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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

수호천사1 2011. 8. 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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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의 음악

일반적으로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유럽 여러 나라에 일어난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인간성과 인간미의 조화를 희구하는 경향이 짙어졌는데, 이것을 '아루스노바(새로운 예술)라 한다.

15세기 후반에서 약 150년에 걸쳐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라소를 비롯한 많은 음악가들이 출현하여 유럽 각지에서 활약하였다. 그 때문에 음악사상 이들을 네덜란드 악파라고 부르고 있다. 15세기초에는 루터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이 이루어졌다.
루터는 라틴어의 가사를 도이칠란트어로 번역하여 지도하고 누구나 노래할 수 있도록 간단한 코오럴을 만들어 교회 음악의 서민화에 크게 공헌하였다.

던스타블의 모테트 <<오라, 성령이여-오라, 창조주이신 성령이여>>는 마쇼의<<노트르담 미사곡>>보다 거의 60년 뒤에 나온 작품이지만 던스타블의 모테트가 훨씬 더 세련된 음의 진행과 풍부한 화음을 가지고 있음을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사람들도 그 동안의 눈부신 변화를 똑같이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15세기 무렵에는 던스타블을 비롯한 영국의 음이 대륙에서도 알려지게 되는 한편, 원숙기에 접어든 뒤파이와 뱅슈아는 영국의 어법을 흡수한 새롱누 양식과 새로운 이념을 바 탕으로 한 보다 세련된 작곡 기법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음악사상 소 위 <<르네상스>>가 찾아오게 되지만 그 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던스타블(John Dunstable ; 1370? ∼ 1453)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아마도 던스타블은 주군인 영국 왕의 동생 베드포드공이 1422년부터 35년까지 프랑스에 머 무른 것과 때를 같이해 대륙을 방문하여 영국과 대륙과의 음악 교류에 일익을 담당했던 것 으로 여겨진다.

그는 미사곡, 모테트, 세속 가곡 등 70여 곡의 작품을 남겼는데, 흥미 있는 것은 그것들이 모국인 영국보다도 대륙의 자료 가운데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4성으로 된 모테트 <<오라, 성령이여 오라, 창조주이신 성령이여>>다. 이 곡은 성령 강림제용 세퀜티아 <<오라, 성령이여>>를 정선율로 최상부에, 그 패러프레이즈를 제2성부에, 같은 축제일용 찬미가 <<오라, 창조주이신 성령이여>>를 테노르에 놓은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까다로운 아이소 리듬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14세기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그 독특하고 충실한 음률을 지닌 음악 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서 얼마나 후에 찾아온 르네상스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15세기에 들어서자 음악의 중심은 점차 프랑스의 부르고뉴 공국으로 옮겨갔다. 부르고뉴 공국은 14세기 후반부터 훌륭한 군주가 계속 다스렸는데, 플랑드르 지방이라고 불리어지는 오늘날의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 프랑스 동북부를 포함한 넓은 토지를 영토로 가 지고 있으면서 모직업 금속 공업 등에 의해 경제적으로 번성했다. 또한, 역대 공작들은 음악이나 미술의 애호가들로서, 공국의 예배당에는 당대의 유명한 음악가들이 유럽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특히 필립 공 시대(1419∼67)에는 플랑드르 출신인 뒤파이나 뱅슈아 같은 사람들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궁정에서 봉사하면서 활발한 음악 활동을 펼쳤다. 그래서 15세기 전 반에 부르고뉴 공국과 관계를 지닌 음악가들을 부르고뉴 악파라고도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부신 활동을 한 사람이 뒤파이Guillaume Dufay : 1400∼1474)다.

그 는 젊은 시절에 이탈리아 음악을 익히면서, 영국 음악들로부터 영국 특유의 음악 어법을 배 우고, 그것들을 프랑스 화시켜서 새롱누 음악 양식을 만들어 냈다. 이 양식은 이윽고 국제 적인 음악 어법으로 발전하여 16세기말까지의 유럽 음악 전반을 지배하게되는데, 그 기초를 닦은 사람이 바로 뒤파이다.
그리고 15세기 중엽부터의 약150년 동안은 뒤파이를 비롯한 폴랑드르 지방 출신의 많은 작곡가들이 음악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므로, 이 시대를 플랑드르 악파의 시대라고 부르기 도 한다.

15, 6세기의 모테트는 미사 통상문 이외의 의식문 및 그와 비슷한 라틴어에 의한 종교적 인 폴리포니 악곡이라 해석해도 좋지만 작고 기법적으로 시대에 따라서 여러 가지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뒤파이의 작품에서도 아이소 리듬 기법을 사용한 것이 있는가 하면, <<자비 로운 구세주의 어머님>>과 같이 샹송풍의 구조를 취한 것도 있다.


샹송에 관해서는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가장 중요한 곡종인 미사곡을 살펴보자. 15세기 에는 순환 미사곡이라 해서 새로운 작고 기법에 의한 것이 등장하게 되었다. 순환 미사곡 이란 미사 통상문의 5개의 장에 같은 정선율을 두고 그것을 중심으로 하여 다성으로 통작된 미사곡을 가리키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미사곡 전체가 하나의 악곡으로서의 강한 유기적인 관련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싹은 이미 영국의 미사곡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1430년경, 주로 뒤파이에 의해서 그 기법이 발전되었다. 뒤파이는 동일 정선율로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미사의 각 장의 머리 부분을 유사한 선율로 시작함으로써 한층 더 곡의 통일을 꾀했다. 또한 당초에 정선율은 모두가 <<그레고리오성가>>였지만, 뒤파이는 <<싸우는 사람>>이나 <<만약 내 얼굴이 창백하다면 >>과 같이 그 당시에 즐겨 불리던 세속 가곡도 정선율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음의 오케겜의 시대가 되자, 정선율은 테노로 이외의 성부에도 나타나게 되고 때로는 모방 기법도 쓰이게 되었다. 더구나 오케겜은 기법적으로 매우 공이 많이 든 폴리포 니 작품을 많이 작곡했으므로 후세의 사람들로부터<르네상스 시대의 바흐>라고 불리어지기 도 한다.
모방 기법을 더욱 철저하게 쓴 것은 15세기말부터 16세기 초엽에 활약한 네덜란드 악파 최대의 작곡가인 조스캥 데 프레다. 그는 정선율을 소재로 한 선율을 차례로 전성부로 하여 금 노래하게 하고, 마치 푸가처럼 악곡 전체를 모방 기법으로 통합하였다.
이 기법은 통모방(通模倣)이라 불리어지며 16세기에는 미사곡뿐만 아니라 모테트, 나아가 서는 세속 가곡에서도 즐겨 쓰이고 있었다.

조스캥이 활약한 무렵에는 음악의 중심은 플랑드르 지방에서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해 막시밀리안 1세가 이끄는 신성 로마제국 영토의 남부 독일과 주로 미술 분야에서 르네상스 문화가 번성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가 음악의 중심지가 되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플랑드르 지방 출신의 음악가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며 조스캥도 그 사람들 가운데 하나 였다.
남부 독일에서는 막시밀리안 1세에게 봉사하고 명곡 <<인스부르크여, 안녕>>을 남긴 이자크(Heinrich Isaac ; 1450 경∼ 1517), 뮌휀의 궁정 악장이 된 라수스(Orlande de Lassus : 1532∼94) 등이 있다. 라수스는 종교곡과 세속곡에 강렬한 개성을 불어넣음으로써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그 편린(片鱗)은 모테트 <<기뻐하소서, 하늘의 왕후여(Ave, Regina Caelorum)>>로도 인정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베네치아 악파의 시조라고 불리어지며 새로운 음악 흐름을 준비한 빌라르 트(Adrian Willaert ; 1490∼68), 세속 음악에도 재능을 발휘한 아르카델트(Jacques Arcdelt ; 1505경∼68)나 로레(Cipraino de Rore ; 1515∼65) 등의 이름을 들 수가 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의 음악 활동을 살펴보면 플아드르의 폴리포니 기법과 이탈리아적 어법을 받아들인 작품이 모랄레스(Cristobal de Morales ; 1509경 ∼53)나 빅토리아(Tomas Luis de Victoria : 1548경∼1611)에 의해서 탄생되고 있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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