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Hinduism)에서의 성(姓)
인도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세상에 그 전모(全貌)가 알려진 것은 1920년 경 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6,000년으로 추정하는 학자도 있음) 흑해 카스피해 아랄해 이북의 인도-유럽어족들 중 여러 종족의 아리아인(Aryan:이란어족)들이 이란 고원에서 힌두꾸시 산맥을 넘어 목초지(牧草地)를 찾아 들어온 것이 간지스강 유역이었는데, 물=강(江)=신두=인더스강의 산스크리트 명칭‘신두(Sindhu:大河)를 찾아 헤매였기로, 아 물!!(힌두:himdu) 하는 말에서 인더스 또는 <인도>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그 인도는 India, Indien, Hindustan,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는 천축(天竺) 또는 월씨지국(月氏之國)으로, 중국에서는 그 외에도 信度, 身毒, 辛頭, 申毒, 眞定, 天豆, 天定등으로도 표기되었었다.
베다( Veda)에 보면, 인도에는 드라비다족(達羅毘茶族:Dravidian)이라는 코가 없는 검둥이(黑色無鼻:코가 납짝하다는 표현: 추측컨데 베드남 또는 캄보디아 인들이 그 후손일 법하다고 생각을 해본다) 선주민(先住民)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은 모계가족제도(母系家族制度)의 공동사회였으며 수호신으로 여신(女神)을 숭배하며 또한 성기숭배(性器崇拜)와 더불어 뱀(蛇神)이나 수목(樹木) 등을 숭배하였었다.
인도에 들어온 여러 아리안족 들도 처음에는 이러한 선주민 들을 혐오하였으나 차차 그런 원시신앙에 동화하였다고 되어있다. 처음에는 군소 집단들이 따뜻한 지방을 따라 유목민으로서 이주하던 것이 기원전 1300년 전 경부터는 유럽의 여러 아리안 족들이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무력침입을 강행하다가 기원전 1000년 전 경 부터는 갠지스강 상류에 평화스럽게 전출 농경사회를 구축하고 <카스트>의 원형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힌두교란 어떤 특정한 개조(開祖) 즉 다른 종교와 같이 어떤 시조(始祖)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관된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니며, 그져 1천 수백년을 내려오는 동안 새로운 땅에 정착한 인도인들 사이에 조성된 신앙과 풍습의 종합체라고 할 수 있는 만유신교(萬有神敎:Pantheism)로서, 처음엔 <베다>의 종교 곧 부란만교(婆羅門敎:Brahamanism)이었다가, 후에 마하바라타 서사시(敍事詩) 이후를 힌두교(印度敎:Hinduism)이라 칭하게 되었으나 엄밀한 구분은 아니다. 다시 말해 힌두교란 부라만교가 민간신앙을 흡수화 해서 대중화한 것으로서, 인도의 국민적 종교로 자리를 굳힌 것인데, 부라만교가 애시 계급종교로서 부라만 계급만이 독점하던 폐쇠적이고 배타적이던 것을 기원전 2세기경 굽타조(Gupta朝)에 이르러 <베다>신앙에 바탕을 두고 서민생활의 신앙으로 새로 탈바꿈한 것을 힌두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전이 베다(veda)이며, 업(業)과 윤회(輪廻)가 그 골자이다.
<베다> (吠陀, 韋陀, 皮陀:Veda)란 지식 또는 종교적 지식을 뜻하는 말이며 하늘의 계시로 쓰여진 것이라 해서 계시성전(啓示聖典 :천계:天啓:Shruti)라고 한다. 그 베다는 범아여일(梵我如一)사상을 기초로 윤회(輪廻) 해탈(解脫) 그리고 종교적 철학적 문제를 다룬 우파니새드(Upanishhads:奧義書)와 Samhita, Brahmana, Aranyaka 의 4종으로 되어있고, 그 외 부속서(Vedaangas)도 포함한다. 가름하여 우파니샤드의 4가지 근본진리가 바로 까마(Kama:퇴락:頹落:애욕:愛慾:의욕:意慾), 아르타(artha:부귀:富貴), 다르마(dharma:의무 및 원리:업:業) 및 목샤(moksha:구원:救援:해탈:解脫)이다. 이것이 후에 불교에서는 4대원리 핵심인 카르마(karma:업:業), 삼사라(samsara:윤회(輪廻), 달마(dharma:達磨:진리:眞理), 목샤(moksa:목티:mukti:해탈(解脫)로 되었다.
베다에는 여러 신(神)들이 나타나는데, 그중 래틴(Latins)에는 쥬피터(Jupiter), 그리스의 최고신 제우스(Zeus)에 해당하는 천신(天神)이 디야우수(Dyaus)이고, 그의 딸 유샤스(Usas)가 새벽의 신이다. 이 유샤스는 영원한 처녀로서 태양의 신 수르야(Surya)의 영원한 연인으로 묘사된다. 인도인에게 인기가 있는 신(神)은 바루나(Varuna)神인데, 그는 대자연의 창공(蒼空)의 신이며 또한 사법신(司法神)이다. 그는 윤리 도덕 규율을 수호하며 인간의 죄를 엄하게 단죄한다. 그러나 귀의(歸依)하면 너그러이 용서하고 그 조상들의 죄까지 사(赦)하고 장수복덕(長壽福德)을 내린다.
저승길을 개척한 야마(Yama★)는 저승왕(Yama-raja:염마라합:閻魔羅閤)이 되었다. 야마의 세계는 이상적인 천국으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화장(火葬)을 하고 그때 그 혼백은 연기나 불의 신(火神 ) 아그니의 날개를 타고 야마의 세계로 간다. 거기서 완전한 육신을 되찾고 신들과 조상들을 만난다고 믿는 것이 전생윤회(轉生輪廻)의 사상이다. 이 윤회사상 때문에 인도인들은 죽음에 대하여 매우 낙천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베다 시대에는 신(神)도 인간도 모두 쇠고기를 먹었다. 그리고 가족은 일부일처의 가부장제(家父長制)로서 3대가 한집에서 살았으며, 여자의 지위는 매우 낮아서 죽은 후에 혼백도 남자와 같은 대우를 못 받았다. 과부의 재혼은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으며, 아들이 없는 경우 남편의 형제와 결혼할 의무까지 있었다. 그러나 왕족은 일부다처제가 확립했다.
그후 기원전 10세기경부터 아리안 인들은 갠지스강 상류의 기름진 평원을 점거하고 그후 3백년동안 군소 국가들이 약육강식으로 기흥과 소멸을 번복하는 동안 사람들이 왕제국가(王制國家)를 탈피해감에 따라 왕권의 세습화를 위하여 인도 특유의 카스트제(Caste制)의 틀이 형성되었다.
카스트란 서양사람들이 붙인 말로서 가계(家系) 혈통 등에서 나온 말이며 인도사람들은 계급이라는 뜻의 바르나(Varna)라고 한다. 카스트는 직업까지 세습되는데, 첫째계급은 제관(祭官)들인 부라만 (Brahmin:브라마나:婆羅門:司祭族)이고, 다음계급이 왕족이나 무사계급인 샤트리아(Kshatrya: Chetri: 刹帝利:王·武士族),세 번째계급이 선민 즉 평민인 바이샤(Vaisya:Basya:毘舍) 그리고 맨 하층계급인 노예나 천민층인 수드라(Sudra:首陀羅)이다.
이름만으로도 신분계급을 식별할 수 있으니 부라민(Brahmin)계급에는 Neupane, Koirala, Paudel, Nirwala, Pokhrel, Regmi, Chiluwal, Adhikari, Dhakal 이라는 이름이 많고, 샤트리(Chetri:Kshatrya)계급에는 Shaha, Rana, Thapa, Basnet, Khadka, Karki등의 이름이 많다.
그리고 제3생종(生種)인 Basha:Vaisya는 다시 Newars, Thakalis,, Kiratis (Rai &Limbu), Tamangs, Magars, Sherpas, Gurungs, Tharus, Danuwars, Majhis, and Darais, Raj bansis, Dhimals, Satars, Meches의 14부류로 또 나누어지고, 최하급 천민인 Sudra들도 또 Damai, Kaami, Sunawar, Sarki등의 4부류로 나누어진다.
이 사생종성(四生種姓:Caste)에 의하여 선주민(토착민)들은 개 돼지 같이 취급되어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으로서 인간부정(人間否定)의 대우를 받았었으니 이는 후에 아메리칸 인디언보다 더한 인간이하의 취급이었으나, 부라만은 인간인 동시에 신으로 모셔졌다. 인도인들이 이마에 붉은 점을 그리는 관습은 그 실 이 카스트의 각각 달른 표시를 하여 쉽게 그 신분을 식별하기 위한 관습에서 전래된 것이다. 그 카스트의 성립과 더불어 의식(儀式)이 성립하여 습지(濕地)발생의 다신교(多神敎)인 <부라만>교가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즈음의 안목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뿐더러 사회주의 안목으로는 분개를 금치 못할 이 카스트제도는 평등사상에 위배되는 인권의 부정(否定)이지만 그러나 그 캐스트제의 최고급인 브라만들은 대우 받는 만큼 업적도 많았으니 우선 그들은 농경과 밀접한 천후(天候)를 알아야했다.
그로부터 발달한 것이 천체(天體)를 관측하는 천문학, 역산학(曆算學), 수학이었고 최초로 영(零:Zero)의 발견, 그리고 십진법, 무한대, 삼각법 등을 발견하였으며, 뉴톤의 만유인력보다 훨신 이전인 기원 400년경 찬드라굽타 왕조(Chandra gupta王朝)시대에 벌써 <지구는 다른 물체를 그 무게에 따라 끌어당긴다>라는 인력(引力)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또한 기하학의 발달로 원주율(圓周律)을 활용하여 거이 정확할 정도로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이루워진 부라만교는 기원 4--5세기 경 넓은 남인도 지방과는 달리 북인도 동북부지방 갠지스강 유역 파타리프트라(華氏城)의 굽타왕국(Gupta王國)이 세 번째로 통일국가를 이루어 그 나라의 아소카왕이나 카니시카왕의 보호아래 불교와 자이나교가 성행함에 따라 힌두교는 눌려지내게 되었으나 다시 세력을 얻어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 마누법전들이 이 때 모두 정리 완성되었다고 한다.
베다에는 4종류가 있는데, 신(神)에 대한 찬가를 모은 리그베다(讚歌 :Rigveta) 선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시가(詩歌)를 모은 사아마베다(歌詞:Samaveta), 공양(供養) 희생 제사(祭祀)의 실무에 관한 책 야주르베다(祭詞:Yaijurveta), 그리고 재액(災厄)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주법(呪法)의 아타르베다(呪詞:Artharvaveta)로 되어 있다.
인도의 역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부라만(Brahmann:婆羅門)의 경전(經典)인 리그-베다(Rig veda)의 범아일여(梵我一如)사상이란, 절대자(絶對者) 부라만(brahman:梵:우주의 원리)과 개인의 주체인 아트만(Atman:我:개인의 원리)의 일치를 설파하는 것이며, 다신교(多神敎)로서 남성 성기인 남근(penis: 링가:Linga:Lingham)과 여성 성기 vagina인 요니(Yoni:yom)를 숭배하며, 우주의 원리이고 보편적 영(靈)인 부라만과 개개인의 혼(魂)인 아트만과의 동일성을 인정하는 사상이므로, 남(男)과 여(女)의 결합과 그 결합의 절정적 엑스타시(Ecstasy:무아경:無我境:황홀감)가 바로 각 인간의 우주와의 합일(合一)의 경지인 성(性)이라는 것이어서, 성행위를 신비시 신성시 한 것이다. 하여 그들은 그 옛날 가마수트라(Kama Sutra) 성전(性典)을 펴냈고, 수많은 미투나상을 비롯 각양각태의 성교양태를 사원(寺院)에 조각하여 놓았던 것이다. 뿐더러 죽음이 삶보다 좋다는 믿음까지 가진 신자도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힌두교의 또 하나의 성전(聖典)인 마하바라타(摩訶婆羅多:Mahabarata)는 비야사(Vyasa)라는 선인(仙人)에 의해 서술된 총 10편 10만6천구(句) 20만행(行)의 세계 최대 서사시이다. 내용은 전쟁의 서사시를 중심으로 전설 우화(寓話) 도덕 제도(制度)에 관한 집대성인데 그 주제는 바라타족의 왕위쟁탈전의 긴 싸움에 대한 서사시이다. 그 내용인즉; 쿠루왕가(Kuru王家)에서 오형제(五兄弟)를 거느린 동생이 왕위에 올랐으나 일찍 죽었다. 그의 뒤를 이어 일백왕자(百王子)를 둔 장님인 형이 왕위를 이었다. 늙은 장님왕은 죽은 동생을 생각하여 지용(知勇)이 뛰어난 오형제중 맡형을 왕위에 계승코자하였으나 자식들인 백왕자들이 질투를 하여 결국 사촌(四寸)간에 치열한 사투가 벌어진다. 오형제들은 편잘라국(Panchala國)으로 피신하였고 그 나라의 공주(公主) 도라우파디를 공동의 아내로 맞는다. 이는 인도 원주민의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를 반영한 것이며, 8세기 혜초(慧超)스님도 그 일처다부제를 기록하고 있다. 반대로 정절을 지킨 사비트리(Savitr)의 이야기도 있다. 또한 이런 이야기도 있다.
비시뉴신(Visnu神:★)의 화신(化身)인 크리슈나(Krishna★)가 실의에 빠진 오왕제(五兄弟)의 한사람에게 사심을 버리고 본무(本務)를 수행하라는 신의 노래 <바가바드기타>(Bagavadgita)가 있는데, 인도의 간듸가 실의에 빠질 때마다 이 노래를 읇조렸다 한다.
그 <크리슈나>란 누구인가? 다신교 같아 보이지만 교묘히 통일시하여 일신교적 형태를 취하고 있는 트리무르티(三神一體)가 그 좋은 예다. 즉 힌두신에는 3대신이 있는데 1) 우주창조신(宇宙創造神) 부라마(Brahma★), 2) 파괴신(破壞神) 시바(shiva★) 그리고 유지신(維持神) 비시뉴(Vishnu★)이며, 모두가 성애(性愛)의 신들이다. 비시뉴신의 화신(化身)으로 태어났다는 인도의 바라타족의 전설적인 왕 크리슈나는 숙부(叔父) 칸사왕의 박해를 피하여 그의 출생이 비밀리에 뭍혀진채 불운한 소년시절을 겪으면서 좌절과 시련 끝에 청년시절에는 신성한 소몰이꾼이 되어 무수한 애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부족의 왕이 되었다.
부족 왕이 된 후에 그는 6,100명의 처를 거느렸는데 결혼 전의 애인들은 얼마였는지 모른다.수풀 속에서 크리슈나가 피리를 불면 근처에 애인들이 나타나 춤을 추었으며, 그는 분신술(分身術)을 써서 모든 여인들에게 한사람도 빠짐없이 만족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그 많은 여인들 중에는 유부녀도 많았다하니, 이는 마치 그리스 신화(神話)에서 백조(白鳥:Swan)로 변신한 제우스신에게 사랑을 바쳤던 레다(L'eda)가 바로 스파르타왕 텐타리우스의 처(妻)였다는 것과도 비슷하게, 크리슈나가 제일 사랑한 여인은 바로 아야나코샤라는 소몰이꾼의 처인 유부녀(有夫女)였다. 무수한 여인들에게 사랑을 고루 나누었던 크리슈나도 비극적 종말을 맞아 숲 속으로 피하여 엽사(獵士)의 화살을 맞고 최후를 맽고 만다.
위에 기술하였듯이 힌두교는 Veda와 scheduled caste에 의한 Karma(카르마)라고 하는 업(業)혹은 업보:業報' 사상이기도 하다. 그 Karma는 육체적으로는 행위를 말하고, 영적(靈的)으로는 응보(應報)의 법칙을 의미한다. 원인결과의 법칙, 즉 윤리적인 인과율(因果律)이다. 카르마에는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의 두 카르마가 있으나 그 자체는 원인에 의해 정해진 길에 따르며,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바른 법칙에 불과하다. 카르마는 어떤 존재에도 도덕적 중핵이며, 그것만이 죽음을 넘어서 살고, 윤회(輪廻)하고 또는 재생한다. 또한 힌두교의 특징적 사상은 윤회(輪廻)와 업(業), 해탈(解脫)의 길, 도덕적 행위의 중시와 경건한 신앙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성관(性觀)에 대하여는 우리의 안목으로는 상상을 초월한 비윤리라고 보여질 것이다. 1882년 T.W. Doane의 저서에서 이 크리슈나(krishna★= Chrishna)와 예수 크리스트(Christ)의 비교문제가 언급되어 논란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여하간 힌두교는 비시누파와 시바파가 대종파를 이루고 있고, 사회 하층부에 세력을 두고 수행자의 고행·주술, 열광적인 제의(祭儀)가 특색인 것이 시바파이고, 이에 비하여 비슈누파는 라마파와 크리슈나파로 나누어 졌다.
마하바라타에 버금가는 라마야나(Ramayana★)는 7편 2만4천구(句)로 구성된 라마(Rama)의 기행(紀行)인데 인도의 시성(詩聖)이라는 발미키(Valmiki)의 서사시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갠지스강 북쪽 코살라국 왕은 하늘에 빌어 3아내에게서 라마 등 4아들을 점지받았는대, 그중 인망이 높고 무술이 뛰어난 라마왕자는 지상에서 날뛰는 악마들을 퇴치하기 위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화신(化身)한 비시뉴신 이었다. 청년으로 성장한 라마는 아름다운 시타(sita)공주를 아내로 맞아 4년간 행복한 생활을 보냈다. 그런데 자기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다른 왕자의 어머니의 음모로 라마는 왕위에 오르는 날 쫏겨나 14년간 숲 속으로 추방된다. 라마는 숲 속에서 횡포를 부리는 악마를 정복했으나 악마의 왕 라바나(Ravana)의 노여움을 사서, 아름다운 아내 시타가 랑카섬(Lanka島)에 납치되어 간다. 라마는 원숭이 왕의 응원을 얻어 랑카섬에 쳐들어가서 마왕의 군대를 소탕하고 라바나를 죽이고 아내를 구출한다. 라마는 14년 만에 아내와 더불어 아요디야에 돌아와 왕위에 올랐으나 그의 아내 시타는 마왕에게 잡혀갔을 당시의 정조를 국민에게 의심받아, 숲 속의 오두막에 갇힌채 쌍둥이를 낳고 그의 결백을 증명하고 죽는다. 아름다운 아내를 잃은 라마도 후에 승천(昇天)하여 다시 비시뉴신으로 돌아간다는 줄거리다.
힌두교의 학문과 예술은 이외에도 셰익스피어(Wm. Shakespeare)와 버금가는 칼리디사(Kalidasa★)라는 궁정시인(宮廷詩人★)도 있었으며 그의 작품 속에는 신, 천녀(天女), 성선(聖仙)등 현실세계와 신화의 세계를 융합하여 아름답게 표현한 것들이 있다. 그 중에도 남녀 연정(戀情)은 가장 중요한 뜻을 가진 모티브였고, 사랑하는 남녀의 슬픔과 즐거움을 남김없이 들춰내고 미인의 묘사를 집요하게 되풀이 하였다.
여인상을 다채롭고 현란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종내는 한결같이 육체적 만족을 암시하는 아름다움을 묘사하여 푸라토닉(platonic)한 요소는 일절 없는 것이 특색이다.
인도가 더운 지방이라는 풍토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일찍부터 여인의 자태는 벌거숭이 알몸으로 표현되어왔으며, 성(性)이 일상 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드러나게 많을 뿐 아니라 노골적인 성애(性愛)를 사회풍토가 너그럽게 인정했다고 할 수 있다. 힌두 사원에 보이는 성애의 난무하는 군상들은 바로 고대인의 세계에서도 성애를 너그러이 공인하는, 그늘 없이 소박하고 밝은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힌두교 서사시에는 인생에 필요한 3가지 요소; 첫째 법(法)이나 도덕율의 의무 등을 뜻하는 달마(Dharma), 둘째로 이재(理財)나 처세를 뜻하는 아르타(Artha), 그리고 셋째로 성애(性愛) 즉 카마(Kama)의 지식을 중요시하고 이를 만족시키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며 이상적인 인생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원에 갓가지 양태의 성애의 조상물(彫像物)들을 만들어 놓고 숭앙하였던 것이다. 또한 모두들 그렇게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미투나상(Mithuna像)은 대개 남녀 일대 일, 한 쌍 즉 태양의 여신(女神)인 관능미 넘치는 미투나 또는 월신(月神:달의 신)이며 사법신(司法神)이라는 바루나와의 성을 통한 결합이며 바로 그것은 부라만과 아트만의 상징이라고도 해석하고있다.
인도의 가주라호(Khadjuraho:데칸고원 근방)지방 여러 사원(寺院)들은 10세기경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거기 무수히 조각되어있는 성희(性戱:Sex play) 조상물(彫像物)들은 일대일의 성행위 양태도 각양각색이지만 혼교(混交: 일대 다수)의 장면도 있으니 경이로울 뿐이다. 그 뿐 아니다, 힌두교의 시바파(Shiva派)는 거대한 남근(男根:Linga)의 석상(石像)과 여성의 성기인 요니(Yoni:Yom)도 숭배하였다.
서기1,000년경 페르시야계 사만(Saman)왕조때 터어키계 노예출신인 일개 무장(武將)이 아프가니스탄 가스니(Ghazni)에서 독립하여 인도 카디아와르 반도의 해안도시 금나트를 공격하였을 때의 일이다. 그 도시의 장려(壯麗)한 힌두 사원에서는 매일 1천명의 브라만이 제사를 올리고, 3천명의 이발사가 그곳을 참배하는 순례자들을 위해 머리를 깍가주며, 350명의 무녀(巫女)가 길이 3미터나 되는 큰 신(神)의 몸체(神體)인 링가(Linga:男根)의 석상(石像) 주위를 미친듯이 춤추고 돌아가고 있었다 한다.
더욱이 그 링가 석상은 신체(神體)이기에 750킬로(우리 나라 이수로 천팔백칠십 리) 떨어진 성스러운 갠지스강에서 직접 떠오는 물로 매일 닦아내고 있었다 한다. 또 브라만들은 근처 1만여 촌락에서 기부라는 명목으로 거두어들이는 지세(地稅)로 풍족하게 살고 있었으며, 무녀들은 부라만이나 특수층에 의해 농락 당하였고, 카스트제도에 짓눌린 평민이나 천민들은 겨우 하루하루의 연명마져 힘들었기에 외적(外敵) 이스람의 침입에 대항하는 자가 없었다 한다.
1400년 중반에 델리를 중심으로 이스람 슐탄(Sultan)의 지배에 의하여 여러 인도 왕조가 흥망을 거듭했지만, 남쪽 크리시나강(江) 이남 지역엔 예외적으로 비자야나가르(Vijayanagar)라는 힌두왕국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나라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따라 죽어야하는 과부순사(寡婦殉死)제도가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또 왕이 죽으면 그를 모시던 4--5백명의 후궁들이 왕의 시체와 함께 화장(火葬)을 당하는 다비(茶毘:Jhapita)에 부쳐졌다고 한다. 이런 관습이 있었던 것은 우리 나라 조선조 세종(世宗)이 훈민정음을 만든 해에 있었던 사실로서 사록(史錄)에 남아있다.
정신적인 해탈과 육체적인 향락이 갖는 극단적인 자리는 서로 일치한다는 일원론적 철학을 상징하는 미투나[(Mithuna:남녀의 성적결합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조상물(彫像物)]나 링가를 신체(神體)로 숭배하는 등을 들추지 않더라도, 힌두교에서는 풍부하게 에로티즘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이나교의 영향이겠지만 같은 윤회사상을 갖는 힌두교나 불교에서도 극단적인 금욕적 고행자(苦行者)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미투나를 단순히 성기미학(性器美學)적인 견지의 예술로만 인정하려드는 식자도 있으리라.
그러나 힌두교에서는 성(행위적인 성)을 인간 생명의 본질이자 또한 신비(神秘)로 보고 성(聖)스러운 것으로까지 보았다고 하겠다. 하여, 브라만 계급들은 성을 즐겼지만 반면 혼외정사는 금하였음으로 조혼의 관습이 있고, 사두(Sadhus)라고 칭하는 승여(僧呂)들은 무소속(無所屬:Attachment-free), 무색욕(無色慾:lust-free)과 극기적(克己的) 탈자아(脫自我:Ego-free)의 종신금욕이어야 한다.
무릇 사회나 국가가 발달되면 경제생활은 향상되고 더불어 자유나 평등사상에 눈이 뜨게되고, 술과 여자 즉 성에 탐닉하는 향락 생활에 취하게되어 기강이 문란해지고, 윤리도덕이 퇴폐하고, 마침내 죄악의 소용돌이 속에 범죄가 늘어 쇠망의 길로 접어들게 마련인 것이 역사의 교훈인 극성즉쇠(極盛則衰)이다. 극성했던 부라만의 인도는 이스람의 침입을 받은 것이다. 그 이전 기원전 6세게 후반부터 베다를 거부하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싹트기 시작하였으니, 하나는 <자이나>교이고, 다른 하나는 불교이다. 그러나 지금도 인도에는 힌두교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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