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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책> 환란전휴거의 증거 6-3. 노아홍수와 휴거의 연관성(3/4)

수호천사1 2012. 9. 17. 11:26


환란전휴거의 명백한 증거 6-3. 

       요한계시록 7:14의 해석과 13:6의 연관을 통하여 본 환란전휴거의 증거

 

 

 

장막에 거하는 자들(3/4)

 

 

 

 

조우리 목사

 

 노아홍수와 휴거 및 환란기의 비교

 

 

노아홍수 때에도 환란기와 같은 원리가 적용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앞으로의 심판은 노아홍수를 보고 생각하라 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6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창세기를 보겠습니다.

 

창세기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 하나님의 아들들은 절대로 타락한 천사나 그냥 천사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성경이 왜곡되고 사람들이 죄를 짓습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들'은 여기서 절대로 천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하는 자로 정동수 및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카페들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들을 합니다. 말세의 미혹하는 교리중 하나입니다.

 


1. 구약 욥기를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임은 분명하지만 오늘날 신약 시대에는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따라서 구약에서만 이 근거를 찾아서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은 신약을 무시하는 무지한 이단 신천지식 방법입니다. 아마도 누군가 이단 신천지에게서 배워왔을 것입니다. 자기 죄는 자기가 질 것입니다.

 


2. 그냥 천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이러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천사는 우리가 보통 악한 영, 귀신이라고 합니다. 영적인 존재인 귀신이 사람의 몸에 거주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몸과 결합하여 아기를 낳을 수는 없습니다. 


영적인 존재인 귀신이 정자를 가지고 있을까요? 간단히 생각만 해도 생물을 공부한 사람들은 웃어버릴 해석을 '대단한 해석인 양' 철썩같이 믿고 있는 ‘바보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영적인 해석고 하면 사람들은 성령의 해석인지 악한 영의 해석인지를 구분하지 않는가 봅니다. 주님의 말씀을 함부로 해석하여 실수나 거짓말로 만드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요 바보같은 자들입니다.  사실 이단은 바보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30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가복음 

12:25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천사는 결혼하지 않는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왜 이 말씀은 눈에 안 들어왔을까요? 정말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라고 기록된 것이라면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 타락한 천사는 사단과 그 졸개입니다. 영적인 존재입니다. 육신이 없습니다. 

육신이 없는데 여자를 아름답게 본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런 해석은 더러운 

자들의 해석입니다.

 

 

올바른 해석은 다음입니다.

장로교는 해석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을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라 합니다. 

이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자기 욕심대로 살아서 타락한 자들의 딸들, 육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자들을 보고 경건과 거룩을 제껴두고 세상적으로 살아가기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사람들에게 성령이 더 이상 이들과 함께 하시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성령은 죄를 참지 못하십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죄인을 망하게 하느니 차라리 죄인을 떠나십니다. 그것이 소멸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거룩해야 할 교회가 그 거룩과 경건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환란기에는 교회에 거하시는 성령이 더 이상 거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노아홍수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원리입니다.

아실 것은 어느 때에나 성령은 정결하고 거룩한 자들과 함꼐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교회 곧 그리스도인이 정결할 때에 성령이 그에게 임하십니다. 

성령은 믿음만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정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고넬료의 경우와 같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인이었는데 그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의로운 행동, 의로운 삶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을 받습니다. 예수님 믿음 + 정결함 = 성령의 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그렇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정결함을 이루면 성령이 임하시는데  스스로 회개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회개하고 또한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회개하면 그들은 정결해지고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자들이 결국 휴거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도 죄를 지으면 성령을 소멸하는 자가 됩니다. 

(살전 5: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그러므로 죄를 짓는 자는 그는 자기안에 성령 곧 기름을 없애버리는 자입니다.

(마태 25장 열 처녀의 비유) 

즉 죄를 짓는 자는 매우 어리석은 처녀라는 것입니다. 

자기 영혼, 자기 몸을 죽음에 처하게 하는 자입니다.

 

그 기름을 어디 간다고 얻을 수 있나요? 스스로 정결하게 하지 않는 한 어디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쫓아다닌다고 성령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극심하게 열정을 내어서 모임에 참석하고 주여 주여를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한 예수님의 피로 정결하게 씻지 않는 한 성령은 그에게 충격을 주시기는 하실 것이나 그에게 강력하게 임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회개하고 준비된 자는 성령안에 들어갈 수 있으나 스스로의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집회를 쫓아다녀야 합니다.

 

성령은 임하시면 우리의 사상과 감정을 다스려야 하고 의지적 결정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에게 성경의 올바른 해석으로 인도하시고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주실 것입니다. 

늘 성령의 지배가 없는 자들은 분별력이 없습니다.

 

이것이 거짓말이 이 세상에 퍼져나가는 이유입니다.

 

 

 

노아홍수와 휴거의 유사성

 

 

창세기 6:2,3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그리스도인에 비유할 일입니다.


창세기

6: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그런데 온 세상은 항상 악합니다. 지금은 노아때보다 더 더러울 것 같습니다.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6: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 그러므로 물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불로 심판하십니다.

 

물로 심판하시기 이전에 노아에게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라 하시고 구원받을 자들을 다 그리로 들어가라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과거에 물로 심판하시듯이 앞으로는 불로 심판한다 하셨습니다. 

스마트폰과 아파트과 자동차와 그럭저럭한 직장은 안전한 방주 같습니다. 

그리고 국가의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을 지키는한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과속운전을 하면 딱지를 뗍니다. 경찰이 없어도 요즘은 카메라로 찍혀서 수일 후에 집으로 벌금통지서가 날라옵니다.

 

그런데 어떤 초보운전자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과속으로 다녔다고 하면 그에게는 벌금통지서가 쌓일 것입니다. 자기가 알던 모르던 법을 어긴 것이며 국가는 그 위법행위를 책임지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법이 온 우주에 있는데 누구든지 이 법을 알든 모르든 어긴다면 그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댓가 곧 죄의 댓가를 받게됩니다.

 

세상의 어떤 구석에도 하나님의 제한이 있습니다.

천사들을 결혼하지 않는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안다면 함부로 창세기 6:2을 타락한 천사라고 해석하는 죄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방주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노아홍수 때에 노아 가족이 헤엄쳐서 구원받으라 하지 않으시고 미리 미리 방주를 만들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홍수를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제 때가 가까웠는데 우리는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피로 씻고 늘 성령께 둘러싸여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함을 입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는 자가 결국 휴거됩니다.

 

이것이 이기는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7:13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이 구절은 이방인의 환란기 후반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이기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짐승과 맞서서 싸우실까요?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이기신 것이고 이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은 싸우려 하나 이미 어린 양은 이기시고 하늘에 계십니다. 지금 이 상황 17:14절이 예수님이 재림하신 때가 아닌 것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오해하면 안됩니다.

 

다스리시고 이기신다는 것이 환란기에 짐승이 난리를 쳐도 예수님은 다스리시고

(계 14:1 시온산에서) 이기신다(계 17:14) 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무관한 상태로 하늘에서 유흥을 즐기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예수님은 이 땅을 통치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이 환란기 후반기에 짐승을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일까요? 땅에 있을까요? 하늘에 있을까요?

 

그들은 하늘에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빼내다 라는 말은 의미가 무엇인가?

 

‘택함을 입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빼내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1) picked out, chosen

1a) chosen by God,

 

잘 아셔야할 것은 이 땅에 환란기에 남겨져 있는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님이 버려두신 자들입니다.

 

이때에 성령의 역사가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는 것이 없습니다.

이기는 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서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늘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의 모든 승리의 원인이고 방법입니다.

성령이 없이, 성령의 함께 하심이 없이 이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환란전에 휴거된 자들을 말합니다.

 


a. 이것을 재림 때에 택한 자들을 모으신다고 하는 택한 자로 보면 안됩니다. 

그때에 천사를 보내신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말입니다.

(해석에 주의해야 합니다.)

 


b.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이들이 땅에 있고 예수님이 땅에 있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고 해석해도 안됩니다. 그러면 짐승에게 질 리 없습니다. 

짐승이 무제한의 능력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비교하여 이길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데 성도들이 충성스럽게 (혹은 믿음을 가지고 ) 있는데 짐승에게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짐승이 성도를 이긴다 하니 이 구절은 이 땅에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해석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c. 아직 재림하시지 않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들이 바로 이 짐승을 이기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짐승의 통치를 당하지 않고 빼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환란기가 되기 전에 빼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휴거입니다.

 

정신없는 자들은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이것은 분명히 휴거입니다.

 


d. 이 구절은 분명하게 빼내었다(pick out)고 합니다.

재림 이전에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들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고 당연히 이들은 휴거된 자들입니다. 이것은 노아방주와 같습니다.

 

구약시대의 의인인 노아 가족은 방주로 구원하시고

오늘날 더 온전한 의인인 성령충만한 자들을 짐승의 아가리에 넣어두실 리 없습니다.  왜 악한 존재, 사단의 권세로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신부가 잡혀 먹히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까요? 그렇게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짐승은 지금 13:6에 보면 말로 휴거된 자들 곧 장막에 거하는 자들을 모독할 뿐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습니다.

 

 

 


e. 이 17:14의 사람들은 이기는 자입니다.

환란기에 땅에 버려둠을 당한 자들은 짐승의 권세에 집니다. 죽습니다.(계 13:7)

 

즉 성령안에 있는 자들은 결국 이기되 노아홍수의 방주와 같이 물 위에서 이깁니다.  세상 위에서 하늘에 있어서 이기는 것입니다. 

노아홍수 때에는 휴거가 없었으나 지금은 휴거가 있을 것이고 휴거에 들어가는 자들은 이기는 자들입니다.

 

 

cf. 그러나 성경을 자기의 대충 만든 사상을 가지고 함부로 해석하는 것은 환란기의  재앙을 당할 죄악입니다.

 

노우호 목사는 환란전휴거가 없다는데 목숨을 걸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목숨을 걸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자기 말로 자기가 얽매일 것입니다. 분명히 환란전에 휴거됩니다.  사람이 성경을 최후 근거로 삼아야지 자기의 해석이나 자기 경력을 근거로 삼으면 안됩니다. 모든 인간은 성경과 다르게 거짓말을 하면 하나님께 벌받습니다.  성경과 다른 것 자체가 이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거짓말입니다. 저의 다른 의견인데요 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거짓말입니다.

휴거되는 자는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불이 떨어지고 불로 이 세상이 태워질 것입니다. 

정결한 자는 불타는 이 땅에서 성령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옮기우는 것입니다.  방주를 만드시는 것은 휴거시키시려 함이 아니라 온 세상을 멸하는 물에서 보호하시기 위함인데 오늘날에는 휴거를 통하여 이 땅을 떠나게 하시고 온 세상을 불로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8장과 16장 이후에 나오는 처참한 지구환경의 파괴를 알게 되면 휴거가 답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방주안에 거하라.

 

다음 말씀을 잘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 예수님의 피뿌림은 


1) 구원받을 때에 우리는 몰라도 뿌려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수동적입니다.) 


2) 또한 회개할 때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씻어주실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가 사함받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씻는다고요... 그렇습니다. 말씀으로 씻어내는 것이고 죄사함은 예수님의 피 때문에 받습니다. 

말씀은 죄를 보여주는 역할이고 회개하도록 이끄시는 역할입니다. 

그것을 물로 (말씀으로) 죄를 씻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우리가 신분만 제사장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씻고 정결해지면 제사장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 직무를 해야 합니다.(롬 15:16)  우리는 적극적으로 제사장의 일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구속은 우리 존재를 하나님이 잡아주시는 것인데 바로 예수님의 피로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피를 적용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

a. 예수님을 믿어서 얻는 구원은 초대교회 때부터 늘 나타나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특이하게 지금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이라고 합니다. 우리 온 영혼육의 구원이 구원입니다. 이것은 휴거를 생각하고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라는 말씀도 있지만 우리가 휴거된다면 온 영혼육의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환란기에 성령님이 성도들에게 능력으로 보호해 주신다면 짐승에게 질 이유가 

없으려니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환란기전에 휴거될 것이며 

 

이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보호함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성령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b.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말세에 나타나는 구원은 바로 휴거입니다.

 

짐승의 입에 찢기우는 것이 구원이 아니지 않습니까? 몸이 짐승에게 찢겨죽는 것은 온 존재의 온전한 구원이 아닙니다. 몸은 구원얻지 못한 상태로 이 땅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휴거된 자들은 온전한 구원을 누리는 것이고 온 영혼육이 구원받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는 자들은 그렇게 되어 온전한 존재로서 예수님과 혼인합니다.

 

 

c. 예수님의 신부는 스스로 그 자격됨을 깨달아 알거나 최소한 그러한 것을 남에게 들었을 때에 깨닫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이 사실을 모르는 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노력하겠지만 혼인잔치에 참석하지 못할 것입니다.

 

 

d. 이 땅에 버려둠을 당한 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결국은 하나님의 능력을 몰랐기에 휴거되지 못합니다. 즉,

 

1. 죄에 빠져서 헤메는 그리스도인들

2. 성령의 역사가 무언지 모르는 사람들

3.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왜곡하는 자들

 

이들은 지금 이 시대에 성령님의 능력 가운데서 살아가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것이 치명적으로 휴거되지 않는 원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1) 말씀만 안다고 하고 성령의 능력은 모르는 사람들

2)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살아가지 않는 자들

 

이런 자들은 휴거되지 않습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2. 계시록 6 ~ 19장에서 이 땅에 역사하시는 성령이라는 단어의 나타남은 없습니다.

 

 

즉 성령이 이 땅이나 성도안에서 역사하신다는 서술이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이(신사도운동이나 환란후휴거를 말하는 자들은) 환란기에 성령의 역사로 살아남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마음대로 성경을 왜곡하는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란기에 성령의 역사가 어떠한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계시록 6-19장에 보면 환란기를 말하는 말씀에서 성령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는데 두 군데 나타납니다. 14:13절과 17:3입니다.

 

둘 다 환란기에 남겨진 성도들(주님이 모른다 하시는 이들, 마태 25장)과는 무관한 상태입니다. 성도들 안에 영이 거듭난 것은 사실이나 이들은 죄악이 가득한 환란기, 우상숭배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란기에 피하여 다닐지라도 성령이 소멸되어 없는 상태입니다.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계17: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 이때에 언급된 성령은 사도 요한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려고 하시는 것이지 환란기의 성도들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참고- 정리된 것은 아니더라도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것임을 명심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a. 참된 그리스도인이 거듭난 영은 있을지라도(이것은 성경대로입니다.) 

성령의 내주(이것은 '성령의 전(temple)이 된다' 에서 나온 사상입니다만 신학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b. 예를 들면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그리스도인에게 “지금 당신은 성령이 안에 계셔서 이런 일을 하느냐.” 라고 물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스스로 생각해볼 것입니다. 내가 내 생각과 내 욕심대로 이 일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한 것인지 구분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종종 그런 시도를 해야 합니다. 나에게 나오는 것은 다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도 억지가 될 수 있습니다.

 

c.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그리스도인이 올바로 살아갈 때에 당연히 성령의 내주가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고 살아가는데 그 사람안에 성령이 내주하셔서 일하신다 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성령이 믿는 사람 안에 있는데 그 사람이 죄를 많이 짓는 통에 그만 그 안에서 주무시고 잠시 일을 쉬실까요? 그런 말도 안되는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건 잠자는 신의 개념일까요? 그리스 로마신화일지는 모르지만 성령께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사상이니 버려야 할 것입니다. 


d. 결국 성령은 그 죄를 짓는 사람과 함께 하시지 않는 쪽을 택하십니다. 

창세기 6:3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거듭난 영이 있기 때문이죠. 신학적 정리란 완벽하지 않습니다.

 

 

e. 성령의 내주란 성령을 따라가는 자에게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전이라는 말은 성령이 우리를 성전삼아 거하신다는 의미인데 성령의 내주와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나 살인죄를 짓는 그리스도인이 그 안에 성령이 계신다고 할 것이면 성령은 왜 그를 그냥 두셨을까요?

 

따라서 성령의 내주는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이상의 의견은 정리된 것이 아니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한 번 생각해보시라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환란기는 성령을 소멸하는 때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성령이 성도들에게 부어지지 않는 시대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환란기에는

예수님이 버려두신 사람들이 땅에 있고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때이고

스스로 정결을 유지하라고 하며

환란기에 성령의 이 땅에서의 역사하심을 나타내는 성경구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의 대리자인 짐승이 성도를 이기는 때입니다.

이로 볼 때에 성령의 역사하심은 이 땅에 없다 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짐승에게 진다는 것은 성령의 내주가 있다고 한다면 충돌합니다. 

짐승이 성도를 이긴다는 것과 성령의 내주 라는 신학 사상이 충돌한다면 이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의 내주 라는 사상을 버리고 다른 방법으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설명해야 합니다. (부정이 아니라 다른)>

 

 

결국 위의 1-4로 볼 때에

이 7:14절 사람들은 순교한 자들이 아니며 영혼만 올라간 자들이 아닙니다. 

휴거된 자들입니다.

 

 

시대의 특징의 변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이 땅에 계심과 안 계심은 늘 큰 상황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주의의 말씀 : 혹시 세대주의라 착각하실 분이 있을까봐 말씀드리지만 절대로 그쪽으로 가지는 않고 성경만 말씀드립니다. 어떤 어리석은 자들은 세대주의란 말이 나올 때마다 심하게 혐오하고 틀렸다고 하는 발작증세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신학계의 흐름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장로교 신학이 세대주의를 싫어한 이유는 세대주의가 성령의 은사를 부정하는 사상을 말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인간의 역사를 특정한 시기로 나누어 현 세대에는 기적의 가능성을 부정하기 위하여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라고 합니다. 성령을 소멸하는 자들 윌리엄 데일테가) 장로교 신학도 은사를 전부 다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세대주의를 거부하였는데 이제는 마치 세대주의가 다 잘못된 이단 사상인 줄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그때에 우리 인간은 과거에 생각하던 식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경대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저는 장로교 신학을 했으나 어떤 교파에도 얾매이기를 거부하며 성경대로 보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1) 창세기 6:3 성령이 더 이상 사람들과 함께 거하지 않겠다 하십니다. 

이 시대는 엄청난 죄악의 시대입니다.

 

2)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으로 여러 가지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 개혁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따라가야 합니다.

- 이 땅에 오신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이 죄를 사하시자 사람들이 놀랍니다.

- 예수님은 제사제도를 결국 폐하셨는데 예수님이 그 몸을 드리신 제사로 구약의 제사제도를 폐하셨습니다.(그러나 2000년이 지난 이 시대에 아직도 유대인들은 그 제사제도를 의미있다 합니다.)

 

3) 오늘날 신약시대는 구약시대와 다르게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새로운 이단 사상은 구약시대에도 거듭남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성경해석은 왜곡에 불과합니다.

 

4) 성령이 휴거되는 자들을 데리고 올라가십니다.

그러면 또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 성령이 이 땅에서 행하시지 않는 시대입니다.

성령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사건이 휴거이고

 

이때에 성령이 맺으신 열매들, 첫 열매, 사람들 중에서 처음 익은 열매(계 14장)를 데리고 올라가시는데 이 이후로는 큰 변화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세대주의라고 몰아버리는 자들은 성경의 진리를 눈으로 보기 싫어하는 자요 신학으로 스스로 장님이 되는 자입니다.

진리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5) 앞으로 천년왕국이 오면 악한 것이 없습니다. 이사야 65장

 

이런 시대마다의 차이점을 어떤 신학사상이라 하기 이전에 성경적 진리임을 파악하고 알아야 합니다.

 

(4/4로 계속)


출처 : 임박한 휴거 올바른 요한계시록
글쓴이 : 이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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