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의 이야기를 통한 한국 여성의 정체성
다음 글은 김정숙 박사가 강연한 “네러티브 아이덴티티 : 한(恨)의 이야기를 통한 한국 여성의 정체성” 전문이다.
1. 들어가는 말
오늘 강연의 논제는 근대주의와 후기근대주의 논쟁 중 가장 핵심적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주제”(subject)의 문제 그리고 “정체성”(identity)에 관한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한 문제제기는 ‘역사적 정황 가운데 주변인으로서 밖에 살아갈 수 없는 소외된 여성들이 어떻게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회복함으로 주체적 인간으로서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그 동안 주장되어온 정체성의 이론이 힘없고 주변 화된 여성을 주체로서 자리매김하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범주로부터 걸러내고 배제해 버리는 이데올로기의 도구로써 작용해 온 것을 비판하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써 “내러티브 아이덴티티”, 즉 “이야기 정체성”이라는 이론을 제시한다. “내러티브 아이덴티티”는 거대담론(meta-narrative)이 아닌 “한”의 이야기라는 구체적 한국 여성들의 아픔과 고통의 개별적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냄으로 다중으로 억압되고 소외된 한국 여성들이 “발화의 주체”(speaking subject) “담화의 주체”(communicative agent)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 갈 수 있음을 주장한다.
폴 리쾨르의 이론을 방법론으로 사용한 “이야기 정체성”은 근대주의에서 주장하는 자기 동일성이라는 “본질주의”(essentialism)의 한계와 후기근대주의에서 주장하는 상대주의적 유명론이라는 “구성주의”(constructionism)의 한계를 상호 변증법적으로 보완 통합해 동일성의 이데올로기와 이질성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정체성 이론이다. 특히 한의 이야기를 통한 정체성 이론은 구체적으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라는 지역성과 한의 경험이라는 특수성을 전제로 해 개개인의 한의 이야기를 통해 개별적이면서 동시에 공유적인 한국 여성의 정체성을 발견해 갈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이라는 제한된 지역적 범주를 넘어 제삼세계의 억압받는 여성들의 정체성을 조명할 수 있는 일반성을 갖는다.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정체성의 특성상 여성만이 아닌 계급과 성과 인종의 차별과 억압으로 고통 당하는 남성들의 정체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배타적 여성의 정체성만을 주장하지 않는 포괄적 특성을 갖는다.
2. 근대주의, 후기근대주의, 페미니즘의 정체성 논쟁
근대주의와 후기 근대주의 논쟁의 가장 핵심은 역시 주체의 문제와 정체성에 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두 사조(思潮) 간의 정체성 논쟁은 여성들에게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이자 동시에 위기로 작용하고 있으며 여성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양가적 입장을 취한다. 페미니스트(특히 자유주의 페미니즘)들은 근대주의 자들이 주장하는 자율적 인간, 주체적 자유와 평등의 실현, 자유에 대한 주장을 수용해 여성의 권리와 성 평등의 정의 실현, 여성의 자유를 추구하는 반면, 본질주의의 정체성 이론인 남성 중심적 절대적 이성주의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비판한다. 근대주의에서 주장하는 절대적 이성의 주체는 사물을 보고 판단해 지식을 얻는데 순수이성의 젠더 중립, 가치중립, 탈 역사적인 원리는 그 근본에 있어 유럽의 백인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주체성 이론임을 비판한다.
모든 것은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음을 부각시키면서 절대적 진리 주장을 거부하며 등장한 역사성과 상대성의 강조, 주체의 죽음에 대한 선포, 남근이성중심주의(phallogo-centrism)의 해체와 형이상학에 대해 종말을 선포하면서 근대주의를 비판하는 후기 근대주의의 주장들은 여성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틈새의 기회였다. 정체성을 비롯한 모든 것은 오직 권력과 지식의 담합에 의한 담론의 결과로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푸코의 주장과 더불어 데리다의 차이와 타자에 대한 부각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운명이라는 굴레로 인한 억압과 차별 그리고 소외로 인해 주변화되고 타자로서 규정지어졌던 여성들에게는 그 허구적 숙명의 족쇄를 벗어버릴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여성주의자들은 후기근대주의자들의 정체성 이론이 타자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여성에 대해 무관심한 애매한 타자성과 지나친 개별화와 특수화를 강조함으로 여성 해방운동에 대한 지반을 붕괴시킨다고 비판한다. 후기근대주의자들에게 주체와 정체성이란 단지 담론에 의해 생성되었다가는 소멸되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주체 없는 주체(subjectless subject) 즉 구성된 주체이며, 끝없이 상대화되고 분산되고 분열된 주체성(fragmented subjectivity)이라는 해체주의 결론에 도달한다. 따라서 후기근대주의의 인간 주체의 죽음에 대한 선포와 정체성의 해체는 역사 속에서 주체로서 살지 못한 여성들, 특별히 계급과 성과 인종의 차별 받는 제3세계 여성들에게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마저 박탈하므로 여성에게는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틀로서 작용할 수 밖에 없다고 여성주의자들, 특히 문화적 페미니즘, 급진주의 페미니즘에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이 같은 두 입장은 억압과 차별에서 여성을 해방시키고 여성의 온전한 인간화라는 목적에 대해 뜻을 같이함에도 불구하고 방법론에 있어 서로의 한계에 대해 대립적 입장을 갖는다. 이처럼 근대주의와 후기근대주의의 양극화된 정체성의 이론의 한계를 보완하고 상호 연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폴 리쾨르는 “내러티브 아이덴티티”를 주장하여 주체의 자기 동질성을 확보하면서도 고정된 실체가 아닌 유동적이며 자기 반성적 자아를 담지 한 정체성 이론을 제시한다.
3. “내러티브 아이덴티티” : 한의 이야기를 통한 한국 여성의 정체성
3-1. 폴 리쾨르와 “내러티브 아이덴티티”
이야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리쾨르는 “전통들은 그 본질상 이야기들이다”라고 정의한다. 리쾨르에 따르면, 인간은 이야기라는 매개를 통해 정체성을 얻게 된다. 시간의 흐름과 인간을 연결시키는 매개체는 다름 아닌 이야기라는 것이다. 리쾨르가 여기서 지적하는 시간의 흐름이란 단순한 기계적 시간이나 의식적인 내면적 시간이 아닌 “인간의 시간”, 즉 인간의 행동과 고통에 그 중심을 둔 시간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기억되고 보존되어야 할만한 과거의 사건의 표지이며, 더욱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래서 기억에서 지워지는 자체가 피해자에게는 또 한 번의 죽음을 의미하는 굴욕적이고 엄청난 충격의 기억의 지표라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이야기의 집합체이다. 그래서 개인적이건 집단적이건 이야기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더 나아가 역사를 구성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정체성을 얻는다고 말한다. 리쾨르에 의하면, 소설적 이야기의 구성을 이루는 상상과 배열을 통해 얻어지는 내러티브 정체성이야 말로 본질주의적 정체성과 허무주의적이며 상대주의적 유명론의 정체성 사이의 극단적 간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주장한다.
리쾨르는 이야기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부분을 둘로 구분한다. 우선 시간의 흐름 가운데 한 여성으로서 또는 한 남성으로서 탄생에서 죽음까지 개인의 삶에 일관성과 계속성을 부여하는 자기동일성으로의 무엇을 지시하는 idem(self-sameness) ;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인간의 상호 관계성 속에서 도덕적이고 책임적 주체인 자기반성적 자아의식을 ipse(selfhood)로 표현한다. 리쾨르는 인간의 자기 인식 즉 참된 인간의 정체성은 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정치성 즉 자기 동질성의 idem과 자기 반성적 자아의 ipse의 상호 변증법적 통합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덧붙여 설명하기를 이 두 정체성의 이해가 배타적 분열 없이 상호 변증법적으로 통합되어 이해될 수 있는 형식이 바로 내러티브 아이덴티티 즉 이야기를 통한 정체성임을 주장한다.
리쾨르에 따르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즉 “인간에 대한 지식”은 즉각적인 직관이나 추론적 인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소설과 같은 이야기의 구성 형식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의 해석을 통해 자아의식(selfhood, ipse)과 더불어 자기동일성(identity, or sameness, idem)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함을 통해서만 자기 주체성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면에서 리쾨르가 주장하는 내러티브 아이덴티티의 정체성을 의도적이며 인식에 근거한 자기 목적적 해석활동에 기인한다. 그런 면에서 한의 이야기를 통한 한국 여성의 정체성은 리쾨르가 주장한 idem과 ipse의 변증법적 통합을 통한 이야기 정체성 이해에 맥을 같이 하지만 리쾨르의 역사적이고 소설적 형식의 이야기를 통한 의식적 목적론적 주체성 이론과는 다른 차이가 있다. 리쾨르의 정체성이 의식적이며 의도적 구성을 통한 목적적인 해석학적 정체성인 반면에 “한”의 이야기를 통한 한국 여성의 정체성은 그 자체에 있어서 논쟁적이거나 의도적인 이야기의 구성을 전제하지 않으며, 진실이나 사실을 규명하고자 설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3-2. 고백의 언어, 사건화의 언어 “한”, 그리고 한의 이야기를 통한 정체성
“위대한 이야기꾼(storyteller)들에게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란 마치 사다리의 발판을 마음대로 오르내리며 그들이 겪은 경험을 엮어 낼 수 있는 자유라 할 것이다. 아래로는 땅의 내부까지 깊숙이 내려가고 위로는 구름 속으로 사라져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사다리의 이미지가 바로 모든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충격적인 경험들, 죽음의 경험까지도 모두 어려 있는 포괄적인 경험에 대한 이미지이다” (발터 벤야민)
우리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역사가나 철학자 혹은 이야기꾼 모두가 과거에 있었던 경험들에 관심하여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각각의 부류가 관심하는 이야기나 과거의 경험들은 존재론적으로 인식적으로 다른 범주에 속한다. 한의 이야기는 역사가들의 일관성과 사료적 적합성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해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선택의 그물망 사이로 빠져 버린 이야기이며, 철학자들의 이성적 추론적인 기준으로 지식으로 진리로 증명하기에는 모순적이며 비합리적이고 무가치한 것으로 간과해버린 이야기이다.
한의 이야기란 존재론적으로는 감춰지고 간과되어 묻히고 사라져 그저 한 맺힌 여성들의 가슴에 엉켜있는 이야기이며, 인식론적으로는 사실로 진실로 규명할 수 없는 알려지지 않은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 어머니들의 이야기로 그저 이야기꾼을 통해 이끌어지는 이야기이며,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응어리로 탄식과 신음을 통해 간간이 터져 나오는 토막 나고 분절된 이야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소한 이야기다. 그러나 진실은 진실이라고 논쟁하고 규명하지 않아도 주변의 영향력을 미치는 사건화가 되듯이, 한의 아픔과 고통의 경험이 탄식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과거의 경험이 왜곡된 이면의 역사로 그 얼굴로 드러내어 현재의 역사를 조명하는 사건화로 이어지는 특성을 갖는다.
이는 특별히 한국 역사와 문화 속에서 “한” 이라는 언어가 가질 수 있는 독특한 “한”의 경험에 있어서는 더욱이 사실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여성들의 “한”의 이야기는 약소국가 분단된 민족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아픔의 운명 속에서 또한 가부장적 위계체제 사회 속에서 가난하고 억눌린 민중 여성들이 이중 삼중으로 겪어야만 했던 모든 경험 속에서 가졌던 아픔과 분노, 절망과 열망, 비탄과 의분의 모든 감정이 함께 뒤섞여 “한” 이라는 한 단어에 압축되고 함축적으로 집약되어 담겨있는 억압과 분출의 경계의 언어이며 고백의 언어이자 전복적 사건화의 언어라는 특성을 갖는다.
그러기에 한의 아픔을 안고 있는 여성들에게 있어서 “한” 이란 언어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요, 끝없이 솟구쳐 올라오는 한 많은 경험의 집합이요, 억누를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의 진원지이다. 마치 단단한 표면으로 쌓였으나 안에서 돌출하기를 기다리는 화산처럼 한의 경험은 한으로 맺힌 여성의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은 열망으로 이야기가 되어 흘러나오기를 기다리는 근원지이다.
따라서 한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경험을 나열하거나 기술하는 것이 아니다. 사색적인 이해와 설명의 과정이 아니며 해석과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논쟁의 성격을 갖는 것 또한 아니다. 이는 마치 아벨의 피가 땅에서부터 하늘에 호소하듯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의 고통 속에서 하비루의 탄성과 탄식이 기도로 하늘에 상달했듯이 한 맺힌 경험이 이야기로 전개되는 사건화는 목적론적 추론의 전개가 아닌 오히려 탄식의 기도요 원시적 제의 과정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영적인 호소이며 간청이다. 한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즉 가슴 속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한의 경험이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은 오히려 그 자체가 제의적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영의 부름(ritual invication)이요, 영의 소생함과 같은 사건의 발생(spiritual evocation)과 같다. 마치 태고의 제식에서 영적이 부름이 일어나듯이 압축되고 누적된 한의 고통의 경험이 솟아올라 소생되어 사건화로 이야기되어 흘러나오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한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리쾨르가 주장하는 소설이나 유사 역사와 같은 구성적 형식을 통해 정체성을 찾는 내러티브 아이덴티티와는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가장 소외되고 억압받아 온 정신대 여성들, 때로는 자신이 피해자인줄도 모르며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자책하며 사는 한의 여성들에게 있어서 한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사건화는 억눌린 자아를 해방시키는 과정이요, 관습과 전통 사회제도가 그들에게 부여한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을 벗어나는 과정이며, 담화의 주체자(communicative subject)가 되는 과정으로, 내재된 자신의 이야기가 초월자에게 까지 열려진 초월의 경지 속에서 자신의 자신됨을 발견해가는 자기 계시적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의 경험이 이야기화 된다는 것은 사건으로서 같은 한의 경험을 공유한 자들에게 전달되고 변화를 일으키는 변혁의 사건화이다. 이들이 갖는 한의 경험은 모든 인간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고통과 억압의 경험들을 포괄하는 의미에서 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경험의 지평을 넓혀준다. 비록 의도적으로 계획하여 목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의 이야기는 단순한 한탄이나 탄식에 그치지 않는다. “한”의 이야기는 주류 역사에 도전하는 저항의 소리가 되며 객관의 이름으로 포장된 역사의 이면에 억압되고 숨겨져 사라져가는 역사를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가치중립적인 보편적 역사의 이름 하에 이질적 요소로 걸러지고 배제되어진 사소한 이야기가 저항과 도전의 역사로 변혁됨을 의미한다.
한의 이야기를 통한 한국 여성의 정체성은 여성이라는 이름의 범주로서 혹은 한국 여성의 범주로서 전체를 일반화하거나 보편화하지 않으며, 한국의 역사적 문화적 특수 상황을 전제로 하되, 사회계층에 따른 특수 상황, 즉 한국 사회의 역사성과 더불어 그 역사 속에서 한의 경험을 해온 여성들의 구체적 개별적 경험의 현장성 (positionality)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한국 여성의 정체성은 인식론적으로 종말론을 향해 열려 있는 초월적 존재로, 존재론적으로 제도적 사회에서 규정하여 부과하는 이데올로기적 정체성보다 더 크고 깊은 자아를 깨달아 가는 되어져 가는 역동적 정체성을 보여준다. 차마 다하지 못해 가슴에 맺혀 있던 한의 경험이 이야기화 되는 과정이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종말론적으로 열려져 있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인 “되어져 가는 자아”를 말함으로 근대 본질주의와 후기 근대주의의 주체성 이론의 한계점들을 보완한다.
4. 나가는 말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한의 이야기를 통한 여성의 정체성은 본질주의와 구성주의 정체성 이론의 한계를 상호 보완하여 대안적인 정체성 이론은 본질주의에서 제안하는 단순한 실체론적 진리가 아니며, 구성주의에서 상정되는 힘과 지식의 산물로서의 단순한 구성적 담론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의 삶 가운데 다중으로 억압된 한의 여성을 주체적 담화자인 인간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역사적 내용으로 가능케 하는 변혁적 주체로서의 드러낸다는 면에서 사건으로 실체화되는 수행적인 진리(performative truth)에 관한 담론이다. 이 같은 수행적 진리의 담론인 “내러티브 아이덴티티”에서 보여주는 한국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이 한의 이야기는 한국 역사 문화적 경험을 전제로 하나, 고통과 아픔의 고백적 언어와 사건화의 이야기로서 한국이라는 영역을 넘어 다른 제 3세계에서 억압받고 고통 당하는 수많은 여성과 남성의 경험을 조명하리라 생각한다.
김정숙 박사 (조직신학, 여성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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