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영원한사명)

[스크랩] 누가 그들을 비난할 것인가?

수호천사1 2009. 3. 7. 19:00

누가 그들을 비난할 것인가?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별고 없이 평안들 하신가요?"라고 차마 묻기 민망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만나는 이마다 이구동성으로 "요즘 살기 너무 힘들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10여년 전에 IMF라는 것을 겪었지만, 그 때는 요즘보다 덜 힘들었다고 한다. "경제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왜 이렇게 더 살기 힘드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이 깃든 푸념들이 난무한다.

  나는 경제에 대해 무례한이다. 하지만 어찌 요즘을 10여년 전의 IMF와는 비교할 수 있으랴. 그 때는 우리나라만 힘들었다. 경기호황을 누리고 있는 나라들도 있었다. 그러나 시방은 어떤가?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대란은 온 지구촌을 극심한 혼란에 빠뜨렸다. 어느 한 나라 어려움을 겪지 않는 나라가 없다. 지구촌의 총체적인 금융대란이다. 그런데 어찌 IMF와 비교할 수 있으랴.

  최근 미국달러의 환율이 11년 이래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면서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나 역시 외국생활을 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예 환율을 확인도 하지 못하고 있다.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하게 여겨질 것이 두려워서다.

  지난 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와 중국의 환율은 120:1 정도였다. 우리나라 돈 12,000원이면 중국 돈 100위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글을 쓰고 있는 현재시간의 매매기준 값이 229위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은행에서 실제 환전값은 240위안이 웃돈다는 이야기다. 불과 1년도 안되어 100% 이상이 올랐다는 사실이다.

  시방 지구촌은 총체적으로 환율대란의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의 체감환율은 가히 챔피언 감이란다. 예상할 수 없는 환율의 고공행진에는 자칭 경제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현 정부도 속수무책인가 보다.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변명하기에 급급한 모습이 오히려 측은하게 여겨질 정도다. 점점 국민들의 신망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며칠 전이다. 고국에 있는 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연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 오르기만 하는 환율로 인해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단다. 아들을 미국에 유학보낸 아비로서 아들의 생활비와 학자금을 보내는 일이 부담이 되어 어떻게 해야할런지 답답하단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환율이 무섭다고 했다. 마땅히 뭐라 위로할 말이 궁색했다.

  내가 살고 있는 대륙의 우리 동네를 '코리아타운'이라고 부른다. 아파트 정문을 벗어나 밖으로 나서면, 여기저기에서 귀에 익숙한 우리나라 말들이 들려온다. 동네 주변에는 한글로 쓴 간판들이 즐비하다. 단연 한국식당들이 한글간판의 총아다. 금융기관인 은행도 예외가 아니다. 외부 간판을 한글로 설치함은 물론, 한국인들을 위한 전용창구가 마련되어 있다.

  우리 동네에서는 현지어를 몰라도 생활하는 데는 어떤 불편도 없다. 오히려 현지인들이 한국인을 상대로 영업을 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이런 분위기는 문득문득 대륙의 수도 변방의 동네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어떤 도시에서 살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지난 해 전반기까지는 우리 동네 경기가 제법 활성화되었다. 이는 대륙정부가 우리 동네를 소비생활 촉진지역으로 설정하여 집중적인 투자를 했다고 한다. 그래설까? 우리 동네에는 유난히 세계적인 유통기업들이 대형 쇼핑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웰마트, 까르프, 이케아 등이다.

  지난 해에는 우리나라의 롯데마트도 우리 동네 한쪽에 자리잡았다. 이 외에 일본투자기업의 화탕상장(백화점), 토종 대형매장인 화륜, 리우바이, 화리엔 등등, 시방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대형마트 예정지를 손에 꼽는다면 열도 넘는다. 가히 소비도시의 면모를 착실하게 갖추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우리 동네의 경기가 싸늘하게 냉각되고 있다. 지난 해에 몰아닥친 금융대란이라는 악재 때문이다. 우리 동네의 알게 모르게 경제적 중심을 이루고 있던 우리나라 교민들이 고환율을 견디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따라서 우리 동네의 아파트들은 텅텅비기 시작했고, 한국인을 상대로 영업하던 기업들도 하나 둘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현상이 언제까지 계속될런지, 또 언제쯤 끝날런지 아무도 예상조차 못하고 있다. 결국 우리 동네의 경제는 자꾸만 자꾸만 침체되어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듯이 암울해지고 있다. 모든 교민들이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졌고, 온갖 근심과 걱정으로 고뇌하는 이그러진 모습들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모든 교민들에게 심각한 위기가 되고 있다. 어떻게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하게 될런지 걱정스럽다. 하지만 내게는 더 큰 걱정이 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교민들 중에는, 결코 돌아가지 말아야 할 이들이 귀국대열에 포함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다. 이런 사실로 인해 마음이 한 없이 허탈하다.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괴롭고 아프다.

  창세 이래로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운행하시는 가장 중요한 방향타(
方向舵)는 "서진(西進)"이었다. 이러한 서진은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이 세상에 찾아오시면서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그것이 오늘날 많은 이들에 의해 회자(膾炙)되는 "복음의 서진사역"이다.

  복음의 서진사역은 일반적으로 사도 바울이 환상 중에 마케도냐인을 만나 유럽에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뚜렷하게 가시화
(可視化)되었다. 그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2천 여년동안 교회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이 재림하실 그날까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를 21세기라고 한다. 21세기에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 있다면 무엇일까? "서진사역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서진사역 이외의 사역은 덜 중요하거나 무시되어야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한국교회는 전방위적인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진사역에 대한 사명은 그 어떤 사명보다 더 절실하고 실제적인 사역으로 마땅한 영적인 부담을 가져야 한다.

  본 글 이야기에서는 많은 내용을 이야기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아주 특별한 나라다. 하나님께서는 21세기에 사용하시기 위해 철저하게 보호해주신 나라다. 기독교 2천년의 역사는 서쪽을 향하여 전개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 서쪽을 향하여 계속된 복음의 전개는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에 당도했고, 우리나라 교회는 놀랍게 성장했다. 바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21세기를 준비시키심이었다.

  이제 21세기다. 인류의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시대를 통하여 변함없이 대륙을 통한 서진사역의 큰 뜻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때에 한국교회를 사용하시기 위해 한국교회로 하여금 가장 찬란한 금자탑을 이루게 하셨고, 그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수많은 사명자들을 대륙으로 물밀 듯이 밀려들게 하셨다.

  아직까지 대륙은 선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창의적 접근지역이다. 대륙에서 사역하기에는 수많은 어려움들이 첩첩산중과 같이 다가온다. 얼마나 많은 난관들이 잠복해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수많은 사명자들이 대륙의 방방곡곡으로 찾아 들어가 그곳에서 대륙인들과 어울리며 사명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그러다가 예기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다. 금융대란이다. 갑자기 여러 가지 걱정스러운 일들이 몰려왔다. 고국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고국의 교회로부터 지원받던 일들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애써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나무랬다.

  걱정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다. 염려했던 일들이 사실로 다가 왔다. 고국으로부터 정말 반갑지 않은 통보를 받아야 했다. 고국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예산이 삭감되었고, 그로 인하여 그동안의 지원이 중단되거나 삭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통보였다. 청천벽력이 따로 없다. '설마'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로 다가서기에 순간 망연자실했다.

  그동안 은밀하게 진행했던 많은 일들을 잠정적으로 중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현지인들을 돕던 일도 취소하거나 기한을 정하지 못한채 뒤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다. 차마 결단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생존의 위협까지 받는 마당에 하던 일들을 계속해서 진행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까닭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 일어난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루라도 빨리 환율이 안정되면 모든 일들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묵묵히 그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하루하루 지나면서 기대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상황은 점점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극한 상황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허리띠를 더욱 바짝 졸라 맸다. 최소한의 비용지출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렇지만 역부족이다. 대륙의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환율은 연일 바닥을 친다. 아무리 근검내핍을 해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닥쳐오고 있다. 이제는 생존을 염려해야 할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듯한 고통의 나날이다. 언제까지 무작정 기다리면 될 일도 아니다. 사명자로 사명을 감당하겠노라 시작했던 일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중단한 것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요 아픔이다. 그런데 이제는 설상가상으로 생존을 위한 갈등해야 한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조용히 철수하여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철수하기로 한 결정이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웬지 자꾸만 부끄럽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에 스스로 위로하며 조용히 대륙을 떠나는 귀국대열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누가 이들을 비난할 것인가! 믿음이 없다고 조소할 것인가! 그런 어려움을 직접 당해보지 않고서야 어찌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남의 말이라고 너무 쉽게 '어떻게 하나님의 종이 그럴 수 있지?'라며 함부로 함부로 비난의 말들을 마구 쏟아내도 될까? 정말 그들에게 정죄의 돌을 들어 던져도 마땅한 일일까?

  사명자는 사명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옳다. 그것이 응당한 사명자의 자세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명자 스스로가 가져야 할 다짐이다. 그렇지 못하다고 하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정죄를 받아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각자의 상황과 입장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명자가 환율폭등으로 야기된 상황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철수하기로 했다면, 왜 그만 비난를 받고 정죄를 당해야 하는가? 그를 파송하고 교회에 어려움이 닥쳤다고 무책임하게 지원을 중단한 한국교회는 책임이 없는 것일까? 사명자를 파송하는 것은 교회의 명예를 위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소중한 일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사명자를 한 번 파송하는 것으로 끝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파송을 했으면 사명자로 하여금 끝까지 안심하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밀어주어야 한다. 교회의 여건이 비록 힘들어졌을지라도 사명자를 지원하는 일은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다른 비용을 삭감할지라도 선교비를 삭감하는 일은 교회가 취할 정당한 방법은 결코 아니다.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대륙을 철수하기로 결정하고 조용히 대륙을 떠나는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한 없이 착잡하다. 그를 파송한 한국교회는 그의 형편과 사정을 알기 위해 얼마나 수고했었을까?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었까? 어쩌면 아무도 그들을 이해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내 생각이 너무 부정적인 때문일까?

  현재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이 극히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바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연일 보도되는 고국의 소식을 접하기에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몹시 속상하다. 서진사역의 첨병이 되어 대륙생활을 하고 있는 사명자들이 한국교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만 일어난다. 이런 생각은 나만의 기우일까?

  아직도 대륙에는 환율폭등으로 인하여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주님께 몸부림치며 호소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들도 언젠가 철수를 결정하고 조용히 대륙을 떠나게 될런지 모를 일이다. 그들도 보장받지 못한 재정적인 필요를 채울 길 없어 철수를 결정한다면, '믿음이 없는 사명자'라고 온갖 비난과 조소로 그들을 정죄라도 해야 할까?

  그들을 더 이상 비난하거나 조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생각하며,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린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해주었으면 좋겠다. 잠시 환경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철수를 결정했지만, 그들 속에 자리잡고 있는 서진사역의 비전을 다시 한번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그날이 될 수 있기 위해서!

  비난과 조소는 그들의 마음에 더 깊은 상처를 남길 뿐이다. 이제 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었으면 싶다. 좀 더 관심을 갖고, 조금만 더 배려하여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한 줄의 글로 위로와 격려로 마음의 평안과 새로운 일에 대한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으면 싶다.

  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나 역시 어찌해야 할런지, 무어라 해야 할런지.... 이 글을 쓰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더 허해지고 슬퍼진다. 누가 저들의 진실된 위로자가 되어 줄 것가? 주님의 위로를 받으라고? 너무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너무 무심한 말장난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정녕 누가 그들을 격려하여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가? 누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용납하여 가슴에 보듬고 등을 토닥이며 어루만져 줄 것인가?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이기에.... 그들이 바로 나이기에....

  2009. 3. 7 (토)

  
글/ 불꽃 石一進
 

출처 : MyLoveChina
글쓴이 : 왕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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