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지옥은 사탄의 거짓말?
인터넷 어느 싸이트에 올라간 글을 읽었다. 그 싸이트는 "거짓과 진리", "참복음과 거짓복음"이라는 방까지 만들어 놓고,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싸이트처럼 위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율법준수를 매우 강조하면서도 내세천국을 부인하고 이 땅에서의 천년왕국만을 믿으며 영원한 지옥을 부인하는 이단교파의 사람이 운영하는 싸이트일 확률이 98%이상인 듯하다.^^ 그 싸이트에 있는 글 중에 영혼불멸의 신앙과 영원한 지옥의 교리는 사탄의 미혹이라는 주장이 있다. 영혼불멸이나 영원지옥의 교리는 성경에 근거한 진리가 아니라, “거짓의 아비”(요8:44)인 사탄의 최초 거짓말(창3:4)에 기초한 것이란다.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 때에 그 몸과 함께 영원히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이지, 영원한 불이 타오르는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영원한 지옥을 인정하는 것과 부인하는 것,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진짜로 사탄의 거짓말일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안식일교회와 여호와의 증인은 공통적으로 지옥을 부인한다. 그들은 몸을 떠난 “영혼”을 인정하지 않으며, “살아 있는 사람”을 “영혼”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도 죽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영혼이 가는 지옥도 없다는 것이다. 기성정통교회들의 주장과는 달리, 육이 죽고 영혼이 살 수 없으며 인간의 죽음이 영혼과 육체의 분리라는 것도 부인하는 것이다. 안식일교회와 여호와의 증인의 이러한 주장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하시겠느냐는 논리를 깔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그러한 주장이 맞는 소리인지 이제 성경을 통해 살펴보자. 누가복음 8장 55절에 야이로의 딸은 영혼이 떠났다가 영이 돌아오니 곧 살아났다. 사도행전 7장 59절을 보면 스데반이, 육신이 죽으면서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육신이 죽을 때 영혼도 함께 없어진다면 어떻게 영혼을 받을 수가 있겠는가?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도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라는 기도를 드렸고,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19:30)라고 하였다. 살아 있는 생명 자체가 영혼이라면 육신의 생명이 끊어질 때 영혼도 없어지는 것인데 무슨 영혼을 받아 달라는 부탁이 필요하겠는가? 분명히 육신이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다.
영혼불멸의 신앙과 영원한 지옥의 교리는 사탄의 거짓말이라는 주장을 하는 그 글의 내용인 즉, 기독교 안에 부활의 의미를 흐리는 대표적 사상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사람이 죽으면 즉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개념이며, 두 번째는 영혼은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가르침이란다. 기독교에서 현재 널리 가르쳐지고 있는 이 두 가지 비진리, 잘못된 교리야말로 성경이 말하는 부활의 정확하고 확실한 개념을 흐리고 있는 주범이 되고 있는데, 만일 영혼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그리고 사람이 죽어서 즉시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면, 이미 천국에 가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왜 또다시 부활시키실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성경은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것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데,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항상 조건적인 불멸과 영혼멸절의 사상이란다. 그 사상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6,17)는 하나님의 말씀에 드러나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범죄하지 않으면 불멸의 영생을 보장받게 되는 조건적 불멸이고, 반대로 불순종하여 범죄하면, 죄의 값인 사망에 이른다는 영혼멸절의 선언인 것이란다.
구약 성경은 영혼불멸신앙을 사탄의 역사로 간주하고 이단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장 혹독한 방법을 써서 근절시키도록 촉구했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그 근거 구절이 레 19:31; 20:6, 27; 삼상 28:9; 대상 10:13; 사 8:19 이란다.
신약 시대에도 예수님은 물론 모든 사도와 신약 성경 전체는 당시에 편만했던 헬라의 영혼 불멸 사상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고, 유대교 내부까지 깊이 침투해 있던 그릇된 내세관을 정면으로 배척했고 그 근거구절이 마22:23~33; 행4:2; 23:8 이란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마지막 심판 후 재림 때에 있을 몸의 부활로 인한 불멸이었지, 영혼의 불멸이 아니었고 그 근거구절이 요11:25,26; 고전15:52~54; 살전4:16 이란다.
인간에게는 처음부터 불멸의 속성을 준 바가 없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조건으로 영생이 보장되었음을 성경은 시사하고 있고, 따라서 불순종으로 인한 범죄는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여 “죄의 삯은 사망(롬 6:23)임을 경험하게 되는데, 예수님 재림 후 천 년 뒤에 있을 둘째 부활 때 육신의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심판의 불에 살라져 없어짐으로, 영원히 소멸되어 없어진다는 사실을 성경은 언급하고 있는데 그 근거구절이 계20:12~15; 말4:1,2; 시37:9~11; 롬6:23 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범죄하지 않는 사람만이 예수님 재림시에 이 땅에서 몸이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고, 불순종하고 범죄하면 그의 몸과 함께 불심판을 받고 영원히 소멸되어 없어진다는 것이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런 것일까?
성경이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
이상의 내용을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한 레 19:31; 20:6,27; 삼상 28:9; 대상 10:13; 사 8:19 이 정말로 영혼불멸신앙을 근절시키라는 말씀이었는가? 한 구절 한 구절 찾아 인용해 살펴보기로 하자.
(레 19:31)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20:6,27) 『[6]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7]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삼상 28:9)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사울이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하는지라』
(대상 10: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사 8:19)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이상의 구절들은 영혼불멸신앙을 근절시키라는 내용이 아니라, “신접한 자들(히. 오브)”, 즉 귀신을 불러들이는 영매자들을 근절시키라는 내용이었다. 악한 귀신들이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가장하여 그들의 흉내를 내는데, 그러한 악한 귀신들을 불러내는 무속인들을 허용하지 말고 쫓아내라는 말씀이었다.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성경구절을 인용해 본다.
(신 18:9-14) 『[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10]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11]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12]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14]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만약에 악인이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처하는 것이 아니고, 심판의 불에 살라져 없어짐으로 영원히 소멸되어 없어진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마25:41,46의 영생과 영벌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마 25:41,46)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의인들이 들어가는 “영생”과 대조되어, 영원한 불에서 영원히 받게 되는 “영벌”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경은 왜, 악인이 영원한 심판의 불에 살라져 없어짐으로 영원히 소멸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계21:8에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는 표현과, 계14:10-11에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일까?
영원한 지옥에 대해서 부정하는 안식일교회는, “영원한 불”(마18:8), “예비된 영원한 불”(마 25:41), “영원한 불의 형벌”(유7) 등 영원한 지옥에 관한 구절들에 나오는 “영원한” 이라는 단어가 “아이오니오스(aionios)”로서 한도 끝도 없는 영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한 세상”, “한 세대”를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영원한 지옥을 주장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신계훈,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 202~203쪽). 안식교일교회의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다음의 성경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상기(上記)한 바,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영원한(aionios) 불”에 들어가라고 하였고(41절), 역시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영(aionios)생”에 들어가라고 하였는데 같은 “아이오니오스(aionios)”가 쓰여졌다. 여기에서 “아이오니오스(aionios)”를 “한 세대”나 “한 세상”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얻을 영생 “아이오니오스(aionios)”도 한 세상으로 끝나는 영생이 되고 말 것이다. “영(aionios)생”이 한이 없는 생명을 말하듯이 “영(aionios)벌”도 한이 없는 영원 지옥을 뜻하는 것이다(41절).
물론 “아이오니오스(aionios)”가 어떤 때는 안식일교회의 말대로 한 세상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일 수도 있으나, 지옥을 표현할 때의 “아이오니오스(aionios)”는 분명 영원한 지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문맥이기 때문이다.
만일 안식일교회의 주장대로 “아이오니오스(aionios)”를 “한 세대”나 “한 세상”으로 해석하여 영원한 지옥을 부인하게 된다면 우리의 구원받은 영생 또한 영원한 것도 아니고, 하늘 나라도 영원하지 않으며, 우리가 받을 영광도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 되고 만다. 성경을 조금만 주의 깊게 연구하면 알 수 있는 것을 얼마나 자신들의 교리의 자로 보고 있으면 이런 자가당착적인 실수를 하겠는가? 우리가 받을 영광이 영원한 것처럼 지옥의 형벌도 영원한 것이다.
악인이 영원한 심판의 불에 살라져 없어짐으로, 영원히 소멸되어 없어진다는 근거로 계20:12~15; 말4:1,2; 시37:9~11; 롬6:23을 제시하였는데 그 구절들이 정말로 그런 의미일까? 직접 찾아 인용하면서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
(계 20:12-15)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이 구절이 정말로 악인의 영혼이 불에 타서 영원히 멸절되어 없어진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이 구절 바로 앞에 나오는 계20:10의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는 이 말씀의 의미는 또 어떻게 이해되어져야 하는 것일까? 공동번역으로는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괴롭힘을 당할 것입니다.”라고 되어 있고, 킹흠정역으로는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으리라.”고 되어 있는데, 죽어 없어진 사람이 어떻게 영원무궁토록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 4:1-2)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물론 이 구절은 어찌보면 영혼멸절사상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심판이 용광로 불과 같이 강하고 혹독한 것이라면, 그 심판의 대상이 되는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지푸라기와 같이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들에 불과함을 비유하는 것일 뿐 진짜로 사람의 영혼이 영원히 타버리고 없어져 멸절된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말라기1:4에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라는 말씀이 바로 그 점을 보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 37:9-11)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이 구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그들의 육신의 죽어서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는 의미일 뿐, 악인이 불심판을 받아 그의 존재 자체가 영원무궁토록 없어지게 된다는 영혼멸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누리게 되는 생명이 영원한 것처럼, 죄인의 사망이라는 개념도 그냥 소멸하여 없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영원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성경전체에서 죄인의 형벌을 영원한 것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이 말한 “영원한 멸망의 형벌”(살후1:8-9)이라는 의미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께서, 지옥은 불도 영원히 꺼지지 않고, 거기에서는 구더기조차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서 고통을 당하는 곳임을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막 9:43-49)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영혼멸절사상을 주장하는 이단들이 제일 싫어하고 당혹스러워하는 성경본문이 누가복음 16:19-31에 기록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이다. 그런 사람들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실제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교훈을 베풀기 위한 하나의 비유에 불과하며, “가난한 서기관과 부유한 세리 바르마얀”이라는 팔레스타인의 설화나,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기록되어 있는 “시-오시리스(Si-Osiris)와 그의 아버지 세톤 카임붸제(Seton Chaemwese)가 죽음의 나라를 여행하는 설화”를 차용해 와서, “부자는 당연히 천국에 간다는 그 당시의 잘못된 사상”을 교정해 주려고 했던 것일 뿐 실제적인 이야기는 아니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부자가 간 곳을 "음부"라고 하였는데, 원어로는 무덤을 가리키는 "하데스"이다. 무덤 속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 나사로가 간 곳이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 품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 24절에 보면 그가 불꽃 가운데서 고통 한다고 하는데, 과연 영혼이 뜨거움이나 목마름 등을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육체가 느끼는 감각들이다.
- 25절의 아브라함 말에 모순이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천국과 지옥은 이 세상에서 고생했느냐 안 했느냐를 기준으로 해서 결정한다는 말이 된다.
- 과연 천국과 지옥이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일까? 그렇다면 그곳이 정말 천국이 될 수 있겠는가? 지옥의 고통을 다 보고 있는 곳은 천국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주장처럼,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실제가 아닌 그냥 교훈을 베풀기 위한 하나의 비유라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아무리 비유라고 하더라도 천국과 지옥의 실제까지도 비유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이에 더하여 다음과 같은 더 큰 문제들이 생기는 것 아닐까?
- 부자가 간 곳이 그냥 무덤이라면 땅 속의 무덤에서 어떻게 그런 일들이 가능할 수 있을까? >>아무리 비유일지라도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비유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나사로가 간 곳이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 품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웃기는 이야기이다. “10남매를 둔 아버지가 한 아이를 품에 안고 이야기했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10남매 모두가 아버지 품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가 아닌가? 하나 더 참고적으로 알아둘 것은, 바리새인과 같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말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품”을 말할 때는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대유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 24절에 보면 그가 불꽃 가운데서 고통 한다고 하는데, 과연 영혼이 뜨거움이나 목마름 등을 느낄 수 있을까? 그것은 육체가 느끼는 감각들이다? >>꿈속에서 고통을 당할 때 그것은 육체가 느끼는 감각이 아니기에 참된 고통이 아니었다고 해야 할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심각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육체가 건강하니 그 고통은 가짜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 25절의 아브라함 말에 모순이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천국과 지옥은 이 세상에서 고생했느냐 안 했느냐를 기준으로 해서 결정한다는 말이 된다? >>부자가 지옥에 간 것은 30절의 말씀처럼 그가 살아생전에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5절은 현세의 삶에 따라 내세의 상벌이 결정된다는 상급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지 구원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 과연 천국과 지옥이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일까? 그렇다면 그곳이 정말 천국이 될 수 있겠는가? 지옥의 고통을 다 보고 있는 곳은 천국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본문을 정확히 잘 읽어보기 바란다. 지옥에 떨어진 부자가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다는 이야기이지, 천국과 지옥이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라는 표현이 어디에 있는가? 오히려 26절에, 천국과 지옥은 서로 왕래가 불가능한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는가? 지옥의 부자는 천국의 나사로를 볼 수 있었어도 -그래서 더 지옥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천국의 나사로는 지옥이나 지옥의 부자를 볼 수 없었고, 또 볼 일도 없었음을 알아야 한다. 다만 지옥의 부자가 아브라함으로 표현된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여러 가지 호소를 하였지만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본문을 자세히 잘 읽어보기 바란다.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전제하에, 영원한 내세천국과 영원한 형벌이 있는 지옥을 부인하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다 가리려고 하는 것 만큼이라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내세천국과 지옥을 부인하는 자들은, 몸의 부활신앙과 영혼불멸신앙이 서로 조화될 수 없는 적대적인 사상이라고 주장하면서, “영혼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고 사람이 죽어서 그의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끝이지, 몸이 다시 부활할 까닭이 없지 않는가?”라는 주장을 하는데, 성경은 육의 몸이 있듯이 영의 몸이 있으며, 주님께서 내세천국을 완성하신 후에 재림하실 때에 그 천국에 합당한 영의 몸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몸의 부활신앙과 영혼불멸신앙은 서로 대치되는 신앙사상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요 14:1-3)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전 15:44,50-54)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마22:23-33이 정말로 영혼불멸사상을 정면으로 배척하는 말씀일까? 오히려 그 반대로 내세천국의 영생을 의미하는 부활을 거부함으로 영혼불멸을 배척하던 사두개인들의 잘못을 시정해주신 대목이 아니던가?
(마 22:29-33)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이 말씀과 같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육신으로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영혼은 하늘나라 천국에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실 때에,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하신 까닭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위시하여 모든 믿음의 선진들의 몸은 지금 땅 속에 묻혀 있지만 -잠을 자고 있지만-, 그들의 영혼만큼은 하늘나라에서 우리 주님과 함께 있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히12:1). 다만 우리 주님께서 천국을 완성하신 후 이 땅에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들의 죽은 몸이 그때 다시 일어나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이며, 영화로운 몸을 입은 완전한 모습으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살전 4:13-18)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롬 8:18-25)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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