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선교를 위해 사람을 세우라 (오성훈)

수호천사1 2012. 11. 14. 10:23

선교를 위해 사람을 세우라



최근 기업경영에서 맨풀(Man Pool), 싱크 탱크(Think Tank), 해드 헌팅(Head Hunting) 등과 같은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런 용어들은 세계화된 21세기 글로벌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자원은 재정이나, 원유나, 무기가 아니라 바로 사람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것이 비단 최근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인류가 생존해 온 어느 시대이든지 간에 인적 자원이 가장 중요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다. 문명화, 기계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상대적으로 인간의 가치를 덜 소중하게 여기는 풍토가 자리 잡으면서 소외된 사람들이 많아진 탓에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선교정책과 전략의 영역에서도 역시 문제는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과 주변 환경이 구비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곳에서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반대로 시스템이나 환경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라고 해도 잘 준비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창조적인 사역을 통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좋은 일군을 양육하는 것은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긴급한 일에 매달려서, 이렇게 가장 중요한 일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선교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교사들의 간의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와 재정적, 성적 문제들은 사람을 세우는데 실패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21세기 세계선교를 완성하는 주역으로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을 세우는 일에 성공하여야 할 것이다.


선교를 위해 사람을 세우는 것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넓음의 차원과 깊음의 차원이 그것이다. 넓음의 차원이란 선교사역을 위해 폭넓은 지지기반을 구축하는 것이요, ‘보내는 선교사’를 세우는 것이다. 보내는 선교사는 그 선교사역을 위해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는 그룹을 말한다. 또 다른 차원은 깊음의 차원이다. 이것은 선교현장에 직접 투입되어, 직접적인 선교를 감당하기 위해 ‘가는 선교사’를 세우는 것이다. 가는 선교사는 그 선교사역을 위해 필요한 언어적, 문화적, 신학적, 선교적 훈련을 통해 양육되어지고, 선교지의 필요와 개인의 역량과 달란트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되어져야 한다.


선교는 특별한 비전을 받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감당해야할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이다. 넓음의 차원에서 사람을 세우려면 교회의 선교적 사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선교를 교회가 수행하는 여러 가지 사역들 중의 하나로 보거나, 교회 부흥을 위한 도구로 보거나, 교회의 이미지 메이킹(Image Making)을 위한 액세서리(Accessaries)로 보는 관점은 반드시 극복되어야만 한다. 대릴 구더(Darrell L. Guder)가 말한대로 “선교가 아닌 것은 교회의 소명의 일부를 차지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있는 모든 것은 선교와 연결되어야만 한다.” 특별히 개교회의 목회자들 가운데 이런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직접적인 사역을 위해 따로 길리워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그 연합군이 조카 롯을 사로잡아 갔을 때에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 십 팔인을 거느리고 쫓아가서 그 연합군을 파하고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던 것(창14:1-16)처럼,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외쳤던 바울처럼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먹는 것, 마실 것, 입을 것보다도 먼저 구할 수 있는(마6:31-33) 훈련되고 헌신된 사역자가 필요하다.


우리가 선교를 위해 사람을 세워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를 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세울 것인가에 대한 비전과 계획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첫째는
우선 기본에 충실한 사람으로 세워야 한다.


즉 선교사가 되기 이전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다. 그리스도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막10:45). 그리스도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2:8). 그리스도는 자기를 세우신 분께 성실하셨다(히3:2, 표준새번역). 이와 같이 선교 사역자가 되기 이전에 섬김과 겸손과 성실이 삶의 패턴이 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사람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한국선교 역사에 나타났던 고질적인 분열을 반복하지 않고 거룩한 연합과 협력의 사역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기도하는 사람을 세워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기도 없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선교를 위한 중보기도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이다. 그런데 그것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직접적인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세계 곳곳에서 예수 그리스도 없이 죽어가고 있는 영혼들을 가슴에 품고, 그들로 인하여 고통스러워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며 눈물을 흘려본 경험이 없이 머리로만 전략을 생각하고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는 자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사역자를 양성할 때 반드시 효과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방법을 제시해 주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계2:10)을 세워야 한다.


사실 선교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좁고 협착한 길을 가는 것이다. 그 길에 어찌 바위덩이와 같은 걸림돌이 없겠으며,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과 고통이 없겠는가?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훈련과 양육을 받지 못한 선교사의 중도탈락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선교를 위해 사람을 세우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신학대학교의 선교학과, 선교훈련 프로그램과 세미나와 포럼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선교역량이 주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어떤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세계선교의 비전을 위해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는 사람, 사막 한가운데 떨어뜨려놓아도 거뜬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세워져야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선교 관심자들이 꼭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것을 정리하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으로 세워지길 소망한다. 그리고 사람을 세우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선교단체들이 아무런 감동도 기대도 없이 늘 해오던 대로 하려는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훈련생들에게서 가능성을 보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길 무릎 꿇고 기도한다.


오 성 훈 목사

(서울신학대학교 대학원 Ph.D. cand. 선교학전공,
새빛성결교회 부목사, 서울신대 “북한선교론” “제자와선교” 강사)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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