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써야 하는 세계 기독교사’(2)
부제 -서양 사상사의 재해석과 기독교-
- 2006년 韓國크리스찬 學術文學賞 著述大賞 作 -
글/심 상용 (월드크리스챤성경학연구소 소장)
제 2제 기독교회사의 운명을 바꾼 세 문명과의 만남
1. 기독교회사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 세 문명과의 만남
윌프레드 스미스(W. C. Smith)는 기독교 역사에서 원시초대교회 이후 기독교의 운명을 결정하고 기독교사에 큰 역사적 전환점이 된 역사적 사건이 된 대표적인 문명과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만남을 지적하는데 처음은 희랍문명과의 만난이었고 두 번째는 르네상스와 그 이후의 근대 문명과의 만남이었고, 마지막 세 번째는 세계종교와의 만남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윌프레드 스미스가 지적한 이 세 만남은, 기독교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으며 기독교는 이 만남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기독교는 이 만남들을 통하여 어떤 운명을 맞이 하였는가? 물론 기독교 역사는 이 만남들을 별로 비중 있게 다루지 않고 다만 어렴풋이 아주 엷게 스쳐지나가는 정도로 취급할 뿐만 아니라 이들과의 만남을 주목할 만한 그렇게 중요한 만남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들과의 역사적 관계를 아주 경미하게 다룰 뿐만 아니라 아예 무시하고 지나가는 경향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교회 역사는 일편률적으로 예루살렘에서 소아시아로 그리고 로마로 서유럽으로 미국으로, 한국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노라고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이 세 문명과의 만남은 별로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도 않고 그 내막까지 다룰 필요성도 이유도 없는 것처럼 단지 교회의 역사적 흐름을 개괄적으로 취급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다분하다.
그 결과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실한 것처럼, 분명하지 않은 것을 분명한 것처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교회사적 진실 가운데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을 빼놓고 더하지 말아야할 것을 더함으로 진정으로 알아야 할 사실에 대하여 너무도 많은 사실들을 왜곡하고 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2. 석학들이 던지는 기독교 역사에 대한 세 가지 의문점
세계적인 석학들은 초기 기독교 역사에 대하여 다음 세 가지 의문점을 던진다.
1) ‘애매한 채로 남아 있는 초기 기독교 기원’에 관한 의문점
첫째는 ‘유대교와 다른 하나의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기원에 관한 역사는, 학자들의 세심(細心)하고 열성적인 연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매한 채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기원이 예수 자신의 구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죽은 직후 어떤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발전되고 진흥된 예수에 관한 사상에 있음은 확실하다’고 역사철학자 람프레히트(P. Lamprecht)는 기독교의 역사적 기원에 대하여 의구심을 던져 주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람프레히트의 ‘여전히 애매한 채로 남아 있다’는 지적은 곧 기독교 기원에 관한 의문을 우리는 정확히 이해하여할 필요가 있다. 그가 지적한 애매한 것이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와 마가의 다락방에 대한 원시초대교회의 기원에 대한 의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람프레히트가 지적한 ‘여전히 애매한 채로 남아 있는 기독교의 기원에 관한 역사’란 복음이 로마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하고 예루살렘을 떠난 이후 서아시아 지역을 거쳐 로마로 들어가 로마 교회가 기득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는 과정과 그 이후에 전개되는 소위 가톨릭의 역사적 과정 즉 가톨릭에 의해 구형된 정통이라는 기독교의 형성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람프레히트가 지적한 ‘여전히 애매한 채로 남아 있다’는 역사는 예루살렘에서의 기독교 역사의 기원이 애매한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이후 소위 정통이라고 자랑하는 로마 가톨릭이 주도적인 기독교로 자리 잡게 되는 형성과정에 대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람프레히트는 두 가지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전문적인 학자들이 그렇게 열정적이고 세심하고 철저히 연구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여전히 애매한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학자들이 이 부분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수많은 의문점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과 이 의문점들은 규명되지 아니한 채 여전히 엄청난 의혹에 둘러 싸여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때 형성된 기독교는 ‘예수 자신의 구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죽은 직후 어떤 다름 사람들에 의하여 발전되고 진흥된 예수에 관한 사상에 있음은 확실하다’는 의구심 속에 구형된 기독교라는 사실이다. 람프레히트의 이 지적은 많은 사실이 사실 그대로 드러나지 아니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중요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이 같은 언급은 원시초대교회라는 원시기독교와 로마 가톨릭에 의해 새로이 구형된 로마 가톨릭 기독교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예수 자신의 구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죽은 직후 어떤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발전되고 진흥된 예수에 관한 사상에 있음은 확실하다’는 것에서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 하나는 ‘예수 자신의 구상에 있는 것과 다른 하나는 ’예수가 죽은 직후 어떤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발전되고 진흥된 예수에 관한 사상‘에 관한 전자와 다른 가톨릭 기독교 사상에 의한 기독교이다.
지금까지의 기독교사는 이 양자가 동일한 것으로 일괄적으로 취급하여 말하고 있지만 이 양자의 기독교 즉 예루살렘의 원시 초대교회라는 원시기독교와 후자의 가톨이 구형한 기독교 사이에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함에도 이 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사상의 차이를 아직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전자의 예수 자신이 구상에 있는 것과 후자의 예수 이후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로마 가톨릭을 만든 사람들의 사상이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양자의 기독교가 어떤 관계에 있으며 과연 ‘예수 자신의 구상한 원시초대교회의 원시기독교와 후자의 예수 이후의 어떤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발전되고 진흥된 예수에 관한 사상으로 만들어진 가톨릭이라는 기독교에 의한 기독교가 동일한 사상의 기독교냐고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에 하나, 양자의 기독교가 동일한 기독교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전혀 다른 기독교라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또한 우리는 어떤 기독교를 따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이 던져질 수 있다. 만약 서로 다르다면 자신은 과연 어떠한 기독교를 다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또한 양자가 서로 다른 별개의 기독교라면 오늘날의 기독교는 어느 것을 따르고 있는 기독교인가? 과연 전자인가 후자인가?
더 나아가, 양자 의 기독교가 동일한 것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반대로 서로 다른 기독교라면 후자의 기독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그리고 오늘날 서구에서 기독교가 죽었는데 여기서 죽은 기독교는 전자의 예수가 구상한 기독교가 죽었는가 아니면 후자의 다른 사람들이 발전시키고 진흥시킨 로마 가톨릭이라는 기독교가 죽은 것인가?
여기에 대한 기독교내에서의 논의는 서두에서 람프레히트의 지적한 대로 ‘애매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에서 보았듯이 아무런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2) 해결되지 않는 구름으로 둘러 싸여 있는 정통기독교라고 자처하는 초기기독교(로마 가톨릭)사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 Gibbon)은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교회사의 자료가 부족하고 의문투성이어서 초기 교회를 감싸고 있는 구름을 좀처럼 벗기기 힘들다’고 실토하였다.
한마디로 정의해서 기독교는 ‘의문투성이의 기독교’라는 것이다. 물론 에드워드 기번이 말한 의문투성이의 기독교란 앞서 람프레히트가 지적한 예루살렘에 있었던 예수가 구상하고 진행되던 원시 기독교를 말하기 보다는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에서 귀착된 로마 가톨릭의 형성과정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여기에 대한 역사적 내막을 잠시 살펴보고 나갈 필요가 있다. 흔히 성경에서 말하는 로마 교회 즉 바울이 말한 로마 교회와 로마 가톨릭은 흔히 같은 교회로 시작하기에 같은 것으로 간주하고 동일한 역사로 기록하지만 역사적 내막을 살펴보면 바울이 말한 양자의 로마교회는 그 교회적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바울이 말한 로마교회는 AD100년 이전에 원시기독교의 연장선상에서의 로마교회를 말한다. 그러나 AD 70년 이후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후 교회사에는 서서히 소리 없이 큰 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직계 제자들이 모두 순교하고 AD 100년이 넘어서면서부터 교회의 주도권이 점차적으로 로마 중심의 기독교로 뒤바뀌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교회의 주도권 경쟁에서 AD 135년에 로마교회의 감독 빅토르가 소아시아의 교회 지도자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갑을 이단으로 내치면서 사실상 기독교회의 주도권은 완전히 로마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로마교회가 단순히 교회의 주도권을 로마에 넘겨주었다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이미 로마 교회에는 예루살렘과 무관한 로마 출신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고 그들은 예루살렘이나 소아시아의 원시초대교회의 사상이나 신앙관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로마교회 안에서는 복음을 순수한 복음적 신앙관과 세계관 그 자체가 아니라 로마철학으로 변개시키는 작업이 진작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작업은 소위 로마출신의 교인들로 채워지고 소아시아의 지도자 폴립갑을 이단으로 내치면서 소아시아 교회들의 영향력이 차단된 로마교회(이미 로마 가톨릭이 생성되고 있었음)안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에드워드 기번이 ‘교회사의 자료가 부족하고 의문투성이’라는 말은 로마 교회로 일컬어지는 로마 가톨릭은 국가 권력까지 장악하게 된 이후 로마 철학이나 사상을 기독교화 시킨 이후 그 자료들을 철저하게 파괴시켜 나갔고 그 근거들을 광범위하게 소멸시켜 나갔다. 광범위 하게 분포되어져 있던 자료들은 물론 로마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 종교가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추방하고 파괴시켜 아예 족적의 근거들을 모두 제거하고 씨를 말려 나갔다.
로마 가톨릭이 이를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시켰는지 현대 대다수의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조차 그 진상을 찾아 볼 수 없을 만치 완벽하게 제거시켜 놓은 것이다. 그 결과, 에드워드 기번과 같은 대학자들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없어 ‘교회사의 자료가 부족하고 의문투성이어서 초기 교회를 감싸고 있는 구름을 좀처럼 벗기기 힘들다’고 하리만치 철저하게 없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로마의 전승적인 종교, 철학과 사상을 기독교화 시켜 놓았고 자신들의 신학이야말로 철학과 일치되는 유일한 계시종교라고 외쳐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서술하기로 하고 이로 말미암아 예수가 구상한 사상이 아닌 로마 가톨릭에 의한 기독교의 변조는 전혀 다른 기독교로 바뀌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기독교의 안방주인으로 들어앉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예수 자신의 구상에 있는 것과 전혀 무관한 기독교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들어앉아 기독교를 호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입장에서는 남의 집에다 자기 페인트칠 해 놓고 자기 집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과 같은 꼴이었고 집 주인의 입장에서는 자기 집에다 흰색의 페인트를 칠해 놓고 ‘여기가 백악관이다’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꼴이었다. 그러나 이 터무니없는 주장은 사실로 받아 들여졌고 그것이 역사가 된 것이다.
교활한 역사의 조작이었고, 터무니없는 위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있는 당장의 방법이 없는 까닭에 수많은 세월이 지나지도 여기에 대하여 누구 한사람이 올바르게 말한 바도 없으며 그 진상을 사실대로 밝혀내고 말해진 바가 없었다.
예수가 구상한 것과 전혀 무관한 사상이, 예루살렘의 원시 초대기독교회와 무관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고 들어앉아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세월이 지나 굴러온 돌에 이끼가 끼고 연륜이 쌓이다보니 사람들은 박힌 돌은 어디로 사라진지 존재 자체도 모르고 굴러온 돌을 보고 저것이야말로 정통이구나 하고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폴 카루스(Paul Carrus)는 ‘안타까운 점은, 기독교 성직자들이 보여준 광신이 다른 종교적 열망의 자취들을 모두 쓸어버려, 오직 깨진 파편만을 군데군데 넘겨주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기독교와 유사함 때문에, 또 일부는 둘 사이의 차이점 때문에, 역사가들에게는 그 파편들조차 몹시 흥미롭게 여겨진다.’고 하였다.
현대 기독교는 그 깨진 파편마저도 무시해 버린 채 예수가 구상한 것과 전혀 무관한 사상의 로마의 전통종교와 철학이라는 패러다임이 마치 예수가 구상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막에 대한 사실을 확인조차 거부한 채 그것이 동일한 것이라는 전제하에 모조품을 내세워 진품처럼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3) 기독교는 가톨릭 형성 초기로 되돌아 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언제 어디서 왜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조작하고 왜곡했는가에 대한 실상을 밝힐 이유 있어 서양사학자 크리인 브린톤(Crane Brinton)은, ‘그리스도교가 성장하고 조직됨에 있어 그것은 그리스 -로마의 세계의 문명이 활기 있게 생명을 지녔던 시기의 마지막 몇 세기 동안의 불가결한 요소였다. 그 때의 그리스도교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그리스도교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성장하고 조직됨에 --- 그리스-로마의 불가결한 요소‘가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과 예수가 구상한 것 곧 예루살렘에서의 원시 기독교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이라는 의문의 기독교가 태동되고 발전되기 시작한 당시로 돌아가, 이에 대한 로마 가톨릭이라는 기독교의 태동의 진정한 단초들을 확인하지 아니하고서는 우리는 정통의 원조라고 하는 로마 가톨릭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에 대한 의문을 지워 버릴 수가 없다.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은 로마 가톨릭이라는 기독교는 그리스 -로마의 세계의 불가결한 요소들을 근간으로 세워진 종교 체라는 사실이다. 이 집에 로마인들이 자기 집에 성경이라는 페인트를 칠해 놓고 그것이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구상한 것과 동일한 것이라는 주장은 조작된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와 ‘어’가 다른데 하물며 본질이 서로 다른 예수가 구상한 사상과 이교도들의 그리스-로마의 종교와 철학에 성경으로 도배해 놓고 그것을 예수의 사상이라고 조작한 문제의 조작체가 동일하다고 선전하는 것은 역사를 기만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한 구별을 위해서 우리가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할 영역의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들도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사실 또한 그러하며 우리는 표면적으로 보는 기독교 역사의 내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음모와 역사적 조작이 숨겨져 있는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우리가 전달받은 기독교 역사는 그리스-로마의 전통적인 종교와 철학사상위에 온통 성경으로 도배해 놓고, 그것이 예수가 구상한 사상이라고 선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과 복음을 왜곡하는 기만 사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까지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전자의 예수가 구상한 원시초대교회의 원시 기독교와 후자의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전되고 진흥된 로마 가톨릭 기독교가 동일하다는 전제하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오류를 전제로 가리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 3장, 예고 - ‘로마를 정복한 기독교 재정복을 당한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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