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나쁜신앙)

[스크랩] 신천지... 신학적 비평 - Ⅲ.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2-3장의 실상교리 비판

수호천사1 2012. 5. 9. 21:27

Ⅲ.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2-3장의 실상교리 비판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다룰 주제는 한국 토종 이단의 자칭 교주들이 자신들을 신격화(神格化)하기 위하여 고안하여 낸 공통분모로서 ‘이긴자 교리’와 ‘새 이름 교리’이다. 그리고 ‘이만희의 삼위일체 교리’이다. 요한계시록2장, 3장의 실상 화보는 이만희가 자신이 이긴자이기 때문에, 이긴자에게 약속한 모든 것들을 가지고 역사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림02】에 나타나는 주인공 인물이 교주, 이만희이다. 특히 이만희는 자신이 이긴자로서 예수의 새 이름으로 온 자일 뿐만 아니라 참람하게도 삼위일체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패설(悖說)들에 대하여 하나씩 살펴보고 반론해 보자.

   
▲ 【그림02】 신천지 요한계시록 2-3장 실상 화보

A. ‘이긴자(이만희)’해석 문제

교주, 이만희는 자신을 이긴자라고 한다. 이만희는 누구와 언제 싸워 이겼다는 말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이긴자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그와 함께한 성도들이다(계17:14). 성경에 나타난 이긴자는 무엇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인가? 그것은 사단(계17:14, 계12:11)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며, 세상(요16:33, 골2:15, 요일5:4-5)을 이긴 것이며, 사망(고전15:54,, 57)을 이기고 부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교주, 이만희는 사탄과 싸워 이겼는가? 세상이 그의 말 한 마디에 순종하는가? 이만희는 죽었다가 부활했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이긴자는 예수님이시며 그와 함께한 성도들뿐이다. 이만희가 이긴자의 반열에 들어 올 수 있는 길은 회개하고 참성도가 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리고 고소당하여 법정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2년 6개월의 실제 형량이 주어졌던 바가 있으니 이는 ‘이긴자’가 아니라 ‘진자’이다.

B. ‘새 이름(이만희)’해석 문제

교주, 이만희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이긴자(교주, 이만희)에게 임하여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이긴자인 자신의 이름이 곧 예수님의 새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새 이름 교리는 한국 토종 이단들의 공통 분모이다. 교주 자신을 신격화(神格化) 시키는 교리이다.

“여기서 다른 보혜사라 함은 예수 자신이 보혜사인고로, 장차 재림 때에 나타날 보혜사를 다른 보혜사라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다른 보혜사(註: 교주, 이만희)는 과거처럼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오지 아니하고, 다만 주의 이름(명분)으로 다른 새 이름(자기의 실명)을 가지고 오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나의 새 이름이라 한 것이다”(이만희, <계시록의 진상>, 63).

교주, 이만희는 예수님의 새 이름을 예수님의 초림(初臨) 때를 빙자하여 자신과 연결시킨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출3:15)였으나, 신약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은 없고 예수의 이름만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와 아버지는 하나(요10:30)라고 하시고, 요한복음 14장 9절에는 자기를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자라고 하였으니,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새 이름이 예수였다”(이만희, <계시상>, 75).

‘예수님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라는 것이 ‘아버지의 새 이름이 예수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윗도 불레셋 사람들에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라고 했는데, 그렇다고 ‘다윗’이라는 이름이 여호와의 새 이름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구약에 나타난 ‘새 이름’의 배경은 이사야 62:2절이다. 그리고 신약에 나타난 ‘새 이름’의 배경은 계 2:17과 3:12, 그리고 19:12, 13, 16절이다. 이사야 62:2은 예루살렘을 새롭게 변화시켜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뿔라, 헵시바)으로 불리게 해주신다는 의미이다.

계2:17의 ‘흰 돌’에 새겨진 새 이름이란 당시에 고대 재판 시 사용되었던 흰돌(무죄 판결)과 축제 입장용 티켓인 흰돌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의인의 자격으로 영광스런 자리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고대 사회나 구약에서 어떤 사람, 특별히 하나님의 이름을 얻는 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능력에 함께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150-152.; Colin Brown, 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Vol. I, 이하 NIDNTT로 함(Grand Rapids, MI: Zondervan(1979), 248-249).

본문에 언급된 예수님의 새 이름은 사도 요한이 본문을 기록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그 후에 주어질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을 보면 예수님의 이름들이 여러 개가 등장한다. 그 중에 계시록9:16에 “만왕의 왕 만유의 주”라는 이름이 나온다. 빌립보서 2:9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C. 이만희의 삼위일체 해석 문제

교주, 이만희는 일반 교단의 목자들이 삼위일체에 대하여 “성부, 성자, 성령을 삼위일체라고 하나, 이 또한 삼위(三位)는 되나 일체(一體)는 안된다”라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삼위일체론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註: 이만희)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는 것과 같이 하리라고 약속하신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이다.” 본문 3:21절의 말씀은 위(位)가 셋(註: 성부, 성자, 이긴자)이요 육체(註: 이만희)는 하나이니 삼위일체라 할 수 있다”(이만희, <계시>, 82).

이와 같이 교주, 이만희는 삼위일체란 예수님께서 이긴자(육체)에게 임하사 하나되어 성전의 보좌에 앉는 것이며, 이것이 곧 예수님의 보좌에 앉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교주, 이만희는 하나님의 보좌에 자신 스스로 앉고 있으며, 경배의 대상으로 자리를 이동한 것이다. 본문에서 이긴자는 예수님과 성도들이다. 교주, 이만희에게만 주어진 특혜가 아니다. 성경에서의 삼위일체는 하나님은 하나이시며 삼위가 계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존재가 삼위일체라는 것이지 하나님과 인간 예수(필자 註: 이만희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아니함), 그리고 인간 이만희와의 합일(合一)을 의미하지 않는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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