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다문화 사회의 도래와 이주민 선교 (김해성)

수호천사1 2010. 1. 26. 20:49

다문화 사회의 도래와 이주민 선교
한복협 12월 월례발표회 발제문 - 김해성 목사

 

 

법무부는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이 120만 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의 2%를 넘는 수치이다. 현재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출산율은 1.08명으로 전 세계 최저 출산율이다. 현재의 저 출산율이 지속될 경우 2300년에는 남한 인구가 5만 만 명 선으로 줄어들어 멸종단계에 이른다는 것이 학계의 보고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120만 외국인체류자는 조만간 500만 명, 천만 명 시대로 접어들 것이 분명하다. 

  2. 한편 최근 국제결혼 다문화가정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 국민 중 외국인과 혼인을 하는 국제결혼 다문화 가정이 13.6%에 이르기도 했고, 현재도 열 쌍 중 한 쌍은 무조건 외국인과의 혼인이며, 농촌 총각 10명 가운데 4명은 외국인 여성과 결혼을 하고 있다. 이들 다문화 가정에는 많은 자녀들이 태어나고 있고, 학교에 입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단일민족의 깃발도 내릴 때가 되었고. 다인종, 다민족시대, 다문화사회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3. 필자는 1980년 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28년이 넘도록 줄 곳 노동자선교에만 매달려 왔다. 공장에 취업하여 일하였지만 1년이 채 안되어 대학출신자라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였다. 한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산자교회를 개척하였고 노동 상담소를 개소하여 한국인노동자들의 노동문제를 지원하며 노동자 선교를 시작했다. 한편 목사로서 성남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일을 하게 되었고 노동문제와 인권문제의 전문가로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92년도에 건축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16층에서 추락하여 사망한 중국동포󰡐허순필󰡑씨와 팔이 절단된 필리핀사람 에리엘 갈락씨의 사건의 해결을 요청받았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지만 노동문제이고 인권문제였기에 어렵지 않게 해결을 해 줄 수 있었다. 허순필씨의 경우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8,880만원의 보상금을 받아 주는 등 소문이 나면서 가슴을 태우는 외국인노동자와 중국동포들이 찾아오게 되었고 그들을 만나면서 이들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게 되었다. 한국인들을 위하여 일하던 것에서 방향을 바꾸어 외국인노동자와 중국동포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들이 당한 불이익이나 인권문제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일을 하였다. 그래서 처음 설립한 것은 외국인노동자의 집이었고 인권, 노동문제를 전문적으로 상담을 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이들의 인권을 회복시키는 일도 큰 범위의 선교라는 판단에서였다. 

  4. 그런데 1년여 만에 나의 모든 활동은 온통 실패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었다. 예전 방글라데시 사람의 손목이 절단되었고 싸우다시피 해서 3천만 원을 받아 주었다. 귀국해서 고맙다는 편지가 왔는데 내용인즉슨 젊고 예쁜 여자를 하나 샀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부인과 자식이 있는데 말이다. 방글라데시 친구들을 불러 따졌더니 이슬람권에서는 경제력만 있으면 부인을 네 명까지 둘 수 있다는 대답이었다. 또 다른 이들은 보상금으로 공장을 만들고 악덕기업주가 되거나, 일도 하지 않고 놀기만 하다가 또 다시 한국에 초청해 달라고 편지를 하기도 한다. 보상받은 돈으로 마약에 빠지거나 술에 취해 폐인이 된 이들도 있다. 모든 일이 온통 실패라는 좌절감이었다. 한국에 와 있는 노동자들의 인권, 노동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줄 알고 상담소를 만들었는데 이는 언 발에 오줌을 누는 결과였다. 뒤늦게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도움만 주는 것의 참담한 실패를 맛보면서 어떻게 하면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할 수 있을까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결론은 복음을 선포하고 말씀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 도리임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5. 외국인노동자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각 나라별로 통역을 하다 보니 예배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언어가 다른 이들이 함께 모여 찬양과 기도를 하고, 말씀을 듣고 식사를 나누는 일은 초대교회 성령의 역사처럼 하나로 통일되는 체험이었다. 예배에 엄청난 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고, 자리가 없어 터져나갈 상황이 되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었다.(암 8:11) 이후 교회는 언어별로 나뉘게 되고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며 수도권지역의 여러 센터와 20개의 교회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외국인노동자들의 신앙생활이 궤도에 오르면서 한 번에 이 삼 백여 명 씩 세례를 받게 되었다. 성령체험을 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헌신하는 이들이 줄을 서게 되었다. 신학대학을 가고 싶고, 목사로, 선교사로 일을 하고 싶다는데 두드리는 신학대학마다 불법체류자는 받지 않는다며 거절을 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외국인과 동포를 위한 ‘세계선교신학대학’이었다.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영어, 동포 한국어 등 4개의 신학과가 만들어 졌다. 3년 과정으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도록 했다. 이들을 양성하여 파송할 수 있다면 세계선교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처음 6개 국가의 120여명이 입학을 했지만 상황은 쉽지 않았다. 일하며 공부하는 것도 어렵지만, 중도에 불법체류자라서 체포되고 추방되는 이들도 생겨나고 무서워서 오지 못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9년째 입학식이 있었고 6회의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생 중 일부는 현지로 파송되어 선교를 잘 감당하고 있고, 천만 원이면 현지에서 개척과 목회가 가능하다. 

  6. 외국인노동자들의 많은 상담을 해결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혼자서 열심히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법을 만들고 제도를 바꿔야 했다.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를 만들고 초대 회장의 총대를 메게 되었다. 주요사업은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는 일이었고, 서명운동, 캠페인을 벌이는데 법무부 출입국에서는 그러한 운동을 하지 말라는 전갈이 있었다. 이틀 뒤 출입국 직원들이 교회에 있는 성남외국인노동자의집 골목을 막고 단속을 시작했고 네팔인 환자 부부를 연행하였다. 사실 교회에 왔다가 체포되고 추방을 당한다는 소문이 나면 외국인들은 두려워 발길을 끊게 되고 외국인의 출입이 끊기면 그 교회나 선교회는 문을 닫아야만 한다. 우리는 교회까지 막아서서 단속을 하는 것은 성소침탈이자 선교방해 책동임을 지적하며 교우들과 법무부 차량을 막고 항의했다. 목사로서 교회를 지키는 것 또한 사명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이 투입되고 체포되어 특수공무집행 방해죄로 구속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2003년 7월 31일, ‘외국인근로자고용등에관한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되었고 고용허가제가 지금 외국인력제도의 근간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7. 한편 1999년 국회에서 ‘재외동포의 출입국 및 법적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이 제정되었다. 재외동포의 개념을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 등으로 규정했다. 국적은 1948년 정부수립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이전에 출국한 중국과 구 소련지역 동포 300만 명은 동포가 아니라는 법이었다. 농성을 했지만 통과를 막지 못했다. 이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우다가 순국한 안중근 의사나 윤동주 시인, 그들의 후손은 동포가 아니라는 것이고, 애국하지 말라는 법은 아닌가? 직후 성남중국동포의 집 3인이 청구인이 되어 헌법소원을 냈고 2001년 11월 헌법재판소는 재외동포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를 결정하였다. 이후 여러차례 한교협과 한기총에서의 대규모 농성의 결과 재외동포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2004년 2월 9일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대통령이 공포했다. 현재 법무부에서는 우선 ‘동포 방문취업제’를 추진하고 있고, 재외동포법의 적용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8. 현재 서울 구로구 가리봉에서 운영을 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은 이주민만을 받되, 진료와 검사, 입원과 수술까지 무료로 진행을 하고 있다. 매일 200여 명 씩 병원을 찾는 이주민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고 이들 모두가 결신을 하고 있다. 또 200여명이 머물고 있는 이주민 쉼터와 하루 세 끼를 무료로 제공하는 무료 급식소가 자리하고 있다. 헬프라인(1644-0644)는 20여명의 외국인 직원이 17개 언어로 통역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10개 언어로 신문을 발행하고 웹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노동상담소를 통해 이주민들이 겪는 많은 문제들을 무료로 상담을 하고 있기에 월 천여 명이 상담을 위해 찾아오고 있다. 한국어 교육과 컴퓨터 교육에 800여명의 외국인들이 교육을 받고 있고, 다문화복지센터에서는 어린이 집, 방과후 학교가 진행되고 있으며, 2010년 다문화 초중고등학교 개교를 위해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동포교회, 스리랑카교회를 비롯하여 여러 교회와 함께, 세계선교신학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9. 예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으로 한국사회와 교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리고 ‘해외선교를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하는 논쟁까지 매우 거세게 일어났다. 예수님께서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분부하셨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 땅 끝까지 이르러서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가정과 직장을 팽개치고 땅 끝에 가서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 그런데 현재 120만 명의 외국인체류자들이 한국에 거주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우리를 이 정도로 잘 살게 하시고, 외국인들도 함께 살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은 이 마지막 시대에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 있음을 나는 믿는다. 

  10. 현재 한국은 미국에 이어 해외선교사 파송 제 2위의 국가로서 2만여 명을 선교사로 보내고 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계에서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고, 순교자의 각오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들로서 존경받아 마땅한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제 1세계의 국가와 필리핀 등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선교사나 목사라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곧 체포와 추방, 투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토록 선교하고자 하는 나라와 지역의 사람들이 온통 한국에 와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게 하셨고, 새 역사를 만들어 가셨다. 예수님께서도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는 이들을 제자로 삼으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난 이들을 통해 새 역사를 펼쳐 가신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토록 많은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것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땅 끝에서 온 뭇 민족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으로서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세계선교의 새 지평이 우리 앞에 활짝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1. 선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권이 우리에게는 없다. ‘땅 끝까지 가라󰡑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한국을 이처럼 부요케 하시고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을 보내주셨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의 분포를 보면 이슬람권 국가들(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힌두권 국가들(인도, 네팔), 불교권 국가들(태국, 베트남, 미얀마. 스리랑카 등)이 있고 중국과 몽골, 구 소련지역의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등의 국가는 기독교에 대한 말살정책을 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온통 10/40 창 지역의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미전도 종족(너무 기독교 제국주의적인 표현이라서 타문화권, 타종교권으로 부르는 것이 좋겠음)들로서 이들이 한국에 와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들을 훈련시켜 선교사로 파송을 할 수 있다면 이는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효율적인 세계선교의 새로운 방법이 될 것이다. 이렇게 파송된 이들은 자신들의 모국어로 자국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바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촛대를 옮기시지는 아니할까 하는 염려가 있다. 

  12. 다문화 사회에서 이주민 선교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언어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선교해야 할 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이주민을 위해 헌신하며 선교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이주민 선교단체를 지원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 한편 더 나아가 농촌지역 교회는 노인 성도들이 돌아가시면 성도가 없어 교회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농촌교회는 국제결혼으로 와 있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선교에 나서야 한다. 농촌에 시집을 온 여성들과 남편, 자녀들에게 구제와 붕사를 하며 복음을 전하고 이들이 교회에 자리잡게 된다면 농촌교회가 사는 길은 아닐까? 요즈음 개척교회들은 몇 년을 버티다가 쓰라린 가슴을 안고 문을 닫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들도 나서서 무주공산이자 틈새시장인 외국인노동자나 중국과 구 소련지역 동포들,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을 향한 선교에 나서기를 요청 드린다. 이들도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사랑의 손길, 선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들을 통해 교회도 살고, 이들의 영혼도 구원하는 일거양득의 사건이 개척교회와 작은 교회를 살리는 비결이지 않을까? 대도시의 도심에 있는 대형 교회들도 이주민 선교에 나서야 한다. 어떤 이들은 서울 도심이나 부자지역 동네에 무슨 외국인이 있느냐고 묻는다. 예를 들어 서울의 강남. 서초, 송파 등 부자 지역의 가정부들은 거의 대부분이 중국동포 여성들이다. 또한 식당, 모텔, 간병인 등이 온통 중국동포 여성이라면 이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하다. 

  13. 이 땅의 이주민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사람들이다. 이주민을 향한 교회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 선교의 손길이 절실하게 요구되어 진다. 이주민을 향한 우리 교회의 관심과 접근은 ‘이웃사랑’이요, 이들을 훈련하고 파송하는 것은 ‘세계선교’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는 외국인노동자들, 중국과 구 소련지역 동포들, 국제결혼 다문화가정 구성원들, 난민 신청자들, 북한 이탈 주민들, 유학생들, 해외 공관원들, 상사 주재원 등 이주민들이 함께 살고 있고 다문화 사회를 이루기 시작을 하였다. 이제 이들을 사랑하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결과를 가져 올 이주민 선교에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다문화시대의 이주민선교를 통해 세계선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한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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