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선교전략 개발 - 가능성과 실천
최바울(InterCP 본부장)
0. 도입: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은 세계경영의 주체이시며, 주관자이시다. 따라서 주님은 믿는 성도와 교회는 하나님의 세계경영에 적극 참여해야한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제자들과 교회는 하나님의 세계경영 전략을 이해하고 그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기독교 단체들과 지역교회들은 거시적으로 하나님의 세계경영과 구도와 병행하여 사역접근을 하기보다는 개교회 부흥에 초점을 맞추어 개교회 중심적이며, 국가 및 지역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미시적 상황대응적 접근으로 일관해온 면이 적지 않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세계경영 전략을 아브라함에게 최초로 공개하셨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너로 말미암아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경영과 관련하여 제시한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너로 말미암아”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세계를 경영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세계경영이 기계적 원리에 의하거나 운명론적이고 결정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40일 동안 통과할 수 있는 광야도 순종하지 않을 때 40년이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모든 족속”을 강조하셨다. 모든 족속이 복음을 받을 때, 주님은 재림하신다.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것은 주님의 재림의 절대조건이 있다. 따라서, 주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세계선교를 위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자는 모든 족속의 복음화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프론티어 선교이다. 우리가 이미 복음화된 곳이 아니라 전혀 복음을 받지 못한 미전도종족으로 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자들, 즉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모든 족속을 구원하실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도시 하란을 떠나 부족들이 충돌하던 팔레스타인으로 떠난 아브라함의 순종은 우리 주의 제자들이 본받아야할 믿음의 본이다. 땅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는 곧 절대적인 하나님의 비전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지구촌 복음화의 접근 단위(unit)가 개인 혹은 국가가 아니라 종족(ethnic group)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이 종족 혹은 종속에 대한 선교를 강력히 명령하셨다는 것이다.(창12:1-3, 마24:14, 마28:19, 눅24:47, 행1:8 ,행2:8-11 등). 선교는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것이다.
I. 신속한 세계복음화와 한국교회의 과제
현재 지구촌에서 언어인종학적 및 사회학적으로 세분화하여 분류할 때 2만4천 여 개의 종족(보다 큰 단위로 보면 3,500-5,000 종족집단)이 있는데 이 가운데 8천 여 개의 종족이 복음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거나, 이 종족들 가운데 교회가 거의 없다. 땅끝까지 나아가서 복음을 받지 못한 미전도종족, 프론티어 개척선교를 선교하는 것은 - 복음화된 지역의 부흥운동이나 개회갱신운동을 저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 주님의 지상명령이요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것으로 사역의 역량이 이 방향으로 집결되어야 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문화권에서 현지인(원주민)을 상대로 선교하는 전 세계 선교사들 가운데 여전히 약 80% 이상이 이미 역사적으로 볼 때, 일지기 성경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고 복음이 충분히 전해진 종족집단이나 국가 혹은 복음적인 기독교인 숫자를 기준으로 복음화율 1% 이상의 -국가 공식 통계가 아니라 전문선교기관에 의한 실제적 보수적 통계에 의한 - 언어문화 종족집단, 소위 복음화된 종족 혹은 국가 내에서 사역하고 있다. 정작 복음을 전할 자가 없어 복음을 듣지 못하는 종족집단 혹은 국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는 전 세계 타문화권 사역 선교사의 약 15%에 불가하다는 사실은 선교정책의 문제점을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1989년 제2차 로잔대회 이후 세계 교회 지도자들은 이와 같은 세계선교 상황인식과 선교 정책의 오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미전도 종족을 향해 선교정책을 선회한 후 12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세계교회 내 전통적 및 보수적 경향은 심각할 정도로 여전하다. 특히 세계선교의 국제적 리더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교회 내에서 이 정책적 문제는 시급히 개선되어야할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전통적 선교정책 기조가 한국교회 내에 주류를 이루며 여전히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미전도 종족 혹은 미전도 족속을 단순히 “미개한 원주인, 토인, 추장, 문맹퇴치” 등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서 기인하는데, 따라서 미전도종족 선교운동이 마치 미개한 토착 원주민 선교로만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미전도종족 혹은 족속에 대한 인식을 단순히 용어적 해석에 의존하는데서 기인했다. 현재 인구 면에서 미전도 종족집단의 95% 이상은 근대화되고 산업화된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국가 형태를 갖추고 있거나 이러한 근대화된 국가 내 소수민족으로 존재하고 있다. 과거에 서구 교회의 집요한 선교 영역 확장에도 불구하고 미전도 종족이 아직도 여전히 미전도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그들이 미개한 원주민이거나 혹은 선교사들에 의해 발견되지 않는 숨겨진 종족집단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북한, 터키,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이란, 체첸 등과 같이 그들 대부분이 서구세력 혹은 서구의 선교적 침투를 대항할 수 있는 국가를 형성하고 있거나 그러한 국가 내 소수민족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전도 종족 집단은 근대 대학 교육기관이 발달되어 있고, 산업화가 추진되고 있으며, 형태적인 면에서 대부분 중앙집권적인 국가형태를 띄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전도종족의 90%이상은 법적 혹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기독교를 거부하는 소위 선교접근 제한지역 혹은 창의적 접근지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2. 한국교회에 여전히 팽배해있는 성직주의 전통 때문이다. 미전도종족의 대부분은 기독교선교사 입국을 거부하는 이른 바 선교접근 제한지역이다.
성직자들의 선교입국이 제한 받는 상황에서 목회자들이 입국 가능한 직업과 신분을 가지고 현지에 정착하여 사역해야 하겠지만, 또한 훈련된 평신도 사역자들이 개척지역 선교에 정식 장기선교사로 참여하는 방향으로의 정책적 전환이 시급하다. 개척선교지역에서 외국인으로써 예배당 중심의 전통적 사역이 불가능한 점을 고려할 때, 사회개발, 교육, 의료, 농촌개발, 비즈니스사역, 대학캠퍼스사역 등 다양한 사역 프로젝트를 통해서 팀으로 교회개척 사역하게 된다. 이러한 사역베이스 및 프로젝트에서는 평신도 전문인력이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신학적 지식이 없는 평신도가 잘 사역할 수 있느냐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성직자중심주의 사고방식의 전형을 나타내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선교사들의 95%이상이 훈련받은 평신도선교사이다. 미국의 경우도 90% 가량이 평신도이다. 목회자 선교사는 10% 미만이다. 지역교회에서 수년 동안 말씀훈련을 받은 평신도사역자나 성경학교나 선교단체 등에서 집중적인 훈련을 받은 평신도사역자들이 선교에 참여할 때, 실제로 현장에서 신학적인 문제로 사역이 어려운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 발생하는 문제는 - 특히 한국인 선교사 집단에서 빈번한 것으로 - 한국교회 전통의 문제이지, 신학적 문제가 아니다.
미전도종족 집단 혹은 미전도국가는 이루 말할 수없이 많고 선교사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적인 방법, 즉 신학교를 마치고 안수 받은 제한된 수의 목회자들에게 이러한 형태만을 고집하는 것은 전략적이지 못하고 성경적 근거도 없다. 제도적 안수의 의미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안수(Ordination)를 통해서 일하시기보다는 기름부음(Anointment)을 통해서 역동적으로 일하셨고 또 일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평신도선교사를 단순히 협력자 및 보조자로 사역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주체로서 팀 안에서 은사를 발휘하여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수평적 협력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슬람에서는 그들의 사역에 있어서 성직자와 비성직자의 구별이 없다. 그들의 이슬람 포교에는 모든 신도가 총체적으로 동원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해서 지금까지 이슬람이 500% 가량 성장했으며 또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이슬람의 이러한 사역개념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우리도 신속한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가능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선교동력화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또 한가지 지적할 것은 한국교회 해외선교의 주력부대인 교단선교부가 이슬람권 및 공산권 지역 내 미전도종족 선교가 비교적 활발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여전히 한국교회 교단 선교부 정책이 목회자 중심 선교정책을 고수하고 있어서, 장기 선교사 침투와 정책이 비교적 용이하지 않은 미전도 종족 집단 선교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정책적 유연성을 가지고 속히 시정되어야할 사항으로 사료된다.
II. 글로벌시대의 한국교회 선교전략
한국교회는 프론티어 미전도종족으로 선교정책을 급선회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선교정책 및 선교교육 책임자들의 자기체질 개선이 절실히 요구된다. 또한 한국교회는 패러다임의 과감한 전환을 통해 전문인선교 사역기조를 강화하고 보강하여 선교적 침투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틀의 전환을 이룩함과 동시에 신속한 세계복음화를 위하여 글로벌 시대 환경에 부응하여 다음과 같은 선교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미전도종족선교 및 전문인선교>
1. 각 미전도종족의 복음화를 추구하면서, 또한 미전도종족 집단 밀집 지역 및 권역을 대상으로 지리문화적 단위를 상정하여 창문(window) 개념을 구체화한 후에 각 창문을 한 단위로 놓고 전략적 선교 대상으로써 선교접근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예를 들어, 투르크 창, 페르시아 창, 카프카즈 창, 시베리아 창, 인도북부 창, 중국 소수민족 창 등을 들 수 있다. <Window 선교>
2. 관문도시(gateway city) 및 관문종족(gateway people)를 전략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선교접근 단위로서 각 창문에는 다수의 관문도시가 존재하며 또한 관문민족이 존재한다. 관문도시는 한 권역 혹은 지역에 있어서 지정학적인 면이 강조되는 것인 반면, 관문민족은 한 권역 혹은 지역에 있어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강조된 민족적 Prestige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 예를 들면 중앙아시아와 중동 전체 이슬람권을 놓고 볼 때 터키인들은 관문종족에 해당한다. 터키인들은 600여년 동안 중동을 지배하면서 동시에 이슬람의 보호자로서 이슬람의 위엄과 권위를 세계에 과시한 민족이다. 따라서, 이슬람 세계에 있어서 터키인들의 자긍심은 매우 높다. 기독교로 개종한 터키인들이 중동 및 중앙아시아에서 복음을 증거한다고 가정해 보라, 어느 민족에 속한 사역자 보다 효율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관문도시의 개념은 중동에서 카이로 혹은 이스탄불을 좋은 예로 들 수있다. 이 도시에는 국가 경계를 초월 해서 그 지역 혹은 권역 내 종족들이 이주해 사는 초대형 도시이다. 이 도시로의 인구 유입과 이 도시로부터 각 지역으로의 인구 유동이 매우 높은 곳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시 내에서의 선교는 전체 지역 혹은 권역 선교에 기지 혹은 베이스의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영적인 면에서 관문도시 및 관문민족를 상정할 수있다. 터키에서 Konya나 중앙아시아에서 우즈벡 종족집단은 주변 어느 도시 혹은 종족집단 보다 이슬람적 경향이 강한 곳으로 이슬람의 강한 진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 혹은 종족에 대한 집중적 중보기도 혹은 사역은 그 전체지역 혹은 종족집단들에 대한 강력한 영적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관문도시 및 관문종족 공략>
3. 한 국가 혹은 한 권역 및 창지역에 영적 및 사역적 임팩트를 주는 메가프로젝트를 구상하여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예, 실크로드 2000 프로젝트. 이러한 프로젝트는 현지 국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구상 단계부터 치밀한 지역연구와 국가연구를 필요로 한다. <메가 프로젝트>
4.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 비서구권 교회들과의 선교 파트너쉽을 강화하고 선교지 현장에서의 국제적 팀사역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글로벌 파트너쉽>
5. 약 1억 5천만 명 기독교공동체를 이루며 세계 최대의 기독교인의 국가로 부상한 중국교회와의 세계선교 협력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중국교회의 선교동력화>
6. 한국적 선교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서구교회의 비서구권 접근과 비서구교회의 비서구권 접근은 그 방업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변화하는 세계선교 환경에 창의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한국교회 및 한국선교계에 여전히 팽배해 있는 서구 선교계의 정책적 및 지적(知的)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고, 사대주의적 자기비판 의식에서 탈피하여, 하나님께서 세계교회의 한 지체로서 한국교회에 부여하신 사명과 은사들을 확인하고 계발하는 면에서 적극적이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은사계발>
7. 해외 지역연구를 활성화 해야 한다. 미전도종족 선교지 국가 및 종족집단 연구의 부족이다. 정책과 전략은 학제적 접근방법을 통한 지역연구를 통해 도출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여전히 전통적인 문화인류학적 접근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인류학은 타문화권 선교접근에 대한 인식론적 태도와 관점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구체적 현지 상황에 대한 접근방법 및 대응전략을 구성해주는데는 한계가 있다. 지역연구에 크게 비중을 두지 못하고 있다.
8. 전략적 단기선교 및 단기선교 여행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정보 통신 수송의 발달로 세계가 좁아지고 지구촌화해 가며 교육과 훈련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타문화권 현지인 선교에 있어서 과거와 같은 평생 선교 패턴에서 5년 혹은 10년의 중단기 선교의 경향이 지배적인 것으로 되고 있다. 과거에는 이와 같은 중단기 선교를 하려는 사람에 대해 헌신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러한 선교를 고려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는 전통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국제 선교단체의 선교 경향은 5년(1 term) 혹은 10년(2 term)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선교적인 성과를 잘 이룩해 내고 있다.
또한 종족 및 지역 전문성에 기초한 단기선교 여행을 통한 선교를 활성화 해야한다. 과거에는 1-2주 혹은 1달 기간의 단기 선교 여행은 비전트립이라고 하여 선교지를 여행하며 타문화권을 경험하고 선교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여 비전을 갖게 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선교 여행을 말 그대로 여행이나 타문화권 경험 중심이 된 소극적인 것이라 하여 크게 비판되고 있다. 이러한 소극적인 접근은 이와 같은 1-2주 선교지 선교 참여를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루고 계신가를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결과이다. 10여명이 참가하는 1-2주 선교지 현장 사역이 잘 준비될 때 1-명의 선교사가 5년 동안 현지에서 수고한 것 보다 더 큰 성과를 거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미에서 단기 해외 현장 사역은 전 세계 교회가 참여하여 매년 수십만 명을 선교지 현장으로 동원 가능케 하는 것으로 현재 가열되고 있는 지구적인 영적 전쟁에 전 세계 교회의 선교 참여 및 선교 동원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선교 전략으로 그 어떠한 선교 접근 보다 더 크게 평가되고 있다. 단기선교가 도리어 현지 선교를 어렵게 한다는 주장은 단기선교가 전문화 및 전략화하지 못하거나 거시적 및 전략적 선교에 대한 인식의 부족 및 경험부족에서 오는 매우 경직되고 편협적 사고의 발상으로 보인다.
10. 끝으로, 사역윤리의 문제이다. 이러한 전략적 접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철저한 정책의 공명성과 투명성이다. 정책의 투명성과 사역자의 정직성 회복이다. 한국선교사의 사역윤리가 강화되어야 한다. 물질선교와 현지 공관에 뇌물을 주는 변칙적 선교 행태가 아직도 여전하다. 그 원인은 파송기관 및 파송교회의 가시적 업적중심주의 때문이다. 또 다른 더 주요한 이유는 선교사의 품격부족에 기인한다. 선교사 교육과정에서 선교사의 품격을 높이려는 노력이 크게 요구된다. 또한 한국 선교사들이 사역하는 현장에 선교제국주의가 여전하다. 선교접근 제한지역일 경우 현지에서 추방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선교사 개인의 사역과 삶이 변칙적이고 정직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선교지에 아예 자기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자리잡은 일부 선교사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 경향이다. 선교는 현지선교를 돕는 것이지 주관하는 것이 아니다. 현지인 및 현지교회 중심이어야 한다. 과감하게 현지인에게 리더쉽을 이양해야한다.
III. 결언: 9.11 사태이후 세계선교환경 변화와 한국교회의 사명
작년 9월 11일에 자본주의 문명, 즉 서구 물질문명의 패권주의를 상징하는 세계무역센터(WTC)와 군사적 패권주의를 상징하는 미 국방성에 대한 이슬람전사들의 자살공격이 감행되면서 국제환경은 급속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미소냉전체제가 끝나면서 미국이 걸프전을 빌미로 중동에 미군기지를 건설하면서 시작된 급진적 반미 이슬람 저항운동은 급기야 서구문명의 심장부를 공격하는 무력투쟁 양상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극단 종교세력이 자행한 일시적인 테러인가? 또는 소비에트 체제 해체 이후 세계 국제질서의 재편과정에서 발발한 종교와 문명을 기축으로 하는 새로운 냉전(New Cold War) 질서의 표현인가? 아니면 수 천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출신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시작되어 역사적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중동전역, 중동과 유럽, 이슬람권과 서구권 등으로 확장되어 발달한 이삭과 이스마엘의 형제갈등의 지구적 팽창인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패권적 세계제국 미국과 반미 저항운동을 전개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의 대결이 단순한 테러를 넘어, 자유를 인류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로 주장하고 세계체제 내에 정착시키려고 하는 미국과 이슬람 종교를 보편종교로 확신하며 이슬람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세계적 이슬람공동체 움마(umma) 건설을 목적으로 서구적 가치 및 서구문명에 저항하는 이슬람 세력간의 문명의 대결 및 세계관의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 물질문명과 이슬람 정신문명의 대결의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일하게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며 세계복음화를 위해 일하는 기독교 교회공동체 및 선교공동체 입지가 매우 복잡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전 세계적으로 반미감정이 점점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이해하고 있는 세계 57개 이슬람 국가들을 비롯한 비서구 국가의 국민들의 입장에서 기독교 선교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동일시되면서, 과거 서구 기독교제국의 식민주의 정책을 생생이 기억하고 있는 이들 비서구권 국민들에게 더욱 더 정치적인 의미가 부여되고 오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백인들의 선교는 더욱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10/40창 내 미전도종족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권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비서구권의 교회, 특히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역할과 리더쉽이 크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명실공히 한국교회가 작금의 지구적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리더쉽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하여서는 한국교회가 힘을 합해서 한국교회 및 기독교대학 내에 이슬람선교 연구와 교육 및 체계적 전략수립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가동해야 한다.
바야흐로 세계교회는 엄청난 힘으로 다가오는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고 대응하기 위하여 함게 연합해야 하며, 한국교회 역시 기독교 지역교회, 교단, 선교단체뿐만 아니라 기독교 기업, 대학, 단체 등이 함께 연합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파트너쉽 운동이 절실하다. 또한 청년과 장년 남성 위주의 사역기도를 탈피하여 은퇴자(장로, 목회자 등), 여성, 청소년 등 모든 세대가 마지막 과업을 위해 일어날 수 있도록 선교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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