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청교도 신앙을 물려 받은 개혁주의자요, 성경연구가로 널리 알려진 아더 핑크가 크리스마스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피력한 글입니다. 그리고 설명이 필요없는 찰스 스펄젼의 글과 아이언 사이드 그리고 알렉산더 히슬롭의 글도 함께 실었습니다. 아울러 본 게시판에는 이들의 견해를 반대하는 라은성 교수(국제신대원, 역사신학)의 글도 게재했습니다(기사하단 관련기사). 양자의 글들을 모두 일독하시고 과연 어떤 견해가 타당한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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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그리스도) + mass(미사)
아더 핑크
보시다시피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로마이고, 이교주의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혹자는 말하겠지요. "크리스마스는 구세주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지 않습니까?" 과연 그럴까요? 만일 그렇다면 누가 그런 기념식을 제정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분명 하나님이 제정하신 날은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죽음을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자신"을 기념하라 하셨지 성경 어디에도(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그분의 탄생을 기념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더욱이 그분께서 언제, 몇월에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은 이것에 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생일을 기념하거나 축하한 경우는 성경에 두 군데 나오는데 파라오의 생일(창40:20)과 헤롯의 생일(마14:6)입니다. 과연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모든 성경말씀이 우리로 배우게 하려고 기록된 것임(롬15:4)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장본인은 누구입니까? 그것은 바로 모든 문명인들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믿지 않으며, 그분을 멸시하고 거절하는 이들, 그리고 그분을 따른다고 떠들어대지만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하며 주 예수님의 생일을 기념한다는 미명 아래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이들. 그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있지요. 자,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예수님의 친구들이 그분의 원수들과 함께 세상이란 테두리 안에서 육신적인 기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세상적 즐거움에 참여함으로 세상이 버린 그분을 기쁘게 하고 영화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과연 거듭난 크리스천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그 백성의 관습들은 헛된 것입니다. 기록되기를 "너는 악을 행하는 무리를 따르지 말지어다"(출23:2)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지킴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시간을 갖게 해줄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왜 하필 그 일이 구세주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명분 아래 이루어져야 합니까? 왜 세상의 잔치판에다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끌어다 붙여야만 합니까? 이것이 과연 세상의 상징인 이집트로부터 당신과 그 어린것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입니까?(출10:9-10). 오히려 이것이 오늘날의 이집트인과 함께 섞여 "잠시 동안의 죄의 쾌락들"(히11:25)을 즐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마땅히 가야할 길로 아이를 훈육하라. 그러면 그가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아이들을 "주님의 훈육과 훈계로"(엡6:4) 양육할 것을 명하고 있을 뿐 성경 어디에도 아이들에게 좋은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라고 나와있지 않습니다. 혹 우리는 정당하게 주님의 축복을 구할 수 없는 어떤 일에 종사하고 있을 때 아이들에게 좋은 시간을 갖게 하려는건 아닌지요?
세속적인 명절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일반적인 크리스마스의 풍습들(예를 들자면 선물교환)은 악착같이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유독 "선물 교환"을 언급한 것은 크리스마스에 있어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누구로부터 선물을 받았는지 명부가 작성되는데(머리 속에 기억해 두거나 종이에 적어둔) 이는 올해 그들에게 답례하기 위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과연 친구에게 보낼 이 선물이 받는 이의 기대치 (금전적인 가치를 포함하여)에 부응하는지 고심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도 그저 답례의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매년 상당량의 돈을 비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짐이 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만일 "선물"을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 친구들은 우리를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아마도 욕심많은 깍쟁이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먼저 정직하게 그들에게 이 사실을 통고하는 아픔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즉, 이제부터는 더 이상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 이유를 말해 주십시오. 즉 "크리스마스놀이"는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없는 완전히 세상에 속한 것으로 로마카톨릭의 이교적인 관례이므로 더 이상 당신이 이 열매 없는 어둠의 일과 교제할 수 없음(엡5:11)을 분명하게 말하십시오. 당신이 주님께 속한 자유인(고전7:22)이므로 세상에 속한 이 값비싼 관습에 매여있을 수 없음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구절이 담겨있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입니다. 왜냐고요? 그 이유는 그분의 말씀이 분명하게 모든 종류의 거룩치 못한 혼합물을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2:10-11은 이를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룩치 못한 혼합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과 로마의 "그리스도-미사(크리스마스)"를 함께 섞어놓은 것입니다. 카드를 보내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지 않는 친구들이나 믿는 친구들에게 성경구절을 써서 카드를 보내되(될 수 있는대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피하는 것이 좋겠지만) 단 거기에 "크리스마스"라는 문구는 붙이지 마십시오. 만일 어느 '버라이어티쇼' 순서지 맨 아랫단에 이사야서 53장 5절 말씀이 찍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누가 봐도 그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서커스나 극장보다도 로마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크리스마스 행사"를 더 훨씬 더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자는 우리 주님의 이름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지지만 후자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 아래 자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행로는 빛나는 빛과 같아서 완전한 날에 이르기까지 더욱 빛나리라"(잠4:18).
참으로 주님께서는 자신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자를 그분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주십니다. 만약 그분이 이러한 방침에 따라 자신의 사랑스런 백성들의 눈을 뜨게 하시어 그들이 슬픔의 사람(그분께서 땅에 계셨을 때)이셨던 그분의 이름에 "메리(유쾌한) 크리스마스"를 갖다 붙임으로 그분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신다면 저와 함께 하나님께 돌이켜 이 죄를 그분께 고백하고 거기로부터 완전히 건져주시도록 은혜를 구합시다. 그리고 이런 사실에 눈뜨게 하신 그분께 찬송을 올립시다.
사랑하는 동료 그리스도인 여러분. "주님의 오심이 가까웠습니다"(약5:8). 우리는 정말 이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믿으십시오. 실추되었던 교황권이 회복되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또한 우리가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기"(고후5:7) 때문에 믿어야 합니다. 정말 이 사실을 믿을 때 그 믿음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 보신적이 있습니까? 이번 크리스마스가 여러분에게 있어 이 땅에서의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될 지도 모릅니다. 크리스마스 시즌 중에 주님께서 호령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오셔서 자신의 백성들을 불러모으실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크리스마스 파티 석상"에서 소환되어 공중에 계신 그분을 맞이하길 원하십니까? 이 부름이, 믿음 없는 현 기독교계를 향해, 당장 그분의 이름으로 변장한 이 지독한 종교놀음에서 벗어나 "그분을 맞이하러 나오라"(마25:6)는 부름임을 명심하십시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자 선악간에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으로 이룬 것들을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이 얼마나 엄중한 말씀입니까? 주 예수님께서 선언하여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무슨 근거 없는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일일이 해명하게 되리라"(마12:36)고 하셨습니다. 모든 근거 없는 말이 그렇게 될진대 하물며 낭비된 힘, 낭비된 돈, 낭비된 시간이야 어떻겠습니까?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 우리가 여전히 땅에 남아있어야 한다면 우리는 앞에 놓여진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늘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은혜를 그분께 부지런히 구해야 할 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이 주님의 칭찬이 지금 그리스도가 없는 자들로부터 받는 조롱과 비웃음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것입니다.
장차 그분의 거룩한 이름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우리 중 누가 자신이 이 땅에서 너무 엄격하게 살았음을 후회하겠습니까? "혼을 거슬러 전쟁하는 육체의 정욕들"(벧전2:11)을 지나치게 삼간다고 해서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 중 누구라도 꾸짖으시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이런 아주 사소한(?) 부분들에 타협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세상의 종교인들로부터는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겠지만, 과연 그날 그분이 웃는 낯으로 우리를 칭찬하실까요? 아! 우리가 죽을 인생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보다 그분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에 더 관심을 갖는다면... "너는 악을 행하는 무리를 따르지 말지어다"(출23:2).
아! 시대의 흐름을 따라 떠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 흐름을 거슬러 나아가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더 많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는 하늘의 상속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바입니다. "이 세상과 같은 모습이 되지 말고"(롬12:2),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세상이 거부한 그분을 따르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네 왕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 우리 모두는 주님의 이 말씀에 주의해야 합니다. 참으로 우리 각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내가 나의 발을 모든 악한 길에서 삼갔으니, 이는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기 위함이니이다"(시119-101). *********************************************************** 과연 그리스도인은 '크리스마스'를 경축해야 하나? 다음은 1871년 12월 24일, 찰스 스펄젼의 설교 내용입니다.
"우리는 때와 절기들에 미신적인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분명 우리는 현재 교회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소위 크리스마스를 믿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는 결코 '마스'(Mass: 미사)를 믿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라틴어로 불려지건 영어로 불려지건 간에 말입니다. 둘째, 우리는 구세주의 생일로서 어떤 특정한 날을 지켜야 한다는 성경적 근거를 도무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권위가 인정하지 않는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은 하나의 미신에 불과합니다. 이 같은 미신은 소위 구세주의 생일이라는 미명 아래 더더욱 긍정적으로 자리잡고... 3세기 중엽까지는 어떤 교회도 우리 주님의 생일을 기념하지 않았습니다. 서방교회가 먼저 그것을 받아들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방교회도 그 풍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날짜를 아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대신 미신이 그 날을 결정해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 날짜가 제법 질서있게 정해져 있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요? 아마도 오늘날 지켜지고 있는 종교적 축제일이 이교도의 축일에 따라 제정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세주의 생일을 정하려면 좀 그럴듯한 날짜를 정할 것이지, 12월 25일이 구세주의 생일이라니... 어쨌든 중요한 건 날짜가 아니지요. 다만 그분의 소중한 아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다음은 아이언 사이드의 계시록 강해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로마카톨릭의 관습에 반대하여 나왔던 현재의 프로테스탄트 진영에 다시금 이교 바빌론의 원리들과 관례들이 급속도로 퍼져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통탄할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작금의 교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명칭들에는 과거 개혁교회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 명칭들에는 과거 개혁교회가 들어본 적도 없는 것들이 많으며, 특히 사순절이나 성(聖) 금요일(수난절), 이스터(부활절), 그리고 그리스도의 미사(흔히들 크리스마스라고 부리지요)와 같은 성일들과 교회절기들의 부활은 이러한 사실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교의 축일들이 교회절기로 둔갑하게 되면서... 이 절기들은 분명 갈라디아서 4:9-11이 정죄하는 바에 속하게 되는데,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날과 달과 때와 절기를 지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현재 지켜지고 있는 성일과 교회절기들은(앞으로 덧붙여질지 모르는 절기까지 포함하여) 모두 바빌론에서 비롯되었으며, 과거 아쉬타롯(아스다롯)과 탐무즈(담무즈)의 신비숭배(mystery-worship)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를 통하여 그것들이 현재 우리에게까지 전해내려온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바빌론이라는 한 어미 밑에서 그를 닮은 많은 딸들이 나왔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알렉산더 히슬롭은 그의 명저 "두 바빌론: 이교숭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정직한 자들이 그 물결을 막아보려고 애썼지만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남은 자를 제외하고 이교적 미신에 빠져버린 교회에선 계속적인 배도의 역사가 일어났다.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이교도의 축제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데, 일년 중 크리스마스가 위치한 시기와 그 경축 의식들을 살펴보면 그 기원을 쉬이 알 수 있다." ☞관련기사: < 성탄절 기원을 찾아서 > ☞관련기사: < 성탄절은 이교적인가? >
스펄젼, 아이언 사이드, 알렉산더 히슬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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