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나쁜신앙)

[스크랩] 힌두교의 본질과 기독교에 미치는영향

수호천사1 2011. 12. 2. 20:52

힌두교의 본질과 기독교에 미치는영향

 

 

들어가는 말

 

인간은 지적 동물(Homo Sapiens)이며또한 종교적 동물(Home Religius)이다. 바로 모든 인간은 신을 찾고자 하는 신지식(神知識)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것은 창세기 2장 7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오로지 인간에게만 그 코에 그의 생명을 불어넣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인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고 이로 인해 하나님을 등지므로 변질되어 버린 인간의 지혜가 어두워지고, 이제 죄 때문에 변질 되어 버린 인간은 미련한 지혜를 가지고 창조주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수많은 다른 신들을 찾으며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타락되어 갔다.

 

기독교 이외의 거의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힌두교 역시 범신론적 인본주의 사상에서 출발한다. 힌두교는 많은 사상이 혼합되어 교리나 의식 등의 표현이 너무 다양하여 신앙의 체계를 한가지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뚜렷한 신관이나 구원관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힌두교가 기독교를 포함해서 다른 종교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고 생각한다. 그 예로 상당한 현대 신학자들과 W.C.C에서 주장하고 있는 종교 다원주의 운동과 몇년전 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기독교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중의 하나인 초월적 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요가 등이 힌두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심각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면에서 본고에서는 힌두교의 역사와 교리, 신관, 구원관 등을 살펴보고 힌두교와 기독교의 비교를 통해 힌두교가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몸 말

 

1. 힌두교의 교리와 역사

 

1) 어원과 정의

 

힌두교(Hinduism)는 인도에서 발생, 모든 종교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로써 ‘힌두(Hindu)'와 ’이즘(ism)‘의 합성어이다. ’Hindu'란 원래 인더스강의 산크리트인 신두(Sindhu)의 페르시아 발음으로서 인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의미로 볼 때 힌두교는 문자 그대로 인도의 종교를 뜻한다.

 

힌두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종교의 하나로 특정한 교조나 교리, 중앙집권적 권위나 위계 조직이 없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신앙형태가 융합된 종교여서 간단히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막스 뮐러는 힌두교가 유일신론에서 다신론으로 발전하여 단일신론(henotheism)으로 발전하였다고 단정하였으며 다른 종교 학자들은 다신론, 범신론, 무신론, 유신론, 기독교에서는 다귀론으로 까지 정의한다. 그러나 힌두교는 신앙의 형태가 다양하여 모든 사람에게 모두 다르게 보인다고 할 정도로 신앙의 실천과 의식이 다르다. 때문에 인도 수상 네루도 힌두교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으로 나타나는 종교로 정의하였다.

 

2) 힌두교의 역사

 

힌두교는 BC 2000년경 북서부에서 침입한 아리아족의 종교와 원주민들의 종교가 합쳐져서 형성된 것으로 오랜 역사를 통해 발전되어 왔는데 주로 네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베다의 시대(B.C.2000-600)로 베다경이 기록되었으며 힌두교의 주요 교리를 발전시켰고 카스트 제도가 확립되었다. 이때의 신앙은 수많은 자연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데바(Deva)가 종교에 핵심 내용이었다고 본다. 당시에 발전된 주요 교리는 업(業,Karma)으로써 인간의 현재의 운명은 자신의 행위에 달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 시기는 도전과 부흥의 시대(B.C. 600-A.D.300)로써 현세 지향적이고 제사장 중심이며 귀족주의적인데 대한 반항의 시기이다. 이때 일어난 운동으로 파생된 종교가 불교와 자이나교이다. 아울러 이 시기는 유신론적 운동도 전개되어 힌두교의 삼위일체로 불리는 부라마, 비쉬누, 쉬바가 등장하였다.

 

셋째 시기는 푸라나(Puranas)시대(A.D 300-1750)로 신화와 전설, 신, 성자, 영웅들의 계보를 다룬 푸라나(古傳說)문헌들이 형성되었다. 이때 힌두교는 대중화에 단계로 접어들며 헌신과 예배를 체계화시켰다. 서사시와 푸라나를 만든 자들은 부족장이나 왕들의 궁전에서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읽는 수트라(Sutra)라는 궁전의 시인들인데 궁전 예의에 필요한 지식과 학문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중요한 경전은 바가바드-기타(Bhagavad-gita)로 학자들에 의하면 바가바드-기타에서 힌두교의 신학이 크리슈나라는 신을 중심으로 성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기는 힌두교와 회교를 혼합한 시크교가 등장 한때이기도 하다.

 

마지막 현대 시기(A.D.1770-현재)는 힌두교가 서구 문명과 기독교와 접촉하면서 개혁 운동이 전개되고 신 힌두교(Neo-Hinduism)가 일어났다. 근대 인도의 아버지로 존칭되는 람모한 로이(1772-1823)는 동서양의 종교와 사상에 대한 폭넓은 섭렵을 통해 모든 종교에서 신앙되는 신은 동일하다고 주장하여 요즈음 기독교에서 지적하고 있는 종교 다원화 주의를 주장했다.

 

그후 다야난다 사라스바타(1824-1883)는 베다로의 복귀를 주장하며 우상숭배, 제사, 다신교를 거부하며 인도 민족주의를 격려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어서 라마리슈나(1836-1886)로 폭넓은 종교적 편력과 신비 체험을 통해 모든 종교는 동일한 목표로 가는 바른길이다라는 로이의 주장을 따랐고 그의 제자 비베카난다(1863-1902)는 “라마크리슈나 선교회”를 설립했고 스승의 가르침을 펴고자 국제적 무대에서 활동하며 사회 봉사 활동도 전개했다. 크리슈나 선교회는 지금 서구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힌두교가 서양 문명과 기독교보다 우위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변증하는 비베카난다와 간디이다. 두사람은 영국에서 공부하며 기독교와 서양 문명에 접촉하여 기독교를 잘 알고 비판한 사람들이다.

 

3) 힌두교의 경전

 

힌두교의 경전은 산스크리트 어로서 지식을 의미하는 “베다”를 중심으로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 (Bhagavad-gita)등이 있다. 또한 이 경전은 “들은것” 이라는 뜻의 "Sruti"와 “기억된 것” 이라는 뜻의 "Smriti"로 분류되는데, 전자는 전설과 행위 강령과 예배모범등이 기록되었고 후자는 현인들과 하사자들이 해석한 진리 등이 기록되어 있다. 베다는 예언자를 의미하는 Rishis들이 보거나 들은 종교적 진리를 부른 찬가, 기도, 제사 의식, 마법적 문구들을 모은 것으로, 시편 베다(Rig-Veda)의 네 가지가 있다. 이들의 구성은 신들을 찬양하는 만드라(Manthra)와 신들을 즐겁게 하고 희생 제사를 드리는 브라마 나스(Brahma-nas), 철학적 이원론과 영적 진리에 관한 신비적 강화인 우파니샤구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베다는 힌두교의 신관과 윤리관, 우주관등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베다 이외의 중요한 경전은 우파니샤드(Upanishad)와 바가바드-기타가 있는데 우파니샤드는 B.C. 800-600년 경에 완성된 종교에 대한 사변적 글을 모은 것으로 석가모니는 불교의 원리를 이것에서 배웠다고 하며 쇼펜하우어도 이경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우주의 궁극적 실재인 브라만과 인간이 합일되는 과정을 묘사하는 우파니샤드는 종말론과 윤회사상의 교리가 나타나 있으며 힌두교와 불교의 원천이 되는 중요한 교리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바가바드-기타(Bhagavad-gita)는 힌두교의 경전이나 문학 중에 가장 대중화된 것으로 비쉬누신의 여덟 번째 화신이 크리쉬나와 자신의 사촌 형제들과 전쟁을 하려고 준비중인 전사 아류나와의 대화 내용이다. 이경전의 주장은 인간이 구원을 얻는데 중요한 수단이 경건(bhakti)임을 강조하며, 특히 신에게 헌신을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로서 신분을 중요시 여겼던 초기 힌두교와는 대조를 이룸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도 종교적 희망을 주고 있다. 이러한 경전들은 베다에 비해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적다. 힌두인들은 베다가 영원하고 비인위적이고 또 거룩한 진리의 완벽한 계시라고 믿는다.

 

4) 힌두교의 특징

 

힌두교는 다양한 형태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① 아트만-브라만의 교설: 영원불변하고, 전우주의 근원이자 궁극적 실재인 브라만이라는 중성적 원리가 있으며, 이것은 곧 인간 내면의 참다운 자아, 즉 아트만과 동하다. 브라만 자체는 무속성이며 비인격적이지만 비슈누(Visnu), 시바(Siva)라는 인격적 최고신으로 나타난다.

 

② 이슈타데바타와 트리무르티: 힌두인들에게는 특별히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것이 있 다. 그리고 신은 많지만 이들은 본질에 있어 단일한 존재이며, 최고 신격을 가진 창조신 브라마, 유지신 비슈누, 파괴신 시바는 단일한 실재의 세 측면(Trimurti:三神一體說)이다.

 

③ 베다와 브라만 계급의 권위: 가장 오래된 종교 문헌인 베다(Veda:‘지식’이라는뜻)는 근본적이고 완전한 진리의 계시서(Sruti)로 믿어진다. 브라만 계급은 브라만의 특수한 현현이며, 베다의 교사이자 전승자로서 신성시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힌두교는 그러한 의의를 다소 상실했다.

 

④ 아힘사(不殺生): 모든 생명의 근본적 단일성에 근거한 생명에 대한 존중을 내용으로 하는 아힘사는 채식주의, 소의 도살 금지 등으로 표현되었다.

 

⑤ 윤회(Samsara)와 (業:Karma):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현재의 삶은 반드시 과거의 행위(Karma)의 결과라는 업설(業說)은 생사(生死)의 반복적 순환, 즉 윤회사상(輪廻思想)과 연관된다. 업이 있는 한 시작도 끝도 없이 반복되는 윤회(Samsara)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 즉 해탈이 힌두교의 궁극적 목표이다.

 

여기서 해탈에 이르는 길에는 세 가지가 있다 고하는데 바가바드-기타(Bhagavad-gita)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 길은

 

첫째,업(Karma)의 길로 카르마를 생성시키는 것은 욕망이지 카르마 자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대한 이기적 집착심이 없이는 의무의 수행은 과오를 낳지 않으며, 따라서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둘째, 지식(Jnana)의 길로 참다운 자아는 육체나 감각 기관이나 사고 등이 아니라 영원불멸하는 아트만이며, 이것은 브라만과 동일하다는 직관적 통찰에 이른다.

 

셋째, 신애(信愛:‘Bhakti’)의 길로 인격신(비슈누 또는 시바)에 대한 헌신과 사랑의 길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길로서 독립된 교파로 발전된 것은 신애주의(信愛主義)이다. 또 이러한 윤회와 업의 사상은 간디의 독립운동의 이념적 기반을 이루었다. 그러나 일반적 힌두교도들에게 힌두교란 심원한 교리나 해탈의 실현보다도 전통적인 종교적 관행. 의식. 규정을 준수함으로써 현세에서 행복을 얻고, 내세에서 좋은 곳에 태어나는 길이라 인식한다.

 

2. 힌두교의 사상과 구원관

 

힌두교의 사상은 역사를 통과하는 가운데 다종의 신들과 지방적인 여러 가지 전통을 통하여 이루어 졌다. 그러나 이렇듯 믿기 어려울 만한 다양함 가운데 힌두교를 특징 지우는 어떤 본질적인 형태를 견지하여 왔다. 힌두교 구조 가운데 궁극적인 실제는 일반적으로 브라만(Brahman)이라 지시되는 “영”(靈)으로 구성을 이룬다. 이 물질적 우주는 그 자체가 참이 아니지만, 신들에게 물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포함하여 단지 현상적인 현현들로 구성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초자연적인 영역은 먼저 수천의 신들에서부터 수만의 영들에 이르기까지, 아래로는 귀신들로부터 정령들에 이르기까지 배열을 이루는 인격적이고 초자연적인 힘들로 구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주술은 비록 형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역시 힌두교의 대단히 중요한 국면으로서, 삶에 가(加)하는 우주의 그 영향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서민들은 가정에서 주술의 여러 가지 형태들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인간 자신은 네개의 중요한 카스트(Castes)에 수직으로 잘 구성을 이루게 된다. 이들 카스트들은 다시 몇 개의 작은 단체들로 세분하게 되고 거기에는 카스트 외(外)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종교의식 수용의 자격상실 때문에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금지를 당한 사람들이다. 인간 삶의 계급적인 구조 가운데 한 개인은 자신의 사회적 종교적 지위를, 전 생애를 통하여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종교 의식적인 결례(缺禮)의 수단에 의하여 어쨌든 그는 자신을 더 나은 지위에로 환생(還生)하게끔 준비를 갖출 수 있다. 이처럼 힌두교에 있어서 인간과 인간 이하 층의 세계와의 관계는 오히려 가까운 것이다. 이유는 종교의식 적인 결례를 지킴에 실패함은 동물 에로나 존재의 더 못한 차서(次序)에 까지에도 환생(還生)되는 개인의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을 죽이는 것을 극단적으로 겁을 내고 있으며 어떤 동물은 거의 신의 위치를 차지한다.

 

힌두교는 상호 이해(Communication)의 구조에 있어서 하나의 불가 분리의 요소는 브라만 계급(Cast)이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힌두교 사회에 있어서 독특한 계급이다. 단지 몇몇의 예외들이 있지만은 의식의 결례(潔禮)는 브라만의 중재로 이루어져야만 되고 그처럼 모든 사람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리고 궁극적으로 위대한 세계의 영혼(Brahman)에 제 합일(合一)이 되기 위하여 이들 사제(司祭) 계급의 중재에 의존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은 육체적 감각의 세계로부터 본질적으로 무한의 영의 세계에로 하나의 도피라고 여기며 그 도피 자체는 수백번 수천번의 환생의 결과인 것으로 일반적으로 여기게 된다. 이러므로 최종적으로 브라만 계급이 됨으로 그 힌두교도는 반신(半身)이 되며, 마침내 영혼의 세계의 일부분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경우 힌두교 교인은 영의 세계와 그리고 궁극적으로 브라만에 이르는 길로 다른 하나의 중요한 단계로, 하나의 거룩한 소(牛)로 환생되는 특권을 얻게 된다고 느낀다. 그리고 전통적인 힌두교에 대한 중요한 것들은 의식적 결례와 브라만의 직무이다.

 

현재 전통적인 힌두교는 인도에 있어서 경제적 사회적인 혁명에 힘입어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 혁명을 통하여 계급의 구별은 어느 정도 무너지고 있으며, 종교에 대한 옛 해석은 새로운 비신화화(非神化化)의 길을 걷고 있다. 때문에 일반 평민 중에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과학적 탐구의 영향이 신들의 장난의 이야기에 신중한 의심을 던졌고 그리고 브라만 계급의 종교적인 독점도 의문시 될 뿐 아니라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는 힌두교는 존재의 투쟁으로부터 오는 마지막 구원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그 자신을 종교의식을 가지고 깨끗함을 보존할 수 있다면 그는 결국 무한의 실재(實在)의 무아의 세계에로 몰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의미로볼때 힌두교의 구원관은 윤회(samsara), 업보(karma), 환상(maya)과 유일한 실재인 영혼(Atman)에 관한 교리로 표현되는 힌두교의 생활 이해는 여전히 사실상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으나 개인이 윤회를 피하기 위해 하는 활동을 제외하고는 여하한 활동에도 실제적인 기반을 제시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정신적인 양립 불가능 자들이 대치하고 상황에 있어 힌두교 고전시(Bhagavad-gita)가 크게 사랑 받는 경전으로서 이전에 지녔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명성을 얻고 있는 모습은 쉽게 이해가 된다.

 

힌두교 고전시가 제시하는 종교 유형은 남성적인 신앙과 신뢰의 종교이다. 그러나 인도 남부 지역의 헌신적(Bhakti) 힌두교인 들의 감미로운 어조에는 이러한 것이 결여되어 있다. 때문에 그들의 구원은 업보(karma)와 윤회의 정지상태로 본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원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려면 업(Karma)의 바퀴가 멈추어야 하며 구원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곧 그 바퀴가 계속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여건에 있어 그들에게 구원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초연하고 욕망이 배제된 행위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위는 결국 인과업보에 배제된 행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힌두교 고전시가는 세상(본질적으로 말하자면 실제로 공허하지만)과 행위에 대한 일종의 제한 긍정을 가르치고 있다. 힌두교 고전시가의 이러한 제한된 행동주의는 오직 개인 구원에만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주의는 오늘날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재천명을 목표로 하는 현대 행동주의의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3. 힌두교의 신관

 

힌두교의 신관은 주로 범신론이다. 그들은 신이란 형용할 수 없는 자존의 실재라는 것이다. 바가바드-기타에서 인용된 것 같이 신은 인격적이기도 하고 비인격적이기도 하며 최고의 신은 인간의 개념과 정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즉, 신을 인격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신을 제한적인 존재로 해석하게 되므로 신에게 인격성을 부여하기를 거부한다. 또한 이들이 믿는 신은 존재의 근원이라고 보는 브라만을 최고의 신으로 해서 자기가 원하는 하나의 신을 숭배하는 신의 화신(Incarnation: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신을 믿는 것)과 가장 낮은 신으로 이해되는 귀신과 우상을 섬긴다. 이와 같이 힌두교의 신관의 중요한 특징은 최고의 신이 브라만을 믿으면서 다른 많은 신을 동시에 섬기는 것이다. 또한 힌두교의 신관은 다신론 혹은 교체일신론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이나 우상을 섬겨도 궁극적으로 최고의 신에 도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많은 신들이 오랜 역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시대에 따라 신들이 형성되었으며 샤머니즘과 같이 일종의 계보를 형성하고 경배의 대상으로서 인간이 만든 것이다. 이러한 신들은 곧 인간의지, 욕망, 사상의 투영으로서 인간과 질적으로 다르지 아니하며 내재적이다.

 

힌두교의 신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브라만: 인격적으로 묘사하기를 거부하고 He나 Thou 보다 That라는 중립으로 표현하므로 중립이며 비인격적이면서도 존재의 기원이며 원인으로 본다. 브라만에는 순수한 존재(Sat), 순수한 이지(Cit), 순수한 기쁨(ananda)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불교의 니르바나와 유사한 개념으로 신은 물질 세계에서 독립되면서도 동시에 물질과 동일화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②베다경에 나타난 여신들: 불의 신인 아그니(Agni), 하늘의 신이며 전쟁의 신인 인드라(Indra), 우주 질서의 신인 바루나(Varuna)가 있다.

 

③베다경 후기의 신들: 브라마는 창조의 일을한 신으로 그의 존재는 추상적이며 비쉬누는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보존의 신이며 사랑의 신이다. 쉬바는 파괴의 신이면서 생식의 신으로 생명의 파괴자이고 재창조자이다. 이러한 세 신들은 소위 힌두교의 삼위일체로 불린다. 이처럼 힌두교는 스스로 많은 신들을 양산해 내므로 자연주의적 일원론으로 이해할 수 있다. 힌두교의 모든 신들은 우주적, 자연적,정의 영역에 속하며 신들 역시 인간처럼 죽고 업(karma)의 법칙에 종속되며 내재성의 분위기에 젖어 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힌두교의 신관은 특정한 소망성취 혹은 구원을 위한 일을 돕는 보조적 구성물로 볼 수 있다.

 

4. 힌두교가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

 

1) 힌두교와 종교 다원주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힌두교의 그 형태와 사상이 다양한 다원주의라 볼 수 있다. 이러한 그들의 사상은 어느 종교와도 잘 흡수되며 융화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힌두교는 성격적으로 볼 때 성경이 금지하고 있는 여러 우상 신들을 섬겨 왔고 이로인해 성경 말씀대로 “조각한 우상을 의뢰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를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사42:17)는 말씀처럼 서구의 식민주의를 통하여 크게 수치를 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모든 신은 하나님에게로 통한다”는 그들의 주장과 같은 종교 다원화 주의가 출현하므로 보이지 않게 힌두교가 서구 문명과 기독교에 상당한 영향이 미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즈음 기독교 내부에서 종교 다원화 문제로 상당히 열띤 경쟁들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세계 종교를 연구하고 이들 종교들을 비교하는 종교 학자들의 계속적인 연구 성과에 힘입어 타종교, 특히 동양 종교의 깊이에 접한 많은 신학자 중에서, 이제 ‘기독교만’이라는 고집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다원주의란, 학자들에 따라 각각 약간씩 다른 견해를 보이지만, 그 핵심은 영국 신학자 알랜 레이스(A. Race)가 지적한 대로, “신에 대한 지식은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서 어쩔 수 없이 부분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각이한 종교들은 신에 대한 보다 완전한 진리가 인류에게 제공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마치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들처럼, 서로 자기들이 만진 것이 코끼리의 전부인 양, 실상인 양, 자기들의 소견을 절대화하지 말고, 서로 한 자리에 앉아 각자 자기들이 만진 코끼리 상을 이야기하고 서로 의견들을 교환하므로, 모두가 좀더 실체에 더욱 가까운 코끼리 상을 가지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자는 태도이다.

 

종교학의 창시자 막스 뮐러(Max Muller)는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알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남의 종교를 아는 것은 나 자신의 종교를 더욱 깊이 깨닫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한스 큉 역시 남의 종교를 아는 것은 상대방 종교가 들어주는 거울 앞에서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종교들의 접촉은 이런 철저한 ‘자기 비판’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원주의적 태도가 성경 말씀에 위배된다. 사도행전 4장 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때문에 타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이외에도 힌두교는 이제 성경까지 인용해 가며 기독교를 잠식하려 하고 있다. 비베카난다는 신약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도다”라는 말씀을 세상의 부정에 대한 금욕의 교훈으로,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안에 있다”는 말씀은 신과 인간의 합일로 해석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이 라고 하는 구원의 핵심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나사렛 예수에게만 하나님을 찾지 말고 그 이전에 온 위대한 신들과 또 이 이후에 온 위대한 모든 신들에게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자유롭고 제한이 없습니다. 이들은 다 무한한 하나님의 나타나심입니다.”라고 하면서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동일하다고 역설하므로 종교 다원화 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2) 힌두교와 뉴 에이지운동(New Age Movement)

 

오늘날 뉴 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은 이제 미국과 유럽을 뛰어넘어 전세계로 번져 이제 우리들 앞에까지 확산되어 가고 있으며 그 영역은 문화, 예술, 종교를 총망라한 통합적인 양상을 띄고 있다. 그 중에서 특별히 힌두교에서 부터 출발한 초월명상 (T.M:Trancendental Meditation)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까지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초월명상이란 힌두교의 경전인 베다에서 기원이 되었으며 1965년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Marharish Maheshi Yogi)에 의해 미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이것은 입문 단계에서는 이십분씩 자리에 앉아 긴장을 풀고 두눈을 감고 명상에 몰입하는 가르침을 받으며 각자는 명상 촉진을 위해 나름대로의 독특한 만트라(Mantra)를 받는다. 여기서 만트라(Mantra)란 산스크리트어로 암호말, 힘을 주는 말로써 주문과 같다. 그리고 자신의 만트라(Mantra)는 남에게 노출시키거나 공개해서는 안되며 만약 이렇게 했을때 그 힘을 잃는다고 한다. 명상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이 만트라를 계속 되풀이해야 되는데 그 명상은 무의식의 문을 열어 그 힘을 동원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초월적(Transcendental)명상은 비기독교 적이며 비성서적이다. 초월이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역으로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인데도 불구하고 이 명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역에까지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또한 생각없이 외우는 만트라(Mantra)는 인간의 의식이 무시되고 오히려 무의식이 자유롭게 활동함으로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전체가 순간순간 성령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의 능률을 위해서, 또는 신체의 건강을 위해서 심지어는 기독교인들까지 이 초월명상을 한다는 것에 대해 그 심각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찰스 하지가 지적했던 대로 힌두교의 다양성과 철학적인 요소로 인하여 기독교에 도전이 될 것을 예고하였는데 이것이 적중한 셈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에 힌두교가 우리의 삶의 영역에 미치고 있는 이러한 영향들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들의 영적인 지위인 하나님의 자녀 되는 특권을 사탄에게 농락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오는 말

 

힌두교는 이 세상의 어느 종교보다 신앙의 표현이 다양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리 적으로는 대단히 포용적이어서 역사가 발전하면서 다른 종교의 사상이나 교리를 흡수하는데는 대단히 능하였던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최근에 와서는 기독교를 연구하여 비베카난다와 간디등은 기독교를 잘 알고 비판하며 정면으로 기독교에 도전해 왔다. 이러한 힌두학자가 기독교에 기독론을 인용한 글을 보면 예수님이 동양인중에 동양인이라는 주장과 아울러 기독교를 동양 종교화시키며,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힌두교 철학에 대입시켰고 그리스도는 당시 유대 나라의 사회적 상황에서 나온 예언자적 인물로 세상의 무상을 가르치기 위하여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하였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유대의 화신(Incarnation)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힌두교 철학과 종교는 물질만능의 서구적 가치관에 환멸을 느끼는 현대 서양인들에게 금욕적이고 자아부정인 윤리관과 초월의 세계를 실재적 현실로 가르침으로 기독교가 우위를 차지하던 서구 문명에 영향을 미치며 하나님의 영의 세계와 사탄의 초자연 세계를 부정하며 세속주의화한다.

 

힌두교의 목적은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브라함(Brahm)신에게서 구별되어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려는 해탈에 있다. 그러나 해탈(Mogsa)은 자아의 멸상일뿐 진정한 구원은 아니다. 때문에 이들은 개인적 책임감이 약해지고 계급에 관념을 가지게 되며 속죄의 사상도 없다. 이것은 신 중심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 중심 적인 인본주의에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

 

종교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때문에 칼빈도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면 안되도록 창조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힌두교는 종교를 인간이 만든 의식으로 여긴다. 기독교에서 종교란 하나님의 작정이고 계획이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라고 말씀한다. 아울러 여호와만이 유일한 신이요, 하나님을 믿는 종교만이 참 종교이기 때문에 다른 신이나 종교의 존재를 인정치 않는다. 기독교의 자리는 ‘마음(Heart)’이며 마음은 영혼의 중심기관으로 종교를 인간두뇌 작용에 소산도 아니고, 감정적 느낌만도 아니며 도덕적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다.

 

힌두교를 비롯한 많은 세속종교는 “한다(do)"에 역점을 두지만 기독교는 ”했다(done)”에역점을 둔다. 구원은 인간의 어떠한 행위로도 얻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성취하심으로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살아 계심을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를 통하여 인간에게 나타내 보이시고 이 모든 계시에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 자신에게로 인도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참 진리되신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주시고 불러주심에 대한 진실한 감사와 믿음으로 어두워져 있는 이방신들을 섬기는 세계의 민족들에게 참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드려야 할 것이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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