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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에 나타난 성전에 대한 진실

수호천사1 2012. 1. 24. 19:05

성경에 나타난 성전에 대한 진실

 

- 성경 예언과 무관한 건물 -



  이스라엘의 여러 유태 조직들은 현재 예루살렘 성전 마운트(Mount)에 세 번째 유태 성전을 재건하려고 한다. 패티 라론드(Patti Lalonde)가 저술한 유명한 기독교 서적 「시간의 가장자리(The Edge of Time)」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옛 예루살렘에서는 세 번째 성전 모델이 건축되어 전시되고 있다. 성전 성직자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는 후보들의 명단도 컴퓨터로 작성되었으며 유대 율법주의 학생들에게는 고대 유태 성전 의식을 가르쳤다.”

 

  유태 종교계에서는 성전을 또 하나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백만의 기독교인들은 이제 성경이 분명히 예측했던 것이 건축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말인가? ‘세 번째 성전’ 이론은 지난날의 또 한 가지 큰 망상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먼저 두 번째 헤롯 성전이 서기 70년에 파괴되기 앞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초점을 맞추어 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숨을 거두셨을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라는 말씀이 마태복음 27:51에 나온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휘장을 찢어서 동물들의 희생 제물의 가치가 끝났음을 온 인류에게 보여주셨다. 세속의 성전 예배가 끝날 참이었다. 어째서인가? 그 성전에서는 더 이상 위대한 희생이 바쳐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 년 뒤 바울은 세속의 성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히 8:13). A. D. 70년에는 두 번째 성전이 로마인들에게 파괴되었다.


  이제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 보자. 유대인들은 줄곧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세 번째 성전을 재건하려 했는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 아들의 죽음과 함께 종료된 속죄 제사를 다시 시작하려 했는가?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외치셨다. 곧 속죄 제사를 모두 폐지한 셈이다. 예수님은 마지막 ‘제물’이셨다! 따라서 제사를 다시 시작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임에 대해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셈이다. 이스라엘이 세 번째 성전을 재건하여 제물을 바치려 한다면 구세주를 다시 한 번 공식적으로 또한 국가적으로 거부하는 셈이 아닌가?


  2천 년 전에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공식적으로 메시아를 거부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 결과는 재난이었다! A. D. 70년 로마 장군 디도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유대인 백십만 명이 불과 칼에 죽음을 당해 지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세계 전역으로 흩어져 성지(聖地)는 주인 잃은 땅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세 번째 성전’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의 주요 부분 세 군데를 인용하고 있다. 곧 다니엘 9:27, 계시록의 ‘성소 텍스트’ 분류 정리, 데살로니가후서 2:4이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재건’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구약에서는 성경의 주요 부분이 광야의 성막, 솔로몬의 첫 번째 성전, 포로 회복의 두 번째 성전을 짓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출애굽기 35~40장, 열왕기상 6장, 에스라 3~6장). 그러나 세 번째 유대 성전(소위 칠년 환난 성전)을 짓는 일에 대해서는 어느 곳에서도 말하고 있지 않다.


 논쟁 1 - 다니엘 9:27의 활용


  오늘날 기독교의 유명한 예언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곧 다니엘 9:27에서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라고 한 구절은 유대 성전 재건의 제사를 중지시킬 7년환란 종말기의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다니엘 5장에서는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서 그 ‘제사와 예물을 금지’시킨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히고 있다.


  매튜 헨리(Mattew Henry)는 ‘제사와 예물을 금지’시킨 분은 바로 예수님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주님은 단연코 자신을 제물로 바침으로서 레위인들의 제사를 모두 종식시켜 버리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니엘 9:27을 ‘세 번째 성전 재건’의 개념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로 활용한다면 사막에 집을 세우는 셈이 되고 만다. 하물며 이스라엘은 주요 지진대 위에 성전을 세우려 하고 있다니!


  논쟁 2 - 계시록의 ‘성전 텍스트’


  이 텍스트들은 모두 천국의 성전과 관련이 있지 지상의 세 번째 성전 재건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다. 계시록 11:19에서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14:17에서는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라고 했다. 15:5에서는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라고 했다. 16:17에서는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라고 했다. 따라서 이는 모두 천국의 성전을 가리킨다. 또한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의 피로서 보호하시고 있는 곳은 바로 이 성전이다(히 8:1,2; 9:12~14). 또한 바울이 기독교인들에게 보라고 하는 곳도 바로 이 성전이다(히 10:19~22).


  논쟁 3 - 데살로니가후서 2:4의 활용


  이는 ‘세 번째 성전’ 이론을 뒷받침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는 구절이다. 여기서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리라”고 했다(살후 2:4). 이에 대해 할 린세이(Hal Lindsey)는 이렇게 논평했다.


  “성전이 재건될 것은 확실하다. 예언에서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임을 보이려 한다고 했다(살후 2:4). 그러므로 세 번째 성전은 옛 예루살렘의 그 옛 자리에 재건될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1~8은 성경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구절이다. 이제 이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겠다. 이 분석에서는 역사적인 프로테스탄트의 과거 통찰력에 대해 접근해 보겠다. 그 통찰력은 종교개혁 이래 지난 300년 동안 유럽, 영국, 미국에서 널리 수용된 교리이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1~8의 분석


  1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 ‘강림’하시고 있다. 여기서 ‘강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parousia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마 24:27).


 2절: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여기서 바울은 사람들을 ‘모이게’ 할 ‘그리스도의 날’을 어떤 사람이 제안하더라도 그에 따라 걱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경고했다. 1세기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무엇인가 큰 일이 일어나야 한다.


  3절: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바울이 말한 내용은 아주 분명하다. 먼저 ‘배교’가 있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으러’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견해와는 달리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모으기 앞서 적그리스도가 오는 것이다. 바울은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고 함으로서 다른 어떤 것도 믿지 말라고 경고했다.


  ‘배교’란 말은 그리스어의 apostasia에 해당하며 진실에서 멀어짐을 뜻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역사에서나 마찬가지로 기독교 역사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지는 ‘배교’가 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적그리스도가 흥기할 것이다. 바울은 그 적그리스도를 ‘그 죄악의 인간’이라고 했다. 이 말은 실제로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초기 예언을 가리킨다.


  다니엘 7장에서는 ‘작은 뿔’이 나타나며 그 눈은 사람의 눈과 비슷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단 7:8). 다니엘은 그 작은 뿔이 인간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눈은 인간의 눈과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 뿔은 ‘넷째 짐승’, 곧 ‘넷째 나라’에서 나올 것이라고 했다(23절). 그 나라는 로마 제국을 말한다. 또한 유럽의 10개 뿔 ‘가운데’에서 나오고(8절),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할 것이며(8절, 25절), 기독교 역사에서 ‘성도들로 더불어 싸울’ 것이라고 했다(21절).


  바울은 또한 적그리스도를 ‘멸망의 자식’이라고 했다(살후 2:3).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다에게 하신 말씀이다(요 17:12). 유다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였다. 유다는 예수님께 입을 맞추면서 ‘랍비여’라고 했다(막 14:4). 그러나 이는 배신의 입맞춤이었다. 바울은 적그리스도를 ‘멸망의 자식’이라고 함으로서 그 기만자는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이교도 독재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자처하는 자일 것이라고 암시해 주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거짓 사도이다(고후 11:13).


  4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 성전(헬-나오스: 모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적그리스도가 성전으로 걸어 들어와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달리 하나님처럼 앉아 하나님임을 드러내 보이려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차이는 미묘하면서도 아주 중요하다. 적그리스도가 그렇게 말을 하면 너무 분명히 드러날 것이기에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동을 통해 ‘드러내’ 보이도록 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앉아’ 있을 것이다. 이는 어떤 의자에 앉아 있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 언어에서 ‘앉는다(sit)’는 말은 권좌에 있음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하나님의 오른편(권위에) ‘앉아(sits)’ 계신다(막 16:19). 예수님은 우리의 최고 권위자이며 오직 한 분뿐인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이시다(딤전 2:5). 바울에 따르면 적그리스도도 역시 권좌에 ‘앉아’ 기만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앉아 있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 권위에 실제로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건물이 아닌 교회 모임이 성전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전(나오스: 모임 즉 예수님의 교회)에도 앉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키포인트가 있다. 할 린세이(Hal Lindsey)와 같은 수백만의 기독교인들은 이를 예루살렘에 세 번째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가? 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신 희생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마운트 성전에 세 번째 성전을 재건하려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 성전을 정말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 성전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기독교 평론가 아담 클라크(Adam Clarke)는 바울의 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사도가 말한 하나님의 성전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뜻하지 않는다. 몇 년 지나면 파괴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 사도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하나님의 성전(헬-히에론: 건물)이라고 한 적이 없다.”


  여기서 바울에 성전(temple)에 대해 사용한 헬라어는 ‘나오스(naos)’이다. 바울이 서한에서 나오스(naos)란 말을 사용할 때에는 예루살렘의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교회를 가리킨 것이었다. 이 점이 거대한 진실이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서한을 보내면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temple: naos)임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1:2; 3:16)”고 했다(또한 고후 6:16; 엡 2:19~22도 참조). 따라서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이 예수님의 교회 모임이었다!


  또한 아담 클라크는 “복음 율법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곧 기독교 교회모임이다”라고 했다. 또한 이는 적그리스도가 앉아 있을 곳이라고 했다. 적그리스도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유다처럼 거짓으로 교회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최고 권좌, 곧 겉으로 보기에 오류가 없는 권좌에 앉을 것이다. 이는 전례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 권위를 미묘하게 위조하는 행위이다.


  여러분이 악마라면 그와 똑같이 할 것이 아닌가? 술집에서 교제하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의 목표는 기독교인들을 기만하는 일일 것이다. 여러분이 사탄이라면 교회에 슬며시 들어가 교단 앞에 서서 설교할 것이 아닌가?(행 20:28~31; 딤전 4:1; 딤전 4:3, 4 참조). 적그리스도의 행위에 대해 바울이 말한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전인 기독교 교회모임 안에 교묘하게 들어가 겉보기에 최고 권위인 자리에 ‘앉아서’ 기독교 교리 문제를 공표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서학자 매튜 헨리는 역사적인 프로테스탄티즘에 굳게 바탕을 두고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기독교가 세상에 뿌리를 내리자마자 기독교 교회의 배도가 시작되었다. 곧 ‘죄악의 인간’, ‘멸망의 자식’이 배도를 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로마 카톨릭 주교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반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위에 있다고 우쭐댄다. 여기서 말하는 적그리스도는 기독교 교회 내 하나님의 권위를 찬탈한 자이다. 그 자들이 로마 주교들이 아니라면 누구이겠는가? 즉 교황권이 아니라면 누구이겠는가?”

 

교황 비오 11세 즉위식 광경 1922년 2월 24일


  위의 견해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자 존 캘빈(John Calvin), 존 웨슬리(John Wesley), 아이작 뉴턴 경(Sir Isaac Newton), 찰스 스펄젼(Charles Spurgeon), J.C. 라일(Ryle) 주교, 마틴 로이드(Martyn Lloyd) 박사, 존스(Jones) 및 수많은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이다. 이 어찌 거대한 진실이 아니겠는가?


  사단의 속임수 7년 대환란설


 5~6절: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이 구절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오늘날 여러 예언학자들은 기독교 교회가 속박자, 곧 막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기독교가 붕괴되어 사라지면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고 가르친다. 또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예루살렘에 유대 성전을 재건하고 하나님임을 공포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일은 ‘7년환란’ 동안 일어날 법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연구한 바에 따르면 그런 구상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바울은 이 서한에서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억제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인들은 알고 있다. 바울이 5절에서 이전에 ‘말한’ 바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사도 이후에 살았던 초기 교회 지도자들의 저술을 연구해 보면 초기 교회가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드러난다.


 “초기 교회(바울이 글이 아닌 말로서 무엇을 이야기했는지는 초기 교회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가 남긴 것은 이 방해 세력이 정치적 로마제국 황제의 시저였음을 사도들이 이야기했다는 기록이다. 곧 시저가 로마를 계속 통치하는 한 예언된 악의 세력은 나타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시저가 통치할 때에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고 시저가 사라져야 적그리스도가 계승한다는 내용이다.”


  매튜 헨리는 역사 연구에 바탕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는 로마 권력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여겼기에 당시 사도들은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 권력이 계속되는 한 로마 주교들이 그처럼 곧이어 최고의 전제를 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억제 세력이란 시저가 통치하는 로마 제국의 권력을 가리킨다. 교황이 자유로이 통치할 수 있었던 때는 로마가 멸망한 A. D. 476년부터였다.


  이는 루터파,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학자들이 종교개혁 이후 300년 동안 연구해서 공통으로 내린 해석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새로운 학자들은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예언이 진정으로 목적하는 바를 놓친 그릇된 이론이다.


  7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로마 제국)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바울 시대에는 로마제국이라는 막는 세력이 있었기에 적그리스도가 흥기함이 방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니엘의 이전 예언에서는 넷째 짐승(로마제국)이 궁극적으로 멸망하고 ‘작은 뿔’(교황권, 적그리스도)이 일어나 활동할 것이라고 했다(단 7:7, 8).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대한 서한에서 로마제국이 궁극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명기하지는 않았다. 그 서한이 로마 당국에 발각되면 시저에 대해 충성하지 않는다고 간주되는 개심자들에 대해 박해와 시련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살후 1:4 참조). 이 견해는 예언과 역사에 부합된다. 그 뿐만이 아니라 뜻도 완벽하게 통한다.


  바울 시대에는 ‘불법의 신비’가 이미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체로 감추어져 있었다. A. D. 476년 로마제국이 마침내 멸망한 뒤에야 이 ‘신비’가 세상의 눈에 완전히 드러났다. 그리하여 암흑의 시대가 와서 유럽이 거의 1천 년 동안 바티칸의 거대한 공포 속에 휩싸이게 되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성스러운 종교재판소’는 잔인한 고문을 통해 5천만에서 1억에 달하는 기독교인들을 살해했다고 한다. 또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분명히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온 셈이다.

 

 

  8절: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따라서 ‘불법의 신비’는 바울 시대에 시작되어 끝까지 계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파괴되었다. 8절에서 사용한 ‘강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1절에서 사용한 ‘강림’과 동일하다. 그 헬라어는 parousia(파루시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을 분명하게 나타내 준다. 따라서 1절~8절에 따르면 적그리스도가 나타난 다음에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람들을 ‘모으신다’고 할 수 있다.


 데살로니가후서 2:1~8의 간단한 요약


  1절: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parousia)’ 및 사람들(그리스도인들)을 ‘모음’


  2절: 바울은 이 ‘그리스도의 날’이 1세기에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지 말라고 초기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말했다.


  3절: ‘그리스도의 날’이 오기 앞서 먼저 ‘배교’가 있을 것이며 예언했던 대로 ‘죄악의 인간’이 나타날 것이다.


  4절: 이 ‘죄악의 인간’은 우쭐댈 것이며 ‘하나님의 성전’, 곧 참된 주님의 교회에 앉아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드러내 보일 것이다.


  5절: 바울은 이 점에 대해 이전에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말했다.


  6절: 데살로니가인들은 ‘무엇’이 당시 적그리스도를 제재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7절: 적그리스도는 1세기에 이미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속 세력(로마제국)은 곧 사라졌다.


  8절: 다음으로 적그리스도가 완전히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강림이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적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parousia)’으로 파괴될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에 충실한 사람들을 모으실 때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난 뒤 두 번째 ‘강림(paousia)’하실 때이다.


  성경을 깊이 탐구함으로써 무엇을 발견했는가? 곧 성전에 대해 거대한 진실을 발견했다! 성경에는 세 번째 유대 성전을 마운트 성전에 재건하라는 말이 없음을 발견했다. 계시록에 나오는 성전에 대한 구절은 언제나 ‘천국의 성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계 16:17). 또한 바울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오는 적그리스도에 대해 말한 바는 ‘교회’에 들어옴을 뜻하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 희생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마운트 성전에 세 번째 성전을 재건하려 한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성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속지 말라. 오늘날에는 기독교인들이 모두 이 땅에서 사라진 다음에 교활한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가르치고 있는 책은 베스트셀러이다. 이를 부추기는 비디오는 모든 나라에서 인기가 있다. 이 생각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품어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교회 내에서 어떤 기만이 일어날지 찾아보려는 사람들은 더욱 적다.


  그러나 바울은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살후 2:3)고 함으로서 이 점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했다. 여기서 ‘너희(you)’란 말은 여러분과 나를 말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있고 진리에서 ‘멀어질’ 사람들의 기만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적그리스도의 정체에 관해 연구하기를 원하시면

게시판 『666 적그리스도』에 들어가셔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순서대로 일독하십시오.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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