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 기도대학교 -4차원의 영적기도
제1장 기도의 자세
기도는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행위이며,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며,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감사하는 시간이며,
우리의 삶에서 가장 깨어있는 시간,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며, 나를 치료하는 시간이다.
1. 소극적(수동적) 기도
1) 의무감에서 하는 기도
2) 형식적, 기계적 기도
3) 기도 시간에만 하는 기도
4) 바쁜 일이 있으면 소홀히 하는 기도
5) 생각나는 부분을 기도
6) 답답함 때문에 하는 기도
7) 문제가 생기면 하는 기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소극적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은 기도에 관한 훈련을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기도의 기본보다는 기도의 방법론에 대해서만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과 같은 것들이다.
즉 진정 하나님 앞에 의미있는 기도보다, 오직 나를 위한 응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도훈련만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응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기도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지는 적극적 기도이어야 한다.
2. 적극적(능동적) 기도
1) 자발적으로 하는 기도: 자신도 모르게 하는 기도, 기도와 내가 일체화가 되는 기도.
2) 인격적인 교제를 위한 기도: 하나님과 나와의 인격적인 교제를 위한 기도.
3) 기도하는 시간이 즐겁다: 기도는 크리스챤에게 가장 즐거운 단어이다.
4) 기도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5) 마음으로 깊이 하나님과 만난다.
6) 항상 기도한다: 이성과 영성의 분리, 머리와 마음의 분리된 상태에서 영으로, 마음으로 늘 하는 기도.
3. 기도는 신앙생활의 활력소이며 삶의 원동력이 된다
기도는 영의 호흡이다.
공기 중의 산소를 호흡함으로 육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영적인 기도는 영-혼-육을 늘 새롭게,
강건하게 유지하게 하는 활력소이며, 삶의 원동력이 된다.
1) 신앙의 생활화
요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 하였삽나이다
신앙은 삶이다. 신앙과 삶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크리스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거나,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
오히려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변화시키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의 좋지 못한 영향력은 점점 더 강해진다.
세상은 점점 더 세속화되고, 더 추악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많은 크리스챤들이 현세적이며, 물질적이며
감각적인 세상에 살다가 자신도 모르게 세상에 끌려들어가서 비 신앙적 마음, 생각, 삶의 방식을 따르게 된다.
크리스챤이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으로 마음을 빼앗기게 됨으로
그들의 마음이 굳어지고 신앙과 삶이 서로 다른 2중적인 삶을 살게 된다.
이처럼 크리스챤이 세상의 영향력을 받게 되는 이유는 이들이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는 세상의 영향력을 밀어내는 힘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통로이다.
기도로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활력소를 끊임없이 받음으로 삶의 모든 부분에서 힘과 용기를 북돋고,
소망과 삶의 의욕과 의미와 가치가 풍요한 삶을 살아야 한다.
기도는 껍질뿐인 종교인을 풍성한 삶의 신앙인이 되게 한다.
현대 교회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기도의 문제이다.
기도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은 마치 호흡이 잘못된 것처럼 그것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부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2) 성직, 직분의 수행
직분자에게 기도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해져야 말씀도 전하고, 봉사도 하게 된다.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함이 있어야 한다.
삶이 하나님과 일치되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하나님과 일치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알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모르는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기보다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깊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르게 하고 깊이 하는 기도를 해야 내속에서 올라오는 인간적 생각과 수단을 다스릴 수 있고,
그래야 직분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있다.
이것은 오직 올바른 기도로써만 가능하다.
기도는 이 땅에서 하나님과 연결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통하여, 오직 기도로 속에서 솟아오르는 이성과 육성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갈 수 있다.
3) 마음의 평안과 기쁨
영의 기도를 통해서 내면의 세계에 존재하시는 성령님을 만남으로 평안, 위로, 기쁨의 마음을 소유하게 된다.
영적기도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바로 이 마음의 평안이다.
세상이 요동쳐도 내 마음은 세상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평안하게 된다.
크리스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는 다른 차원,
즉 천국이라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오는 영적인 힘을 가지고 세상의 파도를 제압하며 사는 사람이다.
몸은 세상에 있지만, 마음은 차원이 다른 곳, 즉 하늘에 두고 살아야 한다.
땅은 흔들리고 변하고 파도치지만 하늘은 그렇지 않다.
몸은 땅에 두고 살지만, 심령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있어야 한다.
제자들은 세상의 파도를 보고 마음도 흔들렸다. 마음에 세상의 파도를 담았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의 파도에 빠져 들어갔지만, 예수님은 마음의 평안함으로 이러한 현실의 파도를 제압하셨다.
세상을 이기는 큰 능력은 고요함, 평안함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인 힘이 우리에게 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한다. 기도로 하늘에서 오는 것, 즉 하나님의 평안으로 마음을 채워야 한다.
이런 사람이 세상을 이기고 세상의 파도를 제압한다.
4) 하나님의 능력
능력과 은사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신령한 선물인바, 우리는 이들을 기도로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능력과 은사를 달라고 기도해서는 안 된다.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으로부터 흘러나온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씨앗이 되어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럴 때 이렇게 나타나는 은사가 아름답게 나타난다.
5) 영성의 발전
영성은 우리 내면에 있는 그리스도의 성품, 성령의 성품이다.
영성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하시며 그의 지배에 따라 나의 본능, 본성, 육신, 자아가 다스림을 받아서 사는 것이며,
또한 영성이 충만한 삶은 이러한 다스림을 받는 삶이 억지가 아니라, 기쁨으로 자연스럽게 되는 삶이다.
세상은 점점 이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성이 강조될수록 영성이 사라지고 비인간화되어간다.
미래의 사회는 더욱 기계적, 비인간적, 조직적이 되고, 더욱 복잡해지고,
막중한 스트레스에 시달림으로 인간관계는 더욱 거칠어지게 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영성은 너무나 중요하다.
크리스챤에게 영성은 생명력이다.
영성이 없다면 죽은 크리스챤이다.
이제 세상이 비인간화될수록 더욱더 영적인 삶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영성을 공급해주고,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길이 바로 기도이다.
기도는 우리를 깊은 영적인 세계로 이끌어준다.
오직 기도로 영성이 개발되고 발전되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된다.
세상은 쉴새없이 파도가 치고 있다.
이 파도를 이기기 위해서는 주님 계신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육성은 음식으로, 이성은 교육을 받아서 발전시키고 있으나 영성은 무시하고 있다.
영성도 이성이나 육성과 마찬가지로 발전하고 성장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오직 기도로만 가능하다.
제2장 기도의 정의
1. 주님이 제자들에게 시키신 기도훈련
마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기도는 훈련이다.
믿음과 구원은 거저 주시는 것이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모두 훈련을 필요로 한다.
예배, 찬송, 봉사, 헌신, 기도 등등 이 모든 일들은 훈련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기도의 훈련은 모든 크리스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배나 찬송은 늘 하는 것이 아니지만, 기도는 영혼의 호흡으로서 늘 하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호흡이 잘못되면 몸의 어느 한 부분도 강건할 수 없는 것처럼 기도가 잘되지 못하면 믿음생활의 어느 부분도 제대로 될 수가 없다.
한국 기독교의 문제는 기도가 잘못된 것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다.
무속신앙에 근거한 기도, 돌무더기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손 비비며 기도하던 그대로
무릎을 꿇고 손 비비며 그저 자꾸 무엇인가만 달라고 기도한다.
이런 기도가 바로 5절의 외식하는 자의 기도요, 7절의 이방인의 기도이다.
돌무더기가 사람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돌무더기와 사람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고,
마음의 통함도 없고 감정도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허리만 굽히고 손만 비벼 무엇을 얻어내려는 것,
이것이 바로 외식하는 자의 기도요, 이방인의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통하여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는 자세로부터 교회의 모든 문제가 생긴다.
삶이야 어찌되었든 복만 받으면 된다는 기복신앙, 질질 끌려 다니는 수동적 믿음, 권위주의 교권,
신앙과 생활의 분리 등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한국의 크리스챤들이 기도는 많이 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이기지 못하고 있다.
잘못된 기도를 하기 때문이다.
히5:13-14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제대로 된 기도의 훈련을 받으라. 주님의 기도훈련을 받으라.
1) 아버지에게 하라
기도는 어린 자녀가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품에 안겨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에 형식이나 틀에 박힌 언어나 표정이 있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마19:14에서 천국, 즉 하나님의 임재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여기에는 계급이나 높낮이가 없다. 함께 뒹굴고 함께 사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나아갈 때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외모, 외형, 표정, 목소리가 아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인정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편한 자세로 기도하라.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고 기도가 자꾸 막히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무겁고 두렵게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참 사랑의 아버지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세상의 아버지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잘못된 개념, 나를 이용하고, 일시키고, 부려먹는 아버지의 개념을 버려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 상에 따라 기도가 틀려지고 삶이 틀려지고 설교가 틀려진다.
두려운 하나님의 개념으로부터는 정죄하는 메시지, 두려워하는 기도, 두려워하는 삶이 나온다.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하나님 상이었다.
하나님 상이 잘못되었으므로 기도가 막히고 믿음생활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두려운 하나님 개념을 가지면 아무리 기도해도 성격이 거칠게 되는데,
그 이유는 평안하지 못한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은 너희의 좋으신 아버지이다.
끝없이 우리를 사랑하시 분, 용서하시는 분, 보살피시는 분이다' 하고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개념을 넣어주시는 것이다.
기도 속에서 이렇게 좋으신 아버지를 만남으로 편안함이 있어야 한다.
기도를 통하여 평안한 하나님을 만나라.
이를 위한 기도 훈련의 첫 단계는 좋으신 아버지를 자꾸 부르는 것이다.
왜 좋은지, 그 이유를 자꾸 발견해서 그 이유를 입에 담아 고백하는 훈련을 하라.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분, 병을 고쳐주시는 분, 머리털 까지도 헤아리시는 분,
산성처럼 보호하시는 분 등등.
그리고 그 품안에 안기는 훈련을 하라.
2) 하늘에 계신 분에게 하라
여기서 말하는 하늘이란 대기 중의 하늘이 아니라, 물건이 아닌 하늘, 문제와 어려운 현실이 아닌 곳을 말한다.
즉 지금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문제 속에 갇히거나, 환경 속에 갇히신 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문제와 어려움의 현실을 벗어난 곳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 그 하늘은 어디인가?
눅17:21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이 계신 하늘은 바로 나에게 접촉한 곳, 즉 나의 속이다.
다만 우리의 마음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마음으로부터 문제와 답답함을 분리시켜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서 어려운 현실이 주는 걱정, 근심, 두려움, 답답함을 씻어내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즉 우리의 마음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깨끗하고 평안한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계신 깊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기도를 밖으로 하지 말고, 안으로 해야 한다.
주님이 가르치시는 기도는 구약 선지자들의 기도처럼 하늘을 향하여 외치고 부르짖는 기도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향하여 안으로 하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골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즉 내 영혼 안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라는 것이다.
내 영혼 속에 하나님의 임재,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내 영혼 안에 계신 하나님과 만나고, 연합하고, 도움을 받으면, 그것이 즉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손을 잡고 점점 밖으로 나가서 현실 속에, 문제 속에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멀리, 밖에서부터, 높은 하늘에서부터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기 때문에 기도가 어려운 것이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단지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믿음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귀신도 이를 믿고 떨기 때문이다.(약2:19)
그러면 어떤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인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이런 믿음이 바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와 같은 실제적인 관계, 만남의 관계로 만들어 가는 것이요,
이런 믿음이 주가 내안에, 내가 주안에 있는 관계로 이끌어 가는 것이요,
그럴 때,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 안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나와 함께 내안에서 살아가시는 주님을 발견하게 될 때, 내가 주안에, 즉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만나고 발견하지 못하게 되면 보좌에 계신 하나님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를 하지 못하면, 그런 훈련을 받지 못하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요,
삶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내안에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이다.
내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예배이다.
내안에 계신 하나님이 일하실 때, 내가 일하는 것이요,
내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나도 덩달아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본질이다.
하나님이 그냥 막연하고 피상적이기만 하면, 나의 삶도 역시 막연하고 피상적이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고 뜬구름 잡다가 끝나고 마는 것이다.
피상적인 하나님은 피상적인 나의 삶을, 구체적인 하나님은 구체적인 나의 삶을 만드는 것이다.
피상적인 하나님 체험은 피상적인 나의 삶의 체험이 된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하여 내안에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만나고 느끼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라.
그런 훈련을 하라.
3) 중언부언하지 말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라.
과대광고하지 말라.
말만 많이 하다가 기도 끝내지 말라.
말로 하나님을 이해시키고, 하나님과 따지려고 하지 말라. 아버지는 구하기전에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신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깊은 곳(4차원의 세계, 영의 세계)에 계시는 분임을 인식하라.
세상의 인식은 이성, 감각으로 하지만, 깊은 곳에 늘 함께 하시는 아버지는 이성이나 감각이 아닌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아무리 이성이 바쁘게 회전하더라도, 세상이 바쁘더라도,
복잡하더라도 마음이 깨어있으면 우리는 마음으로 늘 아버지와 대면할 수 있다.
마음으로 하는 기도를 하도록 하라.
그런 훈련을 하라.
기도를 말로 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 하려고 하라.
영적기도를 하려고 하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마음으로 하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의미이다.
마음으로 하는 기도 훈련을 하라.
하나님은 마음의 소리를 들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듣고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말에 담긴 마음을 보시고 응답하신다.
유창하지 못해도, 길지 않아도 마음이 담긴 기도를 하라.
마음의 기도가 아닌 기도는 아무리 말이 유창해도, 성경을 많이 인용해도 허공을 치는 기도이다.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영혼으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 사모함을 고백하라.
마음으로 송축하고 찬양하라.
육체의 접촉과 생각이 분리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과 마음도 분리될 수 있다.
마음은 생각, 느낌, 감정, 의지, 상상이 아니다.
이런 것 밑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언부언하는 말이나, 생각이나, 느낌이나, 감정이나, 상상과 같은 것들을 최대한으로 중지시키라.
분리시키고 가라앉히라.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느끼려고 하지말고 오직 마음 속 깊은 곳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라.
그 하나님을 느낄 것을 사모하고 기다리라.
감사함과 사랑의 고백을 하라.
아무것도 느낄 수 없더라도 계속 훈련하라.
빌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리하면 무엇인가 새로운 평강,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그 어떤 응답보다 더 귀한 것임을 알라.
그리고 감사하라.
기뻐하라.
계속 훈련하라.
4) 드리는 기도를 하라
마6:8 구하기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구하는 것을 기도의 주제로 하지 말라.
구하다가 시작하고 구하다가 끝내는 기도를 하지 말라.
기도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나는 것, 아버지와 관계를 맺는 것, 교제를 하는 것,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아버지에게 감사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주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내 마음을 드리고,
내 목숨을 드리고, 내 뜻을 드리고, 내 힘을 드리는 것이 주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나라이 임하옵시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고, 뜻이 하늘과 땅에서 이루어 지옵소서' 하는 것이다.
무엇이 있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드리라.
무엇인가 있는 것, 강한 것을 드리기보다는 없는 것, 연약함을 드리라.
그래서 거기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움 받으려하라.
하나님의 것으로 채움 받기 위한 드림, 이것이 드리는 기도이다.
단지 이러한 드림은 하나님의 것을 담을 수 있는 거룩한 드림이 되어야 한다.
가난하나 거룩한 심령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다.
연약하나 거룩한 몸, 성별된 몸을 드릴 때, 강건함이 임하게 된다.
우리의 생명은 거룩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부요도 거룩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거룩한 심령을 드리라.
거룩하고 청결한 마음을 드리라.
그리함으로 거기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심 받으라.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시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받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그릇이 바로 우리가 드리는 것이다.
마음을 드리는 곳에 하나님의 마음, 평강,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감사를 드리는 곳에 감사할 조건이 임하고, 찬양을 드리는 곳에 찬양할 조건 즉 승리가 임하는 것이다.
2. 기도란
기도는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 된 자가 성령의 교통하심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면서
사랑의 고백, 찬양, 감사, 예배, 봉헌, 순종, 신뢰, 통회, 간청 등의 심정을 구체적으로 표명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마음을 올리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마음의 채널, 영적채널을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을 나의 채널에 맞추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에 넘어가지 않으신다.
기도는 좋으신 하나님,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위로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 등등 자꾸 이 좋으신 하나님의 성품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기도가 깊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자꾸 부르라.
하나님 좋으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 나의 아버지... 그러면서 심령의 변화가 무엇인가, 어떤 변화가 있는가를 느껴보라.
이러한 기도는 안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이 좋으신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에게 향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을 향하여 사랑의 고백, 찬양, 감사, 예배, 봉헌, 순종, 신뢰, 통회, 간청 등의 심정을 구체적으로 표명하는 것이 기도이다.
그분을 향한 찬양이 기도이고, 그분에게 드리는 예배가 기도이고, 봉헌도 기도의 한 표현이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를 나타내는 것, 나와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가 변해야 이 모든 것, 찬양도, 예배도 변하게 된다.
1) 마음으로 하고 영으로 하는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
2) 하나님과의 친교,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
우리의 믿음생활은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가가 중요하다.
부모와 친한 자녀는 결코 탈선하지 않는다.
신앙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 생명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 기도의 목표, 신앙의 목표요, 신앙의 핵심이다.
3) 하나님을 향하여 애정으로 가득한 움직임이며, 자녀가 부모를 찾고, 안기는 사랑의 행동이다.
4) 하나님의 현존을 의식하며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행위이다.
자꾸 입술로 시인하고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려고 노력하면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기도이다.
초대교인들은 늘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느끼며 살았다.
그러므로 모든 위협을 이기고 신앙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다.
5)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느끼고 만나라.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 위로를 받으라.
6) 세상과 분리되어 현세적인 것은 잃어버리고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하는 행위:
예수님의 광야에서의 기도의 모습을 기억하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앞에 오직 하나님만을 만나는 것이 제1계명이며, 이것이 바로 기도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이렇게 하나님과 만나는 것은 은혜요, 은사이다.
이러한 은사는 사모해야한다.
사모하지 않고 그것을 향하여 열려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지 않는다.
7) 하나님과 하나가 됨: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무슨 일을 하려고 하지 말라.
그냥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8)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고백: 기도시에 이러한 고백을 반복하라.
기도에서 감사와 사랑을 반복의 주제로 삼으라. 핵심으로 삼으라.
9) 기도는 의무로 하기보다 흥미, 기쁨으로 즐겨야 한다.
억지로 하는 노동은 피곤하게 하나, 즐거이 하는 운동은 힘이 나게 한다.
기도를 즐거운 운동을 하듯, 호흡하듯 몸에 익혀야 하며, 자연스럽게 해야한다.
마치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듯 그렇게 되어야 한다. 호흡이 힘들면 병자이다.
10)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를 아시고 이해하시며 염려하시고 응답하시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목전에 우리와 다른 사람의 무력함과 약함을 펼쳐놓는 것이다.
다른 것을 드리려하지 말고, 우리의 연약함을 드리려 하라.
기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11)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 하나님을 찾는 영혼의 숨결이요, 헐떡임이다.
12)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기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고 받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주시게 만드는, 받아내는 기술이다.
하나님이 주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게,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자꾸 하나님께서 나온다.
자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기도를 통하여 무엇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내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려고 하라. 드리려고 하라.
13) 하늘의 영광가운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훌륭하고 웅장한 하나님의 방송,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방송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는 것이다.
내 뜻을 하나님에게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겟세마네의 예수님의 본을 받으라.
광야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귀신 쫓는 능력을 간구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는 기도였으며,
육신을 입으심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욕망을 끊어내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담는 기도였고,
세상에서 삶으로 말미암아 더러워지는 심령의 때를 씻어내는 기도였다.
내 방송에 하나님을 맞추려고, 끌어들이려고 하지 말라.
내가 그분에게 말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게 하라.
내 뜻을 자꾸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자꾸 받아들이는 것이 기도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쉽기도 하고 또 어렵기도 하다.
내 주장을 하려면 어렵지만, 하나님의 뜻을 받으려면 아주 쉬운 것이다.
하나님의 주파수는 무엇인가?
오직 믿는 이만 하나님의 주파수를 알고 맞출 수가 있다.
하나님이 믿음을 가진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은 오는 것을 받아서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다.
기도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는 것이며, 나의 무력함을 그분에게 내어놓고, 그분의 강건함을 받는 것이다.
나의 답답함을 내어놓고 은총을 받는 것이며, 짐을 가지고 가서 그 분앞에 내려놓고 그분의 평안함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이처럼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가고, 하나님이 내게로 오시게 하는 것이다.
이 시대는 참으로 바르게 기도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쓰시려 하신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는 사랑은 기도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도에 있어서 바른 방향을 잡으라.
깊은 차원의 기도, 하나님과 연합되는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라.
그러면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붙드시고 쓰신다.
기도로 마음이 하나님과 연합되는 사람을 하나님은 결코 버려두시지 않으신다.
반드시 들어 쓰시며, 이러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끝까지 기도의 맥을 놓지 말라.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바른 기도로 시작해서 바른 기도로 끝내라.
기도로 살다가 기도로 끝마치는 사람은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다.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지혜, 능력, 평안, 담대함 등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진 사람이다.
처음에는 내가 기도하다가, 나중에는 기도가 기도를 하게 하라.
그렇게 되도록 기도의 훈련을 하라.
제3장 기도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채널에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은혜로 하나님의 전파를 받을 수 있게 하셨지만, 그 채널에 맞추는 것은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가 이것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냥 오지 않는다.
성령님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때, 그 채널이 열리고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며,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에게 주파수를 맞추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기도는 독백이 아니며, 자기 신념을 강화하는 수단도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대화하고 그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1. 기도가 어려운 이유
1) 기도를 잘하려고 하는 것:
기도에 관한 고정관념에 잡혀서 외형적 모습, 언어의 구사에 너무 신경을 쓰고 있다.
기도는 언어의 구사가 아니다.
눈빛만 보아도 서로를 아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른 기도이다.
2) 특정한 장소를 찾으려고 하는 것:
기도는 교회, 산, 기도원, 새벽기도에서 하는 것이라는 기도에 대한 고정관념이 기도를 어렵게 만든다.
자연스럽게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3) 기도의 본질은 무엇을 비는 것이라는 생각:
'비나이다 비나이다' 식의 기도의 개념은 문제없는 사람은 기도의 필요가 없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져왔다.
기계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욱 영성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데, 이러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실상은 그 반대가 되었다.
문제가 하나님을 필요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문제가 해결되게 하라.
4) 문제가 생기면 최후수단, 비상대책수단으로 하는 기도:
기도에 관한 이러한 개념이 진정한 기도의 길을 막는다.
산소는 죽을 만 할 때만 취하는 것이 아니다.
늘 산소를 섭취하듯 아주 자연스럽게, 호흡하듯 기도하라.
문제가 생긴 다음에 문제 때문에 하는 기도보다 미리미리 하는 공격적인 기도를 하라.
평안함 속에서 미리미리 준비하고 쌓고 채우는 기도를 하라.
5) 의무감으로 하는 기도: 자연스럽고, 즐기는 기도를 하라.
6) 하나님에게 기도한다는 사고방식:
아버지에게 기도한다는 기본자세를 분명히 하라.
7) 감정으로 기도하는 것:
기도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에서 감정을 빼라.
찬양에서도 감정을 빼라.
감정은 될 수 있는 대로 낮추라.
감정으로 확 타오르고, 확 식어버리지 않게 하라.
신앙이 성품과 감정을 다스리게 하라.
감정과 성품이 신앙을 다스리게 하지 말라.
성령님이 역사하는 설교인가 감정이 역사하는 설교인가?
감정이 들끓어 오르는 기도나 찬양을 하지 말고, 믿음의 기도와 찬양을 하라.
8). 공동으로 모여서 하는 기도의 습관:
이러한 분위기가 아니면 기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좋은 기도의 습관이 아니다.
혼자서 조용히 하나님과 교제하고 대화할 수 있게 하라.
9). 기도의 개념, 동기, 목적을 잘 모르고 무조건 기도하는 것. 기도의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
바르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는 무조건 오래하면 좋다는 가르침이 기도를 더욱 못하게 하고 기도를 멀리 하게 한다.
2. 바르게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
1) 자신이 지금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는 의식.
2) 그분은 나의 아버지시며, 나의 모든 은밀한 것을 다 알고 계시다는 의식:
은밀한 것을 다 풀어 놓으라.
상한 심령, 약한 부분을 드러내라.
사람에게 못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앞에 다 내놓으라.
그래야 치유가 된다.
3)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믿음.
신4: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기도로 하나님의 가까이 함을 얻으라.
4) 하나님의 내게 향한 뜻을 알기 위한 자세:
내 뜻을 하나님에게 강요하지 말라.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내게 가져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부리려고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계에 내 시계를 맞추려고 기도하라.
우리의 마음은 수시로 변화하나, 하나님의 마음은 불변하시다.
방송국 시계에 내 시계를 맞추듯 하나님의 마음에 내 마음을 맞추라.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 뜻에 자기 뜻을 맞추는 기도를 하셨다.
예수님의 기도는 사람들 중에서 생활함으로 마음에 묻은 때, 혼탁해 진 것을 씻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기 위한 기도였다.
하나님을 내게 가져오려고 하지 말고, 나를 하나님께로 가져가려고 하라.
기도의 구조조정을 하라.
5) 깨어서 기도하라:
영, 즉 마음을 깨우라.
영을 깨우는 훈련을 하라.
잠자는 영을 깨우는 훈련을 하라.
영은 자지 않는다.
우리가 영을 재우고 있다.
영을 재워놓고 있다.
영을 가두어놓고 있다.
그대신 본능과 이성을 깨워놓고 그에 따른다.
영으로 기도하라.
영이 깨어난 상태에서 기도하라.
골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의 고백이 기도의 흐름이 되어야 한다.
감사와 사랑의 고백이 기도의 양바퀴이다.
이것을 간단하게 반복하라.
이러한 기도로 영이 깨어난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과 감사의 고백을 듣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기뻐하시고, 활동하시고, 따라서 우리 영이 깨어나게 되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느끼게 된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성령 안에서' 라는 말은 '영으로' 라는 의미이다.
우리의 영은 깨어나기만 하면 나침반의 자석처럼 바로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다.
우리의 영에는 씨앗처럼 하나님이 주신 무한한 생명력이 들어 있는데, 영이 깨어있지 않으면 이 생명력이 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신 본능과 이성만을 따르게 된다.
내 영을 깨워야 한다.
크리스챤의 기본적 의무는 먼저 영을 깨우는 것이다.
영이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영이 깨어있지 않으면 켜있지 않은 TV처럼 공중파는 엄청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영이 깨어서 하는 기도는 우리에게 생명과 같이 귀한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맥이다.
기도의 맥을 뚫기만 하면 무한한 생수를 파낼 수 있다.
우리의 영은 마음속 깊은 곳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영이 깨어나면서 올라오는 에너지는 무한하다.
영에 이르기까지, 영을 깨우기까지 파내려가는 것은 우리가 노력할 일이다.
은혜의 빗물은 거저 주시지만, 속에서 솟아나는 은혜의 맑은 샘물은 땀흘려 샘을 파야한다.
파내서 얻는 샘이야말로 진정 생명수가 된다.
제4장 기도의 장소
1. 마음
1) 기도는 마음, 즉 심령에서 나와야 한다.
심령에서 나와서 말로 표현되는 것이 바른 기도이다.
심령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장시간 기도해도 사실은 기도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2) 기도는 은총이다.
누구나 우상에게 기도할 수 있지만,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에게 하는 기도는 은총이다.
은총 속에서 아버지에게 하는 기도가 바른 기도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한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서 기도로 하나님과 만날 수 있게 됨은 진정 은총이다.
기도는 은총이나 기도자의 노력이 은총과 합해져야 한다.
구원은 거져 주시지만, 은혜와 은총을 거져가 아니라, 우리가 노력하고 찾아야 한다.
거져 주신 은혜는 저절로 묻힌다.
이 은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기도는 깊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장 깊은 곳에 지성소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지성소인 영혼(마음)에 하나님이 계신다.
따라서 우리의 영혼은 무한한 크기와 능력을 가진다.
우주보다 더 크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이것은 모든 크리스챤에게 절대절명의 명제이다.
마음은 하나님이 계신 영혼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장소이다.
마음에서 하나님을 찾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만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모세처럼 삶의 자세가 달라진다.
이처럼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
3) 마음은 감정, 기분, 지성, 애정을 느끼는 기관이 아니라, 더 깊은 곳에 있는 인간의 궁극적 기반이며 근원이 되는 곳이다.
깊은 곳에 영을 담는 장소이다.
마음은 지정의를 느끼는 곳이나, 육신보다 더 깊이 있기에 이것을 실감하는 것은 쉽지 않다.
4) 보통 이 깊은 마음은 일상 생활에서 활동하지 않고 지-정-의의 행위 아래 마비되어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지-정-의라는 이성과 육신의 본능으로만 영위하고 마음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의 활동이 퇴화되었다.
감정과 육신, 생각은 무리할 만큼 혹사시키지만, 마음은 잠재우고 있다.
그러므로 깊은 기도를 할 수 없다.
기도는 지정의와 본능의 활동아래에서 잠자는 마음, 즉 영을 깨워 그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오는 것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말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른 기도이다.
육체, 본능, 동물적인 기능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육체가 나와 또 다른 인격체라고 하는 것처럼,
마음은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인격체이다.
마음이 굳어져 있으므로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하게 된다.
마음이 해야 할 역할까지 이성이 해야 하기 때문에 이성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마음, 영성은 단순한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단순해지는 것이 마음을 깨우는 것이다. 순수함을 찾는 것이다.
마음이 깨어나서, 마음으로 살고, 생각하고 느끼게 될 때, 진정 크리스챤의 삶이며,
이러한 사람의 느낌이나 생각이 세상 사람과 다르게 된다.
더 깊고, 더 굳건하고, 더 멀리보고, 더 깊이 느끼게 된다.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마음은 우리의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인생의 나침반이다.
그런데 이 마음이 잠들어 있음으로 삶이 방향과 목적과 의의를 잃고 헤매는 것이다.
영을 깨우라.
마음을 깨우라.
영이 살아나야 한다.
마음을 깨뜨려서 내속에 있는 하나님을 느끼라.
하나님의 은혜가 솟아오르게 하라.
마음속에 파묻혀 있는 깊은 보물을 찾아내라. 파내라.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머리도, 얼굴도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을 보살피고 꽃밭을 가꾸듯 가꾸라.
그 속에 엄청난 보화와 능력이 감추어져 있다.
겔36: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겔11:19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굳은 마음이란 성령님이 역사하지 못하는 마음이고, 부드러운 마음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마음이다.
믿음은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굳은 마음대신에 새 마음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은혜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는 자꾸 새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우리의 굳은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막는다.
부드러운 마음은 초청해야 생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는 성령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이다.
행16:14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마음을 열라.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라. 영을 열라.
기도가 피어오르게 하라.
기도는 영을 여는 것이다.
영을 열어야 하나님을 만난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만나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지상최고의 축복이며, 목표이며 모든 것이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신 것은 우리 속에 하나님이 오시기 위하여, 우리 속에 거하시기 위하여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
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인 마음속으로 들어가라.
그 부분을 귀중히 여기라.
예수의 보혈로 이미 휘장이 활짝 열렸다.
하나님을 만나리라는 믿음생활의 목표를 가지라.
이러한 끈질김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하나 되라. 내 영혼 깊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과 만나라.
그리고 그분의 통치를 받아라.
그러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성전이 된 의의가 있다.
진정한 기도의 장소는 내 마음이라는 지성소이다
고전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은 참으로 귀하게 오시고 역사하셨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사람에게 잠깐씩 오시고, 그것도 금방 떠나셨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도우신다.
대접받고, 일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하여!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가.
세상의 영은 이제 우리에게 없고 하나님의 영이 계실 뿐이다.
단지 전의 습관, 성품이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의 영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의 성품인 조급함, 음란, 미움 등등이 안에 있으면 아무리 도덕을 강조해도 안 된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는 이제 이러한 세상의 영은 없고 하나님의 영이 계시다.
그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은혜와 은총이 자꾸 올라오게 하라.
그리할 때, 우리의 성품이 변하게 된다.
세상의 영은 우리 중심에 있으면서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나 밖에서 육신의 안목과 정욕, 습관과 성품으로 우리를 지배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중심에 계신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는 습관, 성품을 훈련하여야 한다.
성령님과 만나려고 하라.
노력하라.
그리할 때, 은총이 그 속에서 올라온다.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에게 있다.
성령님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하나님께 자꾸 나감으로 하나님의 성품이 깊은 속에서 올라오게 하라.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기도와 찬미를 영으로 하라.
얼마나 깊이에서 기도하고 찬미하고 있는가?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영-혼-육은 각각 서로 다른 인격체이다.
그러면서 한 인격체이다.
하나님은 이 3부분이 다 잘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그것은 오직 영이 주도권을 쥐어야만 가능하다.
영이 잘되어야 혼과 몸도 살게 된다.
그러므로 육성-이성-영성중에서 이성과 육성을 약화시키고 영성을 강화시키라.
육신이나 세상에 대해서 좀 덜 민감해지고 하나님에 대해서 더 민감해지라.
5) 사람들 대부분은 마음의 활동보다는 이성에 의한 육체의 활동만 하고 있으며,
마음과 이성 사이에는 두터운 벽이 있어서 분리시켜놓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기능이 약해져 있으며, 상대적으로 이성과 육신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이성과 육신이 인간의 활동을 지배한다.
대부분의 결정을 마음이 아니라, 이성으로 내린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무관한 결정이 되고 만다.
마음이 깨어서 마음으로 하는 결정이 하나님과 유관한 결정이다.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아브라함과 롯의 경우, 롯은 이성의 결정이고, 아브라함은 마음의 결정, 영적인 결정을 하였다.
이성의 결정은 하나님과 무관하고, 사단과 유관한 결정이 된다.
2. 인간의 정서
인간의 정서는 영과는 다르지만, 외부의 자극에 대한 상대적인 반응을 하는 깊이를 말한다.
인간은 정서로 반응한다.
행동, 즉 반응의 근원이 되는 반응의 깊이가 정서이다.
정서가 반응을 만들어 낸다.
불안정한 정서: 불안정한 습관, 성품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정서를 가진 사람, 이정도 깊이에서 반응하는 사람은 늘 밖에서 안정을 찾으려 한다.
성령님을 의지하라.
안으로 들어가라.
안정한 정서: 안에서 안정을 찾으려 한다.
육신적정서: 육신적, 감정적, 이기적, 공격적 반응을 나타낸다.
이 시대는 동물적 정서시대이다.
이성적정서: 이성적 반응을 나타낸다.
논리, 전통, 법, 경험, 충고, 교육, 문화, 감정에 의한 반응을 나타낸다.
혼적 정서: 도덕, 윤리, 규범, 양심, 경우에 따르는 반응을 나타낸다.
영적 정서: 영적 반응을 나타낸다.
신앙, 성경, 성령의 지배, 하나님의 마음으로 반응한다.
깊은 곳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영적정서로 하나님의 말씀과 메시지를 받을 때, 우리에게 생명력이 생기고 환경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생긴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영적정서에서 나오는 것이다.
3. 마음과 이성, 영과 혼을 분리하는 벽
1) 우리의 삶의 모든 반응이 얕은 정서에서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
깊은 정서로 내려가지 못하게 막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벽이다.
2) 얕은 벽: 염려, 근심, 걱정, 산만함, 무질서 등이다.
이러한 벽들이 우리의 삶의 모든 반응이 얕은 수준, 육신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이것들, 이러한 벽들을 깨뜨리고 해결하고 잠을 자야한다.
이를 위해 잠들기 전에 시간을 가지고 성령님에게 치료를 의뢰하라.
3) 두꺼운 벽: 미움, 교만, 분노, 질투, 복수심, 중독 등 기도와 은사로 마음속에 있는 이러한 두꺼운 벽을 깨뜨리라.
성령님의 치유로 쳐내어 버리라.
그래야 하나님의 은총이 마음속에 채워진다.
벽이 두터울수록 우리의 삶이 마음이나 양심의 통제를 받지 못하며, 자신을 보거나 깨닫지도 못한다.
이러한 상태는 하나님과도 단절된 상태이며, 기도를 많이 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태이다.
벽을 헐라.
그러면 간단히 간구해도 하나님의 공급이 풍성해진다.
본능과 마음사이에는 두터운 벽을 쌓으라.
그 사이를 막으라.
그러나 영과 마음사이에는 벽을 헐라.
용서함으로 풀라.
회개함으로 풀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풀라.
그러면 아주 간단한 것, 지나치는 소리 한마디, 자연속의 새소리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다.
사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막8: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들어도 깨닫지 못함은 예수님의 설교가 둔하고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들 마음속의 벽이 두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를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마음을 깨우려고 노력하라.
사람들의 마음의 벽이 두터우면 말로 감동받지 못한다.
심지어 예수님의 말씀도 마음이 굳어져 있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벽을 허는데 관심을 가지라.
마음이 깨어 있게 하라.
초대교회에서는 성도들이 바울의 편지 하나만으로도 깨어지고 은혜받았다.
사도요한의 '사랑하라'는 말 한마디로 은혜가 넘쳤다.
주일예배를 설교중심의 예배보다, 찬양과 말씀.. 찬양과 말씀.. 과 같이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예배가 되게 하라.
벽을 허는 예배가 되게 하라.
성도들이 영에 감동을 받게 하라.
성령님의 움직임에 우리의 영이 감동받게 하라.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예배에서 하나님을 반드시 만나게 해야 한다.
예배속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육신의 눈은 볼 수 없고 육성이나 이성은 느낄 수 없다.
오직 우리의 영이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벽을 깨고, 영을 깨워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죄를 씻고, 치료하고 위로하고 힘을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예배는 참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것이다.
막4: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들을 귀란 영과 연결된 귀를 말한다.
영이 열린 사람의 귀이다.
욥12:1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변하지 아니하느냐.
영의 말인지, 사람의 말인지, 분별하는 귀가 영이 열린 귀이다.
눅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마음이 둔해짐'이란 영이 둔해짐을 말한다. 세
상의 방탕함과 생활의 염려, 죄악이 우리의 영을 잠재우는 것이다.
4) 자신의 마음의 활동을 활성화시켜서 영적인 정서가 자신의 삶, 정신, 신앙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해야 한다.
5)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차단시키고, 마음과 의식, 마음과 이성을 차단시킨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불가능하게 만든다.
세상과 가까이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벽은 두터워진다.
그러나 주님을 찬양하며, 섬기려 하며, 가까이 하려 할 때 그 벽은 무너진다.
이러한 노력은 단기간에 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끈기있게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가 벽을 깨뜨리려고 이러한 노력을 할 때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
제5장 기도의 발전
기도훈련은 단기간으로는 안 된다.
지속적으로 자꾸 젖어져야 한다.
기도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수 없다.
기도로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가 되어야 한다.
현대의 복잡한 사회는 우리에게서 점점 기도의 환경을 빼앗아 버리고 있다.
마음의 여유를 빼앗아 가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기도를 점점 멀리하게 된다.
점점 시간을 빼앗기고 산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양상이다.
무조건 기도하라고 강요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4차원의 영적기도가 유일한 대안이다.
각자가 영적으로 깊어지고, 늘 성령님과 교통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한 시간과 장소에 모여서 기도하게 하는 것은 이제 점점 어려운 상황이다.
아무 곳에서라도 깊은 기도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성령님과 깊이깊이 교통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누구의 간섭이나 강요, 인정과 감독 없이도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여야한다.
이러한 신앙의 체질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현대는 기도의 결핍시대요, 기도의 질식시대이다.
오염된 공기, 물과 같이 물질문명이 기도를 오염시키고 있다.
현대문명은 우리에게 간편함, 빠름과 물질의 부요를 주나,
영적으로는 그만큼 많은 것을 빼앗아 버림으로 현대는 영적 빈곤의 시대이다.
무질서, 산만함, 기계화, 도덕적 불감증, 양심의 마비, 허공을 치는 부르짖는 기도, 감정 발산의 기도 등등,
이러한 곳에 사단의 무서운 흉계가 있다.
기독교인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쫓아내고 물질과 세상을 집어넣고 있다.
크리스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생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사단의 근본적인 작전은 하나님이 계셔야 할 곳에 세상의 것을 집어넣는 것이다.
마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우리가 성경 읽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기도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깨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가 실용주의, 상업주의적 사상에 의해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기도가 생명력을 상실하고 있다.
기도가 즐거움이나 신앙의 기본이 아니라, 부담이 되어버리고 있다.
1. 기도에 대한 무지
1) 기도의 의미를 상실함
2) 필요는 아나 기도하지 않음
3) 기도는 하는데 바르게 기도할 줄을 모름:
이것은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기도가 곁길로 가면 다른 모든 부분이 곁길로 간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바른 기도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정말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바른 기도만이 위로 올라간다.
새로운 기도를 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보다 낡은 것, 잘못된 것을 빼어버리는 일이 급하다.
기도에 관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시간이 지날수록 영성이 깊어지고 메시지가 깊은 곳에서 나오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은혜에 젖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보화를 찾게 된다.
2.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
1) 기도에 쓰는 시간이 아까움: 호흡시간이 아까운가? 기도는 생명줄이다.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넘친다.
성령의 사람이 된다.
2) 기도가 별로 나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기도를 밖으로 하지 말고, 기도로 나를 채우라.
3) 꼭 기도를 해야 하는가?
3. 기도의 초보자
1) 기도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
2) 기도에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
3) 기도의 내용이 기도문을 외우듯이 늘 내용이 같은 사람
4) 기도를 의무로 생각하는 사람
5) 기도를 하나님과 협상테이블로 착각하는 사람
6) 기도를 물질의 축복, 건강,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
4. 기도의 단계
1) 빈말의 단계: 대상에 관심 없이 감정 없이 일방적으로 주문 외우듯, 염불 외우듯 하는 기도.
2) 독백의 단계: 상대는 상관없이 혼자서 독백하듯, 감정은 있으나 하소연하듯 하는 기도.
3) 대화의 단계: 상대를 의식하고 하는 기도. 기도 속에 감정을 느낀다. 대부분 기도한다고 하는 사람의 수준이 이 수준이다.
4) 들음의 단계: 마음을 그분에게 쏟는 단계, 체험의 단계이다.
5) 교제의 단계: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의 평강을 느끼는 단계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랑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하는 기도로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진정 좋은 것은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교제하는 영적인 것인데 이것을 기도로 얻는 단계이다.
마귀가 보여주는 세상영광은 영적인 눈으로 볼 때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수준이다.
5. 바른 기도와 바르지 못한 기도
바른 기도란 삶의 변화, 성품의 변화로 이어지는 기도이다.
순수하고 올바르며 건전한 삶, 예수 사랑, 이웃 사랑이 나타나는 기도이다.
기도에서의 깨달음이 삶에 반영되는 기도이다.
하나님에게 연결되는 기도는 삶의 변화가 나타나는 기도이다.
바르지 못한 기도란 기도는 많이 하지만, 삶에 변화가 보이는 않는 기도이다.
바리새인, 제사장, 서기관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기도의 모범생들이었으나 삶은 독선, 교만, 아집, 정죄로 가득하였다.
하나님이 이들 앞에 왔으나 하나님을 몰라보았으며, 하나님을 오히려 괴롭히고 핍박하였다.
기도가 삶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바른 기도의 줄을 잡으라.
목소리부터 다른 기도, 눈발부터 다른 기도를 하지 말라.
기도에서 단순해지고, 부드러워지라.
기도를 통하여 세상일에 대해서 한 템포 늦추라. 형식적인 기도,
이기적인 기도는 우리를 교만하고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존재로 만든다.
제6장 성령의 도우심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내가 기도하려고 하기보다 먼저 기도에서 나를 도우시는 성령을 찾으라. 이것이 바른 기도의 핵심이다.
그래서 성령이 내 입술을 사용하여 나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기도는 성령의 도우심, 교통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기도할 수 있다.
기도는 영적차원의 일이다.
영적인 일을 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성령님의 도우심이야말로 기도의 생명력이다.
매일 밤 '성령님 도와주세요. 기도를 도와주세요' 하고 100회 반복하라. 바르게 기도하는 훈련을 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뜻을 주시고, 그 뜻에 따라 기도하게 하심으로 그 뜻을 이루신다.(빌2:13)
바로 이일을 위해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시고,
그 뜻대로 기도하게 하시고, 우리 대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은혜를 성령께서 우리에게 교통해주신다.
우리에게 전달해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교통하심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은혜도, 하나님의 사랑도 우리는 알 수가 없고,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로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님을 구하고 찾으라.
우리의 기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의 도우심, 교통하심을 받아야 한다.
이것부터 기도하라.
1. 성령님의 사역
1)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음(요14:16)
2) 우리 안에서 예수를 증거하심(요15:26)
설교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것은 감정적, 지식적으로 받는 것이므로
여기에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그 은혜가 우리의 영, 마음, 생명에 흐르지 못한다.
즉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를 받는 것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령은 예수를 증거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늘 찾으라.
제자들이 늘 예수님 곁에 있어야만 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늘 성령님을 찾아야 한다. 성
령님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특히 기도할 때, 성령님의 도우심, 임하심은 절대적이다.
3) 성령 하나님을 내안에 모신 크리스챤에게 성령 충만은 위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나의 깊은 곳에서 부드럽게 올라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내안에 불순물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성령의 역사가 아름답게 나타난다.
내안에 불순물이 있으면, 나에게서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가 아름답지 못하게 된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려면, 내 안이 성령이 역사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한다.
내 마음을 성령이 역사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해 드려야한다.
성령님은 자율신경계통으로 활동하는 내부기관과 같이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없다.
40일 기도로 성령님을 어떻게 해보려는 것은 마치 심장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애를 쓰는 것과 같다.
심장의 건강을 위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것처럼 나는 오직 그분이 역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이 역사하신다.
미움을 자제하고,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찾고 요청하고 간구하는 것이 바로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이다.
기도의 주제이다.
이것은 오직 지속적인 훈련으로 이루어진다.
성령충만을 위하여, 성령의 활발한 활동을 위하여 내 심령을 준비하는 것, 영적정서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 바른 기도이다.
4)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되면, 삶에서도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된다.
그래서 기도가 삶의 변화를 위한 것이 되는 것이다.
기도에서 성령을 의지하는 습관, 훈련을 받아야 삶에서 성령의 인도와 도움을 받게 된다.
2. 기도하기 전에 해야할 준비
1) 성령님께 성령님의 감동, 감화, 인도함을 받도록 간구, 요청하라.
유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성령님과 함께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하고 성령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간구하라.
기도는 성령으로, 성령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
기도와 성령을 일체화시켜라.
2) 기도에서 가장 먼저 간구해야 하는 것은 성령의 임재와, 충만, 교통함이다.
성령의 임재가 기도의 생명이고, 믿음생활의 생명이다.
내 이성이 기도하고, 내 감정이 기도하고,
분위기가 기도하면 기도를 돕기 위해서 오신 성령님이 외면당하시고 슬퍼하시며 외로워하신다.
성령님의 임재는 너무나 중요하다.
이것을 인정하라.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환경을 만들라. 장소를 만들어 드리라.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가 성령님에게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장소를 만들어 드릴 때 나타난다.
우리의 마음을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면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3) 기도의 초기단계에서는 내 영혼이 성령님의 임재를 대부분 느끼지 못한다.
부정적 인식, 믿음의 부족, 인식부족, 필요성에 대한 무지, 하나님과의 거리감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못느껴도 성령님은 지속적으로 역사하심을 알라. 인정하라.
그러므로 성령을 느끼려고 노력하라.
성령님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지속적으로 노력하라.
이 방식대로만 하면 하나님이 활동하고 역사하신다.
단지 내가 둔해서 느끼지 못하지만, 지속적으로 하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끼고 체험하게 된다.
이것을 더 사모하고 더 사모하라.
내안에 계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더 높고, 넓게 깊은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보화를 캐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4) 기도자는 자신의 심령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해야한다.
이것이 진정 참된 기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드디어 그런 사람, 즉 성령님과 교통하는 사람을 쓰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의 기본원칙이다.
이를 위해서 간구하고 목말라하라.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나를 드리고, 기적을 체험하는 차원을 향하여 나아가라.
밖에 있는 것에 관심갖지 말고 오직 안에 있는 분에 대하여 목말라 하라.
성령님은 끊이지 않는 생수가 되시는 분이다 성령님은 끊이지 않는 샘물을 주신다.
제7장 자기 성찰의 기도
인간은 높아지고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악세사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진정 내 자신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가꾸지 않는다.
외적으로 아무리 계급장을 붙여도 내면을 살피고 가꾸지 않으면 나중에 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내 자신을 살피고 가꾸는 것이 기도 중에 일어난다.
성령의 임재 중에 일어난다.
사람들은 진정 자신은 가난한데, 부요한 줄로 알고, 보잘 것 없는데 위대한 줄로 착각한다.
남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판단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남에게 속지않고 자신에게 속는다.
남은 잘 다스리나 자신은 못 다스린다.
남은 잘 가꾸려고 하지만, 자신은 가꾸려고 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자동차를 늘 정비하고, 점검하고 깨끗이 세척해야 하듯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얼굴을 가꾸듯 마음을 가꾸어야 한다.
꽃밭을 가꾸듯 마음을 가꾸어야 한다.
나 자신도 모르게 더러운 것이 자꾸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우리의 안을 더럽힌다.
내면을 가꾸라.
'성령님, 나의 부족한 부분, 잘못된 부분을 깨닫게 해주세요' 하고 늘 요청해야한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이 일하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성찰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투자이다. 시간과 정력을 여기에 투자하라.
이러한 자기성찰은 성령님이 기뻐하시면서 함께 일하러 나서시는 사역이다.
우리 내면은 말할 수 없이 더럽고, 이그러져 있다. 이것을 꼭 치유해야 한다.
내면의 이그러진 부분, 상처, 감정, 죄악, 허물을 바로잡아 주러 나서시기를 기뻐하시는 분, 이를 위해서 오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다.
성령과 함께 높은 부분을 낮추고, 낮은 부분을 높이라.
세례요한처럼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길을 준비하라.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는 기도생활로 마음-언어-성품-실생활의 순서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내면을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치유함을 받으라.
교육은 환경과 다른 사람을 비판, 판단, 관찰, 분석하는 능력을 주지만, 기도는 영적으로 자기자신을 보게 한다.
교육은 눈을 밖으로 돌리게 하지만, 기도는 안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교육받은 이성은 다른 사람을 비교분석할 수 있게 함으로 정작 중요한 자신을 볼 수 없게 한다.
자기 성찰의 기도는 자신의 영적 현주소(하나님과 자신, 세상, 물질을 대하는 태도, 양심상태),
위치, 상태, 궁핍, 불안정, 무질서, 독선, 양심상태를 인식하게 하고, 이 때문에 통회, 자복, 회개하게 한다.
이러한 통회가 진정한 통회이다.
자신의 양심, 신앙심, 감정, 의지로 통회하려고 하면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
오직 성령의 도움을 받고,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야 제대로 통회할 수 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죄, 부족을 보게 하시는 분이다.
다른 사람의 죄가 보이고,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것은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것이다.
성령님은 먼저 자신을 보게 하신 후에 남을 보게 하신다.
영적현상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남을 보기보다는 먼저 나를 보라.
남을 고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고치라.
자식을 고치려면 부모가 먼저 자신을 고치라.
자신을 보고 진솔하게 고쳐달라는 마음의 부르짖음이 바른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계속하면, 당연히 우리는 변한다.
우리는 환경의 변화가 급하지만, 하나님의 급선무는 우리의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마음이 변화되면 하나님은 환경을 당연히 고쳐주신다.
이러한 것이 바로 내적치유이고, 이러한 내적치유는 지속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자기성찰은 희미해진 양심의 등불을 밝혀서 옳고 그름을 더 예리하게 분별하게 해주며, 마음을 질서를 찾게 해주고,
자신의 나약하고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여진 본질적인 모습을 보게 하며, 점차적으로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때 나를 알게 되며 하나님 안으로 이끌려 들어갈 때 나의 허물과 죄를 깨닫게 되며
하나님을 내 안으로 이끌어 들일 때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게 된다.
이것이 자기성찰의 역할이다.
회개는 자기성찰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목욕으로 더러워진 몸을 씻고 정결케하여 하루의 피로를 풀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이
회개는 지나간 삶과의 관계에만 있지 않고 건강한 내일을 위한 교량의 역할을 한다.
긴 시간 내가 회개하는 것보다,
성령이 도우심으로 짧게 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이다.
이러한 회개에는 위력이 있다.
성령님을 요청해도 성령님의 역사가 없는 것은 내안에 성령님을 막고 있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죄이다.
이러한 것들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빼내어야 한다.
이 때 두리뭉실해서는 성령께서 역사하지 못하신다.
'내 속에 ...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가 불행하게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고쳐주세요.'
이런 기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런 기도는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무릎 꿇고는 하지 못한다.
영혼의 의사 앞이라 생각하고 편안한 자세로 기도해야 한다.
영혼의 의사 앞에 다 들어 내놓으라.
그리고 치유함을 받으라.
기도시간 속에서 실제적으로 나를 치료하고 정돈하고 세우라.
기도 속에서 내가 세워져야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1) 미움
미움은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는 감정이 약함으로 상처를 쉽게 받는다.
이러한 상처를 치유함으로 내 속에 있는 미움을 뽑아내어야한다.
현대인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자꾸 먹는 것이 아니라, 몸안의 좋지 않은 것을 빼내고 태워버려야 하는 것처럼,
현대인의 기도도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내 속에 있는 불순물을 배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남을 짓밟고, 남의 불행을 기뻐하고, 불안해하고, 화내고, 무안 주고, 의심하고, 복수심을 품는 것과 같은 마음을 빼내어야 한다.
기쁨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그런데 미움, 아픔, 슬픔이 기쁨을 억누름으로 나에게 기쁨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빼내라.
미움, 슬픔, 고통은 마귀가 우리 마음에 뿌려준 나쁜 씨앗이다.
이것은 나 혼자서는 빼어내지 못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꾸 빼내어 주라.
'성령님, 내 안에 아픔들, 고통, 미움이 있어요
이것들을 빼내어주세요.
치유해주세요.
나를 자유롭게 해주세요.' 이렇게 늘 간구해야 한다.
이것이 내적치유이다.
이런 시간을 짧게라도 많이 가지라.
2) 두려움
힘든 일을 만나면 물러서려는 마음, 일을 하다가 쉽게 피하려는 마음, 권위자나 높은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드는 것,
다른 사람과 있기 보다 혼자 있기를 더 좋아하는 것,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것 등의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은 마귀가 주는 것이다.
누구나 이러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다만 상황에 따라 이러한 두려움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러한 두려움을 우리 속에서 미리미리 빼내어 두어야 한다.
3) 죄의식
죄는 회개해도 죄의식은 남아있다.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다는 생각,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자포자기적인 생각은 오직 기도로 치료받을 수 있다.
이성은 기억하고 있지 않아도 감정은 기억하고 있다.
감정은 엄청난 기억으로 우리를 붙잡고 영향을 준다.
하나님은 좋은 감정을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마귀는 불안과 미움과 두려움과 시기, 질투, 좌절감, 우울의 감정을 넣어주어, 여기에 빠지게 한다. 성
령님의 도우심으로 늘 감정을 정돈해두라. 기도로, 내적치유로 좋지 않은 감정을 청소해버리라.
은 감정으로 우리 안에 채워놓으라.
좋은 감정이야말로 성공하는 삶의 자본이다.
4) 열등감
사람들 앞에서 너무 긴장하거나 자신의 의사표시를 못하는 것, 심하게 내성적인 성격,
다른 사람의 비평, 충고에 쉽게 열등감을 느끼는 것, 쉽게 실망하는 것,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열등감 때문이다.
경쟁사회에서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다.
5) 자기연민
자신이 인정받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해하는 것, 자신보다 우수한 사람과 자주 비교하는 것,
환경조건에 관하여 심하게 불평하는 것은 자기연민 때문이다.
6) 불순종
7) 교만
이러한 좋지 못한 감정을 자꾸 빼내어주라.
내면을 정돈해주라.
관리해주라.
우리들은 감정적 표현을 너무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감정에 찬 설교는 전혀 은혜가 없다.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
설교에서 감정을 빼라. 감정적 표현은 관계를 깬다.
감정을 빼고 의사소통을 해야 상처를 입지 않는다.
'감정으로 일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살지 않고 하나님 지혜로 살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해야한다.
제8장 기도와 마음
1. 기도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기도는 부족한 무엇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좋지 않은 것을 비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능력을 담는 내면이라는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의 근심, 욕심, 불안함, 시기, 질투, 염려, 야망,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것들을 비워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쓰레기통으로 만들지 말라. 배설물 통으로 만들지 말라.
비움 후에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 기도이다.
이를 위해 자꾸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 주님의 평강을 중심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묵상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여 마음에 가득한 것, 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빈 손, 빈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으로 채워진다.
기도에 기합이나 감정을 넣지 말라. 풀어놓으라. 내려놓으라.
편안하게 풀어놓으라. 무릎 꿇으려고 애쓰지 말라.
기도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만나고 그분이 주시는 것으로 채우는 것이다.
이를 사모하고, 속을 비우라.
기도는 겸손한자가 할 수 있으며 기도하는 자는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겸손한 자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겸손과 기도는 분리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고 들어 쓰신다.
영적으로 깨어난 사람,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기능적인 능력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기능적인 것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
성품으로 말하라. 겸손한 성품을 추구하라.
기도는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종의 자리에서 하는 것이며,
나의 중심에서 내려오고 주님을 자신의 중심에 모시고 그 발 앞에서 겸손히 그를 쳐다보는 것이다.
그분과 내가 일체가 되고, 더 깊이 그분을 섬기고 따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그분을 모시고 있는가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기도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신비한 체험, 접점이다.
신비와 현실, 이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 거리를 좁혀주는 것이 체험이다.
체험은 믿음의 기도로부터 온다.
체험은 하나님에게 접근하려는 사람에게 온다.
체험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며 신비이다.
이론이 실제의 경험이 되며, 상상이 현실화가 되며, 신앙의 활력을 주며 전환점이 된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
가장 보편적인 체험은 평안이다.
기도 속에서 많건 적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체험해야 한다.
기도에서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이 체험이고 신비이다.
이러한 만남을 위하여 속을 비워야 하고, 하나님을 만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아픔과 고통과 부족함을 가리려고 하지 말고, 그것을 드러내고, 내려놓고, 맡길 때,
주님은 우리를 만나고, 그것들을 빼내시고, 좋은 것을 채워주신다.
이것이 주님과의 교제를 통한 은혜, 만남의 은혜, 교제의 은혜, 기도의 은혜이다.
이것이 기도이다.
2. 기도는 비운 마음에 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이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기도는 우리 속에 채워진 좋지 않은 것을 비워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좋은 마음을 품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채우는 것이다.
성령님의 마음으로 채우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우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은 즉 성령님을 품는 것이다.
성령님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품는 것이다.
그리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다.
겁나게 성령님을 많이 찾으라. 입술로 찾지 말고, 마음으로 찾으라. 안으로 찾으라.
그러면 차츰차츰 성품과 행동과 생각과 삶이 변화하게 된다.
이것이 바른 기도를 한 것이다.
기도의 열매이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이 점점 내 마음을 채우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기도는 마음에 심겨진 잘못된 감정, 상처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비우고 지우는 것이며, 거기에 하나님의 성품으로 채우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안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부분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외부의 안정, 환경의 안정이 아니라, 마음의 안정감을 찾으라.
이러한 기도는 영적인 기도이다.
영적인 기도는 영적상태에서 해야 한다.
성령님을 자꾸 찾으면 성령님이 나타나시며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의식에서 영적상태로 바뀌게 된다.
이때 생각하는 것은 의식(두뇌)이 아니라, 무의식(영, 마음)이다.
마치 눈을 감고 고향을 떠올리는 것처럼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태가 마음의 상태, 영적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성령님에게 묻고, 간구하고, 도움을 요청하라.
치유를 받으라.
간단하게, 그러나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하라.
이처럼 영적상태에서 마음으로 하는 한마디가 그냥 입으로 하는 수천마디보다 더 강하게 역사한다.
인간의 주체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다.
영적상태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세상을 이기는 에너지이다.
기도와 찬양, 기도와 성품은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
찬양이 마음의 상태를 이끌고 나간다.
찬양에 강한 힘이 있다.
시대를 알려면 노래를 알아보라.
어떤 가사, 어떤 감정인가?
초신자는 보혈, 죄사함을 찬양하라.
성숙한 성도는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찬양을 하라. 찬양도 발전해야 한다.
찬양도 변해야 한다.
예배와 섬김이란 그 대상의 성품을 닮고, 그 대상의 운명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는 그 대상에게 나아가는 것이며, 만나는 것이고, 그 대상의 것이 내게 들어오는 것이다.
그 대상과 내가 일체가 되는 것이다.
제9장 청원기도
청원기도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청원이 기도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청원기도는 많으나 응답을 받지 못한다.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
예수의 이름으로 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의미는 우리 마음대로 청원하고 마지막에 예수의 이름을 뒤에 붙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기도하는 것처럼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원기도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도 청원기도를 하셨고, 하나님은 그 청원기도를 다 들어주셨다.
이것이 우리의 청원기도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왕에 기도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 받아야만 하겠다는 자세가 되었을 때에 청원기도를 하라.
1. 청원기도의 모형: 눅11:5-7
1) 정당한 것, 필수적인 것을 간구해야 한다.
기도는 자기주장의 발표나,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2) 상대방과 나의 관계가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끈질기게, 믿음으로 청원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상대방과의 관계부터 정상화시키라.
떡보다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
그분에 대한 신뢰심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무시되고 그냥 빌면 된다는 개념은 버려야한다.
관계만 잘되어 있으면 구하지 않아도 주신다.
떡을 강조하기보다, 친구를 깨우는 일, 즉 관계성에 집중하라.
3) 먼저 성령님을 간구하라.
성령님을 요청하라.
문을 두드리라.
4) 청원하는 물질에 집중하지 말고 청원대상에게 집중하라.
'당신이 원하시면'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라.
5) 항구적으로 간구하라.
이 말은 기대를 가지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있으라는 것이다.
장시간 똑같은 기도를 계속하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지 않고, 짧지만 지속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되어 있기만 하면 나의 청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두드리면 일어난다는 신뢰를 가지고 있으면 계속 두드릴 수 있다.
그러므로 항구적이라는 말은 짧지만, 자주,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간구하라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있으면 기도하는대로 응답을 받아낼 수 있다.
2. 계속 기도하라
1) 구한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기도하는 항구적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2) 기도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그 대가로 말미암아 가치 있는 것을 그로부터 받는 것이다.
3. 먼저 구해야 할 것
무엇을 달라고 하는 청원기도에서도 가장 먼저 간구해야 하는 것은 역시 성령의 임재, 충만, 교통함이다.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이것은 생명이다.
성령의 교통하심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길이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 전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안에 계신 성령의 충만을 구하는 것이 응답받는 기도, 바른 기도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내안에,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 이것이 모든 기도의 기본이다.
우리가 주의 마음을 가지는 이것이 기도의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이기적인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
이것만 되면 아무리 짧은 기도라도 응답된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 나를 주님에게 드리는 것, 예수님이 나의 모든 것, 내가 무엇을 구하겠나이까, 나를 드리겠나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하나이다' 라는 간구야말로 응답받는 기도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보다, 하나님 그 자체를 원하는 기도를 하라.
'무엇을 주고 안주고가 나의 관심이 아니라, 나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전부입니다.
내가 더 무엇을 간구하겠나이까, 내가 당신에게 드려야지요.' 이렇게 드리는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라.
얻어내려고 애쓰지 말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쓰는 기도를 하라.
그리고 마지막에 짧게 간구내용을 붙이라.
기도의 핵심은 '내가 주안에, 주께서 내안에' 로 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하는 부연기도에 청원내용을 담으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이 나를 믿지 못하심으로 나에게 무엇을 주시지 못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나를 믿게 하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서 무엇을 주시게 하라.
하나님의 팔을 비틀지 말고 하나님이 주고 싶어서 못 견디게 하라.
어떻게 하면 이렇게 될 것인가?
내가 주님안에 거하고 주님이 내안에 거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그분에게 드리고, 그분의 마음을 내가 가지고, 그분과 내가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분의 마음을 내가 알고, 내 마음을 그분이 알게 되는 것, 부부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만나면 그렇게 된다.
자꾸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라.
하나님과 자꾸 접촉해야 한다.
이성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내 심령과 하나님의 영이 만날 때, 진실한 만남이 된다.
이성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머릿속에 있는 지식이요, 생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에 있는 지식은 삶이 된다.
그러므로 마음이 우리의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머릿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식이 마음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도 없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것이다.
내 백성이 망하게 되는 것이다.
머릿속의 지식을 마음의 지식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의 기도의 역할이다.
믿음을 마음에 집어넣는 것이다.
마음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껴야, 하나님을 마음으로 만나야, 진정 그분을 위해서 살리라는 결단, 용기, 신뢰, 사랑, 능력이 나오게 된다.
삶이 나오게 된다. 산 지식이 된다.
기도는 머릿속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
실생활, 삶에서 나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오직 마음의 기도로만 가능하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
오직 마음으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실제적인 문제는 머리나 육체가 아니라 마음에 있다.
고통의 집합장소, 능력의 집합장소, 하나님의 은혜의 장소, 변화의 장소, 구원의 장소가 바로 마음이다.
마음을 치료하고,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살아간다.
현실의 삶이, 고통하는 내 마음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산다. 마음의 평강, 하나님의 은총이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주님 안에 우리가 거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것, 주님을 만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간구하라.
힘을 빼라. 목 말라해라.
바짝 마른 스폰지가 되라.
가난한 아이가 되라.
그분이 도와주셔야만 사는 존재가 되라.
그래야 내가 강하고, 그래야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들어온다.
하나님의 은혜는 긍휼쪽으로, 연약한 쪽으로, 빈마음 쪽으로, 겸손한 마음, 가난한 마음! 빈 그릇쪽으로 흐른다.
이 마음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찾으라.
주님의 은혜를 담을 수 있는 빈그릇 으로 만들어놓고 구하라.
그리하면 주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는다.
4.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기도는 응답받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에게 열심히 기도했지만 응답받지 못한 것으로 원망을 일으킨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 보기 전에 먼저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1) 이기적, 정욕에 쓰려는 기도
2) 인간 중심적 기도
3) 조건부, 흥정하는 식의 기도
제10장 기도해야 할 문제들
우리가 믿음으로 변화받지 못하면 세상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기도로 성품이 변화되어야 한다.
기도 속에서 주님과의 깊은 교제가 없으면 영적인 힘을 잃는다.
세상에게 밀리게 된다.
기도를 통한 성령 안에서의 사역만이 세상을 이긴다.
믿음생활의 모든 부분이 기도와 연결된다.
영적인 생활, 성품, 삶, 대인관계 등 모든 인격적인 부분이 기도로 변화된다.
1) 마5:44, 눅6:28 원수와 핍박하는 자, 모욕하는 자: 이것은 나의 자유를 위한 것이다.
내가 미움의 감정으로부터 자유케 된다.
이러한 기도가 없으면 내 마음에 저주와 미움의 쓴 뿌리가 나고 꽃피게 된다.
계속 나를 괴롭히게 된다.
이들을 위한 공격적인 기도를 해야 승리한다.
내 마음에서 저주와 미움을 쫓아내라.
2) 마21:13 하나님의 집: 우리의 마음, 우리의 몸이 바로 성령님이 계시는 곳이요, 기도하는 집이다.
내 마음을 위하여 기도하라.
이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속을 강도의 굴혈, 마귀의 굴혈로 만든 것이다.
그 속에서 늘 더럽고 쓴 물이 올라오게 내버려두는 것이요, 아픔을 방치하는 것이다.
3) 마26:41 시험에 들지 않도록: 누구나 자기의 약한 부분을 잘 안다.
그 약한 부분에 시험이 찾아온다는 것을 안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그 약점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약한 부분을 위해 미리미리 기도하라.
4) 막11:25 용서: 용서를 습관화 시키라.
사람들을 풀어주라.
이런 것들로 사람들을 묶어놓지 말라.
용서하지 않는 것은 결국 나를 묶어놓는 것이다.
기도를 막고, 영적 기도를 막는 것이다.
기도하려고 애쓰기보다, 기도를 방해하는 요소인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하라.
5) 눅18:1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 것: 사람의 심성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점점 예민해지고, 수용력이 약해지고, 부정적으로 되어간다.
기도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라.
6) 눅21:34 될 수 있으면 멀리 있는 것을 위하여 기도하라: 미리 기도하라. 멀리보고 화살을 쏘라.
예수님 앞에 서 있을 나의 모습을 위하여 기도하라.
7) 눅22:32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믿음은 내버려두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고, 밑으로 자꾸 떨어진다.
기도로 주님을 자꾸 만나고, 체험하고, 내안으로 주님을 자꾸 이끌어 들임으로 믿음을 밑에 묻어두지 말고 삶속으로 끌어 올리라.
기도로 보이지 않는 내면에 묻혀있는 믿음을 나의 삶, 영-혼-육으로 끌어올리라.
이렇게 삶으로 올라오는 것이 바로 살아 있는 믿음이다.
이를 위해서 나의 내면이 활성화 되어 있어야 한다.
나의 믿음이 굳은 내면으로 말미암아 밑에 갇혀 있으면 죽은 믿음이다.
믿음을 파묻어놓고, 눈에 보이는 감각적인 것만 붙잡고 살면 믿음은 점점 갇히고, 파묻히고 굳어진다.
성령의 도우심과 기도로 믿음이 올라올 통로를 확보하라.
심령은 내안에 있는 또 다른 인격체이다.
심령을 자꾸 살리면 심령이 살아서 계속 나를 위해서 기도한다.
그래서 성령을 자꾸 만나게 된다.
성령의 힘을 얻게 된다.
믿음을 끌어 올리라.
이를 위해서 기도하라.
주님을 만나라. 주님과 교제하라.
믿음이 떨어지면 다 떨어지는 것이다.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믿음만 있으면 다 있는 것이다.
이성과 육성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성장이 멈추지만, 영성은 성장에 한계가 없다.
성령님을 의지하는 기도로 영성을 계속 성장시키라.
믿음을 성장시키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은총이 점점 나에게 임하게 되고, 심령을 살리게 되고, 영-혼-육-삶이 새롭게 되고, 강건하게 된다.
8) 행1:14 성령 충만을 위하여: 이를 위하여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라.
9) 행8:22 회개: 회개를 위하여 늘 깊은 기도를 해야 한다.
미움과 증오는 항상 깊은 곳에 숨어 있으므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무의식에 숨어 있다.
그러므로 기도를 깊은 차원에서 해야만 이긴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야만 가능하다.
기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깊어야 한다.
성령님은 우리를 깊은 곳으로 인도하신다.
성령님과 함께 그런 부분을 공격하라.
10) 엡6:18 성령 안에서: 성령으로 기도하라.
이를 간구하라.
사모하라.
목말라하라.
11) 빌4:6 염려: 염려 속에서 기도하면 안 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를 반복하는 기도를 하라.
어휘를 자꾸 바꾸어 가면서 반복하라.
염려 속에서 하는 기도는 이미 늦은 것이다.
염려할 일이 다가와도, 염려 속에 빠지지 말라.
빠지면 기도할 수 없다.
이를 위하여 평소에 기도해 놓으라.
마음이 약한 사람이 화를 잘 낸다.
상처받기가 두려움으로, 방어본능으로 화를 내고 염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염려하고 있는 염려의 생각을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안이 찾아오고, 그 다음에 염려할 일이 사라진다.
염려할 일이 문제가 아니라, 염려하는 마음이 문제이다.
염려하기 쉬운 마음을 위하여 기도하라.
마음으로부터 사건을 먼저 공격하고, 마음으로부터 먼저 승리해야한다.
'내면의 평안을 주세요, 담대함을 주세요.' 늘 그렇게 기도하라.
12) 골4:2 감사: 감사는 우리의 마음을 담대케 만들어주고, 하나님의 능력을 마음에 채워놓게 한다.
감사하는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좋은 것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놓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기초석이다.
13) 딤전4:4 거룩: 기도로 자꾸 하나님을 만남으로 자연히 거룩하여진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내 안으로, 내 심령으로 흘러들어오게 된다.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전하는 거룩한 설교는 설교와 함께 하나님의 은총과 거룩함이 성도들에게 흘러들어간다.
기도로 채워진 것은 자연히 밖으로 흘러나오게 되어 있다.
꽃향기가 흘러나와서 다른 사람의 코로 들어가 기분좋게 하고, 온몸을 순화시키는 것과 같이,
안에서 흘러나오는 거룩한 것이 영의 생명력이 되어 전달되고, 그것이 다시 혼-육을 거쳐 삶의 생명력이 된다.
그러면 깨어난 심령이 점점 삶을 주관하고 다스리게 된다.
기도하면서 자게 되면, 영은 잠들지 않고 계속 기도함으로 쉬지않고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내 영이 주님의 마음으로 가득하게 되며, 주님과 내가 마음으로 하나가 되고, 주님과 내가 마음으로 합하게 된다.
이것이 기도이다.
14) 약5:13,15,16,17; 눅22:32 고난 당하는 자, 병든 자, 형제를 위하여: 이들을 위하여 간절히, 정말 간이 저리도록 깊게 기도하라.
자꾸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훈련을 하라.
그러면 점점 신유의 능력이 생긴다.
병든 사람에게 주사약이 들어가듯 이들을 위하여 기도를 함으로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흘러들어가,
그 사람속의 아픈 곳을 찾아 들어간다.
이것이 신유의 능력이다.
기도함으로 이러한 은사가 나타난다.
우리는 누구나 이러한 신유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도를 쉬는 것이 죄요, 기도를 그치는 순간에 죄가 바로 들어오는 것이다.(삼상12:23)
15) 유1:20, 눅11:13 성령을 위하여: 성령의 임재, 충만을 위하여 기도하라.
성령을 자꾸 찾고 간구하라.
16) 벧전4:7, 막14:38 시험에 들지않게: 시험에 든 것 가지고 고통하지 말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하여 기도하라.
누구나 시험에 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시험을 이길 수 있기 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라.
약점은 누구에게나 있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기도하라.
강점도 교만의 시험이 들 수 있다.
이것을 위해서도 기도하라.
기도는 예방주사와 같이 약점이나 강점이라는 시험을 위해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다.
기도로 시험에 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기도는 과거의 상처를 치료하기만 할 뿐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도 준비하는 것이다.
영적인 기도는 시간의 벽을 초월하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미래를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영적인 사람은 미래를 얼마든지 지금 건설할 수 있다.
영적인 기도로 내 인생길을 만들어간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꿈을 이루어주시는데, 그 꿈을 이루는 길이 바로 영적인 기도이다.
영적인 기도로 환경을 지배하고, 변화시키라.
기도로 충분히 준비된 사람을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신다.
17) 눅10:2 추수할 일군: 성령사역을 할 수 있는 더 많은 사역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하라.
18) 대하7:14 황무한 땅과 환경을 위하여 기도하라.
19) 마26:39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기도하라.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는 결코 내가 행복해지지 않는다.
나를 향한 아버지의 뜻을 받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다.
내 뜻을 하나님께 알리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받아들이기 위하여 기도하라.
20) 눅21:36 인자 앞에 서기 위하여 기도하라.
인생의 마지막 목표는 주님 앞에 서는 것이다.
이것이 삶의 목표, 기도의 목표, 기도의 골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에 우리가 받은 물질, 시간, 삶, 은사, 이 모든 것을 주님앞에 보여드려야 한다.
이 땅에서 내가 무엇을 더 가지느냐 못가지느냐 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는 것,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이 땅에서 무엇을 더 가지고자 함이 아니라, 인자앞에 서는 것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살아있는 동안에 기도로 우리를 가다듬으라.
우리 삶을 변화시키라.
기도로 성령의 은혜를 많이 받으라.
기도로 복된 삶, 열매맺는 삶을 살라.
죽으면 다시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
제11장 기도의 구분
기도에 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라.
깨뜨리라. 믿는 것과 아는 것,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
진정한 크리스챤은 단지 하나님을 믿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수준에 이른 사람이다.
1. 구도(口禱)
생각, 머리, 입에서 나오는 말로 하는 기도이다. 기도문, 제목에 의한 기도, 특정한 목적을 위한 기도, 대표기도, 합심기도가 이에 해당한다.
2. 심도(心禱)
마음으로 하는 기도이다. 형식이나 의식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 깊은 곳에서 드리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을 밝히 보신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에 있는 것이 마음에 전달되고, 마음에 있는 것이 생각에 전달되고, 생각에 있는 것이 다시 말로 전달되어 표현되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상실되어 버린다.
최종적으로 말로 표현되는 것으로는 마음에 있는 것을 다 표현할 수 없다.
어린 아기의 마음을 읽는 엄마처럼, 엄마에게 말이 아니라도 자신을 표현하는 아기처럼 하는 것이 심도이다.
오랜 시간 하는 구도보다는 짧은 심도가 더 중요하다.
심도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간단한 말, 단순한 말로 한다.
생각을 섞지 말고 마음을 아주 간단한 말에 담아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흙으로 인간을 만들고 하나님의 성품인 영성을 넣어주셨다.
그런데 그것이 죄로 말미암아 잃게 되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얻은 크리스챤들은 바로 이 영이 살아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영성이 충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다시 오신 성령님을 흙으로 된 우리 몸에 충만하게 담아야 한다.
구원을 얻을 때는 성령님이 우리를 찾아 오셨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 속에 오신 성령님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영성의 회복이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이론으로는 되지 않는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에게 그동안 때가 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 때를 벗기기만 하면 지금도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교회성장 프로그램같은 것으로는 이제 안 된다.
건물이나, 성도의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
이제는 내적인 성장이 더 중요하다.
초대교회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초대교회의 사도같은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도를 회복해야 한다.
마냥 달라고만 하는, 부르짖는 기도에서 영적기도로 돌아서야 한다.
성도들이 직접 하나님과 만나는 기도로 돌아가야 한다.
성도를 목회자의 종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기도는 목회사역의 생명력이다.
앞으로 기도로 영적세계에 대하여 뚫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을 풀어줄 영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도는 훈련이 있어야 한다.
머리는 기능적인 부분이다.
모든 일을 머리로만, 기능적인 부분으로만 살려고 하지 말라.
그럴수록 머리가 아파진다.
기도를 통하여 마음을 훈련시켜, 마음으로 살려고 하라.
마음을 활동시키라.
마음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사귐의 장소이다.
묵상을 통하여, 침묵의 기도를 통하여 마음을 살리라.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이 묵상과 침묵을 통하여 내면을 치유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를 훈련하라.
마음이 내 삶을 지배하게 하라.
심령이 내 삶을 지배하게 되면, 하나님이 내 삶을 지배하게 된다.
전에는 마귀가 내 삶을 지배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다스리게 된다.
하나님의 지혜가 솟아오르고, 능력이 넘쳐나게 된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단계에만 머무르지 말라.
그 다음의 화평의 단계에 이르려고 노력하라.
그리고 다시 거기서 일치의 단계에까지 이르려고 나아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평의 단계에서 일치가 아니라, 일의 단계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일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 교제의 관계가 되기를 원하신다.
마르다는 주님과 일을 통하여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만, 주님께서는 사랑의 관계를 가지려는 마리아를 더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
이것이 또한 바리새인들의 문제였다.
이들은 하나님과 일의 관계, 행위의 관계를 가지려고 하였지, 사랑의 관계를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상은 이런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마지막에 주님을 위하여 생명까지도 깨뜨릴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일을 맡기시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
주님을 깊이 알기 전에 일하려고 하지 말라.
주님과의 관계를 일의 관계로 맺으려고 하지 말라.
사랑의 관계, 주님이 없으면 못사는 관계, 주님이 나를 믿는 관계, 이런 관계를 맺으라.
잘못된 관계에 머무르지 말라.
적당한 수준의 관계에 머물러 있지 말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관계, 하나님과 사랑으로 손잡고 일하는 관계로 나아가라.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손잡으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깊은 교제가 우선이다.
이를 위하여 기다리라.
관계를 위하여 먼저 시간을 보내고, 노력하라. 하나님을 알려고 하라.
이를 위하여 기다릴 줄을 알라.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의 일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해야만 한다.
그래야 인간의 범위를 초월하는 것을 할 수가 있다.
그래야 하나님의 생명력이 넘치는 일을 할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다.
그래야 참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포도나무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열매를 맺어야 참 열매가 된다.
외부적인 환경과 분리되고, 평안을 느끼고, 그 중에 짧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깊은 은혜를 느끼게 된다.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씀을 듣는 차원은 너무 낮다.
귀로 듣고, 이성으로 듣는다.
그리고 머리로 분석, 판단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영은 눌려 있고, 잠자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영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의 영을 깨우는가?
입술의 기도, 말의 기도가 아니라, 영적기도로 깨운다.
영이 잠든 상태로 드리는 예배는 아무 소용도 없다.
이러한 예배는 굳은 신앙, 죽은 신앙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신앙과 삶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영이 질식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심도를 통해서 영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영을 활성화시켜야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 있다.
우리 영이 잠자고 있으면 성령님도 잠잘 수밖에 없다.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성령이 활동하지 않으면 마귀가 이성을 통해서, 본능을 통해서 우리를 우겨싸고 덤벼든다.
1) 일반적 심도: 묵상(Q.T) - 명상 - 침묵기도를 말한다.
이 단계를 넘어가면 깊은 영적 기도인 신비적 심도의 단계로(수도원에서 7-8년의 수련으로 가능한 수준) 들어간다.
2) 신비적 심도: 능동적 관상기도와 수동적 관상기도를 말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대하고 하는 기도이다.
(1) 능동적 관상기도: 하나님을 독대하는 심도로서 내가 주님을 찾아가는 기도를 말한다.
이 단계를 넘어가면 수동적 심도의 단계로 들어간다.
(2) 수동적 관상기도: 주님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지 예수님을 느낄 수 있고, 주님이 나를 찾아오시는 수준의 심도이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주 가까움으로 주님이 나를 찾아오시는 것이다.
기도가 나의 한 부분이 되고, 호흡처럼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완성이다.
이 땅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수준의 기도이다.
이정도 수준이면 영-심리-현실적인 모든 부분에서 윤택해지고, 자유해지고, 풍성하게 된다.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하게 채워지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바로 이러한 심도를 함으로 순교까지도 기쁘게 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이 땅과 천국은 바로 문 하나 건너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비록 이들에게는 조직도 없었고, 목회자도 없었지만, 강한 능력으로 신앙을 지킬 수가 있었다.
계속 마음으로 주님을 찾으면 어느 순간에 묵상-능동적 관상-수동적 관상 순으로 단계를 하나씩 넘어가게 된다.
이 단계가 되면 하나님과 뒹구는 기분으로 밤을 새우더라도 모른다.
그러면서 자신이 치유를 받는 것이다. 주님이라고 부르면 바로 이 단계로 들어간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다.
이 수준이 되면 사랑하는 분과 함께 뒹구는 시간이므로 기도하는 시간이 즐겁다.
이러한 시간이 있어야 풍성하게 받게 된다.
하나님과 독대하라. 이것이 진짜 기도이고, 이것이 진짜 보화이다.
그 속에서 많은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내가 어디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되며, 내가 주님 품에 푹 안기게 됨으로 세상과 내가 간곳이 없게 되고,
그 기쁨이 터질 것 같으며, 시간을 초월하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신앙이 바로 서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면서 점점 하나님의 것이 내게로 들어온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로 흘러들어오고, 이것이 다시 내게서 사람들에게로 흘러 나가게 된다.
사도바울의 3년 공백이 바로 이 기간이었다.
이 기도는 진정 귀한 보배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관상기도를 했기 때문에 생명을 !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3. 묵상기도
1) 단순묵상: 언어나 다른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기도로서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다.
세상은 육체의 본능과 이성을 자극함으로 자연히 이 부분이 활성화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쪽이 활성화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기도로 이 벽을 넘어야 한다.
묵상기도는 절대로 시간낭비가 아니다.
묵상기도는 비록 제목기도가 아니라도 절대로 시간낭비가 아니다.
잠자는 것이 시간낭비가 아니듯, 묵상기도에서 제목기도를 아니했더라도 오히려 우리의 영을 강하게 하는 매우 유익한 것이다.
묵상기도, 영적기도, 관상기도, 이 모든 것이 매우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어머니 품안의 갓난아이들은 잠을 많이 자면서 순진하고, 맑게 자란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린 아이가 되라고 하신다.
순수해지고, 단순해지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이다.
세상에 영향을 받지 말고, 복잡해지지 말며, 혼잡해지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런 상태의 훈련을 받아야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을 수는 있으나,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기는 어렵다.
단순 묵상 기도속에서 하는 대부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다.
우리의 이성은 사랑의 기능이 없다.
사랑은 심령이 하는 것이다.
굳어진 심령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내면이 깨어나야만 한다.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까?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이 많은데, 그것을 어떻게 받을까?
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냥 수박 겉핥기 식의 관계였는데,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면, 그 동안의 많은 스트레스, 고정관념들, 불안들이 치유가 된다.
전에는 내 차원에서 다 해결하려고 함으로 힘이 들었지만, 이제는 더 깊은 차원에서 해결함으로 자연스럽게 된다.
2) 추리묵상: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상상을 통해서 머리 속에서 영상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차츰 상상한대로 좋은 상황이 일어난다.
나의 변화된 모습을 상상하라.
정결해져 있는 모습,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포용해주는 모습, 하나님께 헌신하는 모습,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으면서 그 모습을 영상화하라.
그 모습에서 하나님을 만나라.
이러한 기도는 진실로 보물창고이다.
이러한 묵상기도의 바다는 깊고 넓다.
들어갈수록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 꺼낼 수가 있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할 경우:
(1)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시는 예수님.
(2) 수모 당하시는 예수님.
(3) 베드로의 나타남과 3번 부인.
(4) 빌라도의 궁전 - 채찍 맞아 괴로워하시는 예수님.
(5)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시는 예수님.
(6) 힘에 부쳐서 쓰러지는 예수님.
(7) 골고다 언덕에서 못 박히시는 예수님.
(8) 인간들을 보면서 죄 용서를 구하시는 예수님.
(9) 군중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시는 예수님.
단순히 사건만을 묵상하지 말고, 나와의 관계, 이유, 삶의 적용, 사건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
3) 대화묵상: 부부나 친구가 마주 앉아서 대화하는 것처럼 묵상 중에 주님과 대화하는 기도이다.
진실하고 순수한 믿음으로 하나님이 지금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계심을 믿고
진실하게 고백, 회개하며, 마음으로 그분의 반응, 응답을 받는 것이다.
실제적인 일을 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라.
하나님의 결정, 하나님의 의견, 하나님의 뜻을 받게 된다.
그 일과 나를 분리시키라. 3자의 위치에 서게 하라. 그리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뜻을 받게 된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결정은 감정으로 처리하지 않고, 깊은 묵상 중에 하나님의 뜻을 받은 후에 내린 것이다.
깊은 묵상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게 해준다.
4) 복음묵상: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말씀에 깊이 잠기어서 말씀의 참뜻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이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깊이 음미할 때, 같은 단어를 여러 가지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함으로 그 내용을 나의 마음에 자꾸 더 확실하게 심어주고 새겨주는 것이다.
제12장 침묵과 고독의 훈련
한국기독교의 치유는 우리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무속적이고 기복적인 부분을 깨뜨려야 한다.
기도로부터 시작하여야한다.
이러한 기도는 지속적으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모여서 하는 기도보다 개인적으로 하는 기도, 말은 많지 않아도 중심으로 하는 기도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문제가 없어도, 습관적으로, 생활의 일부분으로 개인적인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1) 말을 많이 하고, 기도에 시간을 많이 써야 기도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라.
침묵은 말을 하지 않고, 주님을 계속 찾는 것이다.
기도할 때,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
말로 기도하려고 하지 말라.
말이 기도를 끌고 나가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침묵과 고독의 훈련은 이 소란하고 바쁘고 혼탁한 시대속에서 우리의 정체감을 회복함에 필수적이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찾아야 만이 우리의 정체감을 찾을 수 있다.
2) 현대교회는 말을 너무 잘하고 많이 한다.
그래서 교회에 문제가 생기고 교인사이에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살며, 말을 많이 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혼잡함과 시끄러움, 소음, 기계에 둘러싸여서 생활을 하고 집에 와서도 가족의 문제, TV의 포로가 되어서 진정한 의미의 휴식을 누리지 못한다.
현대를 살고 있는 어느 누구도 이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다.
이로 말미암아 혼탁, 혼잡, 시끄러움, 복잡함. 짜증, 분노, 혼돈, 무질서가 우리 사회의 성격이 되었고, 이것이 다시 인간의 성품에 젖어들게 되었다.
현대인과 사회에서 정서와 낭만, 평안함이 사라지게 되었다.
마귀는 이처럼 인간과 사회를 파괴하고 있다.
3) 그러면 그 대책은 무엇인가?
현대사회로부터 밀려오는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킴으로 이 영향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자신을 분리시킬 것인가?
장소가 아니라, 내면이다.
영혼을 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잠자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잠을 자더라도 육신은 쉴지 몰라도 마음은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무거운 것은 아무리 잠을 자도 소용이 없다.
이것은 오직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움으로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명상이며, 영적기도이다.
4) 동방의 명상은 마음을 비우는데 있으나, 기독교의 명상은 마음을 비우고 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이다.
즉 기독교의 명상은 채우기 위해서 비우는 것이다.
이러한 묵상, 명상을 통하여 믿음의 선진들, 족장들, 다윗은 생명력을 얻고, 마음의 평온함과 마음의 치유를 얻었다.
5) 우리의 삶에서 슬쩍 지나가면서 보는 것, 듣는 것까지도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고, 상처를 준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매일매일 처리하지 못하고 마음에 쌓아놓으며 살고 있으므로 성품, 건강,
영적상태에 영향을 커다란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성령은 이러한 것들을 치우고 씻어내고 치료하시는 분이며, 기독교의 명상은 이러한 것들을 씻어내고, 치유하는 절차이다.
6) 이러한 명상은 단지 육체적 활동만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정신활동을 쉬고,
그 대신 아직까지 쉬고 있던 마음을 활동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명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가장 실제적이며 효과적인 휴식이 됨과 동시에 또 가장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며,
또 가장 효과적으로 성숙에 이르게 하는 훈련이되는 것이다.
명상은 하나님에 대한 다른 어떤 배움보다 더 하나님을 알게 배우게 해준다.
7) 눈을 뜨고 무엇을 보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생각이 흐르게 된다.
눈을 감으면 이러한 활동으로부터 해방된다.
눈을 감고 하나님을 묵상하라.
성령님께 의지하라.
뇌의 활동을 죽이고 마음의 활동, 영의 활동을 활성화시키라.
이때 얻는 평안함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꾸 이런 시간을 가지라.
8) 우리는 말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정작 해야 할 말, 마음의 말을 하지 못하며,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중요한 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
너무 많은 사물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가 보이지 않으며, 많은 것을 보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자신, 자신의 영적상태를 보지 못하고 산다.
군중속의 나, 사물속의 나, 환경속의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 앞의 나를 보라.
느끼라.
하나님을 발견함으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라.
이사람, 저사람 따라가다가 헤메고 살지 말라.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군중속의 나, 사람들 뒤를 따라가는 어리석은 길로 가지 말라.
깊은 기도로 하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라.
9) 조용히 있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곧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우리가 진정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
휴식의 개념을 오락, 잠자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휴식은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복잡하게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나아감으로 새롭게 발견하는 행위이다.
10) 침묵과 묵상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들을 수 있는 것:
침묵과 묵상은 눈을 감는 것이다.
눈을 뜨고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눈을 감고 나를 보고, 하나님을 보라. 나의 본질을 보라.
나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발견하라.
눈을 뜨면 길을 잃고, 눈을 감으면 길을 발견한다.
눈을 뜨면 걸어온 길을 못 보나, 감으면 본다.
눈을 감고 마음의 귀로 들으라.
(1)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이다.
밖으로 가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 지성소로,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2) 침묵 속에서, 어제와 내일 사이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영적인 사람이 되면 시간의 개념이 없어지게 된다.
과거를 새롭게 할 수 있고, 미래도 새롭게 건설하는 사람이 된다.
시간 속에서의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영적존재가 되는 것은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며, 내일을 착실하게 준비하고,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것이다.
(3) 높은 하늘과 땅 사이에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현실에서는 사람사이에서의 나밖에 볼 수 없다.
시간 속, 하늘과 땅 사이에서의 나, 역사 속에서의 나, 하나님의 사명,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뜻 안에서의 나 자신을 보지 못하고 영적으로 소경이 되어 헤메고 살고 있는 것이다.
(4)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말도 필요없는 시간, 그냥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 시간에 자신을 성찰하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다.
(5)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으며,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말을 하며,
사물을 통해서 깨닫지 못하는 진리를 깨달으며, 거울로 볼 수 없는 자신의 참모습을 보게 된다.
(6) 침묵은 하나님께 접근하는 첫걸음이다.
(7) 침묵은 자신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8) 침묵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다.
영적 공간, 무한한 공간, 무한한 에너지로 가득한 공간이다.
이것이 바로 천국에 가장 가까운 영적공간, 에너지공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 영이 활동하는 공간, 이것이 바로 4차원의 공간이다.
눈에 보이는 공간, 현실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공간, 무한한 에너지공간이 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라. 은혜의 공간이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그 공간에서 누리라.
(9) 침묵에서 새로운 말을 배운다.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다.
(10) 침묵은 기도이며, 평화이며, 자유함이다.
(11) 침묵은 가장 효과적인 휴식이다.
(12) 침묵은 우리를 온전케 하는 오솔길로 인도한다.
세상은 피곤케 하나, 침묵은 휴식케 한다.
(13) 침묵은 인간의 시야를 넓혀준다.
즉 하나님의 시야를 가지게 해준다.
하나님을 가지게 해준다.
세상은 보이는 것만 봄으로 시야를 좁혀준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은 더욱 자기중심적, 고집스러워진다.
새로운 것을 아이들은 수용하나 어른들은 수용하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 전부로 여기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새로운 세계를 봄으로 시야가 넓어진다.
영적인 세계는 무한히 넓다.
하나님과 통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 다음으로 좋은 특권인 이 영적 은혜를 훈련으로 풍성하게 누리라.
(14) 침묵할 때, 마음의 소리가 떠오른다.
(15) 침묵은 침묵으로만 이해된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기도로만 이해된다.
제13장 신비적 심도
구도보다 심도가 더 깊이가 있다.
구도로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거나 체험을 할 수가 없다.
감정과 이성의 수준에서 맴돌고 만다.
깊이 있는 기도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구도에서 심도로, 심도에서 신비적인 심도로 들어가서 영적기도를 해야 한다.
영적상태에서 하는 기도가 신비적 심도이다.
완전한 영적상태는 육신이 분리된 저 세상에서나 가능하지만, 여기서도 그 비슷한 상태까지는 갈 수 있다.
영적상태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귀중하다.
일반적인 심도는 QT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영적상태에 들어가서 하는 신비적 심도는 하나님의 은사가 필요하다.
은사는 자꾸 써야 발전한다.
자꾸 사용하라.
자꾸 영적상태로 들어가라.
일상생활의 바쁨에서 벗어나라.
바쁨에 빠져 있으면 영은 자꾸 죽어간다.
머리(이성, 정신)는 점점 빨라지고, 점점 무거워지고, 점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점점 조급해지게 된다.
자주 영적상태에 들어감으로 이것을 풀어주어야 한다.
잠자는 것으로는 풀어지지 않는다.
머리에 있는 무거움은 잠자는 것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밑으로 내려가 쌓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점점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영적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라. 심령을 정화하라.
뇌, 정신, 이성을 진정으로 쉬게 하고, 치유하라.
영적인 기도를 함으로 모든 일을 머리로 빠르게 반응하지 말고, 마음으로, 심령으로, 아이처럼 순수하게, 느리게, 둔하게 반응하라.
이것이 바로 조급한 성품이 온유한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주변에 없어도 외롭지 않고, 사람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평안하게 된다.
사람과 같이 있는 것보다 주님과 같이 있는 것을 더 즐기게 된다.
사람과 같이 있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마음이 피곤하고, 성령이 좋아하지 않으신다.
성령님은 성령님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하시고 기뻐하신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정체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과 같이 있으면 자기존재를 잃게 된다.
사람들에게 받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부여잡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 있고, 사명이 있는바, 영적기도를 통하여 그것을 발견해 내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가야 한다.
1. 영적 상태
정상상태: 뇌가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상태이다.
휴식, 산책, 음악감상, T.V를 볼 때: 육신이나 뇌나 약간 쉬는 것이다.
수면상태: 육체는 쉬나, 뇌는 아직도 완전히 쉬지 못하는 상태.
영적상태: 수면직전의 상태에서, 육신을 평안히 쉬는 상태에 놓고, 뇌는 아직 잠들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을 열어줌으로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만들어 놓은 상태. 이러한 상태가 영적상태이며,
이때에 내안에 계신 성령께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내면을 치유하신다.
수면상태에서도 일종의 치유가 일어나고 있지만, 진정한 치유는 영적상태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영적상태는 몸에 힘이 빠져 모든 것이 영에 이끌려 가는 상태이다.
이성과 육신은 아직은 깨어 있지만, 잠자는 상태처럼 힘을 잃고, 오직 영만 활성화되는 상태이다.
의식과 몸이 영과 분리된 상태이다.
의식이 아직 잠들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영적상태로 들어간다.
영적상태에서는 의식과 몸은 잠자는 상태와 똑 같으므로 피로회복의 효과는 깊은 수면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태를 자꾸 훈련하면, 밤에 잠을 자면서도 계속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된다.
영적인 상태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면에 들어가면 안 된다.
수면직전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영적인 것을 정리하는 묵상을 하루 한 시간씩 가지라.
영적상태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평강, 은총이 임하게 된다.
진정 편안함은 육체의 편안이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내면의 편안함이 문제다.
그러므로 영적상태를 자꾸 훈련함으로 내면에 하나님의 평안을 풍성하게 담으려고 하라.
자면서 영으로 하는 기도를 훈련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앞날을 위해서 기도하라.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영적상태의 훈련이 되면 나중에는 서서 눈을 감으면 바로 영적상태가 된다.
그리고 눈을 뜨고서도 기도한다.
소리를 들으면서도 기도한다.
성경을 보면서도 기도한다.
마음이 늘 하나님께로 가 있는 기도를 하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께 온전하게 집중하는 상태가 바로 진정한 영적상태이다.
육과 이성은 비활성화 되고 영만이 활성화 된 상태를 자주 만들라.
제1계명이 바로 이런 상태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만 활성화 되고, 세상에 대해서는 힘이 빠진 상태가 되라는 것이 제1계명의 뜻이다.
하나님을 향하여서만 활성화 되어 있는 영적상태에서 우리는 무의식속에 들어있는 아픔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아픔을 통과하여 그 아픔 너머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됨으로 아픔이 치유된다.
인간의 이성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게 될 때, 마음이 깨어지고 상처를 입고, 정신이 분열된다.
그러나 깊은 영적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힘을 얻으면, 이러한 모든 아픔은 치유되고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길수록, 아픔이 있을수록 자꾸 영적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훈련을 하라.
분리의 시간을 가지라.
이런 사람이 성공하고 승리한다.
영적상태에서 많은 시간을 지내라.
시간을 투자하려면 바로 이러한 시간에 투자하라.
1년만 힘들게 수고해 보라.
거기서 얻은 것으로 평생을 가는 것이다.
무한히 유용한 것이다.
영적인 부분을 개발하고 성장시키는데 노력하라.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하나님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과 하나가 되라.
영적상태에서의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과 연합하라.
포도나무와 가지가 되라.
사람을 찔러 변화시키는 지혜와 말씀이 흘러나온다.
성령님의 교통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상태에서 성령님과 함께 지냄으로 가능하다.
이 시간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영적상태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은 인생에서 무한히 유익한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이
를 위해서 노력하고 훈련하라.
2. 영적상태의 실천
혼자 있을 때
성령님을 먼저 요청하라
손을 가슴에 얹고
편안한 자세, 간편한 옷.
배가 고프지도 않고, 너무 부르지도 않은 상태
조용한 시간: 잠자기 직전, 직후의 1-2시간
부부가 같이 (서로 기도해 주면 더욱 좋다)
조용한 장소: 소파같은 곳, 약간 딱딱한 곳.
시작 전에 조용한 찬양을 하거나 들으라.
그러면서 성령님에게 집중하라.
성령님을 자꾸 찾으라.
단조롭게 성령님을 부르라.
도움을 요청하라. 감사와 사랑을 고백하라.
그러면서 가만히 있으라.
마음속에 성령님을 느끼라. 호흡이 약간 빨라진다.
긴장이 풀리면서 눈까풀이 떨거나 표정이 평안하게 된다.
약간 몽롱한 상태, 그러나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은 상태를 느낄 수 있게 된다.
포근함, 안락함, 짐을 내려놓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서 계속 성령님을 찾으라.
'성령님, 임하소서' 하고 자꾸 성령님을 부르라.
그러면서 시간의 개념으로부터 분리되라.
외부적인 감각이 꺼지면서 내면의 활동이 강하게 된다.
그 자체가 이미 기쁨이 넘치며 많은 은혜가 임하게 된다.
계속 감사의 표현, 치유의 간구를 하라.
영적상태에서 아픔과 설움 등이 올라오는 것은 내면이 치유함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은 이성과 본능으로 영위하다가, 생기는 모든 찌꺼기는 처리되지 않고 밑으로 밑으로 쌓이게 됨으로 마음이 무겁고 영이 눌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보상을 자꾸 밖에서 찾으려 하지만, 성령님은 안으로부터 이 모든 것을 치워 주신다.
깊은 속으로부터 이 모든 것을 밀어올려 씻어내시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3. 깊은 차원의 기도
1)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과의 연합, 일치됨이다.
이것이 신앙이고 기도이다.
이것이 천국이다.
그분의 이상, 뜻, 목적이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영적인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뜻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
교회사에서 큰 일을 한 사람들은 모두 영적인 기도를 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속에서 자꾸 캐어올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깊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육신을 입고 있으므로 완전한 연합은 불가능하나, 그래도 영적연합은 가능하다.
이것이 구원받음이고, 천국백성이 됨이다.
이것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기도의 목적이고, 신앙의 목적이다.
하나님과 하나됨이란 하나님의 목적, 뜻, 가치관, 철학이 내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모든 면에서 닮는 것이다.
일치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너무 현실적, 물질적, 저차원적이다.
우리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기도의 목적이다.
하나님을 닮아 겸손하고,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마음이 되려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다.
하나님을 닮는 것은 성품의 변화를 의미한다.
성품을 변화시키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변화시키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품의 변화로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
고전14:15 ...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생각과 마음은 연결된다.
영과 마음도 연결된다.
마음과 생각의 연결은 긴밀하나, 영과 마음의 연결은 둔하다.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훈련을 통하여 영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미하는 것이 깊은 기도, 깊은 찬미이다.
영의 기도로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은사중 가장 귀한 은사가 바로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은사는 인간끼리 하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은 그치는 날이 온다.
그러나 영으로 기도하는 은사는 천국에서 오히려 더 빛을 발하게 된다.
다른 은사로는 사람이 변하지 않지만, 영으로 기도하는 은사로 사람이 변한다.
영의 기도는 모든 은사의 근원이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귀한 은사이다.
영의 기도로 메시지를 받고,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라.
시16:7 밤마다 내 심장(영혼)이 나를 교훈하도다.
이러한 표현은 영의 기도를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너무 사실적이고 확실한 표현이다.
즉 다윗이 그렇게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영의 기도를 하였기 때문이다.
다윗과 다른 사람의 차이는 그가 영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였다는 것이다.
밤마다 하나님을 통해서 교훈을 받고 연합하는 체험을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다윗의 영적 비밀이었고,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다윗의 영적무기였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다윗처럼 잠자는 시간을 영적기도의 시간,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으로 활용하라.
이 얼마나 시간을 유용하게 쓰는 것인가!
얼마나 다른 사람보다 장수하고 있는가!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요동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이다.
밤마다 영적기도를 함으로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나님과 만나는 밤이 기다려지는 사람이 되라.
딱딱한 마루지만 양털같이 포근한 상태에서 천정이 열리고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과 대면하고 대화하는 상태가 되라.
밤새도록 하나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의 지혜를 받으라.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참고 인내하며 훈련하라.
시25:1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영적상태에서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우러러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훈련하라.
시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사모하는 자를 하나님은 반드시 만나주신다.
사랑의 고백의 기도를 하며 하나님을 사모하라.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라.
다윗은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늘 하나님을 찾았다.
그냥 찾은 것이 아니라, 목이 바짝 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 그렇게 찾았다.
이런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간다.
어린 아이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라.
가난하고 긍휼한 마음을 가지라.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높은 곳에는 물이 고이지 않지만, 낮은 곳, 빈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고 고인다.
늘 '당신으로, 주님 당신으로 채워주세요' 하고 배고픈 아이가 젖을 갈망하듯 그런 마음을 가지라.
늘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조건을 만들라.
은혜는 내가 끌어당길 수 없지만, 은혜가 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면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믿고 조건을 만드는 것이 믿음이다. 산 믿음이다.
시63: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영적상태에서 내 영혼이 실제로 주를 쳐다본다.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내 영혼이 하나님을 극진히 사모하는 것이다.
언제나 내 영혼으로 여호와를 기다리며 사모하라.
마음을 활짝 열고서 하나님을 바라라.
기다리라.
구원받음으로 새 인생을 살게 됨과 같이 내 영혼이 하나님을 만남으로 다시 새 인생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라.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이다.
시편은 이처럼 영의 기도를 기록한 것이다.
이런 기도를 자꾸 퍼뜨리라.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라.
2) 영의 기도는 기도문, 언어, 상상, 감정, 기도제목 등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없애고 직접 하나님을 직선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묵상에서 침묵으로, 침묵에서 영의 기도의 상태로 들어가라.
3) 영의 기도는 어떤 의식, 특정한 생각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상태도 아니고 정신이 없는 멍한 상태도 아니며,
뚜렷한 의식 중에서도 생각, 의지, 정신의 활동이 아닌 마음의 활동 상태에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상태가 되어야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게 된다.
영적상태에서 하는 기도는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주신다.
이렇게 모든 것을 주시려고 우리로 하여금 영적상태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다.
4) 영의 기도는 처음에 막연하고, 허무하고, 공백상태 같고, 시간낭비, 게으름같은 느낌을 가진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5) 평소에 삶의 대부분을 정신의 활동에 익숙해 왔기 때문에 마음의 활동이 무의미하거나,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꾸준히 계속하면 놀라울 정도의 영적발전을 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불씨를 얼마나 귀하게 간직하고 키우는가 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훈련이 중요하다.
절대로 중간에 훈련을 놓치지 말라.
영적기도는 참으로 신앙생활의 보물이요 금맥이다.
많은 것이 이 영적기도를 통해 온다.
성령과 교제하는 영의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깊이 들어가야 맑은 생수가 나오게 된다.
전에는 조금만 파도 되었으나, 이제는 오염되었으므로 깊이 파야한다.
깊이 파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라.
문제는 지속적인 훈련이다.
얼마나 계속하느냐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으로 계속하는 것이다.
6) 익숙해질 때까지 감각, 감정, 지성, 이성, 의지,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중지한 상태에서 기도하다보면,
자신의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새롭고 신비스러운 능력이 활동하며, 그러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적,
육체적 상처가 치유되며, 성품이 새로워지며, 삶의 소망과 기쁨이 넘치며, 영성이 발달되며 영감과 지혜가 발달되며,
신앙의 궁극적 목적인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된다.
7) 영의 기도는 기도 중에서 가장 높은 단계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며 축복이다.
가장 높은 은사이다.
가장 아끼는 은사, 내 생명과도 못 바꾸는 것으로 여기라.
8) 영적기도에 도달한 성도는 하나님을 깊이 이해하는 통찰력과 신뢰심이 커지며,
기도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더하게 되며, 어떤 시간보다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어지며, 사랑이 게속 깊어진다.
9) 영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의지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랑을 통한 만남을 가지게 된다.
10) 하나님 나라에 가기 전에 현세에서 가장 하나님과 가깝게 만나는 것이다.
11) 예수님의 마음인 겸손과 순결한 마음을 소유하게 하신다.
12) 영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다스리는 주체가 자신에게서 주님에게로 옮겨가게 된다.
내 자신이 점점 작아지며, 주님이 점점 내 안에서 커지게 된다.
이것이 '내가 주안에'의 의미이다.
이렇게 되면 성령님에 취해서, 성령님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목회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영적기도가 모든 것의 기본이다.
영적기도를 통하여 내외적 치유가 되고, 목회가 재미있게 된다.
영적기도를 하면 특별한 내적치유가 필요없게 된다.
은사가 흘러나오고,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게 된다.
물질까지도 풍성하게 된다.
삶의 에너지가 흘러넘치게 되는 것이다.
삶의 풍성함이 바로 영적기도에서 흘러나오게 된다.
영성-지혜-물질-건강-환경 모든 면에서 풍성하게 된다.
순교까지도 이해하게 된다.
예수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성품까지도 바꾸게 된다.
쓴 뿌리를 뽑아내고, 썩은 물을 쏟아내게 된다.
영적기도로 깊이, 밑으로, 안으로 파 들어가라.
파내려가면 평강과 기쁨과 자유함과 새로운 삶의 의미, 삶의 가치관이 솟아오른다.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영적기도는 열매 맺는 신앙생활의 필수이다.
열매맺는 성품으로 변화시켜 주는 것은 영적기도이다.
예수닮기 위한 필수 조건이 바로 영적기도이다.
사람이 노력하고 노력해도 안 되던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님의 은혜가 영적기도이다.
주님이 오셨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분을 놓쳤는가!
영적기도라는 하나님의 은총이 왔는데,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를 놓치고 있는가! 이것을 귀중하게 여기고, 끈질기게 훈련하라.
13) 복잡하게 사고하는 습관에서 단순함으로 옮겨진다.
14) 과거-현재-미래라는 기계적인 시간의 개념에서 하나님의 시간인 영원성의 개념을 가지게 해준다.
이 세상을 잠깐 지나는 터널로 볼 수 있게 해준다.
15) 현실이 실제적인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실제적으로 느끼며 사모하게 된다.
빨리 그 나라에 갈 것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 나라를 사모하게 된다.
하나님을 영적으로 자꾸 만나게 되면 그렇게 된다.
고통도 미워함도 털어버리고, 마음이 넓어지고 커진다.
16) 메마른 마음이 풍성하며 기름진 마음으로 변한다.
17) 전인격이 성령님의 지배와 다스림을 받는다.
18) 은사를 받으며 보유된 은사가 더욱 발전되며 풍성해진다.
19)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사람,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 가까이 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을 닮아갈 때 그렇게 된다.
20) 기도 시간이 나의 시간이기보다 그분의 시간이다.
21) 숨겨진 자아를 깨닫게 해준다.
22)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을 더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영적기도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아는 수준이 된다.
23) 하나님 사랑이 점점 더 강렬해진다.
순교적인 신앙인이 되어 간다.
24) 하나님의 성품이 내 안으로 들어와서 자신에게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한다.
25) 어머니가 가슴에 안고 있는 아기를 사랑과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또 아기는 자신에게 쏟아지듯이 내리는 어머니의 애정을 마음껏 받으면서
한없는 신뢰감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품안에서 즐기는 상태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버지라 부르는 진정한 상태이다.
26) 과거에 뿌린 아픈 씨앗을 정리하지 않고 살면, 소용이 없다.
운명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운명과 싸우려 하지 말고 내 자신과 싸우라.
그래서 좋은 씨앗을 뿌리며 살라.
태양을 향해, 밝은 빛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어둡게 살다가 갑자기 밝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현실이 어두워도 마음은 밝게 살 수 있다.
문제속에서도 우리의 관심은 안에 계신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문제를 물리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서 간구하라.
4. 예수 기도(화살기도)
영적기도가 원래의 기도였다.
그런데 기독교가 세속적이 되면서 기도도 세속적이 되었고 형식적이 되었고 입술의 말로만 하는 말잔치가 되어버렸다.
기도를 회복해야한다.
기도의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
영적기도를 하려고 하라.
예수 기도란 예수 이름을 부르며, 짧은 기도문을 가지고 계속해서 반복하는 기도이다.
마음의 기도를 하기 위해서 예수 이름을 부르며 정신과 마음을 분리시키는 기도이다.
관상기도를 위해서 아주 필요한 것이다.
막10:47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소경의 간구처럼 예수 이름을 부르며 간구하는 기도내용을 10자 내외로 압축시키라.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문은 간단하나 내용은 나의 진실한 마음이 담겨야 한다.
이러한 기도내용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기도를 시작하다가, 점
차 무의식 세계로 옮겨지며 훈련을 거치면서 깊은 내면으로 내려갈 수 있게 된다.
1) 심장기도
심장박동에 맞추어 예수 기도를 하는 것이다.
'예수여 나를 도우소서' 라는 기도문을 심장 박동에 맞춤으로 기도에 다른 생각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심장박동에 맞춤으로 생각과 마음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간단한 문장에 트럭에 짐을 실어보내 듯 문제를 실어서 주님에게 보내라.
(1) 자신의 심장박동에 정신을 집중하라.
(2) 손을 심장부분에 대어서 박동을 감지하라
(3) 심장의 박동에 한 단어 또는 절반을 실어서 마음으로 기도문을 외우라
(4) 기도문을 박동에 실어서 규칙적으로 기도하라. 짧게 또는 길게 하여도 무방하다.
2) 호흡기도
호흡에 맞추어 예수 기도를 하는 것이다.
호흡에 기도문을 맞춤으로 생각과 마음을 분리시키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숨을 들이쉬면서 한마디, 내쉬면서 한마디 이런 식으로 예수 기도를 호흡에 맞추어 하라.
영은 나(의식, 정신)와 다른 또 하나의 다른 인격이다.
성령의 임재 속에서 호흡기도, 화살기도를 하라. 설거지하면서, 청소하면서, 운전하면서,
다방에서 사람을 기다리면서 등등 언제나 영으로, 마음으로 예수 기도를 하는 훈련을 하라.
생각과 마음, 생각과 영을 분리하는 연습을 하라.
눈뜨고, 소리 듣고 활동하는 중에서도 영과 마음으로는 찬양하며, 영적기도를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이를 훈련하라.
성공과 실패여부는 오직 나의 훈련에 달려있다.
훈련에 임하는 나의 열의에 달려있다.
사람들과 대화하면서도,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영적찬양과 영적기도를 훈련하라. 연습하라.
머리, 생각, 마음을 늘 이러한 예수 기도로 채우라.
하나님으로 채우라.
훈련 시켜 놓으라.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아무 때나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어야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세상과 뒤엉켜서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
변화시킬 수 없다.
이런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믿음이 살아야 한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빠지지 않고 오직 주님에게만 빠지려고 노력하라.
왜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도와주시지 않으시겠는가?
신앙생활을 일상생활에서 해야한다.
이루어내야한다. 이를 위해서 성령님이 오셨다.
이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성령님이 오셨다.
24시간 영으로 기도하고, 24시간 영으로 찬양하게 하기 위해서 성령님이 오셨다.
도우시러 오셨다.
일상 생활중에서 영을 깨우라.
영을 살려서 영이 늘 활동하게 하라.
찬양하고 기도하게 하라.
영의 능력을 쓸 줄 아는 자가 되라.
성령님을 통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이런 사람이 되라.
이런 사람이 세상을 이기는 성공자가 된다.
그러므로 기도는 삶이다.
영의 능력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지만, 사용하고 활동시키는 이는 나이다.
내가 훈련을 통하여 영의 능력을 깨우고 활용하여야 한다.
이런 사람이 다윗과 같이 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계속 이를 위해서 노력하고 성장하라.
성령님의 능력은 이미 우리에게 와 있다.
이 능력을 쓰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개발하고 사용하는 훈련을 하라.
이 귀한 은혜와 능력을 헛되이 쏟아버리지 말고 활용하는 훈련을 하고 또 훈련하라.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영-혼-육을 활동시키라.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드리라.
성령님을 초청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찬양하고, 영적 기도하는 것이 바로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지고, 혼탁해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영적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할 필요가 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영혼육이 온전히 거룩하게 보존되어야 한다.
보존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성령님이 오셨다.
이를 위해서 성령님이 안에서 역사하신다.
내가 넘어지기 쉬운 부분에 성령님을 자꾸 끌어들여야 한다.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이 바로 영적전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무장해야한다.
늘 영으로 기도함으로 영을 깨워놓아야 한다.
기도는 훈련이다.
입술로만 찬양하거나 말하지 말고 마음으로, 영으로 찬양하고 말하라.
자기전의 영적기도로부터 시작하여 호흡 기도를 통한 일상생활에서의 영적기도,
그리고 전투상황에서의 영적기도, 이 모두를 철저하게 훈련하라.
영의 기도를 해놓고 심방하고 설교하라.
설교 전에 영의 기도를 하라.
처음에는 훈련이 힘들지만, 나중에는 기도가 나를, 영이 나를 훈련시킨다.
훈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라.
5. 기도의 신비체험
1) 영의 기도는 우리에게 신비의 체험을 선물로 준다.
영의 세계는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이다.
2) 영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접점이다.
육체가 신경계통을 통하여 감각을 전달해주는 것처럼 영도 접촉한 대상, 즉 하나님의 특성,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3)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특성, 성품이 은혜와 능력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며 이를 기도의 체험이라고 말한다.
4) 영적인 체험은 잘 인식, 교육되면 신앙적-정신적-육체적으로 매우 유익하다.
5) 체험의 결과로 하나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이해하며,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더 나아가 사랑의 관계로 발전된다.
체험은 일회적이나 교제는 지속적이다. 체험보다 교제를 하라.
6)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는 황홀감, 깊은 평화, 생수가 넘치는 것 같은 기쁨, 자유함을 느끼면 이러한 것은 4차원의 영적기도에서 체험하는 은사이다.
7) 영의 기도는 자신과 하나님이 내면의 차원에서 하나가 되는 상태이다.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것이 나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라.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을 수 있고, 그래야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8) 체험의 단계
(1) 하나님과 인격적, 실제적 만남의 단계: 처음에 기도할 때 하나님을 자꾸 느끼게 되며,
점점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을 가까이 느끼게 되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다.
하나님을 좀 더 분명하고 실체적인 존재로 느끼게 된다.
하나님께서 부인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나에게 다가오신다.
서로서로 알고, 대화하며, 뜻을 전달하고 교환하게 된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모든 면에서 나를 돕고 이끌어주신다.
(2) 자신이 하나님 안으로 이끌려 들어감: 자꾸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이 좋아지게 되고, 하나님께 끌리게 된다.
마음이 하나님에게 끌려들어간다.
하나님이 자꾸 좋아지고, 자꾸 기도하고 싶어진다.
(3) 하나님이 자신의 안으로 들어오심: 하나님이 내안으로 끌려 들어오신다.
하나님도 나를 좋아하심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내 심령과 하나님의 심령이 교통하게 된다.
영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며, 영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통 안에 있는 스폰지처럼 그러면서 영적인 진리가 깨달아진다.
(4) 자신에게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남: 하나님과 내 영이 하나가 될 때, 성품의 개조, 성품의 변화가 시작된다.
하나님과 내가 분리되어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의 깊은 곳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마귀가 우리에게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나의 변화, 성품의 변화로 드디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제는 어지간한 일로는 화를 내지 않게 되며, 툭 털어버릴 수 있게 된다.
내 마음이 하나님으로 채워짐으로, 하나님의 성품이 나를 통하여 표현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성품을 통하여 하나님이 표현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기도에 있어서 진정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성품의 변화이다.
하나님을 만날 때 나를 알게 되며, 하나님 안으로 이끌려 들어갈 때, 나의 허물과 죄를 깨닫게 되며,
하나님이 내 안으로 들어오실 때, 하나님의 성품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드디어 영적인 부분의 주님이, 진정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인 기도의 마지막 단계이다.
제14장 기도와 삶의 관계
1) 기도와 삶은 구분되거나 삶의 한 부분이 아니며, 삶을 영위하는 수단이나 방법도 아니다.
기도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잘못이다.
신앙생활이 바로 기도생활이다.
2) 기도는 삶 자체, 전부이며, 삶의 모든 것의 중심이다. 삶이 바로 기도이다.
삶은 영과 마음으로 하나님과 기도하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고,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 그 뜻을 이성과 육에 담아서 이루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의 어느 하나라도 깨어지는 것은 삶에 실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공하는 삶은 기도가 모든 것의 중심이다.
영적인 것과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이 연결되어 있다.
기도는 생활의 첫 번째 자리에 있어야 하며, 모든 것을 마감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비어있을 때, 거기에 하나님을 채우라.
하나님을 생각 속에 모시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라.
일상생활 중에서도 끊임없이 영적기도를 하라.
그리고 하루를 끝낼 때도 기도로 끝내라.
기도로 잠들라.
기도가 나를 이끌고 나는 그 뒤를 따르는 삶이 되라.
기도가 우리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기도하며 살다가 기도하며 삶을 마칠 수 있어야 한다.
'기도하다가 이 세상을 떠나가게 하소서' 하고 미리미리 준비하라.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으로 인도를 받는 이들이다.
삶의 모든 부분에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것은 오직 기도로만 가능하다.
이러한 기도의 훈련을 하라.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기도가 아니면 안 된다.
3) 기도는 어제와 오늘을 연결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변환 점에 있어야 한다.
변화를 기도로 이루어가야 한다.
좌절에서 희망으로, 한숨과 탄식을 찬양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이며 무익한 자가 유익한 자로 변할 수 있는 길이다.
사건이나 문제가 나를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좌절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이를 하나님은 전혀 도우실 수가 없다.
도우실 조건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얼른 성령이 도우실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요청하라.
그러면 성령의 평안함이 밀려 올라온다.
그러면 기도하라.
불안할 때 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불안하면 마귀밖에 역사할 수 없다.
그리고 실제의 삶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요청하라.
기도는 우리의 내적 상태를 평안함으로 바꾸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이 역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기적은 안에서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내적 관리를 잘하면 기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내적관리로 늘 마음을 평안하게 유지하라.
맑게 유지하라.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게 하라.
기도로 내적관리를 철저하게 하라.
그래야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밖에 있는 문제를 밖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라.
안에 있는 무한한 능력으로 이기려고 하라.
이를 위해서 평소에 내면을 잘 관리해두는 것이 영적기도이다.
이러한 영적기도가 승리하는 삶의 자세, 삶의 방법이다.
기도는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며, 삶을 바꾸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 손잡고 나서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무한하게 주신 영의 능력을 꺼내는 것이다.
영으로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무익한 사람들이었으나 기도로 나중에 유익한 사람들이 되었다.
무익한 자가 유익한 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기도밖에 없다.
교육으로는 전혀 사람을 바꿀 수 없다.
4) 기도는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기도는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길이며 자신을 알고 창조주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기도는 말씀과 체험을 조화시킬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므로 얼마든지 우리의 삶을 창조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요, 기도는 그 길을 뚫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길을 개척해 나가라.
그럴 때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이다.
꽉 막힌 곳을 나갈 때, 기도가 나보다 앞서서 길을 뚫어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창조의 능력을 이끌어 내는 길이 기도이다.
기도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라.
기도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길이다.
영으로 깊이 들어가면 시간을 초월하게 된다.
영의 기도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미래를 개척해 나가라.
머리나 생각으로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거나 계획해 보아도 아무 소용도 없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과거를 돌릴 수도 있고, 미래를 개척할 수도 있다.
시간도 공간도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영적인 상태에서 과거와 미래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새롭게 만들어 놓을 수 있다.
영적인 상태에서 과거를 수술할 수 있도록 미래도 얼마든지 미리미리 손을 써놓을 수 있다.
영적상태에서는 과거도, 미래도 바로 앞에 놓여 있다.
그것을 조절할 수 있다.
창조할 수 있다.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다.
영적상태에서 하는 기도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것이므로 자연히 아버지를 알게 된다.
같이 사는 것만으로는 아버지를 온전히 알 수 없다.
영적기도로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에 안기라.
그래야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된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된다.
그 사랑을 체험함으로 드디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다.
제15장 기도의 자세
1. 간접적 자세
성실, 경건의 삶을 살라.
좋은 선수는 평소에 늘 훈련과 실제상황을 대비한 연습을 충실히 하는 것처럼 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의 훈련,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경건한 삶의 훈련을 해야 한다.
험담을 금지하고 순종, 사랑, 용서와 경건, 거룩한 삶의 훈련을 하라.
늘 하나님의 임재속에서 내적치유와 회개를 하라.
얕은 수준에서 하지 말고, 깊은 수준에서 하라.
감정을 절제하라.
흥분, 좌절, 분노, 염려, 고민, 질투, 원한등의 부정적 감정을 씻으라.
성실과 경건으로 가기 위해 늘 기도해야 한다.
2. 직접적 자세
편안한 자세, 방해받지 않는 환경에서 기도하라.
잠이 너무 오는 경우에는 약간 딱딱한 장소에서 화살기도, 호흡기도를 하라.
그러면 잠이 깊이 들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는 영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잠자는 훈련을 하라.
차츰 변화된 상태를 깨닫게 될 것이다.
1) 하나님께 집중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이 사실에 집중하라.
하나님께 집착하라.
입술로 시인하라.
집착에 방해되는 생각은 무시하라.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마음으로, 입술로 고백하라.
그러면서 화살기도, 호흡기 도를 자꾸 병행하라.
영을 자꾸 활동하게 하라.
영적상태에서 고백하라.
'성령님, 내안에 계신 성령님, 사랑합니다.
찬양합니다.' 방언으로 찬양하라.
기도하다가 자라.
그러는 동안에 저절로 내적치유가 일어나고, 성품이 변화되고, 영적인 좋은 일들이 생긴다.
영적성장이 일어난다.
이를 위해서 훈련하라.
이것이 생명이다.
노력하라.
처음에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
곧 성령이 이끌어 주신다,
그리고 곧 재미있게 된다.
자꾸 해결을 보게 된다.
재미있게 되어, 나중에는 멈출래야 멈출 수도 없게 된다.
자꾸 하나님에게 집중하라.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것이 체질화되어 버린다.
세상의 지나는 일들이 무심하게 된다.
보면서도 그냥 지나가며 주님만이 생각나게 된다.
보면 그런 것들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진정 성령 충만하게 되면 보더라도 그냥 무심하게 지나가게 된다.
마음이 끌리게 되지 않는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놓으면 세상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세상의 썩어질 것들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게 하려면 마음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라.
영적기도를 통하여 우주 최고의 보물로 마음을 채우라.
잘 안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성령이 이미 오셔서 역사하고 계시는데, 내가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라.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더 느끼게 된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하라.
더 뜨거운 사랑, 더 풍성한 사랑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그 속에서 치유와 축복과 강건과 풍성함을 받게 된다.
2) 하나님의 현존
하나님의 현존을 지속적으로 입술로 시인하여 자신의 내면에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심에 대하여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가지도록 하라.
감각적으로 느끼지 못하지만 분명히 우리와 함께 현존하신다,
나는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나를 돕는 분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라. 임재의 의식이 마음의 무의식에 새겨져있게 하라.
구구단을 외우듯이 이 의식을 계속 새겨 넣으라.
이 의식이 점차 실생활에 응용이 된다.
이것이 바로 기도다.
내면의 기도는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놓는 것이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은 내면의 기도로만 가능하다.
이 마음으로만 하나님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
우리가 알고 가지고 있는 것을 내 힘으로만 사용하면 별 볼일 없지만, 영적기도로 성령과 함께 활용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나 가지고 얼마나 배웠는가가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누구와 함께 활용하는가가 중요하다.
주님과 통하고 있는가, 주님과 함께 활용하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기술 없는 사람이 사용하면 망치고, 별 볼일 없는 것이라도 기술 있는 사람에게 가면 작품이 된다.
내 인생에서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성령님을 찾고, 성령님께 맡기고,
성령님과 동행하는가에 따라 내 인생의 승패,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하나님과의 관계, 영성이 관건이다.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이것을 뚫으라.
다윗은 하나님이 내 앞에, 내 옆에, 내 안에 계시며 가까이 계신다는 현존의식을 늘 가짐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영의 기도로 이 현존의식을 자꾸 마음속에 확신시키고 마음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게 하였다.
이것으로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것으로 사울을 이기고, 이것으로 밧세바와의 문제도 해결했다.
모든 것을 축복으로 바꾸었다. 이 현존의식을 자꾸 심으라.
아침에 일어날 때, 이 현존의식을 영의 기도로 확신시키라.
아침 저녁 30-40분간 이불 속에서 영적기도로 이 현존의식을 마음속에 새겨라.
주님을 아침저녁으로 마음속에 새겨라.
활동 중에도, 생활 중에도 늘 하나님의 현존의식을 가지라.
인격체를 대하듯이 대하라.
날씨, 사소한 일의 결정, 느낌, 행동 등 모든 면에서 현존하시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하라.
그런 훈련을 하라.
모든 일과를 끝내고 잠들기 전에도 주님과 교제하며 잠이 들라.
땅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면 어디에 가도 그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전심으로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인식하고 발견하고 교제하는 훈련을 하라.
3) 하나님을 진심으로 영으로 찬양하라
나의 모든 어휘, 마음, 정성을 다하여 마음껏, 최대한 아버지를 높이라.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찬미, 찬양, 예배, 송축, 높임, 경외, 감사, 사랑, 영광돌림, 자랑, 의지함, 기뻐하라.
부드러운 찬양을 많이 하라. 부드럽게 흐름을 타는 찬양을 계속하라.
속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찬양을 할 때, 속에서 은혜가 솟아오른다.
이러한 찬양은 절대로 헛되지 않다.
은혜가 저축된다.
은혜 받으려 돌아다니지 말고 이러한 찬양을 하라.
그리함으로 심령을 풍성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놓으라.
4) 성령님의 임재를 간구하라.
5) 기다리라.
구름이 비를 동반하듯이 하나님의 임재는 능력을 동반한다.
믿음은 신뢰와 기다림이다.
믿음으로 기다리라.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반드시 임하신다.
6) 기도는 배우고 숙달되어야 한다.
새는 하늘을 날 수 있는 기능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저절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날갯짓을 하면서 연습을 함으로 조금씩 멀리 날아가기 시작하면서 창공을 날게 된다.
영적인 기도도 마찬가지다.
배우고 숙달해야 한다.
훈련하여야 한다.
기도는 훈련이다.
모든 신앙인은 기도를 할 수 있는 자질, 자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기도의 달란트를 활용하라. 훈련하라.
우리가 거듭난다는 것은 바로 이 기도의 달란트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도를 자꾸 반복하라.
체험적으로 당장 나타나지 않더라도 자꾸 반복하라.
중요한 것은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하는 것이다.
애들이 학교에 가서 글을 배우는 것처럼 배워야 한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그냥 반복하지만, 차츰 그 뜻을 알게 되는 것처럼 이해가 되지 않고, 체험이 없더라도 계속 반복하라. 금방 알게 된다.
수영을 배울 때, 몸의 힘을 빼고 물에 몸을 맡겨야 하는 것처럼, 몸에 힘을 빼고,
의지에 힘을 빼고, 이성에 힘을 빼고, 내가 낮아질 때, 내가 없어지고, 내가 약해질 때, 성령께서 더 역사하신다.
내가 없어져야 성령이 나타나신다.
성령님을 잡으려면 모든 것을 다 놓고 가장 힘없는 존재, 텅빈 존재가 되어야 한다.
땅에서의 움직임과 물에서의 움직임이 다른 것처럼, 열정, 생각, 감정들을 다 빼고,
오직 성령님이 쓰시도록, 백지처럼 지우고 빼내야 한다.
내가 사건에서, 현실에서 분리되어 제3자가 되고 성령님이 주체가 되시게 하라.
힘을 빼라.
부모로부터 글씨 쓰는 법을 배울 때, 자신의 손을 부모의 손에 넣고, 내 손에 힘을 빼고 부모의 손에 이끌리는 것처럼 모든 것에서,
내 인생에서도, 내 의지에서도, 힘을 빼고 하나님의 인도에 맡기라.
성령의 흐름을 타라.
성령의 바람을 타라.
성령의 흐름을 타고 인생을 살라.
기도를 통해서 삶의 패턴을 바꾸라.
맡기는 연습을 자꾸 하라.
맡기는 연습에 익숙하면 편하게 된다.
처음에는 기도의 참 의미를 모르면서 기도하지만, 시간이 경과하면서 기도의 능력이,
성령의 능력이 내 영혼에 배어들게 되고 기도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기도는 성령의 손길, 성령의 성품, 성령의 생각, 습관, 감정이 내 영혼에 배어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일체감이 생기게 된다.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7) 기도는 깊어야 한다.
양보다 질이다.
얼마나 깊이 했느냐가 중요한다.
주님은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계신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 그분이 계신 곳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도가 깊으면 신앙, 영성이 깊어진다.
8) 기도는 즐겨야 하며 쉬지 말고 해야한다.
기도는 즐거운 것이다.
내게 아주 유익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정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게 하는 것이다.
3. 기도의 10계명
1) 기도는 나와 하나님의 인격적 교제이다.
2) 기도는 성령님의 도움과 교통함으로 이루어진다.
3) 기도는 기도의 대상을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내가 나를 설득하는 것이며 고백하는 것이다.
감사와 사랑을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가장 소중하신 것, 자기를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게 드리면 드릴수록 더 받게 된다.
마음을 드리라.
마음을 담는 그릇인 시간과 물질, 헌신, 몸을 드리라.
이미 가장 귀중한 것을 받았으니, 드리라.
하나님에게 쓰임 받다가 가자.
하나님은 우리를 쓰시려고 부르셨다.
쓰임 받기 위해서 드리라.
드리고 또 드리라.
4) 기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나의 뜻에 접목시키는 것이다.
5)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심령의 상처, 질병을 치유 받는 것이다. 기도는 회복이다.
6) 기도는 기도의 대상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7) 기도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8) 기도는 진실, 단순해야 한다.
9) 기도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것이다.
말하고 듣고, 묻고 듣는 것이다.
내 안에서 음성이 들리게 될 때까지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라. 실패하면 또 다시 해보라.
위로하고 격려하는 음성을 들으라.
주님은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분, 편하신 분, 나를 편하게 해주시는 분이다.
이 분을 편하게 찾아 나서라. 하나님은 참으로 부드러운 분이시다.
꿀보다도 더 달콤하고, 솜털보다 더 부드럽고, 더 따뜻한 분이다.
이 분을 더 자주 찾으라.
친절하신 분이며 겸손하신 분, 좋으신 분, 이분을 찾아나서라.
기능보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찾아 나서라.
만나고, 교제하고, 느끼라.
그럴 때, 그 성품이 나에게 배어 들어온다.
쑥쑥 나에게 밀려들어온다.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원하신다.
나도 남을 편안하게, 부드럽게 대해주게 된다.
나는 변할 수 있다.
주님을 통해서, 주님의 마음을 옮겨받음으로 변할 수 있다.
10) 기도는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인격이신 주님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사랑을 받게 된다.
사랑의 말을 고백하라.
인격적으로 사랑의 말을 나누라.
제16장 기도의 체험과 변화
우리는 그동안 기도는 많이 했지만,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다.
기도는 많이 하려고 했지만, 기도가 무엇인가를 몰랐다.
이제 기도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기도의 체험은 변화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체험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도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더 많이 알고, 변하기 위한 것이다.
영적인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현실의 상태에서의 변화를 위한 것이다.
성품은 우리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없고 오직 깊은곳에 계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얻어야 한다.
기도의 목적은 깊은 곳에 계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성품을 고침으로 현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1. 기도의 단계
1) 정화의 길: 우리의 심령은 자꾸 오염된다.
기도로 끊임없이 정화시켜야 한다.
성령의 임재로 충만하여 죄성이 정화, 정돈되는 상태이다.
처음에는 이것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점점 생명력을 얻게 된다.
고여 썩은 물에 맑은 물이 졸졸 흘러 들어가듯 차츰 심령이 정화된다.
마음의 평안함은 심령이 정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심령이 정화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혼과 육도 정화된다.
2) 조명의 길: 맑아진 곳에는 빛이 비치게 된다.
생명이 살 수 있게 된다.
지혜가 떠오르게 된다.
깨달음이 올라오게 된다.
어느 한곳에 밝은 빛이 들어오게 된다.
어둠속에서는 잘 볼 수 없다.
어둠을 빛인 줄 안다.
그러나 그 속에 빛이 오면 무엇인가를 느끼게 된다.
평안을 느낌은 마음이 영의 활동을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시간이 더 지나면 머리가 맑아짐을 느끼게 된다.
빛이 들어온 상태이다.
몸도 개운해지게 된다.
심령이 어두우면, 하나님의 뜻이 들어오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
심령에 빛이 들어와야 깊이 볼 수 있고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3) 일치의 길: 하나님과의 영적인 깊은 교제로 일치를 이루는 단계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며, 예수의 마음을 품는 단계이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실제적으로, 현실적으로 되어버리는 단계이다.
하나님과 하나됨을 외면하거나 부인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이런 깊은 관계가 된다.
노력으로 이러한 단계에 이를 수 있다.
기도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
부부가 같이 살기만 해서는 행복하지 않다.
일치되어야 행복한 것이다.
점점 하나님과 가까이 가고, 하나가 되고, 하나님 안에서 평강을 누리고, 하나님과 있음으로 행복을 느끼게 되는 단계이다.
그런 상태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얻게 되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내가 다 드리는 단계이다.
이런 단계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얻는다.
누구든지 노력하면 이런 단계에 오를 수 있다.
2. 기도의 평가
1) 기도는 바른가 바르지 못한가로 평가하라.
영적체험이 기준이 아니라, 삶이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작은 체험이라도 삶에 연결될 때, 그 기도는 바른 기도이다.
바른 기도에는 기쁨, 평화, 자유함, 애통,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 치유와 같은 신비한 체험이 따른다.
체험 자체가 기도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도의 평가는 체험이 아니라, 기도가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한다.
기도후의 삶에 변화가 없다면 그 기도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2) 기도를 통하여 내가 받은 은혜, 체험이 내 삶에 얼마큼 영향을 주는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
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긴밀한 관계가 있어야 한다.
영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영적 세계와 현실세계 두 세계에 우리는 동시에 살고 있어야 한다.
3) 기도에서의 하나님과의 일치는 삶에서의 하나님과의 일치로 나타나야 한다.
삶에서 받은 아픔을 하나님께로 들고 가서 치유 받고, 하나님에게서 받은 은혜는 삶으로 들고 가서 적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도이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일치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성품을 받되, 그것을 들고 와서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뿌려주어야 한다.
그들도 같은 것을 누리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4) 기도를 통하여 얻은 체험이 겸손, 순결, 단순, 순종, 회개, 정직, 사랑, 온유 등의 열매로 맺혀져야 한다.
교만, 독선, 불순종, 시기, 질투, 다툼, 경솔, 미움, 불안이 삶에 나타나면 어떤 신비한 체험이라도 잘못된 체험이다.
5) 생활, 활동을 기도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쉬지 말고, 항상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6) 기도를 통하여 내면의 변화를 향해서, 변화산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서 이웃을 변화시켜야 한다.
정화의 길에서 조명의 길로, 다시 일치의 길로 계속 걸어가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깨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하나되고, 하나님에게 깊이 묻히는 것을 기뻐하라.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으라.
하나님에게 찾음을 당하라.
그 수준에까지 이르라.
그렇게 하여 내가 모르는 생명수를 받아마시라.
축복중의 가장 위대한 축복을 누리라.
포도나무의 열매는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음으로 가능하다.
가지처럼 나무이신 하나님에게 붙어있는데 집중하라.
온 마음과 힘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그리하면 주님이 우리를 깨끗케 해주시고,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된다.
그러면 주님이 더 열심을 내게 된다.
그러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더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열매를 맺으려고 우리 모두를 부르신 것이고, 열매를 맺게 하려고 우리에게 은총을 공급해주시려고 애를 쓰시는데,
우리의 마음이 굳어져서 이 은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이러한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으시다.
대신에 진정 !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자들을 뜨겁게 찾으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마음을 열고, 영적기도로 마음을 준비하여 이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그러한 사람에게 주님은 더 큰 은총을 베푸시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아는 이들, 그 일을 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진정 놀라운 은총을 베푸시는 것이다.
놀라운 축복인 것이다.
기도 많이 해서, 달라고 해서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쓸모 있는 자가 될 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
물질도, 건강도 축복해 주신다.
과실을 맺는 가지를 더 깨끗케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열매를 맺는 사람에게 더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간섭을 하신다.
더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의 질책이 올라오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주님을 찾지만, 일단 주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면, 주님이 찾아오신다.
깨끗케 하시고, 양분을 더 주시려고 주님이 몸이 달아서 쫓아오시고, 자꾸 잘해주시고,
자꾸 잘되게 해주시고, 문제 같은 것도 그다지 기도하지 않아도 자꾸 풀어주신다.
나의 조건을 좋게 해주셔야 내게서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몸이 달게 만들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꾸 더 잘해주시게 만들라.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고, 나를 더 간섭하시면서, 축복하시고. 나는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나누어주는 관계가 되라.
하나님의 은혜는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주시는 것이다.
이런 사람의 환경을 하나님은 정화시키신다.
깨끗케 하시고, 간섭하시며, 축복하신다.
내가 정화되지 않으면 내 가정, 내 교회, 내 환경이 정화되지 않는다.
정화되라.
그리고 조명을 받으라.
하나님과 일치되라.
하나님께서 나를 귀하게 여기신다.
열매를 맺게되면 하나님은 너무나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고 축복을 주신다.
거지처럼 달라고 해서 받으려하지 말고, 하나님이 몸이 달아서 주시게하라.
우리가 아쉽지 말고 하나님이 아쉽게 하라.
달라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시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몸이 달아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일만 잘하면 하나님은 얼마나 서비스가 좋으신 분인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길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은혜, 은총을 나누어 주라.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려는 자세로 사역하라.
그런 마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은 무한히 축복해주신다.
나에게 있는 것을 조금도 아끼거나 감추지 않고 나누어주려고 하라.
알아서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체험으로 깨달아서 가르치려고 하라.
그래야 생명력이 있게 된다.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머리가 아니라. 내면에서 나오는 것으로 가르치고 나누어 주려고하라.
그래서 하나님의 애지중지함을 받는 사람이 되라.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함을 받는 이가 되라.
다윗은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늘 마음을 열어놓고,
하나님이 없으면 못사는 사람이었기에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
하나님과 일치된 마음을 가지라.
이제 그 방법은 알게 되었으니, 훈련으로 그렇게 되라.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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