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전문인 선교 (이현정)

수호천사1 2012. 7. 23. 12:32

 

문인 선교


이현정 목사(UBF 한국대표, 선교학박사)


들어가는 말

 

  넓은 의미에서 ‘전문인 선교’란 일반 직업을 갖고 타 문화권에서 선교하는 형태이다. 그러므로 전문인 선교의 사역자들은 평신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 선교계에서 전문인 선교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이다. 20여년이 지난 현재 한국교회가 파송한 전문인 선교사의 수가 7천명을 넘게 되었고, 다양한 선교의 모델들이 나오게 되었다. 전문인 선교의 모델들을 살펴보고, 한국교회의 전문인 선교가 세계선교에 기여할 수 있는 점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전문인 선교의 성경과 교회사의 예


  전문인 선교의 원형적 모델은 성령님께서 성경을 통해, 그리고 교회사를 통해 보여주셨다. 구약 성경에서 대표적인 모델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포로기 시대의 다니엘을 들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바울을 들 수 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낸 목적을 말씀하신 출 19:5-6절이나, 신약에서 흩어진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인 벧전 2:9절은 하나님께서 모든 평신도들을 선교적 소명 가운데 부르시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형으로는 예수회와 모라비안 선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이 있다. 또한 근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윌리암 캐리도 좋은 모델이다.


2. 전문인 선교의 필요성 


  21세기 선교의 상황은 전문인 선교를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첫째, 선교사의 파송 비율은 세계의 인구증가 비율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둘째, 목회자(성직자) 선교사의 입국을 제한하는 폐쇄지역이 증가하고 있다.

  셋째, 종족과 문화의 장벽이 높아지고 있으며, 자국의 고유한 종교를 지키려는 종교정책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넷째, 선교사의 증가에 따른 선교비,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비, 선교사들의 건강관리 및 노후 대책 등 막대한 선교지원금 문제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평신도 전문인 선교 뿐 아니라, 스스로 돈을 벌어 생활하며 선교하는 ‘자비량 선교사’ 양성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3. 전문인 선교의 의의


  첫째, 전문인 선교의 개념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창 1:28).

  둘째, 전문인 선교는 문화명령과 선교명령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셋째, 전문인 선교는 선교 제한 지역이나 창의적 접근 지역에 비자를 받고 들어가기 위한 위장전략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역할은 교회개척에서부터 각 자가 가진 전문성을 통하여 지역사회의 개발과 각 영역에서 기독교 문화의 변혁 등 다양해지고 있다.

  넷째, 현지인들과의 자연스러운 접촉이 가능하다.

  다섯째, 선교사 동원의 자원이 풍부하다(전 교인의 99.6%가 평신도 전문인).

  여섯째, 전문인 자비량 선교의 경우 막대한 선교비 문제가 해결된다.

  일곱째, 자비량 선교사를 파송한다면 개척교회도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다. 이는 본국의 개척교회 사역도 더욱 역동적으로 만든다.


4. 한국의 전문인 선교현황


  2010년 1월말 현재 교단과 선교단체에서 해외에 파송한 한국선교사의 총수는 이중 소속 선교사(2,579명)를 포함해서 169개국에 22,130명이다. 교단선교부에서 파송한 선교사 수는 96개 교단 9,215명이고, 독립선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 수는 229개 선교회 12,915명이다. 지난 10년 동안에 선교사를 파송한 교단은 27개에서 96개로, 독립선교회는 87개에서 229개로 증가했다. 한국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 22,130명 중 목회자 선교사는 14,697명(배우자 포함), 평신도 선교사는 7,433명이다. 그 비율은 66%:34%이다. 목회자 선교사나 전문인 선교사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전문인 선교가 세계교회에 기여한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짧은 교회역사에 선교사 파송 수 세계 2위가 된 선교의 열정과 헌신,

둘째, 전문인 선교의 다양한 모델들의 나타남,

셋째, 그들을 통한 현지 지도자들이 세워지고 있는 점이다.

 

  한국에서 전문인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한 단체는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로서, 지난 40년 동안 92개국에 3,092명의 전문인 선교사를 파송했다. UBF는 1969년부터 전문인 선교사를 파송하여 한국 선교계에서 전문인 선교의 개념이 논의되기 시작된 80년대 후반에는 이미 800여명의 전문인 선교사들을 50여 개국에 파송하고 있었다. UBF는 한국교회의 전문인 선교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5. UBF의 전문인 선교


  UBF(University Bible Fellowship,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는 한국에서 자생한 캠퍼스 복음운동 단체이다. 1961년 9월, 1960년 4.19학생혁명과 1961년 5,16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시대 배경 가운데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시대상황 속에서 좌절과 방황 가운데 있던 대학생들에게 상한 심정을 갖고 있던 고 이창우 강도사(이사무엘 박사)와 미국 남장로교에서 파송 받은 사라 배리(Sarah Barry) 선교사는 대여섯 평되는 작은 셋집을 얻어 대학생들을 초청해 성경읽기와 기도를 시작했다. UBF의 캠퍼스 사역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성경공부이다.

 

  대학에 갓 입학한 비신자 대학생들을 성경공부에 초청하여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통해 복음을 전한다. 성경공부는 창세기 출애굽기와 같이 책별 장별로 본문을 귀납법적으로 공부한다. 주된 공부 방법은 일대일 공부로서 인격적이고 말씀과 삶을 함께 나누는 공부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학생들을 단계적으로 제자양육과정에 참여시킨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께 자신을 헌신하는 제자로 양성한다. 매 주마다 공부하고, 메시지를 들은 본문을 내면화하고 생활화할 수 있도록 소감(간증문)쓰기를 한다. 그리고 이를 또래별로 함께 나누는 소감 발표모임을 갖는다. 주요 성경본문을 암송한다. 계속적인 성경공부는 성경적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 역사관을 확립하게 한다.

 

  UBF의 성경본문 공부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속사람이 변화되고 본질이 변화되도록 돕는 공부이다. 존재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적어도 한 사람을 10년 정도 돕는다. 이런 제자훈련의 과정을 통해서 모두가 성경선생이요 전도인으로 양육된다. 동시에 성경공부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선교신앙과 선교비전을 갖게 된다. 본회에서 파송받는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들은 대체적으로 대학 4년, 졸업 후 대학원 과정 혹은 직장생활 동안 5-6년을 성경공부와 영성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어떤 선교사가 이런 고백을 했다. “내가 UBF에서 와서 10년 간 꾸준히 성경을 공부했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새벽기도, 섬기는 캠퍼스와 한국과 세계복음화를 위한 기도에 집중하도록 훈련한다. 또한 회원들의 매일 큐티 생활을 위한 자료를 연구 개발하여 책자로 만들어 공급함으로 매일 그 날의 말씀을 영접하고 말씀에 근거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도록 돕는다.


  둘째, 리더가 되면 후배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게 한다.

 

  이로써 성경선생으로 성장케 한다. 또한 각종 수양회에 말씀강사로 세워 훈련시킴으로 말씀의 종으로 훈련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직장을 갖고 전문인으로서 직장훈련을 받도록 한다. 선교사로서 소명을 받은 사람들을 각 지부에서 2년 이상 성경을 자립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성경선생으로 준비시키고, 전도 및 제자양육훈련, 기도훈련, 현지 언어 및 타문화권 연구 등을 통해서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로서 준비시킨다. UBF의 사역의 목표는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무리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영적 지도자를 키우는 제자양성의 역사이다.


  셋째, 선교지가 정해지면 최종적으로 본부 훈련원에서 6주간 집중 훈련을 받는다.

 

  훈련원의 훈련과목 중에서 성경본문 공부가 80%정도 차지한다. 매일 큐티 훈련, 사도행전 전 과목 고백적 문단나누기, 기타 성경본문 공부를 통해서 선교사로서 정체성과 비전과 믿음을 심는다. 그 외에 선교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문화적응, 신학훈련을 한다.


  넷째, 본국에 잠시 귀국하는 선교사들을 통해서 정기적인 선교보고회 및 세계선교를 위한 기도모임을 갖고 있다.

 

  매 5년마다는 국제적인 규모의 전문인 자비량 선교보고대회를 열고 선교사들과 그들의 열매들을 한국에 초청하여 구체적인 사역 보고와 기도회를 갖는다. 이를 통해서 본회의 리더들은 자연스럽게 선교의 비전을 갖게 되고, 선교사로 자신을 헌신하게 된다.


  다섯째, ‘모든 회원 제자화’ ‘모든 회원 선교사화’의 방향을 갖고 선교후보생들을 양성한다.

 

  학생들이나 졸업한 리더들을 수시로 선교현장에 단기로 보내어 선교사역에 동참하게 함으로 선교사로서 소명을 받게 된다. 또한 현지인 리더들이 본국에 와서 일정기간 머물면서 어학도 가르치고 교제한다. 이렇게 하여 언제 어느 곳이든지 선교의 문만 열리면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로 나아가 사역을 섬길 수 있는 선교후보생들로 준비시킨다. 2천여 명의 훈련받은 리더들이 언제 어디로든지 선교의 문만 열리면 나아갈 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다. 매년 70-80명의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들이 파송되고 있다. 


  UBF의 전문인 선교 동원의 모판은 캠퍼스 사역이다. 캠퍼스 전도 및 제자양성과 전문인 선교동원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이는 20세기 전반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어났던 SVM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SVM은 1천개 대학과 교회에 선교의 영향을 미쳤고, 청년 학생들 가운데 10만 명의 선교지원자들을 동원했으며, 이중 20,750명을 선교사로 파송한 역사를 갖고 있다. 캠퍼스 선교가 선교동원으로 연결되고 있는 한국내의 캠퍼스 선교기관은 UBF외에 CMI, CCC, YWMA 등이 있다. 2010년대 한국대학생들의 의식구조는 전 세대들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고난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이다. 그들은 원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낙관적이다. 외국어 능력도 우수하다. 이런 점에서는 선교에 헌신할 수 있는 조건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개인의 행복에 집착하고, 대단히 이기적이고, 소시민적으로 살고자 한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양성하고 선교에 동원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주고 비전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인내와 사랑으로 복음을 심고 양육하는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캠퍼스 선교를 통한 전문인 자비량 선교 동원이 미래 선교의 희망이다.


  UBF맨들은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님의 유언적 선교명령에 순종했다. 그래서 선교사 파송의 길을 열어주시도록 기도했다. 1969년, 서독에 취업차 나가게 된 서인경, 설동란, 이화자 세 명의 간호사 리더들를 펑신도 선교사로 안수하여 파송했다. 이것이 UBF의 평신도 전문인 자비량 선교의 시작이었다. UBF 선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들이다.

 

  직업의 종류는 교수로부터 개 미용사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직업은 대략 62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둘째, 현지 대학생 비신자들에게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 전도하고 제자로 양육한다.

 

  그들은 고급 현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때까지 언어훈련을 한다.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가정을 돌보고, 자녀들을 양육한다. 유학생들의 경우는 학문을 한다. 예배 공동체를 이루어 말씀을 섬긴다. 그들이 지고 있는 십자가는 5중 6중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께 전적으로 헌신되어 예수님의 성육신 적인 삶, 곧 자기 부정과 자기희생의 본을 따르기 때문이다. 독일, 미국, 카나다, 영국, 인도, 몽골, 중국, 중남미 여러 나라,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경우 현지인 지도자들이 세워졌다. 또한 90여 개국에서 무수한 현지인 출신 성경선생들이 탄생했다.


  셋째, 파송 받은 선교지가 선교의 오지일지라도 뼈를 묻을 결단을 하고 헌신한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 남아공에 초기에 파송된 이(Lee) 선교사는 26년째 사역하고 있다. 물론 자비량하는 전문인 선교사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4,5년 만에 1년씩 하는 안식년을 가져본 일이 없다. 평소의 휴가는 현지에서 갖는 수양회나 제자양육에 사용한다. 그러므로 이 선교사는 몇 년 만에 1주 혹은 2주 정도의 휴가로 본국에 와서 건강검진을 받거나 재충전을 하고 돌아갔을 뿐이다. 물론 이런 선교사들을 돕기 위해 본국의 전인 사역자들이 수시로 선교지를 방문하여 영적 재충전을 돕는다. 우간다의 유 선교사는 한국에서 의대교수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버리고 우간다에서 19년째 사역하고 있다.


  1980년대 초 캐나다 개척 선교사 23명은 현지 봉제공장의 봉제공들로 취업하여 들어갔다. 인력개발원을 통해 봉제공 모집 정보를 얻은 후, 선교의 소명을 받고 기도하고 있던 회원 100여명이 지원을 했다. 그들 중에서 30명을 선발하여 재봉틀 20대를 사서 3개월간 봉제훈련을 시켰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학사들이고, 석사 자격증을 가진 자매도 있었다. 집중 봉제공 훈련을 받고 봉제공 자격증을 땄다. 어떤 분들은 닭의 목을 따는 도계공으로 지원했다. 아무도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쳤다고 했다. 사람이 시켜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선교명령을 순종하고자 이렇게 했다. 현지에 가서 낮에는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밤에는 영어를 공부했다. 캠퍼스에 가서 학생들을 전도했다. 후에 그들은 자립하면서 공부하여 직업을 바꾸어 주류 사회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역의 형태는 같다. 계속 전문인 자비량 선교를 섬기고 있다.  


  넷째, UBF 선교사들에 의해 전도를 받고 양육을 받은 현지인 리더들 중에서 선교의 소명을 받고 자기들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더 어려운 제 3국으로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로 자신을 헌신하는 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30명 정도가 일어났다. 이 역사를 보면서 세계 각 국에서 현지인 출신 선교사들이 일어나 전방개척 선교사로 파송되어 세계 복음화를 섬기는 환상을 보게 된다. 그 중 몇 사람의 예를 들겠다. 멕시코에서 UBF 전문인 선교사에 의해 복음을 영접하고 제자훈련을 받은 에프라인이 페루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역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선교사에 의해 복음을 영접하고 제자훈련을 받은 블라드미르는 터키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역하고 있다. 수단에서 한국인 선교사에 의해 복음을 영접하고 제자훈련을 받은 오요르 모세가 이집트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역하고 있다. 미국의 단 쿠퍼 한나 쿠퍼 가정은 미국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편안함을 버리고 아르헨티나에서 사역하고 있다. 미국의 쟌, 마리아 피스 가정은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선교사로 섬기고 있다. 인도에서 한국 선교사에 의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훈련을 받은 마태오 씽은 포르투갈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개척역사를 섬기고 있다.

 

  다섯째, 선교사 자녀들

 

  선교사 자녀들을 선교사 2세(MK)로 부르는 대신에 어릴 때부터 '2세 선교사'(second generation missionary)로 부르며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심는 교육을 한다. 부모들이 성경을 가르친다. 그들을 부모들의 사역에 동참하여 동역하게 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개척 선교사로 헌신하도록 돕는다. 이들을 위해 현지 뿐 아니라 본국에서도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도움으로서 2세들이 겪는 공통적 어려움인 정체성의 혼란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방황의 문제를 극복하고 훌륭한 사역자들로 배출되고 있다. 이들은 언어와 문화적 차이 문제가 없다. 그러므로 부모 세대보다 더 현지인 사역에 훌륭한 사역자들이 될 수 있다. 선교사 수가 많아지는 만큼 자녀들의 수도 많아지는데 현지에서 자연스럽게 현지 언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현지 문화에 적응된 선교사들이 배출되고 있는 것이다.


6. UBF 전문인 선교의 직업별 사례


가. 의료


  유(Yoo) 선교사는 의대 1학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자훈련을 받았다. 그는 의사요 대학교수의 안정된 직장과 편안한 삶을 버리고 1992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를 통해 아프리카 우간다로 파송되었다. 그는 외국인으로서 겪는 어려움, 에이즈와 말라리아 등 질병의 위험, 불안한 치안으로 인한 위험 등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2002년에 선교병원을 개원하게 되었다. 또한 캄팔라 시내의 두 고아원과 빈민촌 어린들을 위한 무료진료를 해 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희망인 대학생 선교와 제자양성에 힘을 썼다. 매주 마다 현지 대학생 제자들과 함께 예배공동체를 이루어 메시지를 전하고 제자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곳 선교병원은 본국에서 의사 간호사들이 정기적으로 단기 의료 선교팀을 만들어 이곳에 나아가 1-2주 동안 무의촌 의료봉사도 하고 복음도 전할 수 있도록 돕는 베이스 캠프 역할도 하고 있다.  


나. 유학생


  홍(Hong) 선교사는 1970년 연세대 경제학과 1학년 때 성경공부를 시작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자훈련을 받았다. 그는 예수님의 선교명령에 순종해서 25세인 1977년 미국에 유학생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는 볼링그린과 톨리도 대학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하면서 개척역사를 섬겼다. 현재 그가 섬기고 있고 톨레도 지부에는 80여명의 현지인 대학생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톨레도 대학 경영학과 교수로서 높은 학문적 성과를 이루어 종신교수요 박사과정 지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다. 파견근무


  인도의 이(Lee) 선교사는 한국의 대기업 파견 직원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많은 대학생들을 전도하여 결실을 맺었고, 제자로 세우게 되었다. 경건한 생활에 힘쓰면서 기도하고 믿음으로 섬기니 회사 일도 잘 하게 되어 실적이 좋은 주재원으로서 신임을 받았다. 세 번이나 체류를 연장할 수 있었다. 이제 임원으로 진급이 되어 본사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는 고민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본사에 돌아가면 장래가 보장되고 편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사역의 열매로 자라고 있는 현지 대학생들과 리더들이 마음에 걸렸다. 결국 그는 회사에 사직을 하고 현지에 남기로 결단했다. 그의 실천적 삶을 보고 현지인들이 감동을 받고 자신을 주님께 헌신하는 자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선교사는 지금은 공장을 차려 현지인들 수십 명을 고용한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한인회장도 했고, 한국을 빛낸 사람으로 뽑혀 대통령상도 받았다. 무엇보다 그의 제자들 중에서 선교사가 3명 나왔고, 현재는 인도에 네 개의 대학생 예배 공동체가 탄생되어 네 명의 현지인 리더들이 교수 목자로서 사역을 섬기고 있다. 이들 중에는 힌두에서 개종한 자들도 많이 있다. 이 선교사는 수 백 명의 현지인 리더들을 양육하며 뒤에서 섬기고 있다.


라. 해외주재 공관원


  신(Shin) 선교사는 대학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선교사명을 영접했다. 그리고 1991년에 대사관 행정보조 고용인으로, 아내는 외교관 가정의 가정부로 취업해 몽골에 복음을 전하고자 평신도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로 나아갔다. 당시 이곳에는 신약성경만 나와 있고, 구약성경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퇴근 후 대학에서 몽골어를 공부하여 언어를 익혔다. 그리고 현지 대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다른 동료선교사인 임(Lim) 선교사와 함께 몽골어로 구약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 후에는 이곳에서 사역하는 다른 단체의 선교사들과 함께 성경 번역팀을 만들어 공동으로 번역을 하였다. 지금은 200여 명의 몽골 대학생들이 세 팀의 예배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물론 몽골어로 성경을 공부하고 몽골어로 예배를 드린다. 이곳에 6명의 평신도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다. 현지인 출신 전임 사역자도 배출되었다. 현지인들 가운데 리더가 되어 자국의 대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100여명 된다. 이곳에서 회심한 대학생들이 유학생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에서 심도 있는 제자훈련을 받으며 한국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신기한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


마. 이 민


  이(Lee) 선교사는 선교소명을 갖고 1988년 가족과 함께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났다. 이를 위해 본국에서 안정된 직장을 정리한 것은 물론이다. 선교사로 파송된 후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학교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본국에서 정리해 가져온 물질로 생활하면서,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받았다. 동시에 현지 대학생들에게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1년 정도 지난 후에는 물질자립을 위하여 여러 가지 영업을 하였다. 옷 장사도 하고, 잡화 물건을 차로 싣고 다니며 팔기도 했다. 전자제품 가게를 열어서 운영하기도 했고, 그 후에 농장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현지 대학생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여 결신하게 되었고, 이들을 제자로 양육하고 있다.


바. 정부파견 (청년봉사단, KOICA, 평화봉사단)


  안(Ahn) 선교사의 경우 대학시절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선교사명을 영접했다. 선교사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던 중 1990년도에 한국해외청년봉사단 모집에 응모하여 영농기술자로 스리랑카에 파견되었다. 봉사단의 일은 한국의 민간외교차원에서, 한국인들이 무임금(생활비는 한국정부가 감당함)으로 개발도상국에 봉사하는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영농기술자로 열심히 봉사단 일을 하면서 현지 대학생을 접촉했다. 그는 실제적인 봉사를 통해 현지인들로부터 좋은 영접을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었고, 간접적인 선교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서 신뢰의 관계성을 맺은 사람들과 꾸준히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자로 살고자 결단하는 결실도 맺게 되었다.


사. 사 업


  김(Kim) 선교사는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가발공장을 운영하는데 200여명의 현지인을 고용한 큰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그도 처음에는 집에서 수공으로 가발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또한 멕시코의 이(Lee) 선교사는 양말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현지인 지원 200여명을 두고 있다. 그도 처음에는 조그만 가게로부터 사업을 시작했으나 사업 선교사로 크게 성공한 케이스이다. 그는 메니저들을 두고 사업을 하게 됨으로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현지 대학생 복음전파와 제자양성 역사를 섬기고 있다. 현재 100여명의 멕시고 제자들이 양성되어 예배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또한 사업을 통해 번 수익으로 멕시코에 큰 수양관을 지어 자체 수양회도 하고 다른 기관에 대여하여 봉사하고 있다.


아. 교 육


  이(Lee) 선교사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모스크바의 한인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현지에 도착한 그녀는 우선 한글을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복음도 전했다. 그리고 본래의 부르심인 대학생선교를 섬기기 위해 일과 후와 주말을 이용해 현지의 대학을 방문하고, 학생들을 만나 성경공부에 초대하며 전도하므로 열매를 맺고 있다.


자. 성악가


  정(Cheong) 선교사는 한양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후, 독일 유학생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공부하여 디플롬을 얻었다. 그 후 도르트문트 오페라단에 정식 단원으로 입단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서 체류문제와 물질자립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차. 실버선교사


  임(Lim) 선교사는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였는데 오래 전부터 선교의 소명을 갖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교장이 될 즈음에 사직을 하고 중앙아시아 키르기즈스탄 오쉬에 실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오직 믿음과 소명감만 가지고 나아갔는데 마침 그곳 대학에서 한국어학과가 개설되었고, 그는 한국어과 교수로 채용되었다. 그의 부부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러시아어를 공부하며 현지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는 사역을 섬김으로 비전이 넘치는 청년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상에서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들의 유형을 대략적으로 분류하고 실례들을 소개했다. 이상의 실례들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금세기에 들어서는 전문직종도 수백 종으로 늘어났다. 각 지역교회에는 상사 주재원으로, 외교관으로, 사업차 혹은 유학생으로 세계 각처에 나가 있는 크리스천들이 수만 명에 이를 것이며, 앞으로도 이런 사람들의 수는 증가할 것이다. 각 지역교회의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들에게 선교신앙과 선교비전을 심어주고 적절하게 훈련한다면, 이들은 모두 훌륭한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2/3세계는 유학과 이민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을 통한 선교의 기회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유학생 선교사의 경우 장점이 많다. 우선 현지 언어를 비교적 완벽하게 습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현지인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현지인 크리스천 지도자를 직접 양성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학업을 마친 후에는 현지에서 안정된 직장을 얻음으로써 장기체류하며 선교하는 이상적인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가 될 수 있다. 이민의 경우도 이상적인 전문인 자비량 선교의 길이다.


7. 전문인 선교의 활성화 방안


  첫째, 전 신자 선교사화의 비전가운데 선교적 교회로 전환.

 

  이를 위해서는 첫째로, 담임 목회자들의 의식이 선교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둘째로, 분명한 선교비전의 제시가 필요하다. 셋째로, 선교교육과 이를 전담할 선교지도자나 선교위원회의 구성이 필요하다. 넷째로, 단기선교를 장기선교로 헌신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다섯째로, 예산의 편성과 집행을 선교중심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둘째, 전문인 선교신학의 정립. 평신도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전문인 선교신학의 정립이 필요하다.


  셋째, 심도 있는 성경공부를 통한 선교헌신자 양성.

 

  자비량 하면서 선교하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하다. 특히 예수님 처럼 자기를 낮추고 비우고 희생하는 선교사로서의 자기희생정신, 우직한 믿음과 순종의 삶, 소명의식, 자기 절제와 깊은 기도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영성, 자립적으로 전도와 제자양육을 할 수 있는 성경선생으로서의 역량준비 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심도 있는 성경공부를 통한 영성훈련이 필요하다.


  넷째, 자비량 선교의 활성화 


  다섯째, 디아스포라들의 동력화 :

 

  디아스포라들은 고난과 시련 속에 다져진 인내심과 풀뿌리 근성이 있다. 전 세계 169개국 약 7백만의 한인 디아스포라들을 세계선교에 동력화 해야 한다. 이들은 두 가지 이상의 언어와 문화적 환경 속에 있는 그들이 세계선교에 대한 사명과 비전을 갖고서 헌신을 하고 복음을 전할 때, 수많은 다문화권의 젊은이들이 세계선교를 위하여 헌신을 하게 될 것이다.


  여섯째, 비거주 전문인 선교의 활성화 :

 

  이는 선교자의 베이스를 다른 곳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선교현장에 들어가서 선교를 하는 형태이다. 선교의 소명이 있으나 직장이나 다른 여러 형편으로 인하여 선교현장에 들어가 장기간 체류를 할 수 없는 선교사들이 있다. 이들은 가능할 때에 선교현장에 들어가서 가능한 기간 머물면서 선교활동을 하고, 다시 베이스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기회를 잡아서 선교지에 들어가 선교활동을 한다. 이와 같은 형태의 비거주 선교사들은 일정한 선교지를 정하여 정기적으로 들어가 선교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일곱째, 가정 교회를 통한 전문인 선교 :

 

  외국인의 선교활동이 금지된 지역에서는 선교사의 가정을 선교의 베이스요 교회로 만들어 가정 교회를 통하여 선교활동을 할 수 있다. 이 경우는 사업이나 전문직을 통하여 친구삼기를 한 후에 일대일 전도 및 성경공부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아주 효과적이다. 가정 교회를 통한 전도 및 제자양육은 인격적인 관계성 가운데서 현지인을 훌륭한 전도인이요 영적 리더로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공식적으로 선교를 인정하는 날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전문인 선교사들이 들어가 가정 교회를 이루고, 이 가정 교회를 통한 선교를 적극적으로 이루어야 한다.


  여덟째, 실버 전문인 선교사의 활성화 :

 

  퇴직자들이 일정한 훈련을 받고 퇴직금이나 연금을 갖고 개발도상국으로 나아갈 때 훌륭한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들이 될 수 있다. 이들은 평생 쌓은 인생과 신앙의 경륜이 있고, 자립할 능력이 있고, 자녀들을 양육해야 하는 부담이 없다. 이들은 교회를 개척할 수도 있고, 이미 개척된 교회에서 섬길 수도 있고, 현지 선교사들을 도울 수도 있다. 더구나 인생의 마지막 때를 타문화권 선교사로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이다.


  아홉째, 선교의 네트워킹 :

  불필요한 선교자원의 낭비를 막고 효과적인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선교사들간의 협력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목회자 선교사들은 평신도 선교사들을 존중하고, 평신도 선교사들도 목회자 선교사들을 존중해야 한다.


맺는 말


  한국교회가 시작된 지 125년 만에 2만 명이 넘는 선교사를 파송하여 세계 2대 선교사 파송국(교회)이 된 것은 성령님의 역사이며,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린다. 특히 전문인 선교사 파송이 20여년 만에 7천 명이 넘게 되었다는 것은 크게 감사할 일이다. 이들 중에는 좋은 선교의 모델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세계 교회들이 전문인 선교의 활성화를 통해 세계 복음화에 기여할 수 있는 사례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목회자 선교사 파송도 계속되어야 하지만, 이제는 평신도 전문인 자비량 선교에 더욱 힘써야 할 때이다. 그 이유는 앞서 전문인 선교의 필요성과 의의에서 언급했다. 목회자들은 평신도들을 훈련하여 세우고, 평신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소명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이제는 전문인 자비량 선교를 신학화 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서 21세기의 세계선교를 섬겨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의 1,000만 성도 중 10%의 평신도들을 전문인 선교사로 파송하게 된다면 한국교회는 100만 명의 선교사를 전 세계에 보낼 수 있을 것이며, 평신도들을 선교사화 할 때 이 역사는 능히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평신도 전문인들을 선교사로 동원하는 사역은 세계 어느 교회에서나 가능하다. 전문인 자비량 선교가 활성화 될 때 사도행전 시대와 같은 새로운 선교의 물결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로럴드 알렌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강력하고도 깊은 선교정신을 가진 남녀 평신도들을 선교사로 나가도록 독려하는 길 외에는 세계복음화를 성취할 다른 방법은 없다.” 요 1:14절 말씀으로 글을 맺는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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