복이라는 놀라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 우리가 남은 자가 되어 구원의 완성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출처:온누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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