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사회의식 변화
개발 우선 시대에 더 이상 만만디가 아니다.
그런데 이 공사는 철저히 인력으로만 진행되고 있는 셈이었다. 공사 초기 이틀 정도만 굴삭기가 보였고, 그 다음부터는 밤을 낮 삼아 개미 군단이 덤벼들어 순수 인력으로 공사를 해 나가고 있다. 누가 중국인 보고 게으르다 말하겠는가. 이 공사뿐만 아니라 모든 대형 건축, 토목 공사가 하루 24 시간 공정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니 말이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제방이 정리되면 물길 옆의 보를 터뜨려 수면을 낮출 것이다. 그러면 훨씬 아름답고 용도가 다양한 물길이 생길 것이다. 사실 몇 년 전에는 이 수로들로 유람선을 띄운 적도 있긴 하다. 즉, 우리나라에서 소양강에서 배타고 설악산을 가는 것처럼 이화원에서 시내까지 배를 타고 운하로 이동하는 관광 상품이 있었는데 실행 후 한 달 만에 운행을 중단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운하 폭에 비해 배가 크기 때문에 일으키는 물살이 제방을 다 헤쳐 놓기 때문이었다.
<개발 우선주의 시대>
한 남자가 있어~(?)
가위를 들고 붉은 천을 자르려고 하네요. 아마도 개발구로 지정된 지역인 모양이네요. 그런데 뒷쪽엔 초가집이 보이고 노인이 한 분 서 계시네요. 무슨 의민지 아시겠어요?
해답은 게시판에 있네요.
게시판에 써 있는 내용으로 보건대 오늘 기공식을 갖는 이 지역은 예전에 혁명운동 당시 유적지인 모양입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혁명 전적지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네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이제는 혁명이나 해방으로 정권의 정통성을 갖기보다는 경제 성장을 통한 과실 분배로 정권의 유지를 꾀해야 할 때이니까요. 개혁 개방의 시대쟎아요
하긴 중국인들의 건설 솜씨가 운하 만들기에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만리장성 축조의 후예답게 건축 분야에서도 재래식 기자재를 이용하면서도 놀랄만한 공사를 거뜬히 해내곤 한다. 몇 년 전 뉴스 보도에는 북경시내의 지하1층 지상 4층 건물(총 톤수 2,000톤 이상)을 20미터 가량 이동(장애물로 인해 도중에 4도 가량 방향 전화도 해야 함)하는 공사가 있었다.
1993년에 선양에서 6층짜리 아파트를 같은 방식으로 옮기는 것을 보고는 한 편으로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하실이 없으니 가능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공사는 지하실이 있고 규모도 훨씬 큰 건물이었기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작업은 10만 위앤 들여 가능했다니 우리 돈으로는 1,200여 만 원 안팎의 비용을 들인 셈이다. 이 액수는 이 건물의 철거비용에도 못 미치는 공사비였다. 다른 건물을 짓기 위해 할 수없이 헐어야 할 멀쩡한 건물을 바닥에 궤도를 깔아 유압 기중기로 밀어 당겨 옮기는 것이었다. 물론 절대 수평 유지가 공사의 관건이다. 얼마나 정교했으면 유리창 한 장 깨지지 않고 옮길 수가 있었겠는가. 나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이런 공사를 실행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결혼 가치관의 변화
중국 혼인법 개정과 관련해서, 최근 몇 년간 싸이버 공간에서의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토론이 뜨거웠었다. 일전에 成都에 있는 한 변호사 사무실에 고소 가능 여부에 대한 자문 요청이 접수되었다. 당사자는 부인이 인터넷을 통한 채팅에서 만난 남자와 인터넷 상에서의 결혼을 하는 바람에 이혼을 하게 되었다면서, 억울함을 풀기 위해 상대방 남자를 기소하고 싶어했다.
단체로 결혼 예식을 올린 신혼부부들이 새로운 보금자리에 기념식수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중국의 신축 아파트 단지에 입주하면서 주민 대표로 나가 단지 내 공원에서 기념식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사례는, 福州의 한 중학교 여교사가 자기 남편이 인터넷상의 채팅 대상자와 부부 호칭으로 대화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남편에게 따졌던 일이다. 부인의 질책에 남편은 단순히 가상공간에서 노는 것일 뿐이라고 발뺌을 했다. 그런데 인터넷상에서 어울리는 주변 인물들이 남편에게 결혼축하 카드를 보내오고 하는 데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이 노여교사는 인터넷상에서의 연애가 네트웍 상 결혼으로 발전하는 것이 비록 가상공간에서의 일이기는 하지만, 현실 가정생활에 영향을 미쳐 부부간의 감정을 해칠 수 있으므로 사회적으로 이를 방지해야만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러한 실례를 두고, 토론자들은 인터넷상에서의 결혼과 현실 결혼은 병행할 수 없는 것인가? 또 인터넷상에서의 결혼은 도덕으로 통제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실정법으로 구속할 것인가? 등을 두고 갑론을박했다. 또 인터넷상의 결혼으로 한 가정을 이혼으로 몰고 갔다면 이는 손해 배상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인터넷상의 결혼이 가능하도록 사이버 공간을 제공한 인터넷 싸이트는 책임을 지어야 할 것인가? 등을 화제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와 같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결혼 문제와 더불어 요즘 항간에는 <혼인법> 초안을 둘러싸고 시끄럽다. 인터넷상의 토론 공간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 설전을 지상 중계해 보면 이렇다.
(찬성) : 이번에 마련된 <혼인법> 초안은 혼인의 자유에 대한 규정으로, 새로운 돌파이다. 공민이 법적으로 혼인의 자유를 향유할 권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도의적 재갈을 마련한 것이다. 이는 부부간에 상호 충실할 의무를 설정한 것이며, 혼외 동거나 축첩 행위 등에 대한 법률적 제약이 표현된 것이다.
(반대) : <혼인법> 초안은 축첩 현상 및 부부 상호간의 책임 등에 대하여 규범과 조정을 설정했다. 우리는 법률 종사자들의 사회적 책임감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김을 어쩔 수 없다. 즉, <혼인법> 초안은 진정으로 가정의 안정을 보증할 수 있는가? 부부가 이혼 때문에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 이혼이 곤란해서 할 수 없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혼인법>초안이 비록 몸은 함께 있으되 마음은 떨어져 있는 많은 부부 사이를 보호 유지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사회 안정과 자식의 성장에 과연 이로운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또한, 본처에 대한 보호가 축첩 현상을 감소시키는 데 유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극단적 상상을 해보자. 즉 만일 본처가 지나치게 남편의 첩을 공격한다면, 남편은 아마도 과격행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혼인 문제 때문데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나치게 엄격한 <혼인법>초안은 사회에 그다지 유리하지 않을 듯하다.
(찬성) : 혼외 관계는 혼약을 위반하는 것이고, 또한 부도덕한 것이다. 혼외 성행위를 하는 일방은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행위를 한 일방에게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 셈이 된다. 이 때문에 <혼인법> 초안은 이에 대하여 법률적 구속을 가하고자 하는 것이며 이는 절대로 필요하다.
(반대) : 사람들은 혼인에 대하여 심리, 정감, 생리, 생활상의 필요성을 느낀다. 만일에 혼인이 이러한 것들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또한 이혼이 도덕과 여론의 견책을 받게 될 때, 축첩 행위와 혼외 동거는 또 다른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혼인법이 해야 할 것은 "죽은 혼인으로 하여금 조용히 사라지게 하는 것"이지, 결코 그로 하여금 구차하게 잔명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고통스런 생활을 하게 하는 혼인이야말로 도덕적이지 못한 것이다.
(찬성) : 혼인은 일종의 특수한 계약이다. 합법적이고 유효한 혼인은 마땅히 법률 보호를 받아야 한다. 만일 부부간에 누군가가 정조의 의무를 위배한다면 바로 법률을 경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인법> 중에 필요한 제약을 마련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형사 수단을 써서 엄벌해야 하는 것이다. 현실 생활 중에 존재하는 축첩 문제는 기존 <형법>과 사법 해석에 근거하면 중혼죄에 해당되므로 마땅히 형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중혼에 해당되지 않는 혼외 성행위 즉, 비록 부부명의는 아니지만 보모라거나 비서 등의 관계를 맺어 안정된 동거를 하고 있거나, 애를 낳아서 키우고 있거나, 생활비를 대주는 행위 등에 대해서도 도덕과 행정 기율 처분 등으로 제재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논전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그들의 논쟁점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데 있었다. 그것은 중국 사회에 혼외관계가 비교적 많이 유포되어 있다는 반증이었고, 이는 더 이상 사회주의 국가의 정조관념이 깨어진지 오래라는 사실이었다. 사실 혼외 관계라던가 축첩행위라던가 중혼죄 등은 어찌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맺어지는 관계인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개혁개방을 통해 졸부가 등장하면서 그릇된 소비 행태의 일환으로 상대적으로 건전했던 성 관념이 깨진 것 같다.
1가정 2제도
북경대 동문인 장 박사가 자신의 딴웨이인 중국사회과학원 정치연구소가 분배해 준 관사에 살 때 그의 집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4평이 될까 말까한 크기에 수세식 화장실과 간이 주방이 붙어 있는 아주 작은 단칸방이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난 지금은 그에 비하면 훨씬 좋은 집으로 이사 갔다고 좋아한다. 그의 처는 지금 중급 회계 자격증을 따기 위해 수험 준비 중이라고 한다. 작년에 봤을 때는 초급 자격증 준비를 했었는데 이미 초급은 통과한 모양이다. 부인의 향후 취업 계획을 물어봤더니 장 박사는 일반 기업체를 원하는 것에 비해 그의 처는 국가 기관에 취업하길 희망하는 모양이다. 요즘은 국영 기업체건 국가 기관이건 개혁에 따른 구조 조정으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장 박사는 자기 처에게 자기는 사회주의 밥을 먹으니 당신은 자본주의 밥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아마 둘 다 국가 기관에 근무해서는 돈을 모으기가 어려우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씨아오캉의 내부>
대도시의 평범한 가정집이 렌즈에 잡혔습니다. 1982년부터 시작된 한 가정 한 자녀 갖기 운동에 따라, 이 집에도 아이는 하나지만 부부 맞벌이이기 때문에 아쉬운 것 없이 꾸며 놓고 살지요. 이 모습이 요즘 대도시 젊은 부부의 보통 생활수준입니다.
나는 그래도 그의 입에서 자본주의 직장, 사회주의 직장 하는 말이 튀어 나오는 것을 보고 중국이 정말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예전에 수업 시간에 토론을 할 때 또 다른 클라스메이트가 자기 고향의 예를 들면서, “중국 정부는 대만과 1국가 2체제를 말하는데, 실제로는 이미 대륙 내에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로 나뉘어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이에 대해 수긍하지 않던 장 박사였기 때문이다.
<세대 차이>
아침입니다.할아버지는 새장을 들고 집을 나서시네요. 아마도 공원에 가서 친구들과 새소리 경연을 펼칠 것입니다.할머니는 장바구니를 들고 할아버지 뒤를 따르시네요. 아마도 아침 시장에 나가서 반찬거리를 사들고 오실 겁니다.이 집에 가장인 듯한 남자는 꼬맹이를 들쳐 업고 빨래를 하고 있네요. 지금쯤은 도시 중산층의 가정에 집집마다 세탁기가 있을 테니, 손으로 직접 옷을 빨지는 않게 되었지만, 이 그림은 그만큼 남자들이 가사 노동을 전담(?)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이지요.며느리이자 부인인 젊은 아낙네는 화장대 앞에서 얼굴을 가꾸고 있습니다. 다를 식구들에게 미안해하지도 않는 것 같지요. 혹시 딸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결혼을 하는 경우, 신방을 꾸릴 집이 큰 문제가 되는데, 흔히 처가살이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결국, 이 그림은 요즘 세상의 여권신장을 그려내고 있는 셈이지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서는 그나마 남자들이 바깥일에만 빠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반면, 요즘 세대에서는 남자들이 가사 노동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얘기지요. 이러니 중국 남자들이 한국 남자를 부러워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어느 上海 대학생의 가치관
중국 남자 대학생을 만났다. 이 친구는 고향은 上海인데,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는 吉林省에 있는 길림공대라고 한다. 자동차학과 4학년인데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한다고 했다. 이 학생과 얘기를 나눠본 결과 확실히 개혁개방 후 세대라는 걸 실감했다.
<어느 성씨가 일등?>
중국인들이 쓰는 姓은 얼마나 될까요? 우리나라 성은 한 200여 가지 되지요?
중국인들은 훨씬 많은데, 우리가 보기에는 이것도 성씨인가 할 정도의 희한한 성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저와 동문수학한 북경대 박사 가운데 한 명은 성이 "時"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씨로 쓰는 한자들은 거의가 성씨를 표현하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만, 중국인들이 아용하는 성씨는 일반 한자도 많습니다. 위의 그림은 중국인들의 성씨 순위를 매기고 있군요. 땅바닥에 있는 표의 맨 앞쪽에 "백가성"이라고 써 있쟎아요. 그런데, 그 순서가 어떤가요? 전씨 성을 가진 이를 1위 자리로 떠밀면서, 합창이라도 하듯이 "땅란ㅅ흐 닌 띠이라(當然是니第一라)"라고 하네요. 이게 어쩐 일이지요?
중국인 중에는 王씨나 張씨, 혹은 李씨 등이 많은 걸로 아는데요... 아하, 그렇군요. 전씨가 돈 전(錢)자를 쓰는 걸 보니, 이제는 "돈"이 최고라는 인민들의 사고방식을 나타내주는 그림이네요.
개혁 개방이후 "씨아 하이(下海)" 등을 통해 너도나도 돈 버는 데 나서다 보니, 이제는 거의 배금주의라 할 정도로 돈이 최고라는 생각이 만연되어 있네요. 참, 씁쓸합니다.
먼저 나는 그에게 상해와 북경을 비교시켜 보았다. 그는 상해가 당연히 중국 경제의 중심지임을 강조했다. 상해 사람들은 예전에 중앙 정부가 상해 정부의 세입금을 대량 거두어가 다른 지방의 재정 보조에 충당한 것에 대해 불만이 많다고 한다.
이는 나도 익히 알고 있던 터였는데, 그는 이에 한마디 덧붙였다. 즉, 상해는 오래전부터 방직공업이 번성했는데, 그 때 축적한 자본을 鄧小平이 매년 음력설에 상해를 방문할 때마다, 가져가 중앙정부 재정에 귀속시키곤 하는 바람에 확대 재투자할 자금 여력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90년대 후반에는 국제 경쟁에서 이기고자 방직업 분야에 재투자가 절실했는데, 자금이 없어 투자를 못하면서 방직업이 위축되었고, 그로 인해 산업 구조 조정을 겪게 되면서 4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상해 사람들의 불만이 크다고 얘기했다.
나는 상해 사람들이 자녀가 북경으로 유학하고자 할 경우 그를 말려 상해에 있는 대학, 예를 들면 복단대학이나 교통대학 등에 입학하게 하는 경우를 예로 들면서, 상해 사람들이 은근히 북경사람들을 깔보는 심리가 있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이 친구는 깔보기 보다는 상대해서 별로 이롭지 않기 때문에 거래를 안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즉, 북경 사람들과 사업을 할라치면, 북경사람들은 관계에 아는 이들이 많아 관권을 동원하기 때문에 상해 사람들에게 불리한 경우가 많다는 예를 들었다.
이 말을 받아, 나는 현재 북경에서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최고 지도부의 많은 이들이 대부분 상해에서 오랜 업무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 상해 지역에 득이 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보았다. 그러자 그는 내 말에 공감하면서 최근 5년간 상해 출신 중앙지도자들이 힘을 써 상해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고 했다.
그는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대해 많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개혁개방 정책이 가져온 부작용을 건드려 보았다. 즉 일반 국민의 빈부 격차 심화라거나 지역별 경제 발전 차이, 그리고 부패 문제 등을 거론했다.
그는 鄧의 "先富論"즉, 일부 지방과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돈 벌게 하자는 정책에 따라 경제 개발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부작용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말에 대해 그러면 먼저 부유해지는 지역이 나중에 다른 지역과 부를 나눠 갖게 될 것 같냐고 말해 보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의 능력에 따라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잘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사회 구조적 불평등을 말했다. 예를 들어 예전과 달리 이제는 일반인간에도 부유한 이들이 나타나게 되면서, 그들이 자손에게 남겨주게 될 유산이 사회적 불평들을 가져올 것이라는 얘기를 해 보았다. 그랬더니 일반적으로 중국 사람들은 그를 당연시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항간에 회자되는 "부모의 유산은 내 능력의 절반"이라는 말을 했다.
이 학생은 지금 유학준비중이다. 미국으로 유학 가고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단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의 가장 큰 문제는 부패나 빈부격차가 아니라 "인재 유출"이라는, 조금은 독특한 말을 했다. 이 말의 의미는 유학 간 중국의 인재들이 귀국하지 않는 현상을 뜻한다. 나는 그런 추세가 이미 바뀌어 유학 후 돌아오는 이들이 많아지지 않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의 대답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자기 사촌형과 누나만 하더라도, 둘 다 미국으로 유학 가서 형은 컴퓨터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누나는 생명공학을 전공했는데 다들 귀국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내에서 일하기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너도 유학 갔다가 자동차 왕국인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 대답이 의외였다. 자기는 유학 가서 자동차를 전공할 것이기 때문에 형이나 누나와 다르다는 것이다. 즉 미국은 자동차 방면의 경쟁이 심할 것인데 거기서 일하는 것보다, 향후 자동차 산업이 발전할 중국에 돌아오는 것이 "돈 벌기"에 더 적절할 것이기 때문에 조건만 어느 정도 맞으면 꼭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역시 상해 사람다운 발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즉 그에게는 돈 벌기가 가장 중요한 모양이다.
여성의 사회 노동은 중지되어야 하나?
중국은 정말로 과일 천국이라 할 만합니다. 땅이 넓다보니 동서로나 남북으로나 다양한 기후대에 걸친 탓에, 온갖 과일이 다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신지앙 지역에서 나는 하미과는 별미중의 별미입니다. 사막 고산지대다보니 일교차가 커서 당도가 매우 높지요. 국영상점에서 과일을 구입하게 되면 근으로 달아서 파는 게 보통입니다. 가장 비싼 축에 끼는 과일들 이래 봤자 서,너 명이 먹기 위해 5000원만 소비하면 족하지요. 혼자 먹을라치면 1000원 정도면 웬만한 것은 다 먹을 수 있지요
<정치협상회의>가 열리면서, 한 위원이 소그룹회의에서 기혼 여직공들의 조기 퇴직 및 가사 전담 방안을 제의했었다. 특히 수입이 많지 않은 여직공들이 능동적으로 퇴직하여 가정으로 돌아가 가사를 돌보도록 권장하자는 의견이었다. 이제까지 남녀 모두 결혼 후에도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당연시 되어온 중국에서 이런 건의는 가히 획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건의에 대해 인터넷상에서 찬반양론이 불을 뿜었다(예를 들면, "人民網" www.people.com.cn).
그 위원의 기본 관점은 이렇다. 여직공의 자원 퇴직을 원칙으로 하여 집에서 가사를 책임지도록 하는 것을 격려해야만 한다. 즉 부녀가 직장 생활을 하지 말고 집을 잘 관리하고 자녀를 잘 돌보도록 사회 분위기를 이끌자는 것이다. 남녀평등이 가리키는 것은 인격적 평등과 정치 법률적 평등 및 경제 지위상의 평등인데, 이것은 부녀가 직장 생활을 하느냐 안하느냐와 필연적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부녀가 가정으로 돌아가 남편 내조 잘하고 자식 잘 가르치는 것도 매우 훌륭한(원래는 "영광光榮"이라는 단어를 썼음) 일이며, 이는 사회 분업 마땅히 있을만한 내용인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 제기가 매스컴을 탄 후, 중국의 네티즌(網民)들은 반으로 나뉘어 맞서고 있다. <人民網>싸이트(網站)에 오른 반대 의견은 이랬다. "기혼녀는 가정으로 돌아가자"는 제의는 헌법 규정과도 맞지 않고 중국 실정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헌법은 남녀평등 및 '같은 일 같은 보수'(同工同酬)를 규정하고, 부녀와 아동의 합법적 이익을 보호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부녀가 가정으로 돌아가야 할지 말지는 마땅히 부녀 스스로가 결정하면 족할 뿐이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 부녀 자신이 가정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누가 그렇게 하라고 말할 필요도 없고, 또 그녀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을 뿐만 아니라, 남녀평등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선진국이라 할지라도 부녀들이 여전히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종사하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인기를 끌었던 <북경사람 뉴욕에>라는 드라마 주인공의 견해 가운데 하나도 "가장 커다란 괴로움은 고통을 맛볼 수 없다는 괴로움"이다. 취업이 가능하기만 하다면야 누가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면서 허송세월을 하겠는가? 중국 문화는 체면을 끔찍이 따지고,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경제적 지위가 없다면 인간의 존엄을 얘기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또한 물질생활에 있어서 경제는 기본이다. 여자가 수입원이 없다면 단지 남자에게 시집가서 남편을 따라 살다가 그가 죽으면 아들을 따라 살게 될 뿐이다. 이렇게 된다면 다시금 봉건사회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위와 같은 의견을 낸 이는 미혼 남자인 듯한데, 이에 반대하는 즉 정협 위원의 견해에 찬성하는 글은 아내가 있는 나이든 남자가 올렸다. 나의 집사람은 직장에서 액화된 이산화탄소를 커다란 강철 통에 담는 일을 한다. 통이 비었을 때도 몇 십 킬로그램이나 되며, 내용물을 다 채우고 나면 더욱 무거워진다. 한 여자가 매일 매일 그리고, 매년 같은 일을 남자 직원과 똑같은 노동 강도로 반복하고 있다.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두 견뎌내기 힘들다. 여자는 여자만의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집안일을 관장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 등이다. 나는 집사람이 좀 더 수월한 일을 했으면 하고 많이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내 집사람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전체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힘든 육체노동을 못하게 되면 곧바로 일자리를 잃게 된다. 집사람도 견딜 수 없다고 말해 왔으나 이를 벗어날 적절한 방법이 없다. 집사람이 다니는 직장은 수익률이 낮아 매월 60%의 월급밖에는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볼 때 나와 집사람은 정협 위원의 주장에 완전히 동조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 위원의 건의가 유관부문의 지지를 받게 되기를 고대한다. 내가 무슨 커다란 도리를 갖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위원의 건의를 비판하는 친구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직접 일반인들의 정서를 체험해 보라고. 즉, 혹독한 육체노동에 시달리는 여자와 그 가족의 고충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한 마디로, 여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도리에 맞는다.
내가 보기에 중국 여자의 입장이라면 후자의 의견보다는 전자의 견해, 즉 가정으로 돌아가 가사나 전담하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의견이 더 우세할 듯하다. 실제로 한 조사통계에 따르면, 60-70%의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만일 경제적 조건이 허락한다면 당신은 직장 생활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설문 조사에, 학력수준과 연령 차이에 따라 약간 차이나는 비율이긴 했으나, 일을 지속하겠다는 견해가 더 많았다. 우선 학력 면에서는 대학이상 졸업자의 64.3%, 중고등학교 졸업자의 62.5%, 초등학교 졸업자의 57.8%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할지라도 직장을 계속 다니겠다고 대답했다. 또 연령 면에서 볼 때는 2,30대의 72.8%가, 중년의 경우에는 61.1%가, 노년인 경우에는 60.3%가 계속 일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수치는 주관적으로 볼 때, 내가 마주친 젊은 여성들의 생각보다는 다소 낮은 수치이다. 주로 대학생이거나 사회 활동에 참여한지 몇 해 안되는 중국 여자들, 그리고 비슷한 또래의 중국 남자들과 내가 한국과 중국의 남녀 혹은 부부 관계를 주제로 얘기하다 보면, 대화의 끝머리에 이르면 여자들은 화가 나고 남자들은 여유 있게 만족스런 표정을 짓곤 했다. 왜냐하면 그네들이 내게 관심을 갖고 물어온 한국 남녀들의 가정생활에 대해 내가 일부러 장년 세대의 보수적인 현상을 얘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즉, 한국 남자들은 거의 주방 일을 할 줄 모르고, 가사는 모두 부인들이 전담하며, 심지어는 부인이 남편처럼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에도 가사 분담이 공평히 이루어지지 않고 여자가 더 가정 일을 챙기게 된다는 둥, 또 한국 사회는 전통적 사고가 아직 남아 있어, 여자는 결혼하게 되면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고 집안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직장 상사들이 많다거나, 남자는 돈만 많이 벌어 오면 집안에서 대우받고 편히(?) 큰 소리치고 살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주면, 남자들은 너무너무 한국 남자들을 부러워하고, 자기네도 옛날에는 그랬었는데 하면서 은근히 그럴 수 있었으면 하는 반응을 보인다. 이에 비해 중국 여자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내게 공격을 해대곤 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경제 발전 수준이 아직 낮기 때문에 여자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자들은 지금도 중국 사회는 여자들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남성우월주의가 심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참고로, 중국 여성이 가장 선망하는 10대 직업에 대한 조사 결과는 이렇다.
1위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교사(15.1%)였고 그 뒤로, 2위 회사원(12.3%), 3위 의사 약사(11.5%), 4위 경리(9.1%), 5위 비서(5.6%), 6위 변호사(4.9%), 7위 공장장 지배인(4.0%), 8위 자영업자(3.9%), 9위 행정관리직(3.1%), 10위 판매원(2.4%)의 선호도를 나타냈다.
중국 청년들의 정치 신념
5월 4일은 중국 근대사에서 그 유명한 五四運動 기념일이다. 1919년에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서 북경대 학생을 주축으로 해서 일어난 이 운동은 우리나라 역사로 따지면 3.1운동에 버금가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탓에 오늘 방송과 신문에서는 젊은이들에 관한 특집 프로그램을 많이 다루었다. 그 중에 내가 관심을 가장 많이 가진 것은 청소년들의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천안문 광장앞 국기 강하식>
얼마 전 <中國靑年政治學院>에서 교양학부를 마치고 전공학부로 올라가는 재학생 177명을 대상으로 정치학 시험을 치렀다. 이는 통과의례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자격 고사인 셈이다. 그런데 "중국공산당 창립 80주년 이래 주요 공헌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86명만이 합격점을 받았고, 91명은 불합격 수준이었다고 한다. 전체 수험생의 51.4%가 불합격 처리된 것이다. 15점 만점에 9점이 합격선이었던 인 이 시험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8.4에 불과했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이 문제의 답안으로 다섯 가지의 공적을 설정해 두었는데, 그것은 순서대로 반제투쟁에 성공해 민족 독립을 쟁취했다는 점,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가운데 개혁개방 정책을 성공적으로 펼쳐 적합한 발전 노선을 걷고 있다는 점, 중국의 종합국력을 일취월장시켰다는 점, 중국의 국제적 지위를 제고시켰다는 점, 사회 내 제반 양상을 대폭 개선시켰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민족 독립 쟁취라는 공적을 제시하지 못한 학생도 제법 있었고, 또 종합국력의 향상을 자각하지 못한 학생도 많았다고 한다. 시험 출제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50년 전의 중국 청년들, 즉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을 무렵의 젊은이들은 중국공산당의 비전제시와 인도에 적극 공감해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젊은이들은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구중국의 참상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며, 심지어 중국의 경제 발전에 대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중국공산당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깊지 못하고, 정치 신념상 열정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내가 중국학생들에게 들어본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나는 북경대 학생들에게 공산주의청년단, 혹은 공산당원이 되는 것에 대해 물어 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요즘은 예전과 달리 공산당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가 정치적 신념 때문이 아니라, 여러 가지 특혜(?) 탓이라고 했다. 즉 고등학교 시절에는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위주로 공산주의청년단 단원으로 선정하기 때문에 자신들에게는 그것이 공부 잘하는 표상으로 받아들여져 공청단원이 되길 희망했던 것이고, 또 대학에 와서 공산당원이 되면 나중에 공무원이 되었을 때 비당원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등의 특혜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지, 결코 공산주의 신념에 투철해서 공산당원이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공산주의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소수일 것이라는 얘기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학생들에게서 들으면서,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국공산당은 이제 혁명과 집권을 위한 정당이라기보다 일종의 이익집단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북경청년보>가 실시한 <북경청년발전보고>의 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북경 청년 가운데 "등소평 이론"에 대해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대답한 이들은 39.6%였고, "기본적으로는 믿는다"가 53.7%의 대답을 차지했다. 62.1%의 청년들은 신념의 선택상 공산주의, 마르크스레닌이즘, 모택동사상, 등소평이론 등 4개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 혹은 둘만을 골랐고, 17.4%는 어느 것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연령이 낮을수록 정치 이데올로기를 신념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이들이 많았다(16세에서 19세까지의 청소년들 가운데 28.8% 이 답안을 골랐다). 또 23.4%의 청년들이 "실용주의"를 선택했고, "종교"를 신념으로 받아들인 청년들도 4.6%를 차지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 둘 단어의 사용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공산주의나 모택동사상 등과 관련해서 "신앙"이라는 단어를 쓴다. 즉 그들에게는 이데올로기가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단어의 사용이 우리의 정서에는 맞지 않아 굳이 '신념'이라고 고쳐 썼다).
이와 비슷한 설문 조사를 벌인 중국사회과학원의 통계에 따르면, "무신념"이 36.09%, "일찍이 신념을 가진 적이 있었다"는 대답이 22.24%였고, "3.57%"는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28.10% 만이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한 것이다. 그런데 "신념"이 있다고 대답한 이들이 갖고 있는 "신념"이 공산주의 관련 이데올로기뿐만이 아니라 매우 다양하다는 데 중국 공산당의 고민이 있다. 즉,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를 신념으로 받아들인 이는 25.86%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과학 진리, 무신론"(16.75%), "어떤 신념도 필요 없다"(16.64%), "운명"(12.51%), "인도주의"(8.72%), 각종 "종교"(7.25%)를 믿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근본 원인은 시장 경제의 양면성과 유관한 것으로 주장된다. 시장 경제 조건 하에서는 이익 추구가 사람들의 활동 준칙이 된다. 이것은 사람들의 신념 가치에 대해 양날의 칼이 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주, 경쟁, 평등, 공평, 준법 등의 이념을 가져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익 추구, 배금주의 등의 부정적 요소를 수반한다. 그래서 개인주의 , 배금주의, 향락주의 등이 시장에 횡행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일찍이 아담 스미쓰는 <국부론>을 통해 자유 경쟁을 고취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감정론>을 써 "경쟁"이 "정의의 법칙"에 의해 제약을 받아야 함을 밝힌 바 있다.
한편, 북경 청년들이 정치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할지라도, 그들이 실제로 정치 활동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17%에 불과해 매우 저조했다. 실례로 청년들 가운데 지난번 지역 선거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이 23%나 되었다. 이러한 수치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꽤 높은 편이지만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저조한 참여율로 평가된다.
이와 더불어, 오늘날의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청년들이 가장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물은 대답 가운데 "공산주의 실현을 위한 분투"와 "공산주의청년단 및 공산당 가입"을 꼽은 비율은 8.8%와 2.9%에 불과했다. 이는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이상주의를 버리고 현실적 세속화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적절한 예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사 결과에 대해 구소련을 예로 들면서 중국공산당의 집권 공고화는 청년들의 정치 신념 확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서, 청소년들의 중국공산당에 대한 인식 및 지지도 제고와 정치 신념의 확립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중국의 실정이다.
직업 선호도
중국 도시 주민들의 직업에 대한 선호도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우리와 조금 다른 선호 서열을 보여준다. 100점 만점에 92.9를 얻어 1위를 차지한 시장부터, 85.3점을 얻어 10위를 기록한 자연과학자까지의 중간 서열은 다음과 같은 순서였다. 즉, 정부 장관, 대학교수, 컴퓨터 네트웍 엔지니어, 법관, 검찰관, 변호사, 하이테크기술 기업 엔지니어, 당정기관 지도간부.
<모델 선발대회>
사회주의 중국에서 금기시되는 대중 활동이 몇 가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프로레슬링이나 권투는 노예시대의 잔재라고 여겨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안시 되었고, 미인선발대회 또한 여성의 상품화라는 비판을 받아 열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개혁개방이후에는 모델이 고수입의 각광받는 직업이 된지 오랩니다. 이 사진도 우리로 따지면 수퍼 모델 컨테스트 수상자들을 담은 겁니다.
그리고, 11위부터 20위까지의 선호 직종은 통역사, 세무관리요원, 사회과학자, 의사, 계산기 소프트웨어디자이너, 작가, 기자, 부동산 경영 개발상, 국유 대 중형 기업 공장장 이사, 투자회사 이사(20위, 81.1점) 순서였다.
21위부터 30위까지는, 가수, 편집자, 아나운서, 은행원, 사영 혹은 민영기업가, 영화배우, 스튜어디스, 공상관리요원, 컴퓨터 네트웍계통 관리원, 국립 중소학 교사(30위, 65점)가 차지했다.
31위부터 40위까지는 광고 설계사, 경찰, 기계 엔지니어, 국유소기업공장장, 운동선수, 대기업 회계, 당정기관 일반간부, 사영 하이테크기업 직업, 증권회사 직원, 여행사 가이드(40위, 71.7점)였다.
41위부터 50위까지는 사립학교 교사, 당정기관 승용차 기사, 문화사업 자영업자, 보험회사 직원, 기업 및 사업 딴웨이 정치업무담당 간부, 공상 자영업자, 3자기업 직원, 간호사, 호텔 요리사, 택시 기사(50위, 59.5점) 순이었다.
51위부터 60위까지는 버스 기사, 주택단지 서비스 요원, 주식회사 노동자, 장의사, 호텔 복무원, 상점 판매원, 버스 차장, 국유 대중형기업 노동자, 환경미화원(60위, 45.5점)이 차지했고, 농민, 향진기업 노동자, 호텔 리셉셔니스트, 국유 소기업 노동자, 사영 및 민영 기업 노동자, 집체기업 노동자, 자영업종의 종업원, 보모, 건축현장 노동자(69위, 34.9점)는 차례로 61위부터 69위까지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특이하다고 여긴 점은 대학교수의 사회적 명예가 상당히 높다는 것과, 상대적으로 의사가 법조계 내지는 교수에 비해 낮다는 점, 그리고 경찰직이 중간을 넘어선 점 등이 이채로웠다. 그러나 이들 중 수입이 가장 많은 직종은 자영업자와 연예인 이었다.
미국은 더 이상 “썩어빠진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다.
<자전거 주차>
중국을 자전거 왕국이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은 대도시의 경우 주민 수보다 자전거 댓수가 더 많다는 것, 그러다보니 자전거가 통학용이나 통근용 등 여러 용도로 쓰임에 따라, 상가 앞에 자전거를 세워둘 때는 주차 요금을 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요금을 받는 이는 흔히 개체호들이 자기 영업으로 하곤 하는데 한 대당 1마오 즉, 우리 돈으로 1~2원 정도 받는 돈이 매일 현금으로 모이다 보니 무시 못할 수입이 됩니다. 게다가 산악용 자전거 등 고가품은 주차 요금을 두 배로 내야 합니다.
저녁을 먹으러 북경대에 들어갔다가 오늘 상영할 영화가 <자전거 도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괜찮은 영화로 익히 들었었기 때문에 혼자지만 표를 끊고 들어갔다. 조금 늦게 입장한 탓에 영화는 이미 시작되었는데, 당황스럽게도 제목이 <자전거 도둑>이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룬 흑백 전쟁영화였는데 미 해군의 무용담을 그린 내용이었다. 전투 간간이 주인공 남녀 간의 사랑이 전개되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인들의 키스신은 지금의 그것과는 매우 다름을 볼 수 있었다. 역시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새로운 키스 방법이 전래되었다는 것이 맞는 모양이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째 내가 알고 있는 <자전거 도둑>과는 내용이 다르다는 생각만 줄곧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끝나자 곧바로 한 편의 영화를 또 돌리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오늘 상영하는 영화가 두 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포스터에 분명히 두 영화가 다 소개되어 있었을 텐데, 나는 내가 보고 싶은 영화인 이 <자전거 도둑>타이틀에만 눈이 팔렸던 모양이다. 얼마 만에 맛보는 동시 상영인지 모르겠다.
두 번째 돌아가고 있는 <자전거 도둑>필름의 화면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의 상흔으로 폐허가 된 로마시의 실업자들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내가 겪은 1960년대 초만 해도 저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 때를 아시나요?"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음 짓는 우리지만, 그 프로그램 속의 한 컷트 사진, 즉 모자를 눌러쓴 허름한 옷차림의 젊은이가 벽에 기대어 서 있는데, 그 목에는 "求職"이라는 커다란 표지가 걸려 있는 사진은 우리도 전후 한 동안 실업의 압력에 직면했었음을 웅변으로 드러내 주는 내용이다. 1990년대 초중반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북경 거리의 모습 가운데 하나는 농촌에서 올라온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그 앞에는 영락없이 두 손 바닥만한 종이에 일거리를 찾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요즘은 북경에도 서울의 북창동 새벽처럼 인력 시장이라는 곳이 생겨 대낮에 길거리에서 일자리를 찾는 중국 젊은이는 보기 힘들어졌긴 하다.
자전거가 없이는 작업이 불가능한 일거리를 맡아, 저당 잡힌 자전거를 찾고자 집안의 침대시트를 다 걷어 저당 잡히는 장면, 그리고 취업 하루 만에 대형 광고 포스터를 길가 벽면에 붙이다가 보는 자리에서 자전거를 도둑맞는 광경하며, 이틀 동안 자전거 도둑을 잡으러 자전거 거래 상가를 누비고 다니는 주인공과 어린 아들과 그 친구들의 모습, 그러다가 종국에는 스스로가 자전거 도둑이 되고 마는 끝부분까지 아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여러 장면 가운데 실업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일자리를 유지하고자 심각한 갈등 끝에 아들이 보는 앞에서 자전거를 훔치다가 사람들에게 붙잡혀 곤혹을 치르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특히 아버지의 연기 못지않게 학교도 못 다니면서 가계를 돕고, 또 아버지를 도와 거리를 헤매며 자전거를 찾는 아들의 연기도 일품이었다. 부자간의 작은 갈등이 가까스로 봉합되어 평온을 되찾던 분위기가 다시 반전되면서, "도둑"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커다란 눈망울이 집으로 오는 동안 내내 머리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중국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1954년에 수입 상영된 이 영화의 첫 장면에 중국 영화사가 더빙을 하면서 삽입한 나레이션 문구 때문이었다. 즉, 영화의 제목 및 출연진이 소개되는 화면이 나오면서 중국 측이 끼워 넣은 영화의 시대 배경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1947년 이태리 연립 정권의 붕괴로 공산당과 사회당이 배격된 것, 그리고 실업이 늘어난 것 등을 이태리 우파세력과 미국의 결탁에 의한 것으로 그리면서, "썩어 빠진 자본주의"라는 표현이 자막에 나왔다. 이를 보면서 나도 그랬지만 내 주변에 앉아있는 관객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폭소는 아니었지만 아주 유쾌하게 웃는 모습이었고,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이미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보였다.
1954년 당시라면 중국인민들이 반제국주의 혁명 및 내전에 성공한 중국공산당의 지휘아래 국가 건설에 매진하던 때이다. 더구나 한반도 전쟁에 참전함으로써 미국과 일전을 불사했고, 또한 미국에 패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의지대로 북한 정권을 전전처럼 존속시켜 주었다는 차원에서 자신만만해 하던 시절이다. 그러므로 중국정부는 국민들에게 미국을 타도의 대상으로 선전하던 때이다. 45년여 전에 이 영화를 본 중국 관객들은 이 나레이션을 읽으면서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아마 모르긴 해도 부패한 자본주의와 그 대명사격인 미국을 증오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관객들이 보인 반응으로 추측컨대, 이제 이들 일반 중국인들에게 자본주의와 미국은 더 이상 타도의 대상이 아닌 것 같다.
<대신 해주기>
첫째, 초등학생 아들대신 아빠가 숙제해주기.둘째, 예비 장모가 딸 대신 사윗감 선보기.셋째, 부인이 남편대신 간부감 심사하기.넷째, 학생인 조카가 외삼촌 외국어 시험 대신 봐주기.아마 이 그림 중에 세 번째가 가장 문제가 될 듯 하네요. 직장과 가정을 구분 못하는 못난이 상사가 있는 직장에서 근무하자면 엄청난 인내가 필요할 겁니다.
한 중 일 젊은이들의 가정관 비교
한 중 일 세 나라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비교해보고자,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두 해 동안, 18세 이상 25세 이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관계 기관 간들이 협력하여 공동 조사를 펼친 적이 있었다. 세 나라 젊은이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가정 모델은 모두 전통적 "夫唱婦隨"식 모델이 아니었다. 그런데 평등한 가정을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각국 젊은이 간에 미묘한 차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먼저, 중국 청년들은 한국과 일본 청년들에 비해 "따뜻한 가정"을 더욱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일본 청년들은 중국이나 한국 젊은이에 비해 "부부 자립"을 더욱 중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본 청년들의 "부부 자립" 중시가 현실이 그러하질 못하고 있음에 대한 갈구라는 해석이었다.
둘째로, 유교 문화의 영향이 여전히 세 나라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다들 부모에 대한 "孝"의식을 갖고 있다고 분석되었다. 그 가운데 중국 청년의 효도 의식이 가장 강했다. 중국 청년들의 경우에 부모를 모실 생각이 그다지 없다거나 혹은 부모를 모실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 이들이 1%도 안 되었다.
셋째로, 3국 청년들이 모두 혈연관계를 중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단 중국과 한국 젊은이들의 8할 이상이 형제간의 관심과 도움을 필요한 것으로 본 데 비해, 일본 젊은이들은 그 비율이 4할 정도에 그쳤다.
끝으로, 세계화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3국 젊은이들의 민족의식을 희석시키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모국의 전통 문화를 마땅히 계승해야 하는 것으로 대답했는데, 그 중 한국 청년들의 전통 계승 의식이 가장 강했다. 단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민족 전통 계승 의식들이 타민족 배타의식으로 표출되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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