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제: 다윗은 무신론자였었다?]
(시 14:1)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이 구절은 다윗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매우 강조하기 위하여 한 말이다. 그러나 이 구절도 앞뒤 문맥을 잘라버리고 중간부분만을 인용한다면, 다윗의 의도와는 반대로 오히려 하나님이 없다는 말로 둔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다윗을 무신론자로 음해하기 위하여, “다윗이 시편 14:1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했다.”는 말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보는 바와 같이 다윗이 “하나님이 없다.”는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전체문맥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말이지, 정말로 다윗이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앞뒤문맥을 무시하거나 놓쳐버린다면 다윗은 정말로 하나님이 없다는 말을 한 사람으로 오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신앙의 절대기준은 성경말씀이다. 이 말에 대하여 토를 달 사람은 이단과 정통을 막론하고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이 심각한 문제이다. 하나의 똑같은 성경구절을 가지고도 각각의 교단과 교회, 사람들마다 각각 다른 여러 가지의 해석들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웃지못할 진실은 이단과 정통을 막론하고 그들 모두는 자기자신들의 성경해석이 100% 옳다는 확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다 맞는 것일 수는 없다. 하나의 본문이 어떻게 그토록 여러 가지를 의미하는 것이 가능한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왜 그러한 차이점들이 생겨나는 것일까? 아마 그 문제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성경자체의 문맥을 놓치는 실수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읽고 인용하되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전체 문맥 안에서 읽고 인용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성경구절로 성경의 진리를 반대하는 글을 얼마든지 만들어 내는 저주의 주인공들이 될수 도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취지로 오늘의 글을 시작해 볼까 한다.
오늘날에도 신유, 방언 같은 사도들의 표적의 은사가 유효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성경에 무지한 사람들인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은사는 교회가 형성되던 초기에 표적이 필요한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보여 줄 사도들의 표적으로 주어진 능력들이었을 뿐, 사도들의 시대가 저문 지금은 사도들의 표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지금도 그와 같은 일을 행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사도행전 8:9-13에 등장하는 “21세기의 마술사 시몬”인가?
물론 오늘날도 하나님의 은혜로 얼마든지 기적이 일어나며 치유의 역사도 일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특정한 한 사람이 그런 능력을 행하는 그런 시대는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는 성경말씀을 인용하며 사도들의 표적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은사주의자들은 성경에 무지한 자들인가?
이상의 질문에 대하여, “모두가 그렇다!”라고 답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모두가 그렇지 않다!”고 답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 정반대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과연 무엇이라고 답변해 주실까? 이상과 같은 질문에 대한 성경적인 정확한 답변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상과 같은 질문에, “모두가 다 그렇다!”라는 입장에 서 있는 C국 P기자라는 분이, 요즈음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난다는 K교회의 치유사역을 비판하기 위한 취지에서 써 내려간 기사내용 중 일부를 아래에 발췌해 보았다.
“치유 사역으로 인해서 많은 불신자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교회에 출석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온전한 복음이 아니면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나 기존의 멤버들이나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교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치유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 몇 명만 치유의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참석한 사람들의 70~90%가 치유를 경험하는데 때로는 참석한 사람들의 숫자보다 더 많은 치유가 일어난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늘어놓고 있다. 이런 엉터리 사역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믿고 따른다면 어떤 사람이 소경을 따라가다가 둘 다 구덩이로 빠지는 꼴이 되므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그릇된 신비주의를 받아들이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미끼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영계를 보고 왔다는 등 거짓말을 늘어놓고,... 이들은 사탄도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날 수 있으며 그가 미혹된 자들을 속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듯하다(고후11:13,14; 살후2:11)... ‘그 악한 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에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멸망하는 자들 안에 있는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력한 미혹을 보내시어 거짓말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9~11) 그래서 집회 장소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들이 모두 다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그들은 다음의 말씀도 유념해 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4:1).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을 보라! 모두가 그에게 주목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라.”고 하더라(행8:9-13). 그들이 그에게 주의를 기울인 것은 오랫동안 그가 마술로 사람들을 매혹시켰기 때문이라... 시몬도 얼마든지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믿기까지 했다. 더구나 표적을 구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미혹할 수 있었다면 그의 실력은 대단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와 같은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하여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도들의 시대가 저문 지금은 사도들의 표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그 일을 행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21세기의 마술사 시몬’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여 영적 분별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상의 기사에 대한 여러분들의 견해는 어떤 것인가?
100% 동의?
100% 반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상의 기사에 대한 성경적인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1.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온전한 복음이란 무엇일까? 치유사역으로 많은 불신자들이 교회에 들어오지만 온전한 복음이 아니면 자리만 차지하는 교인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온전한 복음과 치유사역은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성경이 말하는 온전한 복음이란, 죄인 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됨으로,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 그리고 재정까지도 온전히 회복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복음을 믿고 의지할 때, 죄악(롬4:25)과 질병(마8:17-18, 벧전2:24), 가난(고후8:9), 저주(갈3:13-14), 사탄(골2:14-15), 지옥의 압제들(마16:18-19)로부터 자유(요8:32)하게 되며,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요10:10)으로 회복되는 은총을 누리게 되는 데 그것을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질병까지도 짊어지셨기에, 치유사역으로 인한 질병치유는 정상적인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하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되는 교회에서 그러한 치유의 열매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 이 주제와 연관하여 사도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을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고전 4:19-20)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참석한 사람들의 70~90%가 치유를 경험하는데 때로는 참석한 사람들의 숫자보다 더 많은 치유가 일어난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일까? 그리고 그런 사역이 엉터리사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때때로 몇 가지씩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들의 질병이 치유되었기에, 때때로 참석한 사람들의 숫자보다 더 많은 치유가 일어난다는 말을 하는 것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 외국인이라 한국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비판을 위한 비판을 일삼고자 하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나는 우리교회에서도 그러한 역사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주님께서 우리교회에서도 그러한 복된 역사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도드리는 입장이다.
2. 신유, 방언 같은 표적들은 사도들에게만 국한되었던 표적의 은사라는 말이 맞는 말인가?
그렇다면, 아래에 인용하는 말씀과 같이, 빌립집사는 사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표적들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닌 사탄의 역사였다는 말인가?
(행 8:4-8)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열두 사도가 아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는데, 그렇다면 그것도 사탄의 역사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막 9:38-40) 『[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예수님께서는 꼭 사도가 아닐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 표적을 행하게 될 것이라 말씀해 주셨다.
(막 16:17-18)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오순절 성령강림 때 사도베드로가 말하기를,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2:39)고 함으로써, 성령의 역사는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천명하였다.
“사도들의 시대가 저문 지금은 사도들의 표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는 과연 말은 그 누가 만들어낸 말이며, 그것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란 그 무엇이란 말인가?
사도들의 시대와 함께 표적의 은사들은 중단되었고, 더 이상 그러한 은사나 표적들이 역사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흔히 주장하는 성경구절은 고전13:8-10이다.
(고전 13:8-10)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근거로 성경의 완성과 더불어 예언을 비롯한 성령의 은사들이 중단되었다는 그릇된 주장을 펼치곤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성령의 은사들이 성경의 완성과 함께 중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는커녕 도리어 성령의 은사들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지속될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12절까지 문맥에 주의하여 성경을 읽어보아야 한다.
(고전 13:8-12)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사도바울은 예언과 방언들과 지식이 언젠가는 그칠 때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앞으로 성령의 은사들이 그칠 때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성령의 은사가 그치는 그 때는 성경이 완성된 때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때는 언제일까?
고린도전서 13:8-12절을 통해서 우리는 그 때가
① “장성한 사람이 될 때(완전함에 이를 때)”,
②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때”,
③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 때”(10, 12절)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성경이 완성된 때가 아니라,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질 일들이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온전한 것'(10절)이 성경의 완성을 언급한다고 주장한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이 쓰여졌을 때, 교회는 완전한 성경을 가졌고, 더 이상 기적적인 성령의 은사들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한 견해는 그에 반대하는 다음과 같은 확고한 논의들에 부딪히게 된다.
첫째, 인접한 문맥의 어디에서도 바울은 성경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 않다.
둘째,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뵙고 있다고 말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완전히 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셋째, 12절에 나오는 표현은 교회나 성경의 완성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할 경우에만 사용 가능한 표현이다.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12절)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12절)는 말 역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들이 주님처럼 전지해질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보나 오해 없이 정확하게 알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것이 올 때” 즉 예언을 위시해서 여러 가지 은사들이 끝나는 때는 성경의 완성의 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를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흔히 은사가 끝났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이 구절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은사들이 계속 작동할 것이며 지속될 것임을 오히려 입증해주는 구절인 것이다.
성령의 은사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전1:7)라고 말했을 때 이것을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성령의 은사들을 예수님의 재림과 연결하였다. 따라서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성령의 은사들이 계속 존재할 것임을 암시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릇된 신비주의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영계를 보고 왔다는 말들이 다 거짓말일까? 치유사역을 강조하고, 치유를 간증하는 사람들은, “집회 장소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들이 모두 다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미련하고도 위험한 사람들일까?
사도바울이 말한 바,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에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살후2:9)이라는 것과 주님께서 말씀하신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막16:17-18)- 는 것은 서로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 것이며, 나타나는 표적들 중 사탄에게 속한 것과 주님께 속한 것들을 구별해내는 정확한 기준은 무엇일까?
성경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항상 전후문맥을 통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이 성경해석의 기본이다. 사도바울이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2:9-10)는 말을 했는데, 이 구절의 정확한 의미를 살펴보려면, 이구절의 전문맥과 함께 보아야 할 것이다.
(살후 2:1-8)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6]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의 휴거 직전에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것인데, 그의 특징은 “대적하는 자요, 모든 종교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때 그 악한 자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역사”(살후2:9-10)할 것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앞두고 그 누군가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면서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속임으로 역사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사도바울의 말을 앞뒤를 싹둑 잘라버리고,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2:9-10)는 구절만을 인용하면서 능력과 표적과 기적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이 다 성령의 역사는 아닐 수도 있으며, 그릇된 신비주의가 어떻다느니, 사람들을 미혹하는 미끼로 사용하고 있다느니, 사탄도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날 수 있다느니 하면서, “그 악한 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에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멸망하는 자들 안에 있는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력한 미혹을 보내시어 거짓말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9~11)는 구절을 인용하여, 집회 장소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들이 모두 다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말이고, 무엇을 위한 말인지 모르겠다. 물론 사탄도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날 수 있으며 그가 미혹된 자들을 속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후11:13,14; 살후2:11). 하지만 그러한 자들은 사도바울의 사도직을 공격함으로 교회내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며,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등의 악한 열매들을 나타내는 것과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교회나 사역자들에게서 이상과 같은 악한 열매들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러한 교회나 사역자들을 조심하고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교회나 사역자에게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을 시기하여 이상과 같은 명백한 악의 열매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의 휴거 직전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에게 해당되는 “그 악한 자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역사”(살후2:9-10)할 것이라는 구절을 들어서 무조건 경계령을 내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며, 주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인정하실 만한 일일까? 이상과 같은 똑같은 일이 예수님에게도 일어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 12:22-32) 『[2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기억하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성령을 힘입고 사역하는 것에 대하여 귀신의 왕 바알세불(사탄)을 힘입고 사역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사탄은 사탄의 역사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누군가가 모든 능력과 표적들과 이적들을 행하는 동시에 그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놓고 자신을 하나님이라 높인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사탄의 역사이다(살후2:1-10).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능력과 표적과 이적이 나타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요, 사역자라고 하면서도 능력과 표적과 이적이 안 나타난다면 그것이 훨씬 더 이상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막 16:17-18)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고전 4:19-20)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행 8:4-8)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아멘.
3. 물론 오늘날도 하나님의 은혜로 얼마든지 기적이 일어나며 치유의 역사도 일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특정한 한 사람이 그런 능력을 행하는 그런 시대는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는 성경말씀을 인용하며 사도들의 표적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은사주의자들은 성경에 무지한 자들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 말이 맞는 말일까?
물론 지금은 만인대제사장 시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누구나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으며 동일한 성령의 내주하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벧전 2:5,9)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 10:19-20)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하지만 이상과 같은 진리가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성령님의 은사와 능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고린도교회에 보내어진 고린도전서에 각 사람에게 주어지는 각각의 은사가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 12:4-11)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사도들의 시대가 저문 지금은 사도들의 표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에, 지금도 그 일을 행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 ‘21세기의 마술사 시몬’이다.”라는 식의 사탄적인 말에 더 이상 속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여 영적 분별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에 반대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4.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인가?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고, 성경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 아람어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며, 성경각권의 문학형태인 각 장르에 맞게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자체의 문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자체의 문맥을 놓치거나 무시한다면,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성경구절을 가지고 성경의 진리에 역행하는 이론들을 만들어내는 안타까운 저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사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바로 그 방법을 사용했음을 알아야 한다. 사탄이 예수님께 성경구절을 인용하였다.
(마 4:5-6)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사탄이 인용한 이 구절은 시편 91:11-12이다. 그런데 본래의 구절인 시편 91:11-12과 사탄이 인용한 마4:6을 잘 비교분석해 보기 바란다. 중간에 < >표시한 문맥이 빠져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시 91:11-12)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우리의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계신 하나님을 시험해보라는 도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말씀을 정확히 아셨기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구절은 신6:16이었다. 그런데 신6:16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는 이 말씀의 본의는 무엇이었는가? 그 전문맥을 보면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라고 되어있다. 맛사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시험하였던 것인가? 출17:7에 그 정확한 내용이 나오고 있다.
(출 17: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이스라엘백성들이, 맛사에 이르렀을 때, 언제 어디에서나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라는 시험을 하였다는 것이다. 지금 원수마귀는 성경 시91:11-12을 인용하되,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는 중간문맥을 살짝 건너뛰고 인용함으로 성경 시91:11-12과 반대되는 시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그 핵심을 간파하셨기에 맛사에서의 시험사건에 관한 구절을 인용하심으로 정확하게 대응하셨던 것이었다. 문맥에 관한 아주 중요한 핵심을 보여주는 장면이 되는 것이다.
문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위에서 살펴본 바, 고전13:8-10을 가지고 은사중단론을 주장하는 자들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증거는 후문맥인 고전13:11-12을 볼 때 알 수 있었고, 살후 2:9-10을 가지고 모든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성령의 역사로 보아서는 안되고 그것을 분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전문맥인 살후2:1-8과 함께 볼 때 잘못된 해석이거나 지나친 해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두에서도 다윗의 시를 예로 들어 문맥적 해석의 중요성을 좀 더 쉽고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부디 성경을 읽되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전체 문맥 안에서 올바르게 읽고 올바로 깨달아 생명의 길, 거룩의 길, 부흥의 길을 달려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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