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선교사의 역할과 필요성
최근 여선교사의 활동범위는 증가하고 그에 따른 여선교사의 숫자도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선교지에서 여성의 숫자가 2/3를 차지할 만큼 여선교사의 비중은 그만큼 크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여선교사에 있어서도 그 규모면에서 질적,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였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현재의 급성장한 한국교회의 원동력이 되었던 한국의 초기 서양선교사들의 사역 가운데 특히 교육과 의료를 통한 선교사역에 대해서 살펴보고 한국 여선교사들이 세계선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교육을 통한 서양 여선교사의 활동
한국 교회사에서 개화기의 복음의 수용도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매우 컸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서양 여선교사들의 활동과 한국 여성들의 사회적인 위치를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당시 한국 여성들의 위치란 남성들에 의해 멸시, 천대를 받으며 소외된 처지에 놓여있었다. 여성들에게는 배움의 기회는 커녕 오직 가문을 계승할 아들을 낳는 의무만이 존재할 뿐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인격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하는 때였다. 한국의 여성은 항상 희생의 대상이었다. 한국의 가정에서는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모든 일이 남성위주로 진행되었다. 더더욱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던 과거 한국의 대가족제도 속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배워야 된다는 생각조차 갖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양선교사들의 눈에 비치는 한국의 여성은 가장 시급한 선교의 대상이 되었다. 서양 여선교사들은 우선적으로 소외되고 억눌렸던 한국 여성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통해 자유의 기쁨을 찾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바로 교육을 통한 복음전도였다.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글을 가르치고, 이름이 없는 여성들에게는 이름을 지어주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그로 인해 한국여성들에게 있어 기독교의 복음은 획기적인 생의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즉 하나님 안에서는 남녀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니 복음을 통해 해방의 빛을 맛본 한국교회 처음 여성들은 과거 자신의 모습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여성들에게 새생명을 찾아주고 싶은 욕망이 컸던 것이다.
한국교회의 초기 서양 여선교사 가운데 교육을 통해 복음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루었던 대표적인 인물로는 스크랜톤(M.F. Scranton) 여사를 들 수 있다. 현재의 이화여자대학교의 전신인 '이화학당'을 통해 주기도문, 찬송, 기도 등 예배의식에 중점을 두는 것은 물론 영어와 산수등 일반과목를 가르쳤다. 교육사업을 통한 한국 여성들을 위한 선교사역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는 오늘날의 한국여성 교육에도 큰 공헌을 한 셈이다. 처음에는 학교가 학생들을 찾아 거리에 나서야 했지만 후에는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를 찾아 올 정도였다.
그러나 전통적인 유교관념이 팽배한 당시 한국의 사회적인 상황에서 조선의 아낙네들은 서양 여선교사들이 인도하는 전도집회나 한글학교에 참석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가족이나 친지의 냉대와 핍박을 각오하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중에 한국교회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전삼덕부인은 '남녀칠세 부동석'이 유난히 강조되던 전통사회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그 세례의식은 휘장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졌다. 휘장의 한 가운데는 머리를 내밀만한 구멍을 내고 감격의 세례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전삼덕은 얼마후에 두 며느리까지 세례를 받게 하고 4-5년이 지난 후에는 아들의 도움으로 교회를 개척할 정도로 믿음이 성장하였다.
*의료를 통한 서양 여선교사들의 활동
구한말 한국의 모습은 기아와 빈곤과 질병에 허덕이던 때였다. 따라서 서양 선교사들은 직접적인 복음 사역보다는 교육과 의료를 통한 간접사역에 주력하였다. 서양 여선교사 가운데 의교선교를 통해 한국의 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인물,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은 1890년 26세의 처녀 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1892년 한국의 의료 선교사였던 홀 의사와 결혼하였다. 홀의사가 죽은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1897년 다시 한국에 돌아와 제일먼저 시작한 것이 기홀병원의 개설이었다. 이것은 평양에서 제일 먼저 개설된 서양식 병원이다. 로제타여사의 중요한 의료사역중에 하나는 한국여성을 의사로 만드는 일이었다. 바로 김점동이란 인물을 한국 최초의 여의사로 만든 주인공이다. 로제타여사는 의료사역을 하는 동시에 맹인교육과 농아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고 '점자사용법'을 이용하여 한국의 맞춤법에 맞추어서 점자법'을 만들어 한국 맹인들을 위해 기도문, 십계명, 초등교과서등을 만들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맹인점자교육이었다. 또한 로제트여사는 농아교육을 창시, 1907년 한국최초의 귀머거리 학교를 세우는 등 복음사역만이 아닌 사회적으로도 큰 업적을 남겼다.
1950년대 한국선교를 위해 고아들을 돌보며 구제사역을 감당했던 서양 여선교사 위더슨(Widdowson)여사는 일평생 한국인을 위해 살았다. 그녀는 한국에서도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나라 영국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다. 어디 그 뿐이랴, 루비 켄디릭(Ruby Kendrick; 1883-1908) 선교사는 한국에 온 지 6개월만에 풍토병으로 사망하였는데 양화진에 있는 그녀의 묘비에는 "만일 나에게 남에게 줄 수 있는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한국이 가져야 마땅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 초기 서양 여선교사들은 그 시대의 요구에 걸맞는 교육사업과 의료사역을 통해서 한국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였다. 복음을 통해 새 생명을 얻은 한국교회 처음 여성들은 열심히 기도했고 그 결과 오늘의 한국교회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다.
*한국 여선교사들의 과제
이제 한국교회 여선교사들이 세계선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자. 아직도 여전히 구한말 한국의 여성들처럼 남성에 의해 억압당하고 천대받는 지역들이 많다. 이와같은 지역의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이 소외된 상태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아픔들을 한국 여성 기독교인들은 이미 경험한 바요, 그 상처도 이미 치유되었다. 먼저 치유받은 자가 치유를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다가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다가가서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함께 생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그 사랑의 빚을 갚을 때이다. 한국 여선교사들은 보다 헌신적이며 희생적이고 정이 많기 때문에 현지인들과 넓게 사귀게 되므로 복음을 전하기에 아주 효과적이며 기도에 강하고 영성도 깊어 현지의 적응력도 좋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한국여성들은 유교사상에 눌려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던 때의 아픔과 천대받고 멸시 받았던 때의 슬픔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남녀 둘 중 하나가 희생을 하여야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여자의 몫이어야 했다. 이런 과거의 경험을 통해 남여 유별이 유난히 강조되는 복음이 제한된 지역인, 중국, 몽골 그리고 모슬렘 같은 곳에서 서양선교사들에 비해 선교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여선교사들은 서양 여성선교사들에 비해 독립성이약하고 일의 추진력도 강하지 못하다. 또한 총회나 선교기관의 확실한 인준과 파송을 거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체계적인 훈련이 없이 현지로 파송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재 여선교사들은 전체 선교사들의 약 65% 를 차지하지만 대부분은 평신도이다. 따라서 이들이 가지는 제한성을 이해하고 그들이 효과적으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충분한 지원과 후원이 있어야 하겠다.
맺는 말
한국의 최초 여선교사 최나오미가 시베리아 불라디보스톡으로 파송된 1923년을 시작으로 한국 여선교사들은 국내는 물론 세계 복음화를 위해 많은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지금도 중국과 북한을 비롯한 제한받는 지역에서 말없이 선교하고 있는 많은 여선교사들을 누가 기억하고 기도할 것인가? 여성우월주위에 빠져 선교지에 나가는 자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감에 불타 선교지에 나간 많은 여선교사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여선교사를 필요로 하는 선교지에 한국의 많은 헌신된 여선교사들이 보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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