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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프로테스탄트 한국 선교 초기의 일반적 배경 - II. 개신교 선교 초기의 대체적 상황 A. 국내적 정황 3.종교적 상황

수호천사1 2012. 10. 4. 13:39
3.종교적 상황
개신교 수용 당시에 있어서 종교적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심한 허탈감을 경험하고
있었다. 한국 역사를 통해 한때 전성했던 선(선)이나 불교 및 유교의 정신적 차원이 고갈하
고 그 형식과 명분만으로 무게없이 뚜렷한 영향력 없는 반복만 되풀이 하던 한말은 종교적
신앙과 정신생활의 전례없는 진공기였다고 볼 수 있다.
{{
)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서울 : 대한기독교 서회, 1973), p.120.
}}
정치의 혼란과 경제의 파탄으로
백성들은 희망이 없었고, 특히 종교마저도 천시를 받고 있었다. 유교는 부패한 양반과 관료
들의 종교로 머물러 있는 지배층의 종교였고 백성들의 종교는 아니었다. 불안한 백성들에게
는 길흉을 점치는 민간신앙에 오히려 의지하였던 시대였다.
{{
) 유동식, [한국신학의 광맥] (서울 : 전망사, 1986), pp.37-38.
}}

한국인들은 초자연적 존재이며 신비한 '하느님'을 최고의 신이고 유일한 주신(주신)으로
믿고 있었다.
{{
) 유동식, [한국종교와 기독교], (서울 : 기독교서회, 1967), pp.27-33.
}}
그런데 미국인들과 열강들이 믿는 '하나님'이 샤마니즘의 신인 '하느님'까
지 다스리시므로 저들이 부강하다고 생각하여 기독교를 신뢰하게 되었다. 유교는 종주국인
청나라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하자 소위 경향신사(경향신사)라는 개화파에 속한 유학자들이
개종하므로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개신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던 것이다. 토착종교가 내포
하고 있는 형이상학적 개념들은 한국교인들의 신인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1860년 최제우에 의해 창도된 동학은 "천심이 인심"(인내천), "사람을 하늘같이 섬기라" 고
하는 동학의 사상은 봉건적 신분질서를 부정하고, 미래에는 억압받는 민중이 복을 누리고 지
배층이 몰락할 것이라는 지상천국설의 반봉건적 지향을 담고 있었다.
{{
)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역사] (서울 : 역사비평사, 1992), p.236.
}}
이러한 동학사상은
당시의 유교적인 봉건사회를 파괴하고 있었고
{{
) 유동식, [한국신학의 광맥], op.cit., p.37.
}}
기독교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
하다'는 사상과 어울리게 되었으며, 동학운동의 지상천국설은 종말론적 대안으로서의 기독교
를 소망하였다.
내외의 관찰자들에게는 한국은 비종교적(비종교적)이라는 인상을 짙게 풍겼는데, 초기
개신교 형성의 시대에 개신교는 약소민족과 고난받은 민중들에게 새 희망과 힘의 종교로 수
용되었다.
{{
) 민경배, [한국 기독교 사회운동사], op. cit., pp.95-105.
}}


출처 : 두손선교회
글쓴이 : ysong777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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