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소수민족

[스크랩] 중국의 소수민족과 종교

수호천사1 2009. 4. 24. 20:42

중국의 소수민족과 종교



 

중국 소수민족 내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적인 측면의 하나는 종교이다. 왜냐하면, 이 소수민족 내에는 엄청난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강한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이슬람교이며, 후이족과 기타 신장성의 민족 대부분, 즉 위구르족, 카자흐족, 키르기즈족, 타직족, 타타르족, 우즈벡족 대부분이 믿고 있다. 그 다음으로 매우 강한 종교는 라마불교이며, 티벳인과 몽골인들이 맹신하고 있다.

 

소승불교도 신앙되고 있는데, 특히 따이족, 블랑족과 같은 윈난성의 일부 민족들 사이에서 내려오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다신교와 자연숭배신앙도 하니족, 미아오족, 야오족, 빠족 등에게는 전통적인 것이며, 어웬크족, 다우르족, 중국 먼 북동부의 오로켄족, 신장성 북서부와 윈난성의 시뻬족 사이에는 샤머니즘도 아직 존재하고 있다.

 

선교사들에 의해서 윈난성 서부의 이족과 미아오족 등이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중국 북부의 러시아인과 어웬크족은 아직 동방정교를 믿고 있다.

 

한족과 소수민족 사이의 종교적 차이점 때문에, 과거 중국에서는 민족간의 좋은 감정을 방해하고 있다. 이것은 특히 이슬람의 경우에 해당된다. 현대의 한 학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중국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이방인들에게 속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이웃보다도 더 우월한 존재라고 여기고 있다. 무슬림에 대하여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증오감은 무슬림 관료들이 지배자였던 원나라 때부터 비롯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그 때부터 무슬림들도 우월감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자기들만의 독특한 자치를 확보하고 있는데다, 그들이 알라신의 말에 대한 전문가이고 그 예언자의 제자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우월감은 보다 힘을 얻고 있다.

 

중국인에 대한 무슬림의 멸시감이 너무도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만약 한 중국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면 내적 정결을 얻기 위해 생소다를 먹이는 게 여러 지역에서 관습으로 되어 있다.

 

중국공산당(CCP)이 권력을 잡게 되면서, 한족이든 소수민족이든, 종교단체가 가지고 있던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박탈하기로 결정했다. 또 종교가 민족들의 통합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사회적인 영향력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정책은, 공산당이 옹호하는 사회적 변화를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종교주의는 어떤 것이든 억압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또 한편 누구든지 자유롭게 어느 종교든지 믿고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정책은 분명히 무신론을 포함했다. 중국의 정치가들이 계속해서 주장한 바는, 소수민족의 전통사회에서는 "특정 종교들이 반동적인 법에 따라 소수민족에 강요되고 있다. 그들은 종교의 자유가 없다. 자유럽게 무신론자가 되거나 다른 종교를 믿을 자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정책에 따라, 공산주의자들은 점진적으로 수도원의 땅을 빼앗고 수도사들의 정치적 권력을 붕괴시켰다. 모든 민족의 지역에서, 일부 종교적 건물은 학교나 박물관 등 다른 용도로 바뀌게 되었고, 일부는 대중들의 예배 용도로 쓰이거나 직업 성직자에게 맡겨졌다.

 

종교의 사회적인 면은 공산주의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거리들을 제기했다. 물론 많은 문제들은 즉각적으로 대답이 나올 수 있는 것들이었다. 빠족의 인간 제물은 자연숭배신앙에서 나온 것인데, 그들을 금지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같은 논리로, 무슬림의 일부다처제와 소년을 라마교나 또다른 수도원으로 보내는 것이 중단되었다.

 

동전의 다른 한편으로는, 무슬림이 돼지고기를 금하는 것을 막을만한 납득할 이유는 없었다. 그 밖의 다른 문제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이슬람 여성은 계속해서 베일을 써야 하는가? 대답은, 그런 관습은 여자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므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자가 남자와 함께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드릴 수 있는가?

 

이것은 각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다. 내려온 전통에 따라서 성을 구별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물론 여자에게는 자존심을 상하는 것이긴 하지만, 관습에 따라서 함께 예배드리는 여자는 거의 없다. 과거 여러 민족 가운데 있었던 종교학교가 계속해서 운영되어야 하는가? 여기의 답은 부정이었다. 공산당이 그걸 인용할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왜 그들의 종교를 전파하도록 허용해야 하는가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제한된 종교의 자유는 문화혁명기 동안에는 공공연한 박해로 돌변했다. 이슬람 사원과 절, 라마사원, 교회가 중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폐쇄되었다. 라마수도사와 이슬람 성직자, 기독교 지도자 등의 여러 성직자들이 공장으로 보내지거나, 종교거처로부터 추방당했다. 모든 종교는 봉건제도를 대변하고 있다는 이유로, 홍위군들이 소수 종교의 장소로 몰려가서 노골적으로 신앙과 예배를 방해했다. 그것은 인민들을 억압하는 착취계급의 기관이며, 따라서 억압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핵심고리로서의 계급투쟁에 대한 강조는 소수 민족이라고 해서 면죄부를 주지는 않았다.

 

문화혁명의 정책과 집행이 종교헌신자들에게는 강한 분노감을 야기시켰다는 것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76년 10월, 4인방의 붕괴로, 변화의 문이 열렸으며 과거 정책으로 되돌아갔다. 종교는 중국 전역에서 다시 강하게 부활했다. 현재 소수 민족들 사이에서는 1950년대보다 종교의 힘이 보다 강해졌으며 약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의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힘을, 문화혁명기에 겪었던 박해에 대한 반동이라고 원인짓는다. 하지만, 소수민족들 사이에서는 종교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영향력을 갖게 되리라는 것을 인정한다.

 

공산당은 소수민족들의 종교를 인용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종교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특히 도시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은 사실이다. 학교에서의 교육은 종교에 대해 적대적이다.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는 길은 종교가 아니라, 막스 유물론이다. 공산당원들에 대하여 종교축제에 참석하는 소수민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평을 억누르고 있지만, 사실 당원들이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공산당원들은 소수민족 지역을 포함하여 중국 전 지역에서 아직도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거의 9천만명에 달하는 소수민족들 중의 상당 수는 주로 이슬람교와 불교 등의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도 일부 소수민족들게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종교적 문제는 복잡하며, 1981년에 일어난 카쉬가르의 위구르 무슬림들의 폭동과 최근의 티벳 라마교도들의 봉기로도 나타나고 있다.

 

종교의 부활은 소수민족 지역에서 확연히 나타나고 있으며, 도시보다는 시골지역에서 보다 두드러진다. 열정적이고 활발한 종교적 행동도 각처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이슬람과 불교 지역에서 그러하다. 코란과 성경, 도덕경 등의 경전도 공식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이슬람 사원과 절도 독실한 신자들의 발의와 자원으로 복구되었다. 중국 북서부의 가장 대규모 무슬림들인 후이족 지역에서는, 도시 전지역에서 이슬람 사원이 건축되었다. 모든 기부자들의 이름이 큰 벽에 새겨졌다. 후이족 신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들의 가장 큰 바램이 메카로 순례를 떠나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으며,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여가시간을 활용해 일을 한다. 이슬람인들이 자녀의 양육과 교육을 코란 규율에 따라 받고자 하는 바램은 상당한 수준이다. 마찬가지로 티벳에서는, 라마교가 젊은이들에 의해 부활되고 있다.

 

그러한 어느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종교는 단순히 억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중국에서의 경험은 이를 확인시켜주었다. 종교는 여러 소수민족들에게 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의 한 부분이다. 자신의 종교를 고백한다는 것은 자신의 민족성을 고백함을 의미한다.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은, 국가문제와 교육제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한, 정부당국도 소수민족의 종교문제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선을 일관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슬람 후이족들에게서, 공산당 비서보다도 이슬람 율법선생의 말을 더 자주 들을 수 있다. 아직도 공산당원직과 종교직은 겸임할 수 없다. 당은 공산당 간부가 종교적 또는 미신적 활동에 참여해서는 안된다며 경고하고 있는데, 사실상 이러한 활동들은 소수민족지역에서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으며, 종교가 아직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관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한족 공산당원들과 소수민족 당원들 사이에는 차별이 행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소수민족의 경우에는 그들이 종교신앙과의 유대관계를 완전히 끊지 못한다고 해도 거부당하지는 않으며, 이데올로기 교육을 통하여 정치의식을 신장시키기 위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종교적 광신을 선동하거나 종교의 이름으로 당의 강령에 위반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만이 당으로부터 축출된다.

 

소수민족의 공무원들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들은 자기 민족의 종교와 관계를 끊으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종교 교리를 믿지 않고 거부하며 결혼식과 장례식 등 동족들의 의식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는 얼마가지 않아 동족들에게서 외톨이가 될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당이 자신들에게 실제로 어떤 태도를 취하기를 바라느냐를 결정하기란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대다수 신자들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키는 모험을 무릎쓴다.

 

이것은 무슬림 지역에서는 정말 모험이다. 당에 대한 결속과 종교 인민에 대한 유대 사이에서의 의식의 갈등이 그들에게는 영구적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더이상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같은 민족 구성원에서 축출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음을 중국언론이 자주 보도하고 있다. 이것은 여러 세기 동안, 민족적 문제와 종교적 문제는 동일한 것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중국에서의 종교는 이단적인 것이며, 외국에서 유래하여 때로 국가에 위협이 되는 것이고, 내부적으로 쇠약한 때에 특히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며, 또 수준높은 유교도덕에 배치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기본구조가, 오늘날 종교에 대한 공식적인 태도에서 아직도 어느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종교문제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서구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중국의 역사적 측면에서 훑어보자면, 종교집단이 국가권력을 침탈하는 중심이 종종 되어왔기 때문에 국가의 간섭이 거의 논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19-20세기에 기독교와의 경험은, 외세가 중국을 약화시키는 데 종교가 얼마나 잘 이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중국인들에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외국교회가 들어오게 되면 오늘날까지도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개방정책에 대한 외국국가들의 경의는 아마도, 종교활동 확산을 허용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각 종교의 신도들이 중국 개발의 목적에 집중적인 관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종교인이든 무신론자이든 모두가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함께 일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당이 계급투쟁을 상실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공산당과 신도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상존하게 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공산당이 종교신앙의 자유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종교계는 당의 이익에 역행하지 않는 한, 종교계와 공산당 사이에 대립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둘의 협력은 계속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신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관계는 전혀 마찰 없이 존재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달라이라마와 같은 종교지도자들은 상호협력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해석을 찾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달라이라마는 막시스트들의 목표와 불교도들의 목표 사이에는 강한 유사성이 있으며, 그래서 "평화공존"과 협력, 심지어는 함께 잘 사는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있다.

 

종교가 신앙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서양적인 의미에서의 종교의 자유가 종교전파에 기여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종교가 국가권력의 이익에 복종해야 하고 이 이익이란 게 종교전파에 역행하는 것이라면, 그런 의미에서는 종교의 자유란 없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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