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스크랩] 계시록을 어떻게 解釋하고, 說敎할 것인가?

수호천사1 2012. 1. 24. 18:44

계시록을 어떻게 解釋하고, 說敎할 것인가?


계시록 접근과 해석에 관한 提言


최갑종 교수

  


  I. 서론

  

  신약성경의 제일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은 전통적으로 요한복음서와 요한 1,2,3서의 저자로 알려진 사도 요한이 로마 황제 도미티안(Domitian) 시절(AD 81-96)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자신의 목회 대상이었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곧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낸 일종의 회람 편지로 알려지고 있다. 계시록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교할 것인가? 아마도 신구약성경 중에서 지금까지 요한계시록만큼 해석하기 어렵고, 그리고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책은 없을 것이다. 종교개혁자 칼빈(John Calvin) 선생이 신구약성경 중에서 유일하게 계시록에 관한 주석을 쓰지 않은 이유도 아마도 이런 문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계시록에 관한 한 그 누구도 자신이 감히 계시록 해석의 권위자나 왕으로 자처할 수 없을 것이다. 계시록에 관한 한 우리는 항상 조심하고 또한 겸손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시록은 닫혀져서는 안 되고, 열려져야하며, 읽혀져야 하고, 해석되어져야하고, 또한 교회에서 설교되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계시록 자체가 서문에서 계시록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예언의 말씀”임을 주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시록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1:1-3)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시록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한 부분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에서뿐만 아니라, 또한 오늘 우리 시대와 교회가 계시록에서 울러 퍼지고 있는 중심적인 메시지를 절실히 필요로 하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그리고 자신 있게 설교할 것인가? 계시록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이며, 우리는 그 핵심적인 메시지를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이제 계시록 해석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


  II. 계시록의 역사적 특성에 유념하라.

.

  우리는 계시록을 포함하여 모든 신구약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믿는다. 동시에 우리는, 마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의 역사세계에 오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모든 성경은 인간 저자를 통하여, 인간의 언어와 역사와 문화와 종교와 사상의 세계를 수단으로 하여 주어졌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 따라서 모든 성경은 超역사 혹은 無역사적, 無문화적, 無인간적이지 않고, 오히려 각각 고유한 역사적, 문화적 특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요한계시록은, 마치 창세기와 이사야서가 각각 다른 시대의 저자와 독자와 배경과 문학적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마태복음서와는 각각 다른 저자와 독자 및 시대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편으로 모든 성경이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한다하더라도, 또 다른 한편으로 모든 성경은 일차 적으로 특수한 시대의 저자를 통하여 특수한 시대의 사람들에게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쓰여졌었다는 사실을 약화시켜서는 아니 된다.


  계시록은 분명히 특정한 시대에 살았던 특정한 저자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특정한 시대상황에서 특정한 문제들에 직면해있던 사람들을 위해 썼다. 이미 계시록 자체가, 계시록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로 불리어지는 섬에 유배되어있던 역사적인 인물인 요한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밧모섬 인근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당대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보낸 역사적인 편지임을 강하게 증언하고 있다(계 1:1-9; 22:21). 만일, 오늘날 대다수의 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계시록이 AD 81-96년까지 로마 황제로 재임하였던 도미티안(Domitian)에 의해 밧모섬에 유배되었던 사도 요한이, 당시 한편으로 로마 황제 숭배 사상으로 인하여, 또 다른 한편으로 기독교에 적대적인 유대교인들에 의하여(2:8-11)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경제적인 핍박과 어려움에 빠져있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보냈던 역사적인 편지라고 한다면, 우리는 계시록을 당시 저자와 독자들이 처해있었던 역사적, 종교적, 사회적 정황을 떠나서, 초역사적으로나 혹은 지적인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접근하거나 해석하려고 시도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계시록이해가 계시록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역사적 특성에 관한 우리의 이해와 비례한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계시록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역사적 특성에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설사 우리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여야한다는 개혁주의 성경해석학의 원리를 인정한다하더라도,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서를 위시하여 그 어떤 특수한 성경을 계시록해석의 잣대로 사용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사야, 에스겔, 다니엘은 각각 그 자체 독자적인 역사적 상황과 삶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요한 계시록도 그러하다. 그럼으로 계시록은 일차적으로 계시록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III. 계시록의 문학적 특성에 유념하라.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계시록은 밧모섬에 유배되어있던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보낸 편지의 형태로 주어졌다(1:1-3; 22:6절 이하). 계시록이 편지의 형태로 주어졌다는 것은 계시록은 필연적으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나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의 역사적 정황과 관련하여 이해되거나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여 준다. 즉 계시록은 일차적으로 저자나 독자들의 필요성이나 현안의 문제와 관련하여 쓰여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의 계시록은, 마치 바울서신이 사도 바울자신의 대신하는 권위를 가지고 바울자신의 교회에게 읽혀졌었던 것처럼,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안에서 사도요한을 대신하는 권위 있는 편지로 읽혀졌음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계시록은 처음부터 신학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쓰여진 어려운 연구논문의 형태로서가 아니라, 교회 회중들 앞에서 구두로 읽혀지도록, 그리고 듣는 청중들이 낭독되는 편지를 듣고 그 핵심적인 메시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쓰여졌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계시록을 접근할 때 계시록이 ‘편지’이다 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여야 한다.


  물론 이 편지의 내용은 사도 요한 자신의 사적인 창작물은 아니다. 오히려 요한은 편지의 서두에서 이 편지의 내용과 관련하여,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1,19; 4:1)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1:2)로, 그리고 “예언의 말씀”(1:3)으로 부르고 있다. 즉 이 편지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이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요한에게 속히 되어질 일들을 보여 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계시록이 미래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음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즉 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셨고(과거), 이루고 있는(현재), 그리고 이루실 것(미래)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실상 계시록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요한이 종종 편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일인칭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2:7,11,17,29; 3:6,13,22)라는 어귀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여 준다.


  그러나 문제는 요한이,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이들을, 이미 구약의 선지자시대부터 유대사회에서 활용되어졌던 묵시문학적인 형태를 사용하여, 즉 용, 바벨론, 짐승, 사자 등과 같은 특수한 상징적 언어와 문학적인 표현들을 통하여 전달하고 있는 점이다. 마치 어떤 詩人이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바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저자와 독자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특수한 시적인 문학형태를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요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에게 보여주신 내용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저자와 독자들에게 다같이 알려져 있던 묵시문학적 형태를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계시록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하여서는, 우리가 계시록 저자와 독자들이 서로 만나는 그 문학적 세계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자면, 한편의 詩가 신문의 사회면이나 정치면의 한 기사처럼 이해될 수 없고 오히려 그 詩가 의도하고 있는 문학적 형태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처럼, 계시록은 역사적 사실보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계시록의 문학적 장르 면에서 접근되고 해석되어야한다.


  최근의 적지 않은 신약학자들은 계시록의 문학형태가 주전 4세기이후부터 주후 2세기까지 강대국 세력과 박해아래 있었던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역사에 나타날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즉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에 개입하셔서 그의 택한 백성들을 압제자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들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반면에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을 대적한자들에게는 영원한 심판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널리 발달되었던 “묵시록”(Apocalypse)에 속한다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였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대로, 묵시록은, 어떤 초월자가 인간 受納者를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일종의 계시적 문학의 형태로써, 이것이 인간을 포함하여 全地上世界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역사적이며 예언적인 특성을, 그리고 인간과 全地上世界의 문제는 동시에 超越者와 天上世界의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신적이며 종말론적인 특성을 각각 지니고 있다. 이 점을 요한 계시록과 직접 관련시켜 다시 말한다면,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자들과, 그리고 용과 짐승으로 표현되는 적-그리스도와 그의 사자들과의 싸움이, 지상에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 성도들과 성도들을 핍박하는 로마 제국의 모습을 통해서 각각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계시록의 특성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천상의 세계에 관한 묘사에서 지상의 세계를, 지상의 세계에 관한 묘사에서 천상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할 것이다. 묵시적 문학형태로써 계시록이 지니고 있는 이와 같은 두 특성은, 우리로 하여금 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수많은 상징적인 언어형태를 마치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보도로 간주하고 해석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IV. 계시록의 핵심적인 메시지에 유념하라.


  우리는 계시록을, 마치 우리가 복음서의 비유를 그 비유가 묘사하고 있는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알레고리적 관점이 아닌 하나의 중심적인 주제나 핵심적인 메시지를 찾으려는 관점에서 접근하여야하는 것처럼, 계시록의 모든 내용으로 부터 오늘 우리 시대나 세계역사와의 관련 점을 찾으려는 현학적인 자세가 아닌, 핵심적인 주제나 중심적인 메시지를 들으려는 자세에서 접근하여야한다. 계시록이 어떤 특정한 시대의 저자가, 어떤 특정한 시대의 상황에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당대의 저자와 독자들에게 다같이 익숙한 편지의 형식과 묵시문학적인 양식을 통하여 주어졌다는 사실과, 그리고 독자들이 그것을 읽거나 들을 때, 저자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쉽게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계시록은 나무의 관점에서보다 오히려 숲의 관점에서 먼저 접근되어야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그렇다고 한다면, 계시록을 통해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제시하고자하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무엇인가? 계시록 1:9절의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라는 구절을 통하여, 우리는 당시 계시록 저자나 독자들이 신앙 때문에 핍박과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만일 당시 요한과 그의 독자들이 한편으로는 스스로 자신을 신격화시켜 제사를 요구한 로마 황제 도미티안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인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유대교회당에서 크리스챤들을 추방하였던 유대교로부터 오는 핍박과 고난가운데 처해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다음과 같은 절실한 문제들에 직면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과 전세계역사를 통치하시는 분은 과연 누구인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로마 황제인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무엇을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주님께서 살아 역사하신다고 한다면, 왜 구원받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이 이 지상의 나라에서 고난과 핍박과 심지어 죽음까지 당하여야만 하는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이교도 로마황제와 그의 세력들의 진정한 정체(Identity)는 무엇인가?”


  계시록 저자와 독자들은 다같이, 자신들이 믿는 신앙과,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現世上에서 당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의 위기와 핍박사이에서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계시록은 분명히 요한의 당대 독자들이 당하고 있는 절실한 현안의 문제들에 부응하기 위하여, 즉 일차적으로 牧會的인 관점에서 쓰여졌음이 분명하다. 이점은 계시록의 첫 부분(1-3장)이 소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는 일곱 교회의 실제적인 문제들을 직접 다루고 있는 점에서 분명하여 진다. 계시록저자는 로마제국아래 살고 있던 당대 독자들이 네로 황제 이후 도미티안황제에 이르기까지 당하고 있는 모든 지상의 핍박과 고난을 천상의 관점, 곧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과 그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사탄과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계시록저자에 따르면,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이신 하나님과 어린양이 일곱인(6:1-8:5), 일곱 나팔(8:6-11:19), 일곱 대접(15-16)등의 병행적인 심판을 통하여 그들을 대적하는 사탄의 무리인 용과 짐승을 격파하고 승리하는 것은, 마치 일찍이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대한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와 그의 백성들로부터 구원하여내신 것처럼, 지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탄과 짐승을 대변하는 로마제국의 세력으로부터 당하는 고난과 박해로부터의 궁극적인 승리와 그 확실성을 강조해주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적그리스도(사탄, 짐승과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세상의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나라의 궁극적인 승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계시록에서 보좌에 앉으셔서 모든 사람들의 구원과 심판은 물론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어린양은, 이미 이 땅에 오셔서 그의 백성들을 위한 구원과 심판 위해 죽임을 당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이시며, 그리고 장차 재림하실 분이시다. 어린양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백성들의 신분과 삶의 여정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기독교 신자들은, 종말론적인 구원과 심판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유대교 신자들과는 달리, 한편으로 이미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구속사건을 통하여,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백성의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이미 죄와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이미 하나님의 나라의 왕적인 신분과 제사장의 신분을 누리게 되었다(계 1:5-5; 5:9-11).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아직 로마제국의 왕권이 미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궁극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 이 세상은 장차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로 바뀌어 지겠지만,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대립관계에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또 다른 한편으로 이 세상의 나라에 살고 있는 신자에게 있어서, 고난과 긴장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계시록에서 강조되고 있는 이 ‘이미’와 ‘아직’의 종말론이, ‘아직’만이 자리 잡고 있는 유대교 묵시문학의 종말론과는 대조를 이루는 독특한 것이다.


  계시록 저자에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한다 할찌라도,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갈 수 있는 궁극적인 구원과 승리가 보장되어 있는 반면에,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파멸과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계시록저자는 효과적인 문학양식과 상징과 구성을 통하여, 충성스럽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에게는, 보장된 승리와 구원으로부터 오는 놀라운 위로와 용기를, 반면에 그리스도를 배반하거나 대적하는 모든 불신자들과 사탄의 세력에게는 심판의 경고와 아울러 회개를, 각각 촉구하고 있다. 말하자면 계시록의 수많은 상징과 병행법을 통해 제시되고 있는 구원사적이고 종말론적인 긴장과 싸움에서 울려 퍼지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백성들은 어떤 자들이며(신분), 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삶)를 보여주는데 있다.


  만일 우리가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분과 삶이 계시록의 중심적인 메시지이라면, 계시록은 마땅히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시대의 크리스챤들과 사람들에게 선포되고 설교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계시록의 중심주제는 복음서에 나타나있는 예수님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물론, 신구약성경 전체의 중심 주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늘 우리 시대의 크리스챤들은, 비록 주후 1세기 말엽의 크리스챤들과 정확하게 동일한 역사적 정황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직면했던 유사한 문제들을 경험하고 있다. 오늘 우리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돈, 물질, 性, 정치세력, 이데올로기, 과학 등의 절대화와 우상화는, 1세기 말엽의 크리스챤들이 직면했던 로마황제의 신격화 못지않게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띄고 크리스챤들을 위협해오고 있다. 사실상 오늘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는 누구이며,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며, 이 세상에서 다방면에 걸쳐서 일어나고 있는 우상화의 진정한 정체성은 무엇이며, 이 세상에서 구현되어져야할 크리스챤들의 진정한 신분과 삶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계시록은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일찍이 일세기 말엽의 크리스챤들에게 그렇게 하였던 것처럼, 또한 오늘 우리에게도,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며, 역사의 구원과 심판을 수행하시는 분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역사와 신자의 정체성에 대한 패러다임과 열쇠가 되며, 이 세상의 나라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의해 정복되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우리가 계시록을 열고, 계시록을 읽고, 가르치고, 그리고 설교하여야하는 이유도 바로 이점에 있다고 하겠다.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