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自” 50問 (중국 기독교 삼자애국운동 50문)
중국기독교 농촌교회공작위원회에서 출판한 이 책자는 중국정부의 공인된 교회인 삼자를 원칙으로 하는 교회에 대한 50가지의 의문점들을 문답형식으로 엮은 책입니다. 본서는 중국교회가 표방하고 있는 삼자애국운동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는 일종의 홍보용 책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중국교회와 중국선교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필히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되어 번역을 하였습니다. -번역자 주
편자(編者)의 말
지난 번 농촌교회사역위원회에서 출판한 《사역자훈련시리즈 (義工培訓系列小叢書)》 5권이 성황리에 판매되어 우리는 이를 계속적으로 재판(再版)하게 되었다. 오늘날 중국교회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하여 이번 위원회는 일년에 두 차례 간행되는 《시냇물가》의 출판 사역을 개선하는 것 외에, 오늘의 기층교회(基層敎會)의 건설과 수많은 의공(義工)과 평신도의 성장에 그 필요를 만족시키고 부응하고자 다시 5권의 기층교회의 읽을거리를 출판하고자 계획하고 있다.
본서 《三自 50問》은 무엇이 삼자이며 중국교회가 왜 삼자를 실행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 삼자운동의 역사와 삼자운동의 정치, 신학적 의의를 설명하며, 삼자에 대한 성경과 신앙의 근거에 대해, 그리고 지금의 중국교회가 “삼자(三自)”에서 “삼호(三好)”로 나아가는 구체적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과 해답을 하려고 한다. 우리는 본서의 문답을 통하여 진리를 추구하고 배우기를 원하는 선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의문들이 해결되어 중국교회가 삼자원칙을 더욱 훌륭하게 준행하고, 한층 더 상호존중하여 하나가 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것과 애국애교(愛國愛敎)하는데 있어서 힘차게 발전하고 전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해외의 어떤 적대세력은 오랜 동안 기층교회 신도들 가운데 분열을 조장하고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말을 퍼뜨리며, 특별히 삼자 운동에 대해 모독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심지어는 신앙의 언어를 사용하여 비방하고 있다.이 점에 있어서는 비록 짧은 기간 동안은 미혹작용이 있겠지만 오늘 삼자 운동은 이미 날이 갈수록 사람들에게 이해되어지고 지지를 얻고 있다. 80년대 이래, 중국 기독교인들은 신앙, 성경, 신학 등 방면에서 이 운동에 대해 재차 긍정하고 있다. 올해 각지에서는 삼자애국운동 50주년에 대해 대대적인 경축행사를 거행하고자 한다. 이 모든 것은 “삼자운동”이 시대의 산물이며, 중국교회 역사발전의 필연이며, 하늘의 뜻을 따르고 백성의 마음에 합한 하나의 군중운동이며, 특별히 중국이라는 나라와 교회라는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신 결과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삼자애국운동의 합리성, 정의성 및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으며, 삼자애국운동이 가져온 위대한 업적을 부정할 수 없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주님 안에 있는 동역자들이 더욱 더 전파하며, 삶과 간증을 통하여중국교회를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운영하는 정신을 더욱 진작시키며, 또 기율을 따르고 법을 지키며, 관리를 강화함으로써 외부세력의 침투를 더욱 잘 막아야 한다는 것을 진지하게 배우기를 희망한다. 동시에 수많은 중국 기독교인들, 특별히 목회자들과 많은 의공들이 성경의 진리를 깨닫고 시대적인 메시지를 널리 전하며, 신학사상의 건설을 중시하는 동시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삼자애국운동의 성과를 심화함으로써 중국교회가 일을 더욱 잘 감당하게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진정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게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기를 희망한다.
편자 2000년 6월 14일
전언(前言)
해외의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삼자”는 공산당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연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역사조차도 모르는 사람이다. 중국에 공산당이 생기기 전인 1850년 영국의 헨리?판(亨利?樊)이 “자치(自治)”, “자양(自養)”, “자전(自傳)”, 이 세 단어를 하나로 묶어서 “삼자”라고 하였는데 이 “삼자”는 바로 전도의 목적으로 생긴 용어이다. 그는 선교사들에게 바울을 본받아서 장기간 머물 생각을 하지 말고 가능한 빨리 남아도는 사람, 불필요한 사람이 되어 속히 그곳을 떠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16세기 영국 기독교는 로마교황의 통제를 벗어나 자신의 독립적인 성공회를 세웠다. 캔터베리 대주교 룬시(倫西)의 견해에 따르면 “그것 또한 하나의 삼자운동인 것이다.” 성경을 통해서 보든 역사를 통해서 보든, 지난 2천년 동안,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진 곳마다 “삼자”의 문제도 또한 전해졌다(띵주교가 삼자성립 30주년 감사예배 시 전한 설교본문 중에서 인용).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일찍이 1906년 상해에서 위꿔쩡(兪國楨) 목사가 자립장로회(自立長老會)를 설립하고 중국 기독교는 마땅히 외국 선교사의 간섭이 없이 중국 기독교인이 관리해야 한다고 제창했다. 해방 이후, 우야오쫑(吳耀宗) 선생을 대표로 하는 우리나라 기독교 선배들은 성경과 우리나라 교회의 현실에 기초하여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을 용감하게 발기했다. 이 운동은 2000년 9월 23일에 이르러 만 50년이 되었다. 삼자애국운동은 오늘 이 시대에 중국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사회주의 신중국(新中國)에서 중국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근본적인 길이다. 삼자애국운동이 없었다면 오늘의 활기 찬 중국교회 또한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기독교인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삼자애국운동의 경위에 대해 그다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초신자나 많은 농촌교회의 형제자매들은“삼자”에 대한 지식이 극히 적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중국기독교 양회가 제기한 삼자원칙에 입각하여 교회를 든든히 세우자는 호소에 부응할 수 있는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삼자”에 대해 전체적이고 체계적인 이해가 결여되어 아주 쉽게 다른 생각을 품은 사람의 포섭 대상이 되어 삼자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된다. 이를 감안하여, 본인은 줄곧 삼자애국운동에 관한 문답의 소책자를 편찬하여 초신자나 수많은 농촌교회의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삼자애국운동의 합리성과 정의성, 그리고 필요성을 깨닫게 하고 삼자원칙에 따라 우리나라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자 하는 거룩한 사역에 힘이 되고자 하였다. 또한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 50주년을 맞아 하나의 작은 선물을 바치고자 한다!
본인은 《三自 50問》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중국기독교 농촌교회사역위원회 주임과 금릉 협화신학원 교수인 짜오즈은(趙誌恩) 목사님의 큰 지지와 격려를 받았다. 강소성 성경전문학교 교장이신 콩샹진(孔祥錦) 목사님과 절강성 기독교삼자애국회 비서장 니꽝따오(倪光道) 목사님은 자료를 제공해 주셨다. 지면을 빌어 감사를 드린다. 본인은 재능과 학식이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다. 만일 본 소책자에 틀린 곳이 있다면 주 안에서 목회자가 되고 동역자가 되시는 여러분의 아낌없는 가르침을 정중히 바란다.
감사합니다! 리빠오러(李保樂) 2000년 3월
1.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삼자”란 무엇인가?
답: “삼자”란 중국 기독교인들이 제창한 “자치(自治), 자양(自養), 자전(自傳)”의 약칭이다. “삼자”란 중국 기독교인의 애국운동이다. “삼자”란 또한 중국 기독교가 바람직한 교회를 건설코자 하는 원칙이다.
2. “삼자”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답: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삼자”의 목적은 바로 중국교회가 외국선교회의 모든 통제와 영향에서 반드시 벗어나서 중국성도 스스로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교회를 운영하고자 하는 소망을 실현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로 우리나라 기독교인 스스로가 중국교회를 다스리는 자치(自治), 우리나라 기독교인이 스스로 헌금을 하여 중국교회의 필요를 유지하는 자양(自養), 우리나라 교회가 목회자를 배양하여 전체적인 성경 진리를 전하는 자전(自傳)을 말한다.
3. 왜 우리나라 기독교는 “삼자”를 실행하는가?
답: 기독교는 천주교와 동방정교, 그리고 개신교를 포함한다. 우리나라가 “삼자”를 실행하는 것은 개신교를 가리키는데, 습관상 기독교라고 부른다. 개신교가 1807년 우리나라에 전해진 후 중국에 온 영국, 미국 등의 선교사들은 중국복음화를 위하여 크나큰 업적을 이룩했다. 그러나 일부 “선교사”들은 우리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였고 선교사라는 신분도 단지 겉옷에 불과했다. 이런 사람들은 본국의 정치, 군사, 경제 등 방면의 이익을 위하여 기독교를 이용하여 화평의 복음을 전하는 것과는 전혀 상반된 일을 적지 않게 자행했다. 중국 인민들은 마음속으로 이러한 선교사를 미워한 나머지 기독교를 양교(洋敎)로 본다. 이런 까닭에 “한 명의 기독교인이 늘어나면 한 명의 중국인이 줄어든다. 는 말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중국 기독교인의 머리에 근 반세기 동안 씌어진 서양 모자를 가능한 한 빨리 벗겨버리려면 반드시 우리나라 기독교는 “삼자”를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4. “삼자”와 애국은 무슨 필연적 관계가 있는가?
답: “삼자” 라는 용어자체에 강렬한 반제애국(反帝愛國)의 색채가 들어있다. 애국주의는 “삼자”의 사상적인 기초이며, “삼자”를 실행하는 것은 중국 기독교인들의 반제애국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러므로 양자는 지극히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5. 기독교의 삼자애국을 언급할 때 반제라는 내용을 뗄 수 없는 이유?
답: 이는 역사가 낳은 필연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19세기 초부터 개신교는 식민주의 열강의 확장을 따라 중국에 들어왔다. 아편전쟁으로부터 시작해서 각 식민주의 국가들은 무장 침략을 구실로 삼아 강압적으로 중국정부에 일련의 불평등조약을 서명하도록 했다. 당시, 선교회의 통제를 받던 교회들 역시 이러한 불평등조약을 통하여 많은 특권을 취득했다. 그리하여 교회는 “나라 가운데의 나라(國中之國)”로, 교인들은 “특수국민(特殊國民)”으로 변하였다. 마침내 기독교는 “양교(洋敎)”로, 외국선교사는 “양귀신(洋鬼子)”으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의 교회와 중국 백성들 사이에는 아주 깊은 골이 생기게 되었다.
이뿐 아니라 소수의 외국 “선교사”들은 제국주의의 꾐을 받아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 그리고 문화에 대한 식민주의 침략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아편을 팔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침략군에 참가하여 우리나라를 공격하였으며, 어떤 이들은 불평등조약을 초안하고 서명에 참가했으며, 어떤 이들은 제국주의 정부에 정책들을 제공하고, 어떤 이들은 직접적으로 중국의 반동파를 지지하여 중국의 혁명에 반대하고 공개적으로 중국 백성들과 적이 되었으니 이는 중국 백성들의 의분을 격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교회를 이용하여 중국을 침략하려는 식민주의에 반대하며, 중국교회에 대한 외국 선교회의 모든 통제와 영향(정치적, 경제적, 조직적, 그리고 의식형태(意識形態) 등을 포함한다)에서 벗어나고자 함은 중국 기독교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할 공통된 인식이다.
“삼자”는 애국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진 것으로서, 애국하려면 반드시 제국주의를 반대해야 한다. 이는 역사가 중국 기독교인들에게 부여한 책임이다.
6. 우리나라 교회의 “삼자” 주장은 언제부터 제기되었나?
답: 비록 중국 기독교가 시작하면서부터 식민주의와 아주 복잡한 관계로 얽혀지고 식민주의의 침략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다수의 중국교인들은 광대한 백성들과 똑같은 운명에 처해졌으며, 똑같이 압박과 고통을 당했다. 중화민족 몇 천년 동안 내려온 중화민족의 애국전통과 근 백년의 반제애국정신은 중국기독교인들의 몸에도 똑같이 반영되었다. 일찍이 1872년 광동의 천멍난(陳夢南)은 “월동조경선도회(?東肇慶宣道會)”를 설립하고 중국교인들은 마땅히 스스로 교회를 세우고, 전도를 해서 사람들에게 “양교”라고 불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화단(義和團) 운동 후, 상해 장로회 위꿔쩐(兪國禎) 목사는 교를 지키기 위해 불평등조약에 서명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제기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모든 교안(敎案)의 화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1906년 “중국예수교자립회(中國耶蘇敎自立會)”가 세워져 교회의 “자립, 자양, 자전”을 제창하고, 외국선교회의 통제를 받지 않고 오히려 애교와 애국의 상호 결합을 주장했다. 이와 동시에 상해의 어떤 교인들은 “중국기독도회”를 발기하고 자립을 창도했으며, 각지 교회에 홍보했다.
신해혁명 이후, 1912년 산동의 애국교인들은 선교회 소속 선교사의 압력에도 아랑곳없이 종파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고 “산동중화기독교자립회(山東中華基督敎自立會)”를 설립했다. 후에 그들은 북경과 천진의 자립교회와 연락하여 “화북중화기독교연회(華北中華基督敎聯會)”를 조직하고 공동으로 자립운동을 추진하였다. 위대한 “5?4”운동이 일어나고 확산되면서 기독교인의 애국적 각오는 대대적으로 고취되었으니 중국교회 역사상에서 선교회의 탈피를 요구하고, 독립자주를 실행하고, 불평등조약을 반대하며, 모든 국가주권을 되찾고, 반동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외국 선교사를 축출하고자 하는 운동이 절정에 이르렀다. 실로 중국교회 역사상 반제애국과 교권회수의 빛나는 한 페이지를 기록했다. 이런 사실이 증명하듯이 중국기독교의 “삼자”운동의 유래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것은 역사의 산물이며, 중국백성들의 반제애국운동의 한 부분이었으며, 중국기독교애국애교의 선구자들이 남겨놓은 아름다운 발자취이다.
7. 왜 해방 전 중국교회의 “삼자”운동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늘 파괴에 직면했나?
답: 청 말(晩淸), 중화민국(民國) 통치계층의 부패와 무능 때문에 반동통치자들의 묵인과 지지 하에서, “양어른(洋大人)”들은 불법을 횡행하고 제멋대로 했다(橫行不法, 爲所欲爲). 진정으로 독립된 조국이 하나도 없는데 자주의 교회가 어디서 오겠는가? 이로 인하여 구중국(舊中國)에는 비록 교회 내의 수많은 애국선구자들이 거듭 교회자립을 외치고 도처에 다니며 제안하며, 삼자애국의 불씨를 뿌렸지만, 그러나 국외 제국주의와 국내 반동파는 연합하여 파괴하였으니 그들은 강온양면정책(軟硬兼施)과 협박과 회유(威逼利誘), 분열과 와해를 일삼으며, 온갖 수법을 다하여, 해방 전 중국교회의 자립운동으로 하여금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유산되게도 하고 변질되게도 했다. 이 역사적 교훈은 우리에게 만고불변의 진리(顚?不破的眞理), 곧 교회의 운명과 국가의 운명은 일맥상통하고 결코 분리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애교는 반드시 애국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마땅히 불신자 군중들과 함께 조국이라는 배 위에서 풍랑을 헤치며 전진해야 비로소 국가의 복이요 또한 교회의 복이 되는 것이다.
8. 가장 일찍 교회가 “삼자”를 실행해야 한다고 제기한 사람은 누구인가?
답: 가장 일찍 제기한 사람은 32년간 영국 국교회의 간사장을 역임한 헨리?벤(亨利?樊) 목사(1796-1873)이다. 그는 1850년에 세계각지의 교회는 모두 “자치, 자양, 자전”을 실행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또한 미국의 루푸쓰?앤더슨(魯福斯?安德森) 목사(1796-1880) 역시 비교적 일찍 각 지역 교회는 응당히 그 지방의 특성과 관점이 있으며, 선교사는 마땅히 바울의 선교정신을 준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 가운데 중국교회가 “삼자”를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는가?
답: 있다. 예를 들자면, 미국 북장로회의 네비우스 목사(1829-1893)이다. 그는 비교적 일찍 중국에 와서 선교를 한 미국 국적의 선교사로서 중국교회는 마땅히 중국 기독교인들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그는 삼자선교방법을 제창하여 유명해졌다. 그는 중국에서만 이 선교방법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조선에 가서도 이 방법을 실행했다. 그의 이 방법은 조선에서 더 잘 시행되었다. 그는 중국에서 40년 동안 많은 저작을 남겼는데, 그중 「천로지남(天路指南)」,「신도총론(神道總論)」등이 유명하다.
10. 해방 후 중국교회의 “삼자애국”운동은 언제 시작되었나? 누구에 의해서 일어났나?
답: 긴긴 밤을 지나, 중국백성들은 마침내 1949년 세 개의 커다란 산을 뒤집어 엎고 해방을 획득했다. 1950년 봄, 중국교회 애국지도자 우야오쫑(吳耀宗)선생은 북경, 천진, 상해 교회의 여러 지도자들과 함께 쭤우 총리를 알현하여 세 차례 장시간의 회담을 거쳐, 삼자애국운동을 발기하기로 결정했는데, 그 자리에서 주은래 총리의 찬성과 지지를 받았다(자세한 내용은 본서 부록3 참조). 회담 후, 우야오쫑 선생은 각 교회 지도자들과 연구 후, 친히 “중국 기독교가 신중국 건설에 노력해야 할 길(中國基督敎在新中國建設中努力的途徑)”(상세한 내용은 부록3 참조)이라는 초안을 작성했는데, 이를 “삼자선언(三自宣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제국주의가 중국에서 초래한 죄악을 명확히 인식하고, 과거 식민주의가 기독교를 이용한 사실을 인식하며, 기독교 내부의 제국주의 영향을 말끔히 청산하고, 제국주의를 경계하며, 더욱이 미 제국주의가 종교를 이용하여 반동세력을 배양하려는 음모가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전 교인들에게 호소했다. 또한 기독교 각 교회와 단체에 대해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여 가장 단기간 내에 자력갱생의 목표를 실현하자”고 호소했다. 이 선언은 40명의 교회지도자들이 발기해서, 1개월 좀 더 걸려 각 지역 교회 1,500여명의 책임자들이 이에 동참하기로 서명했다. “인민일보”는 1950년 9월 23일 이 선언과 전체 서명자 명단을 게재했으며, 또한 사론(社論)을 발표하여 지지를 보냈다(상세한 내용은 본서 부록1, 4 참조). 그래서 매년 9월 23일은 중국 기독교 삼자애국운동의 기념일이 된 것이다.
11. 중국 기독교 삼자애국운동의 초기 발전상황은 어떠했나?
답: 삼자애국운동은 발기와 발전의 과정 중, 투쟁을 수반하며 부단히 전진했다. 일찍이 “삼자선언”의 초안과 수정 기간, 곧 1950년 6월 5일, 상해에서 거행된 한 차례의 선언과 관련된 토론회 상에서 어떤 사람이 공연히 나타나 극렬하게 반대했다. 7월 26일, 당시 여전히 제국주의 막후에 의해 조종을 받던 기독교협진회(基督敎協進會)는 행정요원들을 조직하여 우야오쫑 선생을 포위 공격하여, 반제(反帝) 내용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여러 종파의 지도자들은 소위 “신앙”을 보호한다는 입장에서 “삼자선언”을 무차별 공격했다. “선언”이 발표된 후, 1950년 10월 중순, 기독교협진회는 상해에서 제 14기 정기총회를 열어 소위 “전국신도에게 고하는 글(告全國信徒書)”을 만들어, “삼자선언”과 맞서 선언의 작용을 소멸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운동의 거센 발전에 겁을 먹고 초안을 부탁받은 사람은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었고, 그들의 기도(企圖)는 실현되지 못했다.
12. 이러한 상황 하에서 중국의 대부분 기독교인들의 삼자에 대한 태도는 어떠했나?
답: 광대한 애국교인들의 태도는 열렬히 호응했다. “선언”이 발표된 후의 반년 중, 전국 18만여 명의 기독교인들이 서명을 했는데, 이에는 멀리 변경지역의 소수민족 교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1954년 8월 하순, 중국기독교 전국회의가 북경에서 개최되었다. 3년 넘은 삼자운동에 대해 사람들의 마음을 고무시키는 전면적인 총결을 다졌다. 또한 원래의 “삼자혁신”을 “삼자애국”으로 결정하고 정식으로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결성하고 총회를 상해에 두었다. 통계에 의하면, “삼자선언”이 발표되면서부터 제 1차 전국회의 개최까지 4년이 안되어 삼자애국운동을 찬성한다고 서명한 전국교인은 이미 41만 4천여 명에 달했다. 이에는 60여개 종파 단체와 변경 소수민족교회를 포함하는데 당시 전국 기독교인 총 수의 근 3분의 2를 차지했다. 이런 현실 안에서 우리는 이 운동이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얻었으며,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3. “삼자”라는 구호를 제창하기 전, 우리 나라 기독교 내에 다른 제기 방법이 있었나?
답: 있었다. 1922년, 외국선교사에 의해서 통제된 기독교전국대회는 일찍이 “토착교회(本色敎會)”의 구호가 있었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외국선교회가 자립운동을 저지하고 그것들을 덮어버리고 계속적으로 중국교회를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14. 중국기독교가 발기한 삼자애국운동의 정치적 의의는 무엇인가?
답: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중국기독교회 및 단체들이 기본적으로 국외 선교회의 통제에서 벗어나 점차적으로 중국교인 스스로 주도하는 종교단체로 바뀌었다.
둘째, 기독교 내의 식민주의 영향을 말끔히 청산하기 시작했다.
셋째, 전국교인들이 “삼자”애국운동을 통하여 반제애국의 인식을 향상시키고, 각종 애국운동과 세계평화를 지키는 운동에 참가했다.
넷째, 신중국의 교회들은 애국애교의 기초 위에서 새로운 생기를 드러내었다.
15. 삼자애국운동의 신학적 의의는 있는가?
답: 있다. 하나는 삼자애국운동을 통하여 중국교회 종파의 난무 현상을 고쳐, 외국선교회가 남겨놓은 각종 더러운 것들을 상당한 정도로 말끔히 씻어냈다.
두 번째는 삼자애국운동의 발전과 심화로 중국의 광대한 기독교인들의 애국주의 각오가 향상되었고, 사회주의의 두 개의 문명건설에 대해 큰 공헌과 현저한 업적을 얻어, 주님을 위한 아름다운 간증이 되고 자연히 복음을 드높이게 되었다.
세 번째는 삼자애국운동을 통하여 성경은, 세계교회가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속해 있을 뿐 “어머니 교회”와 “자녀 교회”라고 하는 구분이 없이 영원히 평등하다는 진리를 더욱 명백하게 하였다.
네 번째는 삼자애국운동을 통하여 우리나라 교인들이 중국교회가 마땅히 조국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려, 중국의 처해진 환경에서 출발하여 바람직한 우리나라 교회의 원칙과 방향을 건설해야 한다는 인식을 충분히 하게 되었다.
16. 성경에 “삼자”란 말이 있는가?
답: 성경 가운데 “삼자”라는 말은 분명하게 찾아낼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묵시해 주신 것은 보편적 진리이다. “삼자”는 중국기독교의 특정한 역사배경 하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삼자”정신이 성경에 있으며, 사도행전에 나오는 각 지역의 교회들이 바로 “삼자”정신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이다.
17. 초기교회가 “삼자”정신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에 있어서인가?
답: 사도행전은 사도시대가 “삼자”정신에 의해 교회를 세웠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최초의 예루살렘교회는 사도들이 자전(自傳)을 책임지고(행6:4), 모두에 의해 선출된 합당한 자 7명이 생활을 관리하고 자치(自治)를 실행하였다(행6:1-6). 제 9장 31절에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했다.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교회가 시작하자마자 바로 지방에 따라 세워졌음을 보여준다. 제 10장에서 시작하여 복음은 이방인의 지방으로 전파되었으며, 하나님은 한 명의 위대한 사도 바울을 세웠다. 그는 이방 각지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였는데, 시종 “삼자”정신에 따라 일을 하고 각지 교회의 행정과 교육을 처리했다. 복음진리의 불변의 전제 하에서, 각지각처의 교회가 자신의 개성과 특색을 갖는 것을 허용했다. 예를 들자면,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의 안디옥 교회가 주를 믿는 자들에 대한 호칭이 서로 달랐다. 한 교회는 “제자”(행8:1)라 부르고, 한 교회는 “그리스도인”(행11:26)이라 불렀다. 전도인의 호칭 역시 달랐으며(행13:1), 종교 예절도 달랐다. 할례를 받는 것과 받지 않는 것 등도 달랐다(행15:3).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전통신앙을 이방교회에 옮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한 유대인 제자들이 이방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방면에 대한 간섭에 대해 힘을 다해 제지했다. 베드로, 야고보 모두 바울의 정의로운 입장을 지지했다(행15장). 이는 곧 자전정신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은 각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며, 장로를 세우고, 그들 스스로 자신들을 관리하도록 그들을 하나님께 맡겼다(행14:23). 그는 특별히 에베소 교회의 여러 장로들에게 그가 떠난 이후, 온 무리를 위하여 각별히 근신하여 외부에서 오는 방해를 막고, 또 내부의 혼란(행20:28-32)을 방지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이는 곧 자치정신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은 자양(自養)원칙, 곧 신자들이 자원하여 기쁨으로 헌금하도록 했으며(고전16:1-2 ; 고후9:6-9), 일꾼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하며(고전9:14), 또한 교회를 위하여 자양의 본을 수립했는데, 그는 장막 깁는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 복음을 전했다. 자신의 필요를 공급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을 도왔던 것이다(행18:3, 22:33-35).
18. 우리나라 기독교가 삼자원칙을 거행하는 것이 성경에 합한가?
답: 성경에 합하다. 제17번 문제의 대답 가운데, 초기교회의 진행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삼자정신의 존재와 활용에 감동을 주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데 도움을 주는 삼자정신을 성경 안에 기록하였는데, 그 목적은 바로 역대의 모든 교회가 응당히 이 원칙을 준행하여 복음으로 더 널리 전파되고, 교회가 끊임없이 세워지고, 주님께서 구원하실 사람을 날마다 우리에게 더해 주시도록 하는데 있다. 이러한 뜻에서 볼 때, 삼자원칙 혹은 삼자정신은 완전히 성경에 부합한 것이다.
19. “삼자”는 영적(屬靈)인가?
답: “삼자”는 한정된 시간 내의 하나의 운동으로서, 종교를 믿는 군중들이 즐거이 참가하는 하나의 조직이며, 신앙범주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교회를 잘 감당하고자 하는 하나의 원칙을 삼고, 또 교회의 거룩한 일을 위하여 봉사(服務)를 제공하는 조직이기에 영적인 성분이 있다. 요컨대 “삼자”와 영적이라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지적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삼자운동, 삼자조직, 삼자원칙 모두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서 복음전파, 교회건립, 성령역사에 유익이 있다는 것이다. 삼자조직 안에 있는 어떤 사람들이 복음사역에 지장을 주는 일을 하더라도 구별하여 대하고 일률적으로 논할 수는 없다.
20. “삼자”를 믿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는 말은 옳은가?
답: “삼자”가 신앙의 범주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삼자”를 믿어야 한다고는 말할 것이 못된다. “삼자”는 당초 하나의 애국운동이기에 오늘 중국기독교인들은 기꺼이 이 운동에 참가하도록 창도해야 한다. 동시에 이것은 중국교회를 잘 감당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견지해야 할 원칙이다. 기독교인은 다만 “사도신경”과 “니케아신조”가 귀납한 신조만 믿어야지, 이것을 제하고는 모두 기독교인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삼자”를 믿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자체는 개념적으로 틀린 것이다.
21.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이 “삼자를 믿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가?
답: 먼저 응당히 지적해야 할 것은 “삼자”가 무슨 교파의 명칭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슨 “삼자교(三自敎)”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삼자교를 믿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다. 어떤 사람은 단지 표현상의 편리를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삼자원칙을 견지하는 교회를 “삼자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꼬임을 받아 부화뇌동한다. 어떤 이들은 근본적으로 무엇이 “삼자”인지, 그리고 “삼자”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삼자애국운동의 합리성, 정의성, 필연성에 대해 전혀 모른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은 무엇이 신앙인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중국교회가 새로이 외국선교회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공격하려는 마음을 품고, 여론을 조성하여,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없게 한다. “삼자”는 근본적으로 신앙이 아니다. “삼자”는 각 지역 교회가 일을 잘하기 위하여 마땅히 지켜야할 하나의 원칙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삼자”는 하나님이 각국 각처에서 자신의 교회를 잘 건설하기 위하여 예비하신 하나의 도구요 수단이다. 따라서 “삼자교를 믿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이 말은 개념상 근본적으로 틀린 것이다.
22. 우리나라 기독교 삼자애국운동이 시작된 이래 50년 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나?
답: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이 7가지 방면의 성과가 있다. 첫째, 광대한 교인들의 애국주의 각오를 고취시켰으며, 그들로 하여금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고 조국의 사회주의 건설사업에 투신하게 했다. 둘째, 전국에 걸쳐 기본적으로 중국교회의 독립 자주와 자치, 자양, 자전을 실현하게 되었다. 셋째, 기독교의 이미지를 개선하여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해 호감을 갖게 했으며, 종교 신앙 자유정책을 구현하는데 있어서의 장애를 감소했다. 넷째, 교파간의 화목과 공존을 촉진하여, 우리나라 기독교의 오늘날 초교파의 국면을 위하여 조건을 준비했다. 다섯째, 제3세계 국가 교회로서, 전국 규모로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교회를 세워 운영하는 효시를 이루어, 제3세계 국가의 교회를 위하여 모본을 세웠다. 여섯째, 식민주의, 제국주의가 기독교를 이용하여 우리나라를 침략한 진상을 밝히고, 세계 각국 교회의 인사와 역사학계에 고도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선교운동의 반성과 갱신, 그리고 분화(分化)를 촉진했다. 일곱째, 국제교회에서의 중국교회의 지위를 높이고 많은 친구를 얻었다.
23. 무엇이 삼자원칙인가?
답: 1997년 1월 2일 폐막한 중국기독교 제 6회 전국회의는 삼자원칙을 개괄하기를 반드시 독립자주를 견지해야 하며, 반드시 애국애교를 실행해야 하며, 반드시 단결을 증진하고 노력해야 하며, 반드시 “삼호(三好)”를 힘써 구현해야 한다고 했다. 이상을 약칭 “사개필수(四?必須)” 곧 반드시 해야 할 네 가지라 한다.
24. “삼호(三好)”란 무엇인가?
답: “삼호”란 1980년 10월 6일, 띵꽝쉰(丁光訓) 주교가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교회 활동을 회복하는 첫 번째 전국적 회의, 즉 중국기독교 제3기 전국회의 개막사 중에서 제시한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자치(自治)를 하되 잘 치(治)하고, 자양(自養)을 하되 잘 양(養)하고, 자전(自傳)을 하되 잘 전(傳)해야 한다.”고 해서 약칭 “삼호(三好)”라고 부른다.
25. “삼호”의 표준은 무엇인가?
답: 잘 치(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교회를 치리하되 교인이 만족하고 교회 밖의 사람들이 칭찬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교회를 하나님은 반드시 기뻐하신다. 잘 양(養)한다는 것은 교회가 교인들로 하여금 즐거이 헌금을 하도록 충분히 힘을 써서, 교회의 일상 경비를 유지하고 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잘 전(傳)한다는 것은 강대상에서 생명수를 공급하여 양떼들로 들어가도 꼴을 얻고 나가도 꼴을 얻도록 하며, 광대한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진정 좋은 교인이 될 뿐 아니라 좋은 공민(公民)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교회일 때, 반드시 교인의 영성이 부흥되고 교회가 건강하게 발전하여 사회에서 아름다운 간증이 된다.
26. 평소에 약칭으로 “양회(兩會)”라고 하는 이 양회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답: 우리나라 기독교 내에 평소 간략하게 부르는 “양회”는 전국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위원회(中國基督敎三自愛國運動委員會)와 중국기독교협회(中國基督敎協會)를 일컫는다. 성(省), 시(市), 현(縣)으로 말하자면 그 지방의 명칭을 바꾸어 말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OO성(시) 삼자애국운동위원회, OO성(시) 기독교협회(어떤 지방협회는 또한 OO시, 현 기독교 교무위원회라고 칭하기도 한다.)라고 하면 된다.
27. 무엇이 중국기독교 삼자애국회의 근본취지인가?
답: 1997년 1월 2일 중국기독교 제6회 전국회의에서 통과된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위원회장정” 제2조는 오직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의 근본취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개술(槪述)하고 있다. 본회는 중국 기독교인들의 애국조직이다. 근본취지는 신도로 하여금 애국애교하도록 인도하고, 교회의 독립자주를 유지보호하고, 교회내의 단결을 증강시키며, 중국의 교회를 잘 운영하도록 봉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28. 무엇이 중국기독교협회의 근본취지인가?
답: 1997년 1월 2일 중국기독교 제6회 전국회의에서 통과된 “중국기독교협회장정” 제2조는 오직 중국기독교협회의 근본취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개술하고 있다. 본회는 중국기독교의 전국적인 교무조직(敎務組織)이다. 그 근본취지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하는 전국의 모든 기독교인을 단결시켜, 성령의 인도 하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성경의 진리를 따르도록 하며, 삼자애국원칙을 견지하며, 우리나라 교회의 규장제도(規章制度)와 국가헌법, 법률, 법규, 정책을 준수하여 중국 교회를 잘 운영하는 것이다.
29. 각급(各級) 기독교삼자와 기협(基協)은 어떤 관계인가?
답: 각급 기독교삼자와 기협은 각자의 장정(章程)에 근거하여 사역을 펼쳐나가는 역할분담과 협력의 관계이다. 마치 한 사람의 몸에 왼손과 오른손이 있듯이 똑같이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다. “삼자”가 기협 혹은 교회를 영도한다고 여길 수 없다. 이러한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교회에 삼자조직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으로 여기는데, 이러한 생각도 역시 잘못된 것이다. 비록 “삼자”와 기협의 근본취지가 중점에 있어서 다르다 할지라도 그러나 교회를 잘 운영하고자 하는 목적은 처음이든 현재든 장래든 모두 같은 것이다.
30. 우리나라 각급 기독교삼자애국조직의 직능은 무엇인가?
답: 삼자애국회의 근본취지의 결정에 의하면, 그것은 기독교인의 애국조직이며, 교회와 정부 사이의 교량이다. 따라서 그 직능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의 지시를 정확하게, 적시에 전달한다.
둘째, 교회의 요구를 정부에 적시에 반영한다.
셋째, 교회와 교인의 합법적인 권익을 보호한다.
넷째, 교회를 잘 운영하기 위하여 봉사를 제공한다.
31. 현재 우리나라 삼자애국운동위원회의 설립 상황은 어떠한가?
답: 현재 상황으로부터 보자면, 우리나라 대다수의 성(省), 직할시(直轄市), 자치구(自治區)는 모두 각자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세웠다. 성회시(省會市)의 교회 역시 모두 각자의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세웠다. 적지 않은 현(縣)이나 시(市) 구(區)의 교회 역시 모두 삼자애국운동위원회 혹은 삼자준비소조(三自籌備小組)를 세웠으며, 일부 현(縣)이나 진(鎭)의 교회 역시 삼자애국소조를 세웠다.
조건을 갖춘 현이나 시, 구는 가능한 빨리 각자 기독교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세워, 효과적으로 삼자장정에 따라 사역을 펼쳐나가야 한다. 전국 기독교 내에 사역 네트워크을 형성하여, 우리나라 기독교회를 잘 운영하고, 이단사설(異端邪說)과 해외침투를 저지하는데 대해 모두 적극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32. 어떻게 해야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설립할 수 있나?
답: 이 문제는 각 지역의 상황을 보고 결정해야 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적어도 아래와 같은 조건을 구비하여야 한다.
첫째, 절대다수의 교인들이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세우고자 하는 요구가 있어야 한다.
둘째, 일정한 예배당과 처소가 이미 현급(縣級)이상 정부의 종교사무부문에 의해 법적으로 등록이 되어 있어야 한다.
셋째, 해당지구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조성할 수 있는 적합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넷째, 해당 삼자애국운동위원회 주석(주석위원 혹은 주임) 직무를 맡을 적합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해당 지역 종교사무부문의 이해와 지지를 얻어야 한다.
여섯째, 준비소조(籌備小組)를 세워 해당지구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설립하는데 있어서의 일련의 일들을 책임진다.
마지막으로 대표회의의 형식을 통하여 해당지구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설립하면, 준비소조의 역할은 이에 따라 끝난다.
33. 삼자조직, 삼자조직성원, 삼자원칙 이 세 가지 사이에 구별이 있는가?
답: 있다. 삼자조직은 기독교대표회의의 선고(宣告)를 거쳐 설립된 것으로 조직직능과 권위성을 지닌다. 삼자조직성원은 기독교대표회의에서 대표들의 선거를 거쳐 생긴 것으로 대표성, 군중성, 그리고 합법성을 지닌다. 삼자원칙은 바로 각급 삼자애국조직이 반드시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모 지구 삼자조직의 개별 성원이 어떤 구체적인 일들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방법이 타당치 않고, 이미지가 좋지 못하여 교회에 해가 되고 심지어 주의 이름을 욕되게 할 때, 삼자조직이나 삼자원칙의 탓으로 돌릴 수 없으며, 마땅히 구별하여 대해야 한다.
34. 중국기독교는 정치를 어떻게 보는가?
답: 삼자애국운동은 설립 초기는 물론이고 지금도 강렬한 애국사상이 그 안에 들어 있어, 정치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중국기독교는 애국애교의 통일을 제창하고 있다. 애국은 바로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고, 사회주의제도와 공산당의 영도를 옹호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일종의 정치태도이다. 중국기독교인이라고 정치를 외면하고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자신의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기독교인의 태도는 응당히 정치를 뛰어넘지 않고, 또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35. 하나님은 애국주의를 찬성하시는가?
답: 찬성하신다. 공민(公民)이 되어 애국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기독교인은 애국주의를 제창해야 하는가, 아닌가? 대답 역시 긍정이다.
애국에 대해 언급하면 어떤 사람은 곧 말하기를 하나님의 교회는 우주적이고 천하가 다 한 가족이며, 국경과 지경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하나님은 오히려 국경과 지경을 중시하신다. 사도행전 17장 26절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했다.
로마서의 서두(1:5)와 말미(16:26)에는 모두 “만국(萬國)”이라는 말이 두드러진다. 이는 하나님께서 천하의 인류를 하나의 나라로 통일한 것이 아니며, 또한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조국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면 천지만물은 모두 하나로 돌아가지만 “열국(列國)”과 지상의 군왕(君王)은 여전히 존재한다(계21:24).
이로 보건대, 교회에는 국경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교회(有形的)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無形的)를 혼돈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혼돈은 매우 해로운 것으로서 애국주의를 반대할 뿐 아니라 해외침투의 “이론적 근거”에 영합하는 것이며, 또한 교회의 진리를 현저하게 위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강림하셔서 전 인류의 구주가 되셨지만 그는 결코 국적 없는 유민(游民)이 아니었으며, 특정한 국적, 특정한 민족을 지니고 있었음을 우리는 보아야 한다. 주 예수의 애국열정은 확연하게 나타난다. 그는 자신의 민족이 로마의 통치 하에 처해 있고, 조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곧 멸망당할 것을 보았을 때,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리셨다(눅19:41-44). 이는 실제로 당시 상황하의 애국주의의 표현이다.
시편 137편은 유대인들이 조국이 멸망당할 때의 비통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시편 126편 역시 조국의 부흥을 위하여 환호한 것이다. 이 역시 애국주의이다.
모세는 몸은 애굽 왕궁에 있었지만 마음은 이스라엘 동포에게 있었다(히11:25). 다윗은 용감히 전쟁에 임하여 적군인 블레셋 사람을 물리쳤다. 이 어찌 모두 위대한 애국주의가 아니겠는가?
사도들은 이스라엘의 부흥을 소망했으며(행1:6), 바울은 자신의 민족을 “골육지친(骨肉之親)”으로 불렀으니 이 어찌 애국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성경속의 선배들은 자신의 조국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는데, 어찌 중국의 교인들은 자신의 조국을 열렬히 사랑할 수 없단 말인가? 자신의 조국조차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디에 기독교인의 박애가 있겠는가?
36. 성경은 권세 잡은 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잘 처리하라고 기독교인들을 지도 하고 있는가?
답: 어떤 사람은 “삼자”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반대하는데 이는 “삼자”조직이 정부의 영도를 받자고 제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정부의 영도를 받는다는 것은 우상을 섬기고, 간음죄를 짓는, 곧 대음부(大淫婦 : 곧 음란한 여인)”라고 한다. 해외의 또 어떤 이들은 선동하여 말하기를 “누가 권세를 잡든 그 사람을 반대하는 것은 바로 선지자의 사명이다”
이 말은 맞는가, 틀리는가? 성경 잠언 24장 21절-22절을 보면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라고 했다.
디도서 3장 1절-2절에는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했다.
왜 바울은 디도에게 “모든 사람에게 깨우치라”고 했는가?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주를 믿은 이후 여러 가지 원인으로 집권자와 도무지 맞지 않아 대립상태에 처하고 심지어 그들에게서 벗어나 정치와 현실의 생활을 초월해야 비로소 경건하고 영적이라고 여긴다.
이는 “권세 잡은 자들에게 순종하라”는 진리를 소홀히 하거나 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모든 사람을 깨우치고 바로 잡아야 한다. 이 “깨우치는” 임무가 지금 역사적으로 삼자조직의 몸에 지워진 것이다.
정부의 정확한 영도를 받아들이자는 제창은 삼자조직의 하나의 사업이다. “삼자”의 장정에는 명확하게 이 조항을 기록하고 있다.
디도서를 보면, 1장에는 성직자를 세우는데 대하여, 2장은 진리의 바른 교훈에 대하여, 3장은 권세 잡은 자에 대한 순종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1장, 2장은 영적이고, 3장은 세속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3장 역시 성경이며,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의 견해가 치우쳐서는 안 된다.
로마서 13장 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했으며, 5절에서 강조하기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않을 수 없나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교회는 왜 반드시 권세 잡은 자를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가?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첫째,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실 뿐 아니라 만유의 머리이시며, 또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다.“(계1:5)
둘째, “하나님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신다.”(단4:17, 25, 32, 5:21)
셋째,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
넷째, 권세 잡은 자는 “하나님의 사자”이며(롬13:4), 또한 “목자”이다(사44:28).
다섯째,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는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2),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롬13:5)
여섯째,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13:7)
일곱째,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딛3:1)
여덟째,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벧전2:13)
많은 성경 구절이 증명하듯이 정부의 정확한 영도에 복종하고 애국과 법을 준수하도록 제창하는 것은 각 기독교인의 불변의 진리라는 것이다.
37.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가?
답: 할 수 있다. 아래의 예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요셉은 애굽의 바로 왕 밑에서 총리가 되었다(창45:8).
둘째,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수하의 술 관원(느1:11)이었으며, 후에 유다 땅 총독이 되었다(느5:14-15).
셋째,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의 재상(재宰相)이었다(에10:3).
넷째, 다니엘은 바벨론 왕 수하의 총독이었다(단6:1-3).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성경의 근거를 고려치 않고, 계시록 13장 11절의 거짓 선지자의 “두 뿔”을 크게 잘못 해석하여 말하기를 “뿔은 권세의 뜻으로서 두 뿔이 있다는 것은 바로 정치적 권세를 가질 뿐 아니라 또한 교회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하여, 교회의 권세를 가지면서 정치적 권세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다. 삼자조직 안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협위원(政協委員), 인대대표(人大代表)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두 뿔을 가진 짐승’이다.”라고 한다. 만약 이런 견해가 옳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요셉, 느헤미야, 모르드개와 다니엘은 어쩌란 말인가?
여기에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자. 한 그리스도인이 공민의 권리를 행사하고 정치에 참여하여 국가 대사를 관리하는 것이 신앙의 정조를 잃은 것인가? “우상을 섬기고”, “간음을 범한” 것인가? 성경의 대답은 명확하다. 신앙을 견고하게 지킨다는 전제하에서,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으며, 심지어 믿지 않는 정권 속에서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요셉, 느헤미야, 모르드개, 그리고 다니엘 모두가 이와 같았다. 어느 누가 요셉, 느헤미야, 모르드개와 다니엘과 같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 정권 속에서 정치에 참여함으로 그들의 신앙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무도 없는 것이다.
38. 그리스도인은 정부를 위하여 중보하며 축복해야 하는가?
답: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매우 분명하게 설명한다. 디모데전서 2장 1절-3절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라고 했다.
그러나 현재 소수의 그리스도인과 전도인들의 입에서 인민정부를 위하여 중보기도하며 축복하는 소리를 들어볼 수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훼방하고 저주하는 말을 한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경건하고 단정한 것인가?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는 것인가?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인가? 이다. 욕을 험하게 하면 할수록 더욱 영적이라고 여기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야곱이 바로에게 한 축복(창47:7)을 보고 또 바울의 권고를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성경의 진리 앞에서 냉정하게 이런 사람의 부정확한 신앙의 태도를 교정할 수 있을 것이다.
39.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모든 제도에 순종해야 하는가?
답: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거룩한 나라에 속하며, 영적생활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생활하기에 응당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는 주를 위하여 순복”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2장은 이 두 방면의 내용을 똑같이 고려하고 있다. 1절에서 16절은 신앙상의 영적생활, 예를 들어서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신령한 집”을 세우고, “신령한 제사”를 드리고,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며”, 13절에서 17절은 곧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응당히 갖추어야 할 품행이다.
베드로전서 2장 13절에서 17절까지의 본문은 곧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란 무엇을 말하는가? 본문 전체를 통해 볼 때, 국가의 사회제도, 경제제도, 정치제도와 민간의 모든 제도(예로 향촌의 자치규약), 그리고 이러한 제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정책과 법령을 포괄함을 의미한다.
둘째, 이러한 인간의 모든 제도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모두 “순복하라고 한다.” 왜 순복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15절 말씀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이는 신앙을 고치라는 말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인이 응당히 갖추어야 할 품행이다. 주 예수께서도 이와 같이 행하셨다(마17:24-27). 두 번째는 16절 말씀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하라” 여기에 하나의 모순이 있다. 즉 “자유하나”와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이다. 종이 된다는 것은 마치 자유가 부족한 것과 같이(요8:32) 구속을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특히 하나님의 종이다. 자유를 가지고 악독을 감추거나 자유를 방탕한 정욕의 기회로 삼을 수 없다(갈5:13).
현재 어떤 사람은 자유를 “자기 마음대로”바꾸어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종이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구속을 받지 않고, 또 한편으로는 정책과 법제에 대한 관념조차 없으면서 사람의 모든 제도에 순종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자유”는 국가가 허락지 않은 것이며 성경 또한 허락지 않은 것이다. 법을 어기고 어지럽게 하는 사람은 정책과 법령상의 보장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도 똑같이 보장받지 못한다.
셋째,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의 목적은 무엇인가? 성경은 말하기를 “주를 위하여”라고 했다. 주님의 이름으로 훼방 받지 않게 하고, 주님의 진리의 말씀이 가로막히지 않게 하며, 주님의 교회가 “많은 사람의 기쁨을 얻도록” 함이다. 이로 보건대, 법을 어기며 어지럽히는 사람은 절대로 “주를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사욕과 악독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정으로 주를 위하는 사람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공의 역시 선을 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 벌을 가하는 제도를 통하여 나타난다.
바울은 로마 국적을 가지고 당시 인간의 모든 제도를 순종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주님의 사역을 위해서였다. 그는 로마 국적의 권리를 이용하여, 핍박을 받을 때 놓임을 받아 주님을 위하여 더 많은 거룩한 사역들을 할 수 있었다(행16:35-40).
따라서 우리 온 그리스도인들은 주를 위하여, 국가의 모든 제도를 옹호하고, 인민정부의 정확한 영도에 순종하며, 인민정부의 각종 정책과 법령을 준수하며, 애국애교해야 한다. 조국의 안정과 단결,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문명건설을 위하여 더욱 많은 공헌을 하고, 사회주의 사회와 서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교회를 이끌어, 우리 교회로 하여금 부단히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40. 어떻게 하면 교회가 “자치(自治)”에서 “치호(治好)”로 갈 수 있나?
답: 무릇 잘 운영되는 교회는 대부분 아래와 같이 두 방면의 사역을 잘한다.
하나는 교회가 확실하게 행할 수 있는 규장제도를 제정한다.
이러한 규장제도는 첫째, 교회학습, 회의제도, 둘째, 교회사역 안배제도. 셋째, 교회재무관리제도 등을 포괄한다.
규장제도를 제정하면, 교회는 그 규장법규에 의거하여 교회를 잘 다스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담임자와 목회자들이 모범적으로 회의에 통과된 교회 내의 모든 규장제도를 순종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민주를 실행하여 교회를 관리한다. 잘 운영하는 교회가 되려면 인사안배, 사역계획은 물론이고, 경비예산까지도 회의를 통한 민주토론을 거친 후 실시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일언당(一言堂)”이라는 가부장적 모습을 피할 수 있고, 또 “군언당(群言堂)”이라는 집체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교회를 잘 운영하려면 반드시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도록 하며, 교회 내의 각종 사역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41. 어떻게 교회가 “자양(自養)”에서 “양호(養好)”로 갈 수 있나?
답: 우선적으로 교회는 형제자매들에게 “부지런함으로 부요한 자가 되어야 영광스러운 것이다”와 같은 적극적인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더욱 영적”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버리고, 신앙 상에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금전관(金錢觀)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기초 위에 우리가 강대상에서 말씀을 공급하기만 하면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의 열정이 타오르게 되고 교회에 헌금하는 것도 자연스레 증가하게 된다. 그 다음 교회의 부동산을 효과적으로 개발하면 비교적 큰 경제적 유익을 발휘할 수 있다. 조건을 갖춘 교회는 기업을 운영하여 교회의 자양 능력을 증강시킬 수 있다.
42. 교회가 “자전(自傳)”에서 “전호(傳好)”로 가자면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가?
답: 진정으로 “전호”를 하려면,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다.
첫째, 인재양성에 힘써야 한다.
둘째, 신학교를 잘 운영해야 한다.
①1985년 절강 막간산 중국기독교 신학교육 좌담회(浙江莫干山中國基督敎神學敎育座談會)에서 확정된 우리나라 신학교운영방침은 영(靈), 덕(德), 지(智), 체(體), 군(群)의 통합적인 발전에 있다.
②인재선발은 각 교회가 추천하여 신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자 하는 학생의 선발을 포함한다.
③신학교육을 규범하여 우리나라 자체의 신학교육체계를 형성한다.
④신학 졸업생의 배치와 사용
셋째, 봉사자 양성
1998년 중국기독교 농촌사역위원회에서 통과된 “중국기독교 의공배훈반강요(시행)”를 조직 실시한다.
넷째, 신학사상건설을 강화하고, 또 정확한 신학사상을 갖추도록 지도한다.
43. 왜 국내의 어떤 사람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삼자”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답: 이러한 현상을 초래한 데에는 첫째, 일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일관되게 삼자애국운동을 훼방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삼자조직 안의 소수 사람들의 행위가 “삼자”의 이미지를 손상시킨 것은 분명히 있다. 셋째, 어떤 사람들은 “삼자”의 깃발을 들고 “삼자”를 반대함으로 사람들에게 “삼자”는 단지 하나의 허황된 구호이며,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역할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인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넷째, 어떤 사람들이 반(反) “삼자”를 표방하여 스스로 영적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여 딴 살림을 차리기 때문이다. 다섯째, 어떤 지역은 종교정책이 아직까지 뿌리 내리지 못해서 “삼자”의 교량역할을 상실함으로서 삼자애국조직의 호소력은 자연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다.
44. 해외에는 여전히 “삼자”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답: 있다.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단지 소수에 불과하다. 여기서 주요한 것은 일부 반화세력(反華勢力)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기독교 삼자애국운동을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우리나라의 기독교를 통제하는 지위를 회복하고자 기도(企圖)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어떤 사람들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근거도 없는 것을 조작하고, 과장해서 말하고, 부화뇌동하여 발생한 이롭지 못한 영향이다. 세 번째는 우리나라 교회가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일에 다소 부진한 까닭이다.
근 50년 동안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을 통해 삼자의 정의성, 합리성 및 필요성은 날이 갈수록 국제 기독교회 및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 교회가 실시하고 있는 삼자원칙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틀림없이 갈수록 적어질 것이다.
45. 해외의 교회는 우리나라 교회의 삼자원칙을 어떻게 보는가?
답 : 이 방면의 자료는 참으로 많다. 여기에서 몇몇 해외교회와 단체가 우리나라 교회의 삼자원칙을 객관적으로 보고 발표한 성명과 결의을 요약 소개한다.
1. 미국 기독교회 연합회
1983년 5월 12일 정기총회에서 통과된 “중국의 정책에 관한 성명” (요지)
“중국 기독교 지도자들은 중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국 기독교인들 자신의 임무라는데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해외교회를 향해 선교사를 중국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중국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신앙과 기구(機構)로부터 ‘양교(洋敎)’라는 꼬리표(標籤)를 제거하려는 바램은 복음사업 자체에 기초한 것이다. 그들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성취를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고 있다. 해외 기독교인들은 마땅히 중국 기독교인들이 인민들 가운데서 행한 노력을 존중해야 하며, 더 이상 구시대의 선교사업을 회복시키고자 기도(企圖)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래에 열거한 의무를 이행할 것을 밝힌다.
첫째, 중국기독교인들이 강조하는 중국기독교 단체의 자주성과 완정성(完整性)을 존중한다. 바로 중국기독교협회와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말이다.
둘째, 중국교회와 관련된 업무에 대하여 전반적인 협상을 진행해야 하며, 또한 쌍방이 공동으로 결정을 내린다.
셋째, 미국 기독교회연합회 및 우리의 소속교회들은 교회를 돕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데 있어서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중국기독교인들과 전 중국인민들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 대하여, 그리고 세상에서의 그들의 당면한 사명과 진정한 보편적 실질에 대하여 하나의 새로운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 루터교세계연맹(信義宗世界聯盟)
다음은 1987년 7월 4일에서 9일까지 서독 뮌헨에서 거행된 루터교 세계연맹 집행위원회에서 통과된 우리나라 교회와 관련된 두 가지 결의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교회의 상황과 관련된 이해에 근거하여, 중국교회 삼자원칙을 전적으로 존중하는 것과 해외교회와 기타 단체들이 중국사회발전사업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 애덕기금회(愛德基金會)가 중요한 경로 역할을 담당해 준 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
결의:
첫째, 루터교세계연맹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진행되는 재정 및 인력 지원의 매 항목에 대해 알려줄 것이며 또 애덕기금회의 의견을 물을 것이다.
둘째, 루터교세계연맹은 애덕기금회와 중국기독교협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어떠한 사업도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진행하지 않는다.”
3. 영국순도감리회(英循道衛理公會)
중국교회와 관련된 결의를 통과시켰다.
1984년 7월 4일 영국 순도감리회는 전국대회에서 아래와 같이 중국교회와 관련된 결의를 통과시켰다.
“대회는 필립 몰간 박사와 켄터베리 대주교가 인솔한 영제국 교회연합회 대표단의 중국 방문보고를 관심 있게 청취했다.
대회는 중국교회가 어려운 시기에 나타낸 믿음에 대해, 그리고 중국교회가 일치된 길을 따라 전진하고 중국 교회의 성도들의 수가 부단히 성장한데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대회는 중국교회의 신념인 자양, 자치, 자전의 원칙이 교회생활을 잘 영위해 나감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것임을 확인하고, 지지한다.
대회는 새로운 합당한 방법을 모색하여 중국교회와의 관계를 유지할 것을 보장한다.”
46. 해외교회 지도자들은 우리나라 교회가 견지하는 “삼자”원칙을 어떻게 보는가?
답: 이 방면에 대한 평가는 참으로 많지만 몇몇 해외교회 지도자들의 평가를 요약하여 이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1. 영국의 켄터베리 대주교 룬시박사
A. 1982년 1월 6일 홍콩 성 요한교회 설교(요지)
“과거 우리는 때때로 기독교를 서방문화와 혼돈해서 말했었다. 복음은 다소 영국의 면모를 띤 채 아시아로 전해졌다. 기독교는 양교(洋敎)의 형식을 갖게 되었다. ... 그러나 그러한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여기 태양이 솟는 동방에서, 기독교는 이제 중국의 면모를 지녀야 마땅하다.”
B. 1982년 1월 9일 남경에서 중국 및 외신기자들에게 행한 성명(요지)
“나는 띵(丁)주교와 함께 여러 시간 담화를 나누었다. 나는 지금 그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는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떠날 때, 그가 국외기독교인들의 신임을 얻기에 적합한 인물이며, 중국인민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바, 삼자애국운동은 기독교가 그 속에서 적극적인 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려고 한다. 나는 어느 누구도 삼자애국운동을 파괴하려는 일을 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려고 한다.”
2. 캐나다 캐서린? B? 후오진의 담화
캐나다 기독교연합회대표단은 1981년 6월 중국을 방문했으며, 아래는 연합회 캐나다 ? 중국위원회 회장 캐서린 B 후오진의 중국방문 소감이다(요지).
“역사적 사실의 진상은 우리로 하여금 ‘외국선교사’는 과거 제국주의가 중국으로 하여금 극심한 재난을 당하도록 한 것과 분명히 관계가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중국을 찢어놓은 불평등조약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복음의 큰 문을 여는 선구적인 일로 여겨졌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자연히 중국 교회로 하여금 교회의 우선적인 임무가 교회를 진정한 중국인 자신의 교회로 만드는 데 있다고 여기게 하였다.”
“영국 선교사 페이따웨이(裴大衛)는 <성공회의 자아비판> 중에서, 서양 선교기구와 선교정책이 불평등조약을 체결하는 데 분명히 참여했으며, 제국주의 시기의 전 역사 가운데, 해외 무역 발전과 기독교 지경의 확대라는 이 두 가지가 실제적으로 복잡하게 서로 뒤엉켜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캐나다 대표단의 구성원들은 반드시 캐나다로 가지고 가야할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바로 중국 기독교회는 자신의 교회를 잘 운영하려고 하고 있으며, 또한 이 시기에 중국 교회의 중요한 책임은 스스로를 중국 교회로 발전시키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기독교와 중국 교회는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며, 정부와 공산당의 영도를 옹호한다.
중국교회는 사회주의의 경제체제와 사회체제를 찬성한다.
중국에는 다만 하나의 교회가 있을 뿐이며, 이 교회는 여러 가지의 표현 형식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억지로 중국교회를 지하교회와 애국교회로 구분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3. 오스트레일리아 지뿌란(吉布蘭) 주교의 강화(講話)
오스트레일리아 기독교연합회 대표단은 1982년 5월 중국을 방문했으며, 아래는 연합회 회장 동방정교회 지뿌란 주교의 전국 양회 좌담회와 환영 연회(宴會)석상에서의 강화(講話)(요지)이다.
“우리 연합회의 정식 입장은 중국 교회 내부 업무에 대한 어떠한 간섭도 반대하는 것이며, 또한 성경을 몰래 반입하는 것도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중국 교회 및 그 삼자 입장을 위해 큰소리로 변호해 줄 것이다. 또한 교리적으로 기독교인들은 마땅히 애국해야 하며, 국가와 개인은 분리될 수 없으며, 각국의 교회들은 모두 각자의 특색을 갖고 있으며, 중국교회가 삼자를 실현하는 것은 완전히 합리적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4. 예진하오(葉金豪) 목사의 강화(講話)
아시아 기독교회의(亞洲基督敎會議)의 총간사인 예진하오 박사는 우리나라 전국삼자 주석이며, 중국기독교협회 회장인 띵꽝쉰 주교의 초청으로 1980년 10월 20일부터 11월 2일까지 상해, 남경, 북경, 광주 등지를 방문했다.
예목사가 말레이시아로 돌아간 후 “아시아 기독교회의통신(亞洲基督敎會議通信)”은 그의 이번 방문에 대해 보도하면서 우리나라 기독교 교회의 상황에 대해 매우 높은 평가를 했다. 그는 “나의 방문은 매우 적시에 이루어졌다. ---종교의 자유에 대해 말하자면 중국 교회는 지금 가장 좋은 시기에 처해 있다.” “30년 동안, 중국 교회는 중국사회에서 이미 새로운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자치, 자양 원칙을 실행하여, 자신을 중국의 한 조직으로 건립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에게 기독교신앙이 서양의 종교가 아니라 중국인민의 생활과 신앙의 일부분임을 표명하고 있다.” “중국 교회는 지금 중국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47. 우리나라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삼자애국운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답: 근 50년 동안, 우리나라 교회 지도자들은 “삼자”에 대해 확실한 소견을 적지 않게 발표했다. 여기에 목회자 몇 분의 발언을 소개한다.
1. 우야오쫑(吳耀宗)(1883-1979;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1대, 2대 주석 역임) 은 “삼자” 4주년의 업적을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중국기독교회 및 단체는 기본적으로 제국주의의 통제를 벗어나, 점차 중국 성도가 스스로 주관하는 종교단체가 되었다.
둘째, 기독교에 있어서 제국주의가 미친 영향을 말끔히 제거하기 시작했다.
셋째, 전국의 성도들이 삼자혁신운동을 통하여, 반제애국(反帝愛國)의 인식을 드높이고, 많은 애국운동과 세계평화 수호운동에 참가했다.
넷째, 신중국의 교회는 애국애교(愛國愛敎)의 기초 위에서 새롭고 생기 있는 기상을 드러냈다.
2. 띵꽝쉰(丁光訓; 현재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명예주석)
1982년 9월 16일 전국삼자와 전국기협위원회 회의에서의 발언(요지)
“동역자 여러분,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는 삼자의 의의에 대해 비교적 깊은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삼자는 애국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정확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가 증인의 사명을 감당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도 피할 수 없는 추세입니다. 교회의 비전 성취라는 관점에서 볼 때나, 역사의 종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삼자는 더욱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니케아신경은 말하기를 “나는 사도들이 전한 유일하고 거룩한 공(公) 교회를 믿습니다.”라고 하여 교회의 일체성, 성결성, 보편성, 사도성을 언급했습니다. 삼자는 이 네 가지의 실현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해외의 어떤 이들은 삼자를 공격하며 또한 방송매체와 같은 수단을 통해 중국을 향하여 삼자가 잘못된 것이라고 암시하고 과장합니다. 또한 이로써 우리를 서로 이간시키고 분열을 조장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명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교회 역사상 삼자는 잘못된 것이 아니며 교회가 자아를 실현함에 있어서 반드시 나아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이 길을 걸어야만 국가와 민족의 교회는 비로소 진정한 교회가 되며 궁극적으로 기독교와 같은 세계적 종교가 그 보편성을 진정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쟈위밍(賈玉銘; 1878-1969, 前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제2대 부주석)
“삼자애국운동은 그 근원이 혼탁하지 않다.”
4. 삐용친(畢빙琴, 前 상해 전도인 수양원 원장)
1984년 8월 5일 삼자 성립 30주년 기념 리셉션 상의 발언
“내가 과거 오랫동안 삼자운동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기독교를 믿은 이후 기독교인은 단지 교(敎)만 믿고 전해야지 꼭 애국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라는 잘못된 사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또 공산당은 유물주의자이기에 종교를 소멸하려고 한다고 여겼습니다. 삼자애국운동은 단지 기독교내 일부 사람들이 공산당을 도와 우리의 신앙을 제거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겼습니다.
나는 현재 삼자애국운동이야말로 우리가 처해있는 시대의 산물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길이라고 여깁니다. 만약 삼자운동이 없었다면 중국 기독교는 양교의 모자를 벗어버릴 수 없었으며, 복음 전파 사역 역시도 잘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자치, 자양, 자전’의 정신으로 중국 기독교인 자신의 교회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애국조직이 필요합니다.
근년에 와서 삼자애국 조직은 큰 업적을 이루었다. 신도들로 하여금 넓게 퍼져있는 동포들과 일치단결을 이룰 수 있게 했고, 한마음 한 뜻으로 4개 현대화 건설에 참가했으며, 또한 빼앗겼던 교회당을 되찾았고, 성경과 신앙서적 및 간행물을 인쇄 판매하고, 전국교회를 섬기고, 신학교와 성경학교를 설립하여 교회의 일꾼을 배양했습니다. 삼자운동이 신앙을 없애려 한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사실 무근입니다. 삼자운동의 선배, 지도자, 동역자들에 대해 내가 지금 분명히 보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셔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일부 인민대표로 또 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뽑힌 동역자들은 적시에 나의 의견을 반영해주었고 또 교회가 정상적이고 순리적으로 발전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5. 천쩌민(陳澤民, 現 중국기독교협회 부회장, 금릉협화신학원 부원장, 교수)
“먼저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삼자”는 우리가 창조하고 발명한 것이 아니며 또 우리 스스로 생각해 낸 무슨 새로운 방법이나 새로운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자의 원칙은 성경의 근거를 갖고 있으며, 또한 2천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모든 교회가 준행한 하나의 원칙입니다. 거의 모든 종교의 각파들의 조직마다 모두 어느 정도의 삼자원칙을 갖고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오랫동안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 가운데 없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정신과 교회는 성경 가운데 관통하고 있습니다. 삼자라는 이 원칙의 정신 또한 이와 같습니다. 성경의 근거를 갖고 있으며 신학적 이론에 근거한 것입니다. 교회 역사상 혹은 기독교 사상 모두 삼자가 필요한 원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 쟝페이펀(蔣佩芬 1914-1995, 前 중국 기독교협회 부회장, 금릉 협화신학원 교수)
“기독교의 삼자애국운동은 바로 기독교인의 애국운동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애교(愛敎)의 구체적 운동입니다. 우리나라가 삼자의 지방성(地方性) 교회를 건설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으로서 이는 하나님의 걸작입니다.”
7. 뤄꽌쫑(羅冠宗, 現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제6대 주석)
반드시 삼자원칙에 따라 교회를 잘 운영해야 한다. ‘삼자원칙’, ‘삼자조직’, ‘삼자종사자’ 등의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한다.
(1) 삼자원칙은 바로 중국기독교가 반드시 외국의 지배를 벗어나 자치, 자양, 자전으로 독립과 함께 스스로 교회를 운영한다는 방침을 실현하여, 신도들이 애국애교의 길을 걷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중국기독교는 반드시 정확한 이 원칙을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삼자원칙은 바로 아래의 “사개필수(四個必須)” 곧 반드시 해야 할 네 가지이다. 즉,
반드시 독립자주를 견지해야 한다.
반드시 애국애교를 견지해야 한다.
반드시 단결을 강화해야 한다.
반드시 ‘삼호(三好)’를 관철해야 한다.
(2) 삼자조직은 삼자원칙을 집행하는 기구이다. 40여 년 동안 삼자조직은 삼자원칙에 따라 교회를 잘 운영하기 위해서 많은 사업을 했다. 물론 어느 시기에 어느 지역에서는 삼자조직이 어느 정도의 실책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삼자조직의 성과는 괄목할만하다. 어쨌든 삼자조직에 어떤 착오와 실책이 있었다고 해서 삼자원칙의 정확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3) 삼자종사자는 절대다수가 애국애교하며, 주님의 사역을 전적으로 섬기는 동역자들이다. 그들의 수고와 노력이 없었다면 삼자애국운동은 오늘의 성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삼자종사자 가운데에도 이러 저러한 결점들은 있다. 실수와 착오의 일부를 이미 바로잡았으며, 일부는 개선하고 있는 중이며, 일부는 아직 그대로 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사랑에 입각하여 진솔한 말을 하고 서로 권면하고 서로 도와야 할 것이다. 어쨌든 삼자종사자 가운데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의 어떤 착오로 인해서 삼자조직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으며, 이로 인해서 삼자원칙의 정확성을 부정할 수는 더더욱 없다.
48. 오늘 우리나라 교회는 왜 여전히 삼자원칙을 견지하려고 하는가?
답: 이는 “삼자”의 임무가 아직까지 완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자”는 발기 초에나 지금이나 그 목표가 바로 교회를 잘 운영하려는데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지금 우리나라 교회는 비록 “운영”이라는 면에서는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 적지 않은 성과도 얻었지만 “삼호”의 요구와는 아직까지 거리가 있다. 이것이 그 첫 번째이다. 두 번째는 해외 반화세력(反華勢力)의 존재이다. 이 세력은 우리나라 교회의 “삼자견지”원칙을 “삼자교를 믿는다.”라고 말하면서 무릇 삼자원칙을 견지하는 교회는 모두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들은 하나님과 사람의 대립이라는 관점으로 교회의 자치를 부정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람의 말을 듣지 말라.”라고 강조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혼란시키고 우리의 “삼자”역량을 와해하여, 이로써 우리나라 교회로 하여금 삼자원칙을 포기하게 만들어서 결국은 다시금 우리나라 교회를 통제하려는 그들의 목적을 실현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36조에는 중국종교단체와 종교 사무는 외국세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문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삼자애국의 성과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오늘, 그리고 앞으로 상당한 기간동안 우리나라 교회는 반드시 삼자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49. 어떻게 하면 삼자원칙의 정확성, 정의성, 합리성, 필요성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깨닫게 할 수 있는가?
답: 우리나라 각 지역 교회는 삼자원칙에 대한 선전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 그 형식은 전단이나 게시판, 소식지 등을 통해서 할 수 있으며, 또한 설교 가운데, 혹은 각 지역 교회의 성경학습반 가운데 삼자애국의 내용을 포함시켜 더욱 많은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삼자원칙이 교회를 잘 운영하고자 하는 하나의 원칙이며, 우리나라 교회의 주권을 보호하려는 원칙이며, 평등과 우호의 기초 위에서 각국 교회와 상호교류를 하고자 하는 원칙이며, 더욱이 애국의 원칙이라는 점을 진정으로 이해하도록 한다. 정의감과 강렬한 애국심과 경건한 신앙을 가진 중국기독교인들은 모두 삼자원칙의 정확성, 정의성, 합리성, 그리고 필요성을 마땅히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회가 삼자원칙을 견지하여 중국특색을 갖춘 교회를 잘 운영해 나갈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50. 삼자애국운동의 앞으로의 임무는 무엇인가?
답: 띵꽝쉰(丁光訓) 주교는 <회고와 전망>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삼자의 성과는 매우 크다. 그러나 삼자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나라 교회의 삼자애국운동의 임무가 아직도 요원하며 완성되지 않았음을 명확히 지적한 말이다. 우리나라 교회, 특히 널리 퍼진 농촌교회의 상황에 근거해 볼 때, 우리는 계속적으로 아래 몇 가지 방면의 사업을 잘 이행해 나가야 한다.
첫째, 삼자애국운동을 선전하는데 더욱 힘써 새신자나 기존신자에 대해 애국주의교육과 재교육을 진행한다. 특히 갓 예수를 믿은 수많은 새신자들은 영적으로 어릴 뿐 아니라 정상적인 목양을 받지 못해서, 삼자애국운동의 유래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고 있다. 우리는 삼자가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훌륭한 기독교인은 마땅히 훌륭한 공민이어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그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진리를 알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애국주의의 각오를 다지고 주님을 위하여 빛을 발하고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들에게는 유익을 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둘째, “포도원을 파괴하는 작은 여우”를 늘 경계해야 한다. 삼자애국운동이 시작된 이래, 절대다수의 신도들로부터 진심어린 옹호를 얻었지만 제국주의 선교의 정치입장의 영향을 비교적 크게 받은 일부사람들은 여전히 상반된 태도를 갖고 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는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더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복종하나 속으로는 따르지 않으며 입으로는 ‘옹호’ 하지만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는 파괴를 일삼는다. 또 어떤 이는 상호 존중하는 신앙심의 특성을 이용하여 자신을 표방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며, 종파의 파벌을 더욱 깊이 심고, 지금 우리가 헐고자 하는 가로막힌 담을 다시 세워 그리스도안에서의 대 연합을 파괴하고자 기도한다. 어떤 이는 식민주의가 교회 내에 퍼뜨린 성경의 진리를 벗어난 그릇된 이론들을 주워 담아 은밀히 전파하여 주님의 진리를 혼란케 한다. 어떤 이는 전도자라는 이름으로 신자들을 속이고 재산과 생명을 갈취하고 있다. 어떤 이는 국외교회의 반화조직(反華組織)과 은밀히 결탁하여 화를 자초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고 삼자를 반대하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 우리는 고도로 경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가르치고 인도하는 일을 잘해야 한다.
셋째, 국외교회의 반화조직의 침투활동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적은 저절로 역사의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 과거 선교회와 중국에 있는 그들의 대리인들도 이와 같았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국경 밖과 해외에서 “선교”라는 깃발을 걸고 기구를 조직하여 사회주의 신중국을 악랄하게 공경하고 있다. 유언비어를 퍼뜨려 모독을 하고, 우리나라 교회가 삼자애국의 길을 걷지 못하도록 파괴공작을 한다. 어떤 이는 원래 있던 종파관계를 이용하여 관광이나 친척방문을 구실로 은밀히 결탁하여 종파의식과 정치상 반동의식이 농후한 서적을 대량으로 배포하고 개인숭배활동을 일삼고 있다. 어떤 이는 대규모로 몰래 들어와 우리나라 연해지역에 소위 “원조(援助)”성경을 몰래 대량으로 운반해 와서 우리나라 교회의 성경 출판 사업을 파괴하고 있다.
물론 삼자애국운동은 결코 배외운동(排外運動)이 아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세계의 많은 나라의 우호교회나 단체와 정상적이고 우호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 또한 그들이 우리나라 신학교육 등을 지원하기 위해 보내주는 서적이나 자료, 그리고 헌금이나 물질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대로 다른 의도를 지닌 반화세력의 파괴활동에 대해서는 삼자애국의 대 기치를 내걸고 그들의 활동을 반드시 제지해야 한다.
넷째, 교회를 잘 운영하고 주님을 위하여 아름다운 간증을 드러내야 한다. 독립과 자주를 견지하면서 교회를 잘 운영한다는 것은 단지 삼자애국의 첫걸음을 내딛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또한 자신의 교회를 잘 운영해서 우리 중국 교회로 하여금 세계 교회 가운데서 주를 위하여 아름다운 간증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자면 애국사상의 기초 위에서, 그리고 동일한 신앙의 전제 하에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야 한다.”
다섯째, 새로운 세기 가운데 우리나라 기독교는 “삼자”에서 “삼호”로의 질적인 변화가 이어야 한다. 반드시 삼자의 50년 경험으로 풍성하게 쌓여진 신학사상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교회 사역을 지도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를 볼 때, 우리나라 기독교 신학 사상을 강화하고 활성화하는 것은 기독교와 사회주의 사회가 서로 적응하고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들에게는 유익을 가져다주는 중국 교회로 잘 운영하고 삼자운동의 남은 사역을 완성하도록 적극 유도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목회자들과 헌신자들은 모두 제 6회 2차 전국위원회에서 결의한 “신학사상의 건설을 강화하는 결의에 관하여”에 부응하여 중국기독교의 삼자사업으로 하여금 더욱 견실한 신학적 근거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출판 : 중국기독교 농촌 사역위원회
저자 : 리빠오러(李保樂)
번역 : 하영인/중국사역자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중국의 기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중국 선교는 중요하다 (0) | 2012.03.03 |
---|---|
[스크랩] 중국 삼자교회의 三自新派神學이란 무엇인가? (0) | 2012.03.01 |
[스크랩] [자료] 사도신경 (0) | 2012.02.25 |
[스크랩] [자료] 주기도문 (0) | 2012.02.25 |
[스크랩] 受洗 问答(세례문답,정경훈전도사 번역) (0) | 2012.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