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수의 상징
시간은 하나님의 최초의 창조물로서 모든 존재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시간의 연장이 연대를 이루며, 따라서 연대기는 역사의 척추가 된다. 시간이 일정한 시각으로 나누어지듯이 구약의 연대기도 일정한 댓 수와 기간으로 나누어진다. 그리하여 구약성서는 일정한 계수와 질서정연한 기계적인 체계를 갖춘 길고 짧은 각종 연대기들과 크고 작은 상징을 품고 있는 숫자로 조화된 사건들과 사물들로 가득 차 있다.
일정한 숫자가 독특한 개념을 갖고 있다는 수론(數論)의 원리는 고대의 히브리인들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 국가들에서 그들의 수많은 연대기들에 사용되었다. 구약성서의 연대기에 나오는 숫자들은 구약성서의 기자들이 ‘무엇이 언제? 일어났느냐?‘ 하는 역사의 년도와 일자보다는 ’그것이 몇 대만에 일어났으며, 그 결과가 얼마동안 미쳤느냐?‘ 하는 역사의 기간과 댓수에 중요성과 의미를 부여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약성서의 수신학, 엄원식 저, p.65)
그러므로 족보를 작성한 기자들은 족보에 들어갈 사람들을 수집하기 전에 먼저 족보의 범위와 세대 사이의 간격을 고려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성경에 나오는 숫자들이 우연의 일치로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기자들이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했는지는 분명치는 않지만, 상당부분 의도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히브리인들은 숫자를 문자와 병행했기 때문에 의미를 부여 할 수 있었으며, 성경 숫자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은 ‘성경에 나타난 일련의 체계적인 숫자들은 하나님의 정확한 계시의 기술이며, 하나님의 계획적인 디자인을 보여 주려는 성경 기자들의 의도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오랜 역사를 두고 수신학자(數神學者)와 수비학자(數秘學者)들에 의해 체계화된 성경 수에 대한 상징들을 소개만 하고자 한다.
◎ 1 수론(數論)
1을 나타내는 말에는 하나, 한번이라는 뜻을 가진 기수 ‘에하드’(unity)와 첫째, 장자라는 뜻을 가진 서수 ‘리숀(primacy)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리숀은 우두머리 정상, 가장 좋은 것, 앞 시작, 총수, 처음 등의 의미를 가진 명사로 ’쉬‘에서 파생한 단어로, 이전의, 첫째의, 최고의, 정월, 처음, 첫날, 먼저 등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에서 1이라는 숫자는 1 없이는 아무 수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기본 수이며, 모든 수는 1(하나)에 의존한다. 그래서 1은 시작을 뜻하며 그것 자체로서 완전해서 그 어떤 다른 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독립하기 때문에 홀로 서있으며 독특하며 불가분을 표시한다. 1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첫 번째 알파벳인 ‘알렢’은 시작과 우두머리를 상징한다. ‘황소’(ox, bull)를 의미하는 알렢은 원래 ‘소머리’를 본뜬 모양이다. 소를 의미하는 알렢의 복수형은 ‘알핀’으로 ‘일천’(one thousand)을 뜻하기도 한다.
특히 하나님과 연관하여 사용될 때는 ‘무한한’(infinite), ‘셀 수 없는’(innumerable)의 의미가 더해진다 (출20:6, 34:7, 신5:10, 렘32:18, 벧후3:8-10, 시90:4, 계20:2,5). 또한 알렢은 헬라어로 알파에 해당하는 알파벳이다. 이 알렢과 알파는 수(數)로는 1000뿐만 아니라, 1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더불어 1이라는 값을 가진 알렢과 알파는 ‘처음(first) 또는 ’시작‘(beginning), '근본’(origin, source), 기력의 시작이라 여겨지는 ‘장자’(firstborn)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1수는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 가운데 첫째이며, 먼저이고, 모든 것을 산출했으며, 모든 것이 그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홀로 서고 모든 것에 독립하여 계신다. 그는 스스로 만족하시며 부족이나 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양상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며 〈한〉 분이시니” (신 6:4)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며” (창 2:24)
“온 땅의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창 11:1)“
“놋 갈고리 오십을 만들고 그 갈고리로 꾀어 연합하여 〈한〉 막이 되게 하고” (출 26:11)
“이 중에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레 5:5)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어서” (레 26:26)
“너희중 너희와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한〉율례니” (민 15:15)
“그 막대기들로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하여” (겔 37:17)
“모든 산에서 그들로 〈한〉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겔 37:22)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겔 37:24)
◎ 2 수론(數論)
2를 나타내는 말에는 두 번째를 의미하는 서수 ‘쉐니’와 둘을 의미하는 기수 ‘쉐나임’이 있다. 쉐니는 이튿날, 차자, 우편의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쉐나임은 반복하다, 다시 행하다, 가르치다, 입으로 전하다 등을 뜻하는 ‘샤나’에서 유래된 단어로 쌍, 갑절, 양편 등의 뜻을 가진다.
그래서 히브리적 표현에서 2는 곱하다, 반복하다, 두 번째 행하다 등을 의미한다. 종교적 전통에서 2는 절대적인 신성이 분리되고 분열되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성서에 〈2〉혹은 〈둘〉이라는 수사가 나타나는 경우는 아래와 같다.
“하나님이 〈두〉큰 광명을 만드시고 큰 광명으로 낮을,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창 1:16)
“한 남자가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고” (창 2:24)
“각기 ‘암수 한 쌍씩’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노아에게로 나아왔고” (창 6:19-20)
“이스라엘 백성이 〈두〉마음을 품어서 죄를 범했으며” (호 10:2)
“여호와의 사자가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렀으며” (창 22:15)
“야곱의 양들이 〈두〉떼나 이루었으며” (창 32:10)
“한 땅에 〈두〉종자를 섞어서 뿌리지 말도록 하였고” (레 19:19)
“죄를 정죄할 때 한 증인으로만 하지 않고 〈두〉증인을 세웠으며” (신 19:15)
“다윗이 모압을 쳐서 〈두〉줄 길이의 사람을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렸으며” (삼하 8:2)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증거판은 〈둘〉이고” (출 31:18)
“속죄물은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이며” (레 5:7)
이상과 같은 〈둘〉이라는 수사는 없으나 의미상 〈둘〉을 지시하는 내용은 허다하니, 출애굽기 8장 32절에는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둔다”고 했고, 창세기 첫 장에는 “궁창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었으며,” 하와는 창조의 둘째 인간이며 구약성서에는 옛 계약과 새 계약이 있고, 제사 시에는 두 마리의 새가 있어 한 마리는 살해되고 한 마리는 방면되었으며, 두 마리의 염소가 있어 한 마리는 살해되고 한 마리는 방면된다. (레 14:5-8, 16:8)
그리고 구별되는 이름은
가인과 아벨이 있으며 (창 4:1-2),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고 (창 16:11, 17:19)
야곱과 에서가 있으며 (창 25:25-26), 와스디와 에스더가 있으며 (에 1:9, 2:7)
여인의 후손과 사탄의 후손이 있고 (창 3:15), 정과 부정이 있다 (레 10:10).
그리고 창세기 19장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상이 있는데, 그 기사는 두 가지 모습으로 가득 차있다. 즉〈두〉천사 (19:1), 늙은이와 젊은이의〈두〉연령층 (19:4), 〈두〉딸 (19:8), 크고 작은〈두〉무리들 (19:11), 들과 산의〈두〉장소 (19:17), 유황과 불로 파괴하는〈두〉행위(19:24), 집과 동굴의〈두〉거주지 (19:3,30), 모압과 벤암미의〈두〉자녀 (19:37,38), 이 밖에도 모세와 아론, 갈렙과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 등〈두〉수를 내용으로 하는 것은 허다하다.
이상과 같이 〈두〉수는 ‘구분(division)과 분리(seperation)’와 ‘차이(difference)와 보완(replacement)'을 그 공통근의(共通根意)로 갖는다.
2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파벳 ‘베트’는 집 모양을 나타낸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브리어 베트는 헬라어로 ‘베타’에, 영어로는 알파벳 ‘B, b' 에 해당한다. 숫자의 의미로는 베트와 베타 모두 2 또는 2000에 해당하는 알파벳이다.
성경에서 2라는 수는 증거의 수로, 두 사람의 증인이 있을 때 참으로 진정된다 (민 35:30, 신 17:6, 요 8:17, 계 11:1-4), 빛으로 오신 예수님도 자신에 대한 증인으로 보내신 자 하나님과 예수 자신이 두 증인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요 8:18). 둘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듀테로스’로 둘째, 두 번, 다시, 두 번째의 사람 또는 물건 등을 의미한다 (마 22:26,29, 고후 3:12, 히 8:7, 계 2:11). 단순히 둘, 이틀을 의미하는 ‘뒤오’라는 말도 있다.
한편 둘이라는 수는 주님의 초림과 재림과 관련해서도 사용된다. 초림에 대하여서는 고전 15;47에 ‘하늘에서 오신 둘째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재림과 관련해서는 완전한 구원을 위해 다시 오시는 주님이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고 기록돼 있다 (히 9;28).
참고로 열한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인 ‘카프’와 열 번째 헬라어 알파벳인 카파는 20이라는 수의 값을 가지며, 스무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인 ‘레쉬’와 헬라어 알파벳 ‘로’는 200이라는 수의 값을 가진다.
◎ 3 수론(數論)
3을 나타내는 말에는 셋이라는 뜻의 기수 ‘솰로쉬’와 셋째라는 수 ‘쉘리쉬’가 있다. 헬라어로는 ’트레이스‘가 있다. 이 3수는 포괄적으로 완성과 완결의 수로 이해된다. 구약성경에서 3은 거룩한 완전수이며 완성수로, 처음과 중간과 끝, 연합 및 협력, 승인 및 허가의 뜻이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제례의식에서 완전무결함을 의미하는 수이다. 고대인들은 우주와 하늘과 땅(지상), 지하의 세계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성경속의 수의 신비, 연합공보 출판부, p.57).
숫자 3에 해당하는 세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인 Gimel은 헬라어로는 ‘감마’에 해당하며, 3 또는 3,000이란 수의 값을 가진다. 특히 성경에서 3이라는 수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곧 하늘의 수로 하나님의 완전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구약 성경에서 〈3〉혹은 〈3〉이란 숫자가 나타나는 경우는 아래와 같으나 곧,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는 〈3〉년된 암소와 〈3〉년된 암염소와 〈3〉년된 수양을 잡아라” (창 15:9)
“이스라엘 백성이 매년 〈3〉차례 절기를 지키며” (출 23:14)
“각종 나무를 심거든 〈3〉년 동안은 그 열매를 따지 말라” 고 했고, (레 19:23)
“살인자나 죽임을 당한 시체를 만진 자는 제〈3〉일과 제 7일에 몸을 깨끗이 하라 (민 31:19)
“다니엘은 하루 〈3〉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으며” (단 6:10)
“엘리야는 죽은 시신 위에 몸을 〈3〉번 펴서 엎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며” (왕상 17:21)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천사는〈셋〉이었으며” (창 18:2)
“애굽의 술 관원이 꿈에 본 포도나무는 가지가 〈셋〉이며” (창 40:10)
“솔로몬의 궁전은 창들이 〈3〉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3〉층으로 서로 대하였고” (왕상 7:4)
“다니엘은 〈3〉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였으며“ (단 10:”3)
“다윗에게...혹 〈3〉년 기근일지, 혹 네가 〈3〉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쫒길 일일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3〉일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대상 21:12)고 했고
〈3〉성읍에 〈3〉을 더해서 늘리기로 되어 있는 도피성 (신 19:7,9)과
성막은 뜰 성소 지성소의 〈3〉구분으로 되어 있고 (출 26:33, 27:9)
아론의 축복에서 여호와의 이름이 〈3〉번 나오고 하나님의 축복행위가 〈3〉번 이루어 질 것” (민 6:24~26)을 단언했고
출애굽기 3:14절의 “나는 ........이다”는 확대하여 과거, 현재, 미래에 미치게 된다. (계 1:4, 4:8)
또한 구약성서에는 수많은 삼총사가 있으니 셈과 함과 야벳(창 5:32),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출 6:16),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 등등이 있다. 약속의 땅(가나안)이 완전한 자연임을 증거 하는 귀국한 정탐꾼의 보고에 의하면 〈3〉가지 였으니, 포도, 석류, 무화과였다 (민 13:23).
그리고 〈3〉수로 완성된 신성화의 아름다운 모습은 문둥병의 완치나 제사장의 성결 의식에서 볼 수 있다. 그때에는 피와 기름을 붓는데 피를 오른쪽 귓밥에, 오른손 엄지에, 그리고 오른발 발가락에다가 발랐다 (레 14:14). 이와 같은〈3〉중(重) 성결화는 하나님께 듣고, 하나님께 봉사하고,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기 위함이었다.
이상의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3〉수는 질적으로 본 거룩한 완전수(完全數: perfect)이며, 완성수(完成數: completeness)로서, “동위(同位: co-ordination, 처음과 중간과 끝)”의 개념을 가졌으며, ‘연합(聯合) 및 협력(協力: union)', 승인(承認) 및 허가(許可: approbation)'의 뜻을 지닌다. (엄원식 교수의 구약성서의 수신학, p.53)
그리고 기독교에서 3위1체의 교리가 확립된 후 “〈3〉란 숫자는 하늘의 수로 하나님의 완전성을 나타낸다.” 라고 할 수 있다.
◎ 4 수론(數論)
4를 나타내는 말에는 넷이라는 서수 ‘레비이‘와 넷, 네 배, 나흘, 넉 달, 사방이라는 뜻의 기수 ’아르바‘가 있다. 복수 형태인 ’아르바임‘은 사십, 마흔 등을 의미한다. 헬라어로는 4, 넷을 의미하는 ’텟사렛트‘가 있으며, 넷째, 마흔 등을 의미하는 ’데타르토스’가 있다.
4라는 수 값을 가지는 네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은 Daleth으로 문(door)을 상징한다. Daleth에 해당하는 알파벳은 델타로, 4 뿐만 아니라 4,000이란 수 값을 가지기도 한다. ‘델타’는 영어로 4를 의미하는 ‘테트라’(tetra)에 해당한다.
4 수는 성경에서 땅의 네 귀퉁이인 동서남북을 가리킨다.(욥 3:11-12, 암 3:11, 계 7:1, 민 1:50, 53). 구약성서에서 〈4〉혹은 〈넷〉이란 수사가 나타나는 경우는 아래와 같다.
“〈넷〉째 날에 물질 창조가 끝났으며” (창 1:19)
“에덴동산에 흐르는 강은 〈넷〉이며” (창 2:1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땅 〈4〉방에서 모으며“ (사 11:12)
“하나님께서 하늘의 〈4〉방에서부터 〈4〉방의 바람을 엘람에 이르게 하여 그들을 〈4〉방으로 흩으신다.” (렘 49:36, 단 7:2, 슥 2:6)
“스가라에게 나타난 병거(兵車)는 〈넷〉이며” (슥 6:1-8)
“에스겔이 본 하나님의 벌은 〈네〉가지(칼, 기근, 사나운 짐승, 온역)이며” (겔 14:21)
“예레미야가 본 하나님의 벌은 〈네〉가지 (칼, 찢는 개, 공중의 새, 땅의 짐승)이며” (렘 15:3)
“스가랴가 본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해치는 뿔은 〈네〉가지이며” (슥 1:18-19)
구약성서에 지구는 〈네〉귀퉁이와 〈4〉방이 있다 (삼하 7:1). 방위는 동서남북 〈4〉방이 있고 (대상 2:24), 하루는 아침, 점심, 저녁, 밤 〈4〉구분이 있으며, 1년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있고, 음력은 초승, 반달, 보름, 그믐의 〈4〉구분이 있다. 그리고 〈넷〉째 계명은 ‘땅’에 관련된 것이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4〉수는 특별히 땅, 즉 지상 세계와 관련을 갖고 있다 (Gordon Lindsay, op cit, p. 49).
그러므로 〈4〉수는 '세상 수(世上 數 : world number)'이며 창조 수(創造 數 : creation number)'이다. (Edwin Hartill, op, cit, p.112)
◎ 5 수론(數論)
5를 나타내는 말에는 다섯의 의미인 기수 ‘하메쉬’와 다섯째를 의미하는 서수 ‘하미쉬’가 있다. 복수 형태인 ‘하밋쉼’은 50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5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구원을 상징한다. 더불어 5의 배수인 50은 50년마다 돌아오는 유대교의 절기인 희년과 죄의 참회와 용서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숫자 5는 다섯 개의 손가락, 구약성경의 모세 오경,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샤넬 넘버 5’ 등처럼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중심적인 수로 등장한다.
특히 동양에서 숫자 5는 모든 것이 이치에 맞게 갖추어진 완전함을 뜻하는 수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五覺, 五感)이나,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의 5장(五臟), 눈, 혀, 몸, 코, 귀의 오관 (五官) 등은 대표적인 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5를 3+2, 즉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과 신에 대한 경배,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했다.
5라는 수의 값을 가지는 히브리어는 창문, 바람, 기도 등의 의미를 가진 알파벳인 ‘헤’와 헬라어 알파벳인 ‘엡실론’이 있다. 엡실론은 5뿐만 아니라 5,000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섯을 의미하는 헬라어로는 '펜테'가 있다. 5를 의미하는 영어의 펜타(penta)가 이 헬라어에서 파생된 말이다. 특히 이 단어에서 파생한 ‘펜테콘타’는 ‘50’을 의미한다. 이 단어에서 파생된 ‘50번째‘ 라는 의미를 가진 ’펜테코스토스‘의 여성형인 ’펜테코스테‘는 오순절이라는 뜻이다 (행2:1-4, 20:16, 고전 16:8). 성령강림절을 뜻하는 영어 'Pentecost' 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참고로 히브리어의 열네번째 알파벳인 눈은 ‘물고기’(fish) 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숫자로는 ‘50’을 나타낸다. 또 50이라는 수는 유월절이후 50일째 되는 절기인 오순절(五旬節)을 가리킨다 (행 2:1).
구약 성경에서 보면 <5> 혹은 <다섯>이란 숫자가 나타나는 경우는 다음과 같으니,
곧 “하나님께서 명하시기를 너희는 성막(聖幕)을 만들 때
그 앙장(仰帳) <5섯>폭을 서로 연하며 (출 26:1-3)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며.........<다섯>으로 하고 (출 26;26-29)
기둥 <다섯>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출 26;37)
조각목의 장이 <5>규빗, 광이 <5>규빗이며 (출 27:1)
세마포의 고가 <5>규빗이며 (출 27:18)
번제단의 장이 <5>규빗, 광이 <5>규빗이 되게 하라”(출 38:1)고 하였다.
그리고 “처음 남자를 속하기 위하여 매 명에 <5>세겔씩 취하고” (민 3:46-47)
화목제물(和睦祭物)로 수양 <다섯>과 일년 된 수양 <다섯>이며 (민 7:17)
“소나 양을 도적질했으면 <5>배로 갚고” (출 22:1)
“하나님 자녀 <다섯>이 이방 원수 백을 쫓고” (레 26:8)
'오순절과 희년(禧年)은 <50>일과 <50>년이다“ (레 23:16, 25:10-11)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5>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恩惠: wonderful grace)를 상징한다. 광야에서의 성막은 <5>수로 표시되어 도움 받을 길 없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부여하는 기구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5>수의 공통 의미는 ‘은총(恩寵)’이며 ‘구속(救贖 : Redemption)’이다.
◎ 6 수론(數論)
6을 나타내는 말에는 히브리어로 여섯을 의미하는 기수 ‘쉐쉬’와 여섯째를 의미하는 서수 ‘쉬쉬’가 있다. 6이라는 수의 값을 가지는 히브리어의 여섯 번째 알파벳은 ‘와우’다. 하지만 6이라는 수의 값을 가지는 헬라어 알파벳은 없다. 사람이 제 6일에 창조되었기에 6은 인간을 상징하는 수가 됐다. 이 6수는 완성을 의미하는 7수를 지향하고 있지만 하나가 부족한 수다. 그래서 6수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의미하고, 인간의 미완성의 슬픈 상태를 반영한다.
또한 일각에서는 6이라는 수가 인간에 대한 사단의 영향력과 관계있다고 보기도 한다. 느브갓네살 왕이 사람들에게 경배하게 하기 위해 세운 금신상의 크기가 높이 60규빗, 너비 6규빗이라는 점에서 ‘짐승의 형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성경의 6은 여섯째 날 지음 받은 인간의 영·혼·육이 완전히 타락한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요한계시록 13장 17절에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짐승의 이름 또는 짐승의 수를 ‘사람의 수’ 라고 하면서 666이라고 기록 한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계 13;18). 곧 666은 여섯째 날 지어진 사람의 가장 큰 반역과 가장 큰 심판을 받아야 할 타락한 인류 역사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결과를 가져왔다.
참고로 60이라는 수의 값을 가지는 히브리어 알파벳은 버팀목 또는 받침대 (support. prop)등을 나타내는 ‘싸메'이며, 헬라어 알파벳은 ’크시‘다
구약성경에서 <6> 곧 <여섯>이란 숫자가 나타나는 경우는 아래와 같다.
“너희는 <6>년을 섬겼거든 제 7년에는 자유케 하라” (신 15:12)
“땅은 <6>년 동안 계속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라” (출 23:10)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그들의 <여섯>가지 환난에서 구원하신다” (욥 5:19)
“법궤(法櫃)를 멘 사람들이 <여섯>걸음을 행하며 다윗이 제사를 드렸다”(삼하 6:13)
그리고 골리앗은 <6>척 장신이며 (삼상 17:4), 느브갓네살이 세운 동상은 고가 <60> 규빗이고 (단 3:1), 어떤 거인은 <6>손가락에 <6>발가락이 있었다 (삼하 21:20).
이와 같이 <6>은 <7> 즉 완성을 목적하고 있으나 부족하다. 인간 창조가 제 <6>일에 지어졌고 그래서 <6>은 인간의 표시 숫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6의 어떤 배수는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6>수의 공통의미는 ‘인간의 불완전성(不完全性)의 슬픈 상태를 반영하는 ’인간 수(人間 數)이다.
◎ 7 수론(數論)
7을 나타내는 말에는 일곱을 의미하는 기수 ‘쉐바’와 일곱째를 의미하는 서수 ‘쉐비이’가 있다. 더불어 이것을 어근(語根)으로 하는 단어로는 충만하다는 뜻의 ‘사바’ 맹세하다는 뜻의 ‘샤바’를 들 수 있다. 7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파벳은 ‘헵타’다. 고대 헬라어 문헌에서 일곱은 성취된 기간 또는 완전히 완성된 기간의 상징이다. 바벨론인에게 있어 7은 충만과 전체의 뜻이다
7이라는 값을 가지는 일곱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은 ‘무기’(weapon, Arms)를 상징하는 ‘자인’이며, 헬라어 알파벳은 ‘제타’이다. 7은 하늘의 상징수인 성부, 성자, 성령을 의미하는 3과 땅의 상징수인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4를 합한 수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창 2:2-3, 8:6, 15:1).
구약시대의 7은 매우 신성한 의미로 사용됐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구속사역의 완성을 인하여 우주창조 후 7일째 안식하였으며 (창 2:1-2), 이를 기념하여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특별하게 성별했다 (출 20:10, 신 5:14). 또한 성별된 기간으로 무교절은 칠일동안 지키도록 되어 있다 (레 23:6-8). 완전한 속죄의 상징으로 제물의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리기도 했다 (레 16:14, 19). 온 세상을 두루 감찰하시는 여호와의 눈도 일곱이라고 되어 있다 (슥 4:10).
신약 성경에서 7은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순결한 신앙(롬 11:14), 완전한 안식(히 4:4), 온전한 믿음(히 11:30) 등을 의미한다. 또한 완전하신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나타내기도 한다(계 1:4, 1:16, 2:1, 5:1, 6, 6:8-11장, 15:1).
참고로 70이란 수의 값을 가지는 열여섯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은 ‘눈’(eye)을 상징하는 ‘아인’이며, 헬라어 알파벳은 ‘오미크론’이다. 성경에서 70은 죄로부터의 완전한 회복과 구원을 상징하는 숫자 70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엘림에 있는 물샘 열둘과 종려 70주는 이스라엘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세우신 열두 제자들과 칠십 문도와 상징적인 관련을 갖는다 (출 15:27, 마 10:1-2, 눅 10:1).
이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70년 만에 회복되었다 (대하 36:21, 렘 25:11-12, 렘 29:10, 단 9:2). 또 하나님은 다니엘 선지자를 통해서 ‘칠십 이레의 기한 동안에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원히 속하여진다’ 고 예언하시기도 했다 (단 9:24).
성경에 <7> 또는 <일곱>이란 숫자가 나타나는 경우는 아래와 같다.
“하나님의 세상 창조 작업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쳤다.” (창 2:2)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7> 배나 받는다” (창 4:15)
“노아의 방주(方舟)에 나오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이었다” (창 7:2)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7>년 동안 라반에게 봉사하였고” (창 29:20)
“바로가 본 하수에서 올라온 살찐 암소가 <7>마리였고” (창 41:2)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날 때 절을 <7>번 하였으며” (창 33:3)
“애굽의 흉, 풍년이 각각 <7>년씩이고” (창 41:47-54)
“무교절과 장막절은 각각 <7>일간씩 지키고” (출 12:16-18)
“병가(病家)에서 새 두 마리의 피를 <7>번씩 뿌려 정결케 했고” (레 14:48-51)
“여리고 성이 제<7>일에 <일곱>번 도니 무너졌고” (수 6:12-16)
“삼손의 머리털 <7> 가닥을 깎으니 힘이 없어지고” (삿 16:13-19)
“엘리야의 하인이 <7>번 기상을 예보했으며” (왕상 18:43-44)
“땅에 <7>년 기근이 오고” (왕하 8:1-3)
“나아만이 요단강 가에서 <7>번 목욕하니 병이 나았으며” (왕하 1:10-14)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싫어하시는 것이 육 <7>가지니 곧” (잠 6:16)
“앗수르 사람이 우리 궁전을 밟으면 <7> 목자(牧者)로 치겠다 하고” (미 5:5)
“그 날에 <일곱> 여인이 한 남자를 붙들고 당신 이름으로 수치를 면하고자 하고” (사 4:1)있다.
스가랴서와 다니엘서는 <7>이라는 숫자가 강조되어 있으며, 창세기 12장 2-3절에는 계약(契約)의 <7> 부분이, 그리고 출애굽기 6장 6-8절에는 이스라엘의 <7>중(重) 약속이 나타나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의 <7>수의 공통의는 ‘신적충만(神的充滿 : divine fullness)'과 ’만족(滿足 : satisfaction)' 그리고 ‘완성(完成 : perfection)'과 ’완전(完全 : completion)'이다.
◎ 8 수론(數論)
8을 나타내는 말에는 여덟을 뜻하는 기수 ‘쉐모네’와 여덟째를 뜻하는 서수 ‘쉐미니’가 있다. 숫자 8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파벳은 ‘옥토’다. 여기서 파생된 영어식 표기가 ‘octa’이다. 참고로 8각형은 ‘octagon’이며, 피아노의 5도 음정을 ‘octave’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4의 배수인 8은 중복과 강조의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사방팔방(四方八方), 사고팔고((四苦八苦), 사통팔달(四通八達)등이 그 예다. 바벨론에서 8은 천국의 수로 인식돼 있다. 왜냐하면 바벨론 신은 탑 모양으로 세워진 신전의 8층에 기거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8을 행운을 불러오는 특별한 수라고 여겼다. 8은 근원으로 회귀하는 의미와 7이 준비하고 성취한 것을 완성하는 의미를 갖는다. 8은 신적인 완전수 3과 은혜의 수 5의 합으로 부활을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중세 신학자들은 예수의 헬라식 표기인 ‘예수스’( 10+8+200+70+400+200)가 888이라는 값을 가지기 때문에 성스러운 수로 인식하기도 했다.
8이라는 수의 값을 가진 히브리어의 여덟 번째 알파벳은 ‘담’(wall, partition}, ‘울타리’(fence)라는 의미를 가진 ‘헤트’이며, 헬라어 알파벳은 ‘에타’다. 또 ‘헤트’는 ‘죄에서 다시 깨끗하게 한다’는 구원과 재창조를 의미하는 8이란 숫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죄로 인해 막힌 담을 허시고 구원의 길을 여신 예수와도 그 뜻이 일맥상통한다. 성경에서 8은 구세주를 통한 구원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노아의 가족 8명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홍수 심판에서 방주를 통해 구원받았다 (창 6:1-7:8, 벧전 3:20). 태어난 지 8일 만에 행하는 할례는 범죄 함으로 더러워진 피를 뽑아내어 깨끗하게 한다는 구원을 상징한다 (창 17:10-14, 23-27, 레 12:3, 눅 2:21).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은 7일째 안식일이 지난 첫날 부활하셨다 (마 28:1-6, 막 16:1-6, 눅 24:1-8). 때문에 숫자 8은 안식 후 첫날인 새 안식일, 곧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인 주일이 됐다 (요 20:1-10).
참고로 80이라는 수의 값을 가지는 히브리어의 열일곱 번째 알파벳은 ‘입’(mouth)을 상징하는 ‘페’이며, 헬라어 알파벳은 ‘피’다.
성경에서 <8> 또는 <여덟>이란 숫자가 나타나는 경우는 아래와 같다.
“노아의 방주에서 구원을 얻은 자가 <여덟> 명이었다” (벧전 3:20)
“남자는 난지 <8>일 만에 할례(割禮)를 받았다” (창 17:12)
“제 <8>년에 다시 파종(播種)할 수 있었다” (레 25:22)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자가 된지 <8>년에” (삿 12:14)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8>년 동안 섬겼다” (삿 3:8)
“여호람이 예루살렘에서 <8>년 동안 통치했다” (대하 21:20)
“유다 왕 여호야긴이 잡혀 갈 때는 바벨론왕 <8>년이었다” (왕하 24:12)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8>수는 ‘부활’과 ‘새 시작’ 즉 ‘새로운 질서(秩序)’를 뜻한다.
◎ 9 수론(數論)
9를 나타내는 말에는 아홉을 뜻하는 기수 ‘테샤’ 또는 ‘티쉬아’와 아홉 번째를 뜻하는 서수 ‘테쉬이’ 가 있다. 헬라어로는 ‘엔네아’와 아홉 번째를 의미하는 ‘엔나토스’를 들 수 있다.
9는 8에 1을 더한 수로, 천상의 완전함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고통과 수난을 상징하기도 한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9라는 수가 완전한 수로 여겨지는 10에서 1이 모자라기 때문에 불길한 수라고 여기기도 했다. 또한 성스러운 수인 3이 강화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완성의 수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민족에 있어서 숫자 9는 조화와 완벽의 상징으로 여기는 3을 3배한 수로, 어떤 한정된 범위 내에서는 가장 완전한 수이며, 가장 큰 수로 여겨진다. 완벽한 수는 아니지만 아직도 채워야할 것이 있다는 여유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숫자다. 예를 들어 9는 더없이 높은 지고의 수이다. 아주 큰 키를 구척장신(九尺長身)이라 하고, 매우 먼 하늘을 ‘하늘 구만리’ 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많음을 뜻하는 구사일생(九死一生)과 깊음을 뜻하는 구중궁궐(九重宮闕 : 깊은 궁궐)등도 9의 의미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9는 3의 3곱으로 구약성경에서 일곱 번 나오며, 심판과 종국, 완성을 의미한다.
9라는 수의 값을 가지는 히브리어의 아홉 번째 알파벳은 뱀을 상징하는 ‘테트’이며, 헬라어 알파벳은 ‘데타’에 해당한다. 예수님은 아홉 또는 아홉과 관련된 개념을 죄인 하나의 회개와 연관시켜 설명한다. 곧 아홉이라는 개념은 잃어버린 하나가 돌아 올 때까지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마 18:12-13, 눅 15:4, 7). 잃어버린 자, 곧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시간도 이스라엘 시간으로는 제 구 시다 (막 15:34, 마 27:45-46).
또한 숫자 구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는 성령, 곧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아홉 가지 열매를 나타내기도 한다 (갈 5:22). 참고로 90이라는 수의 값을 가지는 열여덟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은 낚시바늘(fish-hook) 또는 물고기를 낚는 갈고리(fishing hook)를 상징하는 ‘차데’다.
성경에서 <9> 또는 <아홉>이란 수사(修士)가 나타나는 경우는 아래와 같다.
“호세아 제<9>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취하고 이스라엘을 사로 잡아갔고” (왕하 17:6)
“히스기야 제<9>년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였고” (왕하 25:1)
“시드기야 제<9>년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였고” (렘 39:1)
“에스겔은 제<9>년에 여호와의 말씀을 받았다.” (겔 24:1)
이러한 <9>는 <3>의 3곱이며, 그리고 구약성서에 단 <7>번만 나오고 있다. 구약성서의 <9>수는 ‘심판(審判:judgment)’ '종국(終局:finality)‘ 완성(完成:completion)을 의미한다.
◎ 10 수론(數論)
10을 나타내는 말에는 열을 뜻하는 기수 ‘에세르’ 또는 ‘아사르’와 열 번째를 의미하는 서수 ‘아시리’가 있다. 10을 의미하는 헬라어는 ‘데카’다. 일반적으로 열은 1과 짝을 이루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에서 하나는 작거나 부분적이고 미약한 것을 가리키지만, 열은 많거나 완벽하거나 전체를 가리킨다.
10에 해당되는 로마 숫자 X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십계명을 연상케 한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의 헬라어 ‘크리스토스’의 첫 문자 역시 Χ다. 또한 예수의 헬라어 ‘예수스’ 역시 그 첫 문자가 10이라는 수의 값을 가지는 ‘이오타’다. 10이라는 수의 값을 가지는 열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은 ‘손’(hand)또는 손을 포함한 ‘팔뚝’(forearm)등을 상징하는 ‘요드’이며, 헬라어 알파벳은 ‘이오타’다.
구약성경에서 10수는 전체, 완전한 우주성, 완벽한 하나님의 질서, 인간의 책임을 나타낸다. 이 10수가 신성수(神聖數)로서 특별히 중요시 되는 이유는 신적 완전수인 3과 영적 완전수인 7의 합으로 질서적 완전을 성립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10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에 관한 기사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말씀이 10회 나온다(창 1:3, 6, 11, 14, 20, 22, 24, 26, 29).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일어나게 하신 열 가지 재앙이 나오기도 한다 (출 7:20-12:36). 하나님께서 직접 두 돌판에 기록하여 주신 계명 또한 열 가지로 나타난다 (출 20:1-17, 신 5:7-22).
더불어 10은 성도들이 견디고 이겨 내야할 시험과 환난의 기간을 뜻하기도 한다 (단 1:12-16, 계 2:10). 또 예언서에서 10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짐승과 같은 존재에 대한 실체를 설명하는 것과 연결돼 있다 (단 7:20,24 계 12:3, 13:1, 17:3, 7, 12, 16).
참고로 100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의 열아홉 번째 알파벳은 바늘 귀(Eye of needle), 뒷머리(back of head)등을 상징하는 ‘코프’다.
<10> 또는 <열>이라는 수사(數詞)가 성경에 나타나는 경우는 아래와 같다.
“성막을 만들 때 각 판의 장은 <10> 규빗이다.” (출 26:16)
“이스라엘 백성이 모은 메추라기는 <10> 세겔 이었다” (민 11:32)
“솔로몬이 만든 성소(聖所)의 한 그릅의 두 날개의 길이가 <10> 규빗이다.” (왕상 6:24)
“모세가 받은 계명은 <10> 계명이다” (출 34:41)
“소돔을 위한 아브라함의 도고는 의인 <10> 인에 와서 중지되었다” (창 18:32)
“아브라함이 하갈을 첩(妾)으로 받은 때가 가나안에 거한지 <10> 년이었다” (창 16:3)
“아하스의 일영표(日影表)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는 <10>도를 물러가게 하였다” (왕하 20:11)
“여로보암이 예언자에게서 이스라엘 부족들의 상징으로 받은 옷 조각이 <10>이었다” (왕상 11:31)
“다니엘이 본 짐승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었다” (단 3:20)
“애굽에 내린 재앙은 <열> 가지이다”
“모세가 드린 생명의 속전은 <10> 게라(gerahs)였다” (출 30:13)
“소득의 1/10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사람의 책임이다” (말 3:10)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열>번이나 시험을 하였다” (민 14:22)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10> 수는 그 공동의가 ‘전체(全體:totality)', '완전한 우주성(宇宙性: a perfect universality)', 완벽(完璧)한 하나님의 질서(a completeness of divine order)' 및 ‘인간(人間)의 책임(責任: responsibility)'을 나타낸다.
이 <10> 수가 신성수(神聖數)로서 특별히 중요시되는 이유는 역시 다른 신성수 곧 <3>과 <7>의 합계이기 때문이다.
출처 : 창조과학회 대구지부 월간소식지 ‘창조’ 제6호-제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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