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와 평신도전문인 선교
최 창 웅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
대덕 한빛 교회 시무 장로
GPTI 대전지원 협동원장
1. 21세기 선교 상황
복음이 한국 땅에 전래된 이래 비교적 짧은 기간의 복음화를 통해, 1909년에는 평양신학교 1기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선교사로 파송 되는 일을 하게 된다 1907년 대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한국을 다녀간 세계 학생 운동의 지도자요 에큐메니칼 운동의 지도자인 존 모트(John R. Mott)는 귀국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민경배 1983,267~68):
한국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나라에서는 지금 전국적으로 영적인 부흥운동의 불길이 휩쓸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은, 만일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이 만큼의 속도로 계속 성장하게 된다면, 한국은 근대 선교 역사상에서는 완전히 복음화 된 유일한 비기독교국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 대 각성과 부흥운동으로 교회가 일치 단결하고, 선교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착수하게 되지만, 그러나 교회의 계속적인 성장과 비례해서 선교가 같은 수준으로 증가하지는 못했음을 교회의 성장과정을 통해서 보게 된다. 이러한 양적 증가 일변도의 현상을 한국 교회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기도 하였으나(옥한흠 1998, 22~33) 그러나 선교에 있어서는 1990년대부터 해외 선교사가 급속도로 증가함으로써 이제 2000년대를 들어서면서 한국의 해외 선교사는 9500여명에 달하고 있다(김성욱 2001,107). 따라서 한국은 선교 대국으로 인정 받게 되었고, 선교 대상 지역의 상황 변화에 따라 이제는 전문성을 지닌 직업적 선교가 선교를 주도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2000년 8월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 선교대회의 보고에 따르면, 전세계에 파송 된 한국인 선교사 가운데 25%이상이 평신도 선교사로 보고 되었다(그러나 한국 전문인 선교협의회가 1999년 5월에 국내의 78개 파송 선교단체와 9개의 교단 선교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된 선교사 5,398명 가운데 평신도 선교사가 3,083명으로서 평신도 선교사가 57%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됨. 한국전문인선교협의회 편집 2000, 220~24). 이처럼 평신도 전문인 선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특히 미전도 종족에 대한 선교 현지의 상황이 전문인 선교사만의 입국이 가능토록 변화 되고 있으므로 전통적인 선교사보다는 전문인 선교사가 계속적으로 증대 되어질 전망이다. 따라서 이 같은 실제적인 선교사 수요와 선교 대상지역의 복잡한 상황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준비되고 훈련된 전문인 선교사로 구비 되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2. 선교사의 소명
2.1 선교사
선교사라는 단어는 ‘보내다’(라틴어 mitto, 헬라어 apostello)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12제자를 사도(apostle)라고 불렀고, 이 말이 80회 이상 사용되고 있는데, 단 한번 예수님께 대해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히3: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러므로 최초의 사도이셨고 12사도의 머리이셨다. 12사도는 주님께로부터 친히 가르침을 받았고 사도적 권위를 부여 받았으며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도록 보냄을 받았다(마 28:18~20). 그렇다면 오늘날의 선교사는 12사도와 동일한 계층에 속하는 것일까? 허버트 케인은 기독교 선교이해(Understanding Christian Missions)에서 오늘의 선교사는 ‘이류급의 사도(바나바, 디모데, 실라 등)’에 가깝다고 하였다. 이들 이류급의 선교사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으며 성령이 그들에게 지시하는 데로 옮겨 다녔다(행 8:26,29,39; 16:6~7).(허버트 케인 1997, 29~30) 그는 선교사란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전통적 의미에서 선교사란 말씀과 기도 사역을 전임하도록(행 6:4) 하나님에 의해 부름 받은 사람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롬15:20) 지리적 혹은 문화적 경계를 건넌(행22:21)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비록 완벽한 것은 아닐지라도 성경적인 것이라는 장점을 갖는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의미론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과 판단의 기준이 되는 틀 안에서 보다 넓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전임 사역의 개념을 목회자와 복음 전도자 그리고 선교사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정의에 의하면 헌신적인 모든 그리스도인 들이 그 들의 직업에 상관 없이 기독교 전임 사역자라는 것이다. 허버트 케인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다;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 들이 전임 사역자라면 이제 말할 것은 이것뿐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선교사이다. 그러나 스티븐 닐(Stephen Neill)은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사라면 아무도 선교사가 아니다 라고 경고 하였다”(1997, 30). 모든 그리스도인은 증인이라거나 증인이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사라는 말은 옳지 않다(1997, 31~32). 우리는 선교사가 독특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할 때 그가 다른 신앙인들보다 낫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단순히 그가 색다르다는 것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선교사가 고향에 머물고 있는 목사나, 심지어 평신도보다 영적으로 반드시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문화적(Cross-cultural)상황에서 선교사는 자기가 다음과 같은 몇몇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고 하였다: 1) 그는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이다; 2) 그는 진리의 사자이다; 3) 그는 사랑의 사도이다; 4) 그는 평화의 사절이다; 5) 그는 문화의 운반자이다(1997, 33~43).
2.2 선교의 소명
선교에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제1차적으로 점검 대상이 되는 것은 과연 소명을 받았느냐-하는 사실이다. 소명은 받지 못했을지라도 선교에 대한 간절한 열정으로 선교 현지에 나가게 되면 사역하는 기간 중에라도 소명을 받게 된다는 것이 훈련 현장에서 이해되어지고 있는 사실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 허버트 케인의 설명을 정리하였다(1997, 44~ 53).
1) 마케도니아 소명(행 16:9~10)
선교의 소명이란 정확히 무엇입니까? 내가 소명을 받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소명을 받지 못했다면, 나는 선교사가 될 수 없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이 진지하고도 순수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를 바라는 헌신 된 그리스도인 들에게서 자주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극단적인 태도가 있는데, 한편의 극단에서는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은 소위 “마케도니아 소명”(행 16:9~10)이라고 하는 것을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대개 이 것은 목소리나 환상이나 꿈이나 다른 신비적인 사건들과 관계 있는 것으로서, 이러한 신비적 경험이 없다면 선교 사명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모든 사람은 그러한 경험을 열심히 구하고 그 것을 경험할 때 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 편의 극단은 모든 그리스도인 들은 선교사이기 때문에 어떠한 종류의 소명도 요청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말하길, “만일 당신이 선교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비행기에 올라타고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서 당신의 일을 행하시오. 시간, 장소, 소명, 성직 등과 같은 사소한 문제에 초조하지 마시오. 다만 차분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라 믿으시오.” 이 두 가지의 극단적 견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첫번째 주장을 옹호하는 자는 집에서 편안히 앉아서 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두 번째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은 선교 사역지에서 종종 유익보다는 해를 더 많이 끼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소명(부르심)이란 신약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기독교적 봉사가 아닌 기독교적 삶을 언급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일반적 소명이 있는데(롬9:24~26),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명확하게 되었다(눅 5:32).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롬1:7). 그리고 그러한 소명의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이다(롬 8:30). 그 외에 2차적 소명(기독교 사역에 대한 소명)이 있음을 케인은 말한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 직업을 버리고 베드로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오직 헌신했던 것처럼 모든 시간을 헌신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에게만 부여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이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롬 1:7), 모든 사람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니다(고전 12:29).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가 진정한 사도였다고 주의 깊게 지적한다(고전 9장). 그는 하나님의 뜻(고전 1;1)과 부르심(롬 1:1)에 따라 사도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소명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으며(고전 9:16~18), 또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에게 부여된 것도 아니었다(갈 1:1). 그러므로 소위 마케도니아 소명(행 16:9~10)은 선교 소명이 전혀 아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일이 있기 수년 전에 이미 선교사였다. 그렇다면 마케도니아 소명은 과연 어떠한 성질의 것일까? 그것은 전혀 신적인 소명이 아니었고, 단지 도움을 요청하는 인간적 부름이었다. 그 부름은 하나님이 아닌 마케도니아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간청이었다. 이 사건은 선교 소명과 전혀 상관이 없다. 단지 그 것은 이미 전임의 기독교 사역에 들어선 사람에 대한 인도 하심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마케도니아 소명과 선교 소명이 동일시 되어왔다는 것은 참으로 큰 오해였음을 인식하게 된다.
2) 선교의 소명
사실상 ‘선교의 소명’이라는 용어는 잘못 만들어진 용어로서 성경적이지 못한 것으로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을 섬기고자 소망하는 수 많은 젊은이들이 일종의 신비로운 ‘선교 소명’을 기다렸지만, 하지만 그러한 소명은 결코 생기지 않았고 결국 얼마 후에는 기다림에 지쳐 버리고 선교지로 가려는 생각을 포기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떠한 종류의 소명도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는가? 전임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는 사역에 대한 소명은 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라고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셨을 때 “저희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좇으니라”(마 4:22)고 성경에 기록되었다. 누가는 동일한 사건을 이렇게 묘사했다: “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눅 5:11). 이 ‘소명’은 그들의 이전 직업을 확실하게 중단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직업,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직업으로 그들을 나서게 만들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들이 동시에 사람을 낚는 어부와 고기를 낚는 어부가 될 수 는 없었다. 물론 이것이 새로운 직업이 ‘더욱 고귀하고 거룩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전적으로 다른 직업이었다. 현대적 용어로 이것은 ‘전임 기독교 사역’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전임적 개념의 소명은 주님에 의해 보다 강화 됨을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 “ 주여, 내가 주를 좆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하고 말했을 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 9:61~62).
3) 인도 하심과 소명의 비교
전임 사역에 대한 소명과 인도 하심을 명확히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사도행전 16장에서 본 ‘마케도니아 소명’이 소명이 아니라 단지 인도 하심 인 것을 살펴 보았다. 소명은 일생에서 한 번 온다. 그리고 일단 소명이 이해되고 순종 되면 번복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도 하심은 일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주님은 사도 바울을 이방인에게, 베드로를 유대인에게 보내셨다(갈 2:7~8). 또한 윌리암 케리를 인도로,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아프리카로, 허드슨 태일러를 중국으로 향하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에 따라 그의 종들을 배치하시는 것이다.
3. 근대 선교의 발전단계
랄프 윈터(Ralph D. Winter)박사는 개신교의 선교 활동 역사에서 나타난 커다란 변화를 3가지로 분류하여 “폭발적인 선교의 진보”라고 명명하였고 그 특성에 따라 분류하였다. 이들 각각의 진보는 세계의 특정한 지역 혹은 미전도 지역을 관찰해 봄으로써 세계 복음화라는 전체 과업을 완수하는 일에 선교적 진보가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발전 단계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랄프 윈터 2001, 220~226)
:
첫번째 시대: 연안지역으로
이 시대는 윌리암 케리가 개척한 시대로, 케리가 지은 작은 책은 복음주의의 대 각성과 함께 미 대륙과 유롭 사람들에게 비전을 주고 삶을 변화시켰다. 모든 사람들은 선교 활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교회 형태의 조직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케리의 주장이 옳다고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5명의 대학생들이 케리의 책에 도전을 받아 그들의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위해 함께 기도하였다. 이들이 후에는 건초더미 기도회(Haystack Prayer Meeting)로 알려 졌는데 이들이 시작한 학생 선교운동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다른 학생 선교 운동의 모델이자 선구자가 되었다. 선교 구조는 전형적인 비교단적 초 교파적인 선교회였다. 이 시대의 두 가지 특징은 놀라운 희생 정신과 뛰어난 선교 전략에 대한 훌륭한 통찰력이다.
두 번째 시대: 내륙지방으로
이 시대는 허드슨 태일러(Hudson Taylor)가 주도한 시대이며, 후에 주로 학생 자원 운동(The Student Volunteer Movement)이라는 학생 운동이 중심을 이루었다. 어떤 교단에도 속하지 않고 독립해 있는 선교 조직들을 ‘믿음 선교회(Faith Missions)’라고 불리었는데 40개 이상이 설립하게 되었다.. 이들 선교회는 첫번째 시대의 해안 선교와는 달리 대륙의 내지선교를 목표로 하였다. 또한 학생 자원 운동은 10만 명의 선교 헌신자를 배출 하였고, 그 가운데 2만 명이 실재로 선교사로 헌신 하였으며 나머지 8만 명은 고국에 남아서 선교 활동의 토대를 재건하는 일에 헌신하였는데, 그들은 평신도 선교 운동(Laymen’s Missionary Movement)을 시작 하였고, 기존의 여자 선교회를 강화 하였다. 신참 선교사들은 이전 시대에 개발된 선교학적 지혜를 대부분 무시했지만, 선교 전략 면에서 큰 과오를 범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첫번째 선교시대에서 개발된 방법들을 배우고 익힘으로써 놀라운 선교 결실을 맺게 된다. 거의 모든 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많은 사람들은 세계 복음화가 사실상 완수 되었다고 생각 했다. 일부 선교사들은 선교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여 선교사들을 본국으로 보내기 시작하였다. 1865년과 1910년 사이의 45년간은 첫번째 시대인 연안 지역시대에 성숙한 단계의 적당한 선교 전략과 두 번째 시대인 내지 선교 시대에 개척 단계인 선교 전략간의 전환기 였다. 1967년 경에는 북미 출신의 모든 선교사 중 90% 이상이 이미 상당 기간 속해온 강건한 현지인교회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중에 선교의 또 다른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세 번째 시대: 미전도 종족들에게
이 시대는 학생 자원 운동 출신의 두 젊은이, 카메론 타운젠트(Cameron Townsend)와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에 의해 시작 되었다. 맥가브란은 현 시대가 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지는해’가 아니라 ‘뜨는해’라고 주장하였다. 분명 현 시대에 윌리엄 케리 나 허드슨 태일러에 비 할 수 있는 사람은 카메론 타운젠트이다. 타운젠트는 분명히 미 전도된 선교지가 있음을 보았으며, 반 세기 가깝게 세계의 소외된 부족민들에게 주의를 환기 시켰다. 처음에는 이전부터 존재하는 위원회들이 부족민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도우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케리 나 태일러처럼, 타운센트도 결국에는 스스로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를 만들었다 처음에 타운젠트는 세계에 약 500개의 미 전도 부족집단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 후에는 그 추정치를 1000으로 고쳤고, 그 다음에는 다시 2000으로 , 그러나 오늘날 그 숫자는 .약 5000(현재로 파악된 숫자는 12,000수준)에 달하고 있다. 위클리프 성경 번역회에는 현재 4000여 명의 선교의 일꾼들이 일하고 있다. 맥가브란은 언어의 장벽이 아니라 사회적 장벽의 심각성을 인도에서 보게 되었다. 타운젠트가 부족 집단을 발견했다면, 맥가브란은 보다 보편적 범주를 발견하였는데, 그는 이 것을 ‘동질 집단(Homogeneous Units)’이라고 불렀다. 폴 히버트(Paul Hiebert)는 이 것을 세분화하여 각 독자적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부족들에게는 ‘수평적 분할’이라는 용어를, 그리고 지리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계층에 의해서 구분되는 집단을 ‘수직적 분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집단들에 침투해서 집단의 경향을 따라 선교학적 돌파구를 부지런히 이용한다면, 그 종족 집단에 대한 전략적인 ‘하나님의 다리(Bridges of God)’가 확립 된다는 것이다. 맥가브란은 그러한 돌파구가 마련 될 때까지는 일반적인 복음 전도와 교회 개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맥가브란은 활발한 노력과 저술을 통해 교회 성장운동과 미 개척지 선교운동을 수 없이 일으켰다. 교회 성장운동은 이미 복음이 침투한 집단들 안에서 교회를 확장 시키는 일에 힘 썼던 반면, 미 개척지 선교 운동은 아직 복음이 침투하지 않은 남은 집단들에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일에 힘썼다. 이 두 접근법은 민족 언어학적 접근과 사회 문화적 접근인 것이다. 랄프 윈터와 다른 선교학자들은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이 세 번째 시대의 특징은 ‘미전도 종족’이라는 보다 규정하기 어려운 비지리적 범주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미전도 종족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종족 집단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은 너무나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에, 세 번째 시대는 두 번째 시대보다 훨씬 더 서서히 시작 되었다. 타운젠트와 맥가브란은 40년 전부터 잊혀진 종족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나, 일반 대중들은 최근에 와서야 관심을 쏟게 된 것이다. 이 시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비서구 선교 기관들이 수적으로나 영향력 면에서나 이 전의 선교회들을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4. 평신도 선교의 성경적 근거
전문인 선교가 선교 현지의 상황 변화에 의해서 그 수요가 계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할지라도 성경적 근거가 있는 것인지 반드시 검토해야만 한다. 더욱이 21세기에는 닫혀져 가는 선교지에 대한 복음화는 평신도 전문인 선교의 몫으로 많은 선교 전문가들이 예고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적 근거를 갖지 못한 인간적 사고의 전략이라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 될 것이다.
4.1 전문인 평신도 선교의 성경적 근거
평신도선교의 구약성경적 근거
구약성경에서의 평신도의 개념과 선교적 역할은 창12:1~3; 출19:5~6; 사43:20~21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 구약에 나타난 평신도 선교의 의미
구약성경에서 평신도의 성경적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 것은 평신도 개념의 기초가 된 용어로서 평신도 신학의 발전에 주요한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개념과 이 용어에 관련된 성경구절을 찾아 주경학적으로 평신도의 의미와 역할을 찾고자 한다(김성욱 교수)
나. 하나님의 백성
1).두 가지 단어( Goi, Aam)가 사용됨.
(1). Goi
이방인, 이교도, 국가, 백성(창10:5; 12:2; 사11:10; 42:6; 슥12:3)
정치적, 종족적,또는 지역적 그룹의 백성 개념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고이)을 이루고”.
(2). Aam
계약적 백성(출3:10; 시78:52~66; 95:7; 사43:21; 51:16; 호1:9~10; 슥8:6)
(출3:10) “내 백성(아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2).두 용어가 대조적인 개념으로 사용됨:
(출33:13) “---이 족속(고이)을 주의 백성(아암)으로 여기소서”
(1). 구약에서 점차로 “고이”는 이스라엘을 제외한 주변 국가들을 지칭하게 됨.
(2). 70인역에서 이 표현은 가시화됨(Aam- Laos, Goi-Ethnos).
(3) 하나님의 백성은 계약백성으로서 주변의 많은 국가들 속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소유”로 나타남.
다. 아브라함언약과 선교(창12:1~3)
1). 주경적 이해
(1).아브라함 계약
- 계약적 신앙의 중요성(롬10:17)
-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계약상대로 나타남.
- 하나님의 자기백성에 대한 은혜와 약속의 주권적 통치
- 약속의 계약
(2). 4가지 약속들
- 새 땅
- 수 많은 후손들
- 신적 보호
- 만민에게 복의 근원-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 됨
(3). 구원의 언약 – 칼빈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구원의 언약이다”
2). 선교적 이해
(1). 온 세계에 퍼져 있는 타 문화권 선교를 위한 평신도 선교의 근거
(2). 하나님의 이방 민족들에 대한 관심과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택하심.
(창12:3): “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3).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잃어버렸던 족속에 대한 회복이 함께 나타남.
(4). 이스라엘의 선택은 곧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함임.
라. 모세언약과 선교(출 19:5~6)
1). 모세언약: 시내산 계약 또는 율법 계약
(1). 구속사에서 모세계약의 위치
(2). 율법의 의미
(3). 십계명(도덕법)
2).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3가지 이름
(1). 열국중에 내 소유
(2). 제사장의 나라
(3). 거룩한 백성
3). “ 내 소유”의 의미
(1). 출19:5 “—너희는 열국 중에 내 소유가 되겠고”
하나님 백성이 가지는 특권을 의미함.
(2). Segulla(소유)의 의미
- 개인의 사적 소유물
- 움직일 수 있는 재산
- 값비싼 보물
- 왕의 귀중한 보물을 담는 보배 합.
4). “제사장 나라”의 의미
(1).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제사장적 역할
(2). 제사장의 역할:
- 제단에 봉사
- 백성을 위해 축복
-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침
(3). 이스라엘의 우주적 제사장 역할: 하나님과 만민들 사이에서
5). “거룩한 백성”의 의미
(1). 하나님 백성의 지위와 책임
(2). “거룩한”의 의미:
- 평범하거나 부패한 것에서 구별된 것
- 하나님의 쓰심을 위해서 특별히 분류된 것.
-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결성”보다는 하나님의 “특별목적”을 위한 사역의미
(3).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된 삶: 십계명의 서문과 십계명
(4). 이스라엘의 특별 목적을 표현함:
- 예배와 봉사
- 구속사 속에 있는 선교적 소명
마. 이사야 43: 20~21
1). “내 백성 나의 택한자”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1). 평신도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
(2). 암흑과 혼돈의 시대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2).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내 백성, 나의 택한 자”(20) – 하나님의 선택과 장래 구원
3).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관심
(1). 하나님 백성에 대한 주재 권
(2). 앞서 가시며 이끄시는 여호와 하나님
4). 하나님의 불변하신 약속:
버리지 아니하시며 계약관계는 변함 없음을 증거.
5). 하나님의 선택된 목적: “—지었나니”(21)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표명.
6). 이스라엘의 특권과 책임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 하나님의 전능 하심과 구원의 활동을 선포하게 하심
평신도 선교의 신약 성경적 근거
가. 신약 성경은 전문인 선교의 개념을 보다 분명하게 나타냄
1). 대표적인 성경구절: 엡4:11~12, 벧전 2: 9~10
2). 어원적 의미
(1). 신약성경의 “백성”에 대한 두 용어
- Ethnos: 국가들, 나라들
- Laos : 하나님의 백성들
(2). 하나님의 백성
- 전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계약적 성격을 강조한 말-Conn.
- 특별한 신분의 백성에 대한 계약적 성격을 강조하는 말-Strathman
-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지칭 하는말: 행15:14; 18:10; 롬9:25; 고후6:16; 딛2:14; 벧전2:9; 히4:9; 8:10; 10:31; 13:12; 계18:4; 21:3
(3). Laos는 교회의 직분이나 역할들에 관계없이 구원 받은 모든 남녀 성도를 포함하는 말이다.
나. 모든 성도의 사역(엡4:11~12)
1). 서론
(1). 사도 바울의 “모든 성도의 사역론(Every-member ministry)”을 말하는 내용이다(Hendrickson, Stott, Stevens, Packer).
(2). 본문의 핵심 내용:
- 영적 은사들의 분배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며, 모든 성도들이 사역자로 준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3). “은사들”과 “사역”이란 용어가 주는 의도는 바로 교회의 “봉사”에 부르심으로 나타난다.
(4). 이 본문은 평신도 사역에 대한 성경적 태도를 확고하게 한다.
2). 영적인 은사들
(1). 본문의 내용들
- “사도들, 선지자들, 전도자들, 목사와 교사들”(11절)
- 모든 은사들은 교회의 평신도들로 하여금 그들의 사역을 수행케 하는데 이바지 한다 – 칼빈
- 여기 본문에 나타난 은사들은 교직제도(Church – Officers)를 확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을 돕기 위한 은사이다
- 교직주의의 권위를 나타내지 않고 영적 은사들의 기능을 강조한 것이다(F.F. Bruce)
- 개인적 은사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교회의 하나됨에 많은 장애가 된다(Van Engen)
(2). 은사들의 특징
-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각양 은사를 나눠주심을 강조하는데, 만일 그리스도께서 은사를 나누어 주시지 않았다면 교회사역은 없었을 것이다(칼빈)
- 교회에서 은사들의 사용은 인간들의 고안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부여된 신적 부과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은사를 받지 아니하면, 어느 누구도 사역자가 될 수 없다(Ridderbos).
- 은사의 다양성(고전12:12; 롬12:4):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은 아니다.
- 은사의 두 가지 목적: 첫째는 사역을 위해 성도를 준비시키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다.
3). “성도를 온전케 함”의 의미
(1). 어원적 의미
- equipping(RSV, NASB), perfecting(AV), preparing(NIV)
- 고대 헬라어 의학 용법상, “ 몸의 부분들의 조화를 위하여 인간의 뼈나 다른 부분들을 조정하는 뜻으로 사용됨”(P. Stevens).
(2). 실제적 의미
-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향한 계획으로서, 성도들 모두가 각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심.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성숙케 함.
-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의미는 모든 성도들이 해야 할 사역이 있음을 말한다.
다. 왕 같은 제사장들의 선교(벧전 2:9~10)
1).본문의 중요성:
(1). 평신도 선교를 위한 핵심적 성경구절
(2). 하나님백성의 개념
(3). 구약적 배경을 신약과 연결시킴.
(4).하나님백성에 대한 계속적인 부르심과 그들의 역할을 강조
2). 본문의 구성:
(1). 그리스도인의 위치
(2). 그리스도인의 사역과 역할
3). 4가지 이름:
(1). 택한 족속,
(2).왕 같은 제사장,
(3).거룩한 나라,
(4).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4). 택한 족속의 고찰:
(1). 사43:20~21; 41:8~9; 신4:37; 7:6; 14:2; 시105:6, 43
(2). 구약적 개념을 인용
(3). 베드로 서신에 나타난 “택한” 의미: 1:2; 2:4,6,9; 5:13
(4). 택한 족속의 의미는 특권만이 아니라 봉사와 섬김의 소환령을 뜻함.
5). 왕 같은 제사장들
(1). 서론:
- 평신도가 가지는 영광스러운 사역의 부요함을 나타내는 말
- 출19:6 “제사장 나라”와 연관: 모든 왕적, 제사장적 위치와 의무, 그리고 특권을 나타냄.
(2). 왕 같은 제사장들과 평신도 선교
-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제사장적 사역과 유익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 평신도의 특권
-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간에 그 누구의 중재 없이 직접 들어갈 수 있는 축복.
- 하나님과 성도사이에 어떤 특별한 종교 계급적인 위계질서가 있을 수 없다.
- 말과 행동만이 아니라 제사장 나라의 존재 자체로서 가지는 의미 – 모든 성도들의 선교적 역할.
6). 선교적 사역: (9절 하반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 성도의 특권과 위치, 그리고 부름 받은 목적이 나타남.
(2). “아름다운 덕을 선전케 하려 하심”- 사43:21
(3). 시96:3: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 지어다”
(4).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을 나타냄.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에서 나타난 전문인 사역
제1차 선교여행 시에 바울과 바나바 사도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갈라디아 지역의 도시에서 전문인 사역을 했음을 볼 수 있는데(행13:1~14), 바울 사도는 “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고전 9:6)고 말하였다.
제2차 선교여행 기간동안에도(행 15:40~18:22) 바울 사도는 노동했음을 사도행전 18:3의 천막 만드는 일(Tentmaking)에서 볼 수 있고 또 그가 보낸 서신을 통해서도 알 수 있게 된다. 데살로니가 전서 2: 9~10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음을 보게 된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그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일깨우려 했던 것은 복음 전하는 바울 자신이 현지인들과 똑 같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노동하였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함이었다. 사도 바울은 수고하고 애씀으로써 성도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그는 복음을 전했단 말인가? 안식일에 그는 회당에서 가르쳤고 일하는 작업장에서는 정오의 긴 휴식시간을 통해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상적 생활을 통해서 본을 보임으로써 복음을 증거 했음을 또한 보게 된다, “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살후 3:7~8). 그는 가르침의 진실성과 개종자들에게 상전에 대한 종의 태도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동현장에서 의도적으로 일하였다고 한다(엡 6: 5~9, 골 3:22~23). (룻 시멘스 1999, 31)
제3차 선교 여행기간(행 18:23~21:14)에도 사도 바울은 노동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그가 3년 동안 에배소에 머물면서 날마다 쉬지 않고 성경을 강론하였고(행 20:31), 성도들간에 논쟁이 일어나 어지러운 고린도 교회에 편지 한 내용에서 그가 에배소에서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고전 4:11`12). 이 같은 어려움과 고난 중에도 친히 손으로 노동하며 생계를 유지했음을 볼 수 있게 된다. 3차 선교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그는 밀레도 항구에서 에배소 장로들을 청하여 불러 모은 뒤, 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의 간곡한 부탁의 말씀 속에서도 먼저 바른 신앙생활 가운데 자신의 노동으로 재정을 확보하여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복음을 전하는 전문인의 선교적 삶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2~35). 바을의 3차에 걸친 선교여행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그는 노동 현장에서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였고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는 전문인 선교 사역의 본을 보였음을 알 수 있게 된다.
4.2 전문인 선교 사역이 사도 바울에게 필요했던 이유
전문인 선교 사역의 성경적 근거를 살펴 본 만큼, 선교의 백전 노장이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전문인 선교 사역이 왜 필요 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의 전문인 선교 사역에 더욱 깊은 확신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오늘의 전문인 선교 사역의 실효성에 대한 성경적 확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룻 시멘스의 글을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 하였다(1999, 39~43):
첫째, 사도 바울은 복음의 신뢰성을 염두에 두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순회 설교자들이 있어 철학을 강의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순회 설교자들이 돈을 요구하는 풍습과는 달리 청중으로부터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와 그 동기에 대해서 의심 받는 것을 바라지 않았든 것이다. 그 자신의 생활비를 위해서 오히려 열심히 일했으며 복음 설교에 대해서는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둘째, 사도 바울은 동질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 위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행하면서 복음 대상자의 문화를 수용하도록 하였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스스로 노동자가 된 것이었다. 그는 학식과 경륜이 매우 높은 학자였으나 상아탑적으로 복음을 외치지 않았고, 오히려 단순하고 명료하게 노예들과 노동자들과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셋째, 사도 바울은 모범을 보여주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그가 직업을 통해 노동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를 따르는 자들과 새로이 개종하는 자들에게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일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자 하였고 새롭게 변화된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쳤다(고전 6:9~11)
넷째, 사도 바울은 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단지 교회 개척에만 목적하지 않았고 개척된 교회들이 건전한 공동체적 생활을 통해서 반드시 자립하도록 하였다. 그 당시 사도 바울에 의해서 개척되어진 교회들은 모두가 재 생산적이어서 교회의 성도들이 다 같이 전도사역에 힘썼다. 그리고 그 같은 전도 사역에 대가를 요구한 일이 없었다.
4.3 사도 바울의 전문인 선교가 주는 교훈
지금은 전문인 선교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실천한 전문인 선교가 어떠한 성경적 기준들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서 오늘의 전문인 선교 사역에서도 바르게 적용하도록 최선을 다 해야만 한다. 룻 시멘스는 5가지로 성경적 기준을 제시하였는데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999, 44~54):
첫째, 성경적 정의: 전문인 선교의 성경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직업과 복음전도의 양자중의 선택적 택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인 선교는 단지 평신도 선교일 수만도 없으며 모든 성도는 전도와 노동을 병행시켜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문화명령과 전도 명령을 종합시키는 길이다. 전문인 선교사는 타 문화권에 들어가서 제자를 삼기도하고,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기도 하고, 가정교회를 시직하기도 하고, 성경번역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전문인 선교사는 교회에 가능한 한 비용부담을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현지에서 급료를 받으면서 별도로 교회의 후원을 받게되면 현지인 동료들과 우정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성경적 원리가 아닌 것이다.
둘째, 성경적 기초:
교회는 사도 바울이 그 삶을 통해서 제시한 성경적 근거를 갖추어야한다. 전문인 선교에 대한 토론적 ‘단점’이나 편견적 문제점만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선교 사역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사실에 눈을 돌려 성경적 기초위에서 발전시켜 나가도록 해야한다.
셋째, 성경적 인도:
바울 사도의 선교 원리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어떤 사역 형태를 따라가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직업을 사용해서 복음전도 사역을 하도록 하셨고, 베드로 사도에게 있어서는 복음전도 사역을 위해 그의 직업을 떠나라고 하셨다. 두 사도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의 자질, 경력, 선교 대상민족, 목표, 은사, 사역 내용 등이 완전히 다르다. 성경적 기준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의 사역 형태를 취할 때, 혹은 두 가지의 사역 형태를 혼합시켰을 때 각각에서 얻게 되는 장점은 무엇이며 감수해야할 단점은 무엇인지를 측정할 수 있게 하였다. 급격한 오늘의 사회 변동 속에서 그 시기와 사역 현장에 따라 베드로와 바울 사도 중 어느 사역의 형태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는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 하실 것이다.
넷째, 성경적 훈련:
훈련에 있어서는 일반 선교사의 훈련 내용을 전문인 선교사 훈련에도 그대로 반영시켜야 하며, 여기에 첨부해서 사도 바울이 행한 전문인 사역의 선교원리와 전략, 세속사회 속에서의 삶과 노동의 관계, 직업인의 윤리의식을 깊이 있게 다루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성경적 전략:
세계복음화를 효과적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바울 사도의 선교전략을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그는 교회를 개척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개척된 교회가 자립기반을 구축하여 선교에 동참하도록 하였다. 복음에 대해 적대적인 문화권에서는 가정교회를 통한 민첩한 교회 개척으로 긴장감을 팽배시키는 분위기를 피해 나갔다. 또한 평신도의 사역을 통해 복음 전파가 어려운 지역에도 교회가 개척되어 지도록 하였다. 재정후원이 필요한 선교 사역지에는 필요한 재정지원을 하도록 하였고, 자비량으로 사역이 가능한 곳에서는 전문인 사역으로 교회를 개척토록 하는 조화있는 선교 사역을 수행했음을 보게된다.
5. 21세기의 전문인 선교의 필요성
전문인 선교의 필요성을 크게 5가지로 나누어서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늘날의 선교 상황이 전문인 선교사를 필요로 하고 있는데:
1) 폭발적인 비그리스도인의 인구 증가;
2)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나머지 종족집단의 지속적인 폐쇄성;
3) 문화적 장벽을 넘어서 가고, 알려지고, 신뢰받고, 그리고 이해되는 문제;
4) 어떤 외부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국가에 알맞은 교회 개척 전략의 필요성;
5) 미전도 종족내에서의 빈번한 물질적 궁핍;
6) 선진국의 물질적 번영과 힘을 따라 잡고자 하는 많은 미전도종족 지도자들의 야심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새로운 선교전략이 전문인 선교를 필요로 한다:
1) 잘못된 표적으로서, 이미 기독교화한 지역에 99.9%의 선교 자원을 사용하고 미전도 종족에게는 0.1%만을 사용하고 있으며;
2) 미전도 종족을 위한 핵심적인 전문인 사역자의 부족;
3) 새로운 전략적 전환의 필요성 – 6000여개의 미전도종족 선교를 위한 전략의 시급성
셋째, 미전도종족의 선교적 접근으로서, 전통적인 선교사 신분으로서는 사역할 수 없는 지역의 선교전략으로 전문인 선교사가 필요하다.
넷째, 10/40창의 미전도국가에 대한 선교 – 서아프리키로부터 중동을 지나 아시아까지 뻗쳐있는 북위 10도에서 40도 사이에 있는 띠 모양 지역의 국가들로서 여기에는 회교권, 힌두교권, 불교권이 포함되어 있으며, 새로운 선교의 표적국가들이 위치하고 있고, 전 세계 빈민의 82%와 대부분의 저개발국가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선교사의 접근을 제한하는 지역이다.
다섯째, 만약 그리스도인 5억이 전문인 사역자로서 10명씩만 선교한다면 세계 복음화의 성취가 가능하다 – “만약 우리가 사랑의 복음을 가지고 회교도들에게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에 대한 심판으로서 그들이 우리를 대적하도록 하실 것이다. 회교의 종말론은 그들이 온 세상을 정복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세계를 정복하는 성전(지하드) 가운데 있다고 생각한다”(크리스티 윌슨 – 전문인 선교사).
5.1 전문인 선교의 유형
전통적인 선교사의 입국이 제한 되어 있는 창의적 접근지역의 복음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선교 전략적 측면에서 패트릭 라이(Patrick Lai)는 전문인 선교사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T-1: 직업적인 동기로 해외에 근무하게 된 사람으로서 선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자,
T-2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전통적인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선교의 목적으로 입국하여 세속적인 직업으로 자비량하고 있으나, 시간적인 면에서 선교 사역보다는 직장 일에 더 비중을 두고 일하는 자,
T-3 :전통적인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가서 사업을 통해 자비량하면서 선교 사역에 최우선을 두는 자,
T-4 :전통적인 선교사의 입국이 불가능한 지역에 학생 등의 신분으로 들어가 사역하는 선교사, 이러한 선교사는 자비량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의 도움을 받는다.
여기서 T-1의 타입은 전문인 선교사로 볼 수 없겠으나 T-2, T-3, T-4는 선교 단체와 연관하여 전문인 선교사로서 사역할 수 있다. 크리스티 윌슨은 모든 그리스도 인들의 선교적 동원이라는 차원에서 타 문화권에 거주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전문인 선교사로 보고 있으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최바울은 비판하고 있다. 즉 선교와 전도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사역적 차원에서 개념적 분리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전도는 그리스도 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반적 대중적인 성격이 있는데 반하여 선교는 전도를 효과적으로 하기위해 분야별 혹은 영역별로 추진하는 전도 행위로서 전문성과 특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에는 이러한 임무에 대한 특별한 사명이 있고 이러한 사명을 효과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사역적 전문성이 요구된다. 타 문화권에 거주하면서 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선교사로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선교사는 타 문화권에서 현지인 교회를 구축할 궁극적 목적을 가지고 선교 현지에서 복음 사역을 하는 본 교회의 파송이나 후원을 받는 자이다. 이렇기 때문에 사역적 전문성을 보유하기 위하여 훈련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선교는 따라서 교회적 사역이 되어야 하며 결코 개인적 사역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이상의 내용은 최바울의 ‘탠트메이커 선교사의 선교 사역적 의미’와 조한상의 ‘전문인 선교에 관한 연구’ – 장로회 신학대학의 석사 학위 논문(M. Div)에서 부분적으로 발췌 한 것이다(최바울 1999, 10~12, 조한상 1996, 30~32).
5.2 선교지 현장의 문제점
선교 현지에서 일어나는 문제점들에는 선교사로서 현지에 나가기 전의 문제점들과 사역 현지에서의 문제점을 포함하여 검토하였다. 한 선교사로서 선교 현지로 파송 하기에 앞서서 선교 자체에 대한 많은 장벽들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장벽들이 선교를 시작부터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선교 현지에서 까지도 많은 어려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선교 현지에서의 문제점들을 알아 보기에 앞서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선교의 장벽들을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 먼저 알아 보는 것이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면에서 더욱 중요한 조치라고 생각 된다.
1) 선교의 장벽들
선교의 장벽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지난 200여년의 선교 역사 속에서 노출 되었던 역사적이고 경험적인 장벽들이고, 둘째는 오늘의 급변하는 선교 현지의 상황과 이러한 상황에 대한 교회의 인식 부재 속에서 예측되는 장벽들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벽들에 대해서 이태웅은 ‘한국 선교의 이론과 실제’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이태웅 1994, 65~67). 여기서 선교의 장벽을 역사적인 것과 오늘의 상황적인 것과 한국적 상황으로 분류한 것은 본 연구자가 편의상 정리한 것이다.
(1) 역사적 장벽들
현대 선교 운동이 시작될 때에 나름대로 극복해야 할 여러 가지 장벽이 있었다.
첫째, 지상 명령에 대한 오해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지상 명령은 사도들에게 주어진 것이므로 그 후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부류가 있었다.
둘째, 신학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18세기말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알려진 윌리암 케리가 선교를 호소했을 때 다음과 같은 선의의 응소를 받았다. “자네가 없이도 하나님은 선교하실 수 있네.”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책임 한계 사이의 불분명한 선이 선교의 벽이 되었던 것이다.
셋째, 무지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선교 정책과 선교 대상지, 선교 여행장비 및 운송 수단에 대한 미비점들 외에도 선교사가 현지 생활 중 방역 부족으로 희생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넷째, 불충분한 선교사 준비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선교에 대하여 잠자던 교회의 일각에서 선교를 시작하고자 했을 때 경험부족과 선교학적 공백 상태에 있던 교회는 커다란 장벽을 넘지 않으면 안되었다.
(2) 오늘의 장벽들
첫째, 지나친 경비부담이 뒤따른다.
현재 한국 선교사 한 가정을 파송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1년간의 경비는 선교지 왕복 여비를 제외하고도 대략 15,000불 내지 25,000불이 되고 있다. 이 것은 선교사가 파송 되기 전 1~2년 동안에 진행되는 선발 및 오리엔태이션 등에 드는 비용을 제외한 금액이다.
둘째, 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적 장벽이 있다.
19세기 및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많은 선교 대상국들이 서방 식민지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종주국 여권을 가진 선교사들은 그 나름대로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선교 대상 국가들이 독립을 하게 되었고, 그 나라의 국익을 위하여 이데올로기를 채택하던가 또는 고유의 종교를 보호하기에 이르렀다. 모슬렘 권과 힌두교 권은 대표적인 예이다. 크리스티 윌슨은 세계 인구의 약 50%는 정규적인 선교사의 신분으로서는 접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하였다. ---창의적 접근 지역의 나라 수는 무려 145개국이며 전 세계 불신자의 96%에 해당한다.
셋째, 타 종교의 장벽이 있다.
가장 현저한 장벽은 이슬람, 불교, 및 힌두교이다. 이 중에서 인구 10억을 웃도는 이슬람교도는 단순히 수동적인 자세만 취하지 않고 공격적이고 선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넷째, 세속화의 장벽이 있다.
일본, 대만, 중국, 싱가폴 등 산업 사회를 이룬 나라들은 일단 선교사가 입국한다 할지라도 또 하나의 큰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들은 고유의 종교 및 문화로 말미암은 저항감 이외에도 세속화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으로 복음을 들고 침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섯째, 인도, 필리핀 등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가 주는 제한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인도와 필리핀의 경우 외화를 자유롭게 선교사에게 보낼 수 없으며 대부분 해외 선교는 그 자금을 타국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3) 한국적 상황의 장벽들
첫째, 목사나 정규선교사만을 선교사로 인정하는 인식적 장벽이 있다. 한국의 대부분의 지역 교회는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를 선교사로 인정하지 않고, 오직 신학을 공부한 목사나 전임 선교사만을 선교사로 인정하는 경향이 매우 높다. 이 것은 세계 선교적 조류에 역행하는 처사이다.
둘째, 선교 정책이 교단마다 그리고 선교회마다 서로 일치하지 못하고 구체화되어 있지 못하다.
셋째, 지역 교회가 선교에 대한 인식이 깊지 못하다.
넷째, 선교사의 현지 관리체제가 부족하다.
2) 선교 현장에서 말하는 문제점들
돈 해밀톤은 800명 이상의 전문인 선교사들(저자는 자비량 선교사라고 명하고 있음)에게 설문지를 보냈고 그 가운데 406명이 응답하였는데 응답자 가운데 98%가 공통적으로 제시한 고백의 4가지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돈 해밀톤 1992, 14~15):
첫째 내용: 나는 선교지로 가기 전에 6년간 대학생 선교를 했으므로 잘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나는 선교 현지에서 효율적인 사역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준비도 기도후원도 부족했고 꼭 보고해야 할 책임도 없었기 때문이다 - 중국의 전문인 선교사.
둘째 내용: 너무나 갑작스레 기회가 와서 나는 구체적인 준비를 하지 못하고 떠났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미리 준비를 했어야 했다. – 중동의 전문인 선교사.
셋째 내용: 나는 더 준비할 수 있었는데, 후회스럽다– 일본의 전문인 선교사.
넷째 내용: 전문인 선교사로 해외에 가는 사람은 부족한 부분을 선교지에 가서 시간을 내어 보충 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조국을 떠나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 – 북아프리카의 전문인 선교사.
이상의 보고에서 들어나는 사실은 전문인 선교사로서의 준비, 훈련, 교회와의 연계성, 팀 사역, 그리고 선교 단체의 관리 등 의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선교 단체들이 전문인 선교사의 허입을 놓고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전에 본인들이 벌써 해외로 떠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응답자 406명 가운데 선교 단체와 연결되어 파송 된 선교사는 30%에 불과 하였다( 1992, 15).
전문인 선교사들과 전임 사역의 선교사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전문인 선교의 선교 현장에서의 문제점(취약점이라고 본문에는 기술됨)은 다음과 같다( 1992, 28):
첫째,전문인 선교사들은 광야를 휘젓고 다니는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이 되기 쉽다. 그들은 선교지에 나가 이미 그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역에 합세할 생각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일’을 한다. 팀 사역도 아니고 보고 체계도 없고 책임한계도 없고 스스로 외에는 자문기관도 권위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장기적인 계획이나 식견이 없다. 그러므로 잘 하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잘못하면 자신은 물론 주위의 그리스도 인들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둘째,전문인 선교사들은 영적으로 성경적으로 준비가 미숙한 가운데 선교지로 나간다. 그들은 현지에서 부딪히게 될 영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훈련도 지식도 자원도 결여된 상태이다.
셋째,전문인 선교사들은 현지의 언어를 배우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지 않는다.
넷째,전문인 선교사들은 많은 시간과 정력을 일에 쏟아야 하므로 그들의 선교 사역은 유야 무야가 된다.
전문인 선교사로서 사역에 성공하려면 선교 현지로 나가기 전에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에 힘써야 하고, 현지에 도착한 후에도 현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도록 기도해야 하며, 장기간 기다리며 영적으로 늘 깨어 살피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속성으로 무엇을 이루어 보려는 사람에게는 전문인 선교 사역은 적합하지 않다. 전문인 선교로 성공하는 것은 일반 선교사로 성공하는 것보다도 훨씬 힘들다. 회교 선교 단체인 프론티어스를 창설한 그레그 리빙스턴(Greg Livingstone)은 “ 전문인 선교사로 성공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끝내 해내고야 마는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1992, 35).
성공적인 전문인 선교사는 모교회와 견고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모교회와의 관계성에 대한 질문이 16개가 있었는데 우수한 전문인 선교사는 보통 이하의 전문인 선교사들보다 16개항의 질문 하나 하나에 높은 점수를 보였다고 한다. 결국 효과적으로 현지 사역을 잘 수행하는 전문인 선교사는 지역 교회의 중요성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에 잘 참석했었고,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훈련 등 현지에서 필요로 하는 많은 사역의 경험을 교회를 통해서 쌓았고, 장기적인 교제와 지원을 교회에 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모교회에 보고할 책임을 느끼고 있었고 또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원하는 면에 있어서 교회를 먼저 꼽았다(1992, 57).
대부분의 전문인 선교사들은 일터 근처에 ‘현지 지원팀’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옆에서 격려해 주는 목소리가 꼭 필요할 때가 있다. 옆에 같은 언어, 같은 문화, 같은 배경의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너무 좋고 또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하였다. 같은 목표와 비전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팀 사역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고백하였다. 그런 교제와 지원이 없었다면 실패하고 사역을 그만 두었을 것이라고 어느 전문인 선교사는 말하기도 하였다. 충분한 기도와 교제의 지원이 없었던 어느 선교사는 “환경적으로 너무 낙심 되고 긴장 되어 처음으로 나는 믿음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다른 전문인 선교사는 말하길 “믿음을 버리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팀이나 교제 가운데서 힘을 얻었더라면 그렇게 낙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1992, 58~59).
전문인 선교사는 그 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 들어가서 살 권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나라에는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문을 열고 전문인 선교사를 맞이하는 것이다. 기회의 세계(Global Opportunities)의 루스 시멘스(Ruth Siemens)는 “ 당신에게 꼭 맞는 직업은 하나다, 그 것을 찾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전문인 선교사가 되려면 자신에게 적당한 직업의 전문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한 전문인 선교사들에게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즉, 그 분야에 실력자라는 것이 효과적인 사역에 필수 요건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실력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존경 받기 위해서는 우선 맡은 일을 잘 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실력을 인정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실력에 따라 당신의 증거는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된다는 것이다. 영적인 사역은 훌륭하고 전문 분야의 일은 엉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 분야에 부적합하고 실력이 없어 그들의 복음 증거는 무력했음을 보았다고 한다. 일을 잘 못하면서 강력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기는 참으로 힘들다(1992, 76).
(1) 선교사 중도탈락의 문제
선교사 중도탈락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그 수치를 파악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든 데 선교를 담당하는 일선의 기관들이 선뜻 내놓을 수 있는 자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윌리암 태일러는 세속 세계의 중도탈락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 심각성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중도탈락은 해외 주둔 군인을 비롯해서 외교관, 사업가들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고도 많은 비용이 드는 문제이다. 미국에서 해외로 파견된 경영관리자 중에 30%정도가 해외 근무 도중에 돌아온다. 이처럼 해외 근무 도중에 중도에서 탈락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개인과 가족의 스트레스라고 한다. 이 같은 중도 탈락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독신 중간 관리자의 경우에는 약 15만 불이 되지만 가정을 가진 고위 관리자의 경우에는 35만불 이상이 된다고 한다(윌리암 태일러 1998, 22) 그렇다면 선교사의 중도탈락은 얼마나 될 것인가? 통계라는 것은 엉터리일 수 있고 또 자신들의 경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숫자를 부풀리는 경우도 있는데, 지금까지 조사 한 바에 의하면 전 세계 선교 사역자들 20명 중 약1명(5.1%)이 매년 선교지를 떠나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들 중 70%는 방지 가능한 이유로 인해 돌아간다고 한다. 타 문화권에서 사역하고 있는 전 세계의 선교사를 15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그렇다면 이들 중 7,650명이 매년 선교 현지를 떠난다는 사실이다..(1998, 29)
한국 선교사의 중도탈락은 어떠한가? 1992년에는 파송 선교사 중에 23.4%가 임기 이전에 귀국하였고, 1993년에는 42.9%로, 그리고 1994년에는43.7%로 중도 탈락 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한국 선교의 어두운 면을 보이고 있다(문상철 1998, 137~38). 선교사 중도탈락과 관련해서 가장 심각하게 자기 반성과 고통을 겪게 되는 곳은 첫째는 파송 교회요, 둘째는 훈련 기관이요, 셋째는 파송 단체가 되고 있다. 세계 선교 협의회의 선교위원회가 시작한 ‘탈락 방지 연구(ReMAP: Reducing Missionary Attrition Project)’는 기능적으로 선교의 기본 구조를 이루는 3가지 요소에 대해서 검토해야 함을 결론 내렸는데 그 3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윌리암 태일러1998, 21):
1) 선교 후보생의 이전 단계: 교회를 동원하고 선교사 후보생을 심사하여 파송하고 지원하는 것을 포함한 선발과정
2) 훈 련 : 타 문화권 사역자들을 철저하게 훈련시키는 과정
3) 선 교 지: 선교사를 지원하고 전략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그들을 목회적으로 관리하고 돌보는 것.
1994년에 착수된 탈락 방지 연구부서는 이상의 3가지 요소를 항목별로 분석하였는데, 1번과 2번 항목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긍정적 평가가 나왔으나 선교 현지 상황에 대해서는 문제점들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즉 선교 현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전략적 측면에서 목양하는 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중도에서 그만 둔 선교사들 가운데는 선교 현지에서 새롭고도 능력 있는 지도자가 등장하는 것을 목 마땅하게 생각하는 부정적인 선교 지도자들이나 동료들 때문에 밀려난 사람도 있는 것이며 또는 목양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자기 자신이나 파송 교회, 후원자들, 파송 선교 기관, 또는 현지 교회들의 비 현실적인 기대 등으로 인해서 기진 맥진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사가 심판을 받기보다는 선교 지도자들이나 선교행정 구조 또는 선교 기관의 문화 – 이러한 것들이 더 심판을 받아야 할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1998, 21) 중도탈락을 다른 면에서 볼 수도 있는데 오히려 중도탈락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 중도탈락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파송 교회나 선교 단체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태도나 행동을 바꾸어서 어떤 특정한 선교사들에게는 다른 적절한 사역을 찾아 주어야 할 경우도 있다. 많은 지도자들이 그들의 선교사들을 귀하게 생각치 않고 있으며 선교사들과 그들의 가족이 상처를 입거나, 그 선교단체의 정책이나 지도자들이 큰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이다(1998, 24).
(2) 중도 탈락의 양상
중도탈락에 있어서는 납득할 만한 것들과 중도탈락을 방지할 수 있는 것들로 분리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납득할 만한 중도탈락: 정상적인 은퇴나 자녀들로 인한 문제로 중도 탈락하는 경우는 납득할 만한 것이 된다. 또한 정당한 사역의 변경이나 건강문제도 납득할 만한 중도 탈락이 되고 있다.
방지 가능한 중도 탈락: 미리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중도탈락의 이유들이 있는데, 이러한 이유들은 본국으로부터의 후원부족, 현지 동료들과의 문제, 개인적인 어려움, 소명의 결여, 부적절한 훈련, 문화 적응의 어려움 등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선교지로 나가기 전에 다루어지거나 사역 중에도 다루어 질 수 있는 문제이다. 최근에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한 나라들에 있어서는 이러한 방지 가능한 중도탈락의 이유들이 선교사 중도탈락의 중요한 요인들이 되고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4가지는 본국으로부터의 후원부족, 소명의 결여, 헌신의 부족, 그리고 파송 기관과의 갈등이 되고 있다(1998, 26).
(3) 예측 가능한 탈락의 이유
폴 맥코간은 ‘선교사 중도탈락: 문제규명’이라는 글에서 선교사 중도탈락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 탈락 문제는 선교사들이 관리의 잘못과 비현실적인 기대, 조직적인 학대, 개인적인 실패, 또는 다른 개인적인 이유들 때문에 선교회나 교회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선교 현지를 떠나는 것이다”(1998, 34). 이어서 그는 다음의 질문을 제기하였다. 선교사의 탈락 또는 중도포기라는 이 현상의 예측 가능한 이유들은 어떤 것일까? 요즈음은 사람들이 너무 연약해서 ‘그 것을 감당’할 수 없다느니, 오늘날 선교사들의 삶 속에는 ‘영적 미성숙’이 있다느니, 선교사들은 그들이 당면하게 될 사역을 위한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등의 말들이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그럴싸한 가정들이라고 하였다. 첫째는 과거 경험적 선교 체험을 기준해서 새시대의 선교사를 관찰하고 평가하는 경향성이 한 가지 이유라고 하였고, 둘째는 선교 현지와 고국간의 왕복 시간이 24시간이면 세계 어느 곳에서나 충분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정황과 별반 차이가 없는 근접적 사역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며, 셋째는 새 시대의 선교 지원자들은 몇 가지 주요한 직업의 전환을 기대하고 있으며 발전에 필요한 축적된 경험을 위해서 장 기간을 소모하려 하지 않으며, 넷째는 새롭고 다른 경험을 얻는 것은 자신의 이력과 기술 목록을 더욱 확장 시키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1998, 35). 새 시대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야기되는 탈락의 요인들 가운데 간추린 항목들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1998, 35~36):
불신: 선교사 자신의 부족에서 오는 통제불능의 분노, 인위적인 행동, 부정한 섹스, 혹은 다른 죄들을 짓게 되는 도덕적 실패, 이러한 것들은 선교사 자신의 모든 사역을 불신하게 만든다.
질병: 많은 선교사들이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질병은 선교 현지를 떠나는 이유로서 사회적으로 보다 잘 용납되는 것이기는 하나, 이는 또한 오래 지속되는 강한 스트레스에 대한 몸의 반응을 반영하기도 한다.
조직적인 학대: 선교사가 은사와 소명, 또는 영적 자원의 배치가 잘못되어 선교부를 떠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선교회가 자신을 학대하거나 혹사했다고 생각하고 선교회를 향해 아주 쓴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선교 기관들은 자신들의 잘못이나 부적절함을 평가하고 인정하기 보다는 그 선교사가 뭔가 모자라서 그럴 것이라고 쉽게 간과해 버린다.
여지를 둘 것: 능력 있는 선교사가 그들이 필요 되는 시기에 임기를 마치고 떠나게 되면, 종종 뒤에 남아있는 선교사들에게는 어려움을 주거나 그들을 과로하게 만든다. 인적 자원이 철수하게 될 때 흔히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 체 남아 있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역 자체가 실패하는 예도 있게 되는데, 선교회에는 선교사가 떠나야 할 ‘적당한 시기’가 대체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지 못하는 것이 선교 현지의 상황이다.
6. 한국 교회와 선교사 훈련
6.1한국의 선교 훈련 역사
한국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 하기 시작한 시점은 1907년까지 소급해야 하겠지만, 타 문화 선교를 하기 시작한 시점은 전재옥 선교사, 김순일 선교사 등이 선교활동을 시작한 한국동란 이후라 하겠다(이태웅 1994. 20). 타 문화권에 선교사를 파송 한 1950년 대를 기점으로 하여 현재까지의 선교 훈련의 역사적 특징을 임종표는 ’선교사 훈련의 특색’으로서 기술하였는데 정리하여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임종표 1996, 199~201).
초기(1950년대 ~ 1970년대 초)
한국의 선교는 선교 훈련의 불모지에서 시작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믿음 하나만을 가지고 선교 현지로 나간 선임 선교사들의 악전 고투, 실패와 시행착오, 실수와 아픔으로 얼룩진 한국 선교의 초창기는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한 산모의 고통과도 같았다. 이와 같이 초기의 선교사들은 대부분이 선교사로서의 기본적인 훈련 조차 받지 못한 채 선교에 대한 열정만을 가지고 현장에 진출할 수 밖에 없었다. 초기의 한국 선교의 특징은 첫째, 자생적인 선교로 시작되었고 둘째, 신학교의 대부분의 교과과정은 선교 지향적이 아니라 목회 지향적이어서 선교에 대한 교육이 희박했고 셋째, 타 문화권 선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으며 굴절된 시각을 가진 지도자의 시각이 무시 못할 영향력을 미쳤고 넷째, 불타는 선교 열정을 가진 선교사 후보생들이 일단 선교 현장으로 진출해 보자는 태도였다고 하였다.
중반기(1970년대 중반 ~ 1980년대 초)
1980년대 초에 들면서 선교에 대한 실재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이 전문성을 지닌 훈련기관들을 통해서 서서히 마련되기 시작했다. KIM(Korea International Mission, 1963년에 설립된 초 교단적인 훈련원)을 중심으로 한 선교사 오리엔태이션 이 마련 되었고, 전문적인 선교훈련 기관으로서 MTI(Missionary Training International, 예장 합동측 교단 선교 훈련원), GMTC(Global Missionary Training Center, 초 교단적인 선교 훈련원)등이 1980년대 중반기에 설립 되었다.
현대(1980년대 중반 ~ 현재)
본격적인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이 소개되기 시작 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으로 본다. 훈련 기간도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었는데 적게는 4주정도의 집중적인 훈련으로부터 길게는 7개월에서 1년의 과정으로 발전된 양상을 띠었다. 타 문화권 선교의 바람으로 증가하는 선교 후보생들로 인해 훈련에 대한 절대적 요구가 일게 되었고, 기관 또는 교단 등이 중심이 되어 자체 내의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현재의 선교 훈련의 특색을 문제점 중심으로 살펴볼 때, 첫째는 선교사 훈련의 공유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둘째는 선교 훈련 내용의 거의 대부분을 서구 선교사 훈련의 복사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셋째는 선교사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일선의 담당자들이 현장 경험부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넷째는 선교사가 사역하게 될 선교 현지의 적합한 내용과 현장에서 절실한 요구들이 교육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GMTC를 운영하고 있는 이태웅 원장의 견해는 다소간 다른 면이 있는데, 그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선교사 훈련이라는 제목은 생소한 것이었다고 하였다. 근래에 와서는 거의 모든 선교 기관 및 교단 선교부마다 선교사 교육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하였다. 선교사 훈련현황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지금까지 MTI와 KIM의 ‘바울의 집’ 등이 기여를 해 왔는데 주로 외국강사에 의존했던 선교사 훈련이 이제는 훌륭한 한국 선교사들의 대거 참여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하였고, 특히 ACTS는 신학교로서 가장 잘 발달된 선교철학을 가진 학교라고 추천 하면서 선교신학, 문화인류학, 선교역사, 에니미즘(Animism), 교회 성장학 등의 과목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가르치고 있고 선교 학자들도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음을 예로 들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선교사 훈련에 대한 갑작스러운 관심은 한국인들이 한국 선교사들을 훈련시켜 보겠다는 의지의 표시이므로 아주 고무적인 징조라 하였다. 단지 우려되는 것은 첫째로, 각 교단이나 단체마다 각자 자기 기관에서 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폐쇄적인 태도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 점이고, 둘째로는 선교사 훈련이 현장 경험이나 실재 사역 경험이 없이 선교학적으로만 다루어져서 실제로 훈련 뒤에도 구체적인 사역을 할 수 없을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하였다.(이태웅 1994, 21~22)
이상의 기술된 내용으로 종합하여 볼 때 한국의 실질적인 선교 훈련의 역사는 20년이 채 안 되는 15~16년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 짧은 기간 동안에 엄청난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 선교단체는 127개로 훈련기관은 12개로 늘어 난 것이다(문상철 1998, 39)
6.2 한국 교회와 선교 훈련
한국교회는 이미 세계가 주시할 만큼 놀라운 성장을 하였고 교회의 규모에 있어서나 한국 문화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서 주도적 위치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선교사 파송 규모에 있어서도 선교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선교 강국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선교사의 숫자는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비하여 크게 뒤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이태웅 1994, 76). 한국 교회가 선교에 더 많은 열정을 가지고 선교사를 파송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한다.
첫째는 교회가 선교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70년대에는 선교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선교사가 많았던 것에 비해 현재는 그런 숫자가 혁혁하게 줄었고, 이제는 오히려 선교사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선교비를 모금해야 되는가가 일부 선교사에게는 도덕적인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이는 교회가 꽤 선교에 참여하고 있음을 단편적이나마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선교지를 확보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려움울 겪고 있다. 이제는 다행히도 획일적인 선교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지를 확보하려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교단에서 국제 선교기관을 활용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이나, 개발사업, 의료사업, 평신도 선교사의 중요성 인식 등이 이러한 예가 된다.
셋째는 훌륭한 선교사를 확보하는 문제인데 이는 선교사 훈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난 70년대와 80년대 초반만 해도 훈련되지 않은 선교사를 되는대로 보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오히려 선교사 훈련을 지나치게 시키려는 경향까지 일부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1994, 76).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적인 면에서 볼 때 한국적 상황에서만 교회를 보기에 앞서 선교적 관점에서 교회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이며, 그리고 선교 신학적인 면에서의 교회의 본질은 일반적으로 무엇인지를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1) 교회의 역할
교회는 기본적으로 선교사를 양육하는 요람으로서의 역할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로돌포 루디 히론은 ’통합된 선교모델’에서 전문인 선교사로서 선교 현지에서 중도 탈락하는 어려움이 없이 성공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선교사 선발과정에서부터 훈련, 파송 및 현지의 목양 및 감독의 전 과정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고 제안하면서 그 가운데 훈련부분에 대해서는 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선교사 파송이라는 주제를 살펴볼 때 먼저 선교단체나 지역교회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선교사를 선발하고 파송하는데 있어서 지역교회와 선교단체 사이에 긴장이 있어왔다고 한다. 어떤 선교 학자들은 두 존재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각각에 알맞은 역할이 있다고 하였다. 교회는 모달리티(Modality)라 불리며 성이나 나이에 제한이 없이 형성된 공동체이다. 그러나 선교단체는 소달리티(Sodality)라 불리며, 각자가 결정해야 하는 의지적인 공동체로서 성이나 나이, 결혼여부 등이 고려 대상이다. 이 개념은 서구의 선교운동에 중요한 일부가 되어왔다. 그러나 제3세계는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서구 세계에서는 목회자나 지도자를 훈련시키는 최선의 길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그들을 성서학원이나 신학교로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교회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목회자나 지도자는 먼저 지역교회에서 알려지고 검증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였다. 교회 지도자들이 성서학원이나 신학교에서 만들어 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교사들도 선교단체나 훈련센터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지역교회에서 만들어 지는데 지역교회는 그들을 훈련하고 제자화하며 그들의 소명을 확인하고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미래의 지도자와 선교사로서 태스트 한다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교회들은 장래 선교사감을 훈련센터로 보낸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선교사로의 부르심에 대한 확증의 최선의 존재는 바로 지역 교회인 것이다. 선교 단체가 얼마나 전문적인가에 상관 없이 지역교회의 선별을 결코 대신할 수 는 없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가족적 배경에서 문화적 사회적 기틀을 형성하는 기본적 삶의 기초과정을 교회 생활 안에서 이루어가고, 대학교육을 통해 전문인으로서의 세속적 기초를 쌓는 것도 교회 생활과 함께 이루어가고, 직업인으로서 전문적 기초를 닦는 것도 결국 교회를 통한 신앙생활 속에서 이루어가는 것이며 전문인 선교사로서 지역교회에서 훈련센터로 보내지는 것은 선교사 후보의 생활 중에 가장 가시적인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므로 한 개인의 선교 사역적 성취는 그의 생활과 지역교회 안에서의 그의 과거의 발전과 밀접한 연결이 있다. 결론적으로 선교사 개발 모델에는 선교사의 삶과 존재에 관한 후원체계에 해당하는 기초적인 제1단계가 있는 것이며, 제2단계는 선교사로서 인도 하심에 확신을 가지고 훈련센터로 보내기까지의 세움을 받는 단계이며, 제3단계는 선교사로서 선교 현지에서 활동하는 단계인 것이다(로돌프 루디 히론 1998, 41~46). 여기서 선교사로서의 성장과 개발은 바로 지역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교회의 기능
교회는 어떠한 일들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전문인 선교와 관련해서 크게 3가지면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양치호 목사는 그 3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있다.(양치호 2000, 159~164)
첫째, 교회는 전문인 선교의 모판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교회의 대부분 성도들은 사회적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교회는 전문인들의 모임 장소인 것이다 바로 지역교회는 직업 전문인 성도들의 모판으로서 이제는 이 모판에서 모를 논에다 심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모판에서는 모가 자라고 논으로 이식할 수 있도록 생명력 있고 건강하게 양육하는 곳이다. 모판이 크다거나 모판이 많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모판은 그 기능을 바르게 행하는데 존재의미가 있는 것이다.
둘째, 지역교회는 재정적 모판의 기능이 있는 것이다.
선교를 돈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교에 재정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지역교회는 선교비 전대를 채우는 기능적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한국교회는 재정을 잘못 사용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데 선교 비에는 년간 400억을 지출하지만, 주보비에 2000억, 강단 꽃곶이에 2000억을 쓰고 있다고 한다
셋째, 지역교회는 선교 훈련처로서 그리고 파송처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적 전투의 삶인데 영적 군사로서 양육하고 훈련하는 곳이 바로 지역 교회인 것이다. 영적 군사들이 각기 전문성을 가지고 전투상황에 임할 수 있도록 탁월한 전술체계를 교회는 구비해야 한다. 군사를 적절히 전투 장에 배치하듯 지역 교회들은 서로 연합하고 협력하여 전문인 선교의 파송적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고 하였다. 교회는 선교에 헌신 된 자를 발굴하여 교회가 양육하고 훈련시키며 전교인이 관심을 가지고 기도로 지키며 보호하고, 파송하기 위한 훈련단체에 훈련시키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교회가 감당할 것을 부탁하고 있다.
3) 교회의 선교적 본질
이태웅은 ‘선교신학의 변천과 시도’라는 주제의 글에서 맥가브란 이후의 선교신학을 논하는 부분의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하였다.
맥가브란 박사가 떠난 선교학계에는 새로운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전도와 문화의 접합으로 말미암은 미비점들을 보완하는 움직임이다. 전도와 문화의 결합은 어떤 면에서 전도를 과학화하는 좋은 면도 있었지만, 전도가 과학화 됐을 때 전도의 역동성을 잃어버리고 능력이 줄어드는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대한 보완책으로 최근에 일각에서 ‘능력전도’의 바람이 불고 있다. --- 선교학적으로는 교회 성장학이 왕좌를 차지했던 때는 서서히 지나가고 선교는 곧 교회론과 연관 지어져 나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학자 가운데는 개혁신학자인 간하배(Harvey Conn)박사를 들 수 있다. 간하배 박사와 일련의 개혁 신학자들이 교회성장의 신학이라는 내용을 다루면서 교회의 본질과 선교의 이론을 연관시켜 전개함으로써 교회 성장학 일변도의 선교신학이 보다 다양화되게 했다(이태웅 1994, 53).
찰스 벤 엔겐(Charles Van Engen)박사는 교회의 본질에 대한 니케아 회의의 4단어들을 교회의 선교활동을 표현하는 부사로 이해할 때 가 왔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아주 새롭게 재 확인케 된다고 하였다(찰스 벤 엔겐 1994, 91~92). 4단어의 선교적 의미는:
첫째, 통일성:
오직 하나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로 통일시키는 힘으로 볼 수 있다. 교회생활은 초청하고 모이고---하는 생활이다. 유기체적인 결합을 나타내는 성경의 상징들, 몸과 지체의 생활, 결혼잔치 등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는 말씀을 실천하는 선교적 행동으로 바뀔 수 있다.
둘째, 성결성: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결하게 하는 힘으로 볼 수 있다. 교회생활은 사람들로 하여금 용서 받고, 치유 받고, 성령의 임재 하심을 경험하게 하는데 있다.
셋째, 보편성: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보편성은 화해하는 힘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 멀어져 이방인이 된 인간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갖는 방법을 보여주는, 다리를 놓는 운동이다. 여기서 교회는 대사로서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세상을 부른다.
넷째, 사도성: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사도성은 선포하는 힘으로 볼 수 있다. 진리는 오직 교회 안에 있고 이 진리는 누구나 찾을 수 있고 안정감과 조직을 제공하고 또한 실제적이다.
7. 전문인 선교 훈련의 특성
전문인 선교사는 직업이라는 전문성을 앞세워 닫혀진 선교 현지로 나가기 때문에 선교 기관이나 선교 단체로부터의 현지 지원을 거의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전문인 선교사는 더욱 철저하고 강도 높은 훈련과 준비가 요구되는 것이다. 훈련을 받음으로써 한정된 재정,인력 및 시간 등을 효율적으로 선교지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되며 올바른 공동체적 팀사역을 잘 감당하여 사역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더욱이 타 문화권에서의 사역은 문화적응과 다양한 인종을 접촉해야 하는 환경변화가 심각한 부담을 주기 때문에 훈련을 통해서 철저한 준비들이 반드시 갖추어져야 한다. 전문인 선교 훈련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이론을 비교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토마스 핼리의 일반적 이론이고 또 다른 하나는 데쓰나오 야마모리의 특별훈련을 들 수 있겠다. 먼저 토마스 핼리의 이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토마스 핼리 1995, 31~32):
7.1 토마스 핼리(Thomas Hale)의 전문인 선교 훈련
모든 전문인 선교사에게는 몇 가지의 숙달된 기술이나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것들은 선교 현지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며 숙소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만큼이나 기본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들이 있는데:
첫째는 무엇을 하든 그 분야에 능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의 미숙성이나 부주의성, 그리고 기술의 천박성은 결코 주님의 영광을 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선교 현지의 주민들은 부여 받은 임무에 자질을 갖추지 못한 선교사를 참고 기다릴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전의 선교사들이 일단 현지에 가서 “해 보지 뭐”-하는 식은 이미 지난 것이다.
둘째는 훈련 기간 중에,
선교 현지에서든 혹은 국내의 비슷한 상황에서든 실제적인 체험을 쌓는 훈련을 갖도록 해야 한다. 실제적인 체험 훈련의 1개월은 현지에서의 선교 사역 1년의 경험적 가치를 갖게 한다.
셋째는 습득한 기술이나 전문성이 사역을 하러 나갈 현지에 매우 적절해야만 한다.
이 말이 단순하게 들릴지 모르나 매우 복잡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선교 현지에서의 ‘적절성’은 매우 쉽게 변할 수도 있다. 새로운 것이 요구되면, 이전 것은 이내 사라지게 된다. 요구되는 기술의 설명서도 대개는 막연하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의 새로운 요구의 가능성을 대비해서 훈련을 통해 다방면에 조금씩 익혀두는 것이 필요하다. 현지의 필요로 외과의사가 나갔으나 그는 일반진료도 감당해야 하며, 간호사는 조산원의 능력도 갖추어야 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된다.
그렇다면 전문인 선교사로서 자신의 기술이나 전문성은 어느 수준으로 구비해야만 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토마스 핼리는 현지의 상황에 “적절한 수준”을 천거하고 있다. 그는 말하길 이 것은 자신의 태도와 관심과 또한 현지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현지의 사정이 그 분야에 특수한 수준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가 분명치 못하다면 다음 임기까지 보류하는 편이 낫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익힌 것들로 현지 사역을 통해 충분한 사역의 경험을 쌓은 뒤에 현지에서 새로운 필요를 직접 찾아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과다하게 훈련을 받는 경향들이 있는데,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은 그 만큼 선교 현지의 사역성이 떨어지게 된다고 하였다. 고도의 전문가들은 선교 사역지에서 거의 기회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문에 최고의 수준으로 올라가려는 유혹은 그 만큼 선교의 기회는 없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였다. 석사 학위면 족하며 박사학위는 조금 보류했다가 하나님의 분명하신 인도 하심으로만 나아갈 일이라고 한다. 닫혀진 나라로 가려면, 차라리 유학생으로 가는 편이 장기간 체류할 수 있어 더 유익함을 추천 하면서 6년을 더 공부해서 교수로 나가기보다는 차라리 학생으로 나가 그 기간동안 사역하는 편이 하나님 나라에 더 유익한 일꾼일 것임을 권하고 있다. 이렇게 논하면서도 전문인 선교를 위한 전문성 교육에는 많은 결정적 요인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 그 자체에 대한 선교사의 동기는 반드시 점검할 것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국내에서 전문가로 남기 위하여 더 교육을 받으려는 것은 아닌지? 혹은 선교지로 나가는 것을 지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더 공부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당신의 비전이 사라질 위험은 더욱 큰 것이다. 지체하는 것은 곧 불순종의 죄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1995, 32)
7.2 데쓰나오 야마모리의 주장
그는 전문인 선교사는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는 하나님의 특사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러한 특사를 양성하고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들이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서 실현될 것을 주장하고 있다(데쓰나오 야마모리 1996, 76~79):
첫째, 이 훈련은 광범위한 대상에게 활용되어야 한다. 이 훈련은 모든 그리스도인 세계의 대학이나 대학원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며 동시에 이미 중견 전문인인 성숙한 후보자들에게도 현재의 삶과 직업에 가능한 한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훈련이 될 수 있도록 호소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 훈련은 현명하고 재능이 많으며 잘 교육된 사람들의 관심도 끌 만큼 흥미롭고 도전적이어야 한다. 이 훈련의 목표는 학교나 직장에서 이미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다.
셋째, 이 훈련은 특사들이 섬길 종족집단에게 적절하고 필요해 보이는 기술을 제공한다거나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그와 같은 기술이나 직업은 때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종족집단 내에서도 적절한 것이어야 한다.
넷째, 이 훈련은 의문의 여지없이 건전한 성경적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다양한 기독교 교파 출신의 지원자들에게 서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서 이와 같은 훈련을 받음으로써 특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능히 할 수 있도록 구비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극히 궁핍한 종족집단을 돌파하기 위해 그들 내에서 전도하고 회심 시킬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나열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2)복음에 극히 저항적인 종족집단에게로 들어가기 위한 접근 기술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3)상이한 가치관, 자문화 중심주의, 혹은 두드러진 행동과 같 은 비 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일부 다처제나 음주와 같은 문화적 가치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 등에 주목하면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한 기술을 숙달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4) 제3세계의 장단점에 대한 건전한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5) 전통적 교회가 허용되지 않는 국가를 위해 고안된 몇 가지의 교회개척에 대한 전술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6) 다른 사람들, 특히 다른 문화권 출신의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는 기본적 방법을 설명할 수 있고 실제로 그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7) 그리스도인 집단을 조직하고 영속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고 실제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8) 지역의 현지인들을 어떠한 외부의 지원 없이도 독립적으로 선교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방법을 습득해야 한다; 9) 공식적 공개적 신분이 선교사가 아닌 “은밀한 선교사”로서 활동하기 위한 개인적으로 충분한 근거를 찾아내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10) 선교 현지에서 요구되는 어떠한 언어든지 인정될 만한 수준까지 숙달되어야 한다; 11) 선택할 선교지 내의 주된 종교나 유사 종교의 기본적 구조를 열거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전문인 선교사는 전통적 선교사의 직업기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선교지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점을 야마모리는 들면서 다음과 같은 장점을 들고 있다(1996, 85): 첫째는 파송 단체가 없기 때문에 추적 당하지 않는다는 점, 둘째는 직업은 전도를 위한 자연스러운 사역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점, 셋째는 후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사역지를 떠날 필요가 없는 점들을 들고 있다.
7.3 선교 훈련에 영향을 끼치는 한국적 요소들
훈련은 훈련생이 처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가 어떠한 상황에서 훈련을 받느냐에 따라 상승적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반대적 영향도 있는 것이다. 한국적 상황의 두드러진 것들을 이태웅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1994, 83~85)
첫째, 문화적인 상황이다.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에 우리 나라는 많은 사회적 격변을 치루었기 때문에 문화가 복합적이고 문화의 표준 중에는 비성경적인 것들이 너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선교후보생은 여기에서 양 극단론을 피해야 할 것을 주의 시키고 있는데, 먼저는 탈 한국문화 현상이고 다음은 세속적인 한국문화를 고수하려는 자세이다.
둘째, 교육적인 요소이다.
전통적인 한국교육은 유교적이며 권위주의적이고 선생 중심적이다. 여기에 밀집교육과 입시위주의 교육이 암기위주 이고 무비판적 방법으로 길들여져 있다. 토마스 그룸(Thomas Groome)은 성경적인 인식론은 평가와 실천 방법(Reflective Praxis Approach)이라 하였는데, 이 방법에 의하면 모든 진리는 평가와 실천을 전제로 받아들여야 하며 무조건적인 흡수는 용납치 않는다. 그리고 비판적인 평가과정이 사랑과 온유함을 상실하는 데까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한국의 선교 훈련은 이러한 인식방법에의 변화를 동반하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행해질 필요가 있다고 한다.
셋째, 신학교육의 평가가 필요하다.
간하배 박사는 한국 신학교육이 한국상황에 보다 많은 배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하였다고 한다 (1965년 3월, 개혁신보). 전호진 박사도 ‘한국 신학교육의 문제점과 그 방향’이라는 글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의 연계성 및 상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함을 지적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현장과 학문과의 괴리성에 있어서는 한국의 신학뿐만 아니라 세계의 신학 교육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교훈련은 이와 같은 괴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신학은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한국이 세계화 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더욱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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