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의 그리스도인 |
그리스도 진리에 대한 확고한 소망을 온유와 두려움과 선한 양심으로 나타내야 |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5~16)."
지금 다문화 다종교 현상은 현실입니다. 초현대적인 교통·통신 발달로 세계는 가까워지고 교류는 다양해졌습니다. 그야말로 지구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문화 다종교 현실을 하나로 통합해 주는 보편타당한 문화적 언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새뮤얼 헌팅턴(Samuel Phillips Huntington)은 이러한 시대를 문명 충돌의 시대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다문화 다종교 상황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유형은 크게 나누어서 상대주의, 다원주의 입장, 포용주의 입장, 배타주의 입장 등으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배타주의는 다른 종교 문화를 부정하는 태도입니다. 포용주의도 실제적으로는 타 종교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상대주의, 다원주의는 다문화 다종교 상황에서는 매우 편리한 입장이라고 하겠습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에게서 배우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입장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은 혼합되기 쉽고, 흔들리기 쉽고, 세속화되기 쉽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1. 공격적인 태도를 버리고, 신사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다문화 다종교 상황에서 살아가는 가장 좋지 않은 태도는 공격적인 행동입니다. 나의 신앙과 삶의 방식을 강요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공격하고 싸우고 죽이려는 태도입니다. 매우 독선적입니다. 이런 태도는 다른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못하고, 마치 사물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념을 타인에게 투사하고, 그 사람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와 너의 구별 의식이 없습니다.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를 지르면서 전도하는 행동은 신사적이지 못한 행동입니다. 사찰 등 타 종교 공간에 들어가서 예의 없이 행동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외에 가서도 전쟁하듯 공격적으로 행동하고 타 문화 타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는 행동은 신사적이지 못한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다원적 문화 종교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자세는 공격적인 태도를 버리는 것입니다. 신사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2. 예수 중심성과 보편적 가치 탐구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 다양성은 현실이지만, 그 다양성 자체가 모두 선한 것은 아니며, 다원적 현실 자체를 절대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 대화하고 탐구해야 하지만,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식의 상대주의적 자세는 믿음 없는 태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예수 중심성은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을 우리가 온전히 알고 있다고 장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알고 있는 예수와 실제의 예수를 동일하다고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교회 안의 예수만 주장하지 말고, 오히려 교회 밖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삶으로 나타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타 종교 타 문화의 사람들은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입니다. 타 종교 타 문화 속에 은폐되어 있는 예수의 생각까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온유와 두려움과 선한 양심으로 접근해야 하겠습니다.
3. 현실 참여 방식이 중요합니다
불가피하게 충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비폭력 평화주의를 견지해야 합니다. 참여 방식 자체가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여 방식 자체가 더 큰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충돌이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굴종을 말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사랑의 방식, 초월적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회 일반으로부터 구별되어진 공간에서만 살아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열정은 세상으로부터 구원이 아니며,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슬로우(Abraham Maslow)에 따르면, 인간의 가장 고귀한 욕망은 자아실현의 욕망입니다. 생리, 안전, 소속, 사랑, 자존감 등 단계별 욕구의 최고점은 자기실현-절정경험입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그 절정경험의 '근원'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절정경험의 근원은 전적 타자성(초월성,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뜻을 깨닫고 실현하고자 하는 하나님 자녀의 욕망은 세상의 보이는 대상만으로는 만족될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런 궁극적 하나님 자녀의 욕망이 실현되는 절정 체험은 욕구 단계의 꼭짓점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위 낮은 단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생리, 안전, 소속, 자존감 등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하나님의 절정 체험을 강렬히 소망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절정 체험을 겪은 사람은 존재론적으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이런 절정 체험의 사람만이 다시는 자신의 육신의 욕구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 자녀의 욕망을 능동적으로 따라가게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요컨대, 다문화 다종교 상황에서 예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한 확고한 소망을 체험적으로 발견하고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망을 세상의 문화 콘텐츠 속에 온유와 두려움과 선한 양심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소통해야 합니다.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오늘의 언어와 문화로 새롭게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구원, 심판, 원죄, 사탄 등 타 문화 타 종교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독교 종교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세속적 보통 언어를 통하여 예수의 진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만 아는 속 좁은 사람들, 타 종교에 무례한 사람들, 사랑과 정의와 평화 등 보편적 가치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라는 왜곡된 교회 사람 이미지는 벗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 이창돈 기자
| 출처/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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