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사고에는 모국어가 최고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장의열전(張儀列傳)'에는 재미있는 삽화가 하나 수록되어 있는데 그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장석은 월나라 사람으로 초나라에 와서 높은 벼슬을 하고 있었다. 초나라 왕이 말하기를 "장석은 월나라 사람인데 지금도 월나라를 그리워하는가?" 하였다. 신하가 아뢰기를, "대개 사람이 병이 들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법입니다. 장석이 월나라를 그리워한다면 월나라의 소리로 신음할 것이고, 월나라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초나라의 소리로 신음할 것입니다"라 하였다. 그래서 초왕이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장석은 월나라의 소리로 신음했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은 지방에 따라 방언이 다르지만, 장석이 살았던 전국시대에는 월나라와 초나라의 말이 외국어처럼 달랐던 모양이다.
장석이 초나라에 와서 높은 관직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병석에서는 고국인 월나라의 말로 신음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사람들은 고국을 잊지 못한다는 것인데, 특이한 것은 여기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말'을 매개로 하여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장석에게 월나라 말은 모국어이다. 그가 몸은 비록 초나라에 와있지만 어쩔 수 없이 월나라 사람이라는 사실이 유독 신음소리 즉 '말'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다.
이처럼 모국어는 그 민족의 숨결이요, 민족혼의 응결체이다. 그 민족은 모국어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한 민족의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을 보장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모국어인 것이다.
아직도 한국어를 구사하는 중국의 '조선족'과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모르는 러시아의 '고려인'을 비교하면 모국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청소년들의 국어실력이 형편없다고 한다. 어느 일간지의 보도에 의하면,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쓴 글에 "모든 일이 숲으로 돌아갔다"는 표현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를 잘못 쓴 것이다. 또 어느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춘향전'의 변사또의 흉내를 내며 "자, 내 숙청을 들라"고 했다고 한다. 이 역시 '수청'을 잘못 말한 것이다.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다.
나도 지난 학기에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교수가 기말고사 성적을 컴퓨터로 입력하면 그 성적을 본 학생이 역시 컴퓨터로 이의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있다.
한 학생이 성적을 올려달라며 장문의 메일을 보냈는데 그 중에 "교수님, 다음엔 정말 열씨미 공부하겠습니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열씨미'라니. 자기네들 끼리 주고받는 인터넷언어가 '외계어' 수준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교수에게 보내는 메일이라 신중에 신중을 기했을 터인데도 이런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면 청소년들의 '국어 학대', '국어 파괴'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을 대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한자교육을 소홀히 한 것이다. "수포로 돌아가다"의 '수포(水泡)'가 물거품이라는 뜻을 알았다면 "숲으로 돌아가다"는 식의 오류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말을 옳게 쓰기 위해서 한자 학습은 필수적이다.
둘째는 인터넷언어의 범람이다. 아무런 규제 없이 무제한으로 확산되고 있는 인터넷언어를 그대로 방치하면 앞으로 '표준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셋째는 영어 광풍이다. 세상이 온통 영어에 미처 날뛰는 사이에 국어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이 지구상에는 민족 고유의 언어를 갖지 못한 나라가 많은데 우리는 훌륭한 모국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모국어를 알뜰히 갈고 닦아야 할 책임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달 서울에서 개최된 제 18차 세계 언어학자 대회의 "인간은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할 때 가장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선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출처: 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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