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

[스크랩] 이슬람은 왜 지하드를 선포하며 과격하게 나가고 있는가? (정형남)

수호천사1 2011. 10. 3. 11:41

이슬람은 왜 지하드를 선포하며 과격하게 나가고 있는가?
 
정형남(ACTS 중동지역 연구교수/이라크복음주의 신학교 교수)

 

 

아랍어 ‘지하드’는 ‘노력’ 혹은 ‘분투’를 의미한다. 보통 거룩한 전쟁이라는 뜻의 성전(聖戰)이라고 번역된다. 지하드에 참여하는 자를 ‘무자히딘’이라고 한다. 이슬람에는 두 가지 지하드가 있다. 하나는 정신적 지하드이고 다른 하나는 전투적 지하드이다. 전자를 대(大) 지하드라고 하고 후자를 소(小) 지하드라고도 한다. 전투적 지하드는 이슬람과 그 공동체를 수호하고 건설하기 위한 전투에 참여해서 무력으로 분투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먼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투적 지하드와 무자히딘들에게 보장된 천국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현대 이슬람 지하드의 이슈가 되는 예루살렘의 알아끄사 사원 문제와 더불어 이른바 친이스라엘적 기독교의 문제점 연구를 통해 이슬람은 왜 지하드를 선포하며 과격하게 나가고 있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가. 무함마드와 지하드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그의 반대자들로부터 위협을 느끼게 되자 메디나로 이주하였다. 그는 메디나에서 어느 정도 그의 세력을 형성하자 메카를 정복하기 위하여 메카 사람들의 무역로를 차단하고 대상들을 습격하는 등 무력을 사용하게 되었다.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한지 2년이 되었을 때 바드르 전투가 발발되었다. 그 전투에서 300명의 무슬림들이 1,000명의 메카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사실, 무함마드는 바드르 전투 직전까지 메카의 꾸라이쉬 부족에 대한 무력공격을 코란의 내용을 통해서도 얼마나 철저히 준비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만약 너희가 (전투에서) 불신자를 만나면 그들의 목을 쳐라.”(코란 47:4)

 

나. 무함마드의 후계자들의 지하드

 

무함마드 사후에 4명의 정통 칼리파(후계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첫 번째 칼리파만 나이 들어 죽었고 나머지 3명의 칼리파들은 모두 다 동료 이슬람교도들에게 암살되어 죽었다. 그 암살 행위에 바로 지하드 개념이 동원되었다. 이슬람 공동체 안에서 부패한 지도자나 이슬람법을 어기는 자들도 지하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4대 칼리파 알리는 3대 칼리파의 친척이며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알리를 따르는 자들은 쉬아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알리에 대항한 무아위야는 움마이야 왕조를 세우고 순니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알리의 아들 후세인은 무아위야 군대에 의해 이른바 카르발라 전투에서 죽임을 당했다(AD 68년 10월 10일). 쉬아파 무슬림들은 후세인이 순니파 무슬림들에의 해서 죽임당한 날을 후세인의 순교일로 지금도 기념하는 가운데 후세인을 죽인 순니파 무슬림들에 대한 복수심을 태우고 있다. 이후 순니파와 쉬아파간의 갈등과 치열한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카리지야’라는 말은 ‘이탈자’, ‘탈퇴자’라는 뜻을 지닌 카리지의 파생어다. 카리지파는 알리 진영으로부터 이탈한 자들이었다. 카리지파는 쉬아파를 형성한 알리와 순니파를 형성한 무아위야 모두를 알라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한 암살을 단행했다. 하지만 카리지파는 알리만 암살하고(AD 661년) 무아위야를 물리치지 못하였다. 카리지파가 현대 이슬람 원리주의에 끼친 영향은 정권에 대항한 혁명적 반란과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지하드를 관행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리지파는 이슬람의 지하드를 이슬람의 지켜야 하는 6행(行)중의 하나로 간주하여 이를 의무화하였다.
    
다. 현대 이슬람 지하드

 

이란의 호메이니는 이란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여 죽임을 당한 자들에게 지하드의 순교자라고 일컫는 가운데 천국이 보장되었다 큰 소리쳤다. 그 점에 있어서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에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맞서는 자들도 역시 무자히딘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슬람의 현대 지하드의 가장 큰 적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돕고 있는 세력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9.11 테러의 주범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알카이다를 이끌고 있는 오사마 빈라덴이다. 그 테러 행위가 이슬람의 지하드가 될 수 없다고 반박하는 무슬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오사마 빈라덴은 자신이 이슬람의 지하드를 수행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전투원이든 민간인이든 미국인과 그 동맹자들을 죽이는 것은 모든 무슬림들의 개인적인 의무다. 이는 예루살렘의 알아끄사 회교사원을 해방시키기 위해, 신성한 사원(메카)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군대를 모든 이슬람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서이다.”

 

라. 이슬람의 무자히딘과 천국

 

이슬람 안에는 기독교에서처럼 대속자나 구속자 개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교도들은 이른바 구원의 확신, 즉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확신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코란은 천국에 들어가는 길 하나 만큼은 확실히 제시하고 있다. 곧 이슬람 지하드에 참여한 자, 즉 무자히딘이 순교하는 것이다. 코란은 지하드, 이른바 성전에 참여하여 순교를 당하면 천국에 곧 바로 들어갈 수 있다고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코란의 한 구절만 발췌하여 보자; “알라는 믿는 자 가운데서 그들의 영혼과 그들의 재산을 사시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 그들은 알라를 위해서 성전하고 투쟁하며 순교하리니.”(코란 9:111)

 

그렇다면 이슬람의 무자히딘들에게 보장된 천국은 어떤 곳인가? 코란 속에 소개된 천국은 남자들이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은 술을 마시고, 눈이 크고 예쁘며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여자와 술로 묘사는 되는 코란의 천국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는 두 구절만 살펴보자;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선행을 하는 자를 천국에 들게 하리니 강이 흐르는 그곳에서 영생케 하리라. 그곳에는 순결한 아내가 있노라....”(코란 4:57) “그들은 ... 천국에서 ... 그것은 머리가 아프지 아니하고 취하지도 않더라. 그들 주위에는 순결한 여성들이 있나니 그녀의 눈은 잘 보호되었고 눈은 크고 아름다우매 마치 잘 보호된 달걀과 같더라”(코란 37:43-49)

 

코란의 천국은 남자들의 욕심, 그곳도 죄악으로 가득 찬 남자들의 욕심이 마음껏 성취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코란의 천국은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다. 그것도 거룩한 남자도 아니고 죄악 된 남자가 중심이 되고, 그 남자를 위한 술과 여자가 있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2002년 9월 10일 저녁, 즉 이른바 9.11. 테러사건의 주범들이 테러 사건을 일으키기 직전 날 저녁, 그들은 여자와 술이 있는 누드바에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다지면서 천국생활을 이 땅에서 나름대로 연습하였는지도 모른다. 11세기의 쉬아파의 이스마엘에게 속한 암살단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핫산 사바흐(Hassan Sabbah)가 있다. 핫산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알라를 위해 죽고 죽이는 지하드 전사들을 비밀리에 엄격히 훈련시켰다. 이런 훈련에서 마리화나(harshish)를 사용했고 그래서 그들은 하쉬쉰(harshishin)으로 불려졌다. 그런데 그 훈련에서 왜 마리화나를 사용하였겠는가? 무자히딘들에게 천국을 미리 맛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마. 이슬람의 지하드를 부추기는 친이스라엘적 기독교

 

오사마 빈 라덴이 해방시키겠다는 예루살렘의 “이슬람의 알 알끄사 사원”이다. 이슬람은 그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승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그 사원의 자리는 두 성전, 즉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의 터이기도 하다. 또한 유대인들은 그들의 메시야가 와서 그곳에 메시아 성전을 짓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은 그곳에 와서 메시아 성전을 짓게 메시아는 다름 아닌 재림하실 예수님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이슬람의 알아끄사 사원을 무너뜨려 예수님이 지을 성전 터를 미리 잘 닦아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재림하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그의 보좌를 세우고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친이스라엘적 기독교인들의 주장이다. 이슬람 입장에서 볼 때 친이스라엘적 기독교인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 손에는 코란, 다른 손에는 검”이라는 말이 있다. 이탈리아 스콜라철학의 대부격인 신학자 아퀴나스가 이슬람에 대하여 표현한 한마디이다. 무슬림들은 그 점에 대하여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퀴나스의 지적은 분명히 옳았다. 사실 팔레스타인의 이슬람교도들은 칼이 없어서 돌멩이를 들고 있는 신세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나 미국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인들과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유대인들은 한 손에 성경을 또 한 손에는 칼이 아니라 미사일을 들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글을 맺으며

 

구약 시절에는 분명히 혈과 육의 싸움의 시절이었다. 특별히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배하는 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렸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은 우리의 싸움을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슬람은 주후 610년, 즉 신약시대에 시작했다. 가나안 땅과 예루살렘 회복의 이슈를 갖고 혈과 육의 싸움에 휘말려서는 결코 안 되겠다.

 

예루살렘의 알아끄사 사원에서 메시아 성전이 앞으로 세워질 것이라는 생각은 성경적인 생각이 결코 아니다. 이른바 메시아 성전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곧 성전이요, 그의 성령을 받게 된 그의 교회가 곧 성전이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은 계속 지어지고 있다. 또한 주님이 이 땅에 초림하심으로 그의 메시아 왕국의 건설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의 재림과 함께 완성될 것이다.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의 왕국에 속하는 그의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벧전2:9등).

 

이슬람권 영혼들도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에게 뜨거운 이슈가 되는 예루살렘의 알아끄사 문제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중심으로 해결할 수가 있다. 아브라함이 그 천국(천성)을 부여 받게 된 것은 부활의 믿음을 구비하게 됨으로 말미암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부활의 믿음을 갖게 되었는가? 그와 그 아내는 너무 늙어 자녀를 잉태하는 면에 있어서는 죽은 자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소생(부활)시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부활의 믿음으로 이삭을 잉태하여 낳았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 내외가 바로 그 부활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으며(롬4:19-22), 천성(천국)을 바라보며 힘차게 살았다는 것이다(히11).

 

중동의 무슬림들 가운데는 성경의 천국이 코란의 천국과는 달리 이 땅에서 완전히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을 덧입은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임을 깨닫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례가 적지 않다. 아무쪼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어 천국을 보장받는 형제들이 많이 나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덧입고 죄와 사단에 대하여 믿음으로 싸우는 거룩한 하나님의 ‘무자히딘’들이 많이 나오기를 소망하여 본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