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너무나 극적인, 너무나 평범한 선교사의 일생 (안교성)

수호천사1 2010. 5. 18. 17:46

너무나 극적인, 너무나 평범한 선교사의 일생


오늘날 단기선교가 새로운 선교 패턴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장기선교사는 시대에 뒤진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인가? 장기선교사의 미래에 대하여 단정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상당 기간 장기선교사가 필요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장기선교사의 중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여하튼 오늘날의 추세 가운데 선교를 단기적인 관점에서만 보고, 장기적인 헌신을 괘념치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반대로 선교는 으레 평생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막연하게 선교에 투신하는 것도 문제다.

평생경력직career으로서의 선교사직


선교사직은 소명일까 혹은 직업일까? 아마 선교사직은 다른 종교적인 사역과 마찬가지로 소명인 동시에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선교사직은 전문성이 요구되며, 그 전문성은 평생에 걸쳐 개발된다는 점에서, 최소한 평생경력직career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예외는 있지만 선교사가 평생토록 선교사직에 종사한다고 가정하고, 그 일생을 조망하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설사 선교사가 평생이 아닌 일정 기간만 선교사직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결국 ‘선교사의 일생’이라는 전체 그림 위에서 생활과 사역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역시 필요하다.


선교사의 일생에는 선교사직이 요구하는 극적인 삶과 모든 사람의 일생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삶이 교차되고 어우러진다. 다시 말해서, 한편으로 선교사는 선교사로서 공적인 삶을 이끌어가고, 이러한 삶은 다른 사람의 삶과 크게 차이가 난다. 아래에서 다시 상술하겠지만 선교사는 소명, 훈련, 인선 및 파송, 사역, 성장, 안식년, 은퇴 등의 과정을 겪게 된다. 요즘 지구화의 시대에 외국에서 사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선교사의 삶은 타문화권에서 가족과 더불어 장기간 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다른 삶의 방식과 차이가 난다. 그리고 외형적인 면에서 선교사의 삶과 가장 유사한 것이 이민자의 삶이겠지만, 외국에서 사는 삶의 목적이 다르다는 점에서 결코 전자와 후자를 동일시할 수는 없다.


다른 한편으로, 선교사는 한 개인으로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단계passage of life들을 거치게 된다. 결혼, 자녀출생, 자녀교육, 자녀결혼독립, 부모사별, 중년기 위기, 은퇴 등. 따라서 선교사의 일생을 극적인 것으로만 보는 것도 문제고, 반대로 일상적인 것으로만 보는 것도 문제다. 선교사에게는 이 두 가지의 조화가 요청된다. 따라서 선교사의 일생 전체를 도표로 만들어 시간 진행에 따라 생활과 사역에 기본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적어 넣고, 그것에 근거해서 장기적인 선교 사역들을 구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사의 일생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선교사의 일생의 7단계(1) : 파송 전 3단계


선교사라면 누구나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과정을 밟게 마련이다. 소명, 훈련, 인선 및 파송, 사역의 과정에 선교사의 사역 기간이 길어지면 안식년, 은퇴 등이 더해진다. 따라서 장기선교사의 경우, 소명, 훈련, 인선 및 파송, 사역, 안식년, 은퇴 등의 단계를 밟게 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제대로 강조되지 않았지만 반드시 추가해야 할 개념이 있는데, 바로 성장이다. 성장까지 포함시키면 소명, 훈련, 인선 및 파송, 사역, 성장, 안식년, 은퇴라는 7단계가 형성된다. 그리고 선교사의 사역이 평생토록 혹은 장기화되면, 사역, 성장, 안식년이란 3단계는 반복된다. 이제 7단계를 문제점들을 위주로 하나씩 살피겠다.

소명의 단계-

 

선교사의 소명에 대해서는 기존에 많은 연구들이 있어 부언할 필요가 없다. 굳이 한 가지를 든다면, 소명이 점진적이냐 급작스러운 것이냐 하는 고전적인 질문을 재고해볼 수 있을까? 그런데 문제는 소명이 점진적이든 급작스러운 것이든 상관없이 선교의 소명이 두려움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명에 대하여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이 소명이 심리적인 부담이 되어 노이로제 증세를 보이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까지 있다. 예비선교헌신자들을 보면 소명에 대하여 생각은 많이 하면서도, 막상 그 소명을 더 심화하거나 긍정이든 부정이든 간에 소명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다시 말해 선교에 대하여 막연한 생각이나 걱정은 하면서도, 정작 선교에 대하여 바른 지식이나 구체적인 경험이 부족하고 따라서 가부간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런 점에서 요즘 유행하는 1~3주 정도의 초단기선교 이외에 선교 준비도 하고 소명도 확인하고 실제적인 사역도 할 수 있는 보다 본격적인 2~3년 정도의 단기선교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에 대한 책임을 예비선교헌신자 개인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에서 선교 동원을 통하여 예비선교헌신자를 양산하면서도, 그런 예비선교헌신자를 계속해서 이끌어줄 구체적이고 제대로 된 후속조치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비선교헌신자가 선교의 소명을 구현해나가고자 할 때, 고아처럼 내버려지거나 혼자서 암중모색을 해야 할 경우가 많다. 흔히 말하길, 예비선교헌신자 중에서 선교사가 되는 확률은 매우 낮다고 한다. 그렇다면 더욱, 예비선교헌신자를 발굴하고, 인도하고, 지지하여 한 사람의 온전한 선교사가 되도록 돕는 체제가 조속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선교사 재교육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예비선교헌신자 교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훈련의 단계-

 

좋은 군사는 좋은 훈련을 통해 얻어지듯이, 좋은 선교사도 좋은 훈련을 통해 얻어진다. 따라서 훈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그런데 훈련과 관련하여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훈련의 중요성이 충분히 인식되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배우려는 마음이 없거나 훈련을 요식 행위 정도로 여긴다. 훈련받지 않고도 선교를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좋은 목사나 좋은 사역자가, 선교지에서 좋은 선교사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한국장로교회의 첫 번째 타문화권 선교 사역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1912년 대한예수교장로회가 타문화권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정, 이듬해에 중국 산동성으로 한국 최초의 선교사 3명을 파송했다. 3명 모두 훌륭한 목회자였으나 별다른 선교사 훈련이 없었기 때문에 선교 사역은 3 년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총회는 다시 2차 선교사를 파송했다. 문제점들을 위주로 사실 한국 교회가 선교에 있어서 남에게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문제는 그동안 많은 외국선교사들이 지적하였다.


둘째, 훈련은 학문과 달라서 학자가 아닌 교관이 담당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 교회는 선교 경험이 일천하여 좋은 교관이 부족한 탓에 학자들이 훈련을 주도해왔고, 한국인들이 체험적인 훈련보다 지적인 공부를 선호하는 탓에 훈련다운 훈련, 학문과 차별화된 훈련이 많지 않았다. 훈련만 제대로 되어도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의 많은 문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훈련이 시급하다.


셋째, 최근에 많은 선교사들이 훈련받기 원하고, 그래서 외국의 훈련기관을 택하기도 한다.

 

이것은 훈련을 기피하던 과거에 비해서 바람직한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한국에서 한국적인 선교훈련기관을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넷째, 이 훈련은 선교지의 현장과 연결시키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선교사로 파송된 다음 선교지의 현장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이 있지만 그 이전에 현장을 체험하고,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훈련은 매우 필요하다. 다섯째, 이 훈련이 선교사의 소명을 재확인하거나 재조정하는 역할도 겸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경우에 따라 인선 이전에 훈련이 있거나 인선 이후에 훈련이 있는데, 가능하면 ‘선 훈련 후 인선’이 정확한 선교사 선발을 위하여 더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인선 및 파송의 단계-

 

선교사가 인선 및 파송 단계까지 이르렀다면, 이미 상당한 헌신도를 보인 셈이다. 따라서 이처럼 선교에 열심인 사람에게 인선 과정은 고통스러운 절차가 될 때가 있다. 과연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인간이 제한할 수 있는가라는 원칙적인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선교사직은 그 임무가 막중하고 영향력도 크고, 실패를 하거나 중도 탈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인선은 사람이 사람을 판단한다기보다 교회공동체가 최선의 사역자를 선발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사도행전 13장의 경우처럼 인선은 무엇보다 성령이 주도하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재론할 필요도 없지만, 선교사 인선도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이마저 인간적인 생각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역설적인 말 같지만 선교를 위해서 선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선교사가 안 될 수도 있고, 선교사가 될 생각이 없던 사람이 선교사가 될 수도 있다. 개신교의 경우 개인의 소명이 공동체의 소명보다 더 강조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개인의 소명 이외에 공동체의 소명을 확인하는 것이 인선이며, 이런 공동체의 소명을 구체화하는 것이 바로 파송이다.


선교사는 단어의 의미 자체가 보내는 자를 전제한다. 보내는 자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며, 가깝게는 나를 파송한 공동체다. 이로 인하여 선교사는 선교를 하면서, 늘 파송 공동체를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이 공동체를 짐으로 여기기보다는 복음의 교제를 하고 은혜에 함께 참여하는 동역자로 여겨야 할 것이다. 파송에 있어서 특히 중요한 것이 선교사의 나이다. 예외는 있지만 정상적인 경우라면 선교사의 나이는 젊을수록 좋다물론 선교사가 젊음으로 해서 생기는 미숙함은 예상해야 하고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남자는 학교, 군대, 결혼, 안수, 파송 단체나 후원 단체와의 유대감 형성 등의 과정을 거치다보면, 어느새 30대 후반에 이르게 된다. 나이가 많으면 문화적응력이 크게 떨어진다. 그럴 경우, 선교사가 현지에 적응하기보다 오히려 현지가 선교사에 적응하기를 강요하는 결과를 낳는다. 소위 한국식 선교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 선교사가 문화적응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타문화권cross-cultural 혹은 간문화권inter-cultural 사역자로서 절대적인 결격 사유가 아닐 수 없다. 만일 한국 교회가 계속해서 이런 기본을 무시한다면, 선교지의 문제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런 상황은 선교 사역뿐 아니라 선교사 가족에게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중년층 선교사는 사춘기 자녀를 둘 가능성이 높은데, 사춘기 자녀는 유년층 자녀와는 달리 선교지 적응에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춘기라는 연령 자체가 특수한데다가 문화충격 등으로 인한 선교지 부적응까지 겹치면 사춘기 자녀 당사자는 물론 선교사의 중도탈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선교사의 일생의 7단계 (2): 파송 후 4단계


사역의 단계 - 어쩌면 한국 교회와 한국 선교사들이 사역에 관심을 집중하는 만큼, 가장 예민한 단계가 바로 이 단계일지 모른다. 선교사는 먼저 현지 적응을 잘해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인 사역, 성공적인 사역이 가능하다. 그러나 선교조급증을 보이는 선교사와 파송단체 및 후원단체로 인하여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현지 적응도 되기 전에 사역을 시작할 때가 많다. 이로 인하여 사역의 중복이나 경쟁 등이 발생하고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겪고 선교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사역에 임한다. 특히 언어도 배우기 전에 통역을 통해 사역할 때, 그런 문제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사역 선택의 폭이 좁다. 선교사의 은사나 선교지 상황보다 파송 단체나 후원 단체의 비전이 우선될 경우가 있다. 선교지에서의 성공적인 사역을 위해서는 선교지 파악, 사역계획 수립 혹은 사역 재조정 등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셋째, 사역에 대한 전반적인 전망이 부족하다. 가령 선교사가 사역을 시작할 경우, 그것의 시작, 발전, 이양 및 정리 등에 과연 몇 년이나 필요한지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고 일단 시작부터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설사 선교사가 평생 선교지에 있다 해도 중간에 안식년이나 계약갱신 등 시간적인 변동 사항이 있게 마련인데, 이런 것들은 충분히 예상되는 변화요 대비해야 할 사항이다. 최근 들어 선교사의 중도 탈락이 늘거나 선교사의 재임 기간이 단기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그럴 경우 결국 사역이 중단되거나 방기되는 경우가 있다. 무릇 모든 좋은 일은 순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선교 사역도 마찬가지다. 단기선교마저도 장기선교라는 틀 안에 있을 때 의의를 갖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장의 단계-

 

선교사는 현장에서 사역만 하는 일꾼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종교사역자로서, 평생 경력직을 가진 전문인으로서 인격, 신앙, 사역, 세 가지 분야 모두에 있어서 성장이 필요하다. 이러한 성장이 없으면 선교사는 자칫 시대착오적인 고집불통, 독선의 화신, 용도 폐기 대상이 될 수 있다. 선교사와 관련된 기록들을 보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화신으로 기대되는물론 지나친 기대 역시 문제지만 선교사가 막상 괴팍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이게 된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바로 선교사의 성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가 균형 있게 성장을 계속해나가는 것은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 성공의 관건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선교사 자신은 물론 파송 단체 및 후원 단체가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체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선교사 재교육이 시행되고 있지만 주로 안식년 프로그램이나 선교지의 집중 프로그램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이런 시도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지만 선교사의 성장은 단순히 그런 단기적인 프로그램으로 해결될 수 없는 전인적이고 전반적인 문제로서 평생에 걸친 관심이 필요하다. 선교사의 인격 및 인간관계 개발 프로그램, 정기적인 카운슬링, 사역 컨설팅, 선교 동향, 방법론, 사역 종류 등 경신 전반적인 소속선교사 관리member care 체제가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안식년의 단계-

 

안식년의 필요성은 이미 입증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긍정적인 안식년 경험은 다음 사역 기간을 위한 활기를 제공한다. 따라서 선교사의 안식년 제도가 교계나 사회의 다른 분야에까지 파급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안식년 역시 문젯거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첫째, 안식년이 선교사의 일생에 위기가 될 수 있다.

 

즉 안식년 기간 동안 파송 단체나 후원 단체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심지어 끊어질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파송 단체나 후원 단체가 안식년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거나 필요성을 이해하면서도 달가워하지 않을 경우가 있다.


혹은 후원을 중단하면서, 사역 기간보다 안식년이 문제가 적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선교사 입장에서는 이것처럼 곤란한 것도 없다. 육적으로 심적으로 쉬어야 할 때, 큰 충격을 받게 되어 안식년이 아닌 ‘안 쉴 년’이 될 경우가 있다. 더구나 안식년이 시작되면서 후원이 중단될 경우, 안식년부터 후원을 시작하는 후원 단체를 찾기란 매우 어려워서 안식년 내내 경제적 고통을 겪기도 한다. 반대로 선교사가 안식년 후에 선교지로 돌아갈 계획이 없으면서도 안식년 동안 후원을 받을 경우, 선교사와 파송 단체 및 후원 단체 간의 분쟁을 낳고, 선교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둘째, 안식년을 어디서 갖는가도 예민한 문제다.

 

파송 단체나 후원 단체는 선교사가 본국에서 안식년을 가지면서 소위 안식년 사역을 하기를 선호하는 한편, 선교사는 안식년을 외국을 경험하거나 외국에서 공부하는 기회로 삼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허심탄회하게 대화하여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여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인 면에서 쉽지 않다.

 

셋째, 안식년이 몇 차례 계속되다 보면 특별한 문제가 없더라도 선교 후원이 중단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경우 후원이 주로 인맥을 통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후원을 결정할 수 있는 담임 목회자가 주로 50대 정도라면 후원받고 나가는 선교사는 대개 30대 정도로 20년 정도의 연령 차이가 있다. 따라서 선교사가 평생토록 사역할 경우, 그 중간쯤 후원 교회 목사가 은퇴하고 이로 인하여 후원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은데 선교사는 이런 상황을 예상해야 한다.


넷째, 안식년을 누구를 위해서 보낼 것인가도 문제가 된다.

 

자신을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혹은 그동안 헤어져있던 부모를 위해서? 선교사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관계에 대한 요구를 균형 있게 배려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미리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 구성원의 나이가 달라짐에 따라 안식년 계획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다섯째, 안식년에 대한 분명한 계획이 없을 경우, 새로운 상황 가운데서 선교사직을 그만 두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안식년을 전후하여 중년기 위기를 맞을 경우 중도 탈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 선교사는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고, 어쩌면 그런 변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선교사가 평생을 헌신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재고의 기회를 놓쳐 부득이하게 선교지를 지킨다면 이것 역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선교사가 선교사직을 중도에 그만두는 것을 무조건 중도탈락이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교정할 필요가 있다.

은퇴의 단계-

 

선교사가 은퇴를 한다는 것은 영광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교회의 세계 선교가 활성화된 지도 벌써 한 세대가 되었고, 최근에 선교사 은퇴 대책에 대한 논의가 거듭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로서 이것이 해결될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첫째, 급한 불격인 선교지의 사역에 있어서도 협력과 조직적인 대처가 부족한 판국에, 당사자들을 제외한 일반인들에게 절실하지 않은 선교사의 은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기란 쉽지 않다. 아직은 선교사 본인이나 기타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선교사의 은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특히 식민시대에는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은퇴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비자 등의 문제로 선교사가 현지에서 은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선교지 재산 문제가 불거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본국으로 오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한국 선교사의 경우 영어나 다른 언어로 공부하는 경우가 많아 외국으로 진출하는 예도 많다. 선교사 자녀들이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반드시 은퇴 장소의 대안이 되지는 않는다. 여하튼 선교사가 은퇴할 즈음이면, 한국의 친지들은 이미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살아남은 자가 많지 않을 수 있다. 더구나 정년퇴직한 선교사들은 독특한 문화를 가진 집단으로 이런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둘째, 만일 현 단계에서 파송 단체가 선교사 은퇴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이 문제를 선교사가 스스로 해결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연금, 보험 문제 등을 점검해주고, 한국의 급변하는 주택 정책을 잘 파악하여 선교사들이 거처를 마련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셋째, 한국 교회가 선교사 은퇴 문제를 적극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처럼 한국 교회의 세계 선교가 급속도로 확장될 경우, 과연 한국 교회가 그것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있는가도 고려해야 한다.

선교사 일생의 특별한 문제


선교사 일생의 보편적인 과정 이외에 특별한 과정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선교사들의 중도 탈락률이 높은 만큼 선교사의 평생 경력직이란 차원을 중시하는 한편 선교사직을 임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시각도 요청된다.

 

일정 기간의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고, 임기를 마칠 경우 재계약하거나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수의 중도 탈락자가 배출될 것이다.


한때 선교학자들이 세계선교사들의 2/3 가 세계 선교에 참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2/3세계선교사들은 현장 적응력이 높고 경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추세를 보면, 2/3세계선교사들도 중도 탈락률이 높고, 어떤 경우는 서구선교사들보다 더 높다. 그러나 목사직과 마찬가지로 선교사는 전직이나 사역 변경이 어렵고, 중도 탈락자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둘째, 이런 맥락에서 선교사의 평생 경력 관리career management를 해주는 것도 파송 단체나 후원 단체의 새로운 사역으로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

 

특히 귀국하여 사역하기로 한 선교사의 경우, 그들의 국내 재적응에 도움을 주는 것도 개발되어야 할 부분이다. 선교사들이 국내에서 사역할 경우, 선교지의 경험을 본국에 반영하는 역선교mission in reverse의 가능성이 있고, 나아가 한국 교회의 갱신에도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선교사들이 목회를 할 경우, 오늘날 부각되는 개념인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를 구현하는 데 장점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역설적으로, 중도탈락자가 많아진다는 것은 선교사로 재기 혹은 회복하는 경우도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위 선교사 회복restoration of missionaries 문제인데, 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필요하다.


셋째, 오늘날처럼 교통이 발달되고 지구촌이 된 상황에서는 선교사가 평생 사역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역지는 바뀔 수 있다.

 

선교사 재배치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나 이런 추세가 늘고 있고, 이것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것이 선교사 자신이나 선교에 유익할 경우가 많을 것이다. 넷째, 오늘날 부각되는 개념 중 하나가 노년층 선교사silver missionary다. 이 개념은 고유한 장점이 있지만, 선교사직의 평생 경력직이란 기본틀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노년층 선교사는 단기선교의 특별한 형태 혹은 늦게 시작된 장기선교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만일 노년층 선교사들이 선교지의 기존의 맥락을 존중하고, 먼저 거기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신들의 고유한 경륜을 발휘한다면, 오늘날 노년층 선교사와 장기선교사 간의 새로운 분쟁 현상도 방지하고, 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선교사 멘토와 세대 교체


선교사의 평생 경력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선교사 멘토가 필요하다. 먼저 멘토를 구하고, 또한 멘토가 되어줌으로써 선교사의 일생을 함께 걸어가는데 서로 힘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여러 차례 다른 선교사들을 동료라고 불렀다. 곧 선교사의 동료의식을 강조한 것이다. 더구나 선교사들이 당대에 선교사직의 평생 경력직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선교사직이 세대를 넘어서 계속되는 것이다. 바울은 평생 선교사였을 뿐 아니라 새로운 선교사 세대를 주목하고, 발굴하고, 훈련하고, 세워주고, 동역자로 만들었다. 나아가서 “네디모데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바울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고 권고하면서, 믿음의 4대까지 말하고 있다. 오늘 한국 교회의 세계 선교 현실은 어떠한가?

|글/안교성 선교사
|출처/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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