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원론
채은수 교수
제1장 선교신학의 발전
세계선교는 역사의 진공 가운데 성취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독일 윌링겐 대회에서는 세계 상황은 타 신앙들과 혁명적 세력들이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었지만 교회는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진취적으로 나아가기보다 방어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다. 선교의 열쇠되는 개념은 하나님 선교2)였다. 교회를 사도적 보냄의 기능보다 왕국의 기대라고 함으로 변경을 넘어가는 보내는 종래의 선교 개념을 폐기했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왔으나 아직도 충만히 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선교를 이데올로기화함으로 선교사상을 크게 변형시키고 말았다.
맥가브란은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이 선교이다라고 함으로 파송의 개념을 망각한 웁쌀라 대회의 결의는 불신의 20억이라는 인구를 배반한 것으로 규정지었다. 교회는 선교이고 교회가 하는 것은 모든 것이 선교이다는 개념은 장미빛 인생이라고 맥가브란은 지적했다.
2. 선교신학의 위치
1. 선교의 요체
2. 선교의 요청(要請)
3. 선교와 선포(宣布)
4. 선교의 장애(障碍)
기독교 선교를 방해하고 있는 사고 방식에 대한 생각은,
① 기독교와 서방 문화는 별개의 것으로 구별해야 한다. 기독교 선교가 이방에서 강한 지역 교회 설립과 문화적인 향상을 도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방인들이 미신과 무지에서 깨어나 우주적 윤리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선교 운동의 열매이다.
② 성경적인 변화가 이방에 요구된다. 이방인의 문화가 가져올 소란을 두려워하여 선교를 기피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하나님에 의해 해방되어 은혜 안에서 성숙한 심령은 그 사회와 문화 변혁에 긍정적인 추진자가 된다. 아직도 사단의 세력 아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는 가운데 복음을 고대하고 있다.
선교의 동기에는 순수한 동기가 있는가 하면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있다.
① 순종의 동기가 있다. 선교는 주를 순종하는데 그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② 사랑, 긍휼, 자비의 동기이다. 이방인을 가리켜 소망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라 하였다(엡2:12) 이방인에게 사랑과 자비, 긍휼을 보이는 주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의미에서 교회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교량이라 할 수 있다.
③ 영광의 동기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힌 바 된 성도가 그분의 영광을 더 높이기 위해 선교를 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④ 종말론적 동기이다.
⑤ 화급의 동기이다. 세월을 아끼라(엡5:16) 시간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인간에게는 무한의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칼 바르트는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죄라고 하였다.
⑥ 개인적인 유익의 동기이다.
과거 역사를 통하여 불순한 동기에서 선교를 추진하였던 것이 있다.
① 제국주의와 결탁하였던 서방의 선교 실행이다.
② 문화적동기이다. 선교는 문화전달에 기여하였다. 서방 문화의 가치는 선교에 의하여 식민지역에 이전되었다.
③ 상업적인 동기이다.
④ 교회 식민주의적 동기이다.
복음을 수용한 토착교회는 교회를 구성함에 있어서 맹목적으로 선교한 교회의 형태를 좇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이 자유가 인정되어야 한다
Mission이란 말은 파견, 사명, 위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선교가 개인적인 보냄, 위임, 사명일 수는 없다. 그것은 교회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선교를 불신 세계에 대한 교회의 임무라고 본다.
해외, 이방, 내국, 대중선교라고 볼 수 있다. 이 세상에 보내진 자, 순례자, 나그네, 증인, 선지자, 종, 소금, 빛이다. 이런 선교의 개념은 하나님의 선교의 그것과 일치한다.
Missions는 신약시대 교회가 변경과 그의 직접적인 복음 영향권 그 너머에 공인된 사람을 보내어 복음의 빈곤 지역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함과 타신앙 내지 무신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의 회심자를 얻어내는 것과 속한 단체나 나라에서 기독교의 열매가 되는 기능적이고 번식적인 지역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복음화는 기독교 사역에 있어서 우선시되는 사역으로서 회심자를 만들려는 결정적인 목적을 가지고 적합하고도 지적인 언어와 설복적인 방법으로 성경에 계시된 바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권위적으로 선포하는 일을 말한다.
기독교화는 복음화 따라야하는 사역이다. 믿는 자로 하여금 복음과 기독교의 윤리로 무장시키는 일이다.
① 복음전파와 병치료에 전념하셨다.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 즉 고통의 세계에로 가지고 오는 일이다.
② 예수님이 대중을 긍휼히 여기심을 본다.
③ 예수님은 추수할 일꾼을 보낸다고 하셨다.
④ 제자를 보내셨다.
그의 선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한 구속을 주는 것, 악한 마귀를 내쫓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다.
오를란도 코스타스는 선교를 선포이며, 제자를 삼는 것, 활동하는 것, 복합적 성장과 해방이다. 존 모토는 교육, 의료, 사회 구조에 대한 투쟁 등의 사업을 더 큰 전도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선교는 축하이다, 승리적인 상황을 축하함이고 교회를 축하함이며 예배의 연속이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서 선교는 하나님께서 그 기원을 두고, 하나님은 세상에 오시기 위해 변방을 가로질러 오신 선교사이다(성육신) 비세돔은 선교가 하나님께 속한 활동임을 의미한다. 또한 선교신학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도출하고자 했다. 하나님 나라는 선교의 목표이며 종말론적 성격을 가진다. 선교를 교회를 세우는 일이 약화되었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인간화에 두며, 역사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였다. 하나님의 역사에서의 구원 행위는 사홰적 일로만 불가능하다. 구원 역사는 무엇이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된다.
칼 바르트의 선교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화해 사건을 선교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선교에 있어서 인간은 구원을 얻도록 초청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증인이 되게 하는 부름에 초청되는 것 뿐이다.
구스타프 바네크는 비기독교인 사이에 교회를 세우고 조직하는 그리스도 교회가 도모하는 전체적인 일이다. 복음 선포를 교회를 세우고 조직하는 것에 연관시켰다.
월터 프레이탁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이방인 가운데에서도 이루어져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관찰하려는 그 분의 계획 가운데 하나님의 행동에 동참하는 것이 선교라고 하였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prosthetics라는 말을 선교학에 사용. 사람을 낚는 것이다. 사람을 더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와 동시에 인간의 복음 전파에 달려 있다. 맥가브란은 선교학을 교회성장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했다. 호켄다이크는 선교학을 사도의 신학이라 하였다. 교회의 보내는 행동을 연구의 대상으로 하기보다 사도적 증거, 가르침, 선포에 관심을 둔다. 버카일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세계를 통하여 성부, 성자, 성령의 구원 역사를 펴는 것에 관한 연구이다. 티벳은 역사에서 하나님에게 인도된 개인들의 존재에 관한 연구이다. 선교학은 기독교 선교에 관한 성경적 재료, 역사, 문화 인류학적 원리들과 기술, 신학적 토대에 관련되는 재료를 연구하고 기록하고 적용하는 학문적 훈련,과학으로서 정의된다. 과학딘 선교학은 인류학, 통문화의 사소통이론, 에큐메니칼 운동, 역사, 문화관계 연구, 방법론, 종교적 조우, 신학과 같은 학문을 결합함으로써 기독교 선교의 이론, 실천에 관한 조직적 연구이다.
선교는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 모두 부과된 사명이다. 선교는 교회 본래적인 사명임이 틀림없다. 교회신학은 선교신학이다. 교회가 선교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선교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두가지 관점에서 관찰하면, 첫째는 교회란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선교 사명을 강조하였다.
오스만 쿨만은 교회는 부활과 재림 그 중간에 존재하는 것이라 하였다. 종말에 처한 교회의 시대적 특색과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십자가의 대속적 죽음, 부활의 승리, 성령의 내림)로 점철된 시대이다. 교회가 설립되어 하나님의 통치가 지상에 임하는 시대이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여야 할 사명, 주님의 나라를 선포할 사명, 복음으로 세계를 가득 채우며, 세계 역사를 변화시켜야 할 사명이 있다. 교회의 시대는 무한한 복으로 채워진 시대. 교회는 위대한 사명 즉 세계와 그 역사를 하나님의 것으로 복귀케 하는 일에 종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교회는 세상으로 파송된 단체이다라는 관점에서 선교의 사명을 논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를 지으셨고 그리스도는 그것을 속량하셨다. 블라우는 세상으로 보내진 교회 이외에 또 다른 교회가 없다. 교회는 세상에 있는 교회, 세상을 위한 교회여야 할 것이다.
보에티우스는 이방을 회개시키는 것과 교회를 설립하는 것,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분의 은혜를 선포하는 것이다. 한국 선교 운동은 자치, 자급, 자전도의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역점을 두었다. 쉐러는 선교사여 돌아가라는 책에서 교회중심주의를 비판하기를 교회설립이 선교의 최종 목적이거나 유일의 것이 될 수 없다. 그 정책은 비성경적이다. 교회는 주의 통치를 선포함이 선교의 목
표이다.
제6장 성령 운동과 선교
에클레시아로서의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불리움받은 백성이다. 하나님의 뜻을 마땅히 순종해야 할 백성이 교회라면 교회는 세계선교라는 주님의 의지를 받들어야 마땅할 것이다. 에클레시아는 교회의 구별됨, 특별한 목적, 일체감,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암시하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종말론적단체로서의 교회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하나님의 결정적인 종말론적 행동에서 시작이 가능한 것이었다. 교회의 태동은 예수님의 부활후의 일이었고, 부활의 신앙을 근거로 가능하였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앙 안에서 그리고 완전한 통치의 날을 기대함 가운데서 모임으로 교회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원시 교회의 탄생은 그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원하는 종말론적 공동체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이고, 신약에서는 소유된 백성, 택하신 족속, 거룩한 나라를 말한다(벧전2:9)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은 이스라엘의 실패와 함께 좌절되는 것이 아니고 계속된다. 하나님의 백성의 목적지는 미래에 올 도성을 바라보며, 가고 있는 순례의 공동체였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교회의 영적, 기능적 실제를 표현하는 것이다. 한스 킹는 그리스도는 교회안에 존재한다. 교회 없이 그리스도가 존재하지 않고 그리스도 없이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교회에 완전히 포함된다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머리로서 존재한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순종함으로 따라가야 한다.
2. 교회의 메시지
구원의 메시지라고 한다. 다드는 사도적 설교와 그 발전에서 교회가 전하여야 할 복음이 기쁨과 환희의 메시지임을 말한다. 선교의 내용인 복음은 무엇인가?
1) 복음: 구약이 기대하던 소망의 성취이다.
구약의 소망은 공의와 의의 시기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공의를 행하도록 거듭 강조하였다. 평화의 시기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은 평화다. 평화는 그분의 속성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진다. 고통을 통하여 매개된 소망의 시기에 대한 것이다. 소망의 성취는 먼저 이스라엘의 고난의 경험을 통하여 다시 회복되는 종말론적 전망을 말하는 것이고, 메시야의 고난은 통하여 소망이 이루어질 것을 말한다.
2) 복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임무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이사야 61장의 예언의 성취되었음을 언급한다. 새로운 시대의 출범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의의 현현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의가 현현하였다. 평화의 현현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의 공의 실현의 도래릉 의미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평화의 출현을 의미한다. 새사람의 창조를 의미한다. 그의 죽음의 결과는 평화, 화해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는 새로운 인간성을 새사람의 의미이다. 교회가 그 분의 왕국은 아닐지라도 그분의 왕국의 표적인 것이다. 교회는 사랑, 공의 , 평화를 나타내야 한다. 또한 불의, 이기심, 소외를 막아야 한다,
교회는 부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다. 흑암으로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빛으로 부름을 받고 그것에 대해 신앙과 순종으로 응답한 자들의 공동체이다.
1) 예배의 목적-
교회를 부르신 목적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데 있다(엡1:6) 이것을 다른 말로 예배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경배, 예배는 속죄 받은 자의 자발적인 표현이다. 출애굽의 주요 목적이 예배였다.
2) 선교의 목적-
그리스도 안에서 산택된 백성이 모인 교회는 세상에 대하여 선교적 목적을 가진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으므로 예배로서 그를 섬기고 하나님의 구속 사업인 선교에 참여함에 그 중요한 목적이 있다. 예배와 선교는 상호관련이 있다. 예배적인 언어에서 이해되고 예배는 선교 가운데서 찾게 된다.
블라우는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교회 외에서 다른 교회가 없고 그리스도 교회의 선교 외
다른 선교가 없다. 즉 세상으로 나감과 모든 나라들을 제자로 삼는 사명이다. 교회의 선교적 부름은 선지자적 차원이다, 선지자는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대한 행동을 알리고 해석하는 사람이다. 선지자적 공동체로 부름받은 교회는 놀라운 하나님의 행동을 나타내어야 한다. 제사장적 차원이다. 증거와 선포라는 차원 다음에 성령의 전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제사장적 기능을 가진 교회의 선교적 차원이다. 왕적인 차원이다. 왕권이라 힘을 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왕권에 참여한다. 왕권은 해방의 능력, 마귀와 정사에 억눌리고 노예화된 세상에 소망의 가능성을 준다
1. 용어들을 통한 선교이해
세렐은 선교사여 본국으로 가라는 책에서 선교사의 자질에 대하여
①사도적인 정신성
② 훌륭한 지적인 준비
③ 기독교 신앙의 전달과 기독교 삶의 공유의 은사
④ 삶의 헌신
⑤ 영적인 깊이
⑥ 값진 동일성 등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사젠트는 선교와 연관이 있는 용어들로서 기독화, 사회화, 문명화의 개념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기독교화란 한 개인이나 사회에서 복음을 수용하고 난 후 결과적으로 따르는 상황을 말한다. 기독교적 윤리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사회화란 한 개인인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의 이상, 모범, 제도에 일치되는 삶의 과정을 갖게 됨을 말한다. 문화화란 기독교 문화라고 하는 서양 문화의 규준에 일치하게끔 피선교지의 어떤 문화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을 말
한다. 선교란 삶의 모든 방면에 전제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맥가브란 박사가 주장하였다.2. 선교의 방향
3. 선교의 양 방향에 대한 평가
4. 결여
1. 요한 칼빈과 일반 은총의 교리
2. 미시오 데이와 역사
3. 호켄다이크와 살롬
4. 왕국 의식과 광범위의 선교
5. 교회와 문화적인 사명
6. 교회와 사회적 사명
7. 영적인 세계와 육적인 세계에 대한 사명
8. 결여
1. 교회성장주의의 역사적 발전과 그 내용
교회 성장을 선교의 목표라함은 선교 역사상 개인 영혼 구원을 선교 목표로 함에 뒤이어 일어난 운동으로 발전적인 것이다. 개인 영혼 구원 중심의 사상은 경건주의가 물려준 보수 교회의 유산이다. 그러나 개인 영혼 구원을 선교 목표로 규정한 것은 선교 활동의 영역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개신교는 이방인의 회심과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냄과 영광을 보임을 선교의 목적5)으로 보면서 自治, 自給, 自轉의 생활을 목표로 하였다. 교회중심적인 생각은 개인 영혼 구원을 선교의 목표로 보는 생각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임에 틀림없다. 교회 성장 신학은 개인 영혼 구원 사상과 교회중심 사상을 이어받은 20세기후반에 나타난 극히 미국적인 사고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⑦ 토착적인 교회원리를 적용하자는 견해이다.
그는 토착적인 원리의 대표적인 것을 네비우스의 방법이라고 본다. 네비우스 방법은 선교사의 순회, 성경 중심적인 사업, 자전, 자영,자급의 교회 설립, 조직적인 방법으로 성경 연구 시행, 타교단과의 연합 사업등을 강조하였다.
2. 교회성장주의에 대한 평가
① 성경적인 평가-
티벳교수는 선교의 목표를 교회 성장이 아닌 사회봉사나 타종교와의 대화하는 정도의 미지근한 태도에 그친다면 그것을 잘못이라 하였다.그는 구원의 체험의 전파와 그것을 체험한 자들의 교제, 교회의 세움은 선교의 지상 목표이기 때문에 아무것으로도 대치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과 비유
6)에 교회 성장을 찾았다. 영적인 성장, 질적인 성장보다 숫적인 성장에 대하여 지시하는 말씀으로 보았다사람을 회심케 함에 있어서 인간은 하나님의 단순한 도구 정도가 아니라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갖고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세로 일하여함을 말하고 있다. 그는 마28:19, 계1:11, 14:6의 나라, 족속, 방언을 보고 성경적이라고 말한다. 바베크는 화려한 결과는 고사하고 핍박만이 내다보이는 곳이라도 주가 원하시면 복음을 들고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는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한다.② 신학적인 평가-
쥬이트는 교회란 말씀과 성례로써 선포된 사도적 메시지를 수용하는 가운데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의 교제이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의 은혜의 선물이며 사랑에 의하여 역사하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는 죄 많은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맥가브란은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동일시하거나 서로 상호 대비되는 것으로 갈라 놓으면 오류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그의 백성 위에 임하는 통치도 주권이며, 교회는 모이는 것과 보내는 것을 그 중요한 기능으로 한다. 티벳은 성장의 구분을 회심에 의하여 성장하는 양적 성장,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완전을 추구함으로 오는 질적 성장, 교회가 토착화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을 유기적 성장이라 한다. 오클란도 코스타스는 예수를 주와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증가함을 숫적 성장, 내적인 신앙의 발전, 신자 상호간의 관계 발전, 기독교에 대한 개념 지식의 발전을 유기적 확장. 그리스도인이 사회 관계 속으로 적극 참여하는 가운데 나타는 성장을 성육신적 성장으로 정의하였다.
③ 실제적인 평가-
하워드
스나이더는 포도주 부대라는 책에서 제도화되고, 너무 비대화된 교회에서 비선교적이고 안이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교회가 비기동적임과 비유동적, 계층적인 구분으로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기동성이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대교회보다 성막적인 교회가 더 바람직함을 말한다. 교회 성장주의가 교회만 설립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성장을 강조함에서 대교회주의가 나올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작은 교회의 장점은 영적이고 심리적으로 만족을 채울 수 있고, 신자들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활용, 사회 봉사에 나아갈 기회가 많고, 인상적 진행에서 큰 교회보다 떨어지나 신자들에게 보다 깊은 변화를 줄 수 있다.3. 결여
1. 위기에 선 현대 문화와 선교
② 교회와 세상의 구분이 폐하여짐에서 온다. 오늘의 신학적 경향은 교회와 세상을 다 하나님께 속한 존재들로 본다. 교회는 열방들에게 보내어진 공동체이다.
③ 구원받은 자와 불신자 간의 구분이 폐하여짐에서 온다. 모든 사람이 주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이다.
④ 증거와 봉사를 구분하지 않음에서 온다. 존 스토트는 선교는 증거와 복사라고 하고, 봉사는 증거의 구체적 형태라고 한다.
⑤ 기독교와 비기독교 종교의 구분을 폐함에서 온다.
⑥ 선교사와 비선교사의 구분을 폐함에서 온다.
선교사란 역사 가운데서 참여에 의하여 하나님 사랑의 구현을 증가시키는 모든 자이다.
이런 현대 문화의 위기적 상화에 대한 보수주의의 선교적 대응은 무엇인가?
① 모든 착취 압박의 형태에 대한 올바른 태도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한 인간에게 죄를 짓는 것은 바로 비인간화를 의미함 사회를 비인간화시키는 것이 된다.
② 인간화의 강조가 물질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비
성경적이다. 하나님과 관계문제이다.
③ 비인간화의 원인을 인간에 죄에서 찾차야 한다.
2. 공의의 실현과 선교
3. 선교와 상황화
상황속에서의 선교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① 기독교의 불변적인 진리를 고수되어야 한다.
② 어떤 상대적 부분은 변화의 대상으로 두어야 한다.
③ 문화적인 면은 토착 문화의 것을 취해야 한다.
④ 성경의 규준이 모든 문화의 가늠자가 되어야 한다.
⑤ 우상 숭배와 같은 문화의 부분은 기능적인 대체호 승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주의 깊은 고찰 가운데 상황화를 이루어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펴는데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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