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기원을 찾아서
라은성 교수(국제신대원, 역사신학)
성탄절은 영어로 Christmas라 부르는데 이 말은 Christ+mass의 합성어이다. 즉, 그리스도를 위한 예배라는 의미이다.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그리스도께서 12월 25일 태어났다는 것에 관해 논란이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성탄절이 옛 율리안(Julian) 달력에 근거하여 1월 6일에 축하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탄생 일자에 관해 일치하지 않고 있는데 어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이 늦여름이나 이른 가을로 보거나 아니면 봄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목자들이 탄생 당시에 들판에서 양떼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8에서는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라고 했다. 12월은 팔레스타인에서 우기이며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목자들이 양떼를 치기를 꺼릴 뿐만 아니라 10월 중순부터는 그들을 따뜻하게 보호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12월 25일에 지켜지는 성탄절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본다. 약 4,000년 전, 즉 미스라(Mithra)에서 유래되었다고 보인다. 미스라는 고대 이란의 빛의 신이었다. 미스라의 상징은 태양이다. 이란인들은 2,500년 동안 자신들의 국기에 이 상징을 사용했다.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 이 축제를 행하고 있다. 동지(winter solstice)인 12월 21일은 이란에서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 그 날은 “얄다”(Yalda)라 불리는데 어두움에 관해 빛의 승리를 의미하며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상징한다. 미스라이즘(Mithraism)은 알렉산더에 의해 페르시아인들이 대패한 후 헬라 군인들에 의해 유럽에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A.D.4세기에 이르러 유럽 전역에서 지키게 되었고 마침내 기독교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미스라의 숭배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소개되었다. 로마인들은 이 축제를 “농업의 신”(Saturn, 토성)을 축하하는데 채택했으며 태양신의 재탄생을 기리면서 동지에 행했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 휴가를 “농신제”(Saturnalia)로 알려졌고 이 기간은 12월 25일의 일주일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 축제에서 사람들은 선물을 서로 주고받으며, 잔치를 베풀고 덴드로포리(dendrophori)라 불리는 농업의 신의 사제들은 상록수 화환을 가져온다.
동지 후 낮이 길어진다는 사실을 놓고 고대인들은 태양신이 3일 후에 죽음에서 일어난다는 신화를 만들어내었다. 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이와 같은 신앙은 후기에 기독교에 섞여졌다. 로마 카톨릭에서 가장 주요한 성례인 미사(mass)는 로마 카톨릭에서 지켜지는 성체식을 말하지만, 프로테스탄트는 이것을 성찬식이라 부르는 성례이다. 이 미사는 최후의 만찬에 제정된 것으로 떡과 잔을 축성하며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례이다. 그래서 성탄절의 mass라는 단어는 죽음을 의미하며 미사의 예식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하며 그의 부활을 의미한다.
기독교가 유럽에 뻗어나가기 전 로마인들은 12월 25일부터 1월 6일까지 이 축제를 행했다. 미스라이즘은 황제 코모두스(Commodus)와 황제 율리안(Julian) 당시에 호평을 받았고 307년에 이르러 황제 디오클레치안(Diocletian)은 미스라에게 드려지는 성전을 다뉴브(Danube)강에 세웠다. 그리하여 미스라이즘은 로마로부터 북부 아프리카의 누미디아, 영국과 스코틀랜드까지 뻗어나가게 되었다. 313년 황제 콘스탄틴이 개종 후 기독교는 로마제국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성 제롬(St. Jerome)에 의하면 미스라이즘은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특별히 지배적으로 지켜졌다고 한다. 그래서 4세기에 이르러 교황 레오(Leo)는 미스라 성전을 무너뜨렸다(376년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중에 거행되는 편리함 때문에 태양의 탄생 미스라 축제는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교회가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Dionysius Exiguus)에게 명하여 이러한 인기 있는 축제를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지키라고 명한 때는 530년이었다. 기독교로 개종했던 황제 콘스탄틴은 이미 이교도 축제를 그대로 지켰고 그것을 성탄절의 “기독교의” 휴일로 바꾸었던 것이다.
하지만 성탄절에 장식용으로 사용되는 상록수(소나무, evergreen)는 부활한 태양신을 기릴 뿐만 아니라 율레(yule)신을 축하하고 예배하는데 사용되었던 독일에서 유래되었다. 상록수는 생명을 상징하며 다산 숭배를 행하는 음경을 상징하기도 했다. 또 빨간 호랑가시나무(red holly)는 하늘의 여왕, 즉 다이애나(Diana)의 월경을 상징했다. 성탄절 장식용으로 사용되는 겨우살이(mistletoe)의 흰색 낱알들(berries)은 태양신의 정액의 흔적을 상징했다. 성전이나 가정 문에 내거는 화환들은 신과 여신의 영들이 자신들의 몸에 들어가서 다산을 낳게 하기를 기원하는 것을 상징했다.
New Schaff-Herzog 종교백과사전은 이런 점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성탄절의] 축제일은 농신제(12월 17-24일)를 따르는 이교도 브룬말리아(Brunmalia, 12월 25일)에 의존하고 있고 그 해의 가장 짧은 낮의 날을 축하하며 ‘새 태양’을 의존하기 때문에 . . . 정확하게 확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교도 농신제와 브룬말리아가 기독교에 깊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오래된 관습에 떼어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 . . 이교도 축제는 너무나 인기 절정에 이르렀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고 그 축제를 즐기고 행하고 있다. 서방과 근동의 기독교 설교자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부적당하게 사용되는 것을 매우 분노했다. 메소포타미아의 기독교인들은 서방 기독교인들을 향해 우상숭배라고 비난했고 태양 숭배를 기독교 축제로 받아들였다고 비난했다.
종교개혁 이후 이러한 배경을 알고 있고 경건한 프로테스탄트들은 성탄절 지키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영국 청교도들과 비국교도들은 그 대표적인 예였다. 1644년 청교도들이 영국 의회를 장악했을 때 12월 25일에 성탄절 지키는 것을 반대했다. 그 대신 장날(market day)로 지키게 했으며 군인들은 성탄절 준수를 탄압하기도 했다. 미국 청교도들은 이 날을 “교황의 날”로 명명하기도 했다. 1659년에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공식적으로 성탄절을 금지했고 20년 동안 지속되었다. 심지어 1870년까지 12월 25일에 학교를 닫지 않고 지속적으로 교육을 실시했다고 한다. 1836년에 이르러 앨라배마 주에서부터 성탄절을 공휴일로 정했다. 그리고 남북전쟁이 되면서 하나씩 공휴일로 정했다. 점점 성탄절은 그리스도의 탄생보다는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되어갔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지켜온 성탄절이 허무하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먼저, 정확한 성탄절, 즉 성육신의 날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또 그 날이 이교도의 태양신을 축하하는 날이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람이신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그 날을 지켜왔다. 그리스도께서 그 날에 태어났다고 하며 성탄절 축제를 행하지 않았다. 성경 어디서에서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라고 되어 있지 않다. 오직 그의 죽으심을 축하하라고 되어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 2,000년 동안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지켜왔다. 이교도의 축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날에 그 분이 태어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날이 무엇에서 기원되었던지 간에 그 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여기지 않는다. 그 날이 비록 이교도의 의미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우리는 전혀 다른 의미로 그 날을 받아들이고 축하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성 어거스틴의 말을 기억해 볼 만한다: “우리가 이 날(성탄절)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이교도들과는 달리 태양의 탄생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 날(성탄절)을 거룩하게 하신 분의 탄생 때문이며, 태양의 탄생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신 분의 탄생 때문이다”고 했다. 이 말의 의미는 분명히 기독교인들이 채택한 축제가 태양신의 탄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하지만 어거스틴의 말처럼 성탄절 축제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데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생명, 희망, 그리고 사랑의 탄생을 의미하는 축제였다는 것이다. 어두움에 대한 빛의 승리이며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의미로서 채택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말한다. 그렇다! 기원은 이교도였는지 몰라도 우리는 그 날을 우리의 것으로 삼고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성탄절에 어느 누구도 이교도의 심정을 갖고 지키기 않았고, 않을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2,000년 교회사 동안 우리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지켜왔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실을 말이다.
또 다 함께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 부르자. 죄인들을 위해 자기를 비우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오셔서 의인으로 만드신 새로운 창조, 놀라운 복된 소식,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자! 그는 우리들의 영원한 구주이시며 생명이시다. 그 기원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날에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 주님을 마음껏 찬양하자!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은혜가 넘치는 귀한 성탄절이 되기를 기원한다.
* 기사출처: 라은성 교수의 교회사 아카데미 *
☞관련기사: < 성탄절은 이교적인가? >
'복음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Christ(그리스도) + mass(미사) (0) | 2011.12.14 |
---|---|
[스크랩] 성탄절은 이교적인가? (0) | 2011.12.14 |
[스크랩]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0) | 2011.12.03 |
[스크랩] 교회안에 최고의 우상은 누구인가? (오인용) (0) | 2011.11.23 |
[스크랩] 위험한 짬뽕 혼합신앙 (0) | 2011.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