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란의 아담과 성경의 아담
정형남(중동지역 연구교수/이라크복음주의신학교 교수)
성경의 아담과 코란의 아담은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가? 언뜻 보면, 그 둘은 같기도 하고, 엇비슷하기도 하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완전히 다르다. 그 점을 바르게 파악하는 것도 이슬람권 영혼들을 위한 기독교 선교의 밑거름이 되리라고 본다.
1. 같은 점들
코란의 아담도 성경의 아담처럼(창2:7), 흙으로 만들어졌다(코란3:59). 그리고 성경의 아담처럼(창3:6), 어떤 특정한 나무의 과실을 따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지만(코란7:19), 그 과실을 따 먹게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의 수치가 드러나게 되었고(코란7:22; 20:121), 그들이 살고 있던 동산을 떠나게 되었다(코란7:23). 코란은 창조 역사가 성경처럼(창1:1~2:3), 엿새 동안에 걸쳐 이루어졌음을 소개한다(코란7:54; 32:4; 57:4).
2. 엇비슷한 점들
1) 동산을 다스리는 일과 지상의 대리인
코란의 아담도 성경의 아담이 동산을 다스리는 자로 세움을 받고(창1:26-28), 동물의 이름을 지어준 것처럼(창2:19-20), 코란의 아담도 지상에 대리인으로 세움을 받고, 동물의 이름을 지어주었다(코란2:30-33).
그러나 코란은 성경과 달리, 알라(Allah)가 미리 각 동물의 이름을 천사들에게는 알려주지 않고 아담에게만 알려 준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름을 맞추어 보도록 하고 아담은 천사들 앞에서 그 이름들을 명하게 된다. 그리하여, 알라는 아담의 천사에 대한 우월성을 드러내는 가운데 천사들로 하여금 아담에게 엎드려 경배하도록 한다. 그러자 천사들은 알라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담에게 경배한다. 그러나‘이블리쓰’만은 그의 교만으로 그 명령에 거절한다(코란2:31-34).
왜 ‘이블리쓰’가 아담에게 불순종하였는지 알라로부터 추궁을 받게 되자 아담은 흙으로 창조되었지만, 자신은 불로 창조되었으니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는 낙원으로부터 알라의 추방선언을 듣게 된다. ‘이블리쓰’는 그의 심판을 마지막 때로 유예하여 줄 것을 간구하여 유예를 얻게 되지만, 낙원으로부터 이 땅으로 추방을 당한다. 그리고 그는 이 땅에서 인류의 유혹자로 살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알라는 그와 그를 따르는 이들로 지옥을 채우리라고 답한다(코란38:73-38, 7:12~18; 17:61~65).
2)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이 나무”
성경의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창2:17상)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코란의 아담은 “이 나무에 접근하지 말라”(코란2:35; 7:19)는 명령을 받았다. 코란은“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 나무”라는 표현으로 바꾸었다. 에덴동산에는 선만 있지 악이 결코 있을 수가 없다는 코란의 논리가 동원된 것이다. 그러나 그 논리는 잘 못된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할 때, 그 나무속에 악이 존재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담이 그 선악과를 따 먹게 되면, 그 열매 속에 있는 악이 아담 속으로 들어가 아담이 악하게 된다는 말씀도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 악이 있을 수 없기에, 선악과가 있을 수 없다는 이슬람의 논리는 성경의 문맥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가운데 펼쳐진 것이다.
3. 다른 점들
1) 코란의 아담은 “정녕 죽으리라” 라는 경고를 받지 않음
코란의 아담은 “(그 나무의 실과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하)라는 말씀을 받은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의 아내가 뱀에게“...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창3:3)고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뱀이 여자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 라고 유혹할 필요도 없다. 한마디로, 코란에서는 유혹자와 유혹받는 자 사이에 이른바 ‘죽음의 논쟁’이 전혀 없다. 성경의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경고를 받았지만, 코란의 아담은 그 실과를 따 먹게 되면, “너희가 죄인들 가운데 있게 되리라.”(코란7:19하)라는 경고를 받았을 뿐이다.
성경은 아담 내외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난후,“정녕 죽으리라”라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대로, 그들은“죽은 자들”이 되었다. 성경은 첫 사람 아담이 죽었고, 그 후손들이 아담 안에서 모두 다 죽은 자들이라고 선포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성경의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게 되었을 때, 그가 그의 육신적 생명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죽은 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아담 안에서‘죽은 자들’이 되었다. 아담의 후손들이 아담에게서 태어나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죽은 자들’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코란의 아담은 성경의 아담에게 찾아 볼 수 있는 그 특별한 의미의 “죽음”을 모른다. 코란의 아담은 그의 육신의 수명이 다 되어 죽었을 때 드디어‘죽은 자’가 되었을 뿐이다.
2) 코란의 아담은 그 후손들에게 죄를 대물림하지 않음
성경의 아담 내외는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분부를 받고 난 다음, 얼마 동안의 기간이 지난 후, 그 과실을 따 먹게 되었을까? 그 점에 대하여 분명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코란은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였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오래 전에(beforehand; min qabl) 알라(Allah)로부터 언약(‘이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지 말라’) 했으나 그는 그것을 잊었더라. 그러나 그에게서 고의성은 발견하지 못했더라.”(코란20:115)
코란의 아담은 오랜 세월이 지나는 가운데, 알라(Allah)의 명령을 망각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 명령을 고의적으로 어긴 것이 아니었다. 성경의 아담은 그 명령을 어긴 죄에 대해서 회개하는 데 있어서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 내외를 회개시키는데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창3:8-24). 그러나 코란의 아담은 성경의 아담과 달리 자발적으로 회개한 점이 강조된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선택하셨고, 그분에게 회개하니 그분은 그를 인도하셨노라.”(코란2:122) 그리하여, 코란의 아담은 알라(Allah)와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 그의 죄가 대물림되지 않는다. 코란은 성경의 원죄설을 부인하고, 맹자처럼 인간의 성선설을 주장한다.
코란의 아담은 성경의 아담과 달리, 죽음의 경고를 받은 적도 없고, 죄를 범하였지만, 자발적으로 회개하였고, 그 후손들에게 죄를 대물림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코란의 아담이 성경의 아담보다 훨씬 더 탁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과 코란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정반대의 사실을 알 수가 있다.
3) 코란의 인간창조는 천지 창조보다 더 위대하지 않음
코란은 성경처럼(창1:1~2:3) 매일 매일의 창조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코란은 매일 매일의 창조 역사가 완성된 후,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4; 18; 21;25)”와 같은 말씀도 없고, 여섯째 날 하나님께서 아담 내외를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와 같은 말씀도 없다. 코란은 성경 말씀과 정반대로, 천지 창조가 인간 창조보다 더 위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로 천지창조는 인간의 창조보다 더 위한 것이되,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코란40:57)
여기서 대다수 사람들이란 곧 천지창조 보다 인간의 창조를 더 위대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염두해 둔 말이다. 사실 성경은 아담 내외 창조는 천지창조나 다른 피조물들의 창조와는 전적으로 구별하여 소개하는 가운데, 아담 내외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있다.
4) 코란의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되지 않았음
코란에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라는 개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의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되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 형상을 따라 우리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은 성경을 통해서만 알 수가 있다. 그 답은 남자와 여자’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겠다.”(창1:26)고 말씀하신 후, 만드신 바가 곧 “남자와 여자”(창1:27)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사람, 곧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모양을 따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어떤 점에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반영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는지에 대해서 성경의 창세기 2장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 그렇게 창조된 아담은 혼자서 동물들의 이름을 짓도록 하셨다. 그런데, 그의 독처함이 보시기에 좋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그의 아내 곧 여자를 창조하신 다음, 그 둘을 결혼시켜 "한 몸"을 이루게 하셨다.
아담은 아담이고 그의 아내는 그의 아내였다. 분명히 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둘을 ‘한 몸’이라고 말씀하셨다. 둘이 "하나"란다. 여기서 "하나"라는 말은 숫자적인 면에서 "하나"가 아니다. 교제적인 면에서 ‘하나’라는 말이다. 하나 됨을 누린다는 말이다. 아담과 그의 아내가 하나 됨을 누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아담 내외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따 먹기 전까지는 하나 됨을 누렸음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그 둘은 한 몸을 이루어 하나 됨을 누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반영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선악과를 따 먹고 난 다음, 그 둘은 더 이상 하나 됨을 누리지 못하였다. 그 둘만 하나 됨을 누리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 됨을 누리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더 이상 반영하지도 못하였다. 아담 내외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반영하지도 못하고, "하나" 됨을 누리지 못한 바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엇이겠는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 정녕 죽으리라.”(창2:17)라는 말씀에 기초하여 볼 때, 그 답은 곧 죽음이다. 아담 내외가 하나 됨을 누리지 못하여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곧 죽음이다. 성경은 아담 내외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난후, “정녕 죽으리라”라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대로, 그들은 “죽은 자들”이 되었다. 성경은 첫 사람 아담이 죽었고, 그 후손들이 아담 안에서 모두 다 죽은 자들이라고 선포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성경은 죽은 아담과 그 후손들을 살리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에 대해서 줄곧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반면에 코란의 아담은 결코 죽은 적이 없다. 코란의 첫 사람 아담은 죽지 않았고 그의 후손들도 죽지 않았다. 코란의 아담과 그 후손들은 죽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를 다시 살릴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가 결코 필요하지 않다. 코란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의 필요성을 주장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5) 창조주 하나님의 복수 개념
코란에서도 창조주 하나님의 복수개념이 담긴“우리”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우리” 번역이 “We"로 되어 있는데 한글 코란에는 “하나님” 또는 “나”로 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사람들이여 우리가 너희를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였다...”(코란 49:13) 에서 "우리"는 하나님 자신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코란은 신약 성경에서처럼 그 ”우리“ 개념을 성부, 성자, 성령 개념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삼위일체 개념에 대하여 강력히 비난하는 내용이 많이 있다(4:171; 5:76; 3:55 등).
성경의 하나님께서 사람, 곧 남자와 여자를 만드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만드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복수 개념이 엿보인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장은 그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포함되어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이 땅에 보내어, 아담의 후손들의 죄악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실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중,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다.”(요17:22)라고 하셨다. 그렇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각각 구별된 분이시지만 ‘하나’ 됨을 누리시는 분이시다. 창세 전, 곧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말이다.
"울님" 이나 "하느님" 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하나님’이라는 말은 우리 말 가운데 없었다. 그런데 캐나다 출신 게일 선교사가 ‘하나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 보급했다. 아마도 그는 "하나"라는 숫자에 존칭 접미어 ‘님’자를 붙여 ‘하나님’이라고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 두 분이 ‘하나’ 됨을 누리는 분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겠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두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됨을 완벽하게 누리신다.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교회가 하나 됨을 온전히 누린다. 그리스도를 함께 모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됨을 누려야 한다. “...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4. 나가는 말
이슬람권의 영혼들은 코란의 아담에 대한 이해만을 갖고 있고, 성경의 아담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본질적으로 성경의 아담의 후손들이다. 그들도 아담이 육신적 죽음을 갖기 훨씬 전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고 난 다음, “죽은 자”가 되었고, 그 후손들도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 되었음을 알게 하자! 그리고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을 살려주셨음을 알게 하자! 그리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경험하게 하자! 그리하여, 그들도 우리와 함께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고, 더 나아가서 성 삼위 하나님과 하나가 되도록 하자! *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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