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고리 해석 방법론에 대한 연구
1. 알레고리적인 해석 방법론이 어떻게 생겼는가?
알레고리 해석이란
알레고리 해석은 본문의 문자적 의미를 무시하고 상징적 의미를 찾으려는 해석이다. 성서해석에 알레고리적 해석법이 많이 쓰이는 이유는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단순한 문자적 의미를 넘어 신비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알레고리 해석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해석법이다. 플라톤은 참된 실체란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놓여 있다고 하였다. 이런 가르침이 글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외견상으로 보이는 문자적 의미보다 그 이면에 있는 의미를 찾도록 영향을 미쳤다. 이 해석법은 당시의 일반 문학을 해석하는 데도 많이 사용되었다.
알레고리의 형성 과정
'알레고리(Allegory)'라는 용어는 헬라 수사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초적으로는 '일련의 은유들'을 의미했다. 이 방법은 헬라인들이 그들의 종교적 신화의 전통과 헬라적 유전의 상충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시켰다. 헬라의 종교적 신화는 그들이 용납할 수 없는 부도덕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래서 헬라 철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알레고리화시켜 사고의 모순점을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즉 신화를 문자적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문자 뒤에 더 깊은 뜻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알레고리는 하나의 확대된 은유로서 모든 세부 항목들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것을 지칭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직유나 은유가 한아의 주요 비교점을 갖고 있는데 반해서 알레고리는 여러 개의 비교점을 갖게 된다. 알레고리의 주된 형식적인 특징은 그것이 묘사하고 있는 각 이미지와 세부 사항이 자체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알레고리적 이야기와 그것이 나타내려는 것 사이에는 수많은 관련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가장 유명한 알레고리로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을 들 수 있다. <천로역정>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지명들은 알레고리 해석을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예를 들면 기독도는 고유명사인 동시에 일반 기독교인이며, 자명성은 장차 망할 성을 뜻한다. 이 이야기에서 사용된 이름들과 지명들에 관심을 갖지 않고서는 이 이야기 내용이 의미하는 바를 바로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알레고리 속에서 인명이나 지명은 단순히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알레고리적 해석은 유대교나 기독교에 속한 헬레니즘 사상에 영향을 입은 학자들에 의해 성서해석에 도입되었다. 이 해석법은 실제적 경험이나 비실제적인 경험을 활용하여 영적인 진리를 설명하는 형태로 성경이 문자적 의미 이상의 참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에 그 기초를 둔다. 이의 대표적인 인물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이다. 그는 이스라엘 신앙이 헬레니즘 철학과 모순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구약의 본문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했다. 우리는 신약성서에서도 알레고리적인 해석의 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신약성서의 알레고리의 본보기는 마가복음 12:1-11, 마태복음 13:24-29, 36-43, 마태복음 22:1-14, 마가복음 4:3-9, 13-20 등이다.
2. 이 방법론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 할수 있는가?
알레고리 해석의 문제점
알레고리 해석의 문제점은 본문의 접촉점과 설교의 접촉점의 공통분모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이다. 설교자가 알레고리 해석의 함정에 쉽게 빠지는 일차적인 이유는 본문의 의미를 오늘의 상황으로 문자적으로 가지고 오면, 그 문자적인 의미는 오늘의 상황에서는 전혀 그 의미를 올바로 획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문의 문자적 의미가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석자는 본문의 의미를 오늘의 상황에서도 유효하도록 하기 위하여 본문에 알레고리의 의미를 덧붙인다. 그렇게 본문의 접촉점과 무관한 의미들이 덧붙여지고 오늘의 상황 속으로 들어와서 본문이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알레고리 해석에서는 본문에 담긴 접촉점이나 당시의 구속사적인 시대적 정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본문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 속에서 오늘의 설교에 필요로 하는 영적 혹은 윤리적 적용점만을 이끌어 낼 수 있으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덧붙여지는 의미들이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사기 7장에서 기드온이 미디안 군대와 전투해서 승리를 거두는 과정(삿7:19-23)을 해석할 때 알레고리 해석으로 덧붙인다면, 횃불은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항아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을 가로막는 내 아집과 교만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은 교만의 항아리를 깨부술 때 비로소 역사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밝게 빛을 발하는 순간, 우리는 나팔처럼 담대하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도하며 입술로 고백하고 찬송함으로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알레고리 해석법은 본문이 역사적 배경과 문맥, 그리고 문자적 표현을 통해 명백히 가르쳐 주는 내용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본문의 요소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해 통일된 의견이 없고 자의적 해석이 많아서 주관적인 경향을 띤다. 따라서 그 해석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알레고리적 해석의 대표격인 오리겐마저도 자기 해석의 정확도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사기의 기드온 예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알레고리 해석은 본문의 고유한 의미를 상실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탕자의 비유(눅15:11-32)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영접하시는 것에 비난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비유다. 그런데 이것을 알레고리로 해석하여 큰 아들은 유대인, 작은 아들은 이방인으로 보며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가는 구속사로 보여 주는 비유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본문의 핵심 메시지인 죄인을 받아들이고 용납하라는 메시지가 상실되는 것이다.
3.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의 근본적 차이는 ?
지금까지의 성서해석 방법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안디옥 학파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 문자적 해석이며, 다른 하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중심으로 한 알레고리적 해석이다. 역사비평 이후의 성서해석은 거의 역사적, 문자적 해석에 치중하였고, 역사적 해석 방법만이 유일한 것처럼 주장하게 되었다. 반면 알레고리적 해석은 등한시되고 심지어는 위험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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