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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테레사의 위험한 책 [통일코리아를 세우는 100일기도]를 바로잡습니다. (2)

수호천사1 2012. 2. 23. 23:57

 

[서평]

오테레사의 위험한 책 [통일코리아를 세우는 100일기도]를 바로잡습니다. (2)

 

김미영

(세이지코리아대표, 전 한동대교수) 

 

 

반공은 이데올로기 아닌 생명을 지키는 무기였습니다.

 

 

  요즘 지성계 뿐 아니라 기독교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65년 역사를 관통하는 ‘반공’노선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하는 것이 큰 유행입니다. 반공은 태어나서 안 되는 후레자식 같은 사상이며,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악(惡)입니다. 낡은 이념이고, 쓸모도 없으며 ‘평화’와 ‘통일’, ‘인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나쁜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탈북 여성 오테레사가 최근 출간한 [100일기도(사진)]의 대한민국 정치사 기술에도 반공에 대한 이런 인식이 충분히 배어 있군요. 이 책은 6.25전쟁과 이승만 정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1950년에 일어난 6.25전쟁은 영토나 국가 이익 때문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대립의 전쟁이었다. 내전의 성격에서 시작된 전쟁이 전면적 국제적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그 결과 동족 간의 참살과 함께 민족 분단은 영구화되었고 교회가 입은 상처는 심각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깊이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것을 뛰어 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다.> (<<남한 종교영역의 뿌리>>, 73면) 
 
 <이에 좌익과 우익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사회 질서를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국가보안법 제정, 반공주의 정책을 내세웠고, 이승만 정권은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를 통해 장기 집권을 도모하지만 이에 반발하여 학생을 중심으로 시작한 시위는 수많은 국민들까지 가세하여 4.19혁명을 일으켰고, 이승만 정부는 무너지게 되었다.> (<<제1공화국>>, 42면)
 
  (1)반공은 이데올로기이며, (2) 한국교회는 이 이데올로기에 깊이 사로잡혀 있고, (3) 역대 지도자들은 통치를 위해 반공을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최근 국민일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훈련원이 개최한 ‘에큐메니컬 전국목회자 인문학 심포지엄’에서의 이만열 교수 발언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한국교회가 해방 이후 시대적 사명을 잃게 된 것은 반공 사상을 추종하며 재물과 안락, 세습이 보장되는 권력에 함몰돼 기독교적 영성을 잃었기 때문”이라며 “종북 세력이라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 타인을 정죄하기보다 희생과 사랑, 화해로 인권과 민주화, 통일, 북한 돕기에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국민일보 2월 13일자)
 

  (4) 종북은 실체가 없는 가상의 적이며, (5) 반공은 참된 기독교적 가치에 배치되는 잘못된 사상이라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마르크스주의가 20세기를 풍미했던 세계사를 반추해 볼 때, 이런 주장은 일정한 지성사적 맥락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비공산권 국가에서도 마르크스주의는 근대 학문과 사상으로서 허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공산권 블록이 붕괴된 지금도 학문 방법론으로, 또는 지적 상상력으로 살아남아 있습니다.
 
   [100일기도]는 북한의 정치이념의 하나로 ‘사회주의’를 지목하고 그 의미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협동적으로 자유 평등한 사회를 형성해 사리사욕, 타인이 지배하는 불공정 빈곤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하려는 사상, 사회운동, 사회체제를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 원류는 사유재산 없는 협동 생활을 찬미한 스토아철학이나 그리스도교 등의 교의(敎義)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중세 말기 농민투쟁의 이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정치이념>>(48면))
 
  이렇게 본다면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만날 길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필요합니다.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포기할 때 가능합니다.
 
  공산주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즘에 입각해 있습니다. 거짓말도 폭력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십자가는 기본적으로 방법 또는 수단입니다. 스스로를 부인하고, 못박아 피흘리는 희생의 종교입니다. 그리하여 그 십자가 사랑이 동시에 목적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기독교의 근본입니다.
 
  기독교가 십자가를 들고 공산주의를 따라가고자 한들,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계열이 다릅니다. 김일성이야말로 자신의 동상이 기독교 십자가와 공존할 수 없는 이치를 꿰뚫었습니다. 그리하여 김일성은 정부 수립 전 북한 땅에서 기독교 십자가를 모두 꺾었습니다. 성경도 찬송가도 예배도 없앴습니다.
 
  지금도 북한은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입니다. 1974년 [유일사상10대원칙]을 통해 김일성은 확실하고도 분명한 방법으로 신적인 지위를 공표했습니다. 김일성에 대한 신격화, 절대화, 신조화, 무조건화의 원칙을 북한 사람들 일상의 모든 영역에 실천토록 한 것입니다. 한 치의 위반자도 정치범수용소 행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원칙은 그의 아들과, 손자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이 김일성 숭배사상은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기타 아류 사상의 수로(水路)를 타고 곧잘 우리 사회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명백하고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1) “반공은 이데올로기이다?” 이데올로기는 정의되기 어려운 말이지만 굳이 정의한다면 ‘특정 그룹이나 개인을 이롭게 하는 사상, 곧 보편 사상과는 다른 사상’을 말합니다. 스스로 특정 계급의 이익에 봉사한다고 천명한 공산주의는 이데올로기이겠으나 이 나라에서 반공은 이데올로기가 아니었습니다. 자유와 생명을 지키는 필요불가결한 무기였습니다.
 
  (2) 한국 교회가 반공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한 때 북한에서 기독교 박해를 체험한 한국 교회는 반공의 보루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교회에는 다양한 수로를 타고 공산주의가 흘러 들어갔고, 수월하게 자리를 틀고 있습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공산주의도 주체사상도 다 허용합니다. 아닌데 아닌데 하다가 허용합니다. 신학대학은 정도가 더 심각합니다. 도리어 한국 교회의 ‘사랑’이 진실과 거짓에 대한 분별을 포기한 채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사랑 이데올로기’ 앞에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습니다. 
 
  [100일 기도] 147면의 기도제목을 적어봅니다. “하나님. 사랑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서로 헐뜯고, 비방하기에 정신이 없는 대남 방송, 대북 방송의 죄악을 회개합니다. 분열의 영, 사탄이 조장하는 이데올로기의 감정에만 의존하여 방송하였던 것을 회개합니다.” 이 갸륵한 상대주의! 이 한량없는 사랑! 이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입니다. 
 
  (3) “역대 지도자들이 반공을 통치를 위해 악용했다?” 그런 사례들이 있었지요.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그런 사례들을 찾아내고, 고발했습니다. 그렇게 성장해 왔습니다. 피로 민주주의를 얻어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반공을 부인할 까닭이 되지 않습니다. 반공이 악용된 사례보다, 비할 바 없이 많은 사례들을 통해서 이 나라가 실질적인 북한 공산주의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나라 지도자들에게 공산주의와의 싸움은 처절한 숙명이었습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대통령 시해를 시도하고, 영부인과 최고의 관료들을 암살 테러했으며, 해외파견 노동자들을 대량학살하고, 군인들도 죽입니다. 과거가 아닌 현재입니다. 햇볕정책 이전에도 그랬고, 당시에도 그랬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만열 교수의 권고에 대해서도 몇 마디를 덧붙입니다.
 
  (4) “종북이 실체 없는 가상의 적?” 종북은 엄밀한 용어는 아닙니다. 그러나 김일성 3대 세습체제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체제를 보장하며, 그들과 대등하게 손잡고 민족통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세력을 ‘종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가상이 아니라 실체입니다. 악한 수단도 거짓말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세력입니다. 대중들의 비정한 이기주의와 전쟁에 대한 공포심을 활용하여 거대 정치세력으로 탄생할 준비를 갖춘 극 현실의 실체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시체에 절해도 신성을 모독하는 일이 아니라고 믿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세력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3대세습이 무너져도 또 새롭게 변신하며 온존해 나갈 이 신념 집단, 신앙 집단을 ‘가상의 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순진성의 다른 표현이겠지요? 이 세력이 형체를 더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 보시겠습니까?
 
  (5) “반공은 참된 기독교적 가치를 위협하는 극복 대상의 낡은 사상?” 제게 공산주의 사상은 익숙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동조하거나 빠진 적은 없습니다. 바로 그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구원을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사람을 신적 우상으로 만든 그 사상이 인권과 평화,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 주었던가요?
 
  지적 실험은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평화 시 평화 지대에서 말입니다. 사상 전장에서는 실험조차 위험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제 그 치열했던 사상전이 끝났다는 것이지요? 토사구팽하듯 반공을 삶아 먹어도 좋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달라야 합니다. 끝까지 순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려 평화, 인권, 민주주의, 사랑의 수단되셨고, 또한 살아남은 우리에게 그 십자가 사랑으로 목적되셨기 때문입니다.
 
  피끓는 20대의 두 젊은이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1848년 이미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의 유령이-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공산당선언 서문])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 그들이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창시자들이 밝힌 대로 공산주의는 유령입니다. 그 유령은 아직도 한반도에서 배회 중인가 봅니다. 깨어 기도하는 자,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는 자라면 능히 이 유령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옳지 않을지요. 때가 악합니다. 우리 승리합시다!
 
  (계속- 3. 북한에 사회주의화된 기독교가 있다는 것은 허황된 믿음입니다.)
 
  김미영 세이지코리아대표(전 한동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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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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