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 나타난 성(性)
강성열 (호남신학대학교 교수 /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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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약성서와 성의 문제
언뜻 보기에 구약성서는 성에 관해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구약성서가 의외로 성에 관한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삶에 관한 각종 법 규정들과 예언자들의 메시지 및 지혜문학 등을 보면 그 점이 분명해진다. 족장사나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도 성에 관한 문제가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틀로 작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테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이집트의 파라오(창 12:10-20), 사라와 그랄 왕 아비멜렉(창 20:1-7)과 야곱의 딸 디나와 히위 족속 세겜(창 34장), 유다와 그의 며느리 다말(창 38장), 삼손과 들릴라(삿 16:4-22), 한 레위인의 첩과 베냐민 지파(삿 19장), 다윗과 밧세바(삼하 11장), 다윗의 딸 다말과 암논(삼하 13장) 등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이상의 다양한 자료들에 있는 성의 문제를 이 짧은 글에서 상세하게 다룰 수는 없겠으나, 그 기본 줄기만큼은 간략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결혼과 성
구약성서는 성 자체를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본다. 구약성서의 이러한 시각은 첫 인간의 창조와 남녀 사이의 결합에 관해 묘사하는 창세기 1-2장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 본문에 의하면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창 1:26-28)된 남자와 여자는 성관계(결혼)를 통해 한 몸을 이루며(창 2:24), 서로의 성적인 결합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은 하나님의 복으로 이해된다(창 1:28). 이것은 남녀의 성적인 결합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요, 창조 질서에 부합되는 것임을 뜻하며, 둘 사이의 결합이 사랑에 근거한 것이어야 함을 암시한다.
이 점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주고받는 사랑의 노래 내지는 결혼의 노래로 알려진 아가서에 의해 뒷받침된다. 아가서(雅歌書)는 '쉬르 하쉬림'이라는 히브리어 제목에서 보듯이 남녀간의 사랑과 결혼에 관한 노래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멋있는 노래임을 강조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육체의 아름다움에 관한 아가서의 성적인 묘사들(1:9-10; 4:1-5, 8, 10- 12; 5:10-16; 6:4-10; 7:1-9 등)이 세속적이고 육적인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지만, 아가서는 남녀간의 사랑이 정신과 육체의 결합으로 완성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그렇게 해서 보여주고 있다.
창세기와 아가서의 이러한 교훈은 결국 남녀간의 사랑과 그에 기초한 성적인 결합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소중한 삶의 원리임을 가르쳐 준다. 그 까닭에 신명기는 갓 결혼한 자의 군복무를 1년 유예함으로써 결혼과 가정을 사회 복지 차원에서 보호한다(신 20:7; 24:5). 그런가 하면 지혜문학은 결혼에서 성생활의 즐거움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고 그를 사랑할 것을 권하는 잠언의 가르침(잠 5:18-19)이나,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라는 전도서의 교훈(전 9:9)이 그러하다. 지혜문학의 이러한 가르침은 음녀(淫女)를 경계하고(잠 2:16-19; 5:3, 20; 6:24-26; 7:24-27; 22:14; 23:27; 29:3) 남의 아내와 통간(通姦)하는 것을 금하는(잠 6:29-32) 것과도 연결된다.
3. 성의 사회적인 기능
어느 사회에서나 성(또는 성관계)에 기초한 자녀 생산은 가족이나 씨족 집단을 유지하고 확대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될 절대적이고 유일한 방법으로 이해된다. 특히 가부장적인 권위가 지배하던 시대에 있어서는 가문을 이어갈 아들을 낳는 일이야말로 성관계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간주되는 바, 이 점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들을 출산할 경우 성대한 잔치를 벌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창 21:8; 룻 4:14-17). 아들을 하나님의 '후한 선물'(창 30:20)로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야웨께서 첫 인간 피조물인 남자와 여자에게 주신 생육과 번성의 복(창 1:28; 참조, 9:1)이나 아브라함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족장들에게 주신 자손 약속(창 13:16; 15:5; 17:5-6; 22:17; 26:4 등)도 동일한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이 점에서 본다면 롯의 두 딸이 아버지를 통해 아들들을 낳은 일(창 19:30-38)이나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시아버지 유다를 통해 상속자를 낳고자 한 일(창 38:12-30)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롯의 두 딸과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한 일은 근친상간이라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되는 일이었지만, 그것이 성적인 쾌락을 누리려는 불건전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가문 존속과 종족 보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에서 비롯된 것인 까닭에, 창세기 본문은 그에 대한 별다른 비판을 가하지 않음으로써 그 여인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킨다.
4. 성의 남용에 대한 각종 규제들
구약성서는 성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사랑의 완성으로서의 성적인 결합이라는 개인적인 차원과 종족 보존이라는 사회적인 차원 이외의 성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한 행위의 대부분에 대해서 구약성서는 엄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는 바, 처벌을 받아야 할 불법적인 성관계에는 다섯 가지 정도가 있다. 첫 번째는 여자가 그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힘있는 자들의 권력 남용에 희생되는 경우이다. 이것은 이른바 성폭력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히위 족속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한 일(창 34:1-2)이나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한 레위인의 첩을 폭행한 일(삿 19:25-28),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일(삼하 11:2-5), 그리고 다윗의 큰아들 암논이 배다른 누이인 다말을 겁탈한 일(삼하 13:7-14) 등이 그러하다. 구약성서는 이러한 성폭력 행위에 대해서 별다른 처벌 규정을 두지 않고 있으나, 남자가 약혼녀를 강간했을 때에는 그 남자만을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는 규정(신 22:25-27)을 이에 준용할 수 있을 것이다.
처벌이 따르는 불법적인 성관계의 두 번째는 간통의 경우이다. 남자가 유부녀나 약혼녀와 통간했을 때에는 모두를 돌로 쳐서 죽여야 했으며(레 18:20; 20:10; 신 22:22-24),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와 통간한 경우에는 그 처녀를 아내로 맞이해야만 했으나 아버지가 그에 반대할 수도 있었다(출 22:16-17). 그러나 신명기 법전은 그 남자가 자신과 통간한 처녀를 반드시 아내로 맞이해야 한다는 규정을 둠으로써(신 22:28-29), 여자의 정절에 대해서 공동체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지켜야 함을 강조한다.
불법적인 성관계의 세 번째는 근친상간(incest)이다. 근친상간에 관한 규정이 있는 것은 성행위를 통해서 타인의 가정을 파괴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일가 친족의 가정을 파괴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구약성서는 근친상간을 매우 엄하게 금하여 돌로 쳐서 죽이는 형벌을 부과한다(레 18:6-18; 20:11-12, 17-21; 신 27:20, 22-23). 네 번째는 짐승들과 성관계를 맺는 이른바 수간(獸姦; bestiality)이다. 수간은 남자(출 21:19; 레 20:15; 신 27:21)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여자(레 18:23; 20:16)에 대해서도 엄하게 금지된다. 다섯 번째는 동성(同性) 사이의 성관계(homosexual intercourse)로서, 소돔과 고모라 지역의 사람들(창 19:5)이나 베냐민 지파 사람들(삿 19:22)이 그러한 잘못된 성풍습에 깊이 빠져 있었다. 동성애 행위 역시 죽음의 형벌을 면치 못했다(레 18:22; 20:13).
5. 제의와 성
성에 관한 구약성서의 신학적인 입장은 무엇보다도 성이 제의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의 주변 나라들, 특히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가나안 지역에서는 남신(男神)과 여신(女神) 사이의 천상 결혼(거룩한 결혼??hieros gamos = sacred marriage)이 지상 세계에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신들 사이의 결혼을 왕과 왕후(또는 여사제)를 통해 제의 속에서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다산(多産)과 풍요를 약속 받음과 동시에 왕조와 국가의 영속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러한 제의적인 성관계에는 왕족 이외의 일반인들까지도 폭넓게 관여하였는 바, 그것은 이른바 신전 창기(sacred prostitute/temple prostitute)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주변 종교의 이러한 제의적인 성행위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높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행음하였다'는 표현들(신 12:2; 왕상 14:23; 왕하 16:4; 17:10; 사 30:25; 57:5, 7; 65:7; 렘 2:20; 3:6; 17:2; 겔 6:13; 20:28; 34:6; 호 4:13; 대하 28:4 등)이 그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안에는 남자들을 상대하는 여자 신전 창기들(신 23:17; 호 4:14)이 널리 활약하고 있었으며, 남자 신전 창기들(왕상 14:24; 22:46; 왕하 23:7)도 이에 못지 않은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에는 신전 창기와 성관계를 맺음으로써 풍요를 약속 받고자 하는 바알적인 혼합주의 종교가 야웨 신앙의 존립 자체를 크게 위협했다.
이러한 위기의 때에 야웨 신앙의 바알화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 바로 예언자들이었다. 그들은 지상 세계의 풍요가 남녀 신들의 성관계에 의해 좌우된다는 믿음에 근거한 제의적인 성행위에 대해 타협의 여지가 없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아모스는 부자(父子)가 신전 창기에게 가서 제사를 드리는 행위를 비판하였으며(암 2:7),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신전 매음 행위를 비판함과 동시에 젊은 여자들이 신전 창기로 바쳐지는 것을 반대하였다(호 4:13-14). 예레미야 역시 하나님과 유다 백성 사이의 이상적인 결혼 관계가 깨뜨려진 것은 유다 백성이 제의적인 성행위에 참여하여 음행을 즐겼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렘 2:20).
남신과 여신의 성적인 결합을 제의적으로 재현하는 행위에 대한 예언자들의 비판 메시지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남편으로 보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내로 보는 결혼 메타포(호 1-3장; 렘 2:2-3, 20-25; 3:1-10; 겔 16장, 23장; 사 54:5-8 등)에서 절정에 이른다. 맨 처음으로 결혼 메타포를 사용한 호세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 관계를 결혼 관계로 표현함으로써 제의적인 성행위를 정면에서 공격하고자 했다. 호세아의 이 새로운 비유 메시지는 후에 예레미야, 에스겔, 제2이사야 등에 의해 그대로 채용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보는 신약 본문들(마 22:1-14; 25:1-13; 고후 11:2; 엡 5:22-33; 계 19:7; 21:2 등)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6. 오늘의 시대와 성
앞서 살핀 바와 같이 구약성서는 성을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선물로 이해한다. 아울러 구약성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성이 남녀 사이의 순전한 사랑에 의해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성은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결혼과 가정이라는 규범적인 질서를 통해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며, 사랑에 기초한 성관계는 생육과 번성의 복을 이루어 감으로써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건강한 공동체가 자라 가고 성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의 시대는 구약성서가 말하는 올바른 성 개념으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구약성서가 금하는 온갖 성범죄가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 성에 대한 뚜렷한 규범 의식이 없으며 가정과 결혼은 그 순수함을 잃은 지 오래다. 도처에 정욕과 육욕을 자극하는 성의 문화가 범람하고 있어서 자라나는 세대들의 성 문화가 어떠할지 한 눈에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너무 청교도적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오늘의 시대야말로 구약성서가 말하는 건전한 성 개념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일이 이 시대의 교회에게 부과된 시대적인 사명일진대,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결혼과 가정의 질서를 바로 잡아 주고, 비뚤어진 성의 문화에 올바른 사랑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일은 당연히 교회의 몫으로 돌아가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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