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구원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가르쳐야 한다
구원은 일회성으로 끝나는것같지만 성경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롬1:17)말씀하고 있으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2: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구원이 단회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또한 구원을 이루어감을 성경에서 강조하고 있다는것입니다. 믿음이 자라야하고 구원을 이루기까지 우리는 성장해야 합니다. 아이가 자라는것처럼 믿음도 자라야하고 어릴때에는 어머니의 젖을 먹고자라고 장성하면 단단한것을 먹듯이 신앙도 자라서 단단한것을 먹을수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는 그걸 가르치지 않을까요? 한국교회는 성도님들을 어린애로 두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성도님들을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게 하면 목사님들 입장에서는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밥줄이 끊길 가능성이 있기때문입니다.(이는 목사님들의 착각이지만)
목사님들은 성도님들이 스스로 밥을 먹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목사님들은 어린아이처럼 밥을 떠먹여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목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을 밥벌이를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성도님들에게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교육하고 가르치지 않는것은 믿으면 축복이 오는것이 아니라 원래 믿음후에는 환난이 있고 고통이 있다는것을 감추고 싶기 때문입니다. 믿는 신자들은 환난을 겪어야하고 그리고 환나중에 정금같이 단련되어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들은 이렇게 교육시키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환난중에 정금같이 나오는 신앙은 좁은길로 가는 신앙이기 때문에 별루 환영받지 못합니다. 인생자체가 원래 좁은길인데 좁은길로 가는걸 가르치기를 싫어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가르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가볍고 편한 길인데 그 길을 가지않게 하려고 합니다.
그길이 쉽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를 버리고 내려놓고 십자가를 드러내고 자기를 죽이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길이기때문에 믿음의 진보가 없이는 자기가 가진것을 내려놓기 힘들뿐만아니라 자기를 죽이는것을 할수 없기때문에 이를 가르치지 않는것입니다.
목사님들은 편한길로 가고자합니다. 복음 = 축복으로 바꾸는것은 믿음 = 천국을 설명하기위한 단순한 방법입니다. 믿으면 천국간다. 이걸로 그치는 이유는 믿으면 세상으로부터 왕따를 당한다는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이유가 믿음 = 축복 = 믿음 = 천국이라는 공식이 무너지기 때문에 이 공식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축복설교를 울거먹어야 말이 통하는 연약한 성도님들에게 어떻게든 자기의 밥줄을 끊어뜨리지 않기 위해서 목사들은 이 원칙을 버리지 않으려고 붙잡고 있기때문에 구원 그 이후에 대한 설교는 늘 축복으로 흐르게 됩니다.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3: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14: 12절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믿음은 시련이고 그 시련을 인내함으로서 견디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축복이라고 말한것보다 오히려 인내함으로 열매를 맺고 인내함으로 지켜야함을 강조하는 말씀이 더 많습니다. 구원이 축복입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것은 축복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받은 축복이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의 과정 곧 광야의 길을 걸어야 하는데 그 길은 고통이요 시험이요 시련입니다. 이 고통과 시험 그리고 시련과 환란을 인내함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중 오래참음의 열매입니다. 인내는 열매입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열매입니다.
그러나 이 인내함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인내라는것은 시련과 시험 환난과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손해를 보고 시험이 있고 고통이 있고 왕따가 있고 환난이 있다는것을 가르쳐야합니다. 이를 가르치지 않는것은 성도님들을 세상에 뺏길가봐 두려워함으로서 밥줄인 헌금이 줄어들까봐 불안해서 가르치지 않는것입니다.
그래서 구원 = 축복 = 평안하고 영육간에 잘되는것이라는 공식이 나오게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원의 한 과정인 광야의 삶을 가르치지 않음으로서 성도님들에게 인내의 기쁨을 누리게 하지 못하고 그 인내의 기쁨을 가르치지 않음으로 영화(하나님을 만나 변화되는)의 풍성한 은혜까지 누리게 하지 못하는건 아닌지? 목사님들은 고민해야 할것입니다.
야고보서에 믿음은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목사님들은 교회안에 알곡들로 채우지 않고 오히려 목사자신이 엉겅퀴가 되어서 하나님의 햇빛을 가리움으로 열매맺을 성도님들을 열매매지 못하게 하고 자라지 못하게 하는건 아닌지? 고민해야 할것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먹이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것은 엉겅퀴가 되어 하나님의 햇빛을 가리는 행위입니다.
알곡으로 충실히 열매를 맺으려면 비와 바람과 태양의 뜨거움아래서 수고와 고생이 있어야 열매가 맺히게 되는것입니다. 그런 수고와 고통을 목사님들이 자기가 다 지고 성도님들을 편하게 신앙생활하게 해준다고 착각하지마시고 성도님들이 자기가 져야할 십자가를 질수 있도록 목사님들은 단단한것을 먹여야할것입니다.
성도님들이 마땅히 걸어야할길 중생한후에 거듭난후에 걸어야할 성화의 길 그리고 영화의 단계 변화산에서 변화한것보다 더 중요한 이땅에서의 삶 성화의 삶이 아무리 좁은 길이고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길이라고 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고 가르치고 자라게 하는것이 목사님들의 맡은바 책무일것입니다.
구원파 같은 행위들을 목사님들은 이제 그만 그치고 성도님들을 믿음의 진보가 있게 해주시길 원합니다. 그렇게 할때 대한민국은 참된 신자들이 몇명인지 확실히 드러나게 될것이고 거짓목사들도 대량으로 양산되지 않을것입니다.
좁은길을 가르치는 대한민국 교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고통과 시련과 아픔속에서 긍휼함과 애통함으로 위로받는 기쁨의 자리로 갈수 있는 성도님들로 교회들을 채울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파같은 이단들이 득세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오후엔 이것을 묵상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나는데로 한번 끄져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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