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음악으로서의 복음성가 가사
엄원용 목사
1. 서론
90년대 들어 대중문화의 교회 침투는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진정과 신령으로 드려야 할 예배까지도 대중화 세속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에 사용하고 있는 많은 음악들이 하나님 중심의 음악이 아닌 인간을 향한 노래로 바꾸어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가, 복음송의 예배시 사용과 C.C.M의 확장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하여 교계에서는 서로의 주장을 달리한 채, 찬.반의 양극화를 보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의 사용을염려하는 사람들을 보수주의자들이라고 몰아붙이는가 하면, 옳고 그름을 분명히 알아야 할 목회자와 음악을 담당하는 사람들조차도 해답을 얻지 못하고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 많은 교회들이 젊은이들의 주장에 어쩔 수 없이 이끌려만 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 그러는 사이에 CCM은 물밀 듯이 들어와 청소년들과 중년층을 사로잡고 있어 CCM의 세상이 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기존의 찬송가까지 대중음악의 곡으로 흥겹고 부르기 좋게 편곡을 해서 부르고 있다. 이는 주로 복음 가수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여기에 방송매체들까지 합세하여 그 전파 속도를 빠르게 하고 있다.
이러한 때 찬송의 대중화를 그대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예배음악으로서의 바른 길인지를 분명히 알고 넘어가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예배음악의 대중화의 문제점은 주로 가사보다는 곡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가사에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므로 이 글에서는 주로 예배음악의 가사를 살펴봄으로서 교회음악의 바른 정립에 기여하고자 한다. 먼저 예배의 본질을 알아보고, 예배의 하나의 요소인 찬송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 가와, 복음송은 과연 예배 시에 부를 만한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예배의 본질
예배란 은혜의 계약에 기초를 두어 예수그리스도를 중보로 한 하나님과 사람, 곧 예배 자와의 교제(Communication), 혹은 만남(Meeting)라고 정의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특별한 계시로 현존하시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존재와 임재하심과 주신 축복에 대하여 믿음으로 응답하고 봉사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기독교 예배의 본질이다.
3. 예배의 목적
그럼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한 마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고 했고,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대상 16:29)라고 했다. 그리고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려 하노라'(롬 15:6)고 했다. 그러므로 지음을 받은 백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4. 예배의 대상
예배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예배에 있어서 알파요 오메가가 되시고 창조주로서 참 예배의 유일한 대상이 된다. 인간은 한 주일 동안의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와 임재하심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축복에 감사하며 응답하는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5. 예배의 요소
공적인 예배가 하나님과 인간과의 만남이므로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두 종류의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
1) 신적 (神的)인 요소
성경 봉독, 설교, 예전, 축도 등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간에 주시는 하향적인 것을 말한다.
2) 인간적(人間的) 요소
기도, 찬송, 헌금 등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믿음으로 응답하는 상향적인 것을 말한다. 예배에서 이 두 가지 요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예배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수동적으로 역사하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함으로써 능동적으로 보여드리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찬송은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예배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6. 예배의 자세
한 마디로 말해서 진정과 신령으로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 (요 4:24) 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3)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 영적 예배니라 (롬 12:1)라고 했다.
7. 예배 음악으로서의 찬송
찬송이 예배의 일환이라면 앞서 말한 것처럼 찬송의 대상도 하나님이어야 하고 자세 또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대상이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거나 진정과 신령한 것이 되지 못하여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는 찬송은 찬송이라 볼 수가 없다.
찬송은 그것이 하나님 찬양이든, 회중들의 고백이든, 다짐이든 모두가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찬송의 내용은 첫째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존귀와, 위엄과, 위대함과, 주권 등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속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죄와 사망을 이기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도우심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어디까지나 성서적이어야 하며, 곡으로 붙여져 불리워질 때, 모든 회중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개인적인 신앙고백이나 신앙생활의 이야기 또는 젊은이들이나 부를 수 있는 내용이나 곡은 모든 회중이 공감하여 부르기 어려우므로 찬송가로는 부적합하다. 가사나 곡은 인간적인 생각에서 지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에 의해 지어진 것이어야 한다. 찬송가는 인간이 썼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곡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찬송가는 시와 멜로디와 리듬과 화성 등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대로 만들어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곧 하나님의 음악인 것이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신앙과 행실이 일치되는 사람으로서 직분을 가졌거나 목사의 추천 (신앙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이 길 밖에 없으므로)을 받은 것을 찬송으로 사용해야 한다.
내용이나 곡은 밝고, 장중하고, 엄숙하고, 위엄 있고, 경건하고, 은혜스러워야 한다. 또, 탈세속적이어야 하고, 영적 감동에 의해 된 것으로 신앙적 체험에 의해 이루어진 간증과 고백이어야 하며, 신앙적 공감에 의해 되어진 이야기어야 한다.
그리고 예배가 진정과 신령으로 드려야 한다면 예배의 일환인 찬송도 당연히 영적 찬양이 되어야 한다. 영적 찬양이란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울려 퍼지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나 예수님 성령님의 용어가 들어있다고 해서 모두 찬송가는 아닌 것이다. 가사나 곡 자체가 참되고 거룩하지 못한 세상적인 음악은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노래는 찬송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도 받아주시지 않는 입술로만 중얼거리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의 최상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성삼위 일체되신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어야 한다.
2) 내용은 성서적이어야 한다.
3) 비개인적이어야 한다.
4) 회중이 공감하여 다같이 부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5)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 작사되고 작곡된 것이어야 한다.
6) 내용이나 곡은 밝고, 장중하고, 거룩하고, 경건하고,순수하고, 은혜스럽고, 탈세속적이어야 한 다.
7) 예배가 진정과 신령으로 드려야 한다면 예배의 일환인 찬송을 드리는 태도도 참되고 진실되어야 한다.
8) 경건치 못한 세상적인 음악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다.
8. 예배 음악으로서의 복음송
그러면 복음 송은 어떤 음악인가? 복음송이란 복음(Gospel)과 노래(Song)가 합쳐진 말이다. 복음송은 주로 복음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찬송가(Hymn)나 부흥가(Revial song)와도 구별된다. 복음송은 무디(Mood)와 생키(Sankey)가 부흥운동 중 1873년에 뉴캐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복음송이 찬송가와 다른 점은 가사보다 음악성에 강조를 둔다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비화성음을 사용한다든지 불규칙적인 강한 비트를 사용하거나 멜로디가 없는 불규칙적인 리듬을 사용하는데 그 특징이 있다.
1) 복음송과 CCM
CCM은 시대에 유행하는(contemporary) 음악 양식에 기독교적인(christan)메시지를 결합한 음악(music)을 뜻하는 말로 일반 대중음악 스타일 형식의 오락성이 강한 교회음악이라 말할 수 있다.
가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복음송과 CCM의 차이는 별로 없다. 복음송의 가사 내지 찬송가에도 대중 음악의 곡을 붙이면 CCM이 되는 것이다. 이를 굳이 구분한다면 복음성가가 매우 제한된 그리고 온건하고 절제된 대중음악 양식만을 채택하고 있는데 반해 CCM은 팝, 록, 랩 등 대중음악의 전 장르를 제한 없이 사용하도록 허용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좀 건전하고 은혜로운 찬양이 복음송이라면 감각적인 음악성에 의해 연주를 강조한 것이 CCM 이라고 말할 수 있다.
CCM은 1970년대 초 미국의 흑인영가와 가스펠을 주축으로 한 전통적인 복음성가와 차별화된 보다 대중적인 음악을 지칭하는 음악으로 시작되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중반 라이센스를 통해 들어온 미국의 CCM 음반들이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80년대 후반에는 CCM은 록 밴드인 스트라퍼(Stryper)와 샌디 페티(Sandi Patti)가 내한 공연을 가질 정도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가, 1990년대에 들어 본격적인 붐이 일어났다. 이 문화를 적극적으로 이끈 것은 기독교 방송(CBS)으로 독보적인 전문 CCM 프로그램과 콘서트 등을 통해 팬을 양산했다. 최근에는 CCM전문 잡지가 등장하였고, PC 통신을 통한 애호가 집단이 늘어가고 있으며, 국내의 젊은 가수들이 다양한 스타일의 CCM을 시도하고 있다.
이 CCM은 기존의 찬송가에만 매달렸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분위기를 가져다 주어 쉽게 받아들이고 영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하나님을 찬양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기존의 찬송가를 고집하는 이들을 보수주의자라고 싸잡아 매도하고 있다. 특히 일부 기성인 중에서도 새로운 시대에는 그 시대에 알맞은 새로운 찬송이 필요하다는 주장 아래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의견들이 찬.반으로 갈리어 있는데 그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글에서는 찬송과 복음송이라는 2분법에 의해 복음송과 CCM 이 두 가지를 굳이 구별하지 않고 넓은 의미의 복음송이라는 이름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찬성론>
(1) 교회는 다양한 문화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대에 맞는 문화를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CCM은 신세대 교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기독교 음악이다. 특히 오락적 대중음악에 빠져 있는 기독 청소년들에게 오락적인 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접할 수 있는 건전한 대용(代用) 음악으로서 가치가 있다.
(2)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을 거부감 없이 교회로 인도하는 데 적합한 음악이며 대중문화적 특성을 활용, 대다수의 비기독교인들이 부담 없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전도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
(3) 음악은 본래 가치 중립적인 것이다. 따라서 음악에 선한 메시지를 결합하면 선한 음악, 악한 메시지를 담으면 악한 음악이 된다. 영성은 평온함(serenity)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구약의 예배에는 매우 왕성하고 다양한 형태의 음악 사용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록 음악 등 비트가 강한 음악에도 기독교 메시지를 접목시켜 사용할 수 있다.
(4) 주로 반대 입장에 서 있는 교역자와 기성세대 교인들은 현시대의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와 경험, 안목이 극히 빈약한 사람들이거나 보수주의자들이다.
<반대론>
(1) 복음과 같은 거룩한 주제를 세속적이고 오락적인 양식으로 표현할 수 없다. CCM은 사탄이 교회를 타락시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해 사용하고 있는 전략 도구로 양의 탈을 쓴 늑대이다. CCM이 세속음악의 대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오락적 성향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깊이 없는 감상적, 피상적인 신앙 태도에 머무르거나 교회에서 말씀과 기도로 양육된 젊은이들이 CCM을 접합으로써 다시 세속적 오락 문화에 빠지게 되는 유혹의 미끼가 될 수 있어 아름다운 찬송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2) 성경 어디에도 음악을 전도의 도구로 사용한 예가 없다. 비기독교인들은 세속적 음악을 흉내낸 교회음악보다는 오히려 세상과 구별된 모습의 크리스천 음악에 매력을 느낀다.
(3) 음악에 있어서 형식과 내용은 분리할 수 없다. 즉 록, 헤비메탈 등은 가치 중립적인 음악이 아니라 이미 반항성, 성적인 방종 등 반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일체로 하는 악한 음악이다. 성경에서 여러 가지 악기에 의한 찬양이 언급되는 것은 악기 사용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음악의 모든 스타일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4) CCM은 교회가 아닌 기독교 음반 산업계와 아티스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영성보다는 이윤 추구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 CCM은 처음부터 상업적 목적에서 탄생한 문화이다. 또한 미국의 경우 CCM 가수들이 표리부동한 신앙과 문란한 사생활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와 같이 두 주장이 팽팽이 맞서고 있는 상태에서, 가사의 내용면이나 작곡면에서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 글< 7. 예배음악으로서의 찬송> 에서 언급한 8 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복음송의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4) 복음송의 문제점
복음성가에 대한 견해들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찬송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것은 다음에 제시된 몇 개의 가사에도잘 나타나 있다.
※다음에 나오는 가사들은 기독생활사에서 펴낸 '새 천년 새 소리 복음성가'에서 몇 개 뽑아본 것들이다.
○ 주님의 보혈 주님의 보혈 보혈의 잔을 마시네
이스라엘의 이스라엘의 거룩한 제자같이
-3. 주님의 보혈-
이스라엘의 거룩한 제자가 누구를 두고 한 말인지 알 수 없다.
○ 주 예수 사랑기쁨 내 맘속에 내 맘속에
정죄없네
해방됐네
찬양하리
기도하리
-4.주예수 사랑 기쁨-
앞뒤 문맥의 연결이 어색하다.
○ 깊은 밤 홀로 우는 그대여
그대 눈물 내가 아노라
- 23. 기도하는 그대여-
'내가' 친구를 말함인지인지 예수님인지 알 수 없다. 예수님이라면 인간에게 '너', 또 는 '너희들'이라고 해야지 그대라는 말은 옿지 않다.
○ 나의 허물 모든 죄악 십자가에 묻으시고
- 29. 나의 허물 모든 죄악-
죄악을 십자가에 묻는 다는 표현이 어색하다.
○ 주님이 주시는 파도 같은 사랑은
- 44.주님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파도 같은 사랑'에 비유한 것이 적절치 않다.
○ 나는 가고 싶소 주님 가신 길
슬프고 괴로워도 나는 가고 싶소
- 57. 나는 가고 싶소-
진정에서 우러나온 말인지 의심스럽다.
○ 세상만사 살피니 참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는 무엇하리오
일생일귀 북망산 불귀객되니
일배황토 가련코 가이없구나
추초중에 만월대 영웅의자취
석양천에 지난객 회고의눈물
-61. 세상만사 살피니-
용어가 너무 어렵고 부적절하다.
○ 황소를 드림보다 진정한 노래를
기쁘게 받아주시는 주님
-71. 내 입술로-
황소라는 용어가 노래 가사로는 적절치 못하다.
○ 헤이호 주의 자비하심과
헤이호 주의 은혜로
헤이호 나는 영원히 춤을 추리
- 108. 주의 자비가 내려와-
'헤이호'라는 감탄사가 회중들이 함께 부르기에는 적절치 않다.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 그 사랑 받고 있지요
-155.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복음송의 가사라고 보기 어렵다. 개인적인 생일 축하의 노래다.
○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떻합니까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떻합니까
-183. 예수님이 좋은걸 -
어린이들에게나 사용할 수 있는 가사이다.
○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구원받기는 늦지 않아요
셋 둘 구름 타고 다시 오실 날
날마다 점점 가까워 오죠
-185. 저 높은 우주에-
용어가 가사로서 부적절하다
○ 주 나의 사랑 나 주의 사랑
그 사랑은 내 기쁨
-186. 주 나의 사랑-
조사의 쓰임이 적절치 않다
○ 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192. 빛이 없어도 환하게-
'당신'이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다.
'나의 당신이여'라는 말도 어색한 표현이다. 마치 요즈음 문법 지식이 없는 청소년들이 쓴 어색한 노래가사 같다.
○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새 방언하고 뱀을 잡으며
독을 마셔도 해 받지 안으며
손을 얹으면 해 받지 않으리라
- 204. 가장 큰 기적-
오해받기 쉬운 내용임
○ 크신 주께 영광 돌리세
-233. 크신 주께 영광 돌리세-
'크신 주'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음
○ 나는요 이 땅에 있을 맘 없어요.
-271. 이 세상은 나그네길-
인생을 너무 부정적이고도 허무하게 보고 있다.
○ 주 거룩한 보좌로 내맘에 오사
주님만 나의 마음에 좌정하소서
-277. 주 거룩한 보좌로-
'좌정'이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음
○ 감사감사 예수 감사감사 예수 감사감사 예수 내맘에
은혜충만 은혜충만 은혜충만
말씀 말씀 말씀
성령 성령 성령
능력 능력 능력
믿음 믿음 믿음
소망 소망 소망
사랑 사랑 사랑
축복 축복 축복
영광 영과 영광
- 300. 감사 감사 예수-
용어의 반복과 많은 열거로 가벼운 느낌을 준다.
○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 302. 죄많은 이세상은-
비 신학적임
○ 정말일까 당신이 하신 일
당신 말씀 너무나 평범해
- 350. 정말일까-
주님이 하신 일이나 말씀이 평범하다는 말은 비신학적임
○ 주님여 이 손은 꼭잡고 가소서
-368. 주님여 이 손을-
'주님여'는 '주님이시어'가 맞다.
○ 아무래도 닫힌 문보다 열린 문이 더 좋아
삐끄덕 삐끄덕 빗장문 열어요
철컥 철컥 자물쇠를 열어요
- 384. 문을 열어요-
가사의 용어로 적절치 못하다.
※다음은 강남 금식기도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복음송에서 뽑아본 것이다.
○ 나 가진 것은 없으나 나 가진 지식 없으나
나에게는 건강이 있지 않으나 하늘의 보화 있으니
나 하늘의 음성 들었고 나 하나님의 사랑 받았고
나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네
-17. 나-
이 정도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심스럽다.
개인의 신앙고백이라고 볼 수 있다.
○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네
외로울 때 찾아와 마음에 평화를 주는
- 86. 예수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네-
예수님을 마치 인간의 친구처럼 격하시키고 있다.
※다음은 진흥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복음성가집에서 뽑은 것이다.
○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가사의 길이가 너무 짧다.
○ 승리는 내 것일세 승리는 내 것일세
예수님의 보혈로서 승리는 내 것일세
그래 맞아 나는 승리
예수님의 보혈로써 나는 빅토리
-승리는 내 것일세-
'그래 맞아', '빅토리' 등 적절한 용어가 못된다.
※다음은 신성교회 고등부 학생들이 부르는 복음성가 집에서 뽑은 것이다.
○ 은보다 더 귀하신 주
금보다 더 귀하신 주
금강석보다 더 아름다운
-7. 은보다 더 귀하신 주-
예수님에 대한 비유가 적절하지 못하다
○ 내일을 빼앗긴 저들에게
저 소망이 없는 텅빈 가슴에 새 날을 주소서
-11. 메마른 뼈들에 생기를-
저들을 불쌍히 여겨 구원해 달라는 내용인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들으면 불쾌하게 느껴질 가사이다.
○ 저 하늘나라 아기별님 예수님의 사랑을 알까요
-46. 예수님의 사랑 알까요-
내용이 유치하다
○ 주 우리 아버지 우리는 그분의 자녀
예수 우리 형제 손에 손잡고 하나가 되어 함께 걸어가리
- 176. 주 우리 아버지-
주 우리 아버지 하고 부른 후 그분의 자녀라고 한 것은 어법적으로 맞지 않는다.
또 예수를 우리 형제라고 한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 주의 심장 가지고 우리 이제 일어나 주 따르게 하소서
- 180. 세상 모든 민족이-
'주의 심장'이 무엇인지 알수 없다.
○ 내가 만약 나비라면 내 날개주신 주께 감사 또
내가 코끼리라면 내 코를 들어 주께 감사 또
내가 지렁이라면 난 땅을 기며 주께 감사
- 230. 내가 만약 나비라면-
적절한 용어가 되지 못한다.
이상의 가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찬송으로 혹은 단순히 복음송으로 부르기에는 적절치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여기에 제시된 가사만이 아니라 그 외 에도 많은 가사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문제점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성삼위 일체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어설픈 신앙을 고백한 신앙고백서 같은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다.
2) 내용이 성서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많다.
3) 내용이 위엄 있고, 경건하고, 은혜스럽고, 탈세속적이어야 하는데 아이들의 신앙 고백처럼 미숙하고 좀 유치하다.
4) 가사의 내용이 청소년들에게나 통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마치 유치한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세련되지 못하고 용어 자체도 저속하다.
5) 오락성이 강한 가사로 되어 있다. '랄랄라' '헤이호' 등 감탄사를 많이 사용했고 빠른 템포로 키타나 탬버린 등으로 신나게 연주하기에 알맞게 되어 있다.
6)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 작사되고 작곡된 것이어야 하는데. 감정적인 흥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진정한 영적 자극에 의해서 된 것인지 아니면 머리로 짜낸 글인지 알 수가 없는 가사들이 많다.
특히 복음송을 이용하여 세속화 상업화하려 하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된다. 비록 기독교인이 작사 작곡했다 하드라도 그것이 돈을 벌 목적으로 아티스트들에 의해 작사 작곡해서 테이프로 냈다면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면 다분이 오락성이 강하게 될 것이다. 주로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계층인 소비자들의 구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CCM 속에 팝음악이 가진 오락적 자극적 상업적 요소가 강화 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복음의 본질과 순수성이 왜곡 훼손될 수밖에 없는 것이 CCM에 대한 의심과 회의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7) 개인적인 체험이나 신앙고백이 많아 회중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가사들이 많다. 또 진짜 신의 신안고백인지도 의심스럽다.
8) 대부분의 작품이 작사 작곡자를 알 수 없다. 타 종교인이 고의적으로 작사 작곡해서 전파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재주가 좋아 돈벌 목적으로 얼마든지 복음송을 만들 수는 있는 것이다.
9) 문학성이 결여되어 있다. 가사가 단순하고 짧다. 짧은 시구의 반복으로 예술성이 없다. 내용의 깊이도 없다. 유치하다. 문학에 있어서의 시로 말하면 청소년들의 사랑의 넉두리를 쓴 그래서 언듯 보면 잘 쓴 시같지만 잘 분석해 보면 다소 유치해서 시라고 보 기에는 어려운 그런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다. 개인의 신앙 넉두리 같은 느낌을 준다.
10) 회중이 공감하여 다같이 부를 수 있는 것이 적다. 가사의 내용이나 곡이 빠른 템포로 되어 있어서 젊은이들에게나 부를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고 나이 많은 회중이 합창으로 부르기는 어렵다.
11) 예배가 진정과 신령으로 드려야 한다면 예배의 일환인 찬송을 드리는 태도도 도 참되고 진실되어야 한다. 곧 영적 찬양이 되어야 한다. 영적 찬양이란 성령께서 내 몸을 주관하시고 내 영이 내 혼과 몸을 주관하여 드리는 찬양을 말한다.) 그런데 TV에 나와서 복음송을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신들린 사람과 같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10대 20 대의 젊은이 악기를 시끄럽게 두드리며 마치 신접한 사람처럼 눈을 감고 몸을 흔들고 손을 내저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아우성 비슷하게 비명 비슷한 소리를 지르면서 부르고 있는 것을 볼 때 이것이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자기 도취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다. 울고불고 주여 주여 소리를 지른다고 훌륭한 신앙은 아닌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윗도 악기를 두드리며 춤추며 노래를 부르지 않았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윗의 노래와 춤은 이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표정을 지나치게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음의 중심이 되면 자연스럽게 표출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중을 보시지 겉모습을 보시지 않으신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 때문에 복음송은 일반적으로 찬송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복음송을 기독교의 대중음악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따라서 대중음악처럼 찬송가의 생명은 기나 복음송의 생명은 짧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찬송가는 같은 찬송을 반복해 불러도 권태롭지 않고 은혜로우나 복음송은 쉽게 싫증나고 새로운 것을 찾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복음송이 이와 같은 결점이 있는데도 이를 많은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심지어는 예배 시에까지 아무 생각도 없이 부른다는 데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많은 CCM의 가사에 헤비메탈. 록 등 심지어 대중가요의 곡을 붙여 사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하나님은 참되신 분인데 세속적인 음악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받아주실 리 없다. 록음악은 섹스와 마약과 범죄를 유발하는 음악이다. 록음악의 많은 내용들이 섹스와 폭력과, 마약, 살인 등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불규칙적인 리듬과감각에 호소하는 음색 비화성음이 강한 비트음을 즐겨 사용함으로써 사람을 폭력과 허탈감과 무기력함을 가져오게 하여 영혼과 몸을 타락시켜 나중에는 자멸을 가져오게 한다.
6. 복음송의 허용 범위
그러면 모든 복음송이 이런 문제점만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복음성가의 특징은 찬송가와는 달리 신앙간증을 강조하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마음의 결단을 자극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복음송가는 대중지향적이요, 초신자들에게 잘 호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것은 노래를 들음으로써 감정의 자극을 받아 복음적 결정을 내리도록 꾸며진 것이기 때문에 전도 집회나 부흥회에 적합하다.
또 일반적으로 복음송은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 중에서 몇몇 개의 복음송은 찬송가 집에 넣어도 손색이 없는 것들이 있다고 본다. 시실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송가 558장 중에도 과거에 복음송으로 불리어 졌던 것이 상당히 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찬송가 558장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다 부정적으로는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마치 대중가요 속에도 클라식만큼 예술적인 것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덜 저속한 것이 있듯이 복음송 가운데에도 부를 수 있는 온건한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발굴해서 좋은 곡만 부르도록 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본다.
7. 결론
시대가 바뀌어 졌다고 해서 예배의 본질이 바뀌어져서는 안 되듯이 시대를 핑계삼아 찬송의 본질을 흐리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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