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여선교사의 정체성 (이재진)

수호천사1 2010. 2. 6. 12:55

여선교사의 정체성

 

이재진/인도네시아 성경번역선교사
           GBT선교사 자녀부사역
           현재 위클리프 국제본부     

 

 

우리 가정이 선교사 훈련을 받기 위해 한국을 떠난 80년대 초 만해도 ‘선교’라는 단어는 그리 친숙했던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저희를 파송 했던 교회는 그 당시 이미 선교에 눈이 뜨인 교회라고 소문이 난 교회였지만 ‘선교’란 곧 ‘고난’과 함께 떠올릴 정도로 제한된 생각을 갖고 있는 성도들이 많아서 였는지 올망졸망한 아이들 셋을 데리고 떠나는 저희 가정을 보며 무척이나 마음 아파 하셨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지금도 선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틀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자기가 살던 곳에서 떠나 새로운 지역으로 정착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에 우리는 고향을 떠나는 이들에게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 어떻게 살겠노’라고 말하며 자리를 옮기는 이들의 힘듦을 위로하곤 합니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 국내여행만큼 잦은 외국여행을 하는 시대에 살다보면 거처를 옮기는 것은 그리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여행이 아닌 ‘삶’을 나누어야 하는 선교사에게 있어서는 그리 쉬운 문제만은 아님을 선교사라면 누구나 모두 직간접으로 경험하게 될 것 입니다.

고난이란 단어가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면 ‘거쳐야 할 관문’이란 표현은 어떨까요? 저희 가정이 인도네시아로 들어가는데 제일 먼저 부딪힌 관문은 비자 였습니다. 4개월의 정글적응훈련을 마친 후에 당연히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인도네시아에 들어갈 수가 없어 1년 정도의 시간을 훈련지였던 파푸아뉴기니에서 기다리다 못해 결국은 일년 반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때의 황당함은 지금도 저희들 기억 속에 선연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비자를 받고 인도네시아로 들어가게 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명세계에 익숙해져있던 저희에게 문명의 이기가 부족한 곳에서의 삶이 스트레스로 다가올 만큼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극복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문명의 이기가 발달한 지역에서는 접할 수 없는 특별한 하나님의 손길을 깊이, 그리고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동안 저를 힘들게 했던 부분은 기다림도, 선교지에서의 삶도 아닌 선교사로서의 정체성 이었습니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한다면 여선교사, 혹은 부인선교사로서의 정체성 문제였습니다. 비록 그 당시 선교 초년생이었지만 선교사 훈련기간 동안 함께했던 여러 선배 여선교사들과의 교제를 통해 서서히 여선교사로서, 부인선교사로서의 위상을 생각해보며 나름대로 선교지에서의 생활에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즈음이었습니다. 굳이 여선교사라는 단어를 거론하고 강조할 만큼 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교사로서의 삶이 한 가정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로서만 사는 것과는 또 다른 삶이었기에 내 스스로에게 자신의 위치를 생각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그 당시 한국에서는 대부분 한 가정이 선교지로 나감에도 불구하고 부인의 존재는 그저 남편을 따라가는 존재로만 생각했던 때였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이나 심지어 가족들 까지도 ‘남편이야 소명을 받고 선교지로 나간다지만 너나 네 자식들은 무슨 고생이냐’라며 위로 아닌 위로의 말도 해 주시곤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경험은 단순히 제게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이 혼탁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로서의 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교사로서의 정체성 없이 사역을 한다면 비록 그 사역이 멋지게, 아름답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그 선교사 본인은 가슴앓이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사역을 중단하는 위기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여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남편이 확실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교지로 나갔다 할지라도 그 부인에게 선교사로서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여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이 없다면 그 사역의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르심에 대한 분명함이 없다면 우리는 분명해 질 때까지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를 기도로, 물질로 도우시는 성도들 앞에 정직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부르심은 사람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입니다. 결혼 전부터 하나님이 선교사로 부르셨음을 확신하여 때로는 남편보다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더 확실히 부여잡은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선교에 대한 생각 없이 살아가다가 먼저 선교에 소명을 받은 남편 따라 선교지에 나갔다가 그곳에서 자신의 부르심을 확인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어떤 것이라도 이 부르심에 대한 확신, 여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가질 때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당당히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여성선교사의 사역은 너무 미비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것 같아, 아니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전혀 사역이라고 이름 부칠 만한 것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물론 아이들까지 현지어에 능숙해져 가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함을 발견할 때의 낙망감, 사역은 꽃을 피워 가는데도 어린 자녀들 때문에 사역의 헌신에 한계가 있을 때 느껴지는 좌절감. 그래서 때로는 선교지에서의 여성으로서의 존재가 너무나 보잘것없는 것 같아 암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으로 부르신 분은 내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곳으로 부르신 여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때에 여선교사만이 드릴 수 있는 아름다운 열매를 일궈 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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