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십일조가 폐지된 헌금이냐?

수호천사1 2011. 3. 10. 17:21

십일조가 폐지된 헌금이냐?(신14:22-29)

부제:십일조는 복받기 위해 드리는 헌금이 아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바로 '돈' 문제입니다. 물론 '돈' 문제는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 가정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에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유독 교회에서의 '돈' 문제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함께 입에 오르내리는 소재가 됩니다. 자료가 조금 길어서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이글을 접하신 분들은 바른신앙을 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이해가 안되시면 두번 보셔도 됩니다.

 

성도들이 헌금(金)과 헌물(物)과 헌시(時)등 진정한 의미를 모르니 돈 이야기로 보게됩니다. 우리 '예수가좋다오' 카페에 어떤분이 "일맥님은 복음은 신약인데 십일조는 구약시대"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성도들이 인터넷에서 잘못된 헌금사상을 받아 드리면서 '신약에는 십일조를 하지말아야 되느니' 하면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 바로잡기를 원하고 또한 하나님 섬기는 귀한 일을 버리게 되는 것이 안타까운 나머지 글을 쓰기에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왜 교회가 '돈'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비방거리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헌금이 아니라 교회의 부(富)를 축적하고, 비정상적으로 교회건축을 강행하며, 목사를 분에 넘치게 대우하고, 기도원이나 수양관, 묘지 조성 등을 포함한 육신적인 사업의 확장 등을 위해 헌금을 사용하려고 강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헌금에 대해서 분명한 원칙을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어떻게 드려야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드리고 사용되어야 하는가까지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고전 16:1, 고후 8:8, 9:7). 그럼에도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한 채 나눔을 베풀지 않고서 많은 교회들이 교인들에게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돈'을 모으기에 급급한 것으로 비치게 됩니다. 엄밀하게 말씀드려서 십일조는 복음 전파를 위해 일하는 분들의 인건비와 생활비로 사용되는 물질입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지만 영양력을 끼치는 몇몇 교회들이 물질을 잘못 사용해서 사회가 바라보기에 좋지않게 보인다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정착이 안되는 이유와 교회 다니기 싫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중에 제일 많은 답변이 돈이었습니다.

① 교회가면 돈 이야기를 많이 해서 싫다. ② 교회가면 돈 내라고 해서 싫다.  ③ 교회 가면 헌금바구니 돌려서 싫다. ④ 교회가면 돈을 강제로 거두는 것 같다. ⑤ 교회 가면 돈 많이 버는 것이 복이라고 해서 싫다. ⑥ 교회 가면 목사가 돈만 밝혀서 싫다. ⑥ 교회 가면 돈 없는 사람은 사람 취급하지 않아서 싫다. ⑦ 교회 가면서 좋은 옷과 치장을 안하면 사람 취급도 안한다.

 

 교회 가기 싫은 이유중  80%가 "돈 때문에 교회가는 것이 싫다"라고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왜 헌금을 돈과 연관을 지을까요? 어느 때 부터인가 교회와 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고 세상에서 교회를 보는 눈이 날카로워져서인지 아니면 교회가 돈에 대해서 자유하지 못해서인지 혹자는 광란적 종교집단으로 교회가 전락했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급부적으로 한쪽에서는 "우리 교회는 돈 이야기 하지 않는다. 헌금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세상이 좋게 이해할 것이다'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돈 이야기를 하는 것도 문제고, 돈 이야기를 안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만약에 "돈 이야기를 하는 것과 안 하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성경적이냐?" 하고 이야기한다면 '둘 다 성경적입니다.' 돈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한편으로는 성경때문에 돈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믿음이 없고 연약한 자 때문에 이럴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돈 이야기를 하라'고 합니다. 상당 부분이 돈 이야기와 물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자기의 가진것 중에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이야기 하는 것은 결코 돈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과 신약은 다르다'고 우리가 오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히 폐하시고 새로운 법을 만드셨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명한 십일조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약속한 법입니다. 말씀을 지키면 복을 주고 어기면 징계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면 땅에 복을 받고 말씀을 믿으면 현세와 내세에 구원을 받습니다. 구약에는 메시야가 오시는 것을 믿고 구원받았고 신약에는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마23:23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형식적 신앙을 질타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여야 하리라"고 하신 것은 십일조 속에 '의와 신'이라고 하는 진정한 신앙의 본질이 담겨야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가 십일조에 대한 규정 3가지를 살펴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에 십일조를 드리라고 했을까? 민수기18장21절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1.레위인을 위한 십일조를 드리라.

 레위인은 제사가 전업인 지파입니다. 생업에 종사할 수 없었습니다. 제사에 집중하기 위해서 나머지 지파가 그 레위인들의 생활을 책임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가 레위인들의 생활비가 되고 생업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십일조는 목사나 교회에서 복음을 위해 일하는 자들의 몫입니다. 복음을 위해 훈련받고 예배와 설교와 복음 전파에 전념하는 자들을 위해 '십일조를 하라' 는 것입니다.

 

2.경배와 축제를 위한 축제 헌금 

<신14:22절-23절>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6절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예배를 위해서 십일조가 필요합니다. 예배를 위해서 물질이 필요합니다.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에 십일조와 예물을 가지고서 가족과 동료와 함께 먹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동체의 경배와 축제를 위해서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3.나눔을 위한 십일조

<신14:28-29 >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서 십일조를 드리고 그 십일조가 없는 사람을 위해 쓰여지게 만들어라.하십니다.

 

그러면  십일조는 의무입니까? 아니면 선택사항입니까?  당연히 성도의 의무입니다. 십일조를 드렸다고 해서  복 받고 안 드렸다고 해서 저주 받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세금을 냈다고 복 받습니까?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한 나라가 유지가 되며 바로 설 수가 있습니까? 아마도 나라 자체에 부도가 날 것입니다.그러므로 세금은 국민의 3대 의무중 하나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십일조는 당연한 성도의 의무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라면 십일조는 반드시 드리는것이 마땅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십일조가 오해받는 이유는 '십일조를 내면 복 받는다'  이렇게만 연결시켜서 그렇습니다. 십일조는 복 받기 위해서 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나누는 자를 위해서, 경배와 축제를 위해서,  나눔을 위해서 십일조를 내라는 것입니다. 영적 이스라엘,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운 삶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품위 유지비 입니다. 아직 성도도 아니고 물질이 아까운 사람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내는 것을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하셨기때문입니다.

 

   십일조는 여호와 신앙공동체를 지키는 최소한의 비용이었습니다. 십일조는 복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것의 十/1을 드리고  十/9로 생활해도 넉넉할만큼 복을 받은 사람들이 내는 것입니다. 가난하여 먹을 것도 없는데 십일조를 내라면 강탈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물론 가난한 중에서도 믿음으로 작은 것을 나누면 더 하여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복 받은 사람입니다. 많은 것을 가졌어도 못 나눈다면 지극히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이들에게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 위해 드리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그리스도인 다운 삶의 품위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비용입니다. 예배를 위해 모일 때 사용하는 품위, 나보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나눔'이라는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믿음의 사람들이 드리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신14: 29절 하반 절> 에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고 말씀합니다. 십일조는 의무금이기에 복과 관련된 것이 아닌데도  하나님은 그 의무를 행하는 자에게 "하늘의 복을 너에게 줄것이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경험의 법칙에 의하면 '십일조를 내서 손해 본 사람은 없더라'하는 것입니다. 경험의 법칙입니다.

 

   부자의 기준은 시대마다 다릅니다. 10년 전에는 현금 10억 이상 갖고 있으면 부자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현금 30억 이상을 가지고 있어야 부자입니다. 부자는 상대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말하는 현세의 복은 두가지인데 ①만족이고  ②풀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면  첫번째 나타나는 귀한 은혜가 만족입니다. 정신병중에 하나가 폭식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식증도 정신병이고 폭식증도 정신병입니다. 폭식증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것입니다. 영적인 정신병자가 참 많이 있습니다. 벌어도 벌어도 만족을 모르는 상태를 정신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배부름을 모르는 상태도 정신병이라고 합니다.

 

죄송한 이야기입니다만 어떤면에서 록펠러는 정신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기독교이고 십일조를 낸 사람이지만 그가 뭐라고 했나요. "지금의 재산에 만족하십니까?" 라고 기자가 물어보자  "조금 더" 라고 말했습니다. 만족을 모르면 사실은 정신병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림으로 내 삶에 부족을 못 느낀다는 것입니다. 많이 가져서 부족을 못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부족함을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꼭 많이 가져야만 부족함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그 하고 싶은 것이 내 손에 '척''척' 잡히는 것이 있어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십일조를 드림으로 모자란 적이 없는 만족함의 경험을 하시길 바랍니다. "네가 지금 필요한 게 있니?" 하고 물으시며 "필요한 것 그때 그때 공급해줄께" 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그런 체험들이야말로 십일조 드리는 사람들이 누리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두번째는 풀림의 복입니다. 29 하반절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공부 잘 하는 사람의 특징은 잘 풀립니다. 성적이 안 나오는 아이들의 특징이 공부를 했는데도 안 풀립니다. 그게 비극입니다. 양쪽이 다 똑같이 공부를 합니다. 영어공부도 하고,수학공부도 하고 기타 공부도 합니다. 그런데 시험시간만 되면 한 아이는 무언가에 막혀서 안 풀리고, 한 아이는 무슨 문제든 술술 풀려서 전교 1등을 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삶의 현장에 들어가 있는데 어떤 인생은 꼬이기만 합니다. 예를들어 10억 장사하는 사람은 10억으로 꼬이고 100억 장사하는 사람은 100억대로 꼬입니다. 그래서 재벌들도 힘들어합니다. 세계경제가 위기라고 하니까 한 해 수출무역량이 3조-4조가 왔다 갔다 하는 회사들조차 힘들다고 합니다. 말이 됩니까? 수 조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힘들다고 하니 말입니다.

 

반면에 100만원밖에는 무역이 안되는데도 어떤 분들은 아쉬울 게 없다고 합니다. 절대적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계획과 우리 인생의 앞길이  물량적으로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 인생의 계획이 있느냐, 목표가 있느냐, 자기 앞길에 미래가 있느냐. 또한 그것이  생각과 계획대로 풀리느냐 안 풀리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범사가 잘 될 것이다" 하시는 이 말씀이 복 중의 복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 그대로  주시는 만족의 법칙이 있습니다.

  
4.십일조의 제정과 종류

십일조의 제정을 보면  레위기19장에서 율법이 제정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 하에서 십일조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율법 하의 십일조를 살펴보면, 십일조의 종류가 단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드리는 시기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신명기14장 22절에는 "해마다 드리는 십일조"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으며, 삼년 끝에 드리는 십일조도 있는데(신 14:28; 26:12), 이 시기를 어기는 것은 죄로 여겨졌습니다.(암 4:4-5). 이외에도 성경은 "십일조들"이라고 기록함으로써(대하 13:12, 느 12:44) 다양한 형태의 십일조가 드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십일조로 드리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됩니다. 곡식, 포도주, 기름, 소떼와 양떼의 첫태생들, 거룩한 물건(신 14:23, 대하 3:16)과 경작하는 모든 성읍들의 십일조(느 10:37), 소산의 모든 것의 십일조(신 26:12, 대하 31:5), 자기가 얻은 모든 것의 십일조(눅 18:12) 등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복 받는 비결이 자세히 나와있는데 그것은 첫째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다음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5장16절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하나님과 부모를 공경하는 것, 그를 인정하는 십일조 입니다. 구약의 십일조는 강제 조항이었지만, 신약의 십일조는 믿음으로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의무를 감당하였는데 감당한 만큼만 주시는 것이 아니고 상급으로 넘치게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를 들라하면 우상숭배와 십의 일의 헌물을 제대로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켜서 고르반 하면 부모를 섬기지 않아도 된다는 법도 있었습니다. 마가복음7장11절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으로써 하나님께 드려야 했던 십일조를 우상에게 바치게 하였습니다. 누구나 십의 일조는 다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든지 마귀에게 빼앗기든지 병원비로 쓰든지 등등 전대(錢帶)가 구멍이 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왕 때에 잠깐 회복되긴 했어도(대하 31:5,6,12),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십일조의 축복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모두 망하고 난 후, 그들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전혀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지에서 귀향하게 됩니다. 느헤미야를 보면 포로에서 돌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드리는 것을 보게됩니다.(느 10:37,38, 12:44, 13:5,12). 그러나 이 역시 잠시 동안의 회복이었을 뿐입니다. 십일조는 물질만 십일조가 아니고 시간과 정성과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드려야 합니다.

 

5.어떻게 써야 물질을 잘 쓰는 것입니까?

1)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잠언3 :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여호와를 공경하기 위해 드린 처음 익은 열매가 십일조입니다. 공경하기 위해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2)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3) 나라에 정당한 세금을 내는 일에 써야 합니다.  로마서13:7절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4) 정당한 품삯을 주는 일에 써야 합니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 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약 5:4)

5) 사랑의 빚을 갚는 일에 써야 합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잠언 22:7)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6)궁핍한 자를 위해 구제하는 일에 써야 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4, 25)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 19:17)

7) 가족을 돌보는 일에 써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딤전 5:8)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라기의 말씀을 상기하여야 합니다. 말라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혼을 선포하는 포고문입니다. 말라기 3:8,10 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일조의 언약을 상기 시키시고,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일조를 말씀하시는지 정확히 알아야 힙니다. 그 이유는 말라기 1:12-13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주께로부터 모든 것이 떠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복이 십일조와 연관 있음을 다시 한번 알려 주고 계신 것입니다. 십일조를 하려면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을 지켜서 땅은 원주인에게 돌리고, 노비는 자유를 주고 가난한 자와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 물질을 내야하는 것이 진정한 십일조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강단에서 그릇된 목적을 가지고 말라기를 인용하면서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강조하는 목회자들을 보게됩니다. 또한 교인들도 목회자의 말에 "아멘"하고 하나님을 시험(?)하기 위해 열심히 십일조를 바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십일조를 교회의 비성경적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잘못 강요하는 배부른 교회와 목회자들이 문제이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며 바르게 배워서 실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부족하면 목회자는 하나님께 간청하셔서 성도들을 복주셔서 채워지도록 해야 합니다. 남으면 다른 곳에 사용하지 말고 십일조가 부족하여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목회자에게 보내야 합니다.

 

신약 시대에는 "십일조가 없다" 하는 것은  성경을 잘 모르는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며, 교회의 공동체를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공격입니다. 신약 성경(사복음서)에서는 십일조는 당연히 하던 것이기에 굳이 강조를 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밥먹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밥먹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미 종교화되어 버린 이스라엘의 가치없는 십일조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극심하게 비판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마 23:23, 눅 11:42). 또한 바리새인의 기도(눅 18:12)에서 보았듯이 이미 이때에는 십일조가 종교화, 형식화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곳은 주 너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선정하실 곳 (신 14:23, 24-26)이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레위인들이 십일조를 받고 제사장들의 예물들을 두던 곳에 두고 관리했기에 당연한 것이었습니다.(느 13:5, 말 3:10). 십일조의 용도와 목적은 레위인들의 몫이요 유업이었으며(신 14:27, 느 12:14), 성문 안에 있는 타국인과 아비 없는 자와 과부들의 양식이었습니다.(신 14:29).

 

성경에서 십일조를 드리는 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는 십일조를 드렸으며(느 10:39, 신 12:6,11), 여기에는 레위인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레위인들은 자신들의 몫이나 유업이 없었으나(신 14:29) 그들이 받은 이스라엘의 십일조들 가운데서, 즉 십일조 중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느 10:38, 민 18:24,26,28). 이것은 오늘날 목사님들이나 교회에서 일하는 자들과 복음전하는 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야 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목사님들이 잘못된 권위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헌금과 십일조에 참여하지 않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 일 것입니다.

 

6. 과연 십일조는 율법시대에만 드리는 것인가?

십일조는 율법 이전과 율법 아래에서, 그리고 율법 이후에도 드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율법 이전에 믿음으로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렸으며(창 14:20), 이스라엘은 말할 것도 없고 레위인들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와서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십일조를 받는 레위인들도 아브라함 안에서 십일조를 바친 것이라도 말씀합니다.(레 27:30-34, 히 7:5-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 레위는 아직 조상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 7:5-10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십일조는 분명히 율법 이전과 율법 이후가 다릅니다. 율법 하에서는 전적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복받기 위해서 반드시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기에 재앙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율법 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드린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 전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십일조를 했기 때문입니다.(그럼에도 십일조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자원함과 번성케 하심의 결과로 드려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는 온전히 주님을 위해서 드리는 것이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십일조는 물론 교회 재정과 교회의 운영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께서 운영하는 것이지 단지 돈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드리고 성경대로 사용하며 그리스도인이 믿음이 있다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믿는다면 아브라함처럼 행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먼저 점검해 봐야 하는 것은, 십일조를 드린다 안 드린다의 문제에 앞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렸는가를 분명히 점검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헌신하지 않은 사람이 아무리 많은 돈을 헌금하고 십일조를 정확하게 드리면 무엇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돈을 원하시거나, 우리의 십일조 자체만을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또한 무슨 필요한 것이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아야 되는 것도 아니시니, 이는 그분이 친히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심이라.(행 17:25). 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헌신한 후에, 그 헌신의 첫 출발로써 재물에 대한 주권 행사를 모두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활을 위해서 다 드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번성케 하신 대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신약 성경의 원칙은 '번성케 하신 대로 자원하여 드리라'는 것입니다.(고전 16:2, 고후 9:7). 그리고 신약 성경의 원칙에는 심는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원칙(고후 9:6, 갈 6:7)이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믿지 않고 무지한 사람들이 "십일조의 근거가 무엇이며, 왜 십분의 일을 꼭 드려야 하느냐"는 등 뒷말이 많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대로 드려야 합니다. 그 출발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드려야 할 "십일조"인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단지 돈으로만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시간, 노력, 돈, 생활 등등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과 그리스도인이 드리는 십일조와의 차이입니다.

 

 말씀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현세와 내세에 구원을 받고 말씀을 지키면 현세에서 복을 받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나 헌금이 부담되면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위에도 말했지만 이세상 사람은 누구나 십일조를 합니다. 하나님께 하셔서 현세와 내세의 상을 받든지 아니면 마귀에게 빼앗기든지 그것을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대신 하나님을 인정하지않는 유일한 사람이시니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끝맺습니다. 아무쪼록 성경을 바로 배우고 성경대로 믿으시고 믿음대로 행하셔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범사의 복을 누리실 수 있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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