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전쟁에 대한 이해
1. 전쟁이란 무엇인가?
전쟁이란 일반적으로 "무력에 의한 국가와 국가 사이의 투쟁"으로 정의할 수 있다. 프러시아의 유명한 군사 이론가이자 장군이었던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명저 「전쟁론(On War)」에서, 전쟁이란 "적을 굴복시켜 자기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일종의 폭력행위" 또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란 표현으로 전쟁의 본질을 언급하였다.
2. 전쟁을 보는 두 가지 관점
첫째, 전쟁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저 세상 사람들에 의하여 야기되고 진행되며 종결된다고 하는 측면이다. - 인간 본위의 전쟁관
둘째, 모든 전쟁은 하나님과 직접 관련이 되어 있어서 하나님에 의하여 전쟁이 시작되고, 하나님의 의도하에 전쟁은 진행되며,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대로 승패가 결정되어진다고 하는 측면이다. - 하나님 본위의 전쟁관
3. 성경의 전쟁
이스라엘 땅은 자연 자원에 있어서는 풍부하지 못했지만 애굽과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위치(사이의 땅)에 있었기에 상업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보다도 더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신학적인 관점이다.
구약은 전쟁을 고찰할 때 그 내면에 숨겨진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의 실체를 동시에 발견해야 한다. 눈으로 보이는 혈과 육에 대한 전쟁 속에는 항상 사탄의 궤계가 있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류를 위해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시킬 메시아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신바, 이 여자의 후손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고 했다(창 3:15). 그래서 사탄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여자의 후손에게서 인류를 구원시킬 그리스도가 탄생되는 것을 막아야만 했던 것이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모든 전쟁들은 여자의 후손을 보존하여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까지 이르게 하는 과정상에 있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사탄은 여자의 후손을 멸망시키고 타락시키기 위하여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서 나오실 줄 알고 이를 집중 공격하였고, 모든 나라가 이스라엘과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전쟁의 본질은 무엇일까? 성경은 전쟁뿐만 아니라 인간사 모든 불화와 불행의 원인을 인간이 스스로 범한 죄의 결과로 받는 징계라고 말하고 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약 4:1).
우리는 전쟁 그 자체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쟁이라는 비상수단을 사용하신 그 근본적인 원인, 즉 우리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에게 전쟁을 막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지은 죄가 이렇게 많으나 슬쩍 눈감아 달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전쟁 문제에 대하여 기도할 때의 올바른 자세는 개인과 국가 전체가 하나님 앞에 바로설 수 있도록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지극하신 인내심이다.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볼 대 당장이라도 진멸하실 듯한 하나님이신데 마지막 한 명이라고 구원의 반열에 세우시기 위하여 오늘도 인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4. 성경의 전쟁을 보는 세 가지 견해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과연 전쟁은 정당한 것인가? 에 대한 세 가지 견해는 행동주의(Activism), 평화주의(Pacifism), 선별주의(Selectivism) 이다.
첫째, 행동주의란 기독교인은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여 그 명령에 따라 모든 전쟁에 참여해야 된다고 하는 견해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정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마땅하다고 하는 견해다.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사실은 정부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부에 대한 의무는 하나님 뜻 안에서만 참다운 의무가 된다. (예 : 다니엘의 세 친구, 다니엘, 오바댜)
둘째, 평화주의란 전쟁에는 절대 참가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견해다. 전쟁은 기독교적인 사랑의 본질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므로 절대로 해서는 안되고 또한 참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칼빈 당시의 재세례파나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이 해당된다(롬 12 : 17-19). 그러나 평화주의는 개인적인 감정에 의한 살인 행위를 금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전쟁은 허용해야 한다.
셋째, 선별주의란 정당한 전쟁(Just War)에 대한 견해로서 행동주의와 평화주의의 절충형이다. 전적인 행동주의는 맹목적이고 지각이 없는 복종이며 완전한 평화주의는 현실을 외면한 방관이다. 기독교인은 전쟁 문제에 있어서 선별된 정당한 전쟁을 인정한다. 개인의 생명이 귀중하지만 조직의 생명과 평화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를 위한다는 차원에서 전쟁터에서의 살인은 인정되어야 한다.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지니라"에서의 의미는 개인 차원에서 원한을 품고 동료를 죽이지 말라고 하는 뜻이지 전쟁에서의 살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5. 하나님의 전쟁 개입
하나님께서 직접 전쟁에 개입하시는 방법과 선택하신 사람에 의해 전쟁을 이끌어 나가는 간접 개입 방법이 있다.
6. 성경의 전쟁의 잔혹함에 대하여
성경의 전쟁은 대부분 피로 물들어져 있고 그 전쟁의 빈도와 잔혹성 때문에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많은 저항감을 갖게 된다.
7. 거룩한 전쟁의 절차
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 거룩한 전쟁을 주도하시는 분은 항상 하나님이셨다. 그래서 전쟁에 임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께 전쟁 수행 여부를 여쭈어 보아야 한다.
③ 성결 의식을 행하고 전쟁을 준비한다.
④ 승리의 확신을 가진다.
⑤ 전쟁을 실시한다.
⑥ 전쟁을 종결한다.
8. 영적 전쟁과 하나님의 영광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사탄은 하나님의 다른 피조물들로 하여금 자신을 경배하게 하고 또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져야 할 영광을 가로채려는 존재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부류와 그렇지 못한 부류와의 싸움이 바로 영적 전쟁이다. 누가 영광을 차지하느냐의 다툼이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과 직접 상대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빼앗을 수는 없다. 사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가야 할 영광을 빼앗으려 한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지라 그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않고 인간 자신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거나 다른 신에게 경배할 때에는 그에 따른 대가를 반드시 지불하셨다. 영광을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은 구약시대나 오늘날 신약시대나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영적 전쟁은 오늘도 쉬지 않고 계속 되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성경의 전쟁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개인과 민족, 그리고 온 세상의 구원역사를 함축성 있게 보여주는 귀중한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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