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의 가장 무서운 적
, 나를 얽어매는 '자아’ (인도선교현장)
“LA는 선교사들의 무덤”이라는 말은 오래 전부터 선교사들 사이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표현이다. 자조(自嘲)와 회한(悔恨)이 섞인 푸념이다.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그 “땅 끝”에서 헌신하던 선교사들이 마침내 찾아들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땅 끝”, 그곳이 바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LA)라는 이야기다.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간단치가 않다. 단답(單答)형식으로 묻고 대답할 만큼 단순치가 않다는 말씀이다. 먼저 고려되어지는 이유는 선교사들의 자녀교육과 노후가 보장되지 못하는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에서 그에 대한 원인을 찾는 이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특별히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오지는 물론 동남아시아 러시아 등등 비 영어권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은 자녀교육에 어려움이 많은 편이다. 현지 학교에 입학, 부족언어를 익히며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대를 이어 제한된 그 지역의 소수의 그 부족들에게 선교하고자 하는 특별한 소명 없이는 불가능할 수 밖에 없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대개는 그 지역이나 인근지역에 있는, 영어를 위주로 하고 있는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이나 미국인학교(American School)에 들어가 공부하게 된다. 때로는 선교기관이나 선교사 자신들이 그들의 자녀교육을 위해 설립해 놓은 학교를 활용할 수 있다. 아니면 선교사 자신들이 자기 자녀들의 교육을 직접 맡기도 한다. 서양 선교사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선교사들에겐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조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쩔 수 없이 현지에서 알맞은 교육기관을 찾기 마련.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그럴만한 교육기관이 알맞은 곳에 있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비용이 너무 비싸기 마련. 할 수 없이 여러 가지로 여건이 좋은 미국 쪽으로 방향을 잡게되고 그 가운데 선정되어지는 적지(適地)가 바로 로스앤젤레스. 영어권이요 교포사회가 규모있게 형성돼 있어 주거환경이나 제반 여건이 세계 어느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좋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선교사들의 자녀들이 그곳에 모여들기 마련.
게다가 선교사들의 노후문제가 보장돼 있지 않은 것이 한국교회 현실이고 보면 어쩔 수 없이 자녀들을 먼저 보내 터전을 잡게된 LA가 후보지로 선정될 수밖에. 이래저래 한국국적의 선교사들이 그곳에 몰려들게 되고, 그러기에 “LA는 선교사들의 무덤”이라는 말이 자조 섞인 독백처럼 우리 선교사들 사이에 되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인도는 어떠한가? 예외가 아니다. 다만 영국 선교사들이 오랜전 부터 활동해오는 곳인지라 선교사들의 자녀교육을 위한 시설이 구비돼 있는 편이다. 지난번 서남아시아 한인선교사대회가 열렸던 벵갈로를 비롯, 뉴델리 봄베이 마드라스등 대도시에는 좋은 학교들이 많이 있다. 물론 영어로 공부할 수 있는 학교들이다. 인도가 영국의 통치를 3백년 가까이 받은 나라이기 때문에 아시아권에서는 영어교육이 가장 앞서가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학교입학이 힘들고 교육비가 비싼 것이 흠이긴 하지만 그것도 지역에 따라서는 교육환경이 좋으면서 비용이 싸게 먹히는 학교도 없지 않은 편이다.
하기야 인도가 어떤 나라인가.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가운데 하나 아닌가. 유구한 역사와 전통 속에서 형성된 찬란한 문화를 전수 보전, 자긍심을 갖고 세계 속에 군림하고 있는 나라가 인도요, 인도 민족 아니던가. 그들은 세계 어느 나라건 가는 곳마다 자신들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향유하며 살고 있다. 필자가 총회파송 선교사로 영국 런던에서 사역할 때, 히드로 공항 가까운 사우스홀(Southall) 지역에서 사역했는데, 이곳은 인구 50여만명 가운데 90% 이상 인도인이었던 곳. 그들은 인도 전통 의상인 샤리를 입고, 카레를 먹고살기 때문에 온 동네가 울긋불긋한 인도 사람들 행렬과 카레 냄새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그래 영국 사람들 조차 이 지역은 영국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인도땅이요 “또 하나의 칼카타”(Another Calcutta)라고 부른다 했다. 그만큼 자긍심이 강하다는 얘기다. 다만 국민소득이 낮은 편이라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가 없을 뿐, 이미 원자탄을 보유한 나라요 노벨상 수상자를 6명이나 배출한 민족아니던가.
인도 땅에서 10년이 훨씬 넘도록 선교사역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이용범선교사 내외는 자녀교육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인도에는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들이 많이 있고, 학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아직도 선교사 자녀들에게는 입학에 우선권과 교육비까지도 할인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집 두 아들도 그런 현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큰 아들은 현재 미국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원에서 동양학을 전공, 박사과정에 있으며 작은 아들은 미국 오하이오주의 웨슬레대학교에서 경제학과 2학년을 마치고 귀국, 서부전선에서 군복무중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 아닐수 없습니다.”
“저희들의 경험에 따르면 인도선교에 있어서 자녀교육 문제와 비자문제, 사역지 선택, 사역계획등 모든 것이 인간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과 치밀한 준비, 훈련등을 갖췄다 해도 주님의 계획이 이와 틀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먼저 겸손히 주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그분의 뜻과 계획에 순종하는 것이 최상의 길이라 확신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모든 염려와 필요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아무런 대책 없이 그냥 보내시겠습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우리의 머리카락 까지 헤아리시는 주님께서 우리가 가야할 사역지와 자녀들이 다녀야 할 학교, 받아야 할 비자 등 선교사역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미리 예비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내 자신을 죽기까지 쳐서 복종시키며 주님께 1백% 백지로 우리들의 생애 전체를 맡겨드리는 믿음이 필수적이라고 믿습니다.
선교현장에서 사역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나 자신인 것을 날마다 경험합니다. 주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왔건만 선교현장에 까지 와서도 줄곧 나를 얽어매고 있는 자아(自我)가 나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더란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 자신들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글· 고무송
'선교(영원한사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선교의 핵심, 사람 (0) | 2010.02.06 |
---|---|
[스크랩] 선교사의 영성 (홍희국) (0) | 2010.02.06 |
[스크랩] 선교사의 사역을 감당하려면 (0) | 2010.02.06 |
[스크랩] KWMA, 선교사 위기관리 지침서 발표 (0) | 2010.02.06 |
[스크랩] 세계 호령하던 그룹 회장이 선교사된 사연 (0) | 2010.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