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추수감사절
“풍성한 한 해… 신에게 감사합니다” 지구촌은 가을축제 중
한국은 추석, 미국은 추수감사절, 중국은 중치우지에(仲秋節), 프랑스는 투 생, 러시아는 성(聖)드미트리 토요일, 베트남은 테트룽뚜, 아프리카는 콴자, 인도 남부에선 퐁갈….
수확의 계절, 지구촌 곳곳에선 각양각색의 축제가 벌어진다. 명칭과 시기는 조금씩 다르고, 신(神)·조상·자연 등 감사의 대상도 제각각이지만, 풍요로움을 기뻐하고 만끽하며 그 섭리에 감사하는 데는 예외가 없다.
예를 들어 한국의 추석은 햇곡식을 막 거두어들이는 음력 8월로, 조상님들께 감사의 뜻을 전하는 가족 중심의 행사다. 이에 비해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추수가 마무리되는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시작돼 하나님께 결실과 수확의 은덕을 돌리는 공동사회의 문화적 행사다.
미국서도 8명 중 1명 ‘귀향길’
‘추수감사절’도 한국의 추석처럼 미국에서 가장 큰 연례 행사 중 하나다. 연휴기간 중 귀성 인파만 약 3000만~3500만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가 2억8000여만명이니, 최소한 8명 가운데 1명은 고향과 가족을 찾는 셈이다. 이 무렵에 명절 먹을거리로 희생되는 칠면조만 4500여만마리에 달한다. 백악관에선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한 마리를 살려주는 행사를 치르는데, 대학살을 당하는 칠면조들에 대한 애도이자 사죄의 뜻을 담고 있다.
추수감사절 다음날은 흔히 ‘검은 금요일’로 불린다. 원래는 인파가 몰리는 백화점 등 상가의 ‘흑자 대목’을 지칭한 것이지만, 대학에서 새 애인을 만난 학생들이 고향에 다니러 온 김에 옛 애인에게 작별을 통보하는 사례가 많음을 빗댄 말이기도 하다.
추수감사절은 1620년 유럽의 청교도 102명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號)를 타고 신대륙에 처음 발을 들이면서 비롯됐다. 65일간의 항해 끝에 간신히 도착한 대륙은 겨울 한가운데에 있었다. 추위와 식량난에 따른 영양실조 등으로 첫 해에만 47명이 죽고 말았다.
그런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원주민인 인디언이었다. 옥수수 등의 곡물을 가져다 주고, 농사짓는 법도 가르쳐줬다. 덕분에 이듬해인 1621년엔 청교도들이 곡식을 재배·추수할 수 있었고, 은혜를 베푼 인디언을 초대해 3일간 축제를 벌인 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초가 됐다.
당시 그들이 먹었던 음식이 칠면조 고기와 옥수수 빵, 감자, 호박파이 등이었다. 칠면조를 먹는 풍습은 첫 추수감사절 때 새 사냥을 나갔던 사람이 칠면조를 잡아와 먹기 시작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영국에선 크리스마스 때 거위를 구워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신대륙에선 거위가 흔하지 않아 칠면조를 대신 쓰게 됐다는 설이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시작
추수감사절은 1789년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전국적으로 지킬 것을 선포했으나,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왕조시대 관습이라는 이유로 중단시켰다. 이후 일부에서 비공식적으로 행해지다가 1828년 Godey’s Lady’s Book이라는 잡지의 편집인 겸 시인인 헤일 부인이 “미국 건국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뤄졌음을 기념하는 연례 행사로 삼아야 한다”는 캠페인을 시작, 마침내 1863년 링컨 대통령이 11월 넷째 목요일을 ‘국가적 감사의 날’로 선언했다.
칠면조를 오븐에 굽는 데는 5시간 이상 걸린다. 때문에 이른 아침에 시작된 잔칫상 준비는 오후 1~2시쯤 끝나는데, 미국인들은 이것을 추수감사절 디너(저녁식사)라고 부른다.
추수감사절은 크리스마스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기간이기도 하다. 감사절 축제가 끝나면서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들에 불이 켜지고, 캐럴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상점에는 크리스마스 카드와 상품들이 진열되고, 이후 약 한 달 동안 거리와 집들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빛나게 된다.
러시아서도 조상 무덤에 성묘
러시아의 경우엔 ‘성 드미트리 토요일’(11월 8일 직전의 토요일)이 추석과 비슷하다. 이날 러시아인들은 조상들의 묘소에 성묘를 다녀오고, 가까운 친척들끼리 모여 햇곡식과 햇과일로 만든 음식을 나눠 먹는다. 햇곡식으로 빚은 보드카를 돌려 마시며, 조상들을 회상하는 옛 이야기를 나눈다. 성묘를 가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새들에게 햇곡식을 던져주기도 한다.
원래 이날은 1380년 몽골군을 패퇴시킨 드미트리 돈스크가 11월 8일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모임을 가진 데서 유래됐으며, 러시아 정교회가 이날을 ‘성 드미트리의 날’로 정해 전사자와 조상들을 함께 추모하면서 추수감사절 성격이 더해졌다. 과거 구(舊)소련 소비에트 정권 때는 퇴조했었으나, 정교회 교인들과 노년층을 중심으로 명맥이 이어졌고, 최근 부활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중국선 ‘달떡’ 먹으며 화목 도모
중국은 우리와 같은 시기에 ‘중치우지에(仲秋節)’라는 명절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 추석을 중추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중국식을 따른 명칭이다. 전통시대 중국에서는 달을 표시할 때 1~12월로 표시하지 않고, 춘·하·추·동(春夏秋冬) 4계절 앞에 각각 맹·중·계(孟仲季)를 붙여 1월은 맹춘(孟春), 2월은 중춘(中春), 3월은 계춘(季春) 등으로 표시했다. 7·8·9월은 각각 맹추(孟秋)·중추(仲秋)·계추(季秋)여서 8월을 중추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추석과 설날이 거의 같은 비중의 명절인 데 비해, 중국에선 중치우지에의 분위기가 춘지에(春節·설날)보다 훨씬 떨어진다. 대다수가 쉬기는 하지만 공휴일은 아니며, 한국과 같은 전국적인 귀성 행렬도 없다.
가족 친지들끼리 간단한 선물을 주고 받으며, 추석 때 한국에서 송편을 만들어 먹듯이 이른바 ‘달떡’이라는 위에핑(月餠)을 먹으며 가족의 단결과 화목을 도모한다. 송편은 반달 모양인 데 반해, 위에핑은 대개 보름달처럼 둥글다. 송편은 찌지만, 위에핑은 빵처럼 구워 만든다. 위에핑의 속은 해바라기씨·호박씨 등을 꿀과 버무려 만든다.
중국 사람들은 중치우지에를 ‘둥글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달과 위에핑의 모습이 둥글고, 모인 가족들도 둥글게 둘러앉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중국의 추석은 중치우지에 며칠 후에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중국인들은 중치우지에를 대충 넘기며 ‘진짜 명절’을 준비하는데, 양력 10월 1일의 중국공산당 창당기념일인 국경절(國慶節)이 바로 그것이다. 농업국가의 전통적 개념을 이념적 축제에 결합시켜 국가적 경사로 만들었다.
중치우지에는 1966년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그 전통이 크게 약화되고 이데올로기의 산물인 국경절의 분위기에 잠식되면서 설날인 춘지에가 최대 명절로 자리잡았다.
일본은 6~7일간 전국이 휴무
‘오봉(お盆)’은 일본식 추석이다. 원래는 음력 7월 13~15일에 즈음해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던 행사였지만, 지금은 양력 8월 15일을 전후한 행사로 정착됐다. 6~7일 동안 전국이 휴일에 들어간다. 이 기간 중 일본인 6명 중 1명 꼴인 2000여만명이 고향 방문이나 성묘길에 오르며, 조상의 영혼을 집으로 맞아들여 위로하는 차례를 지낸다. 차례상에 음식은 올리지 않고, 다만 향(香)을 피운다. 음식은 식구와 친척들이 즐길 수 있는 간단한 것들만 준비한다. 손님 접대를 위한 다과와 안주 정도만 준비해도 된다.
오봉이 들어있는 달의 첫날(8월 1일)은 ‘하카 소우지’라고 해서 묘를 찾아가 벌초를 하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한다. 8월 13일은 ‘무카에 봉’이라고 하며, 묘에 향을 피우고 쌀을 얹어 놓는다. 이날의 성묘는 죽은 조상들의 영혼이 집을 잘 찾아올 수 있도록 마중하는 의미를 갖는다. 묘지에서 촛불을 켜서 집까지 꺼지지 않게 가지고 오는데, 마치 조상님들을 모시고 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8월 14일과 15일엔 ‘봉 마와리’라고 해서 동네에 친분이 있는 집들을 돌아다니는 관습이 있다. 이때 ‘고부츠젠’이라는 돈봉투를 들고 가는 것이 예의다. 다음날인 8월 16일엔 ‘오쿠리 봉’이라고 해서 집에서 촛불을 켜서 묘까지 가지고 가는데, 이는 조상을 다시 모셔다 드린다는 의미를 갖는다. 선조의 영혼을 잠시 이 세상으로 모셔와 가족과 함께 즐겁게 지내다가 다시 저세상으로 모셔다 드리는 일련의 행사가 마무리되는 셈이다.
일본인들은 매년 두 번 고향을 찾아 민족이동을 하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정월 오쇼가쓰(お正月)이고, 그 다음이 오봉이다. 우리가 설날과 추석 때만 되면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엄청난 교통체증에 시달리듯이, 일본도 이때만 되면 철도든 비행기든 모든 교통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프랑스선 ‘투생’이란 가을명절 즐겨
프랑스의 가을철 명절로는 ‘투생(Toussaint)’이라는 것이 있다. 매년 11월 1일에 행해지는 가톨릭 축일로, ‘모든 성인’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날엔 묘소에 꽃을 갖다 바치며 고인을 회상하는데, 그 외에 온 국민이 함께 즐기는 특별한 풍속은 없다. 이날 페르 라셰즈, 몽마르트, 몽파르나스 등 파리의 대형 공동묘지에 있는 유명 인사들의 묘에는 꽃다발이 넘쳐난다. 학교는 ‘투생’을 전후해 약 2주일간의 방학에 들어가며, 박물관을 제외한 공공기관은 문을 닫는다. 직장인들은 당일 하루에만 쉬게 돼 있는데, 직장에 따라 3~4일간의 연휴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가을 여행을 위해 이 기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여행사들은 투생 특별상품을 준비하고, 고속열차 ‘테제베(TGV)’는 크게 증편된다.
독일선 한 해 농사에 감사하는 마을축제
독일에는 추석에 비교할 만한 명절은 없다. 추수감사제가 특산품이나 지역별 축제 형식으로 열릴 뿐이다. 포도·감자·밀·맥주 등 생산 품목에 따라 여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한 해 농사에 감사하는 동네 축제를 연다. 포도가 많이 나는 라인강과 마인강, 모젤강 일대에선 7~10월에 각종 포도 축제가 이어진다.
모젤와인 산지에 있는 베른카스텔에선 9월 초순, 라인팔츠 와인 산지인 바트 뒤르크하임에선 9월 중순, 노이슈타트에선 10월 초순에 고전의상을 입고 벌이는 대규모 축제행렬이 이어져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을 끌어 모은다.
맥주 축제로는 9월 하순부터 10월 초순까지 뮌헨에서 열리는 ‘옥토버페스트’가 유명하다. 가축에 관한 축제로는 매년 11월 11일 11시11분부터 시작해 이듬해 3월 초까지 이어지는 쾰른·마인츠·뒤셀도르프 등의 3대 사육제가 볼 만하다. 대부분 매주 토요일에 열리며, 각종 음식 시식·시음회와 함께 가장 무도회와 시가 행진 등이 이어진다.
인도 추수감사제는 ‘퐁갈’
인도 남부에선 ‘퐁갈(Pongal)’이라는 명절을 지낸다. 10월부터 시작되는 우기 때부터 농사를 지어 3개월 정도가 지나야 첫 수확을 얻기 때문에 1월 중순쯤에 행사가 시작된다. 3일 동안 벌어지는 쌀과 사탕수수 수확에 대한 추수감사제이자 신년 축제이다. 태양신과 비의 신에게 감사를 표시하고, 농사를 지어준 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소를 목욕시키고 털을 손질해준 뒤 꽃과 종으로 장식을 하고 뿔에 밝은 색을 칠해 멋을 내준다. 암소보다 수소가 더 극진한 대접을 받는데, 암소는 평소에도 출산과 송아지 양육을 이유로 노동을 시키지 않고 방목하는 데 비해 수소는 일년 내내 논밭을 갈거나 짐을 실어 나르는 일에 동원되기 때문이다.
축제를 몇 주일 앞두고 각 가정에서는 새 항아리 2~3개씩을 사 간다. 새 쌀을 새 항아리에 담기 위해서다. 축제 전날엔 집 안팎으로 대청소를 하고, 쓸모 없는 낡은 물건들은 내다버린다. 온갖 헛된 욕심과 잘못된 습관도 다 버리고 새 삶을 살려는 마음의 준비도 함께 한다.
축제는 이른 아침 새 항아리에 햇쌀을 넣어 신에게 바친 뒤 그 쌀로 밥을 지어 온 가족이 함께 나눠 먹으면서 시작된다. 가족·친구·이웃들 간에는 화려한 카드를 주고 받는 풍습이 있으며, 다가오는 해의 풍작을 기원하면서 다른 마을의 친척과 친구들을 방문한다.
마지막 날은 축복의 날로 보낸다.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동네마다 마련된 무대에서 마을 어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춤과 노래, 악기 연주 등 공연을 한다. 행사가 끝나면 어른들은 한 아이도 소외되지 않게 선물을 나눠주고 꽃 목걸이를 걸어주며 축복해준다. 쌀의 날, 소의 날, 축복의 날로 3일간의 축제가 구성되는 것이다.
베트남, 음력 8월 15일 ‘테트룽투’ 즐겨
베트남에선 한국과 마찬가지로 음력 8월 15일을 ‘테트룽투(Tet-Trung-Thu)’라는 이름의 명절로 지낸다. 가정마다 명절 빵을 만들거나 사서 식구들이 나눠 먹는다. 추석이 조상들에 대한 차례에 초점이 맞춰지는 데 비해 테트룽투에선 부모가 아이들을 위한 축제로 다양한 놀이와 행사들을 준비해 주는 것이 다르다. 아이들은 밤이 되면 ‘롱덴(Long den)’이라고 불리는 별 모양의 등을 들고 돌아다닌다.
이날은 용과 비슷한 모양의 탈에 여러 사람이 들어가서 추는 ‘무어런(Mua Lan)’이 동네를 누빈다. 뒤에는 옹디아(Ong Dia)라 불리는 지신(地神)의 탈을 쓴 사람과 테티엔(Te thien)이라는 북 치는 무리가 따라다닌다.
무어런 무리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복채를 받는데, 이 무리가 지나가면 행운이 깃든다 하여 집 주인들은 복채를 미리 준비해둔다. 복채는 용춤을 추다가 입으로 덥석 무는 형식으로 가져가기도 하고, 뒤를 따라오던 옹디아가 손으로 받기도 한다.
아프리카에선 ‘콴자’ 축제
미국 내 흑인사회와 일부 아프리카에서는 ‘콴자(Kwanzaa)’라고 불리는 그들 나름의 추수감사절을 즐긴다. ‘콴자’는 스와힐리(Swahili)말로 ‘첫 번째 과일’이란 뜻. 12월 26일부터 일주일을 축제 기간으로 보낸다. 크리스마스와는 별도다. 1960년대 미국 내 아프리카인, 즉 흑인들이 노동의 결실을 즐기기 위해 함께 모여 축제를 벌인 것이 유래가 됐다. 7일 동안 결속·자결·공동작업·협동경제·결의·창의성·믿음을 상징하는 초 7개를 매일 하나씩 켜면서 결속과 우의를 다지는 공동사회 성격의 문화행사다.
/윤희영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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