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사도들, 믿음의 선진들이 정말로 가난하였는가?
며칠 전에 케네스 E. 해긴 목사님의 책 「형통의 계시」를 요약해서, “진실한 목회자들까지도 가난한 이유는?”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고, 몇 만 명이 넘는 어느 인터넷카페에도 스크랩하여 올렸다. 그 카페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매우 경건한 카페이며, 여러 가지 면에서 적극 추천할 만한 매우 좋은 기독교카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카페의 운영자 분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쪽지와 메일을 받게 되었다.
“ 샬롬~^^
목사님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스크랩하여 올리신
진실한 목회자들까지도 가난한 이유는?
는 문서보관함으로 이동합니다.
회원님들의 여러 댓글을 확인하고 올리신 글을 확인하여보니 게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싶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도바울께서도 또한 많은 사도와 제자들이 그리고 믿음의 선진들이 많이 가난하였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물질적으로 꼭 풍요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댓글 참고하시라고 카페메일로 보냅니다.
주님 안에서 *** 드림”
이상과 같은 친절한 쪽지를 보내주신 카페운영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다른 좋은 면에서와 마찬가지로 “성경적 재정의 진리”면에서도 그 운영자님이 충만해지시기를 기도드리는 바이다.
그 운영자 분께서 카페메일로 보내주신 회원들의 리플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 주의하십시오. 전형적인 순복음식 번영신학입니다. 내용이 조용기 목사의 4차원의 영성에 나온 내용과 완전히 동일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지금 번영신학(기복신학)을 한국 땅에 들여온 조용기목사가 wcc를 한국 땅으로 끌고 들어온 주동인물이라는 사실을...
저는 과거 20년 동안 순복음교인으로 있어봐서 위의 내용이 의미하는 바를 너무 잘 알기에 처음 접하시는 분들에게 미혹되지 말라고 주의를 당부드립니다.
# 진실한 목회자는 가난하지만 천국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기꺼이 참고 인내하시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성경에 나온 주님의 종들은 전부 고난 속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날 경제 한파로 십일조가 30%- 많게는 50%까지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회 커다랗게 지어놓고 지금 문제가 한 둘이 아닙니다.
이왕에 주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며 복음의 순수성을 유지하시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사도 바울도 죽을 고생을 하며 복음을 전했고 침례요한은 메뚜기를 먹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 저도 윗분말씀에 백프로 동감합니다.. 아니 하나님이 이세상의 권력을 장악한자에게 그냥 아무 힘없이 그들이 하는 데로 놔두신 분이라는 뜻인가요? 아니요 주시는 분도 하나님 거둬 가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사탄은 하나님이 아무것하지 말라면 못한다는 걸 아시지 않나요? 전 이 글 보고 긍정의 힘 저자 조웰 오틴의 내용과 같다는 생각했습니다.. 구��는 데로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죠..
# 그리고 섬기는 영? 우리아버지 아바아버지한테 구하면 되지 왜 궂이 제 삼자를 끌어들이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바울이 본인의 육체의 가시 때문에 주께 구했을 때 제삼자에게 구하지 않고 주께 구했는데요..
↳태풍의눈: 하나님은 천사들을 늘 활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고난을 당하실 때에 천군천사를 부를 능력이 있으시다 했습니다.
그리고 제 삼자라 하셨는데 섬기는 영들에게 명령하는 것과 주님께 구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섬기는 영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에 응답을 들고 오거나 그분의 명령대로 움직입니다.
# 저도 번영신학 논리라 생각합니다. 성경망씀대로만 믿으면 됩니다.
↳태풍의눈: 다들 오해하시는군요. 여러분들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녀의 권세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래 주권은 땅에 충만하며 정복하며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 속에 물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주권을 빼앗긴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보혈로 다시 회복됩니다.
그리하면 사단이 주장하는 세상임금의 권세도 하나님의 손으로 막아집니다.
물질의 축복은 자녀라면 당연히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마귀가 참소하여 주권을 계속 뺏기는 것입니다.
형통=번영신학의 논리는 성경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삼가 조심하십시오.
#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니 어떤 자들이 돈을 탐내다가 믿음에서 떠나 잘못하고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찔러 꿰뚫었도다.
돈이 필요하니 선포한다?
완전 도둑놈 심보입니다
돈이 필요하면 열심히 일해야죠.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이 글 올리신 분 성경을 보신 분 맞나요?
선포는 예수님 십자가를 선포하는 것이지 이런 것 아닙니다.
# 성령님의 역사가 무엇을 말하는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분별도 하지 못하고
이런 글들 올리시는 분들 보면
오늘날 왜 개독교 소리를 듣는지 이해갑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녀 권세라니요
참으로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제발 안약을 사셔서 눈에 바르시고
성경 좀 제대로 읽으십시요
이런 가라지 뿌리지 마십시요
# 윗 글은 성경에 없는 말 입니다. 사도인 베드로 바울같은 목회자는 어찌 찌질이도 가난하게 추위에 떨고 더위에 지치며 짐승과 바다의 위험과 동족과 이방인의 핍박과 위협 속에서 고난으로 얼룩진 삶을 사신 것이 바울이 하나님의 권세를 사용할 줄 몰라서 입니까? 한 마디로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자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 입니다. 내 좋을 대로 하나님을 만들어 내지 맙시다. 성경에 없는 말들을 보태지도 빼지도 맙시다.
# 와~ 전 일부러 댓글을 안 쓰고 있었습니다. 위의 글에 과연 아멘~ 아멘~ 하는 글들만 올라올 것인가. 설마 이곳에 분별력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없나? 그렇진 않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사람들이 가난하고 고통 받기 원하시지 아니하신다는 걸 누가 몰라서 저런 식의 글을 안 쓰고 입 다물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죄중에 있는 자로서 댓글하나 올리는 것도 무섭지만 이곳에 분별력 없는 사람들 정말 많이 있다는 걸 봅니다. 뭐가 그렇게 급하십니까? 지금은 인터넷으로도 선교하는 시대입니다. 글쓴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글 내용은 뭔지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검색해서 올리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 굳이 검색하지 않더라도 성령을 받고 따라가면 분별력도 생기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성령을 받아도 분별력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성령이 소멸되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것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만
상식을 확인하듯이 검색의 생활화! 를 실천합시다. 거짓정보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ㅡ,.ㅡ
이상과 같은 리플들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의 유일무이한 신앙 기준은 문맥에 입각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우리들 스스로를 잘 점검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나름대로는 매우 열정적으로 주님을 섬긴다고 하였지만, 결국 구원과 상관이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롬 10:1-4)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이상의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올바른 신앙의 기초는 올바른 지식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 정확한 믿음과 정확한 열심으로 구원의 삶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망하는 이유, 하나님의 백성들이 원수들의 계략에 말려들고 사로잡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사 5:13)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죄악과 마귀의 거짓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는가?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상과 같이 올바른 신앙의 전제 조건은 성경적 진리에 대한 올바른 지식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혹여 성경적 진리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왜곡된 단편적 성경지식을 가지고 온전한 성경적 진리를 대적하면서도 우리들 스스로는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착각하는 무서운 어리석음에 빠져들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우리들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요 16:1-2)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실제로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하나님의 신실한 사역자라 스스로 자처하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도들과 제자들을 박해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착각하였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유대의 장로들과 변호사 더둘로는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자인 사도바울을 이단의 우두머리로 고발하고 정죄하였던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행 24:1-5)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우리는 문맥에 집중하여 성경말씀이 진정으로 무엇을 말씀하고 있고, 또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말씀하셨으며, 또 무슨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어떻게 드러내셨는가를 모든 면에서 정확하게 확인하고 우리들의 신앙들을 꼼꼼하게 잘 점검해 보아야만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정말로 가난하셨는가?
사도바울이 정말로 가난했는가?
믿음의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이 정말로 정상인가?
결론부터 말하겠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지 않으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실 때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셨다(고후8:9).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는 반드시 복을 받게 되고 가난하지 않게 된다!(신15:4-5)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이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다(잠22:4).
가난은 그 자체로 저주이며 하나님의 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신28:15-57).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신다(잠10:22).
이 주제에 대하여 이미 설명하였던 바, “재정과 영적전쟁의 21계단” 중 “2계단”의 내용을 다시 한 번 게재해 보겠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지상생애 동안에 결코 가난하게 살지 않으셨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역하시는 동안에 재정적으로 가난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하시는 동안 내내 가난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하게 ‘되셨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최고의 희생을 하셨을 때 가난하게 ‘되셨다’고 믿는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가난하게 되셨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한 가지도 없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옷을 놓고 서로 제비뽑기를 하였다. 그 옷이 좋은 옷이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사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자. 그분은 목수의 아들로서 비교적 가난하게 성장하셨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사역을 하셨던 약 3년, 즉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성령이 충만했던 때부터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의 기간에도 가난하셨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오해가 기독교 전체에 독버섯처럼 퍼지게 되었고, 그 결과 가난이 경건의 한 면이나 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그리스도인은 재정적으로 부요케 되면 안 되는 듯한 나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는가? 그런 오해의 구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눅 9: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이 말씀은, 전도여행을 하시는 동안 전도여행에 동참하여 주님을 따르겠다는 어떤 사람에게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매일의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따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주님께서 당신의 집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셨다는 말씀은 아니었다.
(마 27: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눅 8:1-3) 『[1]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예수님의 주변에는 늘 세계적 수준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따라다녔고, 그들이 그들의 소유로 예수님을 섬겼기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없으셨다는 말씀이다.
(요 13:27-29) 『[27]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예수님은 재정적으로 풍성하였기에 돈 궤를 맡은 사람이 따로 있었고, 가난한 자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재정을 맡은 자의 주요 업무였다는 말씀이다. 돈 궤를 맡은 가룟 유다는 도적으로서 예수님의 돈 궤에서 돈을 마구 빼돌렸다(요12:6).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로 예수님의 돈 궤에는 돈이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만약에 예수님이 재정적으로 가난하셨다면 어떻게 그의 12제자와 그를 따르는 수 많은 무리들을 부양할 수가 있었겠는가?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기간동안에 재정적으로 결코 가난하지 않으셨다고 나는 믿는다.
(막 8:19-21)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21]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마 17: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필요하실 때면 언제나 경제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셨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즉 신성을 가지셨기에 그분에게만 가능했었던 일들이었는가?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요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 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도 그 분 자신의 힘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그런 것들이 가능했었던 것이다. 그 하나님의 성령이 오늘 우리 안에도 동일하게 역사해 주신다.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고, 혹은 그 이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요 14:12-14)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많은 부요를 누리고 있는 사악한 죄인들 대신에 그분의 자녀들이 번영하기를 원하신다.
(욥 27:16-17) 『[16]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예비할지라도 [17] 그 예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 은은 무죄자가 나눌 것이며』
(전 2:26)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재정적으로 풍성해지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 풍성함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부요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이 법칙들을 따른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좋은 것도 우리에게 주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시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일 풍성한 것으로 채우신다.
(시 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아멘.
(신 15:4-5) 『[4]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살아가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신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살아가셨다면 그것이야 말로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사도바울이 가난한 상태로 사역하며 살아갔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하여 선교하는 사역의 현장에서 때때로 비천하고, 배고프고, 궁핍한 상황들을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그 모든 필요들이 풍성하게 채워짐으로 다시 풍족한 상태로 사역하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그의 고백이 바로 그와 같은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빌 4:11-20)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부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 재정적인 성경의 올바른 진리가 확고히 자리 잡기를 기도드린다.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 재정적인 사탄의 미혹이 자리하지 못하기를 바란다. 모든 성경말씀이 그러하지만 특별히 재정적인 진리를 다루고 있는 성경말씀을 대할 때는 더욱 더 그 말씀의 전후문맥에 주의하며 집중하여 읽어보기를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만큼이라도, 문맥에 입각한 성경말씀과 예수님의 사역을 기준으로 재정적인 성경의 진리들을 올바르게 확증해 보는 참된 지혜가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진실한 목회자들까지도 가난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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