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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믿음의 은사

수호천사1 2012. 3. 10. 21:51

이 은사는 어떤 사람이 어떤 특정한 상황이나 필요에 처했을 때 그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초자연적인 확신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그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말씀이나 역사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신다는 이성을 초월하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David Pytches).
믿음의 은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어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역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특별한 확신으로 분별하는 특별한 능력이다(C. Peter Wagner).
믿음의 은사는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이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하실 것이며 또한 실제로 성취하실 때까지 신뢰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은사는, 비록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이 하실 수 있고 또 하실 것이라는 비전에 대한 단순한 믿음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께 대한 기도 즉 믿음의 기도를 통해 드러난다(Bobby Clinton)

1.믿음의 여러 가지 종류

성경이 말하는 ‘믿는다’는 무슨 뜻인가. 비록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문맥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헬라어 피스튜오(πιστεύω, 동사), 피스토스(πιστός, 형용사). 피스티스(πίστις, 명사)인 믿음, 믿는, 믿는다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에 대해 확신을 가지다’ ‘. . .을 신뢰하다’라는 뜻이다.

1)지식적인 동의로서의 믿음
어떤 사실이 진실임을 믿지만 그것에 대한 신뢰나 의지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귀신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 그 자체는 믿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을 구세주로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지는 않는다(약 2:19-20).

2)구원을 얻는 믿음(saving faith)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를 알뿐만 아니라 그분을 나의 개인적인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신뢰하는 믿음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믿음을 가져야 구원을 받는다(요 20:31, 히 10:39, 마 24:13). 이 믿음은 정적인 것이 아니고 동적인 것이며 한 순간 가졌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야 한다. 중간에 믿음을 저버리면 파선한 믿음이 되어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딤전 1:19-20).

3)신자가 가지는 일반적인 믿음
구원 받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일반적인 믿음을 말한다.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진 사람 중에서도 신앙의 성숙 여부에 따라 강한 믿음과 연약한 믿음이 있다(롬 14장).
연약한 믿음을 가진 자는 의심이 많고 강한 믿음을 가진 자는 그렇지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기 쉬우므로 늘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 이 믿음은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자라가야 하고 성숙되어야 한다(살후 1:3).

4)열매로서의 믿음(갈 5:22-23).
한글 성경에는 충성으로 번역되었지만 원어는 pistis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 단어는 믿음으로 번역되었지만 때로는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태도를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문맥으로 보아 이웃에 대한 신실성을 말한다고도 할 수 있다.

5)은사로서의 믿음
은사로서의 믿음은 신자라고 해서 모두 다 가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상황이나 필요에 처했을 때 초자연적인 담대한 확신으로 상황이나 필요를 보지 않고 주님이 확실하게 주장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신뢰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그 예를 찾아보자.

a)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붙드는 믿음
120년 동안 방주를 지은 노아(히 11:7).
25년 만에 약속의 아들을 얻은 아브라함.

b)초자연적인 보호에 대한 믿음
사자굴 속에서 살아남은 다니엘(단 6:16-17, 19-23).
까마귀를 통해 음식을 공급받은 엘리야(왕상 17:2-6).
엘리사의 말을 듣고 기름 담을 그릇을 많이 준비한 선지자 생도의 아내(왕하 4:3, 4).

c)핍박과 고통을 이겨내는 믿음(히 11:36-40)

d)신앙적으로 빗나간 교인들을 담대하게 꾸짖는 믿음
고린도 교인들의 무절제와 부도덕을 담대하게 꾸짖은 바울(고전 4;4, 5).

e)병 낫고 귀신을 쫓아내는 믿음
병이 나은 중풍환자(마 9:2).
혈루병이 나은 여인(마 9:20-22)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을 고친 여인(마 15:22-28)
하인의 중풍병을 낫게 한 백부장(마 8:5-10)

교회사를 통하여 살펴보면,

1)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드는 믿음.
현재 괄목할만한 사역의 열매를 맺은 사람들 중에서는 초창기에는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본인도 회의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 비전이라는 확신 아래 상황과 사람에게 구해 받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다.
피터 와그너 교수는 믿음의 은사야 말로 지도력의 은사와 함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꼭 필요한 은사라고 강조한다. 이런 믿음을 가진 지도자들은 인간적인 능력이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신 비전을 갖고 목적지향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확실하다면, 비록 환경이나 상황은 정반대일지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사를 보더라도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해낸 사람들은 비전의 사람이자 믿음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홀로 로마교황청을 대적한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 ‘내게 전 스코틀란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 존 낙스 등은 진정 믿음의 은사를 가진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의 은사는 반드시 이름난 주의 사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름도 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든 사람들도 있다. 오늘날 미국에 부흥이 오기를 바라면서 수십 년 동안 이름도 없이 기도한 평신도 중보기도 사역자들이 많다고 한다.

2)초자연적인 보호에 대한 믿음
하나님은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 특별한 믿음을 주시기 때문에 삶에 필요한 물질을 위해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이런 사람들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물질을 구하면 하나님이 그 길을 막으시고 초자연적으로 공급해 주신다.

3)핍박과 고통을 이겨내는 믿음
순교자들,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나라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장기간 투옥되고 핍박받으면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불신자 배우자를 둔 신자들에게도 어쩌면 믿음의 은사가 필요할 것이다.

4)병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믿음
이것은 믿음의 은사 다음에 나오는 신유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진 은사이기도 하다.
이런 은사군을 구비한 사람들은,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한 것처럼, 집회 중 “어떤 사람의 ____병이 나았습니다”라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선포한다. 그러면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많은 경우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케네스 해긴 목사는 소년 때에 불치의 병에 걸려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을 본 이후부터 이 말씀이 계속 생각났다. 결국 그는 말씀을 통해 믿음을 가져서 병이 완치되었고, 이후 이 말씀을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병이 낫고 문제가 해결 받는 믿음 운동을 주도하고 있으며 80세가 넘은 지금까지 장수하면서 사역에 전념하고 있다.

2.말씀과 성령

그렇다고 병든 모든 사람이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간다고 해서 병이 나을까?
우리는 여기서 중대한 사실을 발견해야 한다. 일단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그러면 해긴 목사는 그 말씀을 믿고 의지한 결과 병이 나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치유되지 않는가? (물론 일부 나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해긴 목사가 나은 것은 그 말씀이 성령의 감동에 의해 개별적, 구체적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아무리 붙잡고 믿어도 낫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 그 말씀이 성령의 감동으로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성령의 능력에 의해 그 말씀이 해긴 목사에게는 개별화, 구체화되었지만 치유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그렇게 역사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지 뮐러는 고아를 돌보라는 야고보서 1:27의 말씀에 감동되어 평생 고아를 돌보는 사역에 종사했다. 조지 뮐러 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구절을 읽었을텐대 왜 굳이 그 사람만 고아 사역에 종사했을까?
물론 감동이 와도 순종하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그 구절을 읽을 때 아, 고아를 돌보아야 되겠구나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것을 평생 사역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또한 조지 뮐러는 왜 과부는 놓아두고 고아에만 관심을(이) 가졌을까? 같은 구절에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고”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말이다. 이것은 ‘고아’라는 말씀이 조지 뮐러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개혁, 보수 신학에서는 정확 무오한 성경 말씀을 기록한 성령의 사역을 성령의 감동(inspiration)(딤후 3:16; 벧후 1:21)이라 하고, 기록된 말씀을 깨닫게 해주는 성령의 사역을 성령의 비침 또는 조명(illumination)(고전 2:10, 14)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 말씀이 성령의 감동(전문적인 의미)으로 기록되었다고 해서 말씀 그 자체가 우리의 마음에 항상 감동―이하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한다―을 주는 것은 아니다. 성령은 때에 따라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말씀을 일깨워주고 깨닫게 해주신다.
또한 감동을 받고 깨달은 말씀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강하게 와 닿는 말씀이 있다.
예를 들어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삼천 명이나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다(행 2:4, 41). 그러나 논리적으로 한 바울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사람은 고작 몇 명에 지나지 않는다(행 17:22-34).

이것은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증명이 된다. 어떤 사람의 설교를 들으면 이미 알던 내용도 새삼 새로워지고 은혜가 되고 믿음이 팍팍 생기는 것 같은데 또 어떤 사람의 설교를 들으면 도대체 감동이 오지 않고 냉랭할 때가 있다. 설교 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도 어떤 말씀이 갑자기 감동을 불러일으켜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첫째 설교자의 경우, 그 사람이 말씀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 많이 하고, 바른 삶을 살면서 성령 충만을 받아서 설교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바른 성경 해석과 명쾌한 논리 위에 성령의 불이 타오를 때 능력 있는 설교, 감동 주는 설교가 될 수 있다. 로이드 존스는 이것을 ‘불타는 논리’(logic in fire)라고 불렀다. 조지 휫필드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설교가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말씀을 묵상할 때 특별히 감동을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이 기록된 말씀을 통해 그때, 그 장소에서, 그 사람 개인에게 필요한 영의 양식을 제공하시는 것이다. 감동된 그 말씀을 통해 때로는 위로하시고, 때로는 권면하시고, 때로는 책망하시고, 때로는 소망을 주시고, 때로는 능력을 주시고, 때로는 앞 길을 인도해 주신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설교, 성령의 감동으로 마음에 와닿는 말씀은 당사자에게 믿음을 불러일으킨다(롬 10:17).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믿음을 불러일으키고 은혜를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말씀의 주인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들어쓰실 때에만 그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이 되어(히 4:12), 듣는 자에게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3.임하는 방법

1)이런 믿음은 주어진 상황에만 적용된다
어떤 특정한 상황, 필요, 위기를 위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중병이 나았다고 해서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생겼을 때 동일한 믿음이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상황에는 항상 새로운 믿음이 필요하다.

2)갑작스럽게 임한다
어떤 일에 대해 의심하던 중 기도 중에 갑자기 큰 확신이 임하는 경우가 있다. 주로 불쑥 들어오는 생각, 지식의 말씀과 같이 어떤 단어나 문장, 세미한 음성이나 내적 감동 또는 느낌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3)오랜 세월에 걸쳐 주시기도 한다
또한 현재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오랜 세월을 두고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행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하나님이 주신 큰 비전이나 사역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러한 경우 주변의 사람들은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를 어리석다고 비난하기도 하며 잘못 믿고 있다고 설득시키려 하기도 한다. 욥의 친구들이 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판단으로 단정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그러한 판단에도 굴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는 당사자에게 끊임없는 갈등을 만들어낸다.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믿음의 은사와 성령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것이며,
둘째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며,
셋째 겸손해야 한다.
믿음의 은사를 개발하기를 원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믿음을 보여야 한다. 작은 일에 충성할 때 더 큰 것을 주신다(마 25:21).
또한 문제가 금방 해결 받는 믿음만이 아니라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믿음도 필요하다. 믿음의 은사가 역사할 때 성숙한 신자라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과 순종하는 마음이 생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므로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마음이 생긴다.

http://cafe.Godpeople.com/healinghouse/?B20-1152

장봉운목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 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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