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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용옥의 기독교 성서의 이해 서평/ 김동수

수호천사1 2009. 5. 23. 15:36

324 Canon&Culture 제 1권 2호▮2007년 가을

* 평택대학교 교수, 신약학

<서평>

기독교 성서의 이해

김용옥

서울: 통나무, 2007, 450쪽

김동수*

 

1. 들어가는 말

본서는 현대 과학적 세계관을 가진 한 인문학자가 신약 성서의 내용과 형성 과정에 대해서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기술한 것이다. 본서에서 저자는 신약 성서 형성과정의 내, 외부적 역사와 그 해석 역사를 추적, 분석하고 이를 설명한다. 이것을 설명하는 데 있어 저자는 고대 그리스-로마 역사, 헬라 철학, 불교 철학, 유교 철학 등의 지식을 넘나들며 현대의 독자들에게 현학적인 태도로, 매우 친숙한 필체로 다가간다. 저자는 책에서 여러 주제와 사상을 넘나들며 논하다보니 논지를 명확하게 한 마디로 요약하여 보여주지 않아서 책을 읽을 때 그 주장하려는 바가 일목요연하게 들어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체 내용을 통해서 추적해 볼 때 아마도 저자는 성서를 역사적,비평적, 이성적으로 이해하지 못하여 후대에 교회에서 형성된 기독교 교의에 의해서만 성서를 보는 독자들을 그 무지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고 본서를 쓴 것 같다. 본서의 제목인『기독교 성서의 이해』가 바로 저자의 의도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기독교 성서는 이성적, 역사적, 비평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2. 방법론과 주요 내용

2.1. 재건의 해석학

저자는 성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성서주의’라고 말한다(15쪽). 기독교 역사상 형성된 해석 체계에 의한 성서 해석, 특히 콘스탄티누스 이후 형성된 해석 체계를 배격하고 “성서 속에서 성서의 입장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254-255쪽)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저자가 성서 문자주의를 신봉한다는 뜻도 아니고, 성서 저자의 의도

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도 아니다. 사실상, 저자는 성서와 복음을 구별하면서 성서 자체는 복음이 아니며 “복음을 위하여 성서는 항상 해체될 수 있고 또 해체되어야만 한다.”(266쪽, 강조는 저자의 것임)

는 입장을 견지한다. 하지만 저자가 본서에서 사용하는 방법론을 면밀히 분석해 볼 때 저자가 사용하는 방법은 본문이 쓰여 지면 그 본문 자체가 의미의 자율성을 갖는다는 ‘해체의 해석학’(hermeneutic of deconstruction)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본문을 역사-비평적으로 분석하여 본래 자리에서의 의미를 캐내는 ‘재건의 해석학’(hermeneutic of reconstruction)의 방법론을 취하고 있다. 본서의 저자는 성경 각 책 저자가, 예를 들어 한 복음서의 저자가 구체적인 본문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도 그것이 그렇게 해석되기 전에 예수는 본래 무엇을,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2.2. 역사-비평적 성서 해석

본서는 이른바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성서를 해석한 것이다. 이방법론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이제 성서학계에서는 너무나 많이 논의되어 진부한 주제가 되었다. 다만, 일반 신자나 대중은 아직도 이러한 성서 이해가 매우 낯설고 이에 거부감이 든다. 역사 비평이란 어떤 사화의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하고 그 역사적 정확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저자는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신약 성서를 분석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누가의 호구 조사 보도가 역사적 사실(史實)인가를 묻고 그 본래의 역사적 정황과 가용한 연관 문서로 판단해 볼 때 그렇지 않다고 한다. 저자는 헤롯의 유아 살해를 보도한 마태복음 내용도 허구라고 한다. 또 동정녀 탄생도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에는 없는 것으로, 마태가 신학화한 것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또한 저자는 성서 내의 두 내용을 비교하여 역사적 사실을 가리려고 한다. 바로 사도행전에서 누가가 그리는 바울상과 바울 자신의 편지의 자화상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은 바울이 그린 자화상에 있다고 한다. 물론, 위와 같은 내용은 성서학계에서는 너무 많이 오랫동안 논의되어 이미 진부한 주제가 된 것들이다. 어쨌든 본서에서 저자는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성서를 이해하려한다.

2.3. 마르시온적 성서 해석

성서를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많은 성서학자들이 이미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입장에 있어 저자는 마르시온의 성서 해석을 옹호하는데, 이것은 극소수의 학자들만 따르고 있는 견해이다. 저자는 마르시온을 따라 구약의 하나님을 무자비한 인격체로 보고, 신약의 그리스도를 자비한 하나님으로 믿으며, 그러므로 구약은 마땅히 파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세운다(롬 3:31)는 바울의 말도 율법을 강하게 공격한 후 유대주의자들에 대한 일종의 유화책이었다고 하고, “예수의 근본 사상은 율법의 성취가 아니라 율법의 부정”(146쪽)이라고 한다. 그 동안 마르시온을 기독교 정통파에서 영지주의로 보아 이단으로 규정했는데 마르시온은 영지주의라고 명확히 규정할 수도 없고, 또 영지주의 자체도 이단이 아니라고 한다.

2.4. 신약 정경과 외경의 관계

본서는 동정녀 탄생, 삼위일체, 기적의 의미 등 여러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본서에서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주요 내용 중의하나는 신약 성서를 연구하는 데 있어 여러 정치적 목적으로 4세기말에 형성된 정경만을 의지하지 말고 그 중간에 정경, 외경의 구분이 없었을 때 정경과 공존했던 외경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정경과 외경의 구분을 그 연대상, 내용상 명확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외경도 정경과 동등한 가치를 가진 역사적 사료로 인정해야 한다고한다. 특히 나그 함마디 도서 중에서 도마복음의 가치를 저자는 높이 평가한다. “도마복음서는 기독교나 예수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잡스러운 언어가 하나도 없다. 도마복음서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살아있는 예수를 인식케 해주는 너무도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이다.”(467쪽)

물론 위와 같은 평가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위 언명은 퀘스터(Helmut Koester)와 로빈슨(J. M. Robinson)이 이미 오래 전에 주장한 것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들은 바우어(W. Bauer)를 따라 2세기에는 정경과 외경이 아직 유동적이어서 이 당시는 정통,비 정통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또 도마복음서와 『구세주의 대화』는 1세기에 이미 존재했던 문서라고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대부분의 신약학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그 어떤 외경 문헌도 신약 정경 문헌보다 앞서지 못한다는 것은 신약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3. 비평적 평가

3.1. 공헌

본서의 가장 큰 공헌은 현대 성서 연구의 방법론과 내용을 대중적으로 이슈화한 것이라고 본다. 본서 저자의 다른 저술에서도 그렇듯이 저자는 어떤 주제를 대중적으로 이슈화하고 그것을 대중의 언어와 관심사로 쉽게 풀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본서에서도 그러한저자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저자는 과학적 세계관을 가진사람이 성서의 기적과 동정녀 탄생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하는 질문과 대답으로 본서의 첫 장을 시작하여 독자의 관심을 유발시킨다. 이어서 신약 성서의 배경이 되는 헬레니즘 사상과 초기 교회시대의 일반 역사를 다루고 복음서의 형성 과정과 각 복음서 신학의 독특성을 그 형성사와 함께 설명한다. 이어 정경 형성사와 외경, 어떻게 예수의 말이 교회와 세속 역사 가운데 왜곡되어 이해되어 왔는지를 보여주고, 올바른 성서 이해를 위해서는 한국 성서학계에서 외경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3. 2. 약점

본서는 성서를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좋은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 질문에 비해 그 해답은 저자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겠지만 전문가의 식견으로 보면, 상식 수준에 머무는 것이거나 아니면 부정확한 지식에 의한 것이 많다. 우선, 본서에는 부정확한 지식에 의한 논증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저자는 어떤 한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매우 깊은 전문가적 식견을 보여줄 때도 있지만, 전문 성서학자가 아니다 보니 성서학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초 지식이 매우 빈약하다. 예를 들어, 저자는 현재 요한복음 저자가 공관복음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다 읽은 후에기록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말하는데(320쪽) 사실은 그 반대다.1) 이러한 주장은 20세기 초반까지의 소용되던 것이었고, 가드너-스미스가 『요한과 공관복음』(1938)을 쓴 이후로는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최소한 문서적으로는 독립된 전승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토대이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에서 그 반대의 견해가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라고 하면서 그것에 발판을 두고 후속 논의를 하고 있다. 또 저자가 사도행전과 여러 외경행전들을 동시대의 작품으로 보는 것(197-198쪽)은 학자들이 거의 동의하지 않는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복음서 발전 단계에 대한 이상한 주장(많은 학자들은 마가→누가→마태→요한이라고 주장하는데

자신은 마가→마태→누가→요한라고 주장한다는 것, 267쪽)도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마가가 첫 복음서이고, 요한이 마지막 복음서라는데는 동의하지만 마태와 누가가 어떤 문서적 관련성이 있다는 것은설정하지 않고 있다. 또 학자들 간에 마태와 누가 중 어떤 것이 먼저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명확한 결론도 없다. 다만 양 복음서는 마가를 발판으로, 공통 자료(Q)와 각각의 독립적인 자료를 사용했다는 것에만 일치된 견해가 형성되어 있을 뿐이다.

1) 저자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요한복음의 저자의 책상머리에는 분명히 마가,

마태, 누가복음, 이 3복음서가 놓여 있었다는 것이 현재 성서학자들의 일

치된 결론이다. 과거에는 요한복음은 전혀 공관복음서를 참고하지 않았다

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한은 3복음서를 다 보았다.”(320쪽) 위 내용은 현

재의 요한 신학자들의 견해를 완벽하게 반대로 이해한 것이다. 현재 대부

분의 요한 신학자들은 요한이 공관복음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만약 공관

복음 전승을 알았다고 해도 문서 전승으로보다는 구전으로 알았을 것이라

고 본다.

또 본서에는 아마추어리즘에서 흔히 나오는 결과대로 성서 본문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이상한 상상력에 의한 결론과 과장과 극단적 평가들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저자는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된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가리켜 “얼굴이나 인상 착의가 예수와 흡사했고…”(250쪽)라는 증명될 수 없는 상상력을 동원한다. 또 저자는 바울과 요한의 사상을 평가하는 데 있어 매우 편협하고, 그 평가에 있어 매우 극단적이다. 저자는 바울과 요한을 거의 헬라철학에만 심취했던 전형적인 헬라 사상가만으로 묘사하고 있다(42, 295쪽 참조).

요한과 바울이 헬라어로 성서를 기록했고, 당시 헬라 문화권 도시에서 헬라의 레토릭과 언어를 사용하여 신학을 펼쳤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학자들은 사해 문서 발견 이후 요한은 그 어떤 신약 저자에 못지않게 당시의 유대 사상과 개념으로 신학을 펼쳤다는데 거의 모두가 동의한다. 바울도 마찬가지다. 바울이 헬라의 레토릭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 신학의 내용이 유대적이라는 것은 바울의 편지들을 번역된 성서로만 보아도 자명해 보인다. 저자는 작금의 학문적 토론을 이해하여 보다 세심하게 논의를 전개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예수가 율법을 전적으로 부정했고, 구약은 폐기되어야 한다는것도 너무나 성급하고 어설픈 주장이다. 신약 성서에 나타난 예수와 바울의 율법관은 그렇게 한 마디로 단칼에 베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것이 아니다. 여기에도 어떤 이론을 깊이 통찰하지 못하고 단순화시키는 아마추어리즘이 나타나 있다. 또 일부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학자들의 견해를 따라간 것이기는 하지만 정경과 외경이 거의 같은 레벨의 작품이었고, 또 도마복음서가 정경복음서보다 앞서며 그것은 예수의 말씀을 순수하게 보존한 것으로서 신약에서 ‘정경 안의 정경’(canon in canon)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은 극단적인 주장이다. 도마복음서가 그 장르상 어록집으로 복음서의 원초적 자료의 장르로서 존재했을 개연성은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대로 도마복음 자체는 정경복음서를 바탕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사복음서가 다 완성된 다음에 기록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저자가 보다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도마복음에 대한 평가보다도 이것의 중요성이 더 있다는 정도의 주장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4. 나가는 말

본서는 한 인문학자가 평소에 관심 있던 성서에 관한 질문을 나름대로 여러 2차 자료들을 읽고 자신의 철학으로 정리한 것이다. 성서에 관한 1차 자료를 깊이 분석하지 않다보니 본서는 그 내용의 방대함, 다양함에 비해서 그 정보의 정확성도 떨어지고, 논리도 매우빈약하다. 이것은 저자 나름대로의 기존 신학계나 교회의 신학을 부정하는 신학을 전개하다 보니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되어 정보를 정확히 평가하지 못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보게 된 것에서 기원한 것같다. 또 저자는 주장에 있어 매우 극단적이다. 저자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논증할 때 반대편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현대 인문과학 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논자는 자기의 논리와 사상 속에서 그것을 전개하는 것으로서 항상 다른 논자들에 대해서도존중하는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이 인문학자의 기본이다. 특히 저자자신이 이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고 준 전문가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본서의 저자가 주장하는 태도는 전문학자들에 대해서 매우 공격적이고, 오히려 위압적이다.

하지만 본서가 던진 질문은 우리 한국 신약학계가 앞으로 떠맡을중요한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신약 외경 문헌에 대한 보다 활발한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겠다는 것이다. 외경을 정경 이해의 배경으로연구하든지, 아니면 본서 저자가 취하는 방법과 결론대로 외경과 정경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료로 사용하여 본래 예수의 말씀을 재건하기 위해 하든지, 어떤 입장에서든 앞으로 이에 관한 활발한 토론을 위해서 본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과제를 새롭게 인식시켜 주었다. 본 서평에서는 본서를 주로 비판적 입장에서 보았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성서학 비전문가가 나름대로 독립적 연구로서 이런 정도의 작업을 한 것도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전문가인 우리를 매우 부끄럽게 하며, 본서는 앞으로 전문 성서학자들의 보다 깊은 연구를 위한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출처 : 행복†충전소
글쓴이 : 행복충전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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