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히브리어
지금 이스라엘인들이 사용하는 모국어는 히브리어이다. 현대 히브리어의 역사는 불과100년이다. 약2,000년 도안 나라 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생활하던 그들이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상실하지 않고 다시 부활했다는 것은 신비요 기적이다.
이것은 약2천년만에 그들의 땅을 소유하게 된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 이스라엘에는 ‘울판’이라 불리는 현대 히브리어 학원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몰려오고 있는 이주자들이 이러한 언어 학원을 통하여 현대 히브리어를 습득하게 되는데 울판 교사들의 교육술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하고도 훌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역사는 100년밖에 되지 않지만 약 3,000년전의 것과 거의 비슷한 체계를 갖고 있는 현대 히브리어의 생성과 발전 과정에 관하여 고찰해 보자.
현대 히브리어가 탄생되기까지
히브리어 백성들은 가나안은 정복할 때부터 바로크바 반란이 있었던 주후135년까지 히브리어를 구어로 사용했다. 바로 코크바 반란후 약18세기 동안 그들은 히브리어를 말하는 대신 여러 가지 다른 언어를 구사해 오다가 지금으로부터 약100년전에 다시 히브리어를 구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구어로서의 히브리어 사용이 처음으로 중단된 것은 바벨론 유수때 유대인들의 일부가 외국어를 사용하면서 부터였다.
바벨론에 있었던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사용하였고 이집트의 유대인들은 헬라시대의 헬라어를 사용했다. 심지어 이스라엘 땅에도 아람어나 헬라어를 사용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주로 갈릴리 지방이나 해안 평야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히브리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은 유대 지방과 그 남부 지역(해브론 부근)에 살았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하던 히브리어는 성서 히브리어와는 다른 형태인 ‘미쉬나 히브리어(Mishnaic Hebrew)’의 한 형태였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66-70 AD)과 바르 코크바 반란으로 유대 지방의 인구가 감소되면서 남은 자들이 해안 평야와 갈릴리 지역에서 거주하였는데 그때부터 히브리어의 사용자가 줄어들면서 점차 아람어를 채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후 70년부터 1948년(이스라엘의 독립)까지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기록하고 읽는 것을 결코 중단하지 않았다.
방대한 문학이 그 시기에 형성되었는데 이를테면 종교, 철학, 자연과학, 시, 희곡 여행, 역사 등에 관한 서적이 그것이다.
또한 유대인들 중에는 개인적인 편지나 문서 등을 히브리어로 기록하여 사용한 사람들이 항상 있었으며 심지어 일부는 그 당시에도 히브리어로 말을 하였다. 유대인들은 ‘비유대인고객’이 엿듣지 못하도록 시장에서 히브리어로 말을 했다. 특히 경건한 유대인들은 안식일 날은 오직 히브리어로만 말을 했다. 이로 보건대 일상생활의 대화의 매체로서 히브리어를 사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히브리어를 구어로 널리 사용하던 곳이 오직 한 곳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예루살렘이었다. 히브리어와 독일어의 혼합 형태인 ‘이디쉬(YIDDISH)’를 사용하는 유럽계 유대인(아쉬케나짐-ASHKENAZIM) 들과 아랍어나 스페인 어를 쓰는 스페인계 유대인(스파라딤-SPARADIA)들이 한 곳에 모였다. 그들은 중세 시대의 이들과 같이 서로 히브리어로 이야기했는데 어느 정도까지는 서로 이해를 하였다. 시장에서 히브리어로 이야기 할 때 ‘스페인계 유대인’들의 발음이 유럽계 유대인들에 의해 채택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모국어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1881년 러시아계 유대인인 ‘엘리에젤 밴 예후다(ELIEZER BEN-YEHUDA 1857-1922)’라는 사람이 이스라엘 땅으로 왔는데 그가 바로 ‘현대 히브리어의 아버지’ 라 물리어지는 사람이다. 그는 유대인이라면 마땅히 일상생활 용어로서 히브리어를 사용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한 주제로 1879년 ‘긴급한 문제(A Burning Question)’ 라는 제목의 히브리어 소논문을 비엔나의 계간지에 실었다. 그가 파리에 있을 때 그는 히브리어로 말하기를 시작했으며 이스라엘 땅에 도착했을 때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히브리어로 이야기했다. 그는 이스라엘에 도착 하자마다 두 가지 원칙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집에서 그의 가족과 히브리어로 이야기할 것과 히브리어는 학교에서의 유일한 교육 매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 자신도 예루살렘에 있는 학교에서 히브리어로 가르쳤으며 집에서는 히브리어로만 이야기했다. 그의 첫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는 히브리어가 그 아기의 모어가 되도록 조심스럽게 노력했다. 그리하여 “이타말 벤-아비”는 “첫 히브리어 아기” 가 된 것이다.
현대 히브리어의 발전
제2 성전의 파괴 이후 히브리어는 ‘사어’가 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으나 여러 가지 면에서 그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첫째, 히브리어가 일상적인 구어로 사용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디아스포라 기간동안 문학 활동을 통해서 계속 사용이 되었는데 그 기간에 출판된 책만 해도 수만권이나 된다.
둘째, 오직 구어에서만 언어의 발전과 성장이 있을 수 있는데 디아스포라 기간동안 히브리어가 계속 발전을 거듭한 것은 구어로 사용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어휘력의 형성, 새로운 단어의 출현, 각 시대를 대변하는 단어들의 등장 등은 히브리어가 결코 사어가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에 바벨론 언어로 쓰여진 ‘텔-아마르나 편지’(주전 14세기 중엽)에 기록된 단어들 중 오늘날에도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15개이상 이나 된다. 이것들은 초기 히브리어 단어들이다. 성경에는 약 8,000개의 단어들이 있는데 물론 이것이 성서 시대에 히브리어를 사용하던 자들이 쓰던 어휘의 총 수는 아니다. 그 당시 어휘는 적어도 30,000개는 되었을 것이지만 성경은 백과사전이 아니며 성서 기자들이 그 모든 어휘를 다 사용해야 했을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미쉬나 히브리어(미쉬나, 토셉트, 탈무드, 미드라쉬등의 언어)’의 어휘력은 보다 방대하다. 그 이유는 주제들이 보다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성서 히브리어는 그 어휘력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히브리어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 히브리어학원(울판)에서 나열하고 있는 가장 필수적인 히브리어 단어 1,000개 중 800개가 성서 히브리어 단어이다.
신문 분석가에 의하면 신문에서 사용되는 어휘의 60-70%가 성경에서 발견된다고 하며 20%만이 미쉬나 문학에서 발견되며 중세, 혹은 현대 히브리어 어휘는 소수만이 발견될 뿐이라고 한다. 이처럼 성서 히브리어가 현대 히브리어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며 따라서 현대 히브리어를 통하여 성서 히브리어로 접근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용이한 일인 것이다.
오늘날 사용하는 수십만 개의 단어 중 수천개의 단어는 아람어 탈무드에서 빌어 온 것이다. 아람어는 발음, 문법, 및 어휘 등에서 히브리어와 차이가 있는 언어이지만 ‘바벨론 탈무드’ 및 ‘아람 신비주의’등을 연구하는 유대 학자들에 의해서 이미 중세 시대에 많은 단어들이 아람어에서 차용되어 사용되었다. 현대 히브리어를 쓰고 있는 이 시대에 있어서도 다른 언어와 마찬가지로 히브리어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기술적인 어휘의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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